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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 장 ◦ 통 ◦ 신 한국전력노동조합 민주화를 전망하며 민 동 원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조직쟁의부장) 어용노조의 보호막, 3중 간선제 전국전력노동조합 조합원은 한국전력공사 노동자들이다. 전국전력노동조합은 1962년 3월 3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동조합 이름을 ‘한국전력노동조합’에서 ‘전국전력노동조합’으로 바꿨다. 이것을 줄여서 ‘전력노조’라고 부르는데 노조가 상대하는 회사가 ‘한국전력공사’라는 것을 뚜렷이 하기 위해 옛날처럼 ‘한국전력노동조합’이나 ‘한전노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전노조 밑에는 64개 지부와 221개 분회가 있다. 이 64개 지부 가운데 특수 지부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한일병원 지부다. 한일병원 지부는 한국전력공사 부속 ‘한일병원’에서 일하는 병원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1월 12일, 한전노조 제 54차 중앙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시자 동지는 한일병원지부 위원장이었다. 1961년 10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84년 경기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한전부속병원에 간호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89년 3월에 한국전력노조 한일병원지부 부위원장으로 뽑혀 같은 해 12월부터 지부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90년 2월에 지부 위원장으로 뽑혀 일해 왔다. 한국전력노조 중앙위원회는 64개 지부 위원장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한전노조의 본부 위원장은 세 번에 걸친 간접 선거(3중 간선제)로 뽑고, 지부 위원장은 각 지부 규정에 따라 20여개 지부가 조합원 직접 선거로, 나머지는 간접 선거로 뽑는다. 김시자 동지는 직접 선거로 뽑힌 지부 위원장이며 중앙위원이었다. 분신의 계기였던 한전노조 제54차 중앙위원회는 첫번째 안건으로 중앙위원인 한국전력 광주지부 오경호 위원장과 한일병원지부 김시자 위원장에 대한 징계 결의안을 올려 놓았다. 이들에게 내려질 징계는 조합원 자격과 권리를 묶어 놓는 ‘정권’이고 징계 사유는 ‘규약위반’이라는 것인데 그 속 내용은 이렇다. 한전노조 본부 위원장인 최태일은 90년에 한전 조합원들의 숙원인 ‘본부 위원장 직선제’와 ‘퇴직금 누진율 환원’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후보로 나서서 본부위원장으로 뽑혔다. 한전의 퇴직금 문제는 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있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80년 12월에 한전을 비롯한 26개 정부투자기관의 퇴직금을 공무원 수준으로 깍도록 경제기획원에 지시했다. 그 바람에 한국전력공사 이사회가 퇴직금 누진율을 깎고 노조가 이에 동의함으로써 퇴직금 삭감 단체협약이 체결돼, 81년 1월부터 한전 조합원들의 퇴직금은 그전에 비해 반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 뒤 노조가 없었던 다른 기관은 ‘노동자가 동의하지 않은 근로조건 저하는 위법이다’는 법원 판결 때문에 대부분 원상회복되었다. 하지만 한전만 회복되지 않아서 한전조합원들의 박탈감과 경제적인 피해는 매우 컸고, 그것에 비례해 퇴직금 누진율을 되돌리려는 바램도 그 만큼 컸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채 최태일의 첫번째 임기가 끝났다. 그러나 최태일은 93년 4월에 다시 ‘퇴직금 누진율 환원’과 ‘전 직원 정년 연장’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본부 위원장 후보로 나서 옛날과 같이 세 차례에 걸친 간접 선거 방식(3중 간선제)으로 위원장에 뽑혔다. 한전노조 본부 위원장 임기는 3년이다. 그런데 최태일은 94년 3월이면 정년이 돼 회사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본부 위원장 임기를 채우지 못할 형편이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최태일 어용 집행부를 지켜주고 이용하면서 노무관리를 해 온 한국전력공사와 최태일은 어용노조 간부들과 최태일 본인의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기가 막힌 꾀를 짜냈다. 