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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YPE HTML PUBLIC "-//W3C//DTD HTML 4.0 Transitional//EN"> <!-- Document Start --> <P CLASS=HS15> 우리는 지금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하는가? - 최일붕․김하영 비판<A HREF="#FOOTNOTE1"><SUP>1)</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A NAME="#1872747193"></A><IMG src="C:\DOCUME~1\leeus001\LOCALS~1\Temp\UNI675a.gif" width=33px height=57px >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A NAME="#1872747318"></A> <TABLE border="1" width="118px" height="49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17px" width="118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0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0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0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none;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solid;'><P CLASS=HS16> 전 성 식</TD> </TR> <TR> <TD height="31px" width="118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0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0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solid;border-bottom-width:0.10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none;'><P CLASS=HS17> 한노정연 연구원, 민중의료연합 회원</TD> </TR> </TABLE>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A NAME="#1872889314"></A> <TABLE border="1" width="16px" height="28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4px" width="16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2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2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none;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none;'><P STYLE='font-family:"-윤고딕160";font-size:24px;color:"#999999";text-align:justify;line-height:38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1</TD> </TR> </TABLE>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7px;margin-bottom:0px;'> [다함께]가 현재의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옹호와 관련해서이다. 과거 맑스-레닌주의는 노동자계급해방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었다. 수많은 사회주의적인 사상의 하나에서 출발한 맑스주의는 현실의 투쟁 속에서 그 과학성을 입증하였고 노동자계급해방운동의 지도적 사상이 되었다. 그리고 레닌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계승․발전시켜 노동자계급혁명을 승리로 이끌어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국가를 수립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후 현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진 지금 그 역사는 부정당하고 있으며, 레닌주의는 물론 맑스주의조차 무시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반동적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운동이 사상적․이론적 혼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함께] 동지들은 자신들이 맑스-레닌주의자임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으며, 그에 입각한 선전․선동 및 이론․실천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과 같이 사상․이론적 혼란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다함께] 동지들의 이러한(맑스-레닌주의를 옹호하고 현실에 적용하려는) 태도와 노력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그들은 현재 우리 주변의 수많은 활동가들과는 달리 과학적 사상과 이론을 견지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해방운동의 중요한 무기를 버리지 않고 있기에 다른 웬만한 그룹보다 활기차고 힘 있다.<A HREF="#FOOTNOTE2"><SUP>2)</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내가 지금 다루려고 하는 「좌파 혁신과 연대에 제기될 몇 가지 문제」<A HREF="#FOOTNOTE3"><SUP>3)</SUP></A>라는 글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이다. 두 사람의 글은 이른바 ‘좌파’라고 불리는 세력들의 연대에서 제기되는 혹은 “제기될” 첨예한 정치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사상적 혹은 원칙적 차원의 문제에서부터 개념적 혼란과 관련된 문제에까지, 이론적 해명이 필요한 것에서부터 현실 정치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다룬다. 나는 그 글의 많은 부분에 동의하지만 또 다른 많은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글에서는 그들이 다룬 주제들 중 극히 일부만을 다룰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또한 전제하고 있는 문제 자체도 각기 중요한 주제들이기 때문에 이 작은 글에서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며, 그 모든 것에 대한 입장이 일치해야 “혁신과 연대”가 이루어질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한 가지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지적하고 갈 것이 있다. 그것은 두 동지의 글이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정치(학)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교육(학)적인 글이라는 점이다. 이 점이 그들의 글이 비판되는 한 요인임은 분명하다. 그들의 글은 대단한 끈기를 가지고 여러 가지 개념을 설명하고 가르치려 하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비난받아야 할 그들의 태도를 지금은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치학적 글은 일반적으로 많은 부분 교육학적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신이 과학을 대신하고 있으며, 요란스럽고 잡다하고 과시적인 ‘무지’와 ‘무식’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들의 교육적인 글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러한 식의 글쓰기는 어쩌면 지금은 당연할 수도 있다. 우리는 동지들 사이에서도 상호 간에 배우고, 때로는 적들에게서도 배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어떠한 글쓰기 태도를 견지하든 우리는 [다함께] 동지들에게서 배울 것은 배우고, 잘못된 것은 비판으로 가르치면 된다. 그뿐이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A NAME="#1872889315"></A> <TABLE border="1" width="16px" height="28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4px" width="16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2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2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none;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none;'><P STYLE='font-family:"-윤고딕160";font-size:24px;color:"#999999";text-align:justify;line-height:38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2</TD> </TR> </TABLE>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7px;margin-bottom:0px;'> [다함께] 동지들이 맑스-레닌주의를 견지하는 태도에서 오는 장점은 두 사람의 다음과 같은 분석에서 살펴 볼 수 있다. </P> <P CLASS=HS47> 17대 총선 후 사람들의 기대는 컸다.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대와 희망은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열우당이 추진하는 개혁의 상당수는 신자유주의적인 것이고, 그나마 괜찮은 개혁은 기성 권력체제의 방해에 직면해,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진정한 권력이 선출된 의회가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들, 곧 대기업 CEO들과 국가관료, 검찰․경찰간부, 고위법관, 군장성 등에게 있으므로 그들이 한사코 반대하기로 맘먹은 개혁은 그들이 대중투쟁에 밀려 양보하지 않는 한은 실패하기 마련이다.<A HREF="#FOOTNOTE4"><SUP>4)</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이 분석은 탁월하다. 그리고 글을 쓰는 방식에 있어서도 노련하다. 이들은 ‘국가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서 우리사회 그 누구보다도 정통하고 올바르다. 이것은 이들이 맑스-레닌주의를 지키려하는 데서 오는 이득이다. 아마도 이 내용은 「공산당 선언」과 『국가와 혁명』을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생각된다. 그 해당 부분을 살펴보자. </P> <P CLASS=HS47> … 지난 25년에 걸친 대공업의 엄청난 발전, 그리고 이와 함께 진전된 노동자 계급의 당 조직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우선 2월 혁명의 실천적 경험 및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처음으로 2개월간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빠리 꼬뮌의 실천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강령은 몇몇 군데에서 오늘날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특히 꼬뮌은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동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A HREF="#FOOTNOTE5"><SUP>5)</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레닌은 이 부분을 인용한 후 다음과 같은 해석을 추가한다. </P> <P CLASS=HS47> 저자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은 위의 말을, 즉 위에서 작은따옴표 안에 든 말을 마르크스의 저작인 『프랑스의 내전』에서 인용했다. </P> <P CLASS=HS47>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 주요한 수정을 가했다고 소개할 만큼, 파리코뮌에서 얻은 원칙적이고 근본적인 교훈을 아주 중요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P> <P CLASS=HS47> 아주 특징적인 사실은 이 같은 주요한 수정이 기회주의자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으며, 그 수정의 의미를 「공산당 선언」을 읽은 100명의 사람 중 아마도 99명까지는 안 되더라도 적어도 90명까지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이러한 왜곡을 다룬 장(제4장-역자주)에서 보다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조금 전에 인용한 마르크스의 유명한 명제에 대한 현재의 천박한 ‘해설’이란 다름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여기서 강조한 것이(그들의 주장대로는) 권력장악과 반대로 완만한 발전 개념 따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그들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만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려 한다. </P> <P CLASS=HS47> 그러나 실제로 진상은 그와 정반대이다. 