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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이원섭 칼럼 한겨레 신문 2000년 03월15일 ‘반탁’만이 최선이었나? 복잡한 사회현상을 한두마디 언어로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그것이 정치상황과 맞물리거나 정치적 목적이 게재돼 ‘구호화’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른바 ‘찬탁․반탁’이란 용어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해방정국에서 벌어졌던 ‘찬․반탁’ 논쟁은 민족의 운명에 영향을 끼친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이 논쟁은 조선을 신탁통치한다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미국․소련․영국) 결의에 대항해 우익세력과 국민 대부분이 궐기한 반면, 좌익세력은 소련의 지령에 따라 찬탁 주장을 편 것으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반탁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애국적 행동이고, 찬탁은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 매국노이고 빨갱이 세력쯤으로 등식화된다. 최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ꡒ모스크바에서 찬탁 반탁이 논의될 때 우리는 반탁을 주장했으나 찬탁을 한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이 (왼쪽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이런 자리에 있다ꡓ고 주장한 것은 이런 논리의 연장선 상에 있다. 의심을 받을만한 인사가 지레ꡒ나는 당시 반탁쪽이었다ꡓ고 손사래를 치는 모습에서 이런 인식은 더욱 굳어진다. 자칫하면 색깔론에 말려든다는 피해의식이 앞섰을 것이다. 김종필씨가 색깔론을 부추기려던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반탁만이 애국적’이었다는 고정인식을 굳히는 부차적 소득은 거둔 것같다. ‘모스크바 결의’ 거꾸로 알려져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반탁노선이 유일한 대안이었다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당시 어떤 선택이 가장 바람직했을까.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항은 조선을 독립국가로 재건설하며, 임시 민주주의정부를 세운다는 것이고, 둘째 항은 이를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소집한다는 것이며, 셋째 항은 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첫째 항을 중시하느냐, 셋째 항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대응은 차이가 났다. 우익쪽은 셋째 항에 무게중심을 두었고, 치열한 반탁투쟁을 벌인다. 이승만․김구를 필두로 우파들은 36년간 일제 지배를 받았는데, 또다시 이민족의 통치를 받아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박한 민족감정에 호소해 명분을 얻고 ‘찬탁’으로 돌아선 좌파에 공세를 취했다. 그 틈새에 전전긍긍하던 친일파들도 끼어들며 슬그머니 ‘반공투사’로 변신했다. 국민을 격분시킨 것은 모스크바 결의 내용이 국내에 잘못 알려진 탓도 크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제안했고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한 것으로 언론에 잘못 보도됐다. 그러나 사실은 5~10년의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미국이었고, 소련은 임시 민주정부 수립을 주장한 끝에 양쪽 주장을 절충했던 것이다. 이처럼 내용이 거꾸로 알려진 배경을 두고, 미국과 국내 극우세력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와중에 극단적 편가르기로 좌․우의 강경파에 힘이 쏠리며, 이른바 중간파․합작파들이 설 땅은 좁아졌다. 나름의 편차는 있지만, 중도우파로 불리는 김규식, 김병로, 안재홍 등이나 중도좌파로 분류되는 여운형, 백남운 등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신중하게 대처하자는 쪽이었다. 삼상회의 결의를 받아들여 우선 임시정부를 세운 뒤,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규합해 신탁통치를 막자는 주장을 폈다. 그리해야 민족 분열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좌우합작을 모색하고 미․소공동위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서중석 교수(성균관대)는 당시 상황을 ‘반탁 대 찬탁 논쟁’이 아니라 ‘반탁 대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 수용 논쟁’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반탁노선을 비판한다. 분단 막으려 한 중도파의 노력 역사에 가정은 없다. 미․소 냉전과 좌우익 대립 구도에서 중도파들의 주장대로 과연 통일정부 수립이 가능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제정세 흐름을 냉정하게 읽은 현실적 노선이었고, 그 뒤 전개된 분단역사는 이들의 논리가 이성적이었다는 평가를 낳는다. 찬탁․반탁 문제를 흑백논리로 보는 단선적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 반탁대열에 서지 않은 사람은 모두 매국노로 모는 것은 최소한 균형잡힌 시각은 아니다. 반세기가 지난 논쟁을 새삼 따지는 것은 ‘김종필 류’의 역사인식이 일방적으로 통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논설실장w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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