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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자본가 그리고 문화적 돌연변이(2)
- ‘리셍코주의’, 스탈린주의 그리고 21세기 맑스주의 -
최 형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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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아이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네 하나는 사내 하나는 계집애
․ ․ ․
“아비는 진작 집을 나가고 울 엄니 알 품은 새가 되었지요.
쌀독이 바닥나니 사흘 내내 굶주리고,
어린 동생 젖을 찾아 빠나 젖은 이미 말라붙은 걸 어찌하나요.
<중략>
해 저물어 어두컴컴 새들도 집을 찾아 날건만
외로운 이 오누이 아무데도 갈 곳이 없구나.
애닯다, 가난한 이 백성들 타고난 마음마저 잃었단 말인가.
제 짝을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고 어미로 자식을 버리다니!”1)
19세기 조선의 ‘인텔리겐챠’(Intelligentsia)2), 실학파의 거두, 다산 정약용은 1809년 (순조 9년)3) 흉년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읊었다. ‘신분에서 계약으로’, 역사적 진보가 이뤄진 한편, 오늘날 임금 노예제 아래에서 실직한 아비는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는 등 핵가족 역시 분열되고 있다. 다산은 당대의 사회상황을 “인민들은 흙을 밭으로 삼고 있는데 관료들은 인민을 밭으로 삼아서 살과 뼈를 긁어내는 것으로 농사를 하고 있으며 백성의 재산을 수탈하는 것으로 추수를 한다. 이것이 습성이 되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4)면서 분노했다. 오늘날 사법고시를 합격한 자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나 돈의 액수를 재는 저울이 아니라 ‘정의의 저울’을 자신의 ‘양심의 법정’에 품고 있을까?5)
다산은 당대의 봉건적 착취와 억압에 대해서 “큰 도적놈들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은 모두 멸망한다”, “양떼에 달려드는 호랑이는 잡아죽여야 하며 모판에 번식하는 잡초는 뽑아버려야 한다”6)고 민중의 염원을 대변하였다. 그리고 이런 절망 속의 희망이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폭발하였던 것이다.
19세기에 민중의 삶을 피눈물로 적시는 상황은 멀리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ꡔ레미제라블ꡕ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과 관습의 이름으로, 문명의 한 복판에서 인위적으로 지상에 지옥을 만드는 사회적 단죄가 존재하는 한, 금세기의 세 가지 문제 노동착취에 의한 인간의 타락, 굶주림으로 인한 여성의 파멸,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아동들의 위축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지역에서 사회적 가사(假死)상태가 가능한 한, 무지와 비참함이 지상에 남아있는 한, 이런 책은 필요하기 마련이다”7)(1862년 오르빌 하우스). 프랑스 민중은 1871년 봉기하였다. 신분에서 계약으로, 인류의 역사는 진보를 한 반면, 다산이 증오했던, 큰 도적놈들 그리고 위고가 느꼈던 사회적 지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른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이에 더해서 인류사상 유례없는 자연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함께 한국 민중을 부분집합으로 하는 세계 민중은 지구 생태계의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으면서 당장 ‘밀레니엄 버그’ 앞에 당혹스러워 하면서 21세기로 향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를 절망적 삶의 조건을 최소한이라도 개선하고자 할 때 우리는 ‘20세기의 밀린 역사적 숙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 숙제란 지구를 벗어난 우주 공간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닉 1호를 발사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원리에 입각해서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 한, 그 수많은 ‘오스트롭스끼와 파벨의 어머니’8)가 건설한 소련이 붕괴한 원인을 해명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 의식을 염두에 두면서 본고에서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해의 한 가지 접근 방법인 ‘환경 결정론’과 관련해서 소련의 ‘리셍코주의’의 논지, 그 역사적 맥락, 그것에 대한 평가와 교훈을 간략히 설명할 것이다.
2. ‘리셍코주의와 스탈린주의’
1) 리셍코주의의 ‘과학적’ 주장
리셍코주의의 출발점은 소련의 농업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리셍코가 연구 개발한 ‘춘화처리(La Vernalisation)’ 였다. 그 기술은 환경을 조작하고 접붙이기를 함으로써 식물, 특히 겨울 밀을 봄 밀로 변종시키는 것이었다.9) 이 ‘춘화 처리’ 기술의 의미를 생물학의 일반원리의 수준으로까지 격상시킨 것이 ‘리셍코주의’이다. 이것의 이론구조의 근간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 핵심은 ‘획득형질의 유전’ 이다. 유전은 ‘생리학적 과정’으로서 생물의 본성의 발전에 관한 유물론적 이론은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10) 그것의 기제는 생물이 환경의 제반조건을 ‘동화’ 한다는 것이다. 리셍코에 따르면 유전이란 “대대로 선대로부터 전해진 외부 조건의 집중적 작용이 생물에 의해서 동화된 것”이다. 그는 생물의 생존과 도태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보수적인 생물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본질에 낯선 조건들을 수용하지 않고 그것을 동화하기를 거부한다. 동요하는 성향을 지닌 생물은 달리 행동한다. 그것은 동화의 조건과 관련해서 상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것이 특히 특정 조건들을 선호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11)
리셍코의 생물학적 이론은 ‘영양물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영양물’에는 햇빛, 기온, 습도, 토양, 유기물음식, 대기 중의 가스의 화학 원소들과 같은 환경의 제반조건이 포함된다.12) 그리고 “생물에 의해서 동화된 외부 조건들은 생물의 입자들(Chastitsaml) 이 되고 그것들의 성장, 발전을 위해서 이번에는 그것들이 과거에 바로 그것들 자신이었던 음식, 바로 그 외적 환경조건을 요구하게 된다.”13) 그는 유전의 기제가 일어나는 단위에 대해서 “유전의 기초는 세포이다.” 라고 말하는 한편 “우리는 당신(학술원 회원 세레브로스키)이 쓰는 유전자라는 용어의 개념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둘째, 유전의 안정성을 교란시켜서 변화를 초래하는 요인에는 세 가지가14) 있다. 리셍코가 개발한 ‘춘화 처리’의 경우처럼 물리적 환경의 변화, 그리고 접붙이기와 이종(異種)교배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은 리셍코가 존경했던 소련의 종묘학자이자 원예학자인 미추린이 개발하였는데 ‘리셍코주의’가 소련에서 ‘미추린주의’라고 불렀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뒤에 논하겠지만 미추린은 스탈린주의적 이데올로그들의 눈에는 ‘새로운 유형’의 과학자, 그 자체였다. 즉 그는 아무런 실용적 성과도 낳지 않는 대학교수들의 연구소를 경원(敬遠)시하면서 현장에서의 작업을 중시했고, 외국 학계의 동향에 무관심한 민족적인 과학의 기초를 놓으려 한 독학자였다. 리셍코를 사로잡은 것은 ‘헐벗은’ 학자로서 자신의 힘과 능력을 다해서 인민에게 봉사하려는 그의 이미지였다.15)
2) ‘리셍코주의’와 라마르크의 학설,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현대 유전학
