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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경제개혁기 중국의 노동조합 백 승 욱 / 연구위원․한신대 강사, 사회학 중국 경제개혁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국유기업의 개혁이다. 중국에서는 기업이나 국가기관 또는 비영리 목적의 사회단체(事業) 등과 같은 조직형태를 ‘딴웨이’(單位)라고 부른다. 이 單位는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보장과 사회보장의 지원이라는 임무를 자체해결하는 기능을 해 왔고, 그외에도 생활의 각종 측면들을 모두 관할하였기 때문에 생산의 장인 동시에 생활의 장이기도 했다. 국유기업의 개혁이란 이런 ‘單位’체제를 해체하여, 위로는 상급 주관 국가기관의 간섭을 점차 배제하여 기업의 자주권을 획득하고 아래로는 單位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존을 제거하고 노동자들을 좀 더 ‘시장적’ 상황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이는 노동력에 대한 국가의 관리방식이라는 개입형태를 통해 고용 유연성의 확대, 임금격차의 확대, 사회보장의 화폐화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노동 관리방식의 변화는 노동자들에 대한 과거의 정치적 관리방식 상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였다. 많은 노동자들의 지위가 불안정해지고, 불만들이 누적되고 이것이 여러가지 자발적 저항 형태 - 노동 적극성의 하락이라는 수동적 저항에서 파업과 시위라는 적극적 저항에 이르기까지 - 로 표출됨에 따라 이런 불만과 요구를 매개할 통로를 건립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과거 단위 내에서 노동자에 대한 정치적 관리 및 통제는 주로 당조직을 통해 이루어져 왔는데, 경제 개혁과 더불어 단위 내에서 당의 입지는 기업과 당의 분리로 인해 ‘정치적 지도’로 축소되거나 당조직의 전문관료화로 귀결되어 당조직을 통한 노동자 불만의 흡수에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1980년대 이후 그리고 특히 1989년의 천안문 사태를 거치면서 주목할 만한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 노동자의 ‘민주관리’ 참여 형식으로서의 職工代表大會(이하 職代會)를 활성화하고, 그 일상 업무의 담당자이자 노동자 이해의 대변체로서 노동조합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런 변화는 과거와 달리 경제개혁의 결과 기업 내에서 경영자층과 노동자들의 이익의 분화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제한적이나마 인정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의 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위로부터 조직된 職代會체제와 노동조합(工會)이 얼마나 노동자의 이해를 수용하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의 노동조합은 아래로부터 노동운동의 힘을 싣고서 등장한 것이 아니며, 일종의 국가기관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큰 충격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적 변화의 폭과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노조에 대해 노동자와 노조 간부 모두 정체성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노조는 실제로 당의 ‘전도벨트’로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職代會와 노동조합은 외양상 대의적이고 참여적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제 그 운행은 형식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職代會와 노동조합은 단위 내에서 비정형화, 비규범화 상태로 존재하는 노동자들과 기업 경영자층의 관계를 특정한 방향, 즉 후자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화하는 맥락에서 도입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아래로부터 힘의 조직화와 제도화를 의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배제를 의미한다. 현재 職代會는 노동자 일부에 제한적 참여 통로를 부여함으로써 노사협조체제를 유지하는 외양으로 작용하며, 노조는 노동자의 조직이기보다는 노동자를 관리하는 조직으로서 작용한다. 이 두 가지 제도를 통해 유지하고자 하는 목표는 노사협조체제이되, 그것은 노동자의 참여보다는 ‘배제’를 통해서 유지되는 형태이다. 이 글에서는 그 중 노동조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노동조합 무력화의 역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이후 노동조합의 역할에 큰 변화가 생겼다. 노조는 노동자 대중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본래의 역할 외에 경제건설에 복무하고 노동자 대중의 생산참여를 적극적으로 동원한다는 새로운 역할을 떠안게 되었는데, 이 두 역할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이 있었다. 현실 역사 진행 속에서 중국의 노조는 이 두가지 역할 중 생산에 복무한다는 후자에 무게중심을 두었으며, 그 결과 노조는 점차 국가기관화하였고, 특히 당의 외곽 대중조직으로서 ‘전도벨트’ 역할에 한정되어 각 시기에 나타난 대립과 대중적 불만을 적절하게 소통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격동을 거치면서 노조의 대중적 장악능력이 계속 저하하였기 때문에 생산에 복무한다는 역할조차 제대로 발휘되기 힘들었다. 소련이나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와 비교했을 때 노조의 제도적 취약성은 중국의 노조를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였다. 사회주의 하에서의 노조 위상에 대한 논란은 1950∼51년 시기 李立三 사건을 계기로 터지게 되었다. 李立三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당과 노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와 ‘노조가 독자적으로 보호해야하는 노동자의 별도의 이익이 과연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그는 당으로부터 노조를 분리할 것을 명시적으로 천명하지는 않았지만, 노조의 조직적인 독립을 주장하였고, 또 노동자 이익보호 공작에는 당이 해결할 수 없는 노조 고유의 영역이 있음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당으로부터 노조의 독립을 지지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李立三에 대한 비판은 ‘경제주의’와 ‘생디칼리즘’으로 요약되었다. 이 사건 이후 기업 내에서 노조의 역할은 노동보험 업무를 관리하는 것 정도로 한정되었다. 1차 5개년 계획이 끝나가던 시기에도 '百花齊放'을 배경으로 이 쟁점이 다시 부각되었으나 결국 당시 전국총공회의 주석이던 賴若愚이 死後 비판을 받고서 종료되었다. 대약진과 인민공사의 등장은 노조 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인민공사 체제 하에서 많은 활동이 인민공사에 포섭되어 버리고, 노조는 점차 ‘소멸’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대약진에 이어지는 조정기에 들어서서 노조조직은 다시 활동을 재개하였지만 그렇게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위축되던 노조조직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고 활동중단 상태에 들어가게 된 것은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였다. 문화대혁명 시기 노조조직이 공격을 받게 된 주요한 이유는 국가기관화해 온 그 체질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정기에 늘어난 임시공 계약공들에 대한 차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전총 산하의 노조조직은 국유기업의 고정공을 위한 조직으로 의미가 점차 축소되어갔고, 노조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혜택으로부터 임시공․계약공들을 배제한 결과, 문혁기간에 계약공과 임시공들은 전국총공회를 불만의 주요한 목표물로 설정하였다. 문혁 이후 노조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들어서면서 각지에서 발생한 파업과, 폴란드의 연대노조의 등장,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독립노조운동 등의 결과이다(Wilson, 1990: 54; Perry, 1995: 314). 