정년을 2개월 앞둔 94년 1월, 최태일은 직권조인으로 정부 공공부문 임금 가이드 라인 3%에서 임금인상을 합의하고, 공사는 그 댓가로 최태일을 비롯한 어용 노조 간부 13명의 정년을 임기가 끝나는 96년 2월, 3월, 4월까지 늘려 준 것이다. 이 때 정년이 늘어난 어용 노조 간부는 분회 위원장 6명, 지부 위원장 6명, 그리고 최태일이었다. 끝나는 임기가 다른 이유는 한전노조의 분회 위원장 선거는 2월, 지부위원장 선거는 3월, 본부 위원장 선거는 4월에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최태일은 정년이 2년 1개월 늘어났고 다른 간부들도 적게는 5개월에서 많게는 2년이 늘어났다. 최태일은 본부 위원장이 된 뒤부터 해마다, 그리고 특히 처지가 어려울 때마다 ‘퇴직금 누진율 환원투쟁’을 걸고 “불법 투쟁 불사”를 할 것처럼 요란을 떨어왔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퇴직금 누진율을 되돌리려는 열망과 책임추궁을 피해 가기만 하고 정작 싸움다운 싸움은 한 번도 안했다. 더구나 94년에는 “전 직원의 정년을 늘리겠다”고 공약해 놓고 이것을 지키기는 커녕 임금인상을 사실상 포기하는 댓가로 자신과 어용간부들의 정년만 늘려놓은 것이다. 정년연장 반대투쟁과 김시자 열사의 분신 그러자 이 꼴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 조합원들이 최태일을 비롯한 어용 간부들에게 곧바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고 뒤이어 23개 지부 위원장들이 조합원들의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특정인 정년 연장 무효화 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한달 동안 밤을 세우며 농성하고 법정투쟁을 벌이는가 하면 본부 위원장 불신임안을 발의하는 등 최태일 어용집행부를 퇴진시키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 특정인 정년 연장 반대투쟁과 최태일 퇴진투쟁이 일어나자 최태일 어용 집행부와 공사는 갖은 탄압으로 이 싸움에 맞섰다. 먼저 최태일 어용 집행부는 싸움에 참여한 노조 전임 간부들이 전임을 못하도록 두 차례에 걸쳐 전임해제를 시켰다. 그리고 95년 전국대의원대회에 올릴 목적으로 최태일 불신임안 발의 움직임이 일어나자 공사는 어용 집행부가 적극 협조하고 방조하는 가운데 1년전에, 그것도 본부노조 회의실에서 했던 ‘특정인 정년연장 반대 농성’을 트집잡아 공사 업무를 방해했다며 감사실 조사를 하고, 싸움에 참여한 노동자를 전출․해고시켰다. 이어서 최태일 어용 집행부는 3월과 4월에 있을 지부 위원장 선거와 본부 위원장 선거에 후보로 나설 것이 뚜렷한 김시자 지부 위원장과 오경호지부 위원장에게 특정인 정년연장 반대투쟁과 최태일 퇴진운동에 참가한 것이 ‘규약 위반’이라고 트집잡아 징계하려 한 것이다. 결국 이 두 사람에게 조합원 자격과 권리를 정지시켜 3월 지부 위원장 선거와 4월 본부 위원장 선거에 후보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전노조 제54차 중앙위원회에서 이 두 사람에 대한 징계 결의안 심의에 들어가자 김시자 지부 위원장은 신상발언을 통해 “‘특정인 정년 연장 무효화 투쟁위원회’쪽 노조 간부들에 대한 해고, 전임해제, 징계시도 등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어용노조 즉각퇴진”과 “공공부문 노동조합 전임자 축소 지시 철회”를 요구한 뒤 밖으로 나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인 다음 회의장으로 뛰어 들어 왔다. 그리고 “전력노조가 변해야만 한전과 한일병원이 변한다는 생각에서 분신을 결심하게 됐다. 전력노조가 하루속히 변하기를 바란다. 양심대로 생활하는 조합원은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김시자 동지가 분신투쟁으로 이루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김시자 동지가 마지막 남긴 말에 나타나 있듯이 ‘한국전력노동조합의 변화’였고 변화를 위한 조합원들의 행동이었다. 강압적이고 전근대적인 노무관리를 해 온 한국전력공사, 임금 가이드라인과 노조전임자 축소 방침 등으로 노동통제 정책을 펴 온 정부와 함께 한국전력노조는 공사쪽 노무관리부서 역할을 하며 한국전력 노동자를 억누르고 착취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구실을 해왔다. 한국전력노조는 46년 11월 세워져, 53년 우리나라에서 노동법이 생긴 다음 처음으로 노조설립신고를 한 것을 자랑하는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한국전력노조 50년 역사는 어용과 파행의 역사 였으며 조합원과 민주세력에게는 부끄럽고 한 맺힌 역사였다. 