마르크스의 생각은 노동계급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타도해야 하며, 단순히 기존국가를 장악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A HREF="#FOOTNOTE6"><SUP>6)</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바로 이어 레닌은 맑스가 쿠겔만(Kugelmann)에게 보내는 서한을 인용한다. </P> <P CLASS=HS47> […]당신이 나의 『브뤼메르 18일』의 마지막 장을 보면 발견할 것이지만, 나는 프랑스 혁명의 다음 시도는 더 이상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관료적-군사적 기구를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때려 부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것이 대륙에서의 모든 현실적 인민 혁명의 전제 조건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영웅적인 빠리의 당 동지들의 시도이기도 합니다.<A HREF="#FOOTNOTE7"><SUP>7)</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을 단다. </P> <P CLASS=HS47> ‘관료․군사기구를 타파하는’이란 말은 하나의 혁명이 수행되는 동안에 국가와 관련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할 임무가 무엇인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적인 가르침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 횡행하고 있는 카우츠키류에 의한 마르크스주의 ‘해석’에서 완전히 간과되고 적극적으로 왜곡되고 있는 부분도 이러한 가르침이다.<A HREF="#FOOTNOTE8"><SUP>8)</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중앙집중화한 국가권력과 그 국가기구의 가장 특징인 ‘관료제’와 ‘상비군’ 등의 존재에 대한 지적과 “국가와 관련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할 임무”에 대한 “원칙적인 가르침”에 대한 이러한 지적처럼 기회주의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없을 것이다. [다함께]의 두 동지는 자신의 글에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슬쩍 돌려 우리에게 이것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이 맑스-레닌주의를 고수하려는 태도와 노력의 성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한에서 그들은 옳고, 이것은 현재 “좌파 혁신과 연대에 제기될”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A NAME="#1872889316"></A> <TABLE border="1" width="16px" height="4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4px" width="16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2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2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none;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none;'><P STYLE='font-family:"-윤고딕160";font-size:24px;color:"#999999";text-align:justify;line-height:38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3</TD> </TR> </TABLE>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7px;margin-bottom:0px;'> 우회적임에도 불구하고 [다함께]의 두 동지들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할 임무”를 다룬 것은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위해서이다. 이들은 이렇게 예측한다. </P> <P CLASS=HS47> (…)개혁이 지지부진하면 으레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다. 한편으로는 보수적 반동이 일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개혁을 지지하는 경향이 발전한다. (…) </P> <P CLASS=HS47> 계속될 정치양극화에서 좌측 방향은 민주노동당으로 향할 것이다. 얼치기 개혁파는 안 되겠다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 민주노동당에게 기회를 줘 봐야겠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물론 반드시 중간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 </P> <P CLASS=HS47>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개혁파의 ‘좌익’으로서 민주노동당은 개혁파의 ‘우익’인 열우당의 위기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다. 다른 한편, 열우당과 마찬가지인 의회 내 개혁파로서 민주노동당은 열우당과 똑같은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 </P> <P CLASS=HS47>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의 사회민주주의적 본질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 민주노동당의 이런 사회민주주의적 본질은 바뀔 수 없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의 주된 기반은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이기 때문이다. </P> <P CLASS=HS47>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은 중요한 사회적 개혁과 개선이 노동계급의 직접적 집단행동으로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선출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현재의 체제가 혁명으로 전복될 수 없고 일련의 개혁들을 통해 변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계급이 현재의 행정부․사법부․입법부와 경찰․군대를 그대로 인계받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들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의 성취 방법을 달리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의 의미 자체를 달리한다.<A HREF="#FOOTNOTE9"><SUP>9)</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민주노동당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 나는 예측할 수 없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계속 성장할 것”인지 혹은 어떤 “첨예한 경제․정치 위기의 시대”를 겪으면서 “매우 급속히 성장할 수 있”을 지도 더 나아가 “집권할 수 있”을 지는 더욱더 예측할 수 없다.<A HREF="#FOOTNOTE10"><SUP>10)</SUP></A> 따라서 이러한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하지만 여기서도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다함께] 동지들의 장점을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국가와 관련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할 임무”에 대한 “원칙적인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을 “개혁파의 우익 열우당”에 비교하여 “개혁파의 ‘좌익’으로서 민주노동당”으로 규정지으며, 양자가 서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 또한 “사회민주주의의 지도자”들의 한계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의 차이점을 “사회주의의 성취 방법”의 문제로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의미 자체를 달리”하는 것으로까지 언급한다. 이 역시 약간은 우회적이지만 개량주의의 한 모습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본질을 정확히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언급하는 사회민주주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노동자계급운동을 대표하고 이끌었던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이론적․철학적으로 부르주아적으로 타락한 그래서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포로로 잡고 있는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이들이 어느 정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여 자본주의를 구하려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적 사회주의이다.<A HREF="#FOOTNOTE11"><SUP>11)</SUP></A> 이러한 사회민주주의가 현재 한국 노동자계급운동 속에서 공공연하게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며, 이에 대한 철저한 비판은 우리 모두의 임무임이 명백하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A NAME="#1872889317"></A> <TABLE border="1" width="16px" height="28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4px" width="16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2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2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none;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none;'><P STYLE='font-family:"-윤고딕160";font-size:24px;color:"#999999";text-align:justify;line-height:38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4</TD> </TR> </TABLE>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7px;margin-bottom:0px;'> 앞서 [다함께] 동지들의 맑스-레닌주의를 견지하려는 태도와 노력과 그에 따른 그들의 장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와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맑스-레닌주의를 견지하려는 ‘태도’와 ‘노력’ 그 자체가 올바름을 그대로 보장하지는 않는다.<A HREF="#FOOTNOTE12"><SUP>12)</SUP></A> 이것은 [다함께] 동지들의 글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A HREF="#FOOTNOTE13"><SUP>13)</SUP></A> 이번 글에서도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P> <P CLASS=HS47> 그러나 레닌은 「‘좌익’공산주의 - 어린애 같은 뒤죽박죽」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개량주의자들과의 공동 활동을 통해 개량주의 지도자와 사상이 노동계급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음을 참을성 있게 노동자들에게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A HREF="#FOOTNOTE14"><SUP>14)</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두 동지는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A HREF="#FOOTNOTE15"><SUP>15)</SUP></A>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한다. 이것까지는 옳다. 문제는 다음부터이다. </P> <P CLASS=HS47> 그래서 민주노동당에 어떤 지지도 제공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계급의식의 불균등한 발전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이다. 또한 원칙과 전술을 구별하지 않는 태도이기도 하다. 극소수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민주노동당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는 점이 자명하다. 하지만 훨씬 더 광범한 대중, 수백만은 아닐지라도 수십만 선진 노동자들에게도 이 점이 자명하지는 않다. 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사회민주주의임이 입증될 때까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현명하다. 입증의 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나의 정치적 세대가 얼마나 길지는 정치적 경험에 달려 있다. 1997-98년 경제공황은 노동조합 관료의 실체를 대중적으로 입증했다. 