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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번 : [12호/연재-기획] 독일노조 위기인가?
글쓴이: 김세균/이해영/프랑트 데페 등록: 1996-06-20 00:00:00 조회: 1399

기 ◦ 획 ◦ 번 ◦ 역

독일노조, 위기인가?


김 세 균 (소장, 서울대 교수, 정치학)
이 해 영 (연구위원, 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
프랑크 데페(Frank Deppe) (독일 마브룩대학 교수)



이 글은 김세균, 프랑크 데페 그리고 이해영 3인이 공동수행한 교육부 지원 프로젝트 ‘지구화와 독일노조’의 일부를 재구성한 것이다. 지난 5월호에 실린 <‘지구화 문제’에 대하여>와 함께 읽으면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 속에 ‘전략적 방향상실의 위기’에 처한 독일노조운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5월호에 실린 <‘지구화 문제’에 대하여>도 ‘지구화와 독일노조’의 일부임을 이번 호를 통해 알리고자 한다.

= 차례 =
1. 후포드주의적 이행의 계기로서 노조 위기
2. 전후 자본주의의 구조변화
3. 노조의 현 국면
4. 노조의 대응 전망



1. 후포드주의적 이행의 계기로서 노조 위기

독일노총에 속한 산별 노조는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흔히 강하고 또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된다. 예컨데 미국, 영국 또는 프랑스, 이탈리아의 다른 2많은 노조와는 달리 독일노조는 조합원수, 직장평의회(Betriebsrat)에서의 영향력 - 특히 대기업에서 - 그리고 (가령 주 35시간 노동시간 단축) 단체협상에서의 관철력 등을 볼 때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사실 성공적이었다. 스칸디나비아와 오스트리아, 즉 계급관계의 법제화와 제도화 수준이 높고 사회민주주의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런 나라들의 노조와 마찬가지로 독일노조는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의 ‘모델’로 다른 유럽노동조합들의 ‘선구자’로 간주된다. 유럽의 노동조합은, 유럽연합이 경제연합, 화폐연합, 게다가 복지연합으로 발전함에 따라 ‘산업관계(industrial relations)’ 및 사회정책에 있어 ‘독일모델’을 유럽 차원에서 일반화시키는 일에 독일노조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희망하였다.
그러나 90년대로 진입한 이래 그런 기대와 희망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1990~91년의 독일통일 시기에 조합원수를 7백 80만 명(1989)에서 1천 1백 8십만 명(1991)으로 늘릴 수 있었던 독일노조는 이제 학계와 정치에서 위기 담론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조직정책상의 변동과 독일과 다른 모든 선진자본주의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사회경제적 정치적 변동을 반영하고 있다.
- 조직정책을 볼 때 독일노총 산하 노조는 1992년 이래 심각한 조합원수 감소에 직면해 있다. (1991년의 1천1백8십만에서 1994년에는 9백7십만으로 감소했는데, 1995년에도 - 약간 둔화되긴 했지만 - 이 경향은 계속되고 있다(Löhrlein 1995, 85ff.). 이 경향은 무엇보다 1992~93년 이래 늘어나고 있는 실업자에 그 원인이 있다 (그간 실업자는 4백만에 달했는데, 최소한 6백만의 일자리가 모자란다고 보고된다). 동독에는 실업율이 훨씬 높다. 그곳에서 노동조합들은 부분적으로 급격한 조합원수 감소를 경험해야만 하였다. 일자리 감소는 특히 산업부문에서 일어난다 (이는 특히 금속노조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런 변동의 결과 어떤 노조는 심각한 재정문제 (조합비 수입이 감소하는 결과로)에 직면하게 되었다. 독일노총은 이미 ‘군살빼기’ (일부 노총 단위조직의 해체, 직원해고, 업무영역의 축소)를 단행했으며, 비슷한 조치들이 산별 노조의 토론안건에 올라 있다.
- 토론안건에 오른 조직개혁에 관한 논쟁에서 논의 주제는 단순히 독일노총과 (16개의 산별노조의 상급조직으로서) 산하 산별노조 (특히 최대 노2조인 금속노련, 화학노련, 공공노련) 사이의 관할관계 혹은 권한분배만이 아니다. 노조간의 융합과 합병을 통해 (예컨데 화학노련과 광산-에너지노련 IG Bergbau und Energie는 이미 통합되었다) 조직의 영역이 새롭게 규정되고 있는 과정이다. 나아가 우편과 철도의 민영화 결과 이 부문의 노동조합은 (체신노조 DPG와 철도노조 GDED) 막대한 노동법 및 조직정책적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 실업이 만성적으로 되고 나아가 점점 더 심각해진 이래로 (70년대 1백만, 80년대 2백만, 90년대 3백만) 노동조합은 단체협약과 기업별 이익대변 과정에서 수세로 몰렸다. 뿐만 아니라 공공예산의 재정위기가 복지국가 제도에 가하는 타격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완전고용과 높은 수준의 사회정책적인 보장이라는 축과, 그리고 회사법에 따른 직장평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기업 차원과 임금과 노동시간,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단체협약에서 강력한 노동조합 대항권력이라는 축을 기반으로 했던 전후 황금시대의 사회모델 (‘포드주의’)은 점차 쇠락해간다. 여기에 더해 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지구적 경쟁력을 목표로 하는) ‘생산입지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와 대치하고 있다. 공급지향적인 이 정책은 인플레 퇴치와 국가지출 제한, 세금, 임금 및 임금부대비용 등 기업부담의 감면과 기타 규제철폐에 우선적인 비중을 둔다. 따라서 노조는 (그리고 복지국가제도들은) 정치 차원에서도 역시 심각한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노동조합의 위기는 이렇듯 이른바 포드주의의 ‘침식위기(Erosionskrise)’가운데 하나의 계기 내지 후포드주의(Postfordismus)로의 이행의 한 계기에 다름 아니다. 노동조합의 위기는 따라서 조직 및 재정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심각한 정신적-도덕적, 전략적 방향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 상실의 위기는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혹은 랄프 다렌도르프의 표현을 빌자면 ‘사회민주주의 세기의 종말’)와 동유럽 ‘국가사회주의’의 파탄으로 인해 더욱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이러한 변화가 진행되었고 또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정치적 전략적 옵션이 노조내에서 논의되고 있는가에 대해 이하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전후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