한일병원지부 노보 <일터> 95년 5,6월호에 실은 ‘전국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글에 한일병원지부 양계숙 중앙파견 대의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안건사항에 대하여 지적하고 제안하는 열성적인 대의원들의 요구들이 땅!땅!땅! 방망이 소리 하나로 일거에 잠재워졌고, 그때마다 본부 위원장이 쥔 방망이는 요술 방망이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견이 다르고 사고가 다르다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자로 몰아 부치며 본부 위원장의 일방적인 훈계와 원색적인 비난 그리고 거침없이 두드리는 방망이에 의하여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나갔다... 조합원을 대표한 대의원들 앞에서 이 정도라면 조합원은 얼마나 우스운 존재일 것인가! 이 대회에서는 본부에 대한 이견이란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노조에서 이런 일이? 이게 노조인가? 내 자신과 힘없는 조합원들이 가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분명 노조의 주인은 조합원인데……. 민주노조란 단어가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다.” 직접선거제 쟁취를 향하여! 한전노조의 조합원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민주노조’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도 3중 간선제다. 한전노조의 3중 간선제는 64개 지부와 221개 분회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조합원들은 분회별로 지부 파견대의원을 뽑는다. 그리고 지부 파견대의원은 중앙파견대의원을 뽑는다. 마지막으로 이 중앙 파견대의원들이 본부 위원장을 뽑는 형식이 바로 3중 간선제에서의 선거방식이다. 이런 3중 간선제가 노조활동에 미치는 문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 세 차례 간접선거를 거치는 동안 조합원의 뜻이 왜곡된다. 물론 직접선거를 하는 분회와 지부가 있기 때문에 분회나 지부마다 다르긴 하지만 조합원이 직접 뽑을 수 있는 노조간부는 대부분 지부 파견대의원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조합원들이 원하는 중앙 파견대의원 후보나 지부 위원장 후보가 있더라도 그 사람을 지부 파견대의원 가운데 반수 이상이 원해야만 중앙 파견대의원이나 지부 위원장에 뽑힐 수 있다. 본부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최태일이 늘 조합원과 한 약속을 어기고, 조합원의 이익을 팔아 자기의 이익만 챙기고, 회사에 달라붙어 자기를 반대하는 민주세력을 갖은 탄압으로 괴롭혀 조합원의 불만과 원성을 사왔는데도 여전히 본부 위원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3중 간선제 덕분이었다. 둘째, 조합원의 뜻과는 상관없이 대의원 가운데 반만 틀어쥐면 회사 마음대로 노조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회사가 노조활동에 개입, 지배하는 것이 직접선거제에 비해 훨씬 쉽다. 회사의 생각과는 다르게 조합원의 뜻을 성실하게 받아 노조를 운영할 뜻을 갖고 있는 사람이 대의원에 출마하려고 하면 회사는 출마를 포기하게 한다. 이것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선거구 밖으로 아예 전출시켜 버린다. 그래도 만약 그런 사람이 대의원에 당선되면 매수, 회유하거나 협박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편을 들게 한다. 그래도 안되면 엉뚱한 트집을 잡아 해고하면 그만이다. 한전에서 어용집행부와 회사편을 들지 않는다고 징계, 전출, 해고당한 노조간부가 최태일 어용집행부가 들어선 다음부터 따져도 스무 명이 넘는다. 셋째, 노조안에 여러가지 의견이 있더라도 한쪽이 지부 파견대의원 가운데 반 이상만 갖고 있으면 노조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수의견은 항상 무시당하고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용 집행부는 자리를 지키거나 노조를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 대의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애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대의원은 회사와 협조하여 온갖 탄압을 하기 마련이다. 