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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번 : [63호/연재-기획] 2000년 철도투쟁 평가 - 공투본을 중심으로 |
글쓴이: 이철의 |
등록: 2001-02-10 00:00:00 |
조회: 1563 |
2000년 철도투쟁 평가
공투본을 중심으로
이 철 의/연구위원, 철민추 사무국장
이 글은 지난 2월 3일 연구소 제56차 월례 콜로키움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들어가면서
1) 평가의 기준점을 철민추의 조직적 관점에서 진행한다. 물론
평가를 진행하다보니 혼재되는 경우는 불가피하였으나 공투본
투쟁의 평가는 공투본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조직적
관점에서 평가를 하지만 철민추회원을 포함한 공투본 지도부와
조합원들의 노고와 성과는 당연히 가장 높은 수준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2) 투쟁과정에서 일부지역과 단위에서 나타난 조직적 방침을
위배한 비조직적 행위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 수준에서 다루었다.
이유는 이 지점에 대한 평가가 조직성을 강화하여 향후 투쟁을
힘있게 전개하기 위한 우리의 태세를 정비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한 애초의 의도보다는 자칫 감정적 대립이나 불신을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의 투쟁이 진행형이기 때문에
긍정성과 성과를 앞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평가를 하자면 정확한 객관적 사실관계에 기초하여야 하는데 그
자체에 대한 제약성 때문이기도 하다.
조직적 방침에 대한 평가는 가능하면 지회, 중앙위, 중투본 등
해당단위에서 치열한 토론과 비판이 전개되는 것이 좋으며
향후에도 많은 투쟁이 예견되어 있기 때문에 동지적으로
비판하고 허심하게 접수하면 능히 조직적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3) 과제 부분에서 구체적인 투쟁적 과제와 대중조직적 과제는
생략하였다. 하반기 구체적 과제와 실현 방도에 대해서는 이후
중앙위, 중집의 회의에서 토론,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4) 이 평가에서 구체적인 투쟁전술방침에 대한 평가는 지난번
중앙위에서 제출된 투쟁방침에 대한 평가가 무난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생략한다. 이번 투쟁은 50년 역사상 가장 완강하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또한 전지역과 전직종을 망라하고
투쟁에 동참하였다.
따라서 지역, 지부단위의 평가는 지면의 제약상 생략한다.
회원동지들과 조합원들의 피와 땀이 아로새겨진 투쟁의 무용담과
성과는 이후 다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1. 투쟁의 경과와 의의
1) 공투본 투쟁의 경과
전면적 직선제 쟁취 공투본 투쟁은 크게 3시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1월 14일 대법원판결을 계기로 촉발되어 투쟁의 초기 노조
집행부의 자격이 무효인 상태에서 총회소집을 통한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직선제쟁취와 민주노조의 건설이 목표로 직무대행,
총회 소집권자 지명요구 등 법적 투쟁과 함께 조합원을
조직화하기 위한 비상대책위 조직활동이다.
13,000명에 달하는 조합원 서명과 정비창, 운수,
전기․시설계통의 비상대책위의 결성 등
철도민주화운동역사상 처음으로 계통을 초월한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는 성과를 낳았다.
조합원들의 들불과 같은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에 불구하고
불법적 대의원선거가 강행됨에 따라 이를 조합원의 힘에
의거하여 재집권기도를 저지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과반수가 넘는 14,000여명의 조합원들이 투표를 거부함으로써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였으며 불법적 대의원대회를
저지하는 투쟁과정에서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투쟁하였다.
2기는 불법적 본조 대의원대회 이후 각급 지방본부 선거를
강행함에 따라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선거승리를 통한 본조
집행부의 불법적 재집권음모를 분쇄하고 이후 민주노조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지방본부 선거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철도노조 9개 단위 지방본부중 서울, 부산, 서울정비창,
부산정비창, 대전정비창 등 5개 지방본부의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표로서 철노를 심판한 일대 쾌거를
이루어내었다.
3기는 철도청의 공투본 지도부에 대한 징계와 부당전출에 따른
징계철회투쟁시기이다.
50년의 어용철노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3중 간선제라는
제도적 장치와 함께 서로에게 사활적인 유착관계였다.
철도노동자들은 철도청의 부당한 개입의 예견하고 있었으며 이
징계철회투쟁을 승리하여야만 노조를 민주화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집회투쟁을 기본으로 노란손수건
달기 등 조합원의 감성에 호소하는 다양한 대중투쟁과 40일에
달하는 고공철탑농성투쟁 등 완강하게 부당징계 철회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가족대책위활동과 여러 사회운동단체 등과의
연대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6개월간의 완강한 투쟁과정에서 80명에 달하는 공투본
지도부가 직위박탈과 함께 조합원자격이 제명되었고 부산과
부산정비창에서는 그들만의 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는 위원장을
선출하는 죽어가는 어용노조를 살리기 위한 치졸한 행태는 극을
달했다. 아울러 철도청은 7명 파면과 중징계. 동해로 순천으로
비연고지 전출이 자행하며 어용노조를 살리기 위해 비인간적인
가정파괴를 서슴치 않았으며 마침내 99년 차량안전위협을
고발했던 한 동지가 가정불화와 생활고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희생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2) 철도민주노조운동의 발전단계에서의 의의
첫째로 이번 투쟁은 지난 시기 활동과 투쟁을 바탕으로 성숙된
민주노조운동의 10년의 과정을 총결산하는 투쟁이었다.
철도내 활동가들은 94년 기관사를 중심으로 근로조건개선을 위한
전지협 파업투쟁이후 민주노조의 건설 없이는 초보적인 권리조차
보장받기 어렵다는 뼈저린 교훈을 바탕으로 노민추를
결성하였다. 이후 96년 일방적 조합비 인상반대투쟁, 98년
조합총선거투쟁, 99년 부산지방본부 사수투쟁, 99년 철민추
출범, 철도 민영화 방침 발표이후 민영화 반대투쟁을 준비하는
조합원교육과 선전 등 크고 작은 노조민주화 투쟁과 현장조합이
주체가 된 여러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상반기 투쟁을 통하여 전지역, 전직종을 망라하고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의 모든 투쟁형태가 전면적, 폭발적으로 표출되었으며
민주철노 역량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온 투쟁이었다.
