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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번 : [85호/연재-기획]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
글쓴이: 남구현 |
등록: 2003-03-20 00:00:00 |
조회: 2043 |
한노정연 제71차 콜로키움에서 발표된 부분을 나누어 연재하게
되었다. 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인 Der Staat und die
sozialen Bewegungen in der kapitalistischen Peripherie am
Beispiel Südkoreas, Frankfurt am Main 1993 에서
제국주의론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 글에 지구화에 대한 테제를
첨가한 글이다. 이 글은 출판을 위해 작업 중 토론을 위해
제출한 글로서, 미완성의 글인 만큼 인용은 완성된 글이 발표된
이후에 정식으로 해주기를 요청한다.
연구논문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남 구 현/ 부소장
1. 제국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의 외화
자본주의 국가가 논의의 대상이 될 때, 국가론적인 관점에서의
연구대상은 일단은 민족국가(Nationalstaat)이다. 자본은
일반적으로 민족국가 단위로 조직되어 있다. 자본에 상응하는
적합한 형태의 국가는 민족국가이지만, 그것은 폐쇄적인
완성체가 아니다. 자본의 운동영역은 애초부터 국제적이었다:
가치(상품)는 출발부터 세계어에 능숙했다. 부르주아 사회는
특정한 생산력의 발전단계 내에서 개인들의 모든 물적인 소통을
포괄한다. 그것은 한 단계의 총체적인 상업적 및 산업적인
생활을 총괄하며, 그러한 한에서―비록 부르주아 사회가
한편에서는 외부로는 민족성(Nationalität)으로 스스로를
확정하며, 안으로는 국가(Staat)로서 스르로를 엮어 조직한다고
하더라도―국가와 민족을 넘어선다. Karl Marx/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MEW 3, p.36 자본의 출생사는
따라서 내부적으로는 민족국가가, 외부적으로는 세계시장이
형성되는 역사이다. 세계시장의 형성은 다시 자본의 국제화를
의미하며, 이는 곧 비자본주의 나라들의 주변화 및 식민지화를
의미하였다. 여기에서는 일단은 제국주의-식민주의-관계에 대해
일단 살펴보기로 한다.
세계시장의 형성, 이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제국주의-식민주의-관계가 수립되는 과정이었다. 세계시장의
맥락에서 중심과 주변 사이의 제국주의 모순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내적인 대립이 그 안에서 표현되는 외적인 대립이다.
제국주의 모순을 자본과 노동 사이의 내적인 대립이 세계적인
차원의 중심과 주변의 모순으로 외화된 것으로 파악하는
여기서의 관점은 상품과 화폐 사이의 모순을 사용가치와 가치의
내적인 대립이 외화된 외적 대립으로서 파악하는 맑스의
방법론에서 영감을 받았다. 상품의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내적인 대립은 따라서 [두개의 상품 사이의]
외적인 대립으로 표현되는데, [서로 대립하는] 두상품 사이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가 표현되어져야하는 상품은 바로 오직
사용가치로서만, 이에 반해 그 상품에 가치가 표현되어지는
상품은 바로 오직 교환가치로서만 의미를 지닌다(K I, p.75f;
p.102). 역사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되는 교환은 상품의 속성에
숨어있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을 발전시킨다. 소통을
위해 이 대립을 외적으로 표현하고자하는 욕구는 자립화된
상품가치의 형태를 발전시키며, 이는 상품의 상품과 화폐로의
이중화를 통해 상품가치의 자립화된 형태를 궁극적으로 달성할
때까지 중단되지 않는다. (같은 책, p.102) 앞서서 자본주의적
발전에 성공했던 유럽의 몇몇 산업국들이 세계를 나누어
식민지화하고, 각기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및
식민지 전쟁을 수행했던 근대적 제국주의의 팽창은 동시에 전
세계를 자본주의적 생산의 헤게모니 아래 포섭하는
과정이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이전의 제국주의와 형태를
달리한다. 이전에도 로마나 중국과 같은 제국은 존재했었지만,
전세계의 자본주의적 생산 아래로의 포섭과 함께 비로소
제국주의-식민주의-관계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존속하기 위한
필연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마치 세계시장 그 자체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과 함께 모든 나라들의 필수적인 존재조건이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세계사상 처음으로 전
지구를 무대로 자신들끼리 양차 세계대전을 치루었으며,
사회주의 진영 및 (신)식민지 진영에 대해서는 공동전선을
형성하였다. 제국주의가 실질적인 세계사로서 발전한 근대
이후에야 비로소 일반적인 추상 수준에서의 제국주의 개념은
현실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일반적 범주로서의 제국주의는