철도노조 위원장 조병학이 대의원들을 매수하기 위해 수 백만원씩 돈을 준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3중 간선제는 한전노조 조합원들이 노조운영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로, 어용 집행부를 지켜주는 방패로, 어용노조가 잘 자라게 길러주는 온상으로, 회사가 노조활동에 개입, 지배하는 것을 부드럽게 해주는 기름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서른 여섯살된 여성노동자가 목숨을 바쳐 투쟁할 수밖에 없게끔 했던 것이다. 김시자 동지가 목숨바쳐 이루고자 했던 ‘한전노조의 변화’는 “양심대로 생활하는 조합원의 행동”을 통해 이 3중 간선제를 없애고 직접선거제를 이루면서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직접선거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이 조합원의 행동없이 이루어 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조합원의 일상적이고 확실한 노조활동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직접선거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선거제도를 쟁취하는 것도 조합원의 직접 행동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1월 21일 한전조합원들은 ‘김시자 열사 정신 계승 및 한전노조 민주화 쟁취 제1차 조합원 결의대회’에서 ‘전력노조 고 김시자 열사 분신대책위원회’를 ‘고 김시자 열사 정신 계승 및 한전노조 민주화 추진위원회’로 바꿨다. 이후 한전 노민추는 직접선거제를 이루기 위해 조합원의 행동을 조직하는 구심체가 될 것이다. 조합원의 직접행동을 통해 직선제를 이루고 그것을 바탕으로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해서 한전 노민추는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조’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 줄 것이다. 최태일 어용집행부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나 반대를 넘어서 ‘민주노조’가 무엇인지 조합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을 깊고 널리 퍼뜨리고 이를 통해 ‘직접선거제를 반드시 쟁취한다’ 결의를 모아 조합원의 단결된 힘으로 직선제를 이룰 것이다. 한/노/정/연 민 동 원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조직쟁의부장) 어용노조의 보호막, 3중 간선제 전국전력노동조합 조합원은 한국전력공사 노동자들이다. 전국전력노동조합은 1962년 3월 3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동조합 이름을 ‘한국전력노동조합’에서 ‘전국전력노동조합’으로 바꿨다. 이것을 줄여서 ‘전력노조’라고 부르는데 노조가 상대하는 회사가 ‘한국전력공사’라는 것을 뚜렷이 하기 위해 옛날처럼 ‘한국전력노동조합’이나 ‘한전노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전노조 밑에는 64개 지부와 221개 분회가 있다. 이 64개 지부 가운데 특수 지부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한일병원 지부다. 한일병원 지부는 한국전력공사 부속 ‘한일병원’에서 일하는 병원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1월 12일, 한전노조 제 54차 중앙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시자 동지는 한일병원지부 위원장이었다. 1961년 10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84년 경기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한전부속병원에 간호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89년 3월에 한국전력노조 한일병원지부 부위원장으로 뽑혀 같은 해 12월부터 지부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90년 2월에 지부 위원장으로 뽑혀 일해 왔다. 한국전력노조 중앙위원회는 64개 지부 위원장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한전노조의 본부 위원장은 세 번에 걸친 간접 선거(3중 간선제)로 뽑고, 지부 위원장은 각 지부 규정에 따라 20여개 지부가 조합원 직접 선거로, 나머지는 간접 선거로 뽑는다. 김시자 동지는 직접 선거로 뽑힌 지부 위원장이며 중앙위원이었다. 분신의 계기였던 한전노조 제54차 중앙위원회는 첫번째 안건으로 중앙위원인 한국전력 광주지부 오경호 위원장과 한일병원지부 김시자 위원장에 대한 징계 결의안을 올려 놓았다. 