‘리셍코주의’의 과학성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기에 앞서 그의 이론을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적 맥락에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우선 그의 ‘춘화처리’는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가? 그라햄은 ‘춘화처리’로 소련의 곡물생산고가 증가했는가하는 문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한편 소련의 유명한 과학자 J. 메드베데프에 따르면 “그 방법은 수천만 톤의 곡물에 적용될 때 각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에 지극히 큰 부담(특수 창고의 유지와 일반적인 파종방식에 비해서 비용이 두 배)과 위험을 부과하며 더욱이 어떤 종류의 밀들은 춘화 처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르원틴은 리셍코주의의 득세 이전과 전성기 그리고 그 이후의 소련 농업생산의 역사를 같은 시기의 미국 농업의 역사와 비교한 결과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16)
리셍코가 득세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들 가운데 한 가지는 혁명 전 러시아에서 특히 좌파작가들(체르니쉐프스키 같은 인민주의자들)이 획득형질의 유전개념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 획득형질의 유전 개념은 라마르크의 학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라마르크(1744~1829)의17) 진화론은 이른바 ‘용불용(用不用)’설이다.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 널리 사용되는 신체의 부위는 갈수록 커지고 강해지는 반면, 사용되지 않는 부위는 갈수록 약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유명한 예가 키가 큰 나무의 잎을 먹으려는 기린의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이 용불용설에 기초한 것이 ‘획득형질의 유전’으로 생물이 일생동안 획득한 변화는 후손에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라마르크의 학설을 반박한 학자는 독일의 생물학자 A. 바이스만(1834~1914) 이었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하기에 앞서 그는 이미 생식세포와18) 체세포를 구별했다. 그는 획득형질의 유전이 불가능한 과학적 근거로서 생물의 발생초기에 생식세포와 체세포는 이미 해부학적으로 분리된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는 전환될 수는 있으나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 불멸의 생식세포를 가정했다. 이것은 변화를 인정하되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변화일 뿐 실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관점이었다. 따라서 이점은 리셍코주의자들에게 정치적 현상유지에 충실한 입장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져서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러했기에 리셍코주의와 대립적인 입장은 바이스만-모건주의라고 불렸다.
E. 마이어는 다윈의 진화론, 자연선택이론의 논리를 다섯 개의 사실에 기초한 세 개의 추론으로 정리한다.19)
사실 1. 태어난 개체 모두가 성공적으로 생식한다면 그들의 인구는 지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사실 2. 대체로 인구는 계절적 증감을 제외하고는 크기가 안정적이다.
추론 1. 환경이 부양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개체의 생식으로 말미암아 개체 사이에 생존 투쟁이 유발되어 매 세대마다 우직 후손의 일부만이 생존한다.
사실 4. 집단의 개체들은 형질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있다. 즉 어떤 두 개체도 정확히 같지는 않다. (필자 : 현대 유전학의 유전형과 표현형의 구별)
사실 5. 생존투쟁에 있어서 생존은 되는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생존한 개체들의 유전적 구성에 좌우된다.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도록 하는 형질을 유전받은 개체들이 그렇지 못한 개체들 보다 더 많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추론 3. 개체의 생존과 생식 능력이 불평등함으로써 집단에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여러 세대에 걸쳐서 유리한 형질들이 축적된다.
맑스는 다윈에게 ꡔ자본ꡕ 제1권을 헌정하고 이에 다윈은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다윈의 진화론에 있어서 핵심적 개념, 생존 투쟁과 자연선택을 맑스와 엥겔스가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진화론을 수용합니다. 그러나 그의 논증방법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중략) 이 두 가지 개념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 개념들은 똑같이 서로 일방적이며 편협합니다. 자연집단(살아있건 죽었건)의 상호작용은 대립만큼 조화(harmonie)를, 협력(la conjonction des efforts) 만큼 투쟁을 포함합니다. 현명한 체하는 어떤 사람들은 풍부한 역사발전의 총체성과 다양성을 ‘생존투쟁’ 이라는 일방적이고 빈약한 공식, 자연의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비판적이고 신중하게 수용해야 하는 공식 아래에 둠으로써.....”20) 이 서신에 드러난 엥겔스의 관점은 스펜서를 비롯한 사회적 다윈주의의 비과학성과 계급적 반동성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현대 진화론의 논쟁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 진화론은 생물지리학, 고생물학, 분류학, 비교해부학, 비교발생학, 분자생물학의 성과를 종합하면서 발전하고 있다.20)
3) 리셍코주의의 득세와 스탈린주의
이상으로부터 리셍코주의는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론’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 생물학에 있어서 지동설만큼이나 확립된 과학적 결론이다. 리셍코주의가 소련의 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을 억압하고있던 기간, 1930년대부터 1950년대 기간에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생물학과 유전학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생화학과 유전학이 상호 교류하면서 유전자의 화학적 조성, 특히 박테리아 유전학과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연구 그리고 어윈 쉬뢰딩거와 같은 양자물리학자들의 개입 등을 경과하면서 분자생물학이 새로운 과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고 마침내 생명체 유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DNA의 2중 나선구조가 발견되었던 것이다.21) 리셍코주의에 대립했던 이른바 바이스만-모건주의의 모건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1927년 X선이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음을 발견했던 헤르만 뮐러는 ‘사회주의와 유전학의 통일’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소련에 우호적이었다. 그는 1935년의 ꡔ밤으로부터 벗어난ꡕ에서 계급차별이 폐지된 사회에서만 비로소 우생학이 적절히 이행될 수 있으리라고 진술했고, 맑스주의의 틀 내에서 리셍코주의는 맑스주의와는 정반대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분자유전학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업적을 남김으로써,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고 한때 프랑스공산당 당원이었던 자크 모노는 리셍코주의에는 “과학적 특성이 결코 없으며” 그것은, “사회주의 사상의 치명적인 쇠퇴”라고 비판했다.22)
그러면 비과학적이고 반맑스주의적인 리셍코주의가 어떻게 소련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시기에 득세할 수 있었을까?