근대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의 산물로, 비록 다른 시대에도
적용된다고는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장된 지금
시대에 와서 실질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따라서 제국주의가
연구대상이 될 경우, 대부분은 그것의 자본주의적 형태가 문제가
되며, 이 글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의미론적으로 볼 때에도, 제국주의라는 개념은 영국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월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것과 함께 비로소 원래적 의미를
획득하였다. 새로운 단어의 생성이 바로 새로운 사회 현상의
등장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일반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역사적 변동을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지진학적 척도이다. 제국주의의 개념도 시기적으로 볼 때
19세기 중엽, 즉 영국에 의해 주도되던 자유무역의 시기에
사회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국가적 공동체,
즉 지구적으로 확장되는 권력과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경제체제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경제와 정치 사이의 전혀 새로운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기자인 콘스탄틴 프란츠(Constantin
Franz)는 1878년에 팽창적인 정치 권력의 발전과 한계를 모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사이의 관계를 설정한 최초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Dan Diner, Imperialismus,Universalismus,
Hegemonie. Zum Verhältnis von Politik und Ökonomie
inder Weltgesellschaft, in: Iring Fetscher/Herfried
Münkler (Hrg.), Politikwissenschaft, Hamburg 1985,
S.327f). 전체 지구의 분할과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중심-주변-관계의 기본 구조의 수립은 영국의 산업혁명 이래
비로소 등장하였으며, 이후 유럽 대륙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보다 분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유럽 대륙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계시장에서의
영국의 독점적인 위치를 위협하게되면서 제국주의적 경쟁은
극도로 심화되었고, 제국주의는 지금의 근대적인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벨러(Wehler)를 인용하자면,
여기에서 우리는 제국주의를 특정한 경제, 사회, 정치적인
문제들과 함께 산업화의 압력에 직면한 서구의 산업국가들이
지구상의 보다 덜 발전한 나라와 비교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방면에서의 우월성에 기초하여 만들어낸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지배와 간접적이고 비공식적인 지배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첫번째 제국(Empire)을 상실한
이후에 새로이 진행된 영국의 팽창을 즉, ‘산업과 제국’
사이의 관계가 처음으로 분명히 드러나고 첫번째 산업국가의
특수한 지위가 해외에서의 독점으로 이어져서 런던이 자유무역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비공식적 제국’의 방식으로 여러모로
안정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을 당시의 영국을 팽창을 우리는
제국주의로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산업혁명이
1830년과 1873년 사이에 많은 다른 나라들에서 촉발되고,
산업경제적 성장이 그들 나라에서 잇달아 유사하거나 동일한
문제들을 야기하고 해외로 팽창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근본적으로 중요한 현상이 되었다. 이를 통해
국제적 경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고, 이러한
경쟁은 서로간의 대립을 격화시켜서 공식적인 식민지 소유권
쟁탈의 형태가 물론 이는 제국주의의 여러 형태들 가운데 오직
하나의 형태이다―제국주의의 전면적인 형태가 되었다.
Hans-Ulrich Wehler, Bismarck und der Imperialismus,
Frankfurt am Main 1984 (1. Ausgabe 1969). 아래의 인용도
참조하라. 말하자면 19세기의 마지막 3분의 1에 해당되는
시기이래 서양의 회사들의 해외와 대륙으로의 확장운동이
무엇보다도 그 시발점을 이루고 있다. 이는 1870년대와
80년대이래 당대의 사람들에 의해 ‘제국주의’로 일컬어졌다.