이에 대한 반응은 이중적이었는데, 한편에서는 노동자의 ‘참여’를 다소 보장하는 직공대표대회 제도가 정비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헌법에서 파업권 조항을 삭제하여 노동자의 조직활동을 제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이 시기 職代會를 강화시키는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조례를 제정하는 등으로 나타났던 것에 비해, 노조의 역할 강화를 위해서 노조로 하여금 職代會 폐회시의 일상업무를 담당케 한다는 정도 외에 특별한 정책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노조 활동 강화를 위한 제도적 개편은 몇 년 후에나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변화한 정세는 노동자의 불만을 체제내화해야 할 통로에 대한 요구를 높여, 이것이 職代會 정비로 나타났지만, 노조 조직을 활성화하는 것이 적절한 대처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폴란드 ‘연대’ 노조의 사례도 있고 해서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노조역할에 대한 강조는 1985년 산별노조를 강화하는 방침 등이 등장하면서 다시 제기된다. 활동을 재개한 노조는 생산발전을 위한 노동자 참여 독려를 주기능으로 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큰 변화는 없었고, 그런 점에서 노조의 영향력은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었다. 다만 1980년대 직공대표대회제를 추진해 가는 과정에서 노조가 職代會의 사무기구 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기업 내에서 노조의 역할이 좀더 분명해지기는 했다. 노조의 역할에 다시 딜레마가 발생한 것은 경제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나타난 사회적 갈등과 대립에 직면하여, 노동자 이해를 옹호해야 한다는 부차적인 노조의 역할이 점차 중요성을 띠게 되면서였다. 이에 따른 노조 역할에 대한 변화의 모색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직전 시기에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천안문 사태 시기 각지에서 자생적인 노동자 독립조직이 형성되어 전총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현실화되자, 일단 사태를 진압하고 이런 자생적 노동운동가들을 체포한 이후, 노조에 좀더 많은 역할을 부여해 노동자들을 노조조직을 통해 포섭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 힘을 얻어 갔고, 이에 따라 노조 조직률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전총의 노력은 한편에서 노조의 사각지대였던 외자기업이나 사영기업 등에 노조조직을 설립하고, 또 기존의 노조에서는 간부 선출 방식을 개혁하는 등의 조직개편 작업에 착수하는 것과, 다른 한편에서 중앙급에서 새로운 법률과 정책의 제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자의 대표적 성과는 1950년의 《노동조합법》을 대체하는, 《노동조합법》제정을 1992년에 획득한 것과 1994년 《노동법》제정에의 참여였다. 2. 노조 조직과 활동 1) 조직 형태 中華全國總工會는 19개의 산별노조 전국위원회와 30개의 성․자치구․직할시 총공회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전국조직이다. 지방 총공회 조직은 省 - 地區(市) - 區․縣(市)에 설치되어 있으며 區 이하의 街道에는 노조 연합회 등의 조직이 설립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중국노조는 중국 공산당이 지도하는 직공 자원 결합의 노동자 계급 군중조직이며, 당이 직공 군중과 연계하는 교량이자 끈이다”라고 규정한 《中國工會 章程》의 총칙에서 보듯이 중국에서 노조는 당의 대중조직이기 때문에, 각 노조 조직의 급에 상응하는 당조직의 지도를 받는다. 중국노조 조직체계는 기업별 체제로 건립된 기초조직인 기층노조가 있고, 그 위에 산별조직과 지방별 조직(縣 이상에 건립된 總工會) 원리를 결합한 상급노조의 지도가 관철되는 형태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철도부문 등 산별노조와 지방노조의 이중 지도가 실행되는 계통별 체제가 확립되어 있는 곳에서 산별노조의 지도가 주로 관철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노조는 지방 노조의 지도를 주로 받고 있고 산별노조의 활동은 극히 미약하다. 중국 노조의 조직형태와 실제 활동 상황을 보면 산별체제보다는 기업별 노조체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장장까지 포함하여 단위내 모든 직공에 노조 조합원 자격이 부여되는 상황은 기업별 노조적 특성을 더 강하게 만든다. 노조조직 중 가장 핵심적 조직은 기층위원회이다. 《노조법》에 따르면 제 12조의 규정에서 회원이 25인 이상이면 기층 노조위원회를 건립할 수 있고, 회원이 25인 미만인 곳에는 조직원 1인을 선거하여 회원을 조직해 활동을 전개하도록 되어 있다. 노조 설립시 반드시 직상급 노조의 비준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全總 이외의 다른 독립노조의 설립가능성은 배제된다. 노조활동을 위한 경비의 원천은 주로 노조 회원이 납부하는 회비 노조 회원의 회비는 본인 임금의 0.5%를 내게 되어 있는데, 이는 회원이 직접 납부하기도 하고, 단위가 대신 납부하기도 한다. 와 노조 조직을 건립한 전민소유제와 집체소유제 기업․사업단위․기관이 매월 전체 직공 임금총액의 2%를 노조에 납부하는 노조경비이다. ‘3자 기업’이나 사영기업에서도 전민소유제와 마찬가지로 기업이 직공 임금총액의 2%를 노조경비로 납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납입된 각종 수입중 회원이 납입한 회비는 전액 기층 노조에서 사용하며, 단위가 노조에 납부하는 임금총액 2%에 해당하는 노조 경비에 대해서는 그중 60% 이상을 기층 노조에 남겨서 사용하고, 전국총공회에 5%를 납부하며, 나머지 35% 이하 부분을 省․市․縣 총공회에 납부하여 활동비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의 활동이 재개된 초기와 비교하면 기층 노조수는 최근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기층 노조 아래에는 작업장 노조위원회(車間(科室)工會委員會)와 班組의 노조 소조가 있다. . 그러나 아직 노조의 조직과 인원 면에서 국유부문의 비중이 절대적이며, 도시 집체를 제외한 기타 소유제 노조의 비중은 매우 낮다. 주요한 이유는 아직까지 국유 부문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지만 비공유제 부문의 노조 조직률이 낮은 것이 더 큰 원인이다. 이중 외자기업에서는 최근 노조 설립 작업이 비교적 진행되고 있는데 비해, 사영기업이나 鄕鎭企業에서는 거의 조직이 없는 상태이다. 중국 노조의 특징 중 하나는 노조 가입 자격의 폭이 매우 넓다는 것인데, 특히 아래쪽 경계선 보다 위쪽 경계선이 훨씬 유연하다. 첫번째로 윗부분, 즉 관리자의 어느 층까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가 하는 기준을 보면, 공장장과 당서기를 포함한 단위 내의 모든 사람이 노조 회원이 될 수 있고, 실제도 그러하다. 노조(工會)에는 노동자(工人)만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직원, 관리자 전체가 가입한다. 이처럼 기업의 관리자와 노동자가 모두 같은 노조에 가입한다는 것이 중국적 ‘기업 노조’의 중요한 특징이며, 기업 내에서 관리자와 노동자의 대립이 노조를 통해 매개될 수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경제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노조 내에 포괄되어 있는 각 층들 사이의 분화가 이루어 지지만, 이것이 노조 조직원칙의 변경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두번째로 아래쪽의 경계선을 살펴보면, 위쪽 경계선에 비해 덜 유연한데, 쟁점은 과거 기업의 固定工에 한정된 조직이었던 노조가 임시공․계약공을 포함한 모든 주변적 노동자에게 가입을 허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경제 개혁과 더불어 대규모로 창출되는 새로운 1세대 노동자, 즉 ‘농민공’에게 노조 가입 자격을 주는지의 여부는 향후 중국 노조의 성격 결정에 중요한 갈림길이다. 현재의 공식적 정책 방침은 일정기간 이상 지속적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노조 가입자격을 부여한다. 그러나 필자의 1996년 浙江省 노조 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타지역 출신 농민공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고 있는 곳은 52.9% 뿐이었고, 나머지 47.1%에서는 가입이 허용되지 않아, 아직 정책방침과 관행 사이에 괴리가 크다. 현재의 지방 總工會나 산별노조들은 기업별로 조직된 기층노조를 상급에서 다시 묶는 형태이기 때문에 기층노조에서 가입자격을 얻지 못한 노동자들은 상급노조 수준에서도 배제된다. 2) 노조 간부 직공수에 따라서 기층 노조의 분포를 살펴보면 직공 200명 미만인 기층 노조가 전체의 81.4%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구《노조법》기준에 따르자면 이들 노조는 전임 간부를 둘 수 있는 최소 규모에 미달한다. 1993년 현재 전체 노조중 31.9%에만 전임 간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조가 경비를 지불하는 인원까지 포함해 전임 공작인원이 있는 노조에서 노조당 전임자의 수를 계산하면 2.77명이고, 전임 간부가 없는 노조까지 포함해 전체 노조에 대해여 노조당 평균 전임 공작인원수를 계산하면 0.88명에 불과하고, 같은 방법으로 노조당 평균 전임 간부수를 계산하면 2.47명과 0.79명이다. 이처럼 부족한 인력은 생산업무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무보수로 노조활동을 하는 노동자인 ‘工會 積極分子’의 지원으로 해결하지만, 전임자의 절대적 부족현상은 노조 활동의 활성화와 활동의 지속성 유지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1992년 개정된 《노조법》에서는 1950년의 《노조법》에 들어있던 노조 전임자수에 대한 명시적 규정을 삭제하였다. 