세계 자본주의와 한국 자본주의의 불안정과 세계 규모로 전개되는 계급투쟁의 양상은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역동적일 것임을 뜻하므로 대중적 입증의 때가 그다지 오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좌파가 옛 소련 블록 사회를 모종의 사회주의로 여기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어 이데올로기의 혼돈이 있고, 이 때문에 운동의 진전이 더디다.<A HREF="#FOOTNOTE16"><SUP>16)</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민주노동당에 어떤 지지도 제공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계급의식의 불균등한 발전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무의미한 수사에 불과하다. 내가 아는 한에서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좌파”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어떤 지지도 제공하기를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판단과 당면한 전략․전술적 상황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를 뿐이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하나의 정치적 세대가 얼마나 길지는 정치적 경험에 달려 있다”는 그런데 “입증의 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전제를 하지만 동시에 두 동지는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역동적일 것”이기에 “대중적 입증의 때가 그다지 오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너무나 공허한 말이다. 왜냐하면 그 근거로 제기되는 “세계 자본주의와 한국 자본주의의 불안정과 세계규모로 전개되는 계급투쟁의 양상”은 이미 오래된 것이며, 현재 노동자계급운동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부족(?)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A HREF="#FOOTNOTE17"><SUP>17)</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런데 앞의 설명은 “그러나 레닌은 (…) 강조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에 어떤 지지도 제공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계급의식의 불균등한 발전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 (…) 원칙과 전술을 구별하지 않는 태도 (…) 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사회민주주의임이 입증될 때까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현명하다”라는 전제와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설명이다. 레닌의 권위로 선언된 이 주장은 옳은 것인가? 우리는 이 주장을 따라야 하는가?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A NAME="#1872889318"></A> <TABLE border="1" width="16px" height="28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4px" width="16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2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2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none;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none;'><P STYLE='font-family:"-윤고딕160";font-size:24px;color:"#999999";text-align:justify;line-height:38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5</TD> </TR> </TABLE>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7px;margin-bottom:0px;'> 구체적 언급은 없지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에서 두 동지가 주로 참조한 곳은 「9. 영국의 “좌익” 공산주의」라고 생각된다. 레닌은 그곳에서 “공산당의 창당을 원하고 있고, 이미 이 문제를 서로 협의하고 있”던 “몇몇 정당들과 정치조직들(영국사회당, 사회주의 노동당, 남 웨일즈 사회주의 협회, 노동자 사회주의 연맹)”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이들 네 개의 조직들은 “제 3 인터내셔날에의 가입, 의회제 대신 소비예뜨 체제의 인정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인정을 바탕으로 통합 공산당을 창당하기 위해 서로”, “협상”하고 있었으나 “통합 공산당을 곧바로 창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까닭은 “의회에 참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새로운 공산당을 오래되고 직업적이고 주로 노동조합으로 구성되고 기회주의적이고 사회 배외주의적인 노동당에 통합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의견 차이”때문이었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레닌은 먼저 “의회선거와 의회에 참가하는데 반대하”는 ‘스코틀랜드 노동자 평의회’의 갤러쳐와 ‘노동자 사회주의 연맹’의 팽크허스트를 “좌익” 공산주의자라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노동당을 지지하라고 주장한다.<A HREF="#FOOTNOTE18"><SUP>18)</SUP></A> 그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P> <P CLASS=HS47>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내가 보기에, 영국 공산주의자들은 제 3 인터내셔날의 원칙들과 의회참여의 불가피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들의 네 정당과 집단(모두 매우 취약하고 몇몇은 형편없이 취약한) 모두를 단일한 공산당으로 통합시켜야만 한다. 공산당은 핸더슨파와 스노우든파에게 다음과 같은 “타협”, 곧 선거협약을 제안해야만 한다. 로이드 조지와 보수당원들의 연합에 맞서 함께 나가자, 노동자들에게서 노동당이나 공산당이 얻은 투표수(선거에서의 투표수가 아니라 특별 투표를 통한 투표수)에 따라 의석수를 분배하자, 선전, 선동, 정치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갖자. 물론 이 맨 나중의 조건 없이는 우리는 이 연합에 들어갈 수 없는데, 이는 그런 연합은 배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A HREF="#FOOTNOTE19"><SUP>19)</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레닌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이상에서 언뜻 보면 우리가 [다함께]의 두 동지의 주장에 따르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레닌은 영국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먼저 공산당으로의 조직적 통합을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당에게 “정치활동의 완전한 자유”등을 포함한 “선거협약”을 제안하라고 한다. 이것은 [다함께] 두 동지가 주장한 것(“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사회민주주의임이 입증될 때까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현명하다.”)과는 완전히 다르다. 물론 당시의 영국 노동당과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더욱 다르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또한 레닌은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된 근거를 자유당과 보수당의 연합을 주장하는 당시 수상인 자유당의 로이드 조지의 연설에서 찾으며 이렇게 말한다. </P> <P CLASS=HS47> 무엇보다도 바로 로이드 조지의 연설에서 명확히 볼 수 있듯이, 영국에서는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두 가지 조건 모두가 분명히 성숙하고 있다.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오류가 지금 특히 위험한 것은 바로 몇몇 혁명가들이 두 가지 조건 각각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주의 깊게, 충분히 의심하고, 충분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A HREF="#FOOTNOTE20"><SUP>20)</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렇다면 두 가지 조건이란 무엇인가? </P> <P CLASS=HS47> (…)요컨대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첫째, 노동자 대다수 (혹은 의식이 있고 생각이 깊으며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노동자 대다수만이라도)가 혁명이 필요하다고 완전히 깨닫고 혁명을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다. 둘째, 지배계급들이 통치의 위기를 겪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통치의 위기는 가장 후진적인 대중들까지도 정치에 끌어들이고 (모든 진정한 혁명의 징후란, 정치 투쟁을 전개할 능력은 있지만 지금까지는 잠잠하였던 억압받는 근로대중의 지도자들이 그 규모에 있어서 십 배, 아니 백배까지도 급속하게 증가되는 것이다), 정부를 약화시킴으로써 혁명가들이 그 정부를 빨리 타도할 수 있도록 해준다.<A HREF="#FOOTNOTE21"><SUP>21)</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레닌은 이렇듯 “두 가지 조건 모두가 분명히 성숙하고” 있는 영국의 당시 정세 속에서, 그래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수세기 동안의 경험에 의해 역사적으로 신성시되어 온- 착취자들에게 극히 유리하였던-(착취자들의)[양당] 체제를 포기하고, 노동당과의 투쟁을 위해서 서로 힘을 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A HREF="#FOOTNOTE22"><SUP>22)</SUP></A>여 보수당과의 연합을 위해 노력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전술을 주장한 것이다. 여기서 당시의 영국과 현재의 한국의 상황과 조건의 유사성을 찾아 같은 전술을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A NAME="#1872889319"></A> <TABLE border="1" width="16px" height="28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4px" width="16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2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2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none;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none;'><P STYLE='font-family:"-윤고딕160";font-size:24px;color:"#999999";text-align:justify;line-height:38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6</TD> </TR> </TABLE>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7px;margin-bottom:0px;'> 여기서 영국 공산주의자들을 괴롭힌 두 번째 문제, 즉 ‘노동당과의 통합’의 문제에 대해서 당시 논의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것은 현재 논의 되는 “좌파정치운동의 혁신과 연대”에 ‘타산지석’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말 그대로 “연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레닌은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에서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너무 적”고 “영국 노동당의 극단적 특수성 때문에” 또 발생하는 문제의 복잡성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한다.<A HREF="#FOOTNOTE23"><SUP>23)</SUP></A> 그런데 몇 달 후 레닌은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영국노동당에 가입하는 것에 대한 연설」<A HREF="#FOOTNOTE24"><SUP>24)</SUP></A>을 함으로써 이 문제를 다시 다룬다. 그는 영국의 젊은 공산주의자들이 벌이고 있는 “새롭고 뛰어난 혁명적인 운동”을 공산당으로 통합하는 것이 자신들의 과제이고, “지체 없이 공산당에 합류하”는 것이 젊은 공산주의자들의 “유일하게 올바른 전술”이라고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에서 말한 논지를 이어간다. 그러나 두 번째 문제에서는 그 전과는 달리 공산당의 노동당 가입을 명확히 주장한다. 