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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현장은 미군기지이전반대: 평택의 자유를 위해 연대하자 문만식 / 평화유람단‘평화바람’객원단원 왜 평택인가? 독일과 일본 다음으로 많은 해외주둔 미군이 배치돼 있는 한국.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지난 3월 미군은 경기도 평택에서 해병대 8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프리덤 배너’로 불리는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였다. 미군 해병대의 전시 대비 훈련으로 예전에는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포항과 진해에서 실시되던 것이 이번에 북한과 가까운 평택에서 실시된 것이다. 최근 미국과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대부분을 평택에 집결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경기 중남부에 위치한 평택시에는 크게 미 육군기지(K-6)와 공군기지(K-55/ 일명 Osan Air Base)가 있고 약 500만평 규모의 공여지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 이전할 미2사단과 용산기지를 수용하기 위해 미군은 추가로 500만평의 토지를 요구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320만평 정도로 협의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신규 공여지까지 합하면 평택시의 10% 가량이 미군공여지가 된다. 하지만 왜 평택인가? 물론 동아시아에서 군사 정치 패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군사전술이 특히 북한을 겨냥해 공격적으로 전환한 것에 따른 변화라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점증하는 전쟁위협을 다시 확인한다. 이것이 우리가 평택에 주목하는 첫 번째 이유다. 하지만 미군기지 평택 이전의 파괴적인 위험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데, 왜냐하면 대미종속적인 한국 정부가 미군 기지를 위한 토지를 강제 수용할 경우 주민들은 자신의 생존/생활의 터전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 평택의 역사는 외국 군대의 기지 확장이 주민들을 삶의 터전인 토지로부터 추방해온 역사였다. 그 역사는 멀게는 2차 세계전쟁을 벌인 일본이 ‘노력동원’을 통해 군사 기지 30~40만평을 건설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뒤 미군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휴전 이후까지 계속 기지를 넓혀왔다. 이미 수십 년 동안 군사기지 확장으로 삶의 터전인 토지를 빼앗기고 추방당한 평택시민들의 고통이 이제 다시 반복되고 확대 재생산될 운명에 놓여있는 것이다. 농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신규 공여지를 위한 토지매입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농민들은 거래가에 못 미치는 저가 매입을 거쳐 쫓겨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지 확장 계획은 평택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있다. 수십 년 미군이 주둔하는 동안 온갖 희생과 고통을 겪어온 기지 인근의 주민들과 평택시민들은 대책위를 꾸리고 몇 달째 야외에서 기지 확장 계획에 반대하는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 육군기지가 있는 평택 팽성읍에는 71개 마을 이장들과 새마을 지도자, 부녀회 등 대다수 주민 자치조직들이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읍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고 국방부의 토지매입계획은 주민들의 거부로 차질을 빚고 있다. 공군기지 일대의 서탄면 주민들도 대책위를 구성해 더 이상 미군들에게 농토를 빼앗길 수 없다는 직접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땅은 우리의 목숨이다. 반드시 지켜낸다”는 플래카드의 구호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농민들의 절규를 나타낸다. 지난 3일에는 팽성, 서탄지역 주민들이 법원에 소음과 진동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평택지역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도 2002년 결성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평택시민들의 기지확장반대 운동이 그저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평택시와 경기도, 지역의 토호세력 등 발전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미군기지 유치가 지역발전의 전기가 될 것이라며 장밋빛 오색풍선을 날리고 있다. 또한 지난달 1일 평택시의회는 <미군기지이전대책기구 설립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기지이전에 반대해온 늙은 농민들은 의회 앞에 주저앉아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군사기지 이전과 농민들에게 목숨과 같은 농토의 운명을 두고 정부와 자치정부, 대의기구들은 농민과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했다. 경제논리, 특히 안보논리 앞에 주권자들인 시민들의 인권은 깡그리 무시되어왔다. 이러한 사정들이 우리가 평택에 주목하는 두 번째 이유다. 5월 29일 평택에 모이기까지. <529반전평화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평택시에 미국의 군사기지가 확장․집결하는 것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 반전활동가들, 통일운동가들, 평화운동가들, 풀뿌리대안운동가 조직들의 연합이다. 여기에는 이라크 파병과 미군기지 평택집결 반대라는 큰 뜻에 동의하는 진보적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노선, 성별․출신․직업을 떠나 폭넓게 결집해 있다. 문화적 축제라는 저항의 표현형태는 반전운동․평화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찾고 만들어내야 할 운동의 조직적 과제를 염두에 두고 세심하게 고려된 것이다. 