구《노조법》 제 17조에서는 전임(脫離生産) 위원의 임금을 노조가 지급하고, 노동보험 대우나 기타 복지대우는 기업 행정측이나 자본측이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개정《노조법》에서는 이중 전자, 즉 전임자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빠졌고, 후자에 대해서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책임이 노조로부터 기업으로 이관되어, 전민소유제와 집체소유제 기업․사업 단위 및 기관 노조 위원회의 전임 공작인원의 임금, 보너스, 수당을 재직 단위 행정이 지급하고, 노동보험과 기타 복지대우 등은 본 단위 직공과 동등한 대우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런 변화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기업의 부담을 높인 반면, 전임자를 두어야 할 의무규정을 없앴기 때문에, 노조 전임자의 감소와 노조 활동의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단위가 노조 전임자의 보수 지급 의무를 지도록 한 것을 전민소유제와 집체 부문에 한정하였기 때문에, 이 이외 부문에서는 분쟁의 여지가 많다. 전임간부가 몇명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기업 내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이다. 중국에서 노조간부는 ‘노동자적’이기보다는 ‘기업관리층적’이다. 중국에서 노조는 기업내에서 복지업무와 ‘노무관리’ 분야를 주로 맡아서 처리하는 하나의 ‘부서’로 취급되었으며, 때로는 人事處 등과 거의 통합되어 업무를 공동수행하기도 하였다. 이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 노조 간부들의 직무 이동 경로인데, 노조 간부는 당간부 - 노조간부 - 기업관리직의 수평적 이동의 선상에 위치한다. 필자가 1996년 수행한 浙江省 노조 조사에서 현 노조 간부들에 대해 노조 간부를 맡기 직전의 직무를 조사한 결과, 노동자였던 사람은 전체의 11.3%에 불과하였고, 관리직 간부가 41.5%, 당의 전임간부 35.8%, 기술인원 5.7%, 기타 5.6%로 나타나, 노조간부의 절대다수가 기업 간부나 당간부 출신임을 알 수 있었다. 관리직 간부 41.5% 중 작업장 관리 간부 출신은 5.7%뿐이고 나머지 35.8%는 행정관리 간부 출신이어서, 노조 간부 충원과정에서 생산현장 출신은 노동자 뿐 아니라 관리자도 상당히 배제되고 있었다. 浙江省에서 노조 전임자들이 현재 겸임하고 있는 직무와 과거 역임한 적이 있던 직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중 65%가 관리직 간부, 절반 정도가 당 간부를 역임한 경력이 있었다. 응답자중 14%는 기업의 최고 책임자 지위까지 역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생산노동자 경력을 거친 노조 간부는 전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대부분 노조 간부는 생산노동자에서 충원되기보다는 당이나 기업의 관리간부가 수평 이동한 것이어서, 관료화의 정도가 높다는 것과 일반 노동자와 노조간부 사이에 괴리가 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적지않은 간부는 노조 간부를 맡은 이후에도 당간부나 행정관리 간부를 겸임하고 있다. 노조주석에 대한 ‘副職’ 대우를 실시하는 정책도 노조간부의 관료화에 한몫 하고 있다. 이 제도는 우수한 자원을 노조간부로 유치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된 것으로, 기업의 노조 주석에게는 기업 당조직의 부서기나 부공장장의 대우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副職’ 대우는 노조간부의 관료화를 강화하고, 일반 노동자로부터 노조 간부 충원을 막는 역효과를 내었다. 노조는 명시적으로 당의 대중조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조에 대한 당조직의 영향력이 크며, 이는 노조 간부의 특성에도 반영되어 노조 간부 중 당원이나 당간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편 조사대상의 절반정도의 기업에서는 당위원회 서기가 공장장을 겸임하고 있어 당-기업의 융합의 정도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당과 기업경영자가 이처럼 융합되어 있는 상태에서 당이 노조를 지도하게 되는데, 앞서 보았듯이 노조 간부는 대부분 당간부나 기업 관리자층에서 충원되므로, 기업 내의 이 세가지 조직 사이에는 일단 인물면에서 볼 때 대립적 관계보다는 공존과 상호 보완의 관계가 형성되기가 쉽다. 노조간부의 대부분이 경영회의에 참가하고 있지만, 노조주석이 노동자를 대표해 참석하는지 아니면 기업 ‘간부’로서 참석하는지 구분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이처럼 회의에 참가한 노조 주석이 과연 노동자의 이해를 독립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노조 간부에 대한 관리가 간부와 노동자를 구분하는 이원적 구조 속에서 수행되면서, 노조 간부에 대한 위임․파견제가 지속되어 온 것도 노조간부의 관료화와 대중으로부터의 괴리를 조장한 요인이었다. 노조간부에 대한 선거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최근 들어 선거를 통해 노조간부를 뽑는 기업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노조 회원이 직접 선거하는 경우는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선거를 통해 노조간부를 선발하는 것이 늘어나긴 하였지만, 선거에 입후보하는 노조 간부를 당조직이 추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제한적이다. 선거를 통해 노조간부를 뽑는 곳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생산현장의 노동자 출신의 노조간부 비율이 낮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3) 노조의 활동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맡는 역할은 정책적 변화에 따라 다소 변화되어 왔지만, 그 주요 기능은 생산의 원활한 지속을 위한 보조 업무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노조가 맡는 이중적 역할 중 생산의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이 언제나 1차적이며, 노동자 이익의 옹호는 늘 부차적인데다가 그 성격 또한 노동자의 보호와 복지 차원에 제한되고, 노동자의 이익을 독립시켜 기업의 이익이나 기업관리자의 이익과 대립시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조 간부들이 노조의 가장 중요한 두가지 업무로 꼽은 것은 노동경쟁의 조직과 職代會의 권한 실행이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職代會의 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고 본 간부들이 대다수였음을 감안하면, 여기서 직대회에 대한 강조는 매우 당위적인 응답에 머물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고, 노동경쟁의 조직화가 아직도 가장 중요한 노조임무로 간주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과거와 달리 경제개혁 이후에는 노조가 사회보험 업무를 직접 관장하는 것이 아니어서, 노조의 사회보장 역할이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복지를 중요한 임무로 보고 있는 노조 간부들도 많았는데, 주목되는 점은 이것을 두번째 중요한 임무로 선택한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볼 때 1990년대 들어 ‘노동자 이익 옹호’라는 노조의 임무는 선언적 차원에서는 직대회 제도에 의해,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노동자에 대한 복지사업으로써 한정되어 해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노조간부들은 최근들어 강조되고 있는 단체협약이나 노동쟁의 처리에서의 노조의 역할에 대해서 그다지 큰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 이런 기층 노조 간부의 주관적 평가와 대비되는 것은 각급 노조 교육기관의 교육내용이다. 각급 노조교육기관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간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피교육 경험이 있는 항목은 ‘노조 이론 및 역사’와 ‘노동쟁의 처리법’이다. 노조 이론과 역사는 항상 교육 내용에 포함되는 가장 기본적인 필수 과목이므로 이를 제외하면, 최근 가장 중요한 교육내용이 되고 있는 것은 노동쟁의 처리법이다. 그 외에 단체협약 체결 요령도 중요한 항목으로 교육되고 있다. 이에 비해 노동경쟁 조직법과 職代會 관련 내용은 현재 핵심적인 교육내용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교육 내용과 앞서 살펴 본 노조간부가 노조의 주요 업무로 간주하는 것 사이에는 정반대의 경향이 나타난다. 