무엇이 레닌으로 하여금 이러한 주장을 하게 했는가를 「연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는 먼저 영국노동당에 대해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조직”, “노동조합에 조직된 노동자들의 정치적인 표현” 혹은 “노동조합의 정치부문” 혹은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표현’이란 개념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A HREF="#FOOTNOTE25"><SUP>25)</SUP></A> 그리고 노동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P> <P CLASS=HS47> 물론 노동당원의 대부분이 노동자다. 그러나 한 당이 진정으로 노동자의 정당인가 아닌가는 노동자가 구성원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누가 그 정당을 지도하고 있는가, 당의 행동과 당의 정치전술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정당의 행동과 정치전술, 오직 이것만이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을 가지고 있는가를 결정한다. 유일하게 올바른 이 관점에서 보면, 노동당은 철두철미하게 부르주아지의 정당이다. 왜냐하면 노동당은 비록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반동들, 그것도 완전히 부르주아지의 정신으로 행동하는 가장 최악의 반동들에 의해 지도되기 때문이다. 노동당은 부르주아지의 조직이고, 영국 노스케파와 샤이데만파의 도움을 받아 계획적으로 노동자들을 속이기 위해 존재한다.<A HREF="#FOOTNOTE26"><SUP>26)</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영국 노동당은 1900년 사회주의 단체인 페이비안 협회, 독립노동당, 사회민주연맹이 전국적인 노동자 정당으로 건설한 노동자대표위원회(Labour Representation Committee)에서 출발하고 1906년에 당명을 노동당으로 바꾸게 된다. 창당 이듬해 맑스주의를 표방한 사회민주연맹이 탈퇴하고 나머지 두 조직이 주도한 LRC는 처음부터 과학적 사회주의와는 관계가 멀었다. 또한 국제주의에 입각해 전쟁반대를 주장하는 세력이 일부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정부의 전쟁노력을 지지하고 정부에 참여까지 했다. 이들은 부르주아정당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영국노동자계급운동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개량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의회투쟁에 몰두했기 때문에, 노동당의 지도부들은 볼셰비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사회주의 단체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졌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며, 1917년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아 노동계급이 급진화되고 자신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1918년이 돼서야 ‘사회주의’를 당의 목표로 선언한다.<A HREF="#FOOTNOTE27"><SUP>27)</SUP></A> 이러한 당이었기에 레닌은 노동당을 “부르주아지의 정당”이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따라서 이들과 “선거연합”을 하고 이들을 “지지하”고 “의회 내부로부터 도와야만” 한다는 그리고 그를 통해 이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천성적으로 쁘띠부르주아적이고 변절적이며, 그들의 파멸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노동계급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확신하도록 도와야만 한다”는 레닌의 주장을 “레닌은 「‘좌익’공산주의 - 어린애 같은 뒤죽박죽」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개량주의자들과의 공동 활동을 통해 개량주의 지도자와 사상이 노동계급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음을 참을성 있게 노동자들에게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읽는 두 동지는 옳다.<A HREF="#FOOTNOTE28"><SUP>28)</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런데 레닌은 두 동지보다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즉, 그들처럼 “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사회민주주의임이 입증될 때까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현명하다”라고 무의미한 충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서라면 우리가 이 당(노동당-인용자)에 가입하지 않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라고 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최고의 혁명가들이 이러한 정당(노동당-인용자)에 남아 있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지 않는다면 잘못일 것이다”라고 하고 “러시아 혁명 뿐 아니라 (왜냐면 우리는 지금 러시아 의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 의회에 있는 것이므로) 다른 모든 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공산주의자들이 그런 자유를 누릴 때에는 노동당에 가입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라고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레닌은 (…) 강조했다. 그래서 (…) 현명하다”가 아니라, “그러한 상황”과 “이러한 상황”, “그런 자유”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황”과 “이러한 상황”, “그런 자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래와 같다. </P> <P CLASS=HS47> 그러나 영국 노동당은 매우 특수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노동당은 매우 특수한 형태의 정당이며, 혹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정당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노조원들이 속해있으며, 당원은 400만에 이른다. 모든 관련된 정치조직에 충분한 자유를 제공한다. 따라서 노동당에는 샤이데만, 노스케 또는 그보다 더한 최악의 부르주아 분자, 배신자들을 따르는 영국 노동자들이 포함된다. 동시에, 그러나, 노동당은 영국 사회당이 당 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그리고 노동당의 똑 같은 당원들이 당 지도자들이야말로 배신자들이라고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 독자적인 출판기구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P> <P CLASS=HS47> 맥라인 동지는 이곳, 노동당 회의(Labour Party Conference)에서 우리에게 영국의 샤이데만들은 제3인터내셔널 가입에 대한 문제를 공공연히 제기당할 의무가 있으며, 당(노동당-인용자)의 모든 지부와 섹션들은 이에 대해 논의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P> <P CLASS=HS47> 맥라인 동지는 노동당이 4백만 당원의 당이고, 절반은 노조이고 절반은 정당이며 부르주아 지도자들에 의해 지도되고 있는 당이라 하더라도, 영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봤을 때 혁명적 노동자들의 당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P> <P CLASS=HS47> 영국사회당이 노동당 내에서 노동당 몇몇 지도자들이 배신자임을, 원로지도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에 복무함을, 이들이 노동계급운동 내의 부르주아적 분자들임을 주장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 (…)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이것이 “그러한 상황”과 “이러한 상황”, “그런 자유”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것보다 먼저 레닌이 언급한 문제인 공산당으로의 통합과 관련된 문제이다. 레닌은 공산당이 노동당에 가입할 것인가의 문제를 언급하기에 앞서 영국의 여러 공산주의자 조직의 영국공산당으로의 통합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P> <P CLASS=HS47> 우리의 목표는 여기서 갤러쳐 동지와 그 친구들이 발표한 이 새롭고 혁명적인 운동을 진정한 공산주의자, 즉 마르크스주의자 전술을 가진 공산당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오늘 임무이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레닌은 “너무 약하고 대중 속에서 적절하게 선동을 수행한 능력이 없”는 영국사회당(이 당은 코민테른 대회 며칠 전 전당대회에서 공산당이 되기로 결정했다)은 코민테른 대회에서 채택한 결의문의 정신에 따라 영국사회당의 전술을 변화시키라고 한다. 또한 “비록 대중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치정당은 아니고 이런 점에서 영국사회당 보다 더 약하고 그들의 정치적 활동을 조직할 수”는 없지만, “갤러쳐 동지로 잘 대표되는 젊은 혁명적 요소”, “훌륭한 프롤레타리아 조직”인 직장급사위원회(Shop Steward Com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mittees) 등에게는 “유일하게 올바른 전술”인 “지체 없는 공산당 합류”를 권고하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혁명적 노동자를 공산당에 입당시켜 “더 많은 선전선동과 더욱 혁명적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영국사회당의 낡은 전술을” 바꾸도록 하라고 한다.<A HREF="#FOOTNOTE29"><SUP>29)</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레닌의 이러한 주장-‘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당’ 건설, 당시는 공산당-은 이 「연설」에서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19년 8월 28일 「실비아 팽크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P> <P CLASS=HS47> 만약 어떤 나라에서 혁명적 활동을 수행할 용의가 있는 신념이 강한 공산주의자들이, 소비에트권력(러시아 이외의 사람들이 때때로 사용하는 용어에 따르면 ‘소비에트제도’)의 성실한 지지자들이 의회참가의 문제를 둘러싼 의견차이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P> <P CLASS=HS47> 나는 이러한 의견차이는 현재에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소비에트권력을 목표하는 투쟁은 가장 고도의, 가장 의식적인, 가장 혁명적인 형태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투쟁이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이고 제2의적인 문제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혁명적 노동자와 함께 있는 것이, 이 부분적인 문제에서는 올바른 전술을 갖고 있지만 성실한 불굴의 혁명가가 아니고, 노동자대중 사이에서 혁명적 활동을 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할 역량이 없는 ‘공인된’ 사회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와 함께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의회제도의 문제는 현재에는 부분적이고 제2의적인 문제입니다. 나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베를린에서 개최된 스파르타쿠스단의 1919년 1월의 협의회에서 이 협의회의 다수파에 반대하여 독일의 부르주아의회, 즉 헌법제정‘국민회의’의 선거에 참가할 것을 주장한 것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이 샤이데만과 그의 당, 카우츠키, 하제, 도이미히, 또는 독일의 ‘독립파’의 ‘당’ 전체와 같은 노예적 인물, 탁상공론가, 겁쟁이, 부르주아지의 의지박약한 하수인, 사실상의 개량주의자 같은 부류의 사회주의의 노골적인 배신자와 함께 하는 것보다는, 부분적으로 오류를 범한 공산당과 함께 머무는 쪽을 선택한 것은 더욱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P> <P CLASS=HS47> 나의 개인적인 확신으로는 의회선거의 참가를 거부하는 것은 영국의 혁명적 노동자의 오류이지만, 그러나 당신이 열거한, 볼셰비즘에 동조하고 진정으로 소비에트공화국에 찬성하고 있는 유파나 분자의 전부를 모아 영국의 커다란 노동자적 공산당을 결성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보다는, 이 오류를 범하는 편이 낫습니다. 