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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번 : [33호/노동자세상] 1998년 철도노동조합 선거투쟁평가
글쓴이: 이철의 등록: 1998-06-01 00:00:00 조회: 1666


지금 현장은


기존의 「현장통신」란을 「지금 현장은」으로 변경했다. 변경의 주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현장통신이라는 명칭이 마치 반드시 현장에서 보내온 글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과 좀더 편안한 표현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호 「지금 현장은」에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첫째 글은, 50년 어용의 철옹성을 허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무언가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철도노조의 98년 지방본부선거 평가를 실었다. 매우 솔직한 평가여서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공개를 결정한 철도노민추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두번째 글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더욱 공세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자동차 4사 신경영전략의 내용과 노조의 대응을 실었다.


지금 현장은 1
1998년 철도노동조합 선거투쟁평가



이 철 의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 서울지역 위원회 의장





1998년 철도노동조합 총선거가 마무리되었다. 4월 27일 열린 서울지방본부 정기 대의원 대회에서 민주파는 권춘식 범민주연합 후보를 위원장으로 당선시키고 조합파견 대의원 27석중 24석을 얻었다. 또 5월 22일 열린 철도노동조합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규약개정안을 상정하여 재적 대의원 93석중 32석에 이르는 찬성표를 얻었다. 하지만 선거과정을 돌이켜 볼 때 당초 노민추에서 선거투쟁의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던 ‘대중투쟁의 기반 확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제 선거투쟁을 마무리하고 일상 활동을 강화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해야 할 시기라고 판단한다.


1. 평가 기준

평가 기준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처음 정했던 목표에 다다랐는가?
- 조합원에게 다가가는 선거운동을 하였는가?
- 범민주연합 진영내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였는가?
- 노민추는 처음에 가졌던 선거방침을 제대로 실천하였는가?


2. 과정

1) 민주 선거대책본부의 발족과 지부 선거

철도노조의 어용집행부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은 98년 노조 총선거를 맞아 선거 관리규정을 개정하였다. 부산, 서울지방본부 등에서 범민주 세력의 강력한 도전을 받을 것을 의식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4월중 열기로 규정되어 있던 지방본부 대의원 대회가 3~4월중 여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철도내 민주파는 선거운동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선거전에 뛰어들어야 했다.
민주파는 처음부터 불리한 조건을 안고 선거전을 치르게 되었다. 조직, 자금, 정책 등 선거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도 할 시간이 부족했다. 따라서 전부터 선거 준비를 해 왔던 지부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길밖에 없었다. 결국 민주파는 철도현장에 민주노조운동의 대중적인 기운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하였다.
서울지역 노민추는 지역내 민주파 각지부 및 민주노조 운동 조직들과 의논하여 ‘민주선거대책본부’를 만들었다. 이 민주선거대책본부에 철도노민추, 철도발전연구회, 운수분야 활성화 추진모임 등 서울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조직들이 참여했다. 각지부 지부장들이나 간부들은 자기 지부 선거에 바빠 선거대책본부에 처음부터 참여하지는 못했다.
부산지역 노민추가 부산지방본부 선거에서 실패하자 서울지방본부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서울 기관차 사무소 지부 선거에서 민주파는 힘겹게 이겼다. 서울 열차사무소 지부는 몇 표의 차이로 실패하였다. 청량리 객화차 사무소 지부에서 세 번에 걸친 실패 끝에 민주파가 승리했다. 새로 생긴 일산 전동차 지부도 민주파 지부장이 당선되었다. 노민추는 선거전이 치열한 몇 개의 지부에 정책지원 및 자금지원을 비롯하여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였다.
서울지방본부에서 나타난 지부 선거 결과를 보면 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새로 얻은 곳은 청량리 객화차 사무소와 일산 전동차 지부 등 두 곳이고, 원래 지키고 있던 지부들은 모두 이겼다. 결국 서울지방본부 소속 지부중 조합원이 모여 일하는 13개 지부 가운데 12개 지부가 범민주연합에 들어왔다. 수원역 지부와 영등포역 연합지부는 사고지부로 되어 지방본부 위원장 선거를 준비하던 민주파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수원역 지부는 대의원 3석을 모두 민주파가 차지하였지만 지방본부 위원장 선거 하루 전에 사고지부로 처리되었다. 이외근 서울지방본부 위원장은 자신이 의장을 맡아 진행했던 대회를 무효선언하는 등 마지막까지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2) 권춘식 범민주연합 후보의 선출과 선거대책본부의 발족

