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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 상반기 투쟁과제를 점검한다(1) 유해위험작업 중지권을 제기하며 하 종 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우리들 가슴에 묻은 이름들 청계천 평화시장 한 복판에서 온 몸을 스스로 불사르고 숨져 간 우리의 훌륭한 선배가 있었다. 벌써 25 년이나 지난 옛일이 되었으나 그 이름을 모르는 노동자는 없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를 가까이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우리가 감히 ‘선배’나 ‘동지’라고 부르기에도 어려울 만큼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시대 우리나라의 수십만 대군을 호령하던 육군 참모총장이 누구였는지... 수많은 석학들이 우러르던 서울대학교의 총장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전태일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없다. 그가 온 몸에 불이 붙은 채로 쓰러졌다 일어나고, 쓰러지면 또 다시 일어나, 뜨거운 연기를 들이마시며 마지막까지 외쳤던 구호가 무엇이었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 후로, 수 많은 우리의 동지, 선배들이 분신 또는 투신으로 숨져갔다. 김경숙, 김종태, 박종만, 홍기일, 박영진, 표정두, 이석규, 김장수, 오범근, 최윤범, 성완희, 송철순, 김윤기, 김종수, 강현중, 김종하... 우리들 가슴에 눈물과 함께 묻은 이름들은 미처 다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런데 그 많은 노동자들이 외친 구호들 중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따위는 없었다. 오해 마시기를... 우리는 지금 전태일 선배의 목숨과 맞바꾼 마지막 구호가 유치했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켜져야 할 최저의 기준이다. 그 법이 밥 먹듯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시대 우리 선배 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불과 25년전의 일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처절한 구호로부터 출발한 것이 70년대의 노동운동이었고, 그 토대 위에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87년 7, 8월의 노동자 대투쟁이 가능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노동자 건강, 이제부터 시작이다 노동자의 ‘유해위험작업 중지권’을 이야기하면서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전태일 선배의 이야기를 왜 길게 하는가라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노동자 건강에 관한 한, 산업재해에 관한 한,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한 지금이 바로 그 수준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이 ‘산업전선’에서 얼마나 좀 먹히고 있는지, 노동자들의 귀중한 생명이 얼마나 처절하게 희생되고 있는지, 그것이 노동자의 가정을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뜨리고 있는지, ‘자본’과 ‘노동’이 만들어내는 기형적 사회 구도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얼마나 몰가치하게 쓰레기장으로 밀어붙이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된다면, 정말로 어느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하라!” “산업재해를 예방하라!” “노동자의 유해위험작업 중지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며 분신해도 마땅치 않은 실정인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노동자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의 기준이라면,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가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의 기준이다. 우리는 지금 노동자들이 분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관련된 활동은 이제 비로서 그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그 시작은 비록 미약할 지라도, 전태일 선배와 그 후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십여년 후의 노동자 대투쟁을 가능케 했듯이, 문송면 군의 죽음과 원진 레이온을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결국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일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을 가능케 할 것이다. 아, 문송면 노동자 건강의 문제가 우리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야 우리는 비로소 산업재해 예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다. 1988년 7월, 문송면이라는 어린 소년이 현장에 취업한 지 두달만에 수은에 중독되어 몇개월 동안을 병상에서 신음하다가 결국 뼛속까지 썩어문드러진 채 15 년의 한맺힌 삶을 마감했다는 연락을 받고 많은 사람들의 억장이 무너져 내렸을 때, 어찌 보면 그때가 비로소 시작이었다. ‘송면이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다짐과, ‘이러한 일이 생기도록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더 많은 사람들의 후회가 결국은 오늘 많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유해위험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있었다면 이 땅 위에 문송면 군이나 원진레이온 따위의 비극은 없었다. 노동자 건강 문제가 뜨고 있다? 어느 나라든지 사회 전체의 발전 단계에 견주어 노동조합 활동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후에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가 노동조합의 중요한 사업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조건 하에서 가능한 일인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노동조합의 활동이 실제적으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임금 인상 투쟁이 실제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시켜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다. 노동조합이 산업재해와 관련된 일련의 활동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는 것이 가능해야만 그것이 노동조합의 사업이 될 수 있다. 