만일 BSP(영국사회당-인용자)중에서 이를테면 의회참가의 문제를 둘러싼 의견의 불일치 때문에 지금 곧 제4, 제6, 제7의 조류와 합동하여 공산당을 결성하는 것을 거부하는 성실한 볼셰비키가 있다면, 내 생각으로는 이들 볼셰비키는 영국의 부르주아의회의 선거를 거부하는 오류보다 몇 천배나 큰 오류를 범한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경우에는, 4, 6, 7의 여러 조류가 전체로서 단순한 소규모 인텔리겐챠 그룹이 아니라-영국에는 이러한 그룹이 많이 있습니다-실제로 노동자대중과 결합되어 있음을 전제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마 이 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대중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Workers Committees(노동자위원회)와 Shop Stewards(직장급사위원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A HREF="#FOOTNOTE30"><SUP>30)</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이 인용문에서 우리는 레닌의 주장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히 할 수 있다. 그는 ‘의회선거 참가’가 옳다고 하며 ‘의회선거 참가 거부’는 오류라고 명백히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불일치는 이차적인 문제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독일의 예를 들며 “(…) 사회주의의 노골적인 배신자와 함께 하는 것보다는, 부분적인 오류를 범한 공산당과 함께 머무는 쪽을 선택한 것은 더욱 올바른 것”이라고 하며 “영국의 커다란 노동자적 공산당을 결성하는 것”, 여러 “조류와 합동하여 공산당을 결성하는 것”을 강조하며 이것이 본질적이고 일차적인 문제임을 명백히 한다.<A HREF="#FOOTNOTE31"><SUP>31)</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런데 이 경우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즉, 어떤 문제가, ‘의회선거 참가’와 같이 비록 이차적이고 비본질적인 문제더라도, 그것에 대한 불일치 때문에 통합이 불가능한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레닌은 이 경우 이렇게 대답한다. </P> <P CLASS=HS47> 만약 영국에서 이러한 것을 일거에 할 수 없다면, 더구나 만약 영국에서 바로 의회제도를 둘러싼 의견의 불일치 때문에 오직 하나 이것 때문에 소비에트권력의 지지자를 통합하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하다면, 두 개의 공산당, 즉 부르주아 의회제도로부터 소비에트권력으로의 이행에 찬성하는 두 개의 당을 즉시 결성하는 것이 완전한 통일을 향하여 유익한 일보를 내디디는 것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당들은 한쪽이 부르주아 의회에 참가하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한쪽이 이를 거부한다면, 그렇게 내버려두면 될 것입니다. 이 의견의 차이는 현재로서는 그다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때문에 분열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개의 당이 병존하는 것일지라도 현재상태에 비하면 거대한 진보일 것이며, 그것이 완전한 통일을 향한, 그리고 공산주의의 급속한 승리를 향한 교두보가 된다는 것은 거의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A HREF="#FOOTNOTE32"><SUP>32)</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이상의 레닌의 생각은 ‘다함께’ 편집팀 두 동지의 충고가 너무 태평스러울 뿐만 아니라 옳지 않은 주장임을 알려 준다. 동시에 레닌의 충고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A HREF="#FOOTNOTE33"><SUP>33)</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center;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BR>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7px;margin-bottom:0px;'> <A NAME="#1872889320"></A> <TABLE border="1" width="16px" height="28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4px" width="16px" valign="middle" style='border-left-width:0.12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none;border-right-width:0.12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none;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none;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none;'><P STYLE='font-family:"-윤고딕160";font-size:24px;color:"#999999";text-align:justify;line-height:38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7</TD> </TR> </TABLE>[다함께]의 두 동지가 민주노동당 지지의 근거로 삼은 레닌의 저서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은 1920년 7월 19일에서 8월 7일까지 열렸던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소집에 맞추어 준비된 것이다. 글의 대부분은 1920년 4월에 쓰였으며, 대회에 참가한 모든 대표에게 배포된 소책자다. 레닌은 대회가 개막될 때 배포될 수 있도록 몸소 식자와 인쇄의 진행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의 원고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쉽게 쓴 강의 시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고 한다.<A HREF="#FOOTNOTE34"><SUP>34)</SUP></A> 맑스-레닌주의자인 두 동지는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이 사상․이론적 혼란과 전략․전술의 부재로 고통 받고 있는 시점에 적절한 책을 선택․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그 적용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이 책은 그 부제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전략과 전술 모두를 다룬다. 따라서 포괄적이다. 또한 지금도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배울 것은 많다. 하지만 우리가 배울 것은 자구가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것이 뜻하는 의미여야 한다. “우리의 이론은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기 때문이다<A HREF="#FOOTNOTE35"><SUP>35)</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당연히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에서 우리가 무엇인가 교훈을 얻고자 할 때도 이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 그 글이 쓰인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떤 전략과 전술이 제기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 이야기지만 어떤 전략과 전술이 제기되었다면 어떠한 상황이었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의 내용을 길게 인용할 수밖에 없다. </P> <P CLASS=HS47> 1905년 러시아 부르주아 혁명은 세계 역사상 아주 독특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 완전히 독특한 일련의 역사적 조건들의 영향에 힘입어 후진 러시아는 억압당하는 대중들이 혁명기에 이르러 독자적인 행동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을(이것은 중대한 혁명에서는 모두 일어났다)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요성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 무한히 컸다는 점도 처음으로 세계에 보여주었다. 또한 러시아는 경제 파업과 정치 파업을 결합, 정치 파업에서 무장봉기로의 전환, 자본주의에 의해서 억압당하는 계급들의 새로운 대중투쟁 및 대중조직 형태인 소비예뜨들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P> <P CLASS=HS47>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통해서 소비예뜨는 전국적인 규모로의 전면적인 발전에 이어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소비예뜨의 국제적인 성격, 이 투쟁 및 조직 형태가 세계 노동운동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 소비예뜨의 역사적인 사명이 부르주아 의회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일반을 계승하여 뒤를 잇는 것이요, 그 묘혈을 파는 것이라는 사실은 2년이 흐르기도 전에 명확해졌다. </P> <P CLASS=HS47> 그뿐이 아니다. 이제 노동운동의 역사는, 갓 태어났고 강력해지고 있으며 승리로 나아가는 공산주의가 주로 무엇보다도 자신들의(곧 각 나라의) “멘셰비즘”, 곧 기회주의와 사회배외주의에 맞서서, 둘째로는 이를테면 그것의 보충 형태로서의 좌익 공산주의에 맞서 곧 싸움을 벌여야 한다(또한 이미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투쟁은 제2 인터내셔날(오늘날에는 이미 사실상 소멸된)과 제3 인터내셔날의 싸움처럼 분명히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나라에서 전개되었다. 두 번째 투쟁은 독일, 영국, 이딸리아, 미국(적어도 세계 산업 노동자조합과 무정부주의적 생디깔리즘적 경향의 일정부분은 거의 일반적이고 그리고 거의 공통적으로 소비예뜨 체제를 인정하면서도 좌익 공산주의의 오류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한때 생디깔리스뜨들이었던 한 분파가 역시 소비예뜨 체제를 인정하면서도 정당과 의회정치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서, 말하자면 의심할 바 없이 국제적 규모뿐만 아니라 세계적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A HREF="#FOOTNOTE36"><SUP>36)</SUP></A> </P> <P CLASS=HS47> 거대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은 볼세비즘보다 훨씬 빠르게 이 길을 가고 있다. 볼세비즘이 하나의 조직화된 정치적 경향으로서 승리의 길을 마련하는 데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기간이 15년이었다. 반면 제 3 인터내셔날은 겨우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미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곧 제 3 인터내셔날은 겨우 몇 달 전만 해도 제 3 인터내셔날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고, 단단하고, 강력하게 보였으며, 전 세계의 부르주아지로부터 다각적인, 다시 말해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물질적(각료직, 여권, 언론)이며 이념적인 도움을 받았던 황색의 사회배외주의적 제 2 인터내셔날을 패배시켰다.<A HREF="#FOOTNOTE37"><SUP>37)</SUP></A> </P> <P CLASS=HS47> 중요한-물론 전부는 결코 아니지만 중요한-일, 곧 노동계급의 전위를 끌어들여 의회주의에 맞서 소비예뜨 정부 쪽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쪽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일은 이미 이루어졌다 이제는 모든 노력과 모든 주의를 다음 단계에 집중시켜야 하는데 이 단계는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그리고 어떤 관점에서는 실제로 그렇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제를 실천적으로 성취하는 데는 사실상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단계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이행이나 접근 형태들을 모색하는 것이다. </P> <P CLASS=HS47> 프롤레타리아 전위는 이념적으로 획득되었다. 이것은 중요하다. 이것 없이는 승리를 향한 첫 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다. 그러나 승리는 아직도 너무나 멀다. 전위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전체 계급, 곧 광범한 대중들이 전위를 직접적으로 지지하거나, 적어도 전위에게 우호적인 중립을 취하고 적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 서기도 전에, 전위만으로 결전을 치르는 것은 멍청할 뿐만 아니라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다.