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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7번 : [74호/알림-소식] 천막농성을 정리하며 정리해고자 동지들에게 드리는 글
글쓴이: 산곡성당 피정의 집 농성자 일동 등록: 2002-02-15 00:00:00 조회: 1234

천막농성을 정리하며
정리해고자 동지들에게 드리는 글


2002년 2월 5일
산곡성당 피정의 집 농성자 일동



1,750명이나 되는 사상 초유의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전개하다 중무장한 전투경찰에 밀려 정든 일터를 뒤로 한채 이곳 산곡성당 피정의 집에 텐트농성을 시작한지 어느새 일년여!
성당에 걸었던 대형플랜카드의 색이 바랠 정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일년을 다 못 채운 오늘 우리는 농성 투쟁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텐트농성에 돌입한 이후 우리는 공장안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많은 사건들을 몸으로 부대끼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공장에서 밀려난 바로 그 다음날 전국의 노동자들이 부평으로 모여들고 급기야 김대중 정권 들어 최초로 화염병까지 등장하면서 공장 정문까지 진출하는 가슴 벅찬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국 노동자들의 연대로도 중무장한 전투경찰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공장이 정상화되는 날 우리 정리해고조합원을 중심으로 가족까지 포함하여 공장에 출근하고자 시도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정리해고자와 가족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발을 동동 굴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가슴속에 잊지 못할 사건으로 남아있는 것은 4월 10일 경찰의 폭력만행일 것입니다. 노동조합출입이 정당하다고 하는 법윈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자신들의 법조차 무시한 채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전혀 무방비 상태인 조합원들을 곤봉과 방패로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당한 후유증으로 인하여 아직도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조합원이 다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농성투쟁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전체 투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새롭게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하여 성당 농성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지금 일정정도 교착 상태에 빠져있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은 직대 체제를 중심으로 회사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특위 역시 노동조합을 거점으로 지속적으로 철농을 포함하여 강도 높은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지금 현재 우리의 주요한 거점은 이곳 성당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현장 내에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조합원들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정리해고 조합원 역시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실질적 행동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노동조합을 거점으로 현장의 조합원과 정리해고 조합원들이 하나로 뭉치고 투쟁하는 기풍을 세워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인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이곳 성당 지도부 역시 상징적 의미를 가질 뿐인 성당 농성을 더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곳 농성을 정리하고 될 수 있는 간부들은 가능한 빨리 조합원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복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곳 농성의 정리에 대하여 많은 정리해고 조합원들이 충분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정리해고자의 복직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도 얻어내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농성을 정리한다고 하는 것이 정리해고 투쟁까지 접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리해고 조합원들도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정리해고 투쟁을 더욱 완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곳 성당을 의지하기보다 오히려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과 어떻게 같이 하는 길을 찾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농성장을 세우고 그리고 정리하는 순간까지 끝까지 우리에게 관심과 노고를 기울여주신 천주교 측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농성투쟁을 정리하며(김혁)

‘퇴진 김대중 정권’이라는
플랜카드의 색이 바래고 너덜거리도록
흘러가버린 세월을 묻으며
우리는 오늘
또 하나의 결단을 내린다.

그동안 정들었던 텐트며 취사도구들
소일거리로 길러왔던 토끼, 닭, 고양이들
작지만 우리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족구코트 등

어찌 이뿐인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막일판을 전전하고
되지도 않을 싸움 때려치우라는
아내들의 푸념조차
소주 한 잔으로 집어삼키며
묵묵히 투쟁의 현장으로 나서야하는
정리해고자들의 절망에 가득찬
분노와 원성들

이 모든 것들을 잠시나마 털어버리고
성당을 나서고자 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체할 수 없도록
복받쳐흐르는 눈물은
투쟁을 접어야 하는
패배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십수년을 일해온 공장에서 쫒겨나고
그것도 모자라
벌거벗은 맨몸뚱이로
전경의 군화발과 방패에
무참하게 난타당해 찢겨가면서도
또다시 싸움터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서럽고 분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앞에 주어지는 것은
향기로 가득찬 꽃다발이 아니라
재판과 징역 속에
고난의 길이 연속될 수밖에 없는
푸른 월계관일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수많은 선배노동자들이
한번쯤은 다녀온 길
무수한 패배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싸울 수밖에 없다고 일깨워 준
투쟁의 길

그래서 우리가 이 곳 농성장을 정리하는 것은
투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출발일 뿐이다.
이미 올려진 정리해고 분쇄투쟁의 깃발이
대우자동차를 넘어 공공부문으로
그리고 가장 많은 착취 속에 허덕여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노동해방의 기나긴 여정에
끈질긴 투혼으로 불살라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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