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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5번 : [49호/컬럼] 노동과 환경정의 |
| 글쓴이: 최병두 |
등록: 1999-11-10 00:00:00 |
조회: 1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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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환경정의
최 병 두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이렇게 본다
노동과 환경정의
현대사회와 환경문제
오늘날 환경문제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그리고 생활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는 얼마전 한
신문(한겨레, 1999.10.15)의 ‘20세기 20대 사건’에 관한 의식
조사에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비록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1위로 선정했지만, 일반
네티즌들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1위로 선정했다.
즉, 일반 시민들은 4천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양산했던 2차
세계대전보다도 1천6백 명 정도 희생자를 내었던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가 더 위험하며, 특히 미래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문제와 이로 인한 피해
의식에 근거하여, 흔히 현대사회는 생태적으로 ‘위험사회’로
지칭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형 사고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환경문제로
인해 항상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의 주변 환경에서
발생하는 자연의 파괴나 자원의 고갈 또는 물, 흙, 공기 등의
오염이나 쓰레기, 악취, 소음 등은 어디서나 겪게 되는, 그리고
언제나 듣게 되는 일상적 문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역적 문제들이 누적되고 확산됨에 따라, 환경문제는 이제
전지구적 문제로 확대되었으며, 전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문제는 흔히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 즉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이에 대처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환경문제에 대처하고자 하는 노력은 현대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요구되고 있다. 즉 노동자, 농부, 주부,
학생, 누구 할 것 없이 모든 시민들이 각자 자신의 직장에서,
들판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환경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예로, 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장 환경의 열악성과 이로
인해 발생할 있는 신체적 피해와 안전사고 등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작업장과 그 주변의 환경을 청결히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요청되고 있다. 즉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노동자들도 당연히
환경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환경운동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환경문제는 단순히 자연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칭하거나,
자신의 작업환경을 청결하게 하는 정도의 의미 이상의 어떤 것을
함의하고 있다.
자본축적과 환경문제
노동자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보다 큰 이유는
최소한 2 가지이다. 하나는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환경문제가
노동과 일정한 대립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자본에 의해
추동되는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도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자연환경에
일정한 힘을 가하여 유용한 자원을 얻었으며, 이를 사용한 후
남게 되는 쓰레기들을 자연환경에 버렸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도
환경문제가 있었겠지만, 이는 대체로 일시적이었고,
국지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환경문제가 이와 같이 심화되고 만연하게 된 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가치 증식과정이 부단한
확대재생산을
이렇게 본다
노동과
환경정의
요구했으며, 이러한 확대재생산 과정은 점점 더 많은 자원의
투입과 폐기물의 배출을 가져왔다. 특히 지난 수십 년 간
자본주의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대량생산․대량소비체제는 말 그대로 자연환경으로부터 더
많은 자원을 생산하여 더 많은 상품들을 소비하는 경제체제였다.
이 과정에서 원료 및 에너지원으로 엄청난 자원들이
소모되었으며, 상품의 생산 및 소비과정에서 점점 더 많은
오염물질들이 배출 ․누적․확산되게 되었다.