왜냐하면 개념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져
있는 지배(Herrschaft)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는 했어도
그것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개념 아래에는 a) 보다
발전된 산업국가들의 지구상의 보다 덜 발전된 지역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식적이며 식민지적인 영토지배 뿐만 아니라
간접적이고, 비공식적인 지배까지 포함되어야 하며, 좁은 의미의
식민주의를 의미하는 앞의 지배 형태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b) 이러한 제국주의는 중심부
국가들(Metropolisstaaten)에서 진행된 특정한 사회경제적 및
정치적인 과정들에서 기인하였다(Hans-Ulrich Wehler (Hrg.),
Imperialismus, Düsseldorf 1979, S.11). 영국에서
1848년의 항해조례의 폐지와 함께, 또는 보다 정확하게는
1846년의 곡물법의 제정과 함께 한 시대가 마감되고 영국의
우세가 드러나는 새로운 시대가 즉 자유무역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새 시대를 유지시키는 삶의 정기는 무역이 아니라
산업 생산이었다. 19세기의 마지막 3분의 1의 시기에 진행되었던
제국(Empire)의 제국주의(Imperialismus)로의 전환은 산업
생산력의 지배력에 바탕을 둔 지구적인 영국의 우세가 마감되는
징표였다. 1882년의 이집트의 정복과 베를린회담(1885)에서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는 고전적인 제국주의
시대, 즉 ‘고도의 제국주의(Hochimperialismus)’(W.J.
Mommensen)로 지칭되는 시대로 구분된다. 당시에는 영국의
경제적인 우세에 바탕을 둔 확고한 지배권의 행사는 헤게모니를
둘러싼 정치적 경쟁으로 대치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본래적 의미의 ‘제국주의의 시대’로 간주한다(Dan Diner,
a.a.O., S.329). Wolfgang J. Mommsen, Imperialismustheorien.
Ein Überblick über die neueren
Imperialismusinterpretationen,
Göttingen 1987, S.7f도 참조하라.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은 전 세계로
외화되었으며, 세계의 주변부로 이전되었다. 점차 확장되는
자본주의적인 산업혁명 이래 소수의 중심부 나라들에서의 부의
축적과 동시에 진행된 전세계적인 빈곤이라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형태의 저개발 그 자체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1850년경까지는 산업국가들의 평균적인 일인당 국민소득은
전(前)산업사회들보다 70% 정도를 상회했다. 그 후 국제체제의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는 거대한 불평등이 보다 심화되는
과정이 가속화되었고, 그 결과 남북갈등이라는 사실은 잘못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오늘날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였다(Ekkehart Krippendorff, Internationales System als
Geschichte. Einführung in die internationalen
Beziehungen 1, Frankfurt am Main 1975, S.164). 일반적 위기와
위기가 극복되는 계기로서 세계시장이 형성되고 제국주의적
질서가 등장하는 과정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867년의 일반적 위기이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교통수단의
광범위한 확장은 대양 횡단 기선, 철도, 전신, 수에즈 운하 등
세계시장을 비로소 현실화하였다. 이전에 산업을 독점했던
영국에 대해 일련의 산업국가들이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유럽의
초과 자본의 투자영역으로서 거대하고 다양한 지역들이 세계
도처에서 생겨남으로써, 자본은 이제 분산되어 지역적인
초과투기(Überspekulation)는 용이하게 극복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해 대부분의 이전의 위기의 근간과
위기가 형성되는 계기들은 사라지거나 약화될 수 있었다. K III,
p.506. 또한 내부적인 계급대립을 필연적으로 외화시켜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 대해 1885년 당시 영국의 백만장자였던 세실
로데스는 제국주의자로서의 자신의 부르주아적 의식을 다음과
같이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어제 런던의 동부의
노동자 지역을 방문하여 실업자들의 집회를 방문하였다.
거기에서 빵을 달라고 외치는 소리들로 가득 찬 거친 연설들을
듣고 집으로 갔을 때, 언제보다도 제국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생각은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영제국의 4천만 인구를 내란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식민지 정치가로서 새로운 땅을 합병하여 과잉인구를
흡수하고, 그들이 공장과 광산에서 생산하는 상품의 새로운
판매지를 확보해야 한다. 제국의 존폐는 내가 항상 이야기하듯이
먹는 문제에 달려있다. 내란을 피하려면 제국주의자가
되어야한다.(Lenin, LW 22, p.261에서 재인용)
내부적인 계급모순을 외화시켜야 하는 필연성에 대하여 레닌은
영국의 백만장자이자 금융가의 황제인 세실 로데스(Cecil
Rhodes)의 발언을 인용함으로써 보다 분명히 서술하였다.