둘째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철도노동자들의 민영화
반대투쟁의 대중적 주체 ‘공투본’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투쟁이었다.
99년 정부의 철도민영화 방침 발표이후 분열되었던 3개의 조직을
통합하여 철민추로 출범하여 철도민영화 반대투쟁을 준비하며
철도민영화에 대한 정책연구와 선전지 발행 등 대중적
선전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다가올 철도의 민영화로부터 조합원의 생존권을 사수하고
세계화의 공세에 맞선 투쟁이 각 현장마다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오던 차에 이번 투쟁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향후 투쟁을 책임질
대중적 주체 ‘공투본’을 형성 강화하게 되었다. 어용철노에게
자신의 명줄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지난 50년 역사를 통하여
몸으로 체험한 철도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공투본의 기치
주변으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2. 투쟁 방침의 대한 평가 - 전략전술과 관련한 쟁점들
1) 본조합 대의원선거 불참 및 저지
철노는 총회 소집권 요구를 위한 서명이 자기모순에 빠지자
규약개정 없이 대의원만의 직선을 통한 권력재창출 방침으로
전환하였다. 그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곧바로
중앙위원회를 소집하여 선거를 공고하였다. 이는 드러난 것처럼
정보(노동부) 및 한국노총과 협의한 결과이고 공투본의 전면적
직선제를 봉쇄와 가처분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철노 중앙위 소집을 알게된 철민추는 철노의 기만성을
폭로하면서 즉각적으로 조합원을 비상소집하여 중앙위 저지에
나섰고 자연스럽게 본조합 농성으로 이어졌다. 서명을 통해
조합원의 힘을 확인한 민주진영으로서는 보다 공격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였다.
공투본 소속은 대의원 선거에 불참하고 전국적으로 저지와
불참운동을 성과있게 추진하였다. 이는 철노의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으며 동요하던 승무지부장들을 묶어놓게
하였다.
물론 참여 의견도 있었다. 서명을 통해 성장한 비대위가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조합원의 힘으로
어용들을 속 시원히 짓누르고 시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국한되었다. 민주적 의사수렴이 불가능한 대의원 배정과 자의적
선거구 확정으로 전체판을 바꿔낼 수 없었다. 오히려 눈앞의
성과에 급급하여 조합의 일정과 대표성을 인정하고, 조합원의
투쟁을 가로막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조합원의
서명을 받고 가처분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고양국면의 투쟁을
급속히 약화시킬 위험성이 있는 위험한 사고였다.
2) 3/7 본조합대회 저지
공투본 투쟁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고비였다. 때문에 내부에서는
실질적인 논쟁의 시발점이었다. 타협과 저지, 저지의 수준,
당시의 평가에 있어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대회이후 새로운
투쟁방침을 정하는데 있어 상당한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철민추는 2/29, 3/1 중투본 회의에서 대회저지 및 불인정 방침을
명확히 하였다. 철노의 정당성을 부정해온 이전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장소와 시간,
연가불허방침이 알려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협상론도 가세했다. 공투본은
결국 ‘저지할 수 있겠나’하는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면서 형식적인 저지와 실질적인 저지가 정리되지 못한 채
울진으로 출발하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총력대응이었지만,
공투본 중앙의 방침은 부분적인 저지단 파견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런데 대회저지투쟁은 철노 민주화 투쟁에서 전설적인 투쟁으로
회자되었다. 참가했던 동지들은 대부분 결사저지 방침을 포기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결과적으로 대량전출의 빌미가
되었지만 보다 분명한 방침을 결의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공투본은 철민추와 다르게 판단 할 수 있다. 문제는 철민추의
방침이 회원들에게 정확히 결의되지 못함으로 인해 개별적인
판단으로 작용했다는데 있다. 이와는 별도로 당시 상황에서
철노와의 협상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3) 3/7 대회 결과와 이후 투쟁 방침
대회의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응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농성의 연장시기와 함께 장기화되어 가는
국면에서 뾰족한 목표점을 내오지 못했다. 조합원보다도 지도부
내에서 먼저 패배적 판단과 협상의 요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부가 정리되지 못한 것이 공투본의 혼란으로 확산되었다.
사실 철민추는 3/7 대회의 의미를 ‘절반의 승리, 마지막
힘겨루기 시작’으로 정리하고 방침을 확정하였다. 대회불인정
방침을 재확인하였고 현장조직 접수, 농성유지, 불신임
서명운동을 결의하였다.
그런데 공투본에서 거의 대부분의 방침이 그대로 확정되었는데,
대회 결과와 철노와의 관계가 논란 끝에 유보적 입장으로
후퇴하였다. 철노와 대회를 인정할 수 없지만, 대화의 우위에
서기 위해, 대중적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한발 물러섰다.
대회결과에 대한 판단은 찬반투표로 조합원에 맡기기로 하고
이를 철노에 제안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철노는 자신에 불리하고
질 것이 뻔한 공투본의 요구를 들어줄리 없었다. 공투본만
진행하기엔 이미 조직이 늘어져 있었다. 현장에서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고 철노도 거부하는 찬반투표안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와 함게 만연된 협상론은 이미
원칙으로 통제되기에는 불가능했고, 오히려 명분을 훼손하고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하였다. 철노는 반응도 없는데
농성장은 갑자기 철노와의 협상이 임박한 것 같은 긴장감마저
느껴지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찬반투표는 공격적 제안으로 철노는 압박하는
수준으로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실제 가능한 실천방침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에
지리멸렬해지면서 농성장은 조용해졌다. 현장의 결의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방향타를 상실한 공투본 지도부가 역으로 철민추
간부를 회의에서 배제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우려했던
내분조짐이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4) 철도청에 대한 방침
이 싸움은 철도노조와의 싸움이지만 언젠가는 정부(철도청)와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다만 당시의 상황과 우리의
역량등을 고려하여, 철도청에게 개입할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하여
철노와의 대립으로 집중했다. 이는 철민추뿐만 아니라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동지들이라면 대부분 인정했다.