현장 각지부의 선거 결과 민주파는 39석 남짓한 대의원을 얻었다. 서울지방본부 재적 대의원 수가 83석이었으므로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였다. 하지만 수원역 연합 지부와 영등포역 연합 지부가 사고 처리되었으므로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대의원은 78명에 불과했다. 어용세력 또한 과반수를 넘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서울 열차 사무소 선거에서 민주파가 실패하자 노민추는 가장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후보를 추대하고자 했던 계획을 바꿨다. 독자적으로 과반수를 넘을 수 없는 조건에서 민주파 위원장을 당선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부 선거가 끝났을 때 노민추는 총회를 열어 지방본부 위원장 후보 선거방침을 정했다. 그때 노민추는 이렇게 판단했다. 간선제로 위원장을 뽑는 올해 선거에서 가장 올바른 생각을 가진 후보는 가장 득표력이 없다. 적어도 올해 철도의 선거판이 그렇다. 94년 파업투쟁 이래 민주파는 철도청과 어용집행부의 탄압에 계속 당하기만 했다. 많은 간부와 활동가들이 “올해 선거만큼은 좀 이겼으면, 그래서 작은 활동으로 제명 당하는 일이라도 없었으면...”하고 생각하고 있다. 철도 노민추의 범민주연합 전술은 그런 조건을 생각하며 결정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조건이길래 가장 올바르고 원칙을 가진 후보를 포기하여야 하는가?
철도노동조합은 3층 간선제로 위원장을 선출한다. 조합원들은 지부 대의원을 뽑으면 다시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그 다음부터는 모두 대의원들이 상급 대의원과 임원을 선출한다. 지부 대의원들이 지부장을 뽑고, 다시 지방본부 파견 대의원을 뽑는다. 지방본부 대의원들이 지방본부 위원장을 뽑고 조합파견 대의원을 뽑는다. 조합파견 대의원들이 비로소 위원장을 선출하는 제도, 이것이 바로 철도노조 민주화를 가로막는 3층 간선제이다.
3월 23일 민주선거대책본부는 지방본부 위원장 후보 결정을 위해 지방본부 파견대의원 총회를 소집하였다. 범민주연합 진영내에서 그다지 신임을 얻지 못한 두명의 후보, 즉 권춘식 안산 전동차 지부장과 한상윤 분당 전동차 지부장 중 한명이 이날 총회에서 단일 후보로 추대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구로성당에서 모인 범민주 지방본부 파견대의원 총회에서 범민주 선거대책본부 집행위원들은 한상윤 후보쪽 사람들에게 집중적인 비판을 당한후 총사퇴했다. 집행위원중 한사람이 사석에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 후보가 사퇴하라.”고 권했던 사실을 들어 불공정한 경선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경선을 해서 후보를 결정하려던 방침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상윤 후보가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경선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고 선거에서 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대의원들은 두 후보가 합의해서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자정을 넘기며 벌인 협상에서 한상윤 후보가 사퇴했고 권춘식 안산 전동차 지부장이 단일 후보로 결정되었다.

3) 선거는 승리하였다. 그러나...