리셍코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던 맥락이란 우선 앞서 잠깐 언급했던 농업생산력을 증대시켜야 할 절박성과 이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춘화처리’를 들 수 있다. 볼셰비키 혁명에 이은 친 짜르적 백색군과의 내전과 제국주의 간섭전으로 농촌이 황폐화된 상황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즉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역시) “대단절”, 즉 스탈린의 농업집단화 프로그램에 리셍코주의는 적실성(適實性)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과 중첩되는 맥락은 “새로운 소비에트형 인간의 창출”22)과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여겨진 신멘델주의 즉 바이스만-모건주의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함의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문화(Proletkult)운동과 그것에 대한 레닌의 비판과 관련된, “새로운 유형”의 과학자 형성과 외국인 혐오라는 맥락이었다
① “새로운 소비에트형 인간의 창출”
필자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소련에서 획득형질의 유전성 이론이 득세했던 원인을 “새로운 소비에트형 인간의 창출”이라는 소망의 ‘과학적’ 근거를 라마르크의 학설과 리셍코주의가 제공해 준다고 생각한 것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획득형질의 유전성이 과학적으로 사실이라면 그런 희망적인 가능성과 함께 절망적인 가능성 역시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J. 헉슬리는 ꡔ동서의 유전ꡕ(138면)에서 이렇게 썼다. “획득형질이 유전적 구성에 쉽사리 각인되지 않음은 인류에게는 천만다행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되면 수 천년간 인류의 다수가 살아온 조건, 더러움․질병․영양부족이 판치는 조건으로부터 인류에게는 재앙이 발생했을 것이다.”23) 수천만의 피와 땀으로 건설한 사회,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잉여가치의 착취의 종식, 이것의 귀결로서 계급의 소멸과 국가의 소멸을 지향하는 사회, 역사상 유례없는 새로운 사회적 조건에서의 ‘새로운 인간형의 창출’ 이라는 가슴벅찬 희망에 적대적인 것으로 여겨진 바이스만-모건주의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함의는 무엇인가?
르윈틴에 따르면24) 언명(言明) 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가정들에 의존하고 있는, 과학의 ‘이론적 최소구조’ 그리고 그 구조 위에 건설되면서도 그것에 의해서 논리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아닌,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구별해야 한다. 멘델적 유전학에 있어서 최소구조는 멘델의 법칙과 바이스만적 원리이다. 바이스만적 원리는 멘델의 법칙으로 묘사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물질적 실체는 환경으로부터 오는 정보에 의해서 지도되고 적응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수 없다는 것, 생물의 표현형은 특정한 일련의 내외부적 조건들 속에서 유전자가 행하는 화학적 물질 합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멘델적 유전학의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는 유전자의 ‘잠재력’에 의해서 표현형에 부과되는 ‘한계’라는 개념이 포함되는데 이것이 유전되는 것은 고정불변이라는 것. 즉, 생물은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바로 이런 생물학적 유전자결정론으로 인해서 멘델적 유전학은 공격받게 되는 데 이런 것을 예견한 학자가 자바도프스키였다(1931). 그리고 그는 유전 학자들이 백해 무익한 우생학적 엘리트주의를 유전학의 주입하고 있는 한편 최초로 라마르크주의가 반진보주의적 임을 지적했다. 즉 그것의 논리대로 라면 수 백년에 걸친 짐승같은 생활에 의해서 노동자와 농민은 유전학적으로 열등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새로운 소비에트형 인간의 창출”과 관련해서 우세한 관점은 라마르크 주의적 리셍코주의였던 한편, 1920년대 중반에는 우생학적 유전학적 관점 역시 있었다는 것이다. 콜초프와 필립 쳉코는 혁명의 전위였던 하층계급 출신자들로부터는 물론, 인텔리겐챠 출신들로부터도 우수한 인간형들을 육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했다.