<A HREF="#FOOTNOTE38"><SUP>38)</SUP></A> </P> <P CLASS=HS47> 의식있는 국제 노동운동의 전위, 곧 공산주의 당, 집단, 경향의 당면 과제는 광범한 대중들(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경우 잠자고 있고 냉담하고 구태의연하고 침체되어 있고 각성되지 않은)을 자신들의 이 새로운 위치로 이끌 수 있게 되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자신의 당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치로 접근하고 나아가는 이런 대중들까지 지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역사적인 과제(의식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소비예뜨 권력과 노동계급 독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가 기회주의와 사회 배외주의에 맞선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승리 없이 성취될 수 없었다면, 혁명에서 전위의 승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위치로까지 대중들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오늘날 당면하게 된 두 번째 과제, 곧 이 당면 과제는 좌익 교조주의의 청산 없이는, 그 오류를 완전히 제거함이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P> <P CLASS=HS47>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를 공산주의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문제가 되는 동안에는(아직 문제가 되는 한), 선전이 최우선 과제이다. 여기에는 온갖 파벌성의 약점을 갖고 있는 써클조차 쓸모 있으며 또한 좋은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대중들의 실천 활동이 문제일 때-이를테면-수백 만 군대의 배치가 문제일 때, 일정한 사회에서 최후의 결전을 위한 모든 계급 세력들의 배치가 문제일 때, 숙달된 선전만으로는, “순수한” 공산주의의 진리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여기에서는 아직 대중들을 지도하지 못하는 소그룹 소속의 선전자에 해당하는 수천 명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는 수백, 수천만 명을 고려해야만 한다.<A HREF="#FOOTNOTE39"><SUP>39)</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레닌의 주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 즉, 첫 번째는 “프롤레타리아 전위를 공산주의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두 번째 과제는 “혁명에서 전위의 승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위치로까지 대중들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의 인용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라 사실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맑스-레닌주의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다함께]동지들도 착각(?)을 했기 때문에 몇 마디 덧붙이겠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당시 국제적 노동자계급운동의 상황은 “갓 태어났고 강력해지고 있으며 승리로 나아가는 공산주의”가 “각 나라의”, “기회주의와 사회배외주의”와 이것의 “보충 형태로서의 좌익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야 했으며, 전자, 즉 “기회주의와 사회배외주의”는 “사실상 소멸된”상태였다. 즉, “노동계급의 전위를 끌어들여 의회주의에 맞서 소비예뜨 정부 쪽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쪽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일은 이미 이루어”진, 다시 말하자면 “승리를 향한 첫 걸음의 전제”, 즉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이념적 획득”이 이미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러한 상황에서 “광범한 대중들(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경우 잠자고 있고 냉담하고 구태의연하고 침체되어 있고 각성되지 않은)을 자신들의 이 새로운 위치로 이끌 수 있게 되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자신의 당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치로 접근하고 나아가는 이런 대중들까지 지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의식 있는 국제 노동운동의 전위, 곧 공산주의 당, 집단, 경향의 당면 과제”였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역사적인 과제”인 “의식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소비예뜨 권력과 노동계급 독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기회주의와 사회 배외주의에 맞선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승리”를 통해 “성취”한 후, “혁명에서 전위의 승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위치로까지 대중들을 이끌 수 있어야”하는 “오늘날 당면하게 된 두 번째 과제, 곧 이 당면 과제는 좌익 교조주의의 청산 없이는, 그 오류를 완전히 제거함이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상황, 레닌의 소책자는 이러한 상황의 반영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강조한 것은 당시의 당면과제 “두 번째 과제”였던 것이다.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하고 과제는 무엇이야 하는가? 레닌이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을 쓰던 그러한 조건과 유사하고 따라서 우리의 당면과제 역시 그러한가? 그래서 [다함께]의 ‘두 동지’처럼 “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사회민주주의임이 입증될 때까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여기에서 다루지는 않겠지만 현재의 노동계급운동이 처해있는 국제적 상황이 당시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A HREF="#FOOTNOTE40"><SUP>40)</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리고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두 번째 과제”를 “당면과제”로 생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너무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당시의 “첫 번째 과제”가 “당면과제”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노동계급의 전위를 끌어들여 의회주의에 맞서 소비예뜨 정부 쪽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쪽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일”이었다. 우리 역시 “노동계급의 전위를 끌어들여”야 한다. 우리의 현 과제는 “프롤레타리아 전위”를 “이념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중요하다. 이것 없이는 승리를 향한 첫 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한 진리다. 그리고 당시 “첫 번째 과제”는 “기회주의와 사회 배외주의에 맞선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승리 없이 성취될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 또한 우리에게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노동자계급운동에 침투한 부르주아적․소부르주아적 사상(사회민주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자율주의 등)에 맞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승리”를 통해 그것을 이루어 내야 한다.<A HREF="#FOOTNOTE41"><SUP>41)</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그렇다면 “노동계급의 전위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당이란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고 계급을 지도하기 위해 계급대중과 밀접하게 연결된 계급의 전위가 결집한 정치조직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전위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전위 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지만) “이것은 중요하다. 이것 없이는 승리를 향한 첫 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기 때문이다.<A HREF="#FOOTNOTE42"><SUP>42)</SUP></A> </P> <P STYLE='font-family:"바탕";font-size:13px;color:"#000000";text-align:justify;line-height:21px;text-indent:0px;margin-left: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가슴에 담아둘 레닌의 한마디. </P> <P CLASS=HS47>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러시아에서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경험은 이 문제를 생각할 줄 모르거나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조차 프롤레타리아트에 있어서 절대적인 중앙집중화와 가장 엄격한 규율이라는 것이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의 한 본질적 조건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P> <P CLASS=HS47> 이 문제는 자주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너무 불충분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은가? 소비예뜨 권력과 볼셰비키에 대해 찬미하는 일과 더불어 볼세비키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필요한 규율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를 아주 깊이 분석하는 일이 더 자주 수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P> <P CLASS=HS47> 정치사상의 한 조류로서 그리고 하나의 정당으로서 볼셰비즘은 1903년부터 있어왔다. 볼세비즘이 존재한 전 기간의 역사, 그것만이 아주 어려운 조건에서도 불셰비즘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에 필요한 철의 규율을 세우고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만족스럽게 설명해 줄 수 있다. </P> <P CLASS=HS47> 먼저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겨난다. 곧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규율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그 규율은 어떻게 검증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강화되는가? 첫째,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의식성에 의해서, 그리고 혁명에 대한 그들의 헌신, 곧 전위의 끈기와 자기희생 및 영웅적 행동에 의해서이다. 둘째, 일차적으로는 가장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근로인민 대중들과, 뿐만 아니라 비프롤레타리아 근로인민 대중들과도 연결을 갖고 가장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며, 그리고 당신들이 원한다면 어느 정도는 융합할 수 있는 전위의 능력에 의해서이다. 셋째, 이 전위가 발휘하는 정치지도력의 올바름에 의해서, 곧 전위의 정치전략 및 전술의 올바름에 의해서인바, 이것은 가장 광범한 대중들이 자신들의 경험으로써 그 전략 및 전술의 올바름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조건들 없이는 부르주아지를 타도하여 사회 전체를 변혁시키고 말 선진계급의 당이 진정으로 될 수 있는 혁명적 당의 규율이란 이루어 질 수 없다. 이러한 조건들 없이는 규율을 세우려는 시도들은 불가피하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장난과 광대짓으로 끝나버린다. 다른 한편, 이러한 조건들은 단번에 생겨날 수 없다. 그것들은 꾸준한 노력과 고난 속에서 얻어진 경험에 의해서만 창출된다. 이들 조건의 창출은 올바른 혁명이론에 의해 촉진되며, 역으로 이 혁명이론은 도그마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으로 대중적인, 진정으로 혁명적인 운동의 실천과 밀접히 연관될 때에만 완전히 나타나게 된다.<A HREF="#FOOTNOTE43"><SUP>43)</SUP></A> <A NAME="#1872747209"></A> <TABLE border="1" width="51px" height="14px"c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D height="14px" width="51px" valign="middle" bgcolor="#000000" style='border-left-width:0.12mm; border-left-color:#000000; border-left-style:solid;border-right-width:0.12mm; border-right-color:#000000; border-right-style:solid;border-top-width:0.12mm; border-top-color:#000000; border-top-style:solid;border-bottom-width:0.12mm; border-bottom-color:#000000; border-bottom-style:solid;'><P STYLE='font-family:"휴먼굵은팸체";font-size:10px;color:"#ffffff";text-align:center;line-height:10px;text-indent:-10px;margin-left:10px;margin-right: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 한/노/정/연</TD> </TR> </TABLE> </P> <P CLASS=HS47> </P> <!