투쟁과정에서 청이 개입하면 어쩔 수 없이 청과의 대립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청을 피해 철노와만 싸운다는 것은 가정일
뿐 현실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선제공격이었다. 서울지역에서
표적감사가 시작되고 징계가 가시화되자 철민추는 청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청장의 비리를 폭로하자고 제안했다. 공투본에서
받아들여 지부게시판에 스티커를 부착하였고 효과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잠잠했다. 다시 청의 감사와 징계가 본격화되면서
전면적 선전전을 제안하였고 청의 공격이 선제공격 때문이었다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한쪽에서는 선제공격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청의
개입이 노골화되었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선제공격으로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판단할 것은 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다. 청의 개입과 탄압이 예견되었다면 선제공격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개입을 안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가
불러들였다면 섣부른 행동일 것이다. 오히려 청의 탄압을 막을
수 있는, 저항할 수 있는 대책(연대 등)이 부실했던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5) 한국노총에 대한 판단과 연대의 방침
한국노총 일번지답게 한국노총은 철노를 외면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과 함께 위기의식을 느낀 노총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노를 지원하면서 공투본을 직간접적으로 탄압하였다.
공개적으로 노총의 생명이 달렸다고 공언하였다. 조금은
무리하다 싶더라도 조직이 위태하고 철노의 요구가 있는데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철민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노총을 부정하고, 함께 싸울 수
있는 민주적 세력과의 연대를 일관되게 유지하였다. 3조직간의
공동사업을 구상했고 초기 지원대책위를 꾸려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나갔다. 공투본과의 공식적 관계를 요구하였지만
공투본은 한국노총에 대한 의식과 외적인 확산을 우려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공투본이 민주노총의 사주를 받는다는
철노의 왜곡선전이 공투본에도 먹혔던 것이다. 결국 철도청의
탄압이 가시화 되었을 때서야 마지못해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준비해도 이기기
힘든 싸움에, 더욱이 한국노총과의 싸움에 눈치를 살펴야했다.
민주노총으로서는 급할게 없었다. 우리가 요구했을 때 그들은
마지못해 응했지만 이미 다른 싸움을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철민추나 공투본은 한국노총의 철노지키기를 위한
추파를 막아내기 급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님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최소한의 중립도
불가능함을 알았다면, 미련을 가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한국노총에 조금이라도 의지해보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민주노총을 포함한
연대세력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작용으로 나타났다. 철노와
한국노총과 결전을 시작했다면 처음부터 좀 더 과감하게
연대하고, 과감하게 싸워야 했을 것이다.
참고로 아직도 한국노총을 유보적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들은 한국노총 위원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르다고
한다. 이젠 뭔가 좀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있지 않겠냐고 희망
섞인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노총
같은 거대조직에서 어느 한사람이 문제라면 이런 사정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3. 투쟁과정에서의 성과
철민추 회원 중 다수가 구속, 청징계, 전출, 조직징계를 당하는
외견상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철도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에
앞장서 투쟁한 활동가조직인 철민추의 성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1) 조직적 성과
① 철민추의 대중적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투쟁을 조직하고 전개하는 데에서는 현장내 활동가조직의
존재유무와 올바른 활동이 결정적이다. 특히 철도와 같이
전국사업장일 경우 특히 중요하다. 만약 ‘철민추’가 없었다면
공투본과 같이 전국적 전 계통을 망라하고 다양한 편차를 가진
각 지부단위들을 통일적으로 안내하는 이러한 투쟁을 만들어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철민추는 활동가 조직으로서의 조합원의 요구를 결집하여 당면
투쟁목표를 제시하고 투쟁을 조직하고 투쟁하는 선봉대로서의
역할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였다. 이번 투쟁을 처음 발기한 것도
철민추이며 가장 선두에서 온몸을 바쳐 투쟁한 것도 철민추
회원이다. 중요시기 정책적 방침을 세우는 과정에서도
중앙지도부 회의에 공식결합하여 방침을 세우고 집행하며
전국사업을 이끌었다. 공투본 투쟁의 골간은 철민추였으며
투쟁을 통하여 대중적 지위와 대중적 지도력이 검증되고
확보되는 과정이었다.
투쟁의 초기 어용노조와 철도청의 탄압과 음해는 철민추에
집중되었으나 모든 회원들이 공투본의 선봉부대로서 투쟁에
실천적으로 앞장서며 모범적으로 돌파하여 자기역할을
다함으로써 철민추는 조합원 대중에게 신뢰받는 조직으로,
회원들은 믿음직한 현장의 간부로 공인되었다.
② 투쟁속에서 회원들이 단련되고 많은 신진 활동가 역량이
발굴되었다
민주철노 건설과 산별건설, 민영화 저지를 책임질 간부대오는
투쟁과 조직활동, 학습을 통하여 단련되고 성장한다. 그동안
지부단위의 일상활동과 투쟁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왔지만 6/23
파업투쟁 이후 어용철노와 청의 탄압에 맞선 완강하고 거대한
투쟁은 처음 맞는 간부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투쟁과정을 통하여 회원들은 일상적으로는 얻기 힘든 고귀한
경험을 얻게 실천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몇 년에 걸쳐 육성해야
할 간부대오가 일거에 대중운동의 간부로 튼튼히 뿌리박게 된
것이다. 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민주노조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아울러 함께 많은 지부단위에서 중심지부의 간부들의 투쟁의
결의와 각오는 더욱 높아졌고 조합원들은 더욱 굳게 단결하고
있으며 개척지부에서는 많은 민주적 간부들이 발굴되었다.