최근 선진국들은 첨단기술산업의 발전을 통해 기존의 축적체제를
벗어나서 이른바 유연적 축적체제, 또는 다품종소량생산체제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자국내 환경문제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보다 최근의 중국과
같이 개발도상국은 이들로부터 이전된 공해산업에 바탕을 두고,
국내 노동과 환경의 희생을 무릅쓰고 경제성장을 촉진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편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환경문제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는 어떤 모순적 상황, 즉 지난 성장과정에서
유발․심화된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이 앞으로 더 많은
자원 이용과 오염물질의 배출을 필요로 하는 확대재생산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도록 하는 상황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토지나 수자원의 부족과 같은 자원
고갈 및 물, 공기, 토양, 폐기물 오염 등으로 일상생활에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는
자신의 자본 축적을 지속하기 위해 오히려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자원 이용과 오염물질의 배출조차 제약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이러한 상황을 유발한 자본축적 과정, 즉 노동과 자연의
희생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반(反)자본운동으로서 환경운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운동에서 당연히 더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소외된 노동과 환경문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환경문제가 노동과 관련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소 철학적이지만 보다 직접적이다. 환경문제는 단순히
자연환경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현상적 문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환경문제는 자연 파괴, 자원 고갈, 또는 환경오염 그
자체를 능가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유발하는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의 구조에 내재된 문제들도 포함한다. 이러한 점에서,
환경문제는 자연환경에 미치는 인간사회의 문제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자연환경과 인간사회 간 관계에 내재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연환경과 인간사회 간 관계에 내재된 문제라는 환경문제의
정의는 다소 모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즉
우리가 노동의 개념을 도입하게 되면, 이러한 환경문제의 정의에
내재된 모호성이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자연환경과 인간사회
간 관계를 매개하는 것이 노동이고, 환경문제란 결국 노동의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오늘날 환경문제는
자본에 의해 강제된 노동, 즉 소외된 노동에 의해 인간과 자연이
매개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소외된 노동의 문제는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자본축적의 문제와 연결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자신의 통제하에서 자신의 기본 욕구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한히 확대재생산을 요구하는 자본의
축적을 위해 추동된다. 환경문제는 바로 이러한 소외된 노동의
생산과정에 의해 자연 환경이 무분별하게 개발됨에 따라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은 현란한 광고와 선전에 의해 자극된 과소비에 의해
이루어지며, 대도시의 고층아파트와 같이 생활공간 자체가
상품화됨에 따라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의 탈소외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환경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된다. 사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외적 자연에 행동을 가하고 이를 변형시키면서 또한 동시에
그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켜 나간다. 진정한 노동은 단순히 자연
세계의 물질을 자원화 하여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나아가, 자연적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역량을 실현시킴으로써
자아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환경운동이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이른바 생명운동이며 인간성 회복운동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 기인하며,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환경운동은
탈소외운동이어야 할 것이다.
환경정의를 위하여
환경운동, 특히 노동자들이 전개하고자 하는 환경운동은
반자본운동이면서 또한 동시에 탈소외운동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지향하여야 할 규범은 환경정의라고 할 수 있다.
환경정의는 환경에 관한 논의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는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며, 최근 기존 시민단체에서 분리 독립한 한
환경단체의 이름도 환경정의를 지칭하고 있다. 물론
환경정의라는 개념은 우리 나라에서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도입된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가 유엔을 뒷받침하는 서구 엘리트들에 의해 제시된
것이라면, ‘환경정의’는 서구의 실천 활동가들, 특히 미국에서
흑인과 소수인종의 공동체운동가들에 의해 제안된 것이다.
환경정의는 우선 노동에 의해 생산된 자원의 정의로운 배분과
관련된다. 분배적 정의로서 환경정의는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에 의한 차등적 피해, 나아가 이러한
피해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의 차별성, 공해유발시설의 지리적
입지의 불균등 등의 극복을 전제로 한다. 환경문제의
사회․공간적 불평등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자원환경문제가 특정한 계층이나 지역의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전가되도록 하며, 이로 인해 심각한 사회공간적 부정의를
초래하게 된다. 환경문제의 해결은 바로 이러한 분배적 불평등의
해소에서 출발해야 한다.
환경정의는 또한 노동에 의한 자원의 생산 과정 그 자체와
관련된다. 생산적 정의로서 환경정의는 인간과 환경 간의
정의로운 관계, 즉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의 극복, 그리고
소외되지 않은 노동에 의한 매개를 전제로 한다. 서구
물질문명의 발전과정, 특히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 과정은 인간
사회의 물질적 편익 또는 자본 축적을 위한 자연의 정복
과정이었지만, 실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황폐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자신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강제되지 아니한 노동,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회복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러한 참된 노동을 통한 필요 충족과 자아 실현은
환경정의에서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환경정의는 인간들 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의
상호승인을 필요로 한다. 승인적 정의로서 환경정의는 흔히
노동이 물질적 생산과 분배라는 점으로 이해되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즉 환경정의는 한편으로 자연과 인간
간의 관계를 매개하면서 동시에 인간 주체 간의 관계도 매개하는
노동,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매개 대상물 간의 상호승인, 즉
자연(특히 생명)에 대한 인간의 애정 어린 배려와 인간 상호간에
존경과 신뢰 (즉 공생)를 전제로 한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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