둘째, 그 사업의 수행을 통하여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강화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모든 사업을 관철하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임금 인상 투쟁을 통하여 조합원들의 임금을 쥐꼬리 만큼 인상시킬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사분오열되어 지리멸렬했다고 하자. 결론적으로, 그 임투는 수행할 필요가 없다. 노동조합이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활동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노동조합의 조직력 강화에 보탬이 되는 것이 가능한 경우에만 그것이 노동조합의 사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노동조합의 사정은 위와 같은 두 가지의 목표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객관적 조건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고, 실제로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관련된 활동을 통하여 위의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했던 모범적 사례들은 매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안전 보건을 중요한 사업의 하나로 설정하는 것이나, 노동조합 상급 단체나 노동운동 관련 단체들이 노동현장의 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관련 분야에 실무자들을 배치하기 시작하는 것들은 모두 그러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노동부의 감독과 명령이 의미하는 것 노동자의 건강을 노동자가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노동자들에게 유해위험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는 1989년에 이미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운동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주장되었던 내용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노동자 참여권의 꽃’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요구에 대한 자본과 정부의 입장은 한 마디로 ‘노동부의 행정력을 강화하여 그에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노동부가 사업주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여 위험한 작업은 미리 중지시켜 주고, 건강진단과 환경측정 또한 제대로 실시토록 하고, 사업주로 하여금 작업장의 위험 요소를 방지 또는 제거할 수 있도록 ‘감독과 명령’ 조항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에 ‘감독과 명령’ 조항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본은 자발적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법이 이미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사업주는 자발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어서, 부득이 철저한 감독과 명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유해위험작업 중지권을 이야기하면서 위와 같이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왜 하는가라고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노동부의 ‘감독과 명령’이 가지는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위험작업 중지권은 노동자들에게 합법적으로 파업권을 부여하는 위험한 발상이니 사회적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고, 그 대신 노동부의 지도 감독 등 행정력을 강화하여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굳이 우리 사회의 권력과 자본의 상관관계를 들추지 않더라도, 법이라는 것이 그 상관 관계가 적당히 체계화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들추지 않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 체제의 ‘감독과 명령’이 가지는 최대의 맹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행정력이 기업의 안전 보건을 감독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근로감독관들은 공명정대해야 하고, 안전보건에 관하여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실제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사용하여 부당하게 사업주의 편을 들지는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적정한 수의 사업장을 담당하고 있어야 하나 위 내용 중 어느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묻는 사람이 바보이겠지만, 근로감독관을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작업중지권 지금까지 시행되어 오던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 관련 조항은 아래와 같았다. 제 26조 [작업중지 등] ① 사업주는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 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행한 후 작업을 재개하여여 한다. ② 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재해 원인 조사, 안전․보건진단 기타 필요한 조치를 하게 할 수 있다. ③ 제 2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노동부장관이 정한다. 