선거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어용 기득권 세력은 승산이 적어서인지 우왕좌왕했고 후보조정이 되지 않아 자기들끼리 다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마침내 강종월 전 서울기관차 지부장이 집행부측 후보로 결정되었다. 이때부터 선거전은 옛날 어용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자기쪽 대의원은 굳히고 상대쪽 대의원을 자리나 술자리로 공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조합원들에게 유인물을 뿌리는 등 공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자는 주장은 “조직징계에 악용될 수 있고 선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묵살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노민추를 비롯한 범민주 진영은 선거공약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공약은 ‘직선제 규약개정, 해고자 원직복직, 노동조건 개악저지’ 등 3가지로 정하였으며 위원장 후보는 여러 차례 공약을 성실히 실천하겠노라고 다짐했다.
4월 23일 ‘서울지방본부 활성화를 위한 조합원 토론회’를 이촌동 농업진흥회관에서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노민추 등 민주진영이 하려고 했던 사업중에서 유일하게 관철된 것이었다. 하지만 토론회의 명칭에서 보여지듯이 간선제라는 조건과 조직 징계를 의식하여 조심스럽게 진행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선거 이틀 전인 4월 25일 민주파로 분류했던 수원역 연합지부 대의원 대회가 무효 처리되어 범민주 진영은 확보했던 대의원 3석을 잃게 되었다. 범민주 진영을 흔들고 과반수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저지른 이 치졸하기 짝이 없는 사건으로 범민주 진영은 이제 자력으로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범민주 진영은 어용 기득권 세력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즉 상무집행위원의 대부분을 입도선매하는 방식으로 지지할 기득권 세력에게 주었으며, 앞으로 직선제 투쟁 과정에서 중요한 무기로 활용하려 했던 본조 파견대의원까지 양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거 전날 범민주 진영 파견 대의원들은 강남에 있는 올림픽 파크텔에서 합숙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날 밤 범민주 연합 내부에서 조합파견 대의원 배정과정을 둘러싸고 심각한 다툼이 일어났다. 큰소리가 오고 가는 등 소란스러운 분위기속에서 대의원들은 범민주 연합이 앞으로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하며 뒤숭숭한 기분으로 밤을 보냈다.
4월 27일 조합 강당에서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권춘식 후보는 41 : 37로 강종월 후보를 따돌리고 서울지방본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상집위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민주파 내부에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42명의 자파 대의원들이 투표를 하였음에도 한차례 부결처리가 되었으며 조합파견대의원 선거에서 또 한차례 부결 처리되는 진통을 겪었다. 이과정에서 노민추는 조직분란의 당사자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상집위원 53석중 합숙에 합류한 기득권 세력들인 서울역 연합지부로 19석이 배정되고 도중에 합류한 분당․과천선 연합지부, 영등포역 연합지부 등 기득권 세력에게 대부분이 배정되었다. 조합파견 대의원 배정도 서울역 연합지부, 수원역 연합지부, 분당․과천선 연합지부 등 3명의 기득권 인사에게 나누어주었다.