③ 통일단결의 수준이 높아졌다
철민추가 조합원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을 통합한 이래
전국적 단일한 방침아래 진행한 투쟁 속에서 통일단결의 수준이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그동안 교육, 선전 등의 활동에서 공동의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현장투쟁의 통하여 현장단위의 단일성은
높아지고 탄압에 맞선 강고한 투쟁 속에서 일상적으로는 잘
느끼지 못하였던 동지애도 새롭게 느끼는 과정이 되었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투쟁을 통하여 철민추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높아졌으며 조직의 중요성과 조직적, 집단적
활동의 중요성을 관념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투쟁을 통하여 조직이 물리적 결합에서 화학적 결합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조직의 일부분에서는 조직적으로 결정된 방침을 어기는
사례는 있었다. 철민추가 계나 서클이 아닌 철도노동자의 염원을
실현하는 조직다운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내 민주집중제가
제대로 실현되어야 한다. 방종과 분열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독단과 관료주의가 아닌 집중제가 올바르게 실현되는
철민추의 건설은 앞으로도 계속 힘을 쏟아야 할 중요한 조직적
과제의 하나이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나타난 각종의 잘못된
비조직적 편향은 전혀 없으면 좋겠지만 조직 초기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서 조직에 대한 낡은 잔재이며 조직적
활동경험의 일천함에 비롯된 것이다.
이번 투쟁은 조직의 통일단결 수준을 높인 성과를 남긴 반면
올바른 평가와 정확한 비판, 교육과 설득 등을 통한 지속적인
조직성의 강화라는 과제를 함께 남겨주게 되었다. 그러나
전조직적 측면에서 평가할 때 대다수 회원이 조직적 방침을 중히
여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현장에서 강고하게 투쟁하였다는
것이 보다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철민추의 주인은 전회원이기
때문에 일부의 잘못된 편향은 향후에 투쟁과 조직활동을 통하여
능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2) 민주철노의 건설에서의 성과
① 실질적인 전면적 직선제를 쟁취하였다
우리의 투쟁으로 내년도 철도노조 총선거는 조합원의 손으로
위원장과 지부장을 직접 선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동안의 철노의 행태를 보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간선으로의 개악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투쟁으로 쟁취한 직선제를 지켜내고 집권을 위한 역량의
강화는 하반기 주요과제로 남아있다.
② 공투본이 대안세력으로 조합원속에 각인되었다
철도조합원의 광범한 참여 속에서 진행된 전면적 직선제
투쟁에서 민주세력은 실질적으로 승리하였으며 대안세력으로
부각되었다.
민주노조에 대한 철도조합원의 광범한 참여와 5개 지방본부
선거의 승리. 완강한 징계철회투쟁을 통한 철도청의 비연고지
전출에 대한 반인륜성에 대한 타격이 그것이며 그 속에서 3만
철도조합원들의 가슴속에 현 철노집행부를 대신할 대안세력으로
공투본이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③ 민주철노의 상을 세웠다
공투본 지도부의 파면을 각오한 헌신적 투쟁을 통하여 이후
민영화 반대투쟁을 수행할 조합원 속에서 민주적 지도부의 상을
세웠다.
④ 현장의 민주역량이 강화되었다
미개척 분야인 정비창과 운수에서 민주노조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민주노조건설의 가능성을 확인하였으며 차량은 전국적 투쟁을
경험하고 훈련되었고 승무는 개량적 지도부를 몰아내고 투쟁적
지부로 개조하는 성과를 낳았다.
3) 민영화 반대투쟁에서의 성과
① 철도민영화 반대라는 대중적 합의를 만들었다
초기 열악한 철도현장에 대한 반발이 왜곡되어 “차라리
민영화하자” 는 류와 국민주 형태의 민영화 등 다양한 결과적
민영화 찬성의견 등이 많이 존재하였으나 공투본 투쟁과정에서
철도민영화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대중적 공분을 내용적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② 어용철노와 철도청의 본질이 폭로되었다
어용철노, 철도청과 중간관리자들의 민영화 반대에 대한 입장이
대중적으로 검증되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영화 반대투쟁을 하는 우리를 탄압할 것이라는
것이 각인되었고 철도노조 역시 투쟁을 준비하는 단결을
선택하기보다는 조직징계를 선택함으로써 철도민영화저지투쟁을
담당할 투쟁지도부가 아니다라는 것이 조합원 속에
폭로되었다.
③ 생존권 앞에서는 반드시 투쟁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노동자는 생존권을 두고 흥정하지 않으며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투쟁은 부산 정비창의 투쟁이다.
부산정비창 조합원들의 완강한 투쟁과 같이 생존권적인 절박한
요구 앞에 반드시 투쟁은 일어난다는 노동자의 역사적 진리를
다시 확인하였다. 50년전 전평의 주력으로 마지막 철도의
와해과정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투쟁하였던 곳이 부산정비창이다.
그곳에서 이제 50년만에 창내에서 집회가 아침, 점심, 저녁
끼니때마다 개최되었으며 전국공투본을 이끌며 완강히 투쟁하며
자주적인 삶을 향한 노동자의 위대함을 맘껏 발휘하였다. 정비창
조합원과 가족들의 투쟁은 감방에서, 현장에서, 정문 앞에서,
부산역 광장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4. 성과의 원인
1) 통일단결과 조직적 실천의 위력이다
그동안 철도내 민주세력은 이러저러한 차이성 때문에 통일단결의
위력을 백분 발휘하지 못하였다. 물론 사안별 공동 대응의
경험은 있었지만 하나의 조직으로 하나의 방침을 가지고 철도내
전 조직이 투쟁한 것은 처음이다.
몇몇 선진적인 노동조합의 경우, 분열의 후과가 얼마나 큰지는
주위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노동자에게 분열은 죽음을
뜻한다. 이번 투쟁의 경우 만약 3개의 통합조직 ‘철민추’가
없는 상태에서 상황을 맞이하였다면 정세를 주동적으로 이끌면서
성과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록 걸음마
단계지만 현장활동가들이 통일단결을 이룸으로서 대중역량이
통일단결되었던 것이다.
2) 철민추 회원과 공투본 지도부의 헌신적인 투쟁, 그것이
신화를 창조하였다
아무리 조합원들의 불만이 고조된다하더라도 선진적인
활동가들이 그 힘을 조직하지 않으면 투쟁으로 일어설 수 없다.
