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란 열사여, 고이 가소서
생산적 복지는 우리가 끝장내리다


한 진
보건복지민중연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책임지겠다고 호언하던 김대중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을 시행한 2000년 10월, 법이 시행되자마자 이전의 생활보호법 시행시보다 확 줄어버린 생계급여를 받아들고 비관한 수급자 두 명이 생활고를 비관, 자살하였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작년 12월, 같은 처지에서 생계를 위협받아왔던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수급자 한 명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녀가 바로 최옥란 열사이다.

“저는 저의 텐트농성을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수급자들이 자살하거나 저 같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
그녀가 농성을 시작하며 밝힌 결의문의 내용이다. 노점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그녀에게 정부는 기초법을 시행하면서 노점과 수급권 중에 하나를 택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기초법 시행원리가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칠 경우 그만큼을 국가에서 보충해주는 보충급여의 형태이며, 최저생계비 이상―1인 가구의 경우 33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급권과 노점운영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노점을 하면서 목디스크․방광염의 발병 등 지속적으로 건강이 악화된 데다, 의료보장과 더불어 기초법이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믿고 노점을 반납하고 수급권자가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국가에서 지급한 돈은 한 달에 단돈 28만원. 약값, 교통비, 임대아파트 관리비 등 월 63만원 정도가 필요한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액수였다. 그녀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관계부처에 계속 민원을 제기하였으나, 그때마다 듣는 대답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라는 말뿐이었다. 늘어나는 빚과 주변의 도움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결국 매서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2001년 12월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결의하게 된다.
그녀는 농성기간동안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 돈 가지고 살아보라며 11월 생계급여를 반납하기도 하고, 정부종합청사로 가는 길목을 전경들이 가로막자 눈물을 흘리며 시멘트 바닥에 눕기도 했다. 생계급여의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가 장애가구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헌법소원도 제기하였고, 때때로 이혼 후 양육권을 갖지 못해 만나지 못하는 아들이 보고싶다며 눈물짓기도 하였다.
농성은 제 진보세력의 연대와 언론의 집중으로 기초법의 문제를 알리는 데는 일면 성공하였다. 그러나 정작 최옥란씨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당장 달라질 현실이 아니기는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현실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몸의 병은 깊어지고, 빚은 쌓여만 갔다.
그녀는 아들의 양육권을 찾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였다. 보고 싶은 아들만 만날 수 있으면 현실의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인정받아야 했고, 현실은 그런 사정을 아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경제력을 인정받는다고 하여도 어처구니없는 재산기준 때문에 실제 소득은 없는데 수급권이 박탈되도록 되어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통장에 잔고를 채워 소송에 유리하고자 몸부림을 치던 중, 수급권자 재선정을 위해 재산조사를 하겠다는 동사무소의 고지서를 받아들던 날, 그녀는 무너지고 말았다.
더 이상 기초법 때문에 죽어 가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그녀가, 기초법의 독소조항을 없애기 위한 투쟁에 언제라도 함께 하겠다고 말하던 그녀가, 몇 개월 째 얼굴도 보지 못한 아들이 보고싶다고 말하던 그녀가, 그 날 밤 과산화수소 한 통과 수면제 2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였다. 그녀는 다행히 빨리 발견한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와 당장의 위험을 모면하고 한 달 동안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3월 26일 새벽, 끝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하고야 말았다.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다며 실제로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을 벼랑 아래로 내모는 생산적 복지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그렇게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녀를 죽인 것만으로도 모자라 더해진 경찰의 폭력만행, 과연 제정신인가?
도대체 그녀를 죽인 것이 누구인가? 그녀로 하여금 사랑하는 가족과 세상에서 살아갈 의지를 빼앗고 차마 입에 대기도 힘든 극약을 먹도록 만든 것이 누구란 말인가?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기만아래 민중들을 더욱 극한 현실로 몰아간 것이 바로 허울뿐인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정부가 아니던가?