제 51조 [감독상의 조치] ① 근로기준법 제 102조의 규정에 의한 근로감독관은 이 법 또는 이 법에 의한 명령을 시행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당해 사업장에 출입하여 관계자에게 질문을 하고, 장부․서류 기타 물건의 검사 및 작업환경 점검을 행하며, 검사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상으로 제품․원재료 또는 기구를 수거할 수 있다. ② 노동부장관은 제 65조의 규정에 의하여 공단에 위탁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단 소속 직원으로 하여금 사업장에 출입하여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검사 및 지도 등을 행하게 할 수 있다. ③ 제 2항의 규정에 의하여 공단 소속 직원이 검사 또는 지도 업무 등을 행한 때에는 그 결과를 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④ 제 1항 및 제 2항의 규정에 의하여 사업장을 출입할 경우 출입자는 그 신분을 나타내는 증표를 지니고 관계인에게 이를 내보여야 한다. ⑤ 노동부장관은 제 1항 및 제 3항의 규정에 의한 검사 등의 결과가 필요하다가 인정할 때에는 사업주에 대하여 건설물이나 또는 그 부속 건설물․기계․기구․설비․원재료의 대체․사용중지․제거 또는 시설의 개선 기타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⑥ 노동부장관은 제 5항의 규정에 의한 명령이 지켜지지 아니하거나, 위험 상태가 해제 또는 개선되지 아니하였다고 판단될 때에는 당해 기계․설비와 관련된 작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중지를 명할 수 있다. ⑦ 노동부장관은 제 1항 및 제 3항의 경우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근로자에 대하여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준수 등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을 명할 수 있다. 근로감독관은 이 법에 규정된 업무 수행을 위하여 사업장에 마음대로 출입하여 관계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물론 장부, 기계 등을 검사할 수 있고 필요할 때에는 무상으로 제품, 원료, 기구 등을 수거할 수도 있다. 검사의 결과에 따라서 사업주에게 건물, 기계, 원료의 대체, 사용 중지, 제거, 개선 조치 등을 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작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중지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업주는 위 법 제 26조에 의하여, 근로감독관은 제 51조에 의하여 유해위험작업 중지의 권리 및 의무를 갖고 있으되, 노동자에게만은 이 법 어디에도 그 비슷한 권리조차 보장되어 있지 못했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노동자가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에 의해 보호 받고 근로감독관에 의해 지켜지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남의 손에 맡겨 놓고 있는 꼴이다. 유해위험작업 중지권은 자연법적 권리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판단하거나 협의하는 절차를 거쳐 작업의 위험성 여부를 검토하고, 그 내용에 따라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가 법에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노동자의 위험 작업 거부권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여서 구태여 법으로 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권리를 자연법적 권리라고 부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다. 급박한 위험을 당하여 스스로 ‘앗, 위험하다’고 판단한 후 작업을 중지하거나, 작업의 유해 위험성에 대한 장시간의 토론 후에 작업을 중지하는 중요한 행동을 그 권리가 법에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하지 못할 노동자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해위험작업 중지권’을 ‘노동자 참여권의 꽃’이라 부르면서 중요시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만 확보되면 다른 모든 것이 보장되지 않아도 좋다고까지 말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에게 위험작업 중지권이 확보되면 실제로 이 법의 다른 내용들이 다소 허술하다 하더라도 사업주는 안전․보건 조치를 게을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극히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라 해도 그것이 법에 규정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또 다른 운동 공간이 확대된다는 의미와 함께 현실적으로 그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 있어 노동자들이 놓여질 각종 위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 1994년 12월 국회에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중 유해위험작업 중지권과 관련하여 변경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26조 [작업중지 등] ② 근로자는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때에는 지체없이 이를 직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직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기존의 제 26조 [작업중지 등]에 위의 제 2항이 추가되었다. 애초에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었을 때에는 ‘제 26조의 2’를 별도로 규정하여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근로자로 하여금 도피, 작업 중지 등 적절한 자위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되, 이러한 행위를 하기 전 또는 한 후 직상급자에게 그 내용을 보고하고 그 조치에 따르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고, 그 작업의 내용을 노동부령이 정하는 유해 위험한 곳에 근로하는 근로자에게 한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개정 과정에서 그 내용이 위와 같이 변질되었다. 우선 개정된 법에는 작업중지권이 명확한 노동자의 권리로서 명시되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자는 위험한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있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도피, 작업중지 등 적절한 자위 행위를 할 수 있다’는 표현조차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자본에게는 합법적인 파업권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는 작업중지권을 어떠한 형태로도 법에 명시할 수는 없다는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작업중지권을 애써 규정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입법예고안에 일찌기 규정했던 바대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작업의 종류에 대해서도 언급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행령에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작업의 종류를 명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 대한 보호 조항이 전혀 없음은 물론이다. ILO 기준에서 이미 작업중지권과 함께 작업자 보호 조항을 명시하고 있듯이, 작업 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조항이 규정되어야 마땅하다. 