노조 간부 중 노동쟁의 처리와 단체협약을 노조의 주요한 업무로 꼽은 응답자는 아주 소수였으나, 이 주제는 노조 교육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내용이었고, 반면 노조 간부들이 주요 업무로 꼽은 노동경쟁의 조직화와 職代會 관련 내용은 노조교육기관의 교육내용에서 우선 순위에 올라있지 않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층 노조 간부의 사고와 상급노조가 중시하는 바 사이에 상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상급노조 차원에서는 정책적으로 노조를 노동자의 이익을 매개하여 기업내 갈등을 제도화하는 틀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지만, 기층의 간부들에게 이런 사고는 매우 미약한 수준이다. 이는 정책적으로 단체협약제도의 정착을 통해 노동쟁의의 제도화를 모색하고 있는 현시기의 정책 방향이 기층 노조 수준에서 관철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현재 기업이 노조와 상의하여 처리하는 분야를 조사해 보면, 절반 이상의 피조사 기업에서 시행되고 있는 항목이 크게 다섯가지인데, 이는 크게 두가지 범주로 묶을 수 있다. 하나는 주택, 보너스, 임금 배분 등 분배와 관련된 내용들이고, 두번째는 노동자의 처분이나 노동계약의 해지 등 노동자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고용관련 결정들이다. 반면 생산과 관련된 항목들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에 의견을 묻는 기업의 비율이 매우 낮다. 그중 눈에 띠는 것은 경영성 감원이다. 이는 노동자의 고용상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임에도, 다른 ‘생산’ 상의 결정들처럼 노조의 의견을 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노동자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노동조건의 변경에 대해서도 노조의 의견을 묻는 곳은 1/3에 불과하였다. 이를 볼때 노조의 이중의 기능 중, ‘생산발전에 대한 기여’를 수행하는 방식은 기업의 결정에 노조가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가 아니라 이미 통과된 결정을 단지 잘 수행하도록 노동자들을 독려하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업이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것은 주로 분배 영역에 한정된다. 1990년대 들어 노조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 내에서 당의 역할 감소 추세에 따라 ‘노무관리’ 또는 ‘인간관계’를 담당하는 주체를 당에서 노조로 중심 이동해 가려는 움직임이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 역할의 강조와 職代會의 부분적 강조는 국가의 사회적 갈등 조절의 역할을 단위의 틀 안으로 위임하는 체제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주요하게 배경에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기업 내의 ‘민주관리’에서 職代會와 노동조합의 역할은 유고적 형태보다는 제한적인 의미에서 일본적 형태에 더 가깝다. 노조의 역할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움직임 중 하나는 《노동법》제정을 계기로 노조가 주축이 되는 ‘단체협상’(集體談判)과 ‘단체협약’(集體合同)의 시행에 대한 정책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시범 시행되던 단체협약은《노동법》공표 이후 그 시범실시 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단체협약 제도는 아직 정착된 상태가 아니고 협상의 주체도 불명확한 상태여서 그 미래가 불명확한데, 그 방향을 예측할 때 중요하게 기업청부 경영책임제 하에서 특수한 단체협약 형태로 시행된 ‘共保合同’(또는 ‘雙保合同’) 제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共保合同은 기업청부 경영책임제와 민주관리 강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1987년을 전후해 江蘇省 일부 기업에서 실시되어,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대된 제도이다. 이 제도를 중국 특유의 단체협약 제도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생산에 대해 전원 청부를 하고, 기업행정측이 노동자에 대해 임금, 보험복지 등을 포함하여 직공의 생활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책임짐으로써 기업을 경영자, 기술인원, 관리인원, 전체 생산노동자 모두의 공동 운명체로 만든다는 점 때문이었다. 향후 공유제 부문에 단체협약 제도가 정착된다면 그 형태는 양자의 이해 관계가 분명해지는 서구적 형태이기보다는 ‘중국적’인 共保合同 형태에 가깝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외자기업이나 사영기업에서는 노동자와 기업측의 대립이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나겠지만, 여기서는 단체협약 제도의 성립 가능성이 아직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4) 노조활동의 곤경 노조는 기업 내에서 노무관리 부서와 생활복지 부서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경제개혁 과정에서 이런 업무는 다른 생산발전 업무 부서의 중요성에 점차 밀려나게 된다. 노조 위상의 하락은 노조 간부의 자질에도 반영이 되어, 점차 능력이 떨어지는 간부가 노조업무로 ‘좌천’되고, 능력있는 노조 간부는 다른 분야로 선발되는 현상이 잦아지게 된다. 과거에도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 1950년대 이래 노조 간부들은 스스로를 ‘4류 간부’라고 비하할 정도로 기업 위계제에서 위치가 취약하였고, 사람들은 기업 노조를 ‘당위원회의 일개 공작부문, 행정의 제 2후방근무, 職代會의 사무기구’ 정도로 여겼다. 이를 정정하기 위한 여러 차례의 정책들도 시행되었지만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런 경향은 경제개혁의 진척에 따라 더욱 심해지고 있다. 향후 노조활동을 정책적으로 지지함에 따라 노조활동이 활발해진다 하더라도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기업 규모와 성격에 따라 노조활동의 가능성과 능력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중국 노조 조직원칙이 산별원리와 지역별 원리를 결합한 것이라고 하지만, 기층노조의 조직은 기업별노조 체제에 기반하고 있다. 이 체제 하에서는 노조의 경비와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모두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법률적인 근거를 지니는 강제조항이라 해도 기업의 지불능력과 기업 관리자의 노조관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노조법》에 노조전임자 규정을 삭제하고, 또 정책적으로 소기업에서 노조간부의 겸직을 권장함에 따라 노조활동은 더욱 위축되게 되었다. 향후 국유 대형기업과 소형기업 및 외자․사영기업 사이에는 노조의 활동 상에서도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경공업 소기업의 노조들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은 곤경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전임 노조 간부가 대폭적으로 감소하였다. 둘째, 겸직 노조 주석이 많다. 셋째, 노조 조직이 변질되고 합병되는 문제가 있다. 넷째, 노조 경비 수납난을 겪고 있다. 다섯째, 이렇다 보니 노조 공작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湖北省의 武漢市와 長沙市의 경공업 부문 노조 중 정상적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30% 뿐이었다. 노조 설립의 역사가 짧고, 기업가의 개입 여지가 많은 비국유기업의 전망 역시 그다지 밝지 않다. 4. 노동쟁의와 노동조합 노조 역할 변화의 추세와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건은 노동쟁의의 발생과 처리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맡는 역할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 경제개혁은 다양한 소유제 형태의 출현, 고용제도의 변화, 물가인상과 생활의 불안정성, 적자기업의 출현, 경영자 권한의 확대 등을 동반하여 노동쟁의 발생 원인을 증가시켰고, 노동쟁의 발생수도 빠르게 증가시켰다. 노동쟁의가 늘어감에 따라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처리할 절차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 또한 커졌다. 노동쟁의가 전반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집단적 형태의 쟁의의 증가이다. 그중 파업이나 태업같은 ‘돌발성 사건’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소 지역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표적인 연해 개발지역인 福建省의 경우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열거할 수 있다. 첫째, 태업․파업은 ‘3자기업’ 특히 獨資기업에서 두드러지며, 둘째, 국유기업이나 집체기업에도 태업․파업이 적지 않게 일어나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셋째, 규모와 참가자가 확대되고 있고, 지속시간도 길어졌다. 넷째, 돌발성과 자발성을 보이고 있다. 