그러나, 3월 28일 예정되어 있던 명동성당 앞에서의 노제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장례는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우리의 집시법은 관혼상제와 관련하여서는 아무런 제한조항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열사가 살아계실 때 투쟁의 정신이 서린 곳에서 노제와 장례를 치르겠다는 소박한 의지는 시위가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경찰의 말도 안 되는 주장 속에 불법감금과 폭행을 정당화시켰다. 유족과 장례위원이 경찰의 방패에 맞아 피가 터지고 이빨이 부러지는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경찰의 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8일의 경찰폭력만행을 규탄하는 29일의 기자회견 또한 마찬가지의 감금과 폭력으로 한바탕 연행과 폭력이 오간 뒤에야 그나마도 전경들에 둘러싸여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30일 민중대회장에 차려 놓은 분향소마저 침탈하여 이에 항의하는 장례위원을 폭행․연행하고 분향물품을 훼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권과 그들의 하수인인 경찰들은 그녀의 시신 앞에 눈물을 흘리고 사죄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장례행렬을 막아서고 유가족과 장례위원들에게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과연 제정신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도대체 어떻길래?
기초법은 국가의 대표적인 공공부조 정책으로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정책이다. 기초법 이전의 생활보호법이 시혜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현재의 기초법은 권리개념을 도입하여 ‘한국 사회 복지정책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기대를 불러모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수혜자의 명칭도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수급권자’로 바뀌었으며,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모든 저소득층 가구에게 국가가 의무적으로 생계를 보장하도록 되어있다.
이처럼 기초법은 IMF 이후 민중들의 삶은 바닥으로 치닫고, 불만은 하늘로 치솟자 새롭게 복지를 강화한다며 내놓은 정부의 회심작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취지에 있지 않고, 실질적으로 기초법을 지탱하고 있는 독소조항에 있다. 즉, 민중들의 실질적인 삶의 파탄과 늘어가는 불만에 대응해야 할 필요를 느끼면서도 정부와 자본의 가용량은 이러한 취지만큼 복지를 확대할만한 능력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선전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우위를 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이 표방한 법에 수많은 독소조항을 끼워놓음으로써 수급자의 수 및 생계급여의 수준을 관리하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수급자의 수 최소화하기: 엄격한 소득기준, 재산기준, 부양의무자 기준
보건복지부의 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 빈곤계층 규모는 370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엄격한 선정기준(소득평가액기준, 재산기준, 부양의무자기준 등)과 예산부족, 전문사회복지요원의 부족, 행정체제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현재 기초법의 수급자 규모는 151만명으로 전체인구의 3%정도 수준에 불과하며, 정부집계나 다름없는 보건사회연구원의 빈곤규모 370만명과 비교해보아도 41%에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2) 최저생계비 산출시 지역별․가구유형별 차이 인정되지 않음
기초법은 앞서도 서술했듯 최저생계비를 산출하고 소득이 거기에 못 미치는 가구의 부족분을 보전해주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상이면 아예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
이처럼 생계급여의 근거가 되는 최저생계비가 그야말로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나마도 중소도시 4인 표준가구를 기준으로 계측되어 있어 지역별․가구유형별 차이가 무시되어 있다. 지역적으로 볼 때 대도시의 경우는 농어촌, 중소도시에 비해 생활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가구유형별로도 노인가구, 아동가구 등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점도 문제이지만 특히 장애가구의 경우 평균 15만 7천원의 추가 생계비가 지출됨에도 불구하고(보건복지부 발표) 이러한 차이 또한 전혀 인정되고 있지 않다. (다만, 장애인 수당이라고 해서 1, 2급 중증장애인에게만 월 5만원의 장애인 수당이 나올 뿐이다.) 최옥란씨가 속한 경우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이러한 차이 불인정은 차이에 따른 생계급여가 더 나오지 않는 점과 함께, 이러한 추가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득활동을 할 경우 이 액수가 소득으로 잡혀 생계급여가 깎이거나 정부가 발표한 최저생계비 이상일 경우에는 아예 수급권자가 될 수 없는 모순의 원인이기도 하다.