② “새로운 유형” 의 과학자 형성과 레닌의 문화혁명 그리고 외국인 혐오
“새로운 소비에트형의 인간 창출”과 관련해서 중대한 것이 “새로운 유형”의 인텔리겐챠, 과학자의 형성이었다. 요컨대, 프롤레타리아국가에 상응하는 인텔리겐챠의 계급성 문제였다. 그리고 이 중대한 과제는 러시아혁명의 전개과정 그리고 레닌의 이론과 상황판단 그리고 맑스주의의 속류화(vulgarization), 스탈린주의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레닌은 “(사회주의 사회의)건설은 보다 중요한 유럽국가들에서 얼마나 빨리 혁명이 성공할 것이냐에 전적으로 좌우된다. 오로지 그곳에서 혁명이 성공한 후에 라야 우리는 진지하게 건설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25)라고 생각했다. 러시아혁명의 프로메테우스적 특이성이자 구속조건으로 작용한 산업화 과정에 있는 농업 국가적 후진성을 고려할 때 러시아혁명의 성공의 필요조건을 유럽의 선진산업 국가의 혁명이라고 레닌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1918년 독일혁명이 실패하고 내전을 경과하면서 레닌의 생각에 볼셰비키의 당면과제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 아니라 문명 그리고 독일식 국가자본주의의 강화였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레닌의 ‘문화혁명’론이다. 이 주제는 리셍코주의의 성쇠와 관련해서 소련의 붕괴원인 규명과 관련해서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는 문화적 돌연 변이라는 과제, 계급의식과 윤리의 문제와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하다.
카르멘은26) 혁명의 의의를 인간 사이의 소외와 노동산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는 것에 둔다. 그가 보기에 레닌은 혁명의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두 가지, 첫째 소련의 발전모델로서 선진자본주의, 둘째 당에 위임된 프롤레타리아 정치권력과 일치하는 생산력의 발전을 거론했다. 카르멘이 보기에 레닌의 실책은 이 두 가지의 실현이 사회주의의 최종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중의 자발적인 운동으로부터 성장한 노동조합주의적 정치와 경제주의의 한계 그런 운동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종속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위당의 역할, 노동자들의 자발적 의식을 사회민주주의, 즉 맑스주의적 정치의식의 수준으로 높여야 함을 강조했던 레닌이27) “경제주의적” 결정론으로 기울었다는 것은 지극히 역설적인 것이다. 레닌은 “러시아혁명의 난관이란 서구의 계급에 비해서 러시아의 혁명적 노동계급이 시작하기란 훨씬 더 쉽지만 계속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이다. 반면에 서구 여러 나라의 경우 혁명을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렵다.”28)고 판단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간섭전과 내전에서 승리한 후 레닌은 당내 관료주의의 발호를 심히 우려하는 한편 혁명의 미래에 자신감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러시아의 생산력발전은 사회주의를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수하노프를 비롯한 제2인터내셔날의 모든 영웅들이 이 명제를 두고 북을 두드린다. 그들은 이것이 우리의 혁명에 대한 결정적 기준이라고 생각한다.(중략)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10배나 더 노력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에게 서구 여러 나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명에 필요한 근본을 조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주의 건설에 일정한 문화수준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왜 우선 혁명적 방식으로 일정한 문화수준에 다른 나라들을 따라 잡기 위해서 나아 갈 수 없다는 것인가?”29) 레닌의 판단으로는 “이런 낮은 문화 수준의 결과란 소비에트가 강령상으로는 노동민중의 정치기구이지만 사실은 노동민중을 위하면서도 노동민중 전체의 정치기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선진부분의 정치기구라는 것”이었다.30)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남긴 문화 전체를 취해서 그것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의 과학 기술 지식과 예술 전체를 취해야 한다.”31) 이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한 집단이 프롤레트쿨트였다. 이 집단의 사고방식은 문화가 맑스주의로 환원될 수 있다는 식이었다. 이에 대해서 레닌은 “맑스주의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그것의 혁명적 변증법”32)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맑스주의자가 저지를 수 있는 최대의 그리고 가장 비통한 실수는 수백만의 민중이(특히 농민과 수공업자) 순전히 맑스주의적 교육만을 받음으로써 까막눈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레닌은 ‘전투적 유물론’이 수행해야 할 작업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유물론적 성향이 있는 현대 자연과학자들과의 동맹임”을 강조하였다.33)
레닌의 변증법적 프롤레타리아 문화론은 실제로 미국에서 염가본(paperbacks)이 수지맞는 사업이 되기 훨씬 전에 이미 소련에서 세계의 고전, 과학저작들, 시집, 정치논문들이 수만부에서 수십만부씩 염가로 출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34) 이에 반해서 리셍코주의는 비변증법적이었고 “전투적 유물론”의 정신과는 거리가 있었다. 소련정부와 당이 대부분의 유전학자들을 비롯해서 보다 학술적인 순수과학자들을 의심했던 데에는 부분적으로는 역사적 근거가 있었다. 소련출신의 자연과학자 Z. 메드베데프에 따르면 “연구와 학계의 고참인사들 대다수는 반 볼셰비키세력을 지원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과장되었지만 1925년에 부하린에 따르면 “10월 혁명의 초창기에 우리에게 넘어온 인텔리는 최악의 부분이었던 반면에 정직한 인텔리의 다수는 우리를 적대시했다.”35)
신경제정책(NEP)의 시대에는 인텔리겐차와 볼셰비키당과의 관계는 ‘갈등하면서 협력하는’ 관계였다. 관념론자들과 실증주의자들도 집필의 자유를 누렸으며 심지어는 투옥 중인 상태에서도 각종 잡지와 신문들이 출판되었다. Z. 메드베데프에 따르면 1922년~1928년 기간은 ‘소비에트과학의 황금기’였다.36) 그러나 1929년은 ‘대단절’의 해였다. “귀족적이고 백합같은 손가락을 가진” 과학의 “성직자들”은 러시아의 “문맹인 농민들(muzhik)의 아들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T.리셍코 역시 우크라이나 농부의 아들이었다.