-- Document End --> <HR WIDTH="300px" ALIGN="left"><A NAME="#FOOTNOTE1"><P CLASS=HS11> 1) 지난 해 겨울 발행된 『진보평론』제22호는 “좌파정치운동의 혁신과 연대”라는 주제로 특집을 구성하였다. 편집자에 따르면 특집은 “좌파의 각 조직들이 좌파의 연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 입장과 방안을 들어보는 자리로 마련”한 것이었다. 모두 여섯 개의 글이 실렸는데 그 중 네 편이 그러한 내용을 다루었다.(김세균 교수와 원영수 동지는 모두 ‘노동자의 힘’ 회원이지만 두 글은 다른 차원의 글이다. 자세한 내용은『진보평론』제22호를 참조하라.) </P> 1) 지난 해 겨울 발행된 『진보평론』제22호는 “좌파정치운동의 혁신과 연대”라는 주제로 특집을 구성하였다. 편집자에 따르면 특집은 “좌파의 각 조직들이 좌파의 연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 입장과 방안을 들어보는 자리로 마련”한 것이었다. 모두 여섯 개의 글이 실렸는데 그 중 네 편이 그러한 내용을 다루었다.(김세균 교수와 원영수 동지는 모두 ‘노동자의 힘’ 회원이지만 두 글은 다른 차원의 글이다. 자세한 내용은『진보평론』제22호를 참조하라.) <P CLASS=HS11> 이 글은 그 중 ‘다함께’ 편집팀의 두 동지가 쓴 글의 극히 일부에 대한 비판이다. 두 동지는 ‘민주노동당’을 ‘개량주의 정당’,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두 동지는 “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사회민주주의임이 입증될 때까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현명하다.”라고 레닌의 이름으로 주장한다. 나는 ‘규정’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글은 두 동지의 바로 ‘그 주장’에 대한 비판이지 더 이상은 아니다.(이것은 나머지 내용에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머지 세 글보다는 두 동지의 글에 원칙적인 오류가 더 적다는 것도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P> </A><BR><A NAME="#FOOTNOTE2"><P CLASS=HS11> 2) 이들이 이러한 것은 그들 스승의 말에 충실한 것인데 이점에서도 그들은 훌륭하다.</P> 2) 이들이 이러한 것은 그들 스승의 말에 충실한 것인데 이점에서도 그들은 훌륭하다.<P CLASS=HS11> “현재와 같은 반동의 시대는 노동자계급을 분열, 약화시키며 그 전위를 고립시키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수준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림은 물론, 이미 거쳐 온 과거의 저급한 단계로 정치사상을 퇴보시킨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전위의 임무는 무엇보다도 이 퇴행적 흐름에 떠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위는 시류에 맞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불리한 세력관계로 인해 전위가 이미 획득한 정치적 진지를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전위는 최소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진지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적 진지는 막대한 희생을 대가로 치른 과거의 투쟁경험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이 방침을 ‘종파적인 것’으로 여길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물결과 함께 새롭고 거대한 파도를 준비하는 유일한 수단이다.”(트로츠키, 「스탈린주의와 볼셰비키주의」, 『역사의 대안 트로츠키주의』, 풀무질, 2003, p. 193.) </P> </A><BR><A NAME="#FOOTNOTE3"><P CLASS=HS11> 3) 최일붕․김하영, 「좌파 혁신과 연대에 제기될 몇 가지 문제」, 『진보평론』22호, pp. 91-133.</P> </A><BR><A NAME="#FOOTNOTE4"><P CLASS=HS11> 4) 앞의 글, p.109. </P> </A><BR><A NAME="#FOOTNOTE5"><P CLASS=HS11> 5) 맑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저작 선집 1권』, p.370.</P> </A><BR><A NAME="#FOOTNOTE6"><P CLASS=HS11> 6) 레닌, 『국가와 혁명』, 논장, pp.53-4.</P> </A><BR><A NAME="#FOOTNOTE7"><P CLASS=HS11> 7) 맑스, 「맑스가 하노버의 루트비히 쿠겔만에게」,『선집 4권』, p.425.</P> </A><BR><A NAME="#FOOTNOTE8"><P CLASS=HS11> 8) 레닌, 같은 책, p.54.</P> </A><BR><A NAME="#FOOTNOTE9"><P CLASS=HS11> 9) 최일붕․김하영, 앞의 글, pp. 109-10.</P> </A><BR><A NAME="#FOOTNOTE10"><P CLASS=HS11> 10) 여기서 사태가 그들의 예상처럼 진전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도 아니지만-사태의 전개가 “물론 반드시 중간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라도-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다. </P> </A><BR><A NAME="#FOOTNOTE11"><P CLASS=HS11> 1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P> 1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P CLASS=HS11> 맑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저작 선집 제 1권』, 박종철 출판사, pp. 427-8.</P> 맑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저작 선집 제 1권』, 박종철 출판사, pp. 427-8.<P CLASS=HS11> 물론 현재 유럽 사회민주주의 주류는 이것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로 투항한지 오래다.</P> </A><BR><A NAME="#FOOTNOTE12"><P CLASS=HS11> 12) 그래서 두 동지도 이렇게 쓰고 있다. “일부 자칭 맑스주의자들은 보통의 은행원․교사․공무원 등을 중간계급으로 규정한다. 다른 자칭 맑스주의자들은 {비물질 노동}(지식․정보․커뮤니케이션․엔터테인먼트 등의 생산물을 만드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암시한다.”(최일붕․김하영, 앞의 글, p.93.)</P> </A><BR><A NAME="#FOOTNOTE13"><P CLASS=HS11> 13) 탄핵정국 당시 그들의 주장이 그러했다. 그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P> 13) 탄핵정국 당시 그들의 주장이 그러했다. 그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P CLASS=HS11> 김하영, 「민중 운동은 왜 탄핵에 반대해야 하는가?」,『다함께 26호』 </P> 김하영, 「민중 운동은 왜 탄핵에 반대해야 하는가?」,『다함께 26호』 <P CLASS=HS11> 「민주노총이 탄핵 반대 투쟁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함께 27호』</P> 「민주노총이 탄핵 반대 투쟁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함께 27호』<P CLASS=HS11> 김인식,「민주노동당은 탄핵 반대 운동을 지지해야,」,『다함께 27호』</P> 김인식,「민주노동당은 탄핵 반대 운동을 지지해야,」,『다함께 27호』<P CLASS=HS11> 채만수,「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을 경계하자」,『현장에서 미래를』,제97호,2004.4, p.20.</P> 채만수,「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을 경계하자」,『현장에서 미래를』,제97호,2004.4, p.20.<P CLASS=HS11> 메테우스,「다함께 비판-코르닐로프 반란」,『현장에서 미래를』, 제98호, 2004.5, pp.111-125.</P> </A><BR><A NAME="#FOOTNOTE14"><P CLASS=HS11> 14) 최일붕․김하영, 앞의 글, pp. 110-111.</P> </A><BR><A NAME="#FOOTNOTE15"><P CLASS=HS11> 15)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돌베개, 1989. 이 책의 영어 제목은 『Left-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이므로 두 동지의 해석이 더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돌베개 판을 인용하겠다. 영문이 필요한 사람은 아래를 참조하라.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20/lwc/index.htm</P> </A><BR><A NAME="#FOOTNOTE16"><P CLASS=HS11> 16) 최일붕․김하영, 앞의 글, pp. 110-111.</P> </A><BR><A NAME="#FOOTNOTE17"><P CLASS=HS11> 17) 소련과 관련된 언급은 여기서 제외하겠다.</P> </A><BR><A NAME="#FOOTNOTE18"><P CLASS=HS11> 18) “핸더슨파, 클리즈파, 맥도날드파 그리고 수노우든파가 가망 없는 반동들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들이 권력 장악을 원하고 있다는 점(곁들여 말하자면, 부르주아지와의 연합을 내세우면서), 오래된 부르주아적 규칙에 따라 [지배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 이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불가피하게 샤이데만파나 노스케파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로 옳다. 이 모든 것은 옳다. 그러나 이로부터, 이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은 혁명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혁명가들은 혁명을 위해서 이러한 신사양반들에게 어느 정도 의회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온다.”(레닌, 같은 책, p. 89.)</P> </A><BR><A NAME="#FOOTNOTE19"><P CLASS=HS11> 19) 레닌, 같은 책, pp.95-6. 레닌은 이후 더욱 구체적으로 전술에 대해 언급한다.</P> </A><BR><A NAME="#FOOTNOTE20"><P CLASS=HS11> 20) 레닌, 같은 책, p. 95.</P> </A><BR><A NAME="#FOOTNOTE21"><P CLASS=HS11> 21) 레닌, 같은 책, pp.94-5.</P> </A><BR><A NAME="#FOOTNOTE22"><P CLASS=HS11> 22) 레닌, 같은 책, p.93.</P> </A><BR><A NAME="#FOOTNOTE23"><P CLASS=HS11> 23) 레닌 같은 책, p. 99. 여기서 레닌은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P> 23) 레닌 같은 책, p. 99. 여기서 레닌은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P CLASS=HS11> “물론 첫째, [공산당은 자신의 교의를 순수하게 지키고 개량주의로 자신의 독립성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산당의 사명은 멈추거나 돌아섬이 없이 공산주의 혁명을 향해 똑바로 나가는 것이다]라는 원칙에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술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서도 틀림없이 오류에 빠질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원칙들은 1874년에 어떤 타협도 어떤 중간역도 [거부한다]고 선언한 프랑스의 블랑끼파 꼬뮈나르들이 저지른 오류의 반복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둘째, 늘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과제는 역시 공산주의의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원칙들을 계급들과 정당들 사이의 관계의 특수성에, 곧 공산주의로의 객관적인 발전의 특수성에 적용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한 특수성은 각 개별 국가에 고유한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연구하고 모색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pp.99-100.</P> </A><BR><A NAME="#FOOTNOTE24"><P CLASS=HS11> 24) 레닌, 「Speech On Affiliation To The British Labour Party」,『전집』제31권.</P> 24) 레닌, 「Speech On Affiliation To The British Labour Party」,『전집』제31권.<P CLASS=HS11>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20/jul/x03.htm)</P>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20/jul/x03.htm)<P CLASS=HS11>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모든 인용의 출처는 이 글이다.