로데스는 1885년에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써 제국주의자로서의
부르주아적 의식을 거칠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였다.
나는 어제 런던의 노동자 구역인 동부지역에서 실업자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빵을 달라는 외마디에 불과한 거친
연설들을 듣고 집에 갔을 때에, 제국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어느
때 보다도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의 위대한 사상은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즉 영연방 제국의 4천만 국민을 파괴적인
내란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식민지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영토를 획득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잉 인구가
흡수될 수 있고, 그들이 공장과 광산에서 생산해 내는 상품의
새로운 판매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제국은, 내가 항상
이야기해왔듯이, 먹고사는 문제로 귀착된다. 만약 당신이 내란을
피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제국주의자가 되어야 한다.(W.I.
Lenin, Der Imperialismus als höchstes Stadium des
Kapitalismus, LW 22, S.261에서 재인용)
제국주의는 내적인 자본주의적 모순을 외화시켜야 하는
필연성에서 나타났지만, 단순한 모순의 이전은 모순을
지양시키지 못하고 단지 모순적 운동이 확대 재생산되는 더 큰
활동공간만을 제공한다; 중심부의 자본주의적 모순은 제국주의적
팽창과 함께 지양되지 않고 단지 새로운 운동형태를 취할
뿐이다. 상품에 내포되어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사이의 대립이
상품과 화폐사이의 외적인 대립으로 발전하는 경우에도 역시
모순이 지양되지 않고 단지 모순이 그 안에서 재생산되는 새로운
운동형태가 만들어질 뿐이다. 이것이 대체로 현실에서 모순이
해소되는 방법이다(Karl Marx, Das Kapital I, a.a.O., S.118).
전세계의 제국주의-식민지 질서 아래로의 포섭의 결과는 일단
식민지로부터의 초과이윤의 착취를 통해 축적된 자본은 중심부의
노동자운동 내에서 개량주의의 토대로 작동하는 한편 노동자운동
내의 기회주의와 관련하여 레닌은 엥겔스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그들
사이에 기회주의를 강화하며 때때로 노동자운동이 부패하도록
하는 제국주의의 경향이 훨씬 일찍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점을 언급해야할 것이다. 사실
제국주의의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은 즉, 거대한 식민지 소유와
세계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는 영국에서 19세기 중반부터
등장하였다. 맑스와 엥겔스는 수 십년간 노동자운동의
기회주의와 영국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특수성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추적하였다. 예를 들어 엥겔스는 1858년 10월 7일
맑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사실 점점
부르주아화 하여서, 모든 나라들 가운데 가장 부르주아적인 이
나라가 결국 부르주아적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옆에 부르주아적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까지 나아갔다.
온 세계를 착취하는 이 나라에서는 이러한 사실은 물론 의당
그러할 수 있다고 시인할 수 있다. 거의 4분의 1세기 이후에
그는 1881년 8월 11일에 쓴 편지에서 가장 열악한 영국의
노동조합, 즉 부르주아지에게 스스로를 팔아 버리거나 적어도
그들에 의해 매수된 사람들에게 의해 지도 받고 있는 노동조합과
비교될 수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 쓰고 있다. 또한 엥겔스는
1882년 9월 12일 카우츠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당신은 영국의 노동자들이 식민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이 정치에 대해서
도대체 생각하는 것과 바로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노동자 정당이라고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보수정당과 급진자유주의적인 정당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영국의 세계시장 및 식민지 독점에 기반해서 함께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엥겔스는 1892년 영국의 노동자
계급의 상태의 제2판 서문에서 동일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W.I. Lenin, Der Imperialismus als höchstes
Stadium des Kapitalismus, LW 22, p.288f.). 레닌의 매수이론에
대해서는 같은 책 198쪽도 역시 참조하라. 아직 생산이
노예노동, 부역노동 등 저열한 형태에 머무르고 있는 민족들이,
생산물의 외국에서의 판매를 주된 이해관계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주도적인 세계시장에 편입되자마자, 노예 및
농노 상태의 야만적 잔악함에 초과노동이라는 문명적 잔악함이
첨가되었다. K I, p.250.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인용도
참조하라. 이전의 대륙간 접촉이 항시 돌발적으로 있어 왔다고는
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적 혁명은 최초로 지구가 이제까지
독자적으로 발전해오던 부분들을 서로 엮는 사회체계가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모국에 대해서는 그것의 생산력의 전개가
급속히 가속화되고, 이제까지 유례가 없는 전사회적인 부가
축적되고, 서로간의 싸움 속에 또 여타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가시화되는 파괴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간단히 말해 ‘발전’이라고 불리우는 것을―의미한다면,