리셍코가 득세하게 되는 계기는 1929년 1월에 개최된 레닌그라드대회에서 행한 그의 발언이었다. “동지들 대답해보십시오. 춘화처리의 전선에서 그것은 항상 계급투쟁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닙니까? 농민의 귀에 대고 ‘종자에 습기를 가하지 마시오. 그것들을 썩게 만들고 말 것이오’라고(생략) 그것은(생략) 집단농장의 농부들을 돕는 대신에 부농(Koulaks)과 사보타지를 일으키는 자들이 퍼뜨리는 거짓말이며 그들은 과학계에서 그리고 과학계 너머에서 파괴공작을 일삼고 있습니다. 계급의 적은 그가 학자이건 아니건 여하튼 항상 적인 것입니다.”37) 이 연설에 스탈린은 기립박수를 치며 “잘 합니다, 리셍코 동지, 정말 잘합니다.”라고 전적으로 그를 지지했다. 리셍코주의자들에게 절호의 기회로 판단된 것은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부하린주의자들” 그리고 나치의 생물학자들의 인종주의적 오류에 대한 캠페인을 스탈린이 개시한 것이다. 이 재판의 검사장 비신스키는 예전에는 멘셰비키였는데 내전 후 볼셰비키에 가담했다. 그리고 이 재판의 피고들, ‘나치 비밀경찰의 첩자들’에 대한 언론의 공격에 있어서 선봉은 ꡔ프라우다ꡕ지의 자슬라프스키였는데 그는 1917년 혁명 당시 멘셰비키로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독일황제 빌헬름 2세의 돈을 받아 간첩 행위를 했다고 중상모략한 자였다.38) 요컨대 이 재판은 추악하기 비할 데 없는, 비극적 재판이었다. 이런 마녀사냥에서 많은 신멘델주의적, 바이스만-모건주의자들은 ‘도적’으로서 투옥되어 옥사했다.
이 과정에서 희생당한 대표적인 뛰어난 학자가 N.바빌로프였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국제적 유전학자 W. 베이트슨에게 사사했으며 1920년이래 연구의 폭과 깊이 덕에 레닌의 개인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았다. 그 무렵 그는 전통종자를 개량종으로 점진적으로 대체한다는 대담한 계획을 수립,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개방적인 학자로서39) 리셍코의 최초 작업에 호의적이어서 그 작업을 격려했다. 바빌로프는 1940년 8월 체포되어 대법원 군사법정에서 적과 음모를 꾸민 죄, 영국을 위해서 간첩활동을 한 죄, 농학을 태만히 한 죄, 망명한 백군과 내통한 죄목으로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 후 10년형으로 감형되어 1943년 1월 사라토프에서 복역 중에, 이미 1942년 말 런던의 왕립협회 회원으로 결정된 것도 모른 채 사망했다.40)
1946년 처칠이 소련의 ‘철의 장막’을 선언한 것에 이어 A. 즈다노프는 세계가 양대진영으로 분열되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1940년대 말 냉전이 격화되면서 소련문화의 전 영역에서 국수주의적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소련학자들이 외국의 간행물에 협력하는 것, 소련의 과학잡지에 외국어 논문의 게재, 외국인의 과학적 저작에 대한 언급, 이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리셍코는 1947년 ꡔ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ꡕ지에 이렇게 썼다. “부르주아 생물학이 종내 경쟁(La Concurrernce Intraspecifique)론에 그런 가치(‘자연의 영원한 법칙’ 이라는 식 ; 필자)를 부여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자의 과잉생산기에 대다수 민중이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류 전체는 생물학적으로 단일종에 속한다. 따라서 부르주아 과학은 종내 투쟁을 날조해 내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48년 7~8월에 개최된 소련 농업과학 레닌 아카데미 특별회의 폐막식에 즈음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회의는 멘델-모건주의에 대한 미추린 경향의 완승을 보여주었다. 전위적 생물학은 인류의 천재이신 레닌과 스탈린에 빚을 지고 있다. 위대한 동지이자 과학의 주역, 우리의 수령이자 스승이신 스탈린에게 영광을!”41) 리셍코주의자들은 외국과학, 멘델의 법칙과 바이스만-모건주의의 과학적 내용, 철학, 사회적 맥락,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이질적이고 상호모순된 것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일대일 대응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스탈린의 사망 직전부터 리셍코에 대한 비판은 시작되었으나 그는 흐루시초프의 지지를 받았고 그의 실각 후 1965년 주된 공직에서 해임되었다.
3. ‘리셍코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
‘리셍코주의’는 부르주아 생물학의 오류와 이데올로기성을 변증법적, 유물론적으로 비판해서 ‘맑스주의적’ 생물학을 수립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리셍코주의’의 오류와 교훈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인간의 행동 그리고 사고에 대한 환경결정론과 생물학적(유전자) 결정론이라는 어느 관점이든 일방적인 관점에 사로잡히지 않고 ‘개방적이면서 윤리적’인 관점의 수립에 유용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리셍코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레닌의 “전투적 유물론”에 충실하지 못했다. 나아가 맑스와 엥겔스가 강조했던 변증법적 사고에도 충실하지 못했다.42) 변증법적 유물론은 특정한 과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Programmatic) 방법이 아니다. 리셍코 이후 소련의 생물학자들은 레닌이 그러했듯이 과학과 과학에 대한 해석을 구별했다. 변증법적 관점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여 교조주의의 특정 형태들과 사고의 편협함을 경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리셍코주의는 멘델주의가 관념론적이며 형식논리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멘델의 통찰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멘델은 유전문제를 교배에 의한 후손들에 나타나는 변이의 실제 유형에 집중함으로써 겉보기에 모순적인 유전과 변이라는 양면을 하나의 설명기제 내에 통합시켰다.43)
둘째, 리셍코 주의자들은 유전학자들이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으로 확립했다고 비판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 유전학의 정수 가운데 한가지가 유전자의 변이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셋째, 리셍코주의자들은 유전학이 유전자, 체세포 그리고 환경 사이에 장벽을 세웠다고 비판했다. 사실 발생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은 DNA-단백질-환경(단백질 합성이라는 방향) 그리고 환경-단백질-DNA(유전자 억압과 유도라는 방향)라는 쌍방향적 상호작용을 규명했다. 그리고 획득형질 유전론에 대한 K.O 펀치로서 환경의 우연한 사건이 DNA 내의 변화를 지도하는 것이 아님을 규명했다. 즉 상호 작용이라는 변증법적 원리가 논리상 가능한 모든 형태의 상호작용이 존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전히 형이상학적 관념론이다.44) 이런 오류와 관련된 것이 넷째 문제이다.