다섯째, 참가자 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노동자나 농촌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여섯째, 노조조직이나 기업 조정위원회가 설립되지 않은 곳에서 더 빈발하고 있다. 일곱째, 인근 지역에 파급 속도가 빠르다. 경제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노동쟁의가 빈발하게 되자, 이를 제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틀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그 결과 1987년 7월 31일 국무원은 《국영기업 노동쟁의 처리 잠정 시행 규정》을 발표하였다. 그 전까지 노동쟁의 처리는 민원(信訪) 부문이 맡아왔다. 1987년의 《규정》에 따라 기업내부 조정과 3방에 의한 중재,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민법원에 의한 해결이라는 세가지 심급으로 구성된 노동쟁의 처리 절차가 다시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국영기업에만 한정되었고, 또 적용되는 노동쟁의 대상도 협소하였는데, 이 《규정》의 미비점들이 보완되어 1993년 7월 6일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기업 노동쟁의 처리 조례》가 공표되었다. 중재절차의 마련에 따라 노조가 노동쟁의 처리과정에서 맡는 역할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1982년 헌법 수정시 파업권 조항이 삭제되었는데, 파업권을 부정했다고 해서 현실의 모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다, 기업관리자 권위의 강화, 외자 기업들의 증가, 사영기업의 출현 등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 노동자 권리의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노동부문과 전국 총공회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지니고 수동적․사후적으로 ‘모든 파업이 불법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노동쟁의 처리 규정이 있는 1987년 《규정》과 1993년의 《조례》 그리고 1994년의 《노동법》에 파업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그러나 노동쟁의 처리 절차에 관한 규정들을 해석해 보면 단체협상 과정에서 노동자측이 파업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노동법》과 《조례》를 골간으로 하는 노동쟁의 처리 절차가 지니고 있는 함의는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곳에서 원칙적으로 파업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법》의 조항들이 준수되는 조건 하에서는 《조례》의 절차를 밟아서 쟁의를 처리해야 하며, 《노동법》 조항들이 위반되는 곳에서도 《조례》의 절차가 준수될 수 있다면 파업은 금지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같이 명시적으로 파업을 금지하지도 않았고, 파업의 절차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는 발생한 파업에 대해 현실적으로 구체적 사안에 따라서 판단 기준을 달리하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게 된다. 특히 노동조건이 열악한 외자기업이나 사영기업, 청부나 임대 등의 방식으로 전환한 국유기업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다소 사후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주도적 대응 태도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저항하여 소기업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성’ 파업은 소극적․제한적으로 인정하지만, 이것이 ‘정치성’을 띠거나 규모가 커지면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정부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파업 진행과정에서 자발적 조직이 출현하여 지속성을 유지하는 ‘정치적’ 사건화의 가능성인데,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노동부 부부장에 의해 인정되었다. 파업은 그 주장이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이전되지 않도록, 그리고 파업을 통해 형성된 자발적 조직이 유지되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 아주 제한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만 인정된다. “불합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설득 공작을 전개하고, 정치 색채를 띠는 것은 단호히 반대하고 과단성 있는 조치를 가능한 빨리 택해 해결한다”. 파업과정을 주도하는 자발적 조직은 대부분 ‘동향회’이다. 많은 파업들이 도시에 취업한 농민공들에 의해 주도되며, 이들의 취업 통로는 대부분 동향 친지의 소개의 경우가 많아서 한 공장이나 한 지역에 동일 지역 출신들이 많이 집중하기 때문에 파업 때에도 이런 인간관계망이 파업조직으로 전환하기가 쉽다. 이처럼 특정 지역 노동자가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만, 자발적으로 조직된 파업의 지도부는 반조장, 라인장, 課長, 작업장 주임 등 조직 능력이 있는 중간층 관리자가 맡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전망 하에서는 노조가 파업의 조직자로 등장할 가능성은 없다. 《노조법》에서는 기업에서 태업이나 파업 사건이 발생했을 때 노조의 임무를 “기업 행정방면이나 유관부문과 회동하여 직공이 제출한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요구를 협상 해결하여 가능한 빨리 정상적 생산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5조). 노조의 역할은 ‘중재자’이지 노동자 계급의 조직자는 아니다. 국유기업에서 노조는 생산참여의 독려라는 역할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일종의 국가기관이며, 당 - 기업 - 노조 융합의 한 구심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체제가 근본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한 파업의 조직자로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형국유 기업은 임대, 청부, 매각 등의 형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이 많이 침해되고 있지만 이들 기업에서는 노조의 조직력 또한 취약하고 많은 곳에서 전임 간부조차 없는 상황이며, 또 이들은 지역 정부와 지역 당 조직의 지도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노동 - 자본간의 대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외자기업의 경우는 노조가 조직되어 있는 기업수가 많지도 않고, 설사 노조조직이 있더라도 위에서부터 이식된 제 2의 관리기구인 경우가 많고 대중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여 역할 발휘에 한계가 있다. 개방지역이 확대되고 각 지역정부들에게 일정 규모 범위 내에서 외자 유치의 자율권이 부여되면서, 많은 지역정부들은 합자기업의 중국측 상대자로 직접 나서거나, 아니면 외자 유치를 통한 세수 확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 사업가적 정신으로 점차 무장해가고 있고, 이들 지역의 縣이나 개발구 등의 總工會는 노동자 이해의 대변자라기 보다는 노무관리 담당자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파업이 발생하면 주동자를 해고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려 그 지역의 재취업을 막는 방법으로 ‘조용하게’ 해결하는데 노조가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 {珠江三角洲工人權益狀況}, 香港: 亞洲專訊資料硏究中心, 1995, p.33-34. . 이 외에 사영기업이나 향진기업에서는 노조의 존립 자체가 문제인 상태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노조가 파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기는 힘들고, 파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는 노동자는 쉽게 해고될 수 있다. 5. 맺음말 중국에서 노조는 기업내 ‘인사관리 부문’의 위상으로 설정되었고, 그 범위를 넘어서지 않도록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토대 자체가 취약한데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제개혁은 노조의 강화에 부차적인 정책순위를 부여할 뿐이어서, 이 목적 자체가 쉽사리 달성되기 어렵다. 