위 조항에 대하여 벌금 300만원의 벌칙 조항이 적용되도록 되어 있으니 작업을 중지한 후 이것을 직상급자에게 제 때에 보고하지 않는 노동자만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개정된 위와 같은 작업 중지 관련 규정은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업 중지의 피해는 우선 최소화하고 보자는 자본의 속셈이 발현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해서라도 노동자들의 작업 중지에 관하여 언급하고 싶어했던 노동부의 갸륵한 노력의 결과라고 보아야 하는가? 이 골육지책의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작업중지권은 확보된 것인가 법의 내용이 처음의 계획보다 단순하게 변경되었다는 것이 노동자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노동자의 권리 행사에 대하여 규정한 법의 내용이 자세할수록 실제로 법이 적용될 때에는 제한이 많이 따르게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법규의 내용이 단순하면 구체적으로 실시하기가 막막해져 사문화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노동법이 다 그렇듯이 법의 내용이 애매모호할 때에는 실제적으로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들이 가지는 힘의 크기에 따라 그 법의 실효성이 달라진다. 이번에 개정된 위의 규정에 대해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이 있다는 뜻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할 수 없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의 기형적 구조 탓이다. 사정을 알고 보면 제대로의 웃음거리도 못될 지경이다.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때라고 법에 표현하고 있으니 이것은 노동자에게 작업을 중지하거나 대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미 전제로 한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그것을 관철시킨 사업장은 단체협약에 그와 같은 조항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손해배상 책임 따위에 대해서도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일단 법에 언급된 것만으로도 노동자가 그 권리를 행사한 이후의 손해배상 책임이 포괄적으로 면책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주장하여 그것을 관철시킨 사업장은 단체협약에 그와 같은 조항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사업장마다 그렇게 달리 적용할 필요도 없이 사회 전체적으로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때라고 산업안전보건법에 표현하고 있으니 이것은 노동자에게 작업을 중지하거나 대피할 권리가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라고 법이 해석될 수도 있다. 또한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일단 법에 언급된 것만으로도 노동자가 그 권리를 행사한 이후의 손해배상 책임이 포괄적으로 면책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법이 해석되어 모든 사업장의 노동자가 보호 받을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결국 산업안전보건 활동의 정도와 수준, 나아가서는 전체 노동운동의 힘의 크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작업중지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뾰족한 해답은 없다. 법의 미비한 점들을 노동조합의 단결력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원칙만 분명할 뿐이다. 노동조합 활동의 중요한 원칙 중에 ‘책임은 나눌수록 강해진다’는 말이 있다. 똑같이 파업 투쟁을 한 후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는 노동조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노동조합도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파업의 책임을 노동조합 집행부 간부 몇몇에게 떠 넘긴 노동조합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였으나, 파업의 책임을 전체 조합원이 골고루 나눈 노동조합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조합원이 ‘언제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되나’ 하고 눈에 불을 켜고 대비한 사업장은 회사가 감히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는 치졸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임투나 단체교섭 투쟁이 아무리 강도 높게 전개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마치 노동조합 집행부 간부들에게 하청 준 것처럼 진행된 노동조합은 그 투쟁 이후에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당하면서 지리멸렬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작업 중지도 마찬가지이다.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 몇 사람에게만 그 책임이 떠 넘겨진다면 그 노동자는 작업을 중지했다는 이유로 커다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나, 그 작업 중지의 책임을 전체 조합원이 골고루 나누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거나 적어도 그 행사에 앞서 책임을 골고루 나누는 과정을 거쳤다면 자본가는 감히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법에 언급되기 이전에도 일찌기 노동현장에서 돌발적인 작업 중지 사례는 빈번히 있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 사업주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하지는 못하였다.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가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틈을 보이면 회사는 언제라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의 단결력을 와해시키려고 할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에 관한 내용이 위와 같이 개정된 후 아직까지 이 법에 근거한 유해위험작업 중지 사례는 없었다. 누구든지 이제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첫 발자욱을 내딛는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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