넷째, 리셍코주의자들은 유전학에는 변화에 필요한 내외부적 조건들에 대한 정확한 관점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발생유전학은 유전자가 적절한 환경 속에서 작용할 때에만 어떤 표현형이 발생하는 한편 환경이 적절하건 그렇지 않건 오직 일부 유전형만이 그런 표현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리셍코주의자들이 눈에 보이는 구조에만 주의하는 설명방식을 거부한 것까지는 정당하였으나 구조에 과정을 대립시킴으로써 무정부주의적 관점과 유사해졌다. 즉 구조와 과정의 통일성을 놓쳤던 것이다.
여섯째, 리셍코주의자들은 어떤 체계의 하부체계의 '상대적 자율성' 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즉 오직 중간수준만을, 생물과 그것의 생리학이라는 수준만 보았다. 맑스주의는 조직의 여러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사이의 통합성을 강조한다. 1968년에 소련의 ꡔ철학의 제문제ꡕ의 편집장이 된 I.T. 프롤로프는 생물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가 환원론의 문제, 부분과 전체의 관계문제라고 생각했고 이 문제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철학적 쟁점이 되었다. 생명을 물리 화학적 용어(조건)으로 설명하는 것이 충분한 것인가? 그는 생물학을 두 수준, 물리화학적 법칙의 수준 그리고 보다 일반적인 생물학적 혹은 “체계이론” 적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45) 르원틴에 따르면 생물학적 결정론이란 인간을 비롯해서 생물은 진화과정에 의해서 환경에 적응하는 것으로, 즉 유전자의 전환, 돌연변이, 자연선택의 과정에 의해서 환경속에서 최대한 많은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적합한 것이 되는 것으로 본다. 요컨대 그것은 생물을 본질적으로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로 본다. 이에 비해서 변증법적 입장은 생물과 환경이 부단히 상호작용하고 침투한다고 본다. 그리고 “환경”이라는 것 그 자체가 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있는 모든 생물의 활동결과 부단히 변화한다고 본다. 즉 어떤 생물에 대해서 다른 모든 것들-포식자, 피식자, 기타 등등은 바로 그 “환경”의 일부를 이룬다.46)
생명체와 환경에 대한 변증법적 관점과 관련해서 경청할 만한 입장이 F. 바렐라의 관점이다. 바렐라는 신다윈주의에 대해서 상호 밀접한 세 가지 문제, 자연선택의 단위가 개체 (도킨스는 “생존 기계”로서 유전자라고 본다)47) 라고 볼 때 이타주의(利他主義) 의 설명에 있어서 난점, 적응주의의 문제 그리고 선택의 압력이 적응의 주된 요인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 여기에서는 세 번째 문제만 소개한다.48) 신다윈주의적 자연 선택의 관점은 행동주의적이다. 환경의 변화가 자극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연선택에 의한 종내(種內) 변화는 반응을 구상한다는 식이다. 바렐라는 이런 관점에 대해서 뇌의 경우를 들어 비판한다. 뇌에 대한 자극은 사전에 결정된, 어떠한 결과도 낳지 않는다. 왜냐하면 뇌 내에는 자극과 접촉하는 대단히 많은 일이 일어나는 데 뇌가 그 자극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시키고 해석하기 때문에다.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유전자는 일종의 네트워크(reseau)의 점들(Points)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체(成體)의 내부에서 엄청난 양의 것들이 변하지 않고서는 유전자가 변하지 않는다. 환경 그리고 자연선택과 같은 자격으로 진화의 “내재적 요인들”도 고려해야 한다. 진화의 단서가 되는 요인들의 큰 부분은 결과적으로 생명의 다양성에 가장 유용한 요인들, 외적인 자연 선택의 압력이라기보다는 내적 요인들에 의해서 구성된다. 생명체는 환경을 낳고 이 환경은 구속요인이 되어 결과를 낳는다. 요컨대 생명체와 환경은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일곱째, 초기 맑스주의자들은 비결정적(random) 사건과 결정된 사건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이미 지적했다. 그러나 소련의 맑스주의자들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인과율에 대한 공격과 연계지으면서 진화에 있어서 비결정적 과정들의 창조적 역할에 적대적이었으며 진화론적 변이의 원천으로서 돌연변이에 대해서 그리고 집단유전학의 확률론적 모델에 대해서 편견을 가졌다.
리셍코운동은 레닌의 ‘문화혁명’의 실패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깊고 넓게 성찰해보아야 할 점은 레닌의 ‘문화혁명’의 이론적 토대의 모순이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경제주의적’ 결정론의 혐의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고 레닌의 전위와 대중의 관계에 대한 조직론은 스탈린 시대에 ‘무오류의 당’이라는 거대한 괴물(Leviathan)을 낳았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생각과 결단을 해서 행동에 나서도록 다수 민중을 조직하는데 이제까지의 맑스주의 전통을 어떻게 하면 혁신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가상경제(Economie virtuelle)와 카지노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국가에 대한 분석,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 여성 해방운동과 계급투쟁과의 결합모색,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간의 관계 설정 등으로만 과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세계에서 민중의 해방운동에 대한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레닌은 “칼 맑스 사상의 역사적 운명”에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가지는 위대한 세 시대에 있어서 각 시대는 맑스주의에 새로운 확신과 새로운 승리를 가져다주었다고 낙관했다.49) 황금만능주의가 남한 청소년의 정신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수학의 행렬이론을 응용해서 기존의 전자우편보다 30배나 빠른 암호를 개발함으로써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는, 아일랜드의 16세된 여고생 플래너리는 자신의 개발품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이 이용하도록 하겠다고 한다.50) 미래에 대해서 비관하기에는 비중있는 낙관의 증거들이 여전히 결코 적지 않다. 레닌은 “맑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요소”로서 독일철학, 영국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사회주의를 거론했다.51) 21세기에 맑스주의는 이 세 가지로 ‘과학’에 기초한 새로운 확신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나아가 확신이 ‘윤리’ 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면 맑스주의 ‘과학’으로 ‘윤리’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52)
필자는 21세기에도 맑스주의가 확신을, ‘과학적이면서 윤리적으로’, 새로운 확신을 가져다주려면 인지-신경과학 등의 성과에 기초해서 ‘정신연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다음 호에서는 유전적 결정론과 환경 결정론과 관련해서 지속적 쟁점이 되어온, ‘몸과 일체를 이루는 정신연구’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지능’을 다룰 것이다.