단 이틀 동안의 문화적 집회지만 처음 제안을 여섯 달 전에 한 것도 그와 같은 과제를 성취하고자 하는 고려 때문이었다. 여섯 달의 시간은 누가 반전․평화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 나아가 대안세계화 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생성되거나 합류하고 있는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운동할 권리’를 요구하면서 참여하고 있고, 진보운동진영의 적지 않은 이들에게 생소할 대안교육운동가들과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지 확장으로 고통 받고 있는 평택시민들은 물론이지만, 지난해 발전지상주의자들에 맞선 저항운동의 전범을 보여준 부안지역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평택이라는 이름으로부터 교훈을 찾고 있는 셈이다. 529 축제를 처음 제안한 곳은 유랑단 ‘평화바람(平風, Wind in Peace)’이었다. 평화바람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미국과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평택 미군기지 집결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범할 때 선언한대로 평화바람을 일으키고자 하는 소망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바람의 웹 사이트(www.peacewind.net)에는 단원들의 활동을 꼼꼼히 적은 유랑일기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단원들 스스로 그때그때의 유랑을 마친 뒤 그날그날을 회상하면서 적어 올리는 이 일기를 읽는 것이 평화바람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평화바람이 첫나들이를 시작한 지난해 11월 26일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첫 날을 맞기까지 불안과 걱정의 나날을 보냈다. 전쟁반대와 평화의 메시지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러 길을 떠나지만 어떻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최진성, 이훈규님 들이 제공해주신 영상물, 해원의 저글링, 보리, 고철 단원들의 노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족했다.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타나서 나팔을 불어주었다. 그 바람에 멋으로 가지고 다니던 나팔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기도 하였다.” 이미 2~3년 전부터 평화바람을 구상한 문정현 신부(유랑단장)를 비롯한 단원들은 사회운동의 정형화된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집회, 퍼포먼스, 기자회견 같은 것들…. 민중들을 찾아가는 것은 없는 것 같았고 따라서 민중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결국 중요한 것은 파병반대, 반전, 평화가 ‘내 일’이라고 민중들이 생각하게 돼야 한다는 점이라고 믿었다. 노무현 정부의 추가 파병 결정으로 화물차 한 대를 급하게 마련해 길을 떠나게 됐다. 평화바람은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온 자리다. 전쟁의 비극, 평화를 호소하는 그림, 엽서, 사진들을 전시하고 영상물을 상영하며 노래와 촌극, 인형극, 움직이는 노래방, 시민 자유발언 등으로 마당은 꾸며진다. 또 지역의 재주꾼들이 참여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전주를 방문했을 때는 시립국악원 예술가가 단소와 대금을 연주해주었다. 이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랑단원들은 반전, 평화, 인권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는 열 명의 남녀다. 기질과 성향이 다르고 개성이 강해 갈등이 없지 않지만, 이들의 그와 같은 다양성이 오히려 평화바람의 통일성의 조건이자 강점이다. 평화바람은 평화를 도덕적이거나 감상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평화가 짓밟히는 구체적인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평화와 자유의 불을 지피는 일을 사명으로 자임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바람에게도 5월 29일은 평택시민들의 줄기찬 기지반환운동에 전국적인 연대의 손길을 본격적으로 내밀기 시작하는 날이다. 한 시민단체의 소식지에 실린 다음과 같은 말은 평화바람의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미국의 군사적 억압의 파괴적인 영향이 민중을 빈곤과 파산, 질병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을 결코 감상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평화를 도덕적이거나 감상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평화가 짓밟히는 구체적인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평화와 자유의 불을 지피는 일(과정) 자체를 평화라고 이해한다. 평택의 자유를 위한 연대를 호소한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다. 529 축제의 취지와 정신에 동의하는 누구나 자신의 말을 무기로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출신과 신분, 나이와 성별, 국적 등 차이를 극복하고 반전과 반제국주의라는 공동의 강령 아래 한 자리에 모여 “총을 내려라”라는 우리의 요구를 제안하고 우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차이를 극복한다는 것은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평택의 자유와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위한 공동의 투쟁에 연대하자. ▶ 529 축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웹 사이트 www.pt529.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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