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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번 : [21호/권두언] 기로에 선 한국 노동운동
글쓴이: 김세균 등록: 1997-05-01 00:00:00 조회: 1466

권두언




기로에 선 한국 노동운동




김 세 균(소장)




작년 연말에 이루어진 노동관계법의 날치기 통과는 총독점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가 노동에 대해 가한 대대적인 ‘신자유주의적 공세’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자본운동의 ‘세계화-지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조건 속에서 세계시장에서 한국 독점자본의 국제경쟁력을 노동자-민중의 대대적인 희생을 통해 강화하려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새로운 반동적 공세였다. 이 공세는 무엇보다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 , 노조 활동의 기업으로의 종속 및 노동자-민중정치의 봉쇄 등을 겨냥하는 것이었으며, 한국에서는 동시에, 안기부법의 개악 등에서 나타나다시피, 다시 강화되기 시작한 전래의 파시즘적 억압책에 의해 뒷받침받는 것이었다.
노동관계법의 날치기통과 등은 그러나 노동자대중의 유례없는 광범한 저항 및 사회 각계, 각층의 폭넓은 연대투쟁을 불러 일으켰다.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노동자대중의 역동성이 용솟음쳐 올랐으며,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이로 인해 김영삼 정권은 출범이래 최초로 심대한 통치위기에 부딪쳤으며, 사태 수습을 위해 그 오만함을 수구려 뜨린 채 허둥대지 않으면 안되는 궁지에 내몰렸다. 이로써 전세계적 수준에서 이미 가해지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가장 강도 높은 형태로 한꺼번에 몰아닥친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한국에서 또한 가장 강도 높은 저항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그러한 공세를 결정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천혜의 기회 역시 (제반 요인들의 상승작용에 힘입어) 한국의 노동자계급에게 주어졌다. 그렇지만, 이번 투쟁은 김영삼 정권을 궁지로 내몰고, ‘민주노총의 합법화’라는 실질적으로는 이미 확보하고 있었던 것을 법적으로 재확보하는 성과를 가져오는 데에 그치고, 자본의 반동적인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저지해 내는 데에는 별달리 공헌하지 못했다.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모든 역량을 총집결하여 투쟁의 수위를 최고조로 올려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내부동력의 소진, ‘국민적 지지’의 확보 등을 명분으로 ‘파업투쟁 철회’를 결정한 것에 크게 기인했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국가와 자본에 의해 벼랑 끝으로 내몰림으로써 노동자대중에게 총파업투쟁에 나서도록 촉구했지만, 국가와 자본이 조그마한 양보라도 행한다면 투쟁을 기꺼이 철회시킬 용의를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총파업투쟁의 경과와 지도노선 등은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철저히 분석되고 옳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번의 노동자 총파업투쟁과 관련하여 다음의 한가지 사실 만은 정확히 확인하고 넘어가자. : ‘이번의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그 투쟁 자체가 지닌 심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저지하는 데에 실패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투쟁의 수혜자가 되었지만, 노동자대중 전체는 심대한 피해자가 되었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에 뒤이어 ‘한보사건’과 ‘현철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사건들은 노동자 총파업투쟁과 국민적 연대투쟁에 이어 김영삼 정권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결정적 타격을 가하고, 김영삼 정권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었다. 또한 제도권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수구-보수정치’ 전체가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독점재벌들과, 정치자금의 취득과 이권 청탁을 고리로 하여 견고히 유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폭넓게 폭로됨으로써 ‘수구-보수정치’ 전반으로부터 국민대중의 이탈을 크게 촉진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대권주자들 간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간의 경쟁은 점차 대권 장악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이런 저런 보수들 간의 권력 암투로 변질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정치인들에게도 보수정치가 대국민적 헤게모니를 계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려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폭넓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수구-보수세력들 내부의 힘관계가 개혁세력만의 집결을 통한 정권 창출을 불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보수정치가 행할 수 있는 개혁의 폭과 심도는 극도로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설령 앞으로 개혁적 보수정치가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다고 할지라도, 그 정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일정하게 부드러운 것으로 변화시키고 (부정부패 구조와 비리 구조의 타파 등을 통해) 그 공세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무마시킬 외적 조건들을 창출하는 데에 기여할지 모르지만, 그 공세에 본질적인 제한을 가하는 정책은 결코 추진해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운동의 ‘세계화-지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 속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앞장서서 뒷받침하는 것이 다름 아닌 바로 보수정치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총파업투쟁과 이에 연대하는 각계 각층의 투쟁이 폭발하고, 국민대중이 수구-보수정치로부터 광범위하게 이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구-보수정치를 대체하고 사회적 관계 전반의 민주변혁을 추진해 나갈 새로운 노동자-민중 정치는 아직 힘차게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의 노동자 총파업투쟁과 각계 각층의 연대투쟁은 그러한 새로운 정치를 창출하고 발전시킬 위대한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조 진영은 새로운 정치를 창출하고 그 정치를 발전시키는 주역으로 나서는 데에서 뒷걸음질쳤으며,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등을 명분으로 하여 (수구적 보수정치에 의해서는 수용될 수 없을지라도) 보수적 개혁정치에 의해서는 수용될 수 있는 사회개혁안을 사회발전의 노동자적 대안인 양 내세우는 수준으로 운동의 목표를 낮추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경쟁의 원리’를 대체하는 ‘연대의 원리’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기 보다는, ‘경쟁력의 강화를 위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현 시기에 진척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대안인 양 간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자본이 24시간을 바쳐 고안, 추진하고 있는 ‘생산성 향상운동’이 노동자계급에게 안겨주는 피해와 결연하게 맞서려 하기 보다는, 그 운동에 협조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을 안겨준다는 논리가 ‘경제살리기’ 등의 명분으로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에 호응하면서 함께 싸우기 위해 노력한 세력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려 하기 보다는 그들과의 관계를 투쟁 이전의 상태로 복원시키려는 움직임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미 민주노총이 건설된 시점부터 체제내화의 길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자본지배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적 사회-정치 세력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처해 있었다. 노동관계법의 날치기 통과와 이를 이은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그 선택을 후일의 문제로 연기시키는 효과를 산출했다. 그렇지만, 민주노총의 합법화가 이루어진 현 시기에 이르러 그 선택은 이제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현실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한 선택의 시금석이 되는 문제는 현 시기에 가해지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는 투쟁을 얼마만큼 총체적으로, 그리고 얼마만큼 조직적으로 전개해 나가느냐에, 그리고 그러한 공세로 말미암아 피해를 당하고 있는 모든 근로대중의 이익을 얼마만큼 확고하게 대변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조 진영에게 주어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배블럭’에 대항하는 강고한 ‘노동자-민중블럭’을 창출해 내고, 이에 기초하여 신자유주의적 정치로 합쳐지고 있는 수구-보수정치에 대항하는 새로운 노동자-민중정치를 활성화시켜 내는 일이다. 올 해의 임단투 투쟁은 그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일차적 관문이 될 것이며, 다가오는 대선은 그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는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 가운데에서만 동터 오를 수 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모든 수준, 모든 측면에서 굳건하게 맞서자. 그리고 이러한 모든 맞섬을 보수정치에 대한 노동자-민중정치의 독자성 확보로 집결시켜 내는 작업에 우리 모두 힘을 합치자.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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