한국의 신세대가 진정으로 새로우려면 정보통신 혁명으로 쇄신된 자본주의의 물신주의와 개인주의에 새롭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문화혁명의 선봉에 서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의식과 감정의 관계, 그리고 무의식과 감정의 관계, 이 모든 것들과 윤리관계를 규명해야 하지 않을까?
한/노/정/연
1) 정약용, “오누이”, 여유당전서 시문집 제5권; 임영택 편역 ꡔ이조시대 서사시(상)ꡕ. 창작과 비평사, 1992. 260~262면.
2) 인텔리겐챠는 당초부터 지식인(Intellectnals)과는 대척적 개념이었다. 지식인이란 보통 지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 전문가로서 어떠한 도덕적 혹은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단어다. 이와는 달리 카갈리츠키에 따르며 인텔리겐챠의 행동은 사회적 이해관계보다는 사상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다만 ‘사상을 중시하는 세계관’(Ideologism)은 지식인들에게 전형적이지만 러시아의 사회역사적이고 역사문화적 특수성들로 인해서 러시아에서 예외적이라고 할 정도로 강력했다. 카갈리츠키, ꡔ생각하는 갈대 : 1917년부터 현재까지 지식인들과 소련국가ꡕ, (베르소 출판사, 1988년), 14-15면
3) 2년 후 홍경래의 난(당시 봉건적 양반계급의 눈으로 본 성격 규정임에 유의해야)이 일어났다.
4) 김광진, “다산 정 약용의 사회, 경제사상”, (북한) 과학원 철학연구소 편, ꡔ정다산 연구ꡕ, (한마당, 1989년), 76면.
5) 맑스주의 변혁운동의 역사에 있어서 횃불과 같은 사건, 1871년 프랑스의 ‘파리 코뮨’ 하에서 단행된 사법개혁의 원리는 무료재판과 재판관의 선거였다. 장 브뤼아 등, ꡔ1871년의 코뮨ꡕ (파리, 에디숑소시알 출판사, 1960년), 212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러한 원리가 어느 정도까지는 제도화되었다. 한국 역시 이런 법조계의 민주화가 박력있게 단행되어 요설(妖舌)로 착취와 억압을 자행하는 ‘법복귀족’ 을 근절해야할 것이다.
6) ꡔ여유당 전서ꡕ 제1집, 제12권 12면과 제19권 16면, 앞의 ꡔ정다산 연구ꡕ 75면.
7) 빅토르 위고, ꡔ레미제라블ꡕ(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 (시그넷 고전, 1987년), 머리말.
8) 오스트로프스키, ꡔ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ꡕ, (온누리, 1986년); 막심고리키,ꡔ어머니ꡕ, (석탑, 1985) 참고
9) R.르윈틴과 R.레빈스,ꡔ변증법적 생물학자ꡕ, (하버드대학 출판부,1985년), 174면. 르원틴은 S.J. 굴드와 함께 E.윌슨이 개척한 ‘사회생물학’에 대해서 ‘사회생물학 연구그룹’을 조직하여 날카로운 좌파적 비판을 가했다. 윌슨은 르원틴과 대립투쟁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버드대 교수가 되는 것에 동의했으며 이 논쟁을 계기로 맑스주의를 학습했다. 윌슨의 자서전, ꡔ자연주의자ꡕ, (민음사, 이병훈 옮김, 1994년), 338~351면 참고, 조엘 코텍과 단 코텍, ꡔ리셍코 사건ꡕ, (브뤼셀, 에디숑 콤플렉스, 1986년), 30~31면.
10) L.그라햄, ꡔ소련의 과학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행동ꡕ, (컬럼비아대학 출판부, 1987년), 130면.
11) J 헉슬리, ꡔ소련의 유전학과 세계과학ꡕ, 31면. 코텍의 ꡔ리셍코사건ꡕ, 53면에서 재인용.
12) 그라햄의 책, 127~130면.
13) 리셍코의 ꡔ농생물학ꡕ, 436면, 그라햄의 책, 126면에서 재인용.
14) 그라햄의 책, 127~130면.
15) 코텍의 책, 29면과 51면.
16) 그라햄은 소련 농업의 입지조건, 즉 대륙성기후, 흑토대, 경작의 어려움, 경지면적을 미국과 비교하는데 당시 소련의 농업은 미국에 비해서 보다 외연적(Extensive)이며 덜 내포적(Intensive)이었다고 평가한다. 그의 책, 171~176면. J. 메드베테프, ꡔ리셍코의 영광과 몰락ꡕ,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 1970년), 43면, 코텍의 앞의 책, 32면에서 재인용. 르원틴의 앞의 책, 189면 191면.