일부 대형 국유기업에서는 노동자에게 ‘제한적’ 특권을 보장하는 ‘單位’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노조를 통한 노동자들의 포섭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이외의 대다수 중소형 국유기업이나 외자기업, 사영기업, 鄕鎭企業에서는 노조조직 유지 자체가 기로에 서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목표 달성 가능성은 더욱 취약하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民工’은 새롭게 형성되는 거대한 노동자 군단인데, 현재의 노조정책은 한편에서 이들의 이동을 엄격하게 조절하고, 다른 한편에서 이들을 ‘單位’ 체제의 특권으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취약한 기반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중체제는 향후 중국의 노동자운동을 추동시킬 수 있는 요인인 동시에, 분열시킬 요인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의 불만의 조직화는 여러 형태의 자생적인 노동자 조직들의 형성으로 나타난 바 있지만 1989년 탄압을 계기로 이런 조직들은 아직 유의미한 수준으로 복구되지 않았다. 중국이 동아시아 경제의 하위파트너로 적극적으로 편입해 들어가면서 당분간 고속 성장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농촌지역에 거대한 노동력 충원의 저수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노동력 관리체제를 넘어설 노동운동의 성장가능성을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각 지역에서 축적되고 있는 모순은 돌발적인 형태로 새로운 계기가 등장할 가능성을 재생산하고 있다. 파업이 발생하면 주동자를 해고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려 그 지역의 재취업을 막는 방법으로 ‘조용하게’ 해결하는데 노조가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 {珠江三角洲工人權益狀況}, 香港: 亞洲專訊資料硏究中心, 1995, p.33-34. 한/노/정/연 ■ 토론결과 요약 토론요약 경제개혁기 중국의 노동조합 (1) 중국에서 노동자 관리통제의 핵심적인 고리는 무엇인가? : 기존의 중국에서의 노동력 관리방식이라는 것은 딴웨이(단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단위체제가 가져왔던 핵심적인 성격은 일단 고용의 면에서 단위를 통한 완전고용체제를 도시에서 확보했다는 것, 또하나의 축은 임금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인데, 그것도 각 단위를 통해서 관철되고 있다. 중국의 임금을 수준 면에서 보면, 대단히 낮아 1980년대 초반의 실질임금 수준이 1950년대보다 떨어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완하는 장치가 있었는데, 단위 복지체제이다. 단위를 통해서 사회보장이 제공된다. 그게 소련과 다른 특성인데, 소련의 사회보장제도는 기본적으로 국가보장제도이다. 국가보장체제에서는 수혜대상이 기본적으로 각 개인이다. 이때는 비교적 개인한테 고르게 혜택이 갈 수 있는데, 중국은 사회보장의 자원 자체를 단위가 모든 것을 확보하고 또 단위 내부에서 공유하기 때문에, 일단 단위에 소속된 사람은 비슷한 형태의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단위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은 사회보장 혜택이 불균등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농촌에서 인민공사체제와 유사한 형태가 도시에서 단위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위체제는 농촌에서부터 도시에로의 이동 자체를 엄격하게 통제함으로써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고, 또 농촌에서의 일반적인 농민들에게 제공되었던 사회보장이라든지 여타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인민공사가 처리할 수 있지만, 그 수준 면에서 굉장히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도시 단위에서의 노동자들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지위에 있었다. 그것들이 경제개혁에 따라서 변하기는 하는데,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새롭게 나타나는 중국사회에서의 변화의 모습 중 하나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로의 이동은 굉장히 엄격하게 여전히 통제는 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이완된 상태이고, 농촌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도시의 노동자층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들은 단위체제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전의 혜택들로부터 괴리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 내부에서의 분할이라는 것들이 일단 노동력의 관리방식에서 노동자들의 통제가 유지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2) 직대회체제와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해 상이 잘 잡히지 않는다. : 중국에서 노조의 위상이 무엇인가는 중국 자체에서도 아직 불분명한 상태이다. 노조 자료가 복구된 게 대체로 1980년대 후반이고, 최근에 노동법이 개정된다든지, 노조법이 개정되고 이러면서 노조의 위상을 다시 부각시키되, 그것들을 기본적인 방향에서 어떤 논자들은 스테이트 코포라티즘 같은 위상으로 설정해 가려고 하고 있다. 그런 기본적인 그런 방향하고 실제로 그것들이 작동하는 방식은 괴리가 크다. 직공대표대회와 공회를 보면은, 그것도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좀 모호한데 모호한 이유 중의 하나는, 직공대표대회에서 직공이라는 범주 자체가 중국에서 굉장히 모호한 범주라는데 있다. 직공은 기업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직공이라고 하는데, 종업원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이고 직공대표대회에 참석하는 인원들의 구성을 보아도, 절반은 노동자가 참여하고 절반은 관리자가 참여하고 있다. 부차화되는 직대회에 대비해서 공회라는 것들이 좀더 직원과 공인이라거나 그리고 노동자, 생산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좀더 대변하는 체제로 만들고자 한 것이 직대와 공회가 시기적으로 차등을 두면서 등장했던 맥락이었던 것 같다. (2-1) 노조로서의 공회에 가입하지 못한 비조직된 부문에서 자발적인 파업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동향회라는 것이 갖는 위상,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바의 노조로 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든가 그런 여지가 어느 정도 있는가? 또 국가의 노동통제방식, 당의 노동통제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정규직과 계절공, 즉 임시공을 구별하여 관리를 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도 구미에서 나타난 ‘포섭과 배제’의 원리가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볼 수 있는가? : 동향회 부분은 관심이 많이 가는데, 그게 분석이 별로 없고 조사도 별로 없다. 동향회가 사실 노조 조직형태로 전화될 만큼의 단계라고 보기도 좀 어려울 것 같고, 그냥 친목회 단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 중국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사실 중국이라는 게 하나의 민족국가로서 등장해 있다는 것이 20세기의 미스테리의 하나다. 그 엄청난 국가에서 사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의 규제라는 호구제도라는거 이전에, 이동을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호구가 옮겨가지 않으면 배급을 받을 수 없고 직장이 배분이 되지 않고 이렇기 때문에 단기적 이동을 할려 해도 여행증명서가 있고 배급권을 가져야지만 갈 수가 있는데, 적어도 80년대 이후에는 배급제도가 사라지고, 고용제도에 약간의 유용성은 생겼지만, 마찬가지로 단위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호구를 옮길 수 없는 사람은 혜택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실질적으로 그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위는 외국에서의 이주노동자와 거의 비슷한 지위이다. 이들은 고용의 안정성도 취약하고 임금도 낮고 사회복지혜택은 기본적으로 없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기존의 노동자들과 새로 유입된 새로운 노동자층 사이에는 대우상에서도 그렇고 스스로 느끼는 면에서도 굉장히 큰 벽같은 것도 존재한다. 하여튼 그러한 분화가 강화되겠지만, 그 강화라는 것이 한쪽은 배제인데, 다른 한쪽은 명확하게 포섭 형태로 나타나느냐면 그건 좀 불명확하다. 대기업이고 핵심기업의 중점기업들 같은 경우 몇부분, 특히 철강산업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그런 경우에는 명확하게 포섭이라고 할 만큼 특권이 부여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의 국유기업 같은 경우 포섭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약하다. (3) 천안문 사태 그 이후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움직임들을 알고 싶다. : 중국에서는 노동조합이라는 형태가 전국조직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는 몇번 있었다. 