3) 추정소득, 부양비 간주제 등으로 생계급여 깎기
1인가구의 현금급여액은 30만 6천원인 반면 실제 급여로 받는 금액은 평균 12만원 정도이고, 4인가구 현금급여액은 99만원이지만 실제 평균적으로 35만원 정도만 지급되고 있다. 이렇게 실제 지급되는 현금급여액이 낮은 것은 신고한 소득 이외에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를 소득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여 추정소득을 부과하고, 부양능력이 미약한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비를 일정비율로 계산하여 실제로 받는 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부양비를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법이 시행되면서 생계급여가 줄어드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생계급여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4) 현실성 없는 교육/주거/의료급여
교육급여의 경우 고등학교까지는 무상으로 다닐 수 있지만, 대학등록금은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 또한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행위가 소득으로 잡혀 이 또한 생계급여를 깎는 원인이 되거나, 아예 수급자에서 탈락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가난하면 대학도 가지 못하며 가난을 세습하는 기제로 작용되고 있다.
의료급여는 1종의 경우 의료비용이 무료이고, 2종의 경우 일부를 부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 건강보험상의 비급여 항목―MRI나 초음파 등―은 똑같이 비급여이기 때문에 실제 본인부담율이 30～50%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
주거급여는 1인 가구의 경우 2만 3천원으로 일상적 주거는커녕 쪽방 임대료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명목뿐인 교육/주거/의료급여로 오히려 민중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두회견을 통해 “기다리는 복지가 아니라 찾아가서 도와주는 복지”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기초생활 보장을 위해 155만명에게 4인가족 99만원을 지원하며 1,700명의 사회복지요원을 추가지원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정수급자를 막고 사각지대를 좁히기 위하여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다 정교히 다듬어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밖에 중산층 서민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전세자금을 70%까지 장기저리로 융자해서 내 집 마련을 돕고, 소비자 물가를 3%내외에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실업률도 3%대로 억제하며 약 5,000억원 예산을 가지고 30만명 대상의 적극적인 실업대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복지정책의 경우 새로운 계획을 제시했다기보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대표되는 성과를 강조하며 보다 안정적이고 정교한 운영을 위한 사회복지요원의 추가를 통해 ‘찾아가는 복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내용을 보면 최저생계비가 3% 인상되어 4인가족 99만원으로 인상되었다고는 하나 2002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작년 예산대비 162억원 정도가 삭감된 금액이다. 여기에 작년 생계급여 예비비 450억을 포함시키면 올해는 610억원이 삭감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생계급여 인상이라는 허울 속에 여전히 독소조항이라 지적되었던 추정소득이나 부양자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즉 기초법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우위는 선점하면서도 실질적 운영과정에서 딴지를 걸어왔던 정부의 행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생색만 내는 정부의 이데올로기에 파열을 내고 빈곤한 이들의 실질적인 생존권을 쟁취해내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과제이다.


열사여, 고이 가소서. 님의 뜻은 남은 우리가 이루어내리다
정권은 열사를 죽인 것이 자신들임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자신들의 치부가 더 드러나기 전에 온갖 상식 외의 만행을 저질러가며 갖은 폭력과 탄압으로 찍어누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열사에게 제대로 된 노제도 장례식도 치러주지 못했다. 살아서도 전동휠체어에 이동을 의존하고 그나마도 턱이 있으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그녀는 죽어서 가는 길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위한 사이버 추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http://okran.jinbo.net). 이 공간에서는 분향과 헌화를 할 수 있고 추모글을 남기고 항의메일을 보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란다.
그리고 최옥란 열사가 작년 농성 중에 냈던 최저생계비 산출시 장애가구유형 인정을 위한 헌법소원이 현재 주체의 사망으로 인해 소실되어있는 상태이다. 남은 우리는 이러한 헌법소원을 다시 냄으로써 열사는 돌아가셨지만, 그 뜻은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작년 12월 명동성당의 농성이 끝난 후에 기초법에 대한 대응을 지속적으로 해내고자 ‘민중복지쟁취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독소조항 폐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준비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이를 준비모임에서 정식 공투본으로 발족시키고 최옥란 열사가 그토록 바랬던 기초법 독소조항 폐지, 그리고 기만적인 생산적 복지를 끝장내기 위한 지속적인 행보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열사여, 고이 가소서. 훗날 장애해방․민중복지가 이루어진 그 날에 부디 부활하소서.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