이들에게 내려질 징계는 조합원 자격과 권리를 묶어 놓는 ‘정권’이고 징계 사유는 ‘규약위반’이라는 것인데 그 속 내용은 이렇다. 한전노조 본부 위원장인 최태일은 90년에 한전 조합원들의 숙원인 ‘본부 위원장 직선제’와 ‘퇴직금 누진율 환원’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후보로 나서서 본부위원장으로 뽑혔다. 한전의 퇴직금 문제는 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있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80년 12월에 한전을 비롯한 26개 정부투자기관의 퇴직금을 공무원 수준으로 깍도록 경제기획원에 지시했다. 그 바람에 한국전력공사 이사회가 퇴직금 누진율을 깎고 노조가 이에 동의함으로써 퇴직금 삭감 단체협약이 체결돼, 81년 1월부터 한전 조합원들의 퇴직금은 그전에 비해 반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 뒤 노조가 없었던 다른 기관은 ‘노동자가 동의하지 않은 근로조건 저하는 위법이다’는 법원 판결 때문에 대부분 원상회복되었다. 하지만 한전만 회복되지 않아서 한전조합원들의 박탈감과 경제적인 피해는 매우 컸고, 그것에 비례해 퇴직금 누진율을 되돌리려는 바램도 그 만큼 컸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채 최태일의 첫번째 임기가 끝났다. 그러나 최태일은 93년 4월에 다시 ‘퇴직금 누진율 환원’과 ‘전 직원 정년 연장’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본부 위원장 후보로 나서 옛날과 같이 세 차례에 걸친 간접 선거 방식(3중 간선제)으로 위원장에 뽑혔다. 한전노조 본부 위원장 임기는 3년이다. 그런데 최태일은 94년 3월이면 정년이 돼 회사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본부 위원장 임기를 채우지 못할 형편이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최태일 어용 집행부를 지켜주고 이용하면서 노무관리를 해 온 한국전력공사와 최태일은 어용노조 간부들과 최태일 본인의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기가 막힌 꾀를 짜냈다. 정년을 2개월 앞둔 94년 1월, 최태일은 직권조인으로 정부 공공부문 임금 가이드 라인 3%에서 임금인상을 합의하고, 공사는 그 댓가로 최태일을 비롯한 어용 노조 간부 13명의 정년을 임기가 끝나는 96년 2월, 3월, 4월까지 늘려 준 것이다. 이 때 정년이 늘어난 어용 노조 간부는 분회 위원장 6명, 지부 위원장 6명, 그리고 최태일이었다. 끝나는 임기가 다른 이유는 한전노조의 분회 위원장 선거는 2월, 지부위원장 선거는 3월, 본부 위원장 선거는 4월에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최태일은 정년이 2년 1개월 늘어났고 다른 간부들도 적게는 5개월에서 많게는 2년이 늘어났다. 최태일은 본부 위원장이 된 뒤부터 해마다, 그리고 특히 처지가 어려울 때마다 ‘퇴직금 누진율 환원투쟁’을 걸고 “불법 투쟁 불사”를 할 것처럼 요란을 떨어왔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퇴직금 누진율을 되돌리려는 열망과 책임추궁을 피해 가기만 하고 정작 싸움다운 싸움은 한 번도 안했다. 더구나 94년에는 “전 직원의 정년을 늘리겠다”고 공약해 놓고 이것을 지키기는 커녕 임금인상을 사실상 포기하는 댓가로 자신과 어용간부들의 정년만 늘려놓은 것이다. 정년연장 반대투쟁과 김시자 열사의 분신 그러자 이 꼴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 조합원들이 최태일을 비롯한 어용 간부들에게 곧바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고 뒤이어 23개 지부 위원장들이 조합원들의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특정인 정년 연장 무효화 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한달 동안 밤을 세우며 농성하고 법정투쟁을 벌이는가 하면 본부 위원장 불신임안을 발의하는 등 최태일 어용집행부를 퇴진시키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 특정인 정년 연장 반대투쟁과 최태일 퇴진투쟁이 일어나자 최태일 어용 집행부와 공사는 갖은 탄압으로 이 싸움에 맞섰다. 먼저 최태일 어용 집행부는 싸움에 참여한 노조 전임 간부들이 전임을 못하도록 두 차례에 걸쳐 전임해제를 시켰다. 그리고 95년 전국대의원대회에 올릴 목적으로 최태일 불신임안 발의 움직임이 일어나자 공사는 어용 집행부가 적극 협조하고 방조하는 가운데 1년전에, 그것도 본부노조 회의실에서 했던 ‘특정인 정년연장 반대 농성’을 트집잡아 공사 업무를 방해했다며 감사실 조사를 하고, 싸움에 참여한 노동자를 전출․해고시켰다. 