이는 제3세계 또는 빈곤한 세계에 대해서는 사회 문화적으로
자율성이 파괴되고, 정치 경제적으로 외부의 결정이
시작되었으며, 저개발의 개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Ekkehart Krippendorff, 같은 책, p.161). 자본의
지배가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자본주의적 모순 역시
일반화되었고, 이에 따라 새로이 첨가되는 족쇄를 떨쳐 버리려는
피억압 민족들의 투쟁 역시 확산되었다. (반)식민지 국가들은
이때에 중심부 국가들에 대해서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변증법적
관계에 서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맑스는 영국과 중국의
혁명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실제로 대립물의 통일이 일반적인 법칙인지 아닌지를
확인시켜주는 적당한 사례로서 중국혁명이 문명세계에 분명하게
미치게 될 영향을 들 수 있다. 유럽의 각 민족들의 다음 번
봉기와 공화제적 자유 및 보다 값싼 정부를 위한 이후의 투쟁이,
러시아의 위협과 그것의 결과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한 전
유럽적인 전쟁 등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다른 원인들보다도,
오히려 유럽의 정반대에 위치한 하늘의 제국[중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에 주요하게 달려있다는 주장은 아마도
언뜻 듣기에는 이상하고 역설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이 아니다.(Marx, Die Revolution in China und Europa, MEW
9, p.95)
아편을 통해 악화되는 중국민족의 퇴폐와 궁핍, 그리고 그 결과
발생한 반봉건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중국의 태평혁명은 영국의
번영 및 경제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맑스에게서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되는
자본주의적 모순의 확대와 제국주의-식민지-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관점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 중심과 주변 사이의
제국주의 관계가 구래의 또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맑스의 분석을 유럽 중심적인 것으로
그리하여 시간 및 장소적으로 더이상 설명력이 없고 일반화 할
수 없는 죽은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주장들은 의미를 상실한다.
예를 들어 하우그는 맑스주의 고전의 테제 및 예측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 입증하는
것(Wolfgang Fritz Haug, Marxismus, Dritte Welt und das
Problem des Eurozentrismus, in: Das Argument Heft 114, 1979,
p.172)으로부터 출발하여 맑스와 엥겔스가 세계사적인 전개를
일정한 지점에서 잘못 생각하였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지구적 차원에서 지배적인 체제간 대립과
제3세계(같은 글, S.173)에서 확인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맑스주의의 고전 저작들을 스스로 유럽 중심적으로 독해했으며
현실을 잘못 파악했다. 그는 맑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혁명으로서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동시에 터져
나올 것으로 생각되었다 (같은 글, p.182)고 쓰고 있는데,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의 후기 저작들에서 각기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상이한 발전경로의 가능성과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나라들에서 서구의 나라들처럼 자본주의 국가가 되지 않고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Karl Marx, Brief an die Redaktion der “Otetsches
twennyje Sapiski”, MEW 19, S.107f; Friedrich Engels,
Nachwort(1894) zu “Soziales aus Rußland”, MEW 22, p.429)
나아가 그가 그리하여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와 발전 도상에 있는
사회주의의 두 세계 사이의 대립이 제3세계를 출현시켰다고 썼을
때에, 그는 제3세계가 제3세계라는 개념 규정의 애매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본질적으로는 세계시장의 출현이래 세계적인
차원의 자본주의적 모순의 현상형태라는 점을 간과하였다. 즉,
체제간 대립이 아니라 중심부의 자본주의적 모순이 중심과 주변
사이의 대립 및 체제간 대립을 출현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제국주의-식민지-관계와 관련하여서 동구의 몇몇
저자들은 맑스와 엥겔스에 기초해서 그들의 언급한 것을 모아
소개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Hauck, Typen
kolonialer Produktionsweise, in: Das Argument Heft 114,
1979; und auch zum Teil, Joachim Heidrich, Karl Marx zur
historischen Rolle des Kolonialismus, i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Heft 11, 1983; Ehrenfried
Galander/Klaus-Dieter Block, Die Rolle der Kolonien im
ökonomischen Schaffen von Karl Marx und Friedrich
Engels, in: Asien, Afrika, Lateinamerika Band 15, Heft 1,
1987를 참조하라). 고전적인 저작들에 서술된 기본적인
사유들로부터 출발하여 오늘날의 자본주의 주변부를 분석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제는 방기되었다.