4) 앉아서 적에게 모든 것을 내주다

대의원대회 이후 서울지방본부 전임 간부 인선과정에서 권춘식 범민주연합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하였다. 기득권 세력 2명이 전임간부에 유임된 것을 비롯해 나머지 6명을 범민주연합 내에서 배정한 1차 인선안은 곧바로 뒤집혔다. 인선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몇몇 사람이 인선했다.”는 이유로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인선안을 바꾸는 과정에서 폭로한 이른바 ‘합의서’ 사건으로 말미암아 범민주연합은 완전히 사분오열되었다. 이 ‘합의서’는 범민주연합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권춘식, 한상윤 두 후보와 세사람의 참관인이 서명한 것이었다. 내용은 치졸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조합 파견대의원과 상집위원의 인선, 전임간부 인선안, 공탁금 문제 등 누가 보아도 ‘이런 식으로 해도 범민주연합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는가?’하는 의심이 들만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민추는 폭로자들이 성명서를 함께 내자고 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어쨌든 폭로한 측의 요구로 인선안을 바꾸자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조직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물론 이를 무기로 협박하여 인선안을 뒤집은 것은 철도 민주노조운동에서 있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새로 인선한 간부를 배제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노민추는 이과정에서 공동 성명서를 내어 비판하자는 제안을 “선거과정에서 저지른 많은 잘못 중에서 합의서 사건만 확대하는 것은 잘못이며 범민주연합내의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노민추는 처음부터 조합원과 함께 하지 못한 선거운동이 결국 “자리에 욕심을 내어 진흙탕에서 개싸움을 하는 꼴”인데 거기에 함께 할 수 없었다. 또 인선에서 소외당한 쪽이 어용조합에게 징계요청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민추는 합의서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노민추 회원들은 “노민추는 범민주연합 내에서 가장 원칙을 관철하고자 노력했고 기풍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합의서 사건으로 조직은 물론 회원들의 자부심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노민추는 서울지역 총회를 열어 합의서 사건에 관계한 의장이 사퇴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진통을 겪어야 했다.
조합대회를 앞두고 모인 조합파견 대의원 총회에서 합의서 사건으로 충돌한 양측은 몸싸움과 욕설을 하는 등 극단적인 대립을 드러냈다. 합의서 사건으로 공격을 당한 사람들은 “5~6명의 인사들이 자신들의 세력 확대를 위해 집행부 인선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였다.”고 또다시 폭로한 것이다.
결국 조합대회를 앞두고 서울지방본부는 아무런 방침을 내올 수 없었고 ‘취약해진 기득권 세력을 전혀 괴롭히지 못하고 앉아서 적에게 모든 것을 내주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노민추는 직선제 규약개정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배포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가만히 있으면 직선제 규약개정을 할 수도 있었는데 유인물을 뿌려 중앙위원들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결국 5월 27일 열린 철도노조 정기대의원대회는 서울지방본부에서 상정한 직선제 규약개정안의 안건채택 여부를 놓고 표결처리하여 93명의 대의원중 60명의 반대로 부결처리하고 막을 내렸다. 노민추는 그동안 유인물 배포 등의 노력으로 서울지역 외에 순천 지역에서 5명의 대의원이 직선제 안에 가세했다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이제 선거대책본부에 참여했던 범민주 진영의 활동가들에게는 권춘식 서울지방본부 집행부와 어떤 관계로 활동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또한 지부활동에서 이전처럼 조직징계의 위협에서 벗어나 활동공간이 확대된 것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지방본부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3. 성과

당초 노민추는 범민주연합후보 전술을 채택하며 다음과 같이 목표를 결정하였다.
- 직선제 규약개정
- 현장대중투쟁 기반의 강화
- 직선제 규약개정과 현장투쟁 기반강화에 유리한 활동조건 확보

1) 직선제 규약개정

노민추는 이번 지방본부 집행부의 성격을 직선제 규약개정투쟁의 교두보로 규정하였다. 즉 해고자 원직복직과 노동조건 개악저지 문제는 당위성은 있으나 철도노사의 역관계나 후보의 의지 등을 볼 때에 힘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노민추는 후보가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앞장서서 실천하는데 확실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므로 공약이나 사업계획 등을 통하여 못박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였다.
선거운동과정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은 다음 몇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현장 조합원에게 공약이나 사업계획을 선전하는 것, 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통하여 이를 구체화하는 것, 대회에서 특별결의 및 사업계획안으로 결의하는 것 등이다. 노민추는 「새벽철길」과 「속보」를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선전작업을 벌였다. 다만 선전의 효과로 선거대책본부에서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선거운동을 수행할 만큼 이끌어 내지는 못하였다. 토론회는 한차례 진행되었으며 이는 특별결의안과 사업계획안의 작성과 대회에서의 가결이 그 근거로 작용했다.
결국 직선제 규약개정투쟁의 과정으로 실천한 선거운동과정에서 서울지방본부대회 공약으로 내걸었던 3개항과 사업계획안이 모두 통과되었으며 철도노조대회에서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만족해야 했다.