이어서 최태일 어용 집행부는 3월과 4월에 있을 지부 위원장 선거와 본부 위원장 선거에 후보로 나설 것이 뚜렷한 김시자 지부 위원장과 오경호지부 위원장에게 특정인 정년연장 반대투쟁과 최태일 퇴진운동에 참가한 것이 ‘규약 위반’이라고 트집잡아 징계하려 한 것이다. 결국 이 두 사람에게 조합원 자격과 권리를 정지시켜 3월 지부 위원장 선거와 4월 본부 위원장 선거에 후보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전노조 제54차 중앙위원회에서 이 두 사람에 대한 징계 결의안 심의에 들어가자 김시자 지부 위원장은 신상발언을 통해 “‘특정인 정년 연장 무효화 투쟁위원회’쪽 노조 간부들에 대한 해고, 전임해제, 징계시도 등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어용노조 즉각퇴진”과 “공공부문 노동조합 전임자 축소 지시 철회”를 요구한 뒤 밖으로 나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인 다음 회의장으로 뛰어 들어 왔다. 그리고 “전력노조가 변해야만 한전과 한일병원이 변한다는 생각에서 분신을 결심하게 됐다. 전력노조가 하루속히 변하기를 바란다. 양심대로 생활하는 조합원은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김시자 동지가 분신투쟁으로 이루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김시자 동지가 마지막 남긴 말에 나타나 있듯이 ‘한국전력노동조합의 변화’였고 변화를 위한 조합원들의 행동이었다. 강압적이고 전근대적인 노무관리를 해 온 한국전력공사, 임금 가이드라인과 노조전임자 축소 방침 등으로 노동통제 정책을 펴 온 정부와 함께 한국전력노조는 공사쪽 노무관리부서 역할을 하며 한국전력 노동자를 억누르고 착취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구실을 해왔다. 한국전력노조는 46년 11월 세워져, 53년 우리나라에서 노동법이 생긴 다음 처음으로 노조설립신고를 한 것을 자랑하는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한국전력노조 50년 역사는 어용과 파행의 역사 였으며 조합원과 민주세력에게는 부끄럽고 한 맺힌 역사였다. 한일병원지부 노보 <일터> 95년 5,6월호에 실은 ‘전국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글에 한일병원지부 양계숙 중앙파견 대의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안건사항에 대하여 지적하고 제안하는 열성적인 대의원들의 요구들이 땅!땅!땅! 방망이 소리 하나로 일거에 잠재워졌고, 그때마다 본부 위원장이 쥔 방망이는 요술 방망이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견이 다르고 사고가 다르다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자로 몰아 부치며 본부 위원장의 일방적인 훈계와 원색적인 비난 그리고 거침없이 두드리는 방망이에 의하여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나갔다... 조합원을 대표한 대의원들 앞에서 이 정도라면 조합원은 얼마나 우스운 존재일 것인가! 이 대회에서는 본부에 대한 이견이란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노조에서 이런 일이? 이게 노조인가? 내 자신과 힘없는 조합원들이 가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분명 노조의 주인은 조합원인데……. 민주노조란 단어가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다.” 직접선거제 쟁취를 향하여! 한전노조의 조합원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민주노조’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도 3중 간선제다. 한전노조의 3중 간선제는 64개 지부와 221개 분회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조합원들은 분회별로 지부 파견대의원을 뽑는다. 그리고 지부 파견대의원은 중앙파견대의원을 뽑는다. 마지막으로 이 중앙 파견대의원들이 본부 위원장을 뽑는 형식이 바로 3중 간선제에서의 선거방식이다. 이런 3중 간선제가 노조활동에 미치는 문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 세 차례 간접선거를 거치는 동안 조합원의 뜻이 왜곡된다. 물론 직접선거를 하는 분회와 지부가 있기 때문에 분회나 지부마다 다르긴 하지만 조합원이 직접 뽑을 수 있는 노조간부는 대부분 지부 파견대의원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조합원들이 원하는 중앙 파견대의원 후보나 지부 위원장 후보가 있더라도 그 사람을 지부 파견대의원 가운데 반수 이상이 원해야만 중앙 파견대의원이나 지부 위원장에 뽑힐 수 있다. 