처음에는 1950년대 초기에 잠깐 있었고, 중요했던 계기는 문화혁명이었는데, 누구든지 반역권을 갖기 때문에 누구든지 조직을 만들어서 기성의 권위에 대해서 도전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업 내부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노동조합 분파들 내부에서 상이한 조직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전국조직으로 나타났는데, 문화혁명이라는 것이 짧은 기간 이후에 사그라들면서 그런 조직들 자체가 대부분 없어진다. 1980년대 후반이 되면은 대체적으로 경제개혁의 결과에 따라, 노동, 외곽부분에서부터 불만들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대체로 조직화되는 것은, 중대형 국유부분이 아니라 외자기업이라든지 아니면 소형 국유기업에서였다. 천안문 사태 시기를 보면,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기 시작하는 것이 4월부터 5월 중순 정도까지 조직화 움직임이 있었고, 북경 같은 경우 북경공자련, 북경노동자 자주연합이라는 조직이 생기고, 그런 것들이 각 대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노동자 자주연합이라는 것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6/4 천안문 사태가 진압이 되면서 핵심 간부들이 전국적으로 대부분 검거가 됐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형을 당했다. 그러면서 일단 조직화의 움직임이라는 것이 사그라든다. 그 이후의, 자생적인 형태의 조직화는 동향회 형태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주목할만한 경향 중에 하나는, 1990년대에 들면 그것과는 다른 형태로 파업들이 나타난다. 국유기업의 임금체불에 따라서 노동운동이라는 것이 이전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전에는 외자기업에서의 노동조건 문제로 나타났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면, 90년대 이후에는 국유기업의 임금체불 문제로 나타난게 많다. 그 이외에 대체적인 자생적인 조직화는 간헐적으로 신문 같은 데서 보고되기도 하는데, 광동성 일대에서 자생적인 조직화가 있기는 한데, 대부분 검거 사례로서 보도가 되고 있다. (4) 코포라티즘, 스테이트 코포라티즘 이야기가 나오는데, 발표내용으로 보아 기본적으로 스테이트 코포라티즘은 아닌것 같다. 필자도 아닌것 같다고 말하는데, 왜 아닌지? (4-1) 코포라티즘에 대해 먼저 설명해 달라. : 코포라티즘이라는 것은, 이익관계가 다원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다원화돼 있는 그 개별성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조직화된 형태로, 하나의 조직화된 형태로 모아서 그 조직화된 통로만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그 이외의 것은 배제하는, 그래서 일부는 참여시키고 일부는 배제하는 형태로 통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코포라티즘을 분류하는 형태는 여러 가지 있는데, 크게 보면 국가 코포라티즘이냐 사회코포라티즘이냐 구분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가치기준이다. 보통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자생적인 조직화를 기반으로 해서 그걸 매개로 해서 이익을 표출하는 형태를 사회 코포라티즘이라고 하고, 국가 코포라티즘이라고 했을 때는 보통 일반적으로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어 있고 노조조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아래로부터 조직화한다기보다는 위에서부터 국가가 공세적으로 조직화해내가지고 그 일부를 체제내화 시키는 방식, 이렇게 볼 수 있다. : 중국에서 코포라티즘 논의가 제기되는 맥락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단위체제 자체를 코포라티즘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었고, 또 한 논자는 최근의 노조의 역할 강화를 코포라티즘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단위체제를 코포라티즘이라고 보는 것은, 제한적인 도시노동자의 일부를 단위를 통한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포섭한다는 의미에서 쓰였지만, 그것을 코포라티즘이라는 일반적인 논의에서 볼 수 있는 건지 그건 좀 의문스럽다. 또한 최근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노조를 통해서 이전에는 없었던 이익분화라는 것들을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노조라는 조직체를 통해 가지고 국가의 대화 파트너로 만들어가는, 그런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국가 코포라티즘 이야기를 하는데, 국가 코포라티즘이라는 이야기를 쓰는 논자들도 지금 중국이 국가 코포라티즘 상태라기 보다는 일종의 국가 단원주의에서 또는 국가주의에서 국가 코포라티즘으로 가고 있는 상태이다라는 식으로 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중국에서의 노조조직이라 할 수 있는) 총공회라는 것들이 그럴 만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6) 중국의 사회체제, 국가체제를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 사실 중국이 지금 사회주의냐 아니냐는 것은, 사회주의라는 것으로 유일하게 남는 것은 보통 말하는 서구적인 형태보다는 국유가 많다는 거하고, 당의 단일 관리체제가 있다는 것, 노동자가 제한적으로 보장을 받는다는 거, 이 세가지 정도 든다. 그러나 소유제는 외양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이 보장해주는 것은 없다. 그 소유제가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들, 실제로 나타나는 생산관계, 작업장 노사관계 체제, 여러 가지로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관철되는가에 대해서 어떤 방향성을 보는데, 중국을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사회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중요한 건 중국에서 소유제는 외양에 불과하다. 실제 지금 국유제가 직공수로 봐서 한 70% 정도 도시에서 차지한다고 했을 때, 그럼 실제로 남아 있는 국유라는 것은 얼마나 되느냐, 했을 때 얼마 안된다. 중국의 정책방침이 지금 그렇게 내려져 있는데, 대형 국유기업은 국가의 직접관리하에 두고, 중형 국유기업은 대체로 청구제 형태로 주고, 소형 국유기업은 다 매각하겠다는 것. 매각은 직접 팔아버리는 것도 있고, 개인과의 임대계약을 맺어 국가에게 일정정도 이윤을 바치면 국유형태를 유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집체기업도 마찬가지 성격이 많다. 시장사회주의자들이 주목하는 향진기업(농촌기업)은, 실질적으로 집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을 중국에서는 ‘가집체’라고 하는데, 등록은 집체, 실제는 사적기업 형태를 말한다. 등록만 집체로 하는 것은 우대조치(예컨대 세금감면이나 재정지원) 때문이다. 그래서 소유제적인 외양상으로는 국유나 공유제 부분이 많을 지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라고 규정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많다. (6-1) 사회주의체제냐 자본주의체제냐라고 하는 체제의 차이에 따라 노동운동의 성격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을 국가자본주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중국의 노동운동은 어떻게 보야야 하는가. : 일단 사회주의를 뭐로 보느냐인데, 이를테면 사회주의에서는 노자간의 모순이 없어진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중국이 그 단계인가가 문제가 된다. 중국은 노자간의 모순이 없어진 단계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이 사회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중국의 헌법에도 나와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라고 법률적으로 규정은 할 수 있는데 그렇게 규정한다고 해서 중국 사회 내부에 있는 노자간의 모순이라는 것이 없어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문화혁명도 비슷한 경우인데, 문혁시기에 분출되었던 노자간의 모순이 있다. 그건 인격적인 자본가는 없는데 노자간의 모순이 등장했던 것이고, 왜 자본가는 없는데 노자간의 적대는 있는가를 계기로 서구에서 이론적인 작업들이 몇가지 제기되었다. 이를테면 노동과정론이라든지, 사회주의론의 재구성작업이라든지. 사회주의가 소유제의 개조를 계기로 해서 성립되는 사회일수는 있지만 노자간의 적대가 근본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제로서의 사회주의가 갖는 의미는 사실 그렇게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1960년대 소련에서 사회주의 논쟁이 있었는데 그 논쟁의 기본적인 입장은 스탈린적 사회주의관이었다. 