인도가 영국에 의해 식민지가 된 사례를 분석하면서 맑스는
식민지 종주국이 세계시장을 형성하면서 식민지에서 이중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서술하였다. 즉, 파괴하는 것과 새롭게 하는
것(Karl Marx, Die künftigen Ergebnisse der britischen
Herrschaft in Indien, op.cit., p.221.)이 그것이다. 식민지에
존재하던 기존의 사회질서는 파괴되며, 서구적 사회질서의
새로운 기초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구사회의 개조는 중심부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식민지를
압박하는 제국주의적 압제의 사슬이 부서져 나가든지 중심부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노동자 계급에 의해서 지양될 때에야 만이
식민지 민중이 발전의 결과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철도체계에 따라 출현한 근대적 산업은 인도의 발전과 힘의
발현을 결정적으로 막아왔던 구래의 노동분업과 카스트제도를
없앨 것이다. 영국의 부르주아지가 필요로 하는 모든 조처들은
그러나 인민 대중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거나 사회적 상태를
근본적으로 향상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모두 단지 생산력의 발전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그것을 실지로 점유하고 있는가 하는 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부르주아지는 이 두 가지를 위한 물적인 전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이것 이상을 달성한
경우가 있었는가? 부르주아지가 개인 및 모든 민족들을 피와
불결함, 곤궁과 억압 등으로 마모시키지 않고 진보를 가져온
경우가 있었는가? 인도인들은 영국의 부르주아지가 인도에 뿌린
새로운 사회 요소가 맺은 열매를, 영국에서 지금의 지배
계급들이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타도되거나 인도가 영국이
씌운 멍에를 일거에 벗어버릴 수 있도록 강해지기 이전에는,
수확하지 못할 것이다(같은 책, p.224).
제국주의는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다른 한편에서는
주변부에 속한 (민족)국가 사이에 한나라가 다른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 포섭되어 정치 경제적, 사회 문화적 및 때로는
군사적으로 표현되는 전 사회적인 지배-종속관계로 개념화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한 나라 내부의
내적 모순이 외화되었으며,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시대에 비로소
전 세계사적 문제가 되었다. 내적 모순의 외화로서의 이와 같은
제국주의의 개념규정은 오늘날의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간과하거나 또는 거꾸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인 세계 정복과
이에 반대하는 투쟁을 보지 않으려는 입장에서 보면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볼 때에만 왜 자본주의적인
모순과 이를 극복하려는 투쟁의 동력이 자본주의의 중심부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적 발전이 덜 된 주변부에서 더 첨예하게
나타나는가 하는 일견 역설적인 현상이 설명되어질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주변부에서 내적인 계급모순과 외적인 제국주의
모순이 보여주고 있는 모순의 이중적 성격이 해명되어질 수
있다.
여기에서의 제국주의에 대한 개념규정은 외화된 모순의 내적인
상관관계를 개념적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이러한 점에서
레닌의 제국주의 규정과 차이가 난다. 레닌에 있어서 제국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W.I. Lenin, Der
Imperialismus als höchstes Stadium des Kapitalismus,
op.cit., p.270.)이다. 그는 이러한 간단한 정의는 주된 요소를
포괄하고 있으며 제국주의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모든
것을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요약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정의하려는
현상의 본질적인 지표들을 도출하려고 하자마자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ibid). 정의하려는 현상의 본질적인 지표들은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의 특징들이다. 즉, 1. 독점을 만들어 낼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생산 및 자본의 집적, 2.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과 이러한 금융 자본의 기초 위에 금융 과두제의 발생, 3.