</P> </A><BR><A NAME="#FOOTNOTE25"><P CLASS=HS11> 25) 이러한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영국의 혁명적 노동자들에게 반대할 수 있는 정당성을 준다고 비판한다. </P> 25) 이러한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영국의 혁명적 노동자들에게 반대할 수 있는 정당성을 준다고 비판한다. <P CLASS=HS11> 이와는 별도로 이것을 두 동지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P> 이와는 별도로 이것을 두 동지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P CLASS=HS11> “(…) 민주노동당이 1897년 이래 성장해 온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표현이고, 자본주의의 공세로부터 방어를 원하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사회집단의 정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최일붕․김하영, 앞의 글, p. 111. </P> </A><BR><A NAME="#FOOTNOTE26"><P CLASS=HS11> 26) 레닌, 같은 글.</P> 26) 레닌, 같은 글.<P CLASS=HS11> 우리는 여기서 무엇이 “당”의 계급적 성격을 결정하는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구성원이 노동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누가 당을 지도하는가 하는 문제가 고려되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당의 행동과 정치전술”이다. 이것은 너무나 옳은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것을 언급하는 것은 이 내용을 알기를 원해서가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레닌이 공산당에게 이러한 노동당에 가입하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P> </A><BR><A NAME="#FOOTNOTE27"><P CLASS=HS11> 27) 이 내용은 <조항4>라고 불리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 조항은 1995년 블레어에 의해서 폐지된다.</P> 27) 이 내용은 <조항4>라고 불리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 조항은 1995년 블레어에 의해서 폐지된다.<P CLASS=HS11> “육체노동자와 두뇌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과실을 획득하고 그 과실의 가장 공정한 배분을 확보하는 것은 생산, 분배, 그리고 교환수단의 공공소유와 모든 산업과 서비스에 대한 가능한 최선의 인민에 의한 관리와 통제체제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고세훈, 『영국노동당사』p.156.에서 재인용.)</P> </A><BR><A NAME="#FOOTNOTE28"><P CLASS=HS11> 28) 그런데 이 전제가 바로 이어 주장되는 것처럼 즉 “그래서 민주노동당에 어떤 지지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P> </A><BR><A NAME="#FOOTNOTE29"><P CLASS=HS11> 29) 영국공산당은 공산주의 연합그룹과 영국사회당의 주도하에 1920년 7월 30일에서 8월 1일까지의 창당대회를 거쳐 출범한다. 그런데 출범당시 강령에 ‘의회 선거 참여’와 ‘노동당 가입’에 대한 조항이 포함되었고, 이 때문에 ‘사회주의 노동당’과 ‘남 웨일즈 사회주의 협회’, ‘노동자 사회주의 연맹’은 영국공산당에 참가를 거부한다. 1921년 ‘남 웨일즈 사회주의 협회’와 당시 ‘공산당(제 3 인터내셔날 영국지부)’로 활동하던 ‘노동자 사회주의 연맹’은 영국공산당과 통합했다. 하지만 ‘사회주의노동당 지도부는 통합을 거부했다.(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후주 23), 24)를 참조하라, pp.139-40.)</P> 29) 영국공산당은 공산주의 연합그룹과 영국사회당의 주도하에 1920년 7월 30일에서 8월 1일까지의 창당대회를 거쳐 출범한다. 그런데 출범당시 강령에 ‘의회 선거 참여’와 ‘노동당 가입’에 대한 조항이 포함되었고, 이 때문에 ‘사회주의 노동당’과 ‘남 웨일즈 사회주의 협회’, ‘노동자 사회주의 연맹’은 영국공산당에 참가를 거부한다. 1921년 ‘남 웨일즈 사회주의 협회’와 당시 ‘공산당(제 3 인터내셔날 영국지부)’로 활동하던 ‘노동자 사회주의 연맹’은 영국공산당과 통합했다. 하지만 ‘사회주의노동당 지도부는 통합을 거부했다.(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후주 23), 24)를 참조하라, pp.139-40.)<P CLASS=HS11> "직장급사위원회-제1차세계대전중의 영국의 많은 산업부문에서 만들어진 노동자 조직. 러시아 10월혁명 후 제국주의 여러 나라의 군사간섭시기에 이들 위원회는 소비에트러시아를 지지하는 적극적 행동을 취했다. 그 대표자들(갤러쳐 등)은 후에 영국공산당에 입당했다."(『레닌의 선거와 의회전술Ⅱ 』, 사항주 29), p.397.</P> </A><BR><A NAME="#FOOTNOTE30"><P CLASS=HS11> 30) 레닌, 「실비아 팽크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 『레닌의 선거와 의회전술Ⅱ』, 백두, 1988, pp. 328-9.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9/aug/28.htm)</P> </A><BR><A NAME="#FOOTNOTE31"><P CLASS=HS11> 31)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사회민주주의임이 입증될 때까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두 동지의 주장은 옳지 않다.</P> </A><BR><A NAME="#FOOTNOTE32"><P CLASS=HS11> 32) 레닌, 앞의 글, p.330.</P> </A><BR><A NAME="#FOOTNOTE33"><P CLASS=HS11> 33) 코민테른 제2차 대회는 레닌의 연설 후 영국공산당의 노동당의 가입을 승인한다. 하지만 노동당 지도부는 공산당의 노동당 가입을 거부한다. 또한 앞서 본대로 영국의 공산주의자들은 거의 영국공산당으로 통합한다. 노동당은 1923년 자유당의 지지를 조건으로 한 소수정부지만 집권한다. </P> </A><BR><A NAME="#FOOTNOTE34"><P CLASS=HS11> 34) 포노말료프, 『소련공산당사 3』, 거름, p. 137.</P> </A><BR><A NAME="#FOOTNOTE35"><P CLASS=HS11> 35) “사회민주주의자의 전술은 그것의 기본적인 원칙을 정의하거나 원칙(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명제)의 어떤 것이 포함되었고 왜 포함되었는가를 밝히지 않아도 항상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 즉 사회민주주의자의 전술은 당면시기에 당면한 투쟁의 목표(즉시 가능한 결과)나 그 시기 적용될 투쟁방법을 명확히 하지 않아도 항상 최대한의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다고 말하는 것, 우리의 전술이 대중역량을 강화해야 하고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공개적인 투쟁과 미덥지 못한 통치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하는 활동에 대한 자명한 이치를 되풀이하는 것-이런 것의 모든 결점은 불을 보듯 명백하며 전반적인 논지를 불필요하고 무용한 자갈로 변화시킨다.” (레닌, 「어느 정치평론가의 노트」,『러시아 반종파투쟁-1908-14년의 좌우익 기회주의』, 미래사, 1990, pp.47-8.)</P> 35) “사회민주주의자의 전술은 그것의 기본적인 원칙을 정의하거나 원칙(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명제)의 어떤 것이 포함되었고 왜 포함되었는가를 밝히지 않아도 항상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 즉 사회민주주의자의 전술은 당면시기에 당면한 투쟁의 목표(즉시 가능한 결과)나 그 시기 적용될 투쟁방법을 명확히 하지 않아도 항상 최대한의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다고 말하는 것, 우리의 전술이 대중역량을 강화해야 하고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공개적인 투쟁과 미덥지 못한 통치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하는 활동에 대한 자명한 이치를 되풀이하는 것-이런 것의 모든 결점은 불을 보듯 명백하며 전반적인 논지를 불필요하고 무용한 자갈로 변화시킨다.” (레닌, 「어느 정치평론가의 노트」,『러시아 반종파투쟁-1908-14년의 좌우익 기회주의』, 미래사, 1990, pp.47-8.)<P CLASS=HS11> “상황은 마치 3차 두마의 초(超)반동적인 본성이 저절로 보이코트와 같은 그런 투쟁방법이나 슬로건을 필연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만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는 보이코트의 적용가능성의 역사적 조건들을 검토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러한 논거의 부적절성은 어떤 사회민주주의자에게나 절대적으로 명백하다. 맑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사회민주주의자는 보이코트에 관한 그의 결론을 이런저런 기구의 반동성의 정도로부터가 아니라, 러시아 혁명의 교훈이 지금 보여준 바와 같이 보이코트로 알려진 특수한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특수한 투쟁조건들의 존재로부터 끌어낸다. 만약 그 누가 2년 간의 우리 혁명의 경험을 고려함 없이, 그 경험을 연구함 없이 보이코트를 논의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그가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레닌, 「보이코트에 반대하여-한 사회민주주의 평론가의 노트」,『레닌 저작집 4-3』, 전진, pp. 20-1.)</P> </A><BR><A NAME="#FOOTNOTE36"><P CLASS=HS11> 36)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pp.101-2.</P> </A><BR><A NAME="#FOOTNOTE37"><P CLASS=HS11> 37) 레닌, 같은 책, p.102.</P> </A><BR><A NAME="#FOOTNOTE38"><P CLASS=HS11> 38) 레닌, 같은 책, p. 104.</P> </A><BR><A NAME="#FOOTNOTE39"><P CLASS=HS11> 39) 레닌, 같은 책, pp.104-5.</P> </A><BR><A NAME="#FOOTNOTE40"><P CLASS=HS11> 40)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광범하고 빈번하게 벌어졌다. 투쟁의 과정에서 외쳐진 가장 인기 있는 주장이자 구호 중 하나가 TANA(There are thousands of alternatives!)라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상황과 다르다는 하나의 상징이다.</P> 40)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광범하고 빈번하게 벌어졌다. 투쟁의 과정에서 외쳐진 가장 인기 있는 주장이자 구호 중 하나가 TANA(There are thousands of alternatives!)라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상황과 다르다는 하나의 상징이다.<P CLASS=HS11> 이것은 [다함께] 동지들과 매우 가까운 사람의 주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캘리니코스, 「2장 다양한 종류와 전략들」, 『반자본주의 선언』, 책갈피, 2003.</P> </A><BR><A NAME="#FOOTNOTE41"><P CLASS=HS11> 41) 그리고 이러한 시기에는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를 공산주의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문제가 되는 동안에는(아직 문제가 되는 한), 선전이 최우선 과제이다. 여기에서는 온갖 파벌성의 약점을 갖고 있는 서클조차 쓸모 있으며 또한 좋은 결과를 낳는다.”(레닌, 같은 책, p.105.)</P> </A><BR><A NAME="#FOOTNOTE42"><P CLASS=HS11> 42) “프롤레타리아트는 유산계급의 집단적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유산 계급에 의해 설립된 낡은 모든 당들과 대립되는 특별한 정당으로 자기 자신을 구성할 때에만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P> 42) “프롤레타리아트는 유산계급의 집단적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유산 계급에 의해 설립된 낡은 모든 당들과 대립되는 특별한 정당으로 자기 자신을 구성할 때에만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P CLASS=HS11> 이와 같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정당으로 구성하는 일은 사회 혁명 및 그것의 최종 목표인 계급 폐지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 (맑스․엥겔스, 「1892년 9월 2일에서 7일까지의 헤이그 일반 대회의 결의안」,『저작선집』제4권, 박종철 출판사, p. 157.)</P> </A><BR><A NAME="#FOOTNOTE43"><P CLASS=HS11> 43) 레닌, 같은 책, pp. 17-9.</P> </A><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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