또한 활동가들이 앞장서지 않으면 결코 조합원은 함께 하지 않는
법이다.
이번 투쟁에서 회원들은 밤잠을 자지 않고 투쟁의 현장으로
조합원 속으로 들어갔다. 특히 역량이 취약한 조건에서도
선봉적이고 원칙적인 투쟁자세를 견지함으로서 조합원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으며 결국 현장내 지도부로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특히 운수분야, 시설분야 등 조직적 역량이 취약한 분야와
지역에서의 회원들의 헌신적 활동으로 민주철노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웠던 것이다. 또한 정비창의 회원 동지들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가장 끈질기고 강고한 투쟁으로서 전국의 모범을
창조하였다.
3) 지난 시기 지속적인 활동과 투쟁의 성과이다
공투본의 투쟁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동안 끈질기게
투쟁한 민주역량이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지부나 현장단위로 조직을 강화시켜왔으며 민영화에 저지를 위한
지속적인 활동의 성과이다. 설사 당장은 힘들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꾸준하게 실천하고 투쟁한다면 폭발적 계기는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5. 투쟁과정상의 쟁점과 한계
1) 철민추역량의 지역적, 계통적 편차가 존재한다
철민추의 역량은 공투본의 역량으로 현실화된다. 차량분야가
투쟁의 선봉부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 운전분야의 활동이
미진한 것은 철민추 역량의 수준을 표현한 것이다. 한편으로
운수분야의 전진은 운수마을 21을 중심으로 한 역량과 지속적인
동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지역적 계통적 편차는 투쟁의 한
단계 상승발전을 제약하는 요소로 투쟁 전기간 노정되었다.
2) 지도역량을 보다 높여야 한다
지도부의 지도력에서 초기 성과적으로 진행되었으나 투쟁이
지속되면서 투쟁적 기조가 흔들리고 투쟁의 하반기 정책에서
민영화 반대투쟁으로 전환해야 할 대중적 요구를 받아 안지
못하고 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조직지도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였다.
또한 조직의 지도수준은 회원들의 개인수준을 반영한다.
현장에서 회원들이 조합원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 능력을 조직적으로 높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번 투쟁은 향후에도 공투본과 같은 대중조직을 정확하게
안내하는 것, 현장에서 조합원을 투쟁대오로 조직하는 것,
매시기 투쟁현장에서 투쟁을 지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지도력강화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3) 일시적으로 조직적 활동이 이완되었다
투쟁이 바삐 돌아가게 되면 정상적인 회의나 토론이 힘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투쟁이 장기화되고 복잡하게 되면
조직활동의 중요성은 역으로 일상시기보다 더욱 중요하게 된다.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방침을 결정하고 결정된 방침아래
전조직이 하나같이 움직이려면 투쟁 전과정에 조직활동을
고수하여야 한다.
또한 탄압의 강도가 거세지고 투쟁이 장기화되면 개인의 결단과
의지, 능력만 가지고는 전선을 돌파하기 어렵다. 바쁠수록
동지와 조직을 믿고 힘을 더욱 집단화하여야 한다. 실제
투쟁과정에서 개인적 투쟁동력의 한계는 고비마다 나타나며
그러한 한계는 지회 등의 조직활동 등을 통해서만이 극복될 수
있었다.
상황에 맞는 조직활동의 모범을 만드는 것, 이것은 조직내에서
항상적으로 제기되는 중요한 조직적 과제이다.
6. 교훈과 과제
1) 교훈
① 투쟁없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본조 대의원 선거 불참 및 저지, 점거 농성, 청의 탄압에 대한
투쟁이 이어져 오면서 조합원들은 투쟁으로 탄압을 이겨내고
민주노조, 민영화 저지의 깃발을 꽂았다. 사소한 대목이라도
투쟁없이 얻는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그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어용철노는 앞으로는 웃는 낯으로 협상을
이야기하지만 뒤로는 조직징계 등으로 우리에게 칼을 들이민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앞으로 민주철노의 건설과 민영화 저지투쟁에서도 어용철노나
청에 대하여 기대나 환상을 가지거나 조합원이 주체가 되는
대중투쟁이 뒷받침되지 않는 협상이나 정치력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현장 조합원의 투쟁동력을 떨어뜨리고 말 것이라는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② 역시 활동가와 간부들이 중요하다
장기적인 투쟁에서 탄압에 동요하지 않고 완강하게 투쟁을
지휘하는 활동가와 간부 역량이 투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주고 있다. 투쟁은 활동가 역량의 포진 정도, 현장
장악력, 조합원을 투쟁으로 조직동원하고 지휘하는 능력, 간부의
결의수준만큼 전진하고 성과를 낳는다는 것을 이번 투쟁은
보여주었다.
기존 회원들은 투쟁의지를 더욱 높이고 상반기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더욱 많은 활동가들을 조직하고 간부로 준비시키는
것이 향후 투쟁 준비의 핵심적인 과제의 하나이다.
③ 투쟁속에서 조직은 건설되고 강화된다
상반기 투쟁의 가장 중요한 성과의 하나가 ‘공투본’의 결성과
투쟁이다. 어용철노를 압도하면서 조합원의 희망으로 우뚝설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의 실천과 투쟁을 통해서이다.
회의를 통하여 이합집산하여 모인 조직이 아니라 철저히 투쟁을
통하여 건설한 조직이기에 조합원 속에서 살아 있는 조직이 된
것이다. 철민추와 마찬가지로 2기 공투본의 강화와 현장 지부의
강화도 실천과 투쟁을 통할 때만 조합원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투쟁하는 조직이 될 것이다.
2) 과제
① 조직을 시급히 정비, 정상화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우선 철민추 각급 조직단위를 회의, 활동 등을 정상적으로
가동하여 현장사업을 계획하고 실천하여 나가야 한다. 공투본의
확대강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지부는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조합원에 대한 사업은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 등등에
대한 계획을 단위마다 세우고 실천해 들어가야 한다.