상품수출과 구분되는 자본수출, 4. 세계를 자신의 수중아래
나누어 가지고 있는 국제적인 독점 자본가 연합, 5. 자본주의적
강대국 사이에 지구의 영토적 분할의 완성(op.cit., p.270f.)이
그것이다. 다른 곳에서 레닌은 제국주의의 개념을 식민지주의와
세계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라는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으나,
자본주의의 최고의 마지막 단계로서의 제국주의라는 단계론적
접근이야말로 그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부분이고, 이후의 동구
맑스주의에서 역시 이러한 단계론적 접근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당시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특징들을 세계의 분할의 완성과
제국주의적 강대국들 사이의 전쟁을 불사하는 경쟁의 격화,
자본의 세계지배의 확립 등 - 보여 주고 있는 이러한 정의는
역사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아래와 같은 이유로 제국주의에
대한 일반적 규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1) 레닌에게 제국주의의 개념은 당대의 자본주의에 역사적으로
나타난 특징을 포괄하고 있는 일종의 총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제국주의에 관한 그의 책은 애초에 투쟁을 위한 글로
구상되었고, 제국주의론은 제국주의 아래에서 평화와 개량을
설파하던 제2 인터내셔널의 사회 평화주의자 및 사회
국수주의자들이었던 카우츠키 추종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선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자본주의의 다양한 현상들이 단순히
나열하는 식으로 요약되어 있고 다양한 범주들 사이의 내적인
상관관계는 간과되고 있어서 레닌의 제국주의 분석은 오늘날 그
자체로는 더 이상 설명력을 가지지 못한다. 현상적 특징들의
변화와 함께 제국주의는 새로이 규정되든지 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단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2) 제국주의론의 단계론적 관점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상품
생산의 혼동과 연계되어져 있다. 레닌은 그의 제국주의론에서
자본주의를 고도로 발달한 상품생산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를
인용하자면, 자본주의는 최고도의 발전단계에 도달한
상품생산으로서, 노동력까지도 상품이 된 단계이다. 일국
내에서의 상품교환의 증대, 또한 그뿐 아니라 특히 국제적인
상품교환의 증대는 자본주의를 성격지우는 특징이다(op.cit.,
p.244).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본주의적
생산을 특징지우는 종차는 (노동력 상품을 포함한) 상품교환이
아니라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한 최대한의 타인 노동의 착취가
생산의 자기 목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상품 생산과 자본주의적
생산을 혼동한 논리적인 결과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속성으로서
자유 경쟁의 강조이다. 자유경쟁은 이제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로 제시되는 독점에 대비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레닌에 의해
자본주의의 근본적 속성으로 강조되고 있는 자유 경쟁은
실제로는 표피적 수준에서 일반적 이윤율과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 생산가격을 형성하는 외부적 장치로서, 모든
자본가들이 전사회적인 총 잉여가치라는 공동의 포획물 중에
자신이 투자한 자본의 비율에 따라 자기 몫을 요구하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되어지는 과정을 규율할 뿐으로 잉여가치 자체가
자유 경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경쟁은 보다 많은
잉여가치를 향한 자본의 내적 속성이 관철되는 외적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자본주의의 원래의 내용이 뒤집어져 현상하도록
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이 은폐되도록 작용한다.
경쟁이 보여주지 않는 것은 생산의 운동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규정이다.
3) 실제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는 자신의 본질적 성격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모습을 바꾸며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로서의 제국주의라는 레닌의
규정이 자본주의의 단계적 설정으로서만 남는다면, 제국주의는
공허한 구호와 내용없는 개념으로 남게 되며, 그것으로부터
실질적인 계급투쟁의 전개를 위한 전략 전술을 도출해낼 수 없게
된다.
한편 종속이론가들에 있어서는
중심-주변(Zentrum-Peripherie)간의 착취적 관계가 제국주의
분석의 기초가 되기는 하지만 거구로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성격은 간과되었다. 예를 들어 프랑크는 세계시장 수준에서의
중심과 주변의 모순을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외화로서가
아니라 거대도시화(Metropolitanisierung)와
주변화(Peripherisierung)의 형태를 취하는 자본주의 체계의
집중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다.
