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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번 : [71호/컬럼] 10.25재보선 결과의 사회적 함의와 계급형성전략
글쓴이: 정병기 등록: 2001-11-10 00:00:00 조회: 1373

10.25 재보선 결과의 사회적 함의와 계급형성전략


정 병 기
연구부위원장





10월 25일 재․보선은 현 정권에 대한 평가 분위기가 무르익어 대선을 향한 시금석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점과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등 진보정당들의 정치활동이 또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일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이라는 3당 구도에서 전자가 갖는 의미는 제도 정치권의 지대한 관심거리였던 만큼, 결과에 대한 평가에서도 정치권과 주요 언론들의 핵심적인 분석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들은 투표와 대표의 공정성이라는 선거 본연의 기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승리의 잔이 누구에게 돌아갔는가에 한정된 평가들이다. 이미 그 무대에 들어서서 승리를 통한 권력의 쟁취만을 진리로 인정하는 정치꾼들과 그 악어새들에게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정한 대표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에게 이번 선거는 참으로 ‘슬픈 코미디’의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이 ‘코미디’의 한 켠에 함께 등장하여 ‘이것이 진정한 코미디입니까?’라고 외치며 기실 자신만은 진정한 코미디언이니 제발 한번 웃어달라고 호소하는 또 다른 코미디언도 있다. 이번 선거를 ‘코미디’라고 은유하는 것 자체가 악의 없는 웃음을 주려는 코미디언들에게 명예훼손이 될까 저어되기조차 한다.
이러한 ‘슬픈 코미디’를 두고 전혀 내키지 않는 마음을 추스리며 건조한 분석까지 아울러 그 면면을 둘러보기로 하자.