2) 현장 대중투쟁 기반의 강화

선거운동과정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첫째, 상대후보와 대중투쟁에 근거한 활동방식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간선제 선거이기는 하지만 조합원을 중심에 놓고 사고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조합원에게 이번 지방본부 선거에 관심을 가지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본부대회에 조합원들을 참여시켜 94년 파업투쟁 이후 약화된 집회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후보와 몇몇 지부장들을 중심으로 한 선거운동은 철저하게 상대측 후보를 공략하고 자파 대의원을 단속하는 쪽으로만 집중하는 모습을 모였다.
노민추는 자파 대의원들의 연대 결의문을 작성하여 배포하자는 의견을 여러 차례 제출하였으나 묵살당하였으며 소속별 결의문을 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는 상대후보와 비교하여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상대후보도 범민주 진영의 결의문과 비슷한 내용의 대자보를 작성하여 소속 현장에 붙였던 것이다.
또한 현장순회 활동도 조합원들을 만나고자 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파견대의원들과 식사를 하는 것으로 끝나 아쉬움을 남겼다. 아무리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라고 하지만 선거후 조합원들을 지방본부 중심으로 조직하려면 모든 활동에 조합원들을 배려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전활동은 조직징계의 위험 때문에 노민추가 맡아야 했지만 상대후보처럼 술자리를 베풀고 친분관계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범민주 진영 선거운동의 모두였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런 방식의 선거운동에 문제의식을 느꼈던 노민추 등 각 그룹도 “간선제 하에서는 어쩔 수 없다.”거나 “여기서 분란을 일으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암묵적으로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간선제라는 제한된 조건속에서도 선대본 차원에서 가능한 대중활동을 펼치려는 노력이 부족하였음은 노민추를 비롯한 모든 단위가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3) 직선제 및 대중투쟁 기반 확대에 유리한 환경조성

서울지방본부를 범민주연합이 들어가면 지부활동에서 유리한 조건이 된다. 또한 조합대의원을 범민주 진영에서 확보하면 직선제 규약개정투쟁 등 노조민주화 투쟁에서 힘있는 무기로 쓸 수 있다. 따라서 노민추를 비롯한 범민주 진영의 관심은 먼저 위원장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있었고, 그 다음으로 조합파견 대의원을 확보하는 것에 있었다. 위의 목표는 대부분 관철되었다. 그러나 철도노조대회에서 서울지방본부내 범민주연합이 분열되어 힘있는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하며 투쟁의 결의를 모으지 못하는 조합대의원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4.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문제

1) 노민추 내부의 입장 통일과 관련한 문제

노민추는 비교적 일관된 입장으로 범민주연합 진영에 참여하였다. 이는 96년 범대위투쟁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범민주연합후보 진영에 노민추의 입장을 반영하는데 있어 패권적인 모습으로 비친 것이나 분파적인 모습으로 비친 부분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습은 선거 전날까지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합숙과정에서부터 대회 당일까지 결정적으로 증폭되어 나타났다. 특히 노민추 회원이 아닌 해고자들까지 노민추 회원으로 인식되어 오해를 사는 등 연합활동에서 배타적으로 비친 모습은 앞으로의 활동에 어려움을 가져다 줄 전망이다.

2) 범민주연합내 민주주의 실천의 문제에 대하여

범민주연합의 최고 의결기구는 당연히 지방본부 파견대의원 총회라 할 수 있다. 후보를 결정하는 데까지는 파견대의원 총회를 존중하였으나 그 다음부터는 무시되었다. 그리고 의결기구는 지부장회의로 바뀌었다. 지부장 회의 결과는 각지부 내에서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곳이 많아 또다른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노민추로서는 파견대의원 총회가 지부장 회의를 뜻하는 운영위원회로 바뀔 때 이의제기를 해야 옳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반성할 점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상대 후보측 대의원과 만나는 과정이 보안을 이유로 전혀 밝혀지지 않고 또 만나는 사람이 상집위원과 조합 파견대의원 등을 주고받기로 하는 등 옛날 어용 기득권 세력과 똑같은 모습으로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접촉한 사람들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는 범민주 진영내부의 기풍문제이며 여기에 노민추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26일 대의원 합숙 과정에서 노민추가 조합대의원 배정에서 소외되고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은 그간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었다. 노민추는 조합대의원을 범민주 진영내부에서 배정하지 않고 득표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에게 나누어 준 점, 전형위원회 의장이기도 했던 노민추를 실제 대의원을 배정하는 자리에서는 소외한 점, 대의원들에게 연가보상비 명목으로 돈을 준 것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때 비판을 시작한 노민추 간부와 일부 회원들이 화를 내는 등 마치 노민추가 대의원 한두자리를 얻기 위해 분파적인 행동을 한다는 모습으로 비치고 비판을 사게 된 점은 반성할 일이다.
어쨌든 범민주 진영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천되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가 남게 되었다. 선거비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 지방본부 전임간부 인선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결정하다가 갈등을 빚은 것들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합의서’ 사건은 비민주적인 운영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노민추도 이 합의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그 책임은 조직내부의 반성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3) 사업작풍의 문제