투쟁 속에서 발굴되고 성장한 민주역량을 신속하게 각 공투본
단위로 묶어 세우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상반기 투쟁의
성과가 조직으로 남고 이후 투쟁을 책임질 조직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민주지부가 들어선 현장은 강화하고 지부의
활동이 미약한 조건의 현장에서는 철민추 회원이 앞장서서 현장
활동과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민영화 저지와 민주철노의 건설을 위한 우리의 앞길에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다.
② 전국적 지도력을 강화하고 조직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상반기 투쟁에서 나타난 교훈은 공투본이 이후 더욱 강고히
진행될 철도민영화 반대투쟁의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활동가 조직인 철민추의 조직성과
지도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철민추의 지속적인 강화 없이는 공투본 투쟁의
전과정에 노정된 지역적, 계통별 편차를 극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요구에 근거한 올바른 투쟁방침을 수립하고
통한 승리적 안내가 어렵다. 조직강화의 기본내용은 조직성의
강화, 지도력의 배가, 현장 장악력의 강화이며 우선 회의,
조직활동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여야 내용도 채울 수 있다.
③ 현장내 민주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공투본 투쟁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비록 지부 집행부가
민주적으로 개조되었다 하더라도 현장역량이 축적되어 있지
않으면 청과 어용철노의 탄압에 맞서 리본조차 패용하기 어렵다.
민주노조건설과 민영화 저지투쟁의 실질적 힘은 현장내
민주역량의 강화될 때만이 제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파괴된 공투본조직의 복원과 함께 독자적인 투쟁대오로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하며 확대된 민주역량을 조직화하여 이후
철도민영화 반대투쟁의 대중적 투쟁체로서의 자기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공투본의 정비, 강화 이것은 투쟁의 전기간을
공투본의 골간으로 투쟁을 이끌었던 철민추의 하반기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문
<토론정리>
과거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이후에 어떻게 싸울 것인가가
준거가 된다. 2월 8일 투쟁위를 꾸리는 주체는 누구이며 어떤
형태인가?
답
철도노조는 12월 12일 노사정 합의를 통해서 단체협약을
맺어버렸다. 반격을 하려고 지역, 직종을 망라한 조직체를
준비했다. 그런데 철도 내 대중운동으로서는 철민추와 그렇지
않은 흐름이 차이가 있으면서 내부 투쟁이 일어났다. 특히
기관사 쪽은 그런 경향성이 더욱 강하다. 기관사 쪽에서
이의제기하거나 참여하지 않으면서 기존 조직을 해산했다. 대신
현직 지부장을 중심으로 조직을 따로 준비했다. 이후
철민추에서도 참여해달라고 요청된 상태다. 현재로서는 직종과
지역을 망라한 (특히 직종의 문제가 중요한데) 직종의 이해를
떠난 총단결을 강화한다. 기관사 쪽은 자기중심주의가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이
만들어졌다. 2월 8일 민영화저지투쟁을 수행한 후에 총선거에
들어갈 수 있나 혹은 선거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 될 것인가는
이후에 따라 달라진다. 싸움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선거를 위한 조직을 새로이 띄우겠다.
문
새로운 조직에 기관사 조직이 다 들어가 있나?
답
그렇다.
문
기관사가 입김이 강한가?
답
상임대표를 기관사에서 맡았다.
문
지도역량의 문제를 지적해주셨는데, 본문에는 “철민추 회원과
공투본 지도부가 헌신적으로 투쟁해서, 그것이 신화를
창조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상충되는 평가가 아닌지?
지도부의 문제이기도 하고 공투본의 조직적 측면에도 한계가
있다고 했는데 각 지부의 수평적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계가 나타났는가?
답
헌신성은 부인할 수 없다. 투쟁이 격화될 때 지도부가
투항함으로써 투쟁을 수렁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공투본
투쟁의 끈질김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지도부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해고된 순간까지, 해고된 후에도 새로이 구성된
지도부를 보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회원들은 농성장을 끝까지 사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기마다의 판단과 판단을 가능케 하는 입장이나 훈련이
철저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것을 지도부의 한계라고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철도노조에서 민영화 저지로 물꼬를
텄을 때, 철도노조에서 주최하는 집회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토론을 할 때, 어정쩡하게 집회장에서 동거하는
양상을 보였다.
조직 구조상으로는 수평적 조직이라는 문제가 있다. 기관사와
차량쪽 지부가 합친 것. 차량이 지도력을 행사할 경우 기관사는
잘 따르지 않았다. 노총 내 양심적 인사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문
지부간의 수평입장 차이가 아니라 조직이 문제라면 새로운
조직은 기존의 지부 형태를 벗어나서 다른 형태가 가능할
것인가?
답
역사적으로 90년대 기관사 쪽이 민주노조운동을 주도했다.
기관사들의 직종 중심주의가 강하다. 그런 경향을 민주노조
간부들도 가지고 있다. 조금만 애매한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직종 전체가 이탈하는 등 예민함을 보여왔다.
문
새롭게 지도부가 구성될 때에도 그런가?
답
전기협 재건이 과거의 전기협의 투쟁성이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 전기협의 역사적 후광을 받아안는 태도였다. 12월
10일 기만적인 노사정 합의 뒤에 그 당시까지 조합원들을 대책
없이 끌고 다닌 것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 있어야 하는데,
전기협을 재건함으로써 회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 그래서
조직에서 제동을 걸었다. 새로 재건되는 전기협이
민주노조운동의 질과 내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중단한 것이다. 기관사 회원들 간의 입장이 양분되어 정리가
안되는 상태다. 총선거 이후 전기협 재건을 논의하는 것으로
봉합했다고 본다.
문
이철의 동지가 배제되고 난 뒤, 2월 8일 공투본의 앞으로의
향로와 조직적 전망은 무엇이었나?
답
배제는 일시적, 3주에서 1달이었다. 그 뒤에 징계철회 투쟁을
벌였고, 탄압저지 투쟁에 있어서는 대단히 긴밀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실무나 방침을 철민추에서 다 가지고 있는 상태다.