리의 분석을 위해 두번째로 중요한 자본주의적 모순은 기존의
자본주의 체계의 집중에 대한 맑스의 분석에 의해 알려졌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모순은 거대도시적 중심과 주변적 위성
사이의 양극화의 형태를 취한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확장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과정은 동시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경제적
발전과 함께 구조적인 저발전을 불러일으킨다(Andre Gunder
Frank, Kapitalismus und Unterentwicklung in Lateinamerika,
op.cit., p.26.).
프랑크의 거대 도시-위성 개념의 취약함은 거대도시-위성-모순을
모든 수준과 영역에서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데에서 볼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동일한 거대도시-위성-모순은 점차 심화되고 자본주의 체계의
모든 수준과 부분 영역을 결정적으로 규정한다. 거대도시와 위성
사이의 이러한 모순적 관계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거대도시적 세계
중심에 의해 잉여의 수취 및 전유의 과정으로서 전체 세계
자본주의 체계를 관통하여 연쇄적으로 연결되어져 있으며, 모든
다양한 민족적, 지역적, 지방적 경제 중심에 걸쳐
발견되어진다.(Ibid., p.28.)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의 민족 경제 내부의 자본주의적
모순과 그것이 외화된 민족 국가들 간의 제국주의적 모순 사이의
차이는 간단히 무시되었다. 거대중심-위성-관계에 대한 엉성한
개념규정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유명한 저발전의 발전 테제가
만들어 졌다. 즉, 상업 자본의 세계적 팽창과 함께 구축된
거대도시-위성-구조는 위성으로부터 거대도시로 잉여가
영구적으로 이전되는 것을 보장하였으며, 이는 주변의 저개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주변의 발전은 거꾸로 이러한
착취적인 중심-주변-관계로부터 이탈함으로써만이 가능한데,
왜냐하면 저개발 국가의 경제적 발전은 외국의 제국주의적인
거대도시의 침투에 의해 장애 당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인 중심-주변-모순이 내용 없는
거대도시-위성-구조로 대체되는 한편에서는 뒤따라가는 자본주의
발전이 가능한지, 또는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발전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와 같은 발전이론적인 문제가 중심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성격과
그것이 취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는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중심-주변-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개념과 하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는 성장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데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란과 스위지에게 있어서
가장 단순한 범주로 그들 논의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프랑크가 그대로 이어 받아 구사하고 있는 경제 잉여(economic
surplus)의 개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경제 잉여는
산출(output)과 소비(consumption) 사이의 질료적
차이(stoffliche Differenz)를 의미하는데, 그것의 세 가지
변형은 실제적(actual), 잠재적(potential), 계획적(planned)
형태의 세 가지 제3세계와 사회주의 진영의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발전의 (불)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구상된 것이다. 이때에
발전은 오로지 경제 성장, 즉 물질적 재화의 1인당 산출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Paul A. Baran, The
Political Economy of Growth, New York 1962, S.18ff). 바란과
스위지류의 잉여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후르티엔네를
참조하라(Thomas Hurtienne, Zur Ideologiekritik der
lateinamerikanischen Theorien der Unterentwicklung und
Abhängigkeit, in: Prokla 14/15, 1974, S.257-259). 그는
프랑크의 시장경제로 규정된 자본주의 개념이 자본주의를 시장
경제, 화폐 경제 그리고 상업 경제로 환원하여, 이를 자연
경제에 대비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자본주의 개념과 다를 바가
없다고 올바로 지적하고 있다(A.a.O., S.263). 그러나 그가
공식적인 거대도시-위성-개념을 환원주의로 규정하여 이러한
논리적 연역주의가 진전된 구체적 분석을 방해한다고 결론지웠을
때(A.a.O., S.262), 그는 프랑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도시-위성-관계의 기본 구조에 대한
형식 분석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방기하였다. 프랑크의 오류는
무엇보다도 그가 잘못된 추상에서 출발하여 제국주의 구조가
지니고 있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잘못 보았다는 것이지, 그가
형태변화에도 불구하고 항상 관철되고 있는 형식적
거대도시-위성-관계를 설명하려고 시도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론에 기반하지 않고 바로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크와 마찬가지로 양적 발전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진행되어진 구체적 분석은 이후의 발전이론적 논의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잉여 생산이 가치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질료적으로(nicht wertmäßig sondern stofflich)
이해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한계는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듯이 발전이론적인 관점을 토대로 전개된 논의들, 즉
종속이론과 주변부자본주의론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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