아무리 간선제라도 지켜야 할 부분은 지켜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은 철도 범민주 진영이 자파 대의원에게까지 술자리를 베푼다든지 기득권 세력을 붙잡겠다고 온갖 잡음을 만드는 사업작풍은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 똑같은 간선제로 치렀던 92년 선거와 비교하면 그때 민주진영은 대중적 모금으로 선거비용을 충당하였으며 회계장부도 공개했다. 그리고 자파 대의원들에게 회의때를 제외하고 별다른 식사나 술자리를 베푸는 일이 없었다. 선거본부에서 공약을 담은 선전물을 조합원들에게 배포하였으며 대회날 5백여명의 조합원이 대회장 앞에서 집회를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방본부선거에서는 모든 선거비용이 후보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돈 문제는 수원역 사고지부 판정후 범민주 진영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다. 범민주 진영이 선거비용에서 자유롭고 최소한의 조직내 민주주의가 지켜졌다면 대회를 연기할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선거의 판도가 더 유리하게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선거비용의 막중한 부담 앞에서 대회의 연기는 상상하기도 싫은 악재였을 것이다.

4) 이른바 합의서 사건과 지방본부 전임간부 인선문제

합의서 사건은 철도민주노조 운동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아직도 노민추를 비롯한 각 그룹은 이 문제를 조합원에게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며 고민하고 있다. 범민주연합 내부에서 계속 공방전을 벌일 경우 조합 집행부에 의해 민주노조운동의 기반이 파괴당할 여지가 충분하며 바로 이점 때문에 노민추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노민추는 당연히 이 문제를 조합원에게 공개하겠지만 합의서 사건을 자신의 기득권 확대에 이용하려고 하는 개인이나 그룹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하고 있으며 전임간부의 문제도 “사업을 통해 대중적으로 심판하자는” 판단을 하고 있다.


5. 대중활동에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은 무엇인가?

대중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는 노민추에게 서울지방본부대회와 같은 선거운동방식은 아무래도 서투르다.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간선제 선거를 치르는 것은 역시 어렵다. 연합전술이라는 것은 내부가 잘 단결되어 있을 때 쓸 수 있는 전술이다. 그러나 활동의 범위가 범민주 진영을 넘어 기득권세력의 포섭이라는 곳까지 나아가자 당장 불협화음이 생겼으며 이때 최소한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판단한다.
최소한의 범민주 진영의 연합이란 ‘우리는 직선제를 추진하는 세력이며 여기에 동의하면 누구든지 함께 하자. 상집위원 정도는 우리가 양보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어용은 붙을 수 있다. 때로는 보안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내부의 단결을 해치는 정도의 보안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범민주 진영내부에서 관철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민추는 범민주연합 활동으로 철도노조운동에서 하나의 파벌로 인식되는 상처를 얻었다. 그리고 어려운 조건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의 자부심도 커다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민추는 그때마다 모여서 심각하게 자신의 문제를 반성했다. 노민추의 문제는 철도 민주노조운동의 문제다. 50년간 어용성을 유지했던 철도노조 운동의 유산이다. 노민추는 “노민추를 파벌로 인식하고 노민추를 조직적으로 음해한다고 생각하는” 그룹이나 개인을 비판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문제를 공개하며 실천으로 앞장서는 노민추’로 인식되도록 노력하겠다. 이것이 이번 범민주연합 전술에서 노민추가 얻은 가장 절실한 경험이고 반성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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