스탈린적 사회주의관이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는 소유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았고, 소유에 의해 규정된 이후에 사회주의하에서의 모순이라는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노동자와 그 외의 층간의 모순이라고 보았다. 그때 그 내부적인 비판이 제기되면서, 비판적 논자 중 하나는, 사회주의가 이행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그 소멸되지 않는 모순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했을 때 그 각각의 노동자들 내부의 차이들, 노동자와 농민 사이일수도 있고 핵심노동자와 주변노동자 사이일 수도 있고 그런 데서 모순이 여러 가지가 겹쳐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것이 내재적인 비판에 머물고 더 나아가지 못한 중요한 이유는, ‘핵심적인 부분의 모순은 사라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국유부분은 더 이상 모순이 없고 그것과 다른 부분과의 관계들만이 문제가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 핵심적인 부분에 모순이 없어졌느냐가 문제이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관점이 제기될 수 있는데, 최근에 보더라도 핵심적인 국유기업과 다른 부분과의 차이는 분명히 있고, 격차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모순이 계속되고 있고 갈등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중국이 왜 사회주의가 아니냐고 했을 때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이기는 한데 어떤 특수한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라고 본다. (6-2) 그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게 개혁 이후인가 아니면 이미 모택동 시절부터 해서 그때부터 국유부분에서 겉으로는 국가소유였지만, 그 안에 이미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노자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보는 것인가? 후자의 견해라면, 중국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1917년 이후 사회주의라고 불렀던 모든 것들이 다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얘기인가? : 그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원래 국가 자본주의라는 게 쓰인 맥락은, 처음에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기로서 사용했고, 또 한 가지 왜 사회주의가 체제로서 성립할 수 없고 돌아가게 되느냐고 했을 때 그게 어떤 의미에서 중간에 이행기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가 있을 수 있고 그 이행기를 거쳐서 사회주의로 정착되지 못하고 다시 자본주의로 회귀되는 과정으로서 그것을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처음에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과정으로서의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렀던 것과는 좀 다르게, 그 이행기를 거쳐서 사회주의로, 즉 성격규정으로서는 이행기 사회인데 그 이행기적 사회가 다시 자본주의적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으로서의 이행기로, 국가자본주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6-3)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로서의 국가자본주의라는 성격과 자본주의로 다시 역류하는 이행기로서의 국가자본주의, 두 가지를 말했는데, 그렇게 섞어 쓰면 그것의 시기구분이라든가 아니면 질적인 차이 같은 것들이 모호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 국가자본주의라는 규정을 양자에 다 둘 수 있는데, 양자를 다 국가 자본주의로 본다는 것은 그것이 고유하게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성격이 혼재하면서 기본적으로 어느쪽으로 나갈지 방향이 미정인 상태의 이행기라는 것으로 국가자본주의를 규정할 수 있다. 국가자본주의라고 했을 때 자본주의 일반하고는 다른 측면이긴 하지만, 다른 성격을 가진 이앻기였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적 성격을 탈각한 것은 아닌, 그것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것으로서 볼 수 있다 소유제에서는 적어도 개인기업들, 주요한 기업들은 다 국유화가 되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대해서는 국유화가 될 수도 안될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업내부에서의 생산관계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형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가로서의 인격적인 자본가는 소멸했지만 그 사회 자체의 기본적인 생산관계가 자본주의성을 탈각하지 못한 그런 기간을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럼 그것이 이후에 어떻게 사회주의로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렇게 썼던 국가자본주의라고 하면, 적어도 지금의 사회주의를 규정하는 의미에서의 국유부분이 다수를 이룬다고 하는 그 규정만으로는 국가자본주의 이상은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 대해 국가자본주의 개념을 쓸 수 있다. (6-4) 국가자본주의라는 말을 쓸 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문제는 자본주의라고 했을 때는 노동자의 잉여노동에 대한 착취가 자본에 의해 나타나야 된다는 것이다. : 그렇지만 그것은 논쟁이 있는 문제이다. 자본가가 없는 착취라는 게 가능하냐 했을 때, 가능하다와 가능하지 않다는 논쟁이다. 가능하지 않다고 할 때 그럼 뭐냐에 대해 ‘상호착취’라는 말도 나오고 했는데, 분명히 자본가가 없는 곳인데도 자본가가 없지만 자본관계가 없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인격적인 자본가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착취관계가 있느냐 없느냐를 볼 수는 없지 않는가 생각한다. (7) 중국에서는 독립적인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노동운동 이론을 연구하는 그런 연구집단들이 있는건지 그런 것도 궁금하다. : 중국 내부에서 세 가지 지향이 있다고 보통 이야기된다. 중국을 통상적으로 나눌 때 보수파와 개혁파, 그리고 제3세력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보수파는 당관료들. 이들은 기본적인 지향에서 별로 민중적이지 않고, 집권 관료들인데, 이데올로기적으로 사회주의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분된다. 개혁파라고 하는 경우, 리버럴리스트들을 말하고, 중국에서는 보통 ‘신권위주의자’들을 지칭한다. 신권위주의란 80년대 조자양 중심으로 이론화된 틀이다. 경제에서의 시장화, 정치에서의 권위주의적 정부를 이야기하고, 보통 한국과 싱가폴 모델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한다. 대체로 중국의 개혁파들은 시장의 극대화, 권위주의적 정권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세력은, 노동자 지향의 소수 인텔리로 볼 때, 이 사람들은 대체로 문혁을 겪은 세대이다. 이들이 모이는 데는 중화전국총공회이다. 그 핵심 간부들은 거의 이쪽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중국에서 보통 ‘노동자 담화론’/‘노동자 강화론’ 얘기가 나오는데, 지배적인 것은 ‘노동자 담화론’으로서, 이것은 “노동자 담화를 약화시켜야 중국이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노동자는 민도가 낮고 분배에서의 높은 소득만을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향후 발전에서 사회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기본적 정책 방침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 ‘노동자 강화론’은 소수라고 볼 수 있는데, 노동자 강화론이 집약되는 것은 중화총공회 산하의 공운학원, 및 총공회가 발행하는 신문(공인보) 쪽이다. 그래서 입장으로 보면 총공회와 그 산하단체인 공운학원 및 공인보쪽 사람들과는 견해차이가 있다. 지향을 보면, 공운학원 내부에서 중심되는 게 공회학과라고 노조학과라는 과가 있는데, 거기에서 크게 두 개로 지향이 나뉜다. 하나는 중국에서의 노동관계는 서구적인 형태의 노사관계체계로 나가야 된다는 것이고, 또 한쪽에서는 노동자 역할 강화론으로 나간다. 노동자 역할 강화론은, 고유하게 사회주의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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