2달 정도 공투본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따라서 그 문제는
바로 해소했다. 그 뒤에 차량지부만 남고 나머지는 다 이탈했다.
탄압이 격화되면서 그런 것이다. 현재는 공투본 지도부가
상징적으로만 남아있고, 실제로 민주노조운동을 하는 지도부간의
연합체라는 실체는 사라진 상태다. 기관사 문제는 미봉해서 되는
문제라기보다는 정확하게 대응해야 한다. 건강하지 못한 흐름은
내부에서 통일할 필요가 있다.
문
공투본은 해산되는가?
답
조직은 유명무실해져도 조합원들이 가진 상징성은 유지되고
있다.
문
그런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가? 그 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답
간부나 활동가들은 부담이 있다. 기관사 쪽은 공투본이라는
이름으로 모이지 않는다. 공투본 투쟁과정이 기관사의 주도성이
관철되지 않는 구조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지부장이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조직체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다만
조합원들은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 조직에서는 지부장 등이 가면
같이 간다. 그것이 공투본의 이름이든 다른 조직체든 큰 영향이
없다. 그렇지만 선거시에는 공투본의 상징성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문
철민추의 성과는 무엇인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발전전망을
세울 것인가?
답
세 가지 경향성이 있다. 통합조직에서 활동해 본 경험으로는
실천에서는 경향성보다는 활동방식의 문제가 더 크다. 예를 들어
철민추의 중앙간부나 철민추 출신들은 대체로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성, 투쟁성 등을 강조한다. 좌파블럭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순천지역에 가보면 회원 동지들이 22명 전부다
민족해방계열이다. 실천에 있어서는 대단히 전투적이고
모범적이다. 그런 것으로 볼 때 경향성보다는 방식의 문제라고
본다. 음모적, 패권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철도에서 상반기에 민주노조를 만든다고 했을 때 굳이
경향성별로 분화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통합조직에
대해서는 분명히 생각의 차이가 있다. 범민족대회에 갈 것인가,
통일교육을 할 것이냐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할 것인가로
논쟁이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합의를 했으면 그것을 지키는
기풍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문
철도 노민추에서 선거에 대한 전략은?
답
철도 노민추에서 선거에 대해 후보문제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철민추 중앙집행위는, 분명히 민주주의적 절차를 거쳐서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방침을 어기는 경우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회원 정비 작업 중이다.
내부투쟁을 사양하지 않겠다.
문
철노투에 다 포괄되나?
답
그렇다.
문
김대중 정부에서 공기업 구조조정을 상반기에 가속화하고
있다. 공기업 단위별로 공세가 들어오고 있다. 철도청과
관련해서 특수하게 쟁점이 될 만한 지점은?
답
시기 문제라고 본다. 원래 철도노조, 철도청, 건교부 등에서는
늦춰달라고 했다. 김대중 정부가 지속적 압박을 해오고 있다.
올해 안에 법안이 가결되지 않겠냐. 형태로 봐서는 확정이 되지
않았는데 건설부문만 고속철도와 통합해서 통째로 민영화하지
않겠나. 그 뒤로 분할을 할지 않을지는 현재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민영화와 감원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현상유지냐 대안을
내느냐에 대해서는 24시간 맞교대제, 휴일이 없는 근무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증원해야 한다고 공세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법안이 가결되어도 대응하기에 따라서는 그대로 간다고 장담할
수 없다. 올 해 철도에 전투적 집행부가 들어서 강력한
연대전선을 쳐낼 수 있으면 충분히 저지 가능하다고 본다.
문
차량이 주축으로 상승되었던 계기는 차량의 외주, 하청에 대한
불만과 공포가 있었을 것 같다.
답
일차적으로는 정원조정만 된 상태다. 기관사에 비해 피해가
적다. 장래를 놓고서도 기관사가 위기의식이 더 강하다. 기관사
쪽 지도부가 제대로만 하면 더 큰 투쟁동력이 될 것이다. 차량은
민영화, 감원에 대해 작년에도 확실히 보여준 바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열쇠를 쥐고 있다.
문
문제는 간부급들이 기관사가 직종별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조합원인 기관사들은 생존이 위협받기 시작하면
직종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슈를 제대로 제기하는 조직적
구심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철민추에서는 기관사 직종을 전체로
똘똘 뭉쳐진 것으로 보는가?
답
기관사 직종 전체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중심 인물이
없다. 94년에 전지협 의장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지금과 같은
심각한 양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활동가 양성이 취약하다.
집단주의가 강한 것은 자기가 속한 사무소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전국적 시야로 본다는 것이다. 94년도는 전기협
지도부에서 기관사 직종의 요구가 아닌 전체 요구, 전체 노동자
운동의 맥락으로 받아안은 것이다. 현재로는 불철저하다. 신뢰할
수 있는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문
외국의 민영화 사례를 보면 개별격파 식으로 민영화
프로그램이 이루어졌다. 철도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직종이
다르면 연대의 원리가 다르다. 대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할 때
굉장히 의미가 있다. 외부에서 지지하는 민중들을 끌어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사회운동, 시민운동까지 끌어올 수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답
노동조합들의 연대 총파업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가.
연대총파업을 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강력하게 투쟁하면
갑자기 투쟁이 촉발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기본이다. 94년
파업 때 우선 복귀하라는 김수환, 서경석, 이태복 등 원로들의
얘기가 있었다. 이는 교란시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철도가
다른 사업장들과 강력한 전선을 치게 되면 시민운동 등이 파업을
초기에 옹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렇지만 투쟁
전선이 정말 위력적으로 간다면 오히려 옹호할 가능성이 있다.
사전에 아무리 조직해도 파업하면 옹호할 수 있는 단위는 적을
것이라고 본다.
문
옹호를 넘어서 시민운동이 적대시할 것이라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철도 내에 놓지 말고 그런 것을 맞받아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대사회전선을 만들 수 있는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준비되고 계획적이어야 한다. 이용자들에게 왜
민영화해서는 안 되는가를 설득할 수 있다.