선거 결과와 또 하나의 ‘슬픈 코미디’
양대 정당의 구도에서 볼 때 이번 선거는 집권민주당의 참패와 한나라당의 반사적 승리로 끝이 났다. 중앙선관위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구로을에서 한나라당 이승철 후보가 49.4%를 얻어 42.7%를 획득한 민주당 김한길 후보를 눌렀다. 동대문을에서도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가 50.6%를 획득하여 44.7%를 얻은 민주당 허인회 후보를 제쳤다. 강릉의 선거에서도 역시 한나라당 최돈웅 후보가 41.4%를 얻어 33.0%를 받은 무소속 최욱철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자민련 후보는 서울 구로을에서 1.3%, 강릉에서 7.6%를 얻는데 그쳤으며, 특히 구로을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득표율에도 미치지 못했다.
개표결과에 대해 정치권은 호남표의 결집이 눈에 띄게 느슨해진 반면, 보수, 영남, 중산층, 장년층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표결집이 두드러졌다고 분석한다. 향배가 주목됐던 충청표의 상당수가 한나라당을 지지했으며, 애초에 30%대로 예상했던 투표참여율이 41.9%를 기록함으로써 미조직표들의 일부가 한나라당에게 유리하게 움직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서울에서의 선거결과는 민주당에게 치명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87, 92, 97년 대선은 물론 그 동안 수 차례의 총선 및 지방선거에서 ‘서울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번 선거가 치루어진 곳에서도 비록 지난 총선에서 패배를 맛보긴 했지만 그것은 매우 근소한 차이에 불과했었다.
한나라당은 선거결과를 두고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과 지역주의 해소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청년층의 참여가 저조했지만 그나마 민주당 지지가 많아 희망이 있다고 하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뒤가 구린 자신들의 정치행태를 위장하기 위해 ‘대화정치’를 촉구하고 있으며, 민주당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은 선거의 실패를 대권출마를 위한 포석으로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평가하기에 나서고 있다. 또 하나의 ‘슬픈 코미디’가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주의의 해소와 새로운 갈등구조
이번 선거결과가 현 정권에 대한 평가였다는 분석에 이의는 없다. 그러나 지역주의의 해소를 이번 선거의 긍정적 측면으로 묘사하는 것은 다른 진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소치이다. 한나라당은 이 나라 지역주의의 가해자가 영남이었다는 사실을 은폐하면서 호남표의 결집 약화와 자민련의 몰락만을 지역주의의 해소로 비약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청년층의 표심을 강조하며 애써 호남표 상실의 속쓰림을 감추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과거 선거에 비해 외견상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둔화된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을 떠난 호남표들이 한나라당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은 없으며, 추측컨대 이들은 식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투표불참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투표율이 41.9%에 불과했다는 것은 유권자들의 표심이 대부분 양대 정당에 대한 조직적 지지와 투표불참으로 삼분되었음을 의미한다. 유효득표의 약 95%가 양대 정당에 집중되었다는 것도 이를 증명하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물론 대안으로서의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부진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정치체제가 사회적 이해관계와 유리되고 경직된 정당구도가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올바로 대변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치혐오증과 정당혐오증이 한국에서도 기정사실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기적으로 체제의 경직성이 심화될수록 이러한 정치혐오증과 정당혐오증을 가진 유권자들은 필연적으로 반체제적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재․보선의 결과를 볼 때 자민련의 저조한 득표율을 무시한다면 전체 사회구성원들의 약 39.8%(41.9% x 95%)만이 현 정당체제를 지지하는 층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선거제도가 사표 방지심리가 작용하는 승자독식의 1구1인 다수대표제임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유추의 신빙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선거과정과 후보의 자질, 다 아는 이야기지만
말하고 싶지 않지만, ‘어 그래? 다 알어!’라고 허무하게 받아칠지라도, 한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대표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선거과정과 후보들의 자질이다.
한 달만에 논문 써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대천재 이승철,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 판정을 받은 당사자가 재출마하여 당선된 정치의 달인 최돈웅, 표적 수사의 간판 스타라는 자신의 전적을 한국의 ‘깨끗한 손’ 디 피에트로(Di Pietro)로 전환시킨 날랜 혀의 소유자 홍준표. 이들이 바로 우리가 뽑은 새로운 대표들의 모습이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총재 앞의 큰 절로 ‘살신성인의 퍼포먼스’를 펼쳤던 허인회 후보는 또 어떤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자못 궁금하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와 고발도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구로을의 한나라당 이승철 후보는 허위학위 사실과 김한길 후보에 대한 철새정치인 비방으로 고발당했고, 허인회 후보는 충청도로 출생지를 허위 기재한 혐의로, 그리고 김한길 후보는 상대방 이승철 후보의 학력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선거공보물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중앙선관위가 선거 과정에서 적발한 각종 불법 행위는 모두 75건으로, 고발 7건, 수사의뢰 14건, 경고 45건, 주의 7건, 이첩 2건에 이르렀다. 선거구별로 보면 강릉이 34건, 동대문을 24건, 구로을 17건 순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강릉을 예로 들어 “선거법위반행위 건수는 예년 선거 때보다 무려 4배나 높고, 지난 99년 3월 치러진 구로을 보선의 적발 건수(24건)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더욱이 이러한 폭로와 고발전은 중앙당의 대대적 지원유세로 희대의 혼탁선거를 결과했다. 이번 세 곳의 선거사무원으로 신고한 현역 의원은 구로을 173명, 동대문을 122명 및 강릉 79명으로 무려 374명에 이르렀다. 이중 두 곳에 중복 신고한 의원이 77명이었고, 세 곳에 신고한 의원만도 19명이나 되었다. 이를 다시 각 당별로 보면, 한나라당 114명, 민주당 113명, 자민련 11명이었다. 실제 238명의 현역 의원들이 국회의 민생을 나 몰라라 하며, 패거리들의 선거사무원으로서 종횡무진했던 셈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이번에 선거사무원으로 뛴 현역 의원은 전체 현역의원(270명)의 88%로 역대 선거 중 최고 기록”이라며, 이들이 과열․혼탁선거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구태여 길게 나열하여 강조했던 것은 혹여 아직도 이들을 바라보며 희망을 갖는 이들이 있을까하는 기우(?)에서이다. 진정 기우에 그친다면, 이들을 지지한 39.8%의 유권자들은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지배층의 구성원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 ‘슬픈 코미디’가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실제 코미디보다는 높은 시청률을 가진 셈이다.


진보정당들의 선거개입은 계급형성을 목표로
구로을에서 민주노동당은 2.6%를 얻었고, 사회당은 구로을과 동대문을에서 각각 2.7%와 1.8%를 획득하였다. 이를 두고 민주노동당은 양당구도를 타격하며 ‘민주노동당 중과부적’이라고 진단했고, 사회당은 2.7%의 구로을 득표율을 높이 평가하며 진보정당의 미래를 전망했다. 이러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노력은 분명 우리의 정치무대에도 다른 자리들이 허용된다는 것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허구보다 혐오스럽지만 더 심오하다. 60%에 가까운 잠재적 정치 혐오층들을 반체제적으로 조직하는 일은 허구적 코미디가 아니라 진정한 현실의 문제이다. 식상한 ‘코미디’에 출현하여 ‘진정한 코미디’를 연출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짜여진 판에 들어가 유권자로 동원된 사회구성원들을 두고 경쟁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중과부적의 대안은 무엇이며 득표율의 증감을 초월한 진보정당의 미래는 무엇인가? 계급으로 출발하였으되 짜여진 판 위에 올라가 다시 계급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을 다시 계급으로 묶어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계급의 이름으로 건설된 정당은 반드시 부르주아 선거판을 무시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르주아 정치질서에서 선거개입은 의회진입을 목표로 하거나 득표율 제고로 성공을 평가받으려 하기보다는 계급형성에 기여함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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