본부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최태일이 늘 조합원과 한 약속을 어기고, 조합원의 이익을 팔아 자기의 이익만 챙기고, 회사에 달라붙어 자기를 반대하는 민주세력을 갖은 탄압으로 괴롭혀 조합원의 불만과 원성을 사왔는데도 여전히 본부 위원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3중 간선제 덕분이었다. 둘째, 조합원의 뜻과는 상관없이 대의원 가운데 반만 틀어쥐면 회사 마음대로 노조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회사가 노조활동에 개입, 지배하는 것이 직접선거제에 비해 훨씬 쉽다. 회사의 생각과는 다르게 조합원의 뜻을 성실하게 받아 노조를 운영할 뜻을 갖고 있는 사람이 대의원에 출마하려고 하면 회사는 출마를 포기하게 한다. 이것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선거구 밖으로 아예 전출시켜 버린다. 그래도 만약 그런 사람이 대의원에 당선되면 매수, 회유하거나 협박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편을 들게 한다. 그래도 안되면 엉뚱한 트집을 잡아 해고하면 그만이다. 한전에서 어용집행부와 회사편을 들지 않는다고 징계, 전출, 해고당한 노조간부가 최태일 어용집행부가 들어선 다음부터 따져도 스무 명이 넘는다. 셋째, 노조안에 여러가지 의견이 있더라도 한쪽이 지부 파견대의원 가운데 반 이상만 갖고 있으면 노조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수의견은 항상 무시당하고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용 집행부는 자리를 지키거나 노조를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 대의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애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대의원은 회사와 협조하여 온갖 탄압을 하기 마련이다. 철도노조 위원장 조병학이 대의원들을 매수하기 위해 수 백만원씩 돈을 준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3중 간선제는 한전노조 조합원들이 노조운영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로, 어용 집행부를 지켜주는 방패로, 어용노조가 잘 자라게 길러주는 온상으로, 회사가 노조활동에 개입, 지배하는 것을 부드럽게 해주는 기름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서른 여섯살된 여성노동자가 목숨을 바쳐 투쟁할 수밖에 없게끔 했던 것이다. 김시자 동지가 목숨바쳐 이루고자 했던 ‘한전노조의 변화’는 “양심대로 생활하는 조합원의 행동”을 통해 이 3중 간선제를 없애고 직접선거제를 이루면서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직접선거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이 조합원의 행동없이 이루어 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조합원의 일상적이고 확실한 노조활동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직접선거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선거제도를 쟁취하는 것도 조합원의 직접 행동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1월 21일 한전조합원들은 ‘김시자 열사 정신 계승 및 한전노조 민주화 쟁취 제1차 조합원 결의대회’에서 ‘전력노조 고 김시자 열사 분신대책위원회’를 ‘고 김시자 열사 정신 계승 및 한전노조 민주화 추진위원회’로 바꿨다. 이후 한전 노민추는 직접선거제를 이루기 위해 조합원의 행동을 조직하는 구심체가 될 것이다. 조합원의 직접행동을 통해 직선제를 이루고 그것을 바탕으로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해서 한전 노민추는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조’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 줄 것이다. 최태일 어용집행부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나 반대를 넘어서 ‘민주노조’가 무엇인지 조합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을 깊고 널리 퍼뜨리고 이를 통해 ‘직접선거제를 반드시 쟁취한다’ 결의를 모아 조합원의 단결된 힘으로 직선제를 이룰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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