답
철도가 가진 공공성 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문
잠시 도시철도의 상황을 들어봅시다.
답
도시철도의 경우, 철도와 상황이 비슷하다. 전혀 현장에서
고려되지 않는 4대 현안을 가지고 어용노조 집행부가 8월에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98년 20.8%의 정원감축과 공기업
사업장의 모범이 될 만한 것은 다 한 집행부다. 민투위가
현장에서 장악력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선명성과 어용노조에
대항한 싸움을 했다. 독자적으로 싸움을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최대한도로 그 판을 이용해서 파업을 하자고 결의했다. 집행부를
강제하고, 회의체 내에서 어용 세력과 싸웠다. 집행부 내에서
싸웠고, 조합원들에게 유인물 배포 등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조합원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파업찬반투표
이후 잠정합의안이 떨어지면서 독자적으로 부결투쟁을 벌였다.
노조 집행부는 12월 30일 행자부 지침을 비롯한 개인성과급과
정년단축을 위한 직권조인을 단행했기 때문에, 민투위가
현장에서 공동대책위를 제안했다. 공대위는 공투본과 비슷한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구심투쟁을 진행했고.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을 총회에 상정했다. 투표 결과 50.97%로 불신임이
부결되었다. 공대위의 성과들을 가지고 민투위를 해체하고 더
넓은 조직을 꾸리자는 제안도 되었다. 현재 공대위 집행부의
다수가 사퇴한 상황이다. 민투위는 2001년 상반기 구조조정
마무리되는 것에 대한 투쟁을 준비중이다.
문
지부 단위의 현장 상황에 대해 묻고 싶다.
답
철도의 대중조직 지부장이나 간부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판단력을 가지고 활동을 하려면 최소 2년은 걸려야 한다고 본다.
하여간 계속 제명, 전출되면서 지부장들이 작년 하반기에 새로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도력이 불안정한 상태다. 기관사 쪽은
기본적으로 흐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직하고는 계속 갈등이
있어 왔다. 따라서 집행력을 낼 수 없었다. 우선순위를 놓고
보면 현장의 지도력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책, 인식이 제대로 갖춰야 할 것이다. 조직 내 인식 공유,
정비가 최우선적 과제인 것이다.
문
전체 지부 중에서 민주파가 장악하고 있는 지부는?
답
정비창은 지부가 소규모이니까 예외로 둔다면 지부 수로는
대략 30여개이다. 조합원 수는 훨씬 많다. 전체 지부수는
140개이고, 정비창은 소규모니까 그보다는 적을 것이다.
문
지부수로 보면 열세인가?
답
그렇다.
문
조직으로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 철도 내에서 2월
8일 투쟁본부가 꾸려졌고, 전기협(직종별), 공투본, 철민추(준
현장조직) 등이 있다. 이 때 관계설정이 문제일 것 같다. 각
조직간 내용과 동력과 방식이 다 틀린 조직이 함께 만날 때
공투본은 철민추가 접수했다고 볼 수 있는데, 철민추와 공투본은
같이 보면서 철민추의 보다 대중적 단위를 상정할 수 있을 것
같다. 2월 8일 이후에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관건이고,
투쟁전선 속에서 정립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으로 보인다. 그
전선은 민영화 저지 투쟁일 것이다. 네 조직의 관계가
정립되려면 각 조직의 독자적 자기 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상을 어떻게 잡고 있는가?
답
노사정 합의 및 단체협약 반대를 전제로 새로 만든 조직으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계설정은 철민추가 실무를 더 맡는
정도가 될 것이다. 각 지역위원회 조직들이 지역조직의 골간을
이룰 것 같다. 감원이 구체적으로 내려와 있기 때문에
현장투쟁을 조직할 문제가 있고 논의중이다. 어느 단위 건 새로
만든 조직에 복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
궤도 노동자들의 단결은 지금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궤도
노동자의 연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
같은 직종이라고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서울지하철과는 묶을 수 없다. 궤도를 지금 묶는 것은
어렵다. 최소한의 내용과 질이 있어야 하지, 꼭 묶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노조의 최소한의 내용도 못 가진 노조가
있으며, 그 조직이 현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민주산별로 간다면 궤도 쪽으로 묶는 것이 쉽긴 할
것이다. 그래도 공공연맹하고는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문
철민추 내에 논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공투본이 투쟁 속에서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란요인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투쟁할 수 있는 단위로
조직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는 단위도
있는가?
답
있다. 조합에서 틀림없이 도발을 한다.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안을 낼 것이다. 감원에 대한 민주노조에서 가만히 있는 게
옳은 태도가 아니다. 최소한의 현장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행동으로 부정한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조합에서 부정선거를 할 때 정확하게 전선을
쳐서 조합과의 싸움도 또한 같이 되어야 한다.
문
마지막 안전장치, 투쟁본부 건설시 판을 깨지 않는 것을
협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
답
이런 논의는 굉장히 음모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쉽게
드러난다. 순차선거를 요구하느냐, 동시선거를 요구하느냐에
따라 민주노조 진영내부에서도 차이가 있다. 선거조직으로
생각하는 단위는 전기협 쪽에서는 아무나 들어온다. 들어와서
적당히 하는 척하다가 선거 때 입성하려는 거다. 그 사람들은
동시선거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전기협의 22개 지부가 있는데
중심조직들이 있다. 이런 데 3군데만 잡으면 위원장을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건 간선제나 다름없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직선제 판에서 주도권을 쥐게되면 서울, 부산에서
지방본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나머지는 지역은 가능성이
적다. 그러면 제외하자고 민주파에서 이렇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걸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부선거에서는 제휴할 수
있다. 민주파 후보를 낼 수 없는 곳은 기득파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경선을 하기 때문에 문제를 막을
수 있다.
행동을 통해서 판정이 된다. 야심만 가지고 조직하느냐,
행동할거냐 말거냐, 이런건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기관사
쪽에서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고 조합원들은
그런 논의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평조합원 내에서도
전면적으로 불을 지르자고 논의를 하고 있다. 지금은 같이 할 수
있나 없나를 보고 있고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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