17) E.마이어, “진화의 기제”, ꡔ생물학ꡕ, (캄프벨출판사, 1993년 판), 424면. 마이어는 하버드대 교수로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유전학, 고생물학, 분류학의 새로운 발견들과 진화론을 종합했다. 그리고 진화론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S.굴드와 N.엘드리지의 Punctuated equilibrium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18) 오늘날 유전공학의 발전은 문자 그대로 혁명적인 것이다. 복제양 돌리(1997년)가 각종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고있으며 인간의 복제가능성은 생명과학과 관련해서 이 시대에 가장 복합적인 윤리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의 이언 월머트의 성공의 의의는 무엇인가? 생명복제 실험자들이 품어 왔던 의문, 유전자에 가해진 시간의 가혹한 흔적들을 제거하여 세포를 분화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서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생물로 발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즉 말단 분화세포의 핵에 발생한 DNA 상의 변화는 비가역적(非可逆的)인 것이 아니었다. G.콜라타, ꡔ복제양 돌리ꡕ, (사이언스 북스, 이한음 옮김, 1988년), 38면. 그리고 서 정선, “생명복제 실험 성공의 생물학적 의의” ꡔ과학 사상ꡕ, (범양사, 1997년) 가을호, 52면 참고. 생물복제 기술의 여러 가지 측면과 최근 성과에 대해서는 이안 윌머트의 “의학에 유용한 생물복제” ꡔ과학과 미국ꡕ, 1998년 12월호, 58~63면. 그리고 J.벵상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발견”, ꡔ과학과 미래ꡕ, (파리), 1998년 12월호, 10면 참고.
19) E.마이어, “진화의 기제”, ꡔ생물학ꡕ, 427~428면.
20) “라보프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런던 1875년 11월 12일~17일, ꡔ자연과학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서신ꡕ, (파리, 에디숑소시알 출판사, 1973년) 83~84면. 엥겔스의 이론적 입장을 최근의 고고학, 고생물학,인류학,영장류 연구의 성과를 통해서 긍정적으로 확인한 것으로서 C.울프슨의 ꡔ문화에 대한 노동이론ꡕ 참고(루틀리지 앤드 케건폴 출판사, 1982년) 특히 23~33면.
20) 앞의 ꡔ생물학ꡕ, 431~435면.
21) M.모랑주, ꡔ분자생물학사ꡕ, (파리, 데쿠베르트 출판사, 1994년) 17~214면 참고.
23) 코텍의 책, 118~122면. 138면.
22) 그라햄의 책, 138면.
23) 앞의 책, 463면.
24) 르원틴의 ꡔ변증법적 생물학자ꡕ, 179~180면.
25) 카갈리츠키의 ꡔ생각하는 갈대ꡕ, 39면에서 재인용.
26) 카르멘 클라우딘-우론도 ꡔ레닌과 문화혁명ꡕ, (서섹스, 하베스터 출판사, 1977년판), 116~127면.
27) 레닌, ꡔ3권으로 된 레닌선집ꡕ, (모스크바, 프로그레스 출판사), 제11권 “무엇을 할 것인가?” 92~234면 참고.
28) 1918년 6월 27일 , “모스크바 노조와 공장위원회 제4차 협의회에서의 연설”, ꡔ전집ꡕ, 제27권, 464면, 카르멘의 책, 20~21면.
29) 1923년 1월 16일, “우리의 혁명”, ꡔ3권으로 된 레닌 선집ꡕ, 제3권 706~707면.
30) 1919년 3월 19일 “당강령에 대한 보고서” ꡔ전집ꡕ, 제29권, 183면, 카르멘의 책, 28면에서 재인용.
31) 1919년 3~4월, “소비에트 정부의 성취와 난관”, ꡔ전집ꡕ, 제29권, 70면, 카르멘의 책, 25면에서 재인용.
32) 앞의 “우리의 혁명” ꡔ선집ꡕ, 제3권 , 705면.
33) 앞의 ꡔ3권으로 된 선집ꡕ 제3권, “전투적 유물론의 중대성에 관하여”, 601면과 603면.
34) 르원틴의 ꡔ변증법적 생물학자ꡕ, 183면.
35) 카갈리츠키의 앞의 책, 48~49면.
36) 앞의 책, 52~54면.
37) 메드베데프의 ꡔ리셍코의 영광과 몰락ꡕ, 44~45면, 코텍의 책, 40~41면에서 재인용.
38) I. 도이처, 1936년 9월1일, “모스크바 재판”, ꡔ맑스주의, 전쟁 그리고 혁명ꡕ, (베르소 출판사, 1984년), 3~17면 참고.
39) 코텍의 책, 35~38면. 그라햄의 책, 117~118면.
40) 코텍의 책, 72~73면.
41) 앞의 책, 77~78면, ꡔ유럽ꡕ지, (1948년 10월 특별호, 142면. 앞의 책 10면).
42) 엥겔스,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ꡔ한 권으로 된 선집ꡕ, (뉴욕, 인터내셔날 출판사, 1968년) 410~416면 참고.
43) 르원틴의 ꡔ변증법적 생물학자ꡕ, 192면.
44) 앞의 책 193면.
45) 그라햄의 책, 152면.
46) C.바알 로우편, ꡔ가이아로부터 이기적 유전자까지ꡕ, (런던, 엠아이티 출판사, 1994년판), 186면.
47) R.도킨스, ꡔ이기적 유전자ꡕ, (을유문화사, 1995년, 홍영랑 옮김).
48) F.바렐라와 L.뤼지, ꡔ구름다리ꡕ, (파리, 알벵미셸 출판사, 1995년), 299~302면.
49) 레닌, ꡔ칼 맑스와 그의 사상ꡕ(파리, 에디숑소시알 출판사, 1953년), 68면.
50) ꡔ한겨레ꡕ, 1999년 1월15일자.
51) ꡔ3권으로 된 레닌 선집ꡕ제1권 39면.
52) 필자와 동일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T.샤닌, “사회주의 문제 : 발전의 실패인가? 아니면 윤리의 실패인가?”, ꡔ역사 워크샵 저널ꡕ, 일자 미상, 69~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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