전후시기 첫번째 세계경제위기(1974~75)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지탱해 온 경제적 기초는 다음과 같이 동요하게 된다. (성장율, 생산성, 이윤율의 위기와 특히 브레튼 우즈체제의 위기와 해체)
- 인플레 압력에 대응해 임금수준을 유지하고 또 생산성 증가분 가운데 일부를 노동자가 되돌려 받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단체협약이 필수적이라는 그러한 전제가 의문시되게 되었다. 대개의 경우 단체협약은 예전의 ‘성과물’을 노조측이 포기할 때에만 성립된다.
- 임금유연성에 대한 요구와 동시에 고용유연성 (즉 ‘쓰다가 잘라버릴’ 권리)에 대한 요구.
- 통화팽창 억제와 국채 제한을 위한 완전고용개념의 포기.
- 중심부 자본주의에서는 국유화된 산업들을 민영화하거나 구조적으로 취약한 업종에 대한 보조금을 축소하는 방식으로의 시장개방.(Glyn et al., 1990, 115f)
70년대 말 이래 확산된 유럽노동조합 위기의 원인이 단지 대량실업의 결과만으로 환원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반적인 ‘형태위기(Formkrise)’ 혹은 '구성체위기(Formationskrise)'라는 큰 맥락 속에서 이 위기가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구조화된 실업과 혹은 더욱 많은 인구가 경제활동에서 장기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그 전반적 위기의 단지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더우기 - 가장 주요한 경향들만을 지적하자면 - ‘포드주의적인 대중노조’의 사회적, 조직적 기반인 산업노동자층이 감소되고 있다. 새로운 부문 - 사영 서비스업 및 매체업 (방송통신) 부문 - 에서 노조가 정착되기란 현재 대단히 어렵다.
R. 에빙하우스(Ebbinghaus)와 V. 비써(Visser)는 자본의 중심국 노조가 70년대 후반 이래 - 경제지구화의 영향으로 더 심각해 지고있는 - 직면한 그야말로 극적이고 생사가 걸린 이 도전을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국적 노조는 사나운 바다에 떠있는 빙산 위에 있는 셈인데, 점차 줄어드는 빙산의 지탱력은 ‘국경없는’ 연대를 향한 가교(架橋)를 놓기에 너무나 부족하다.”(Ebbinghaus/Visser, 1992, 17ff)

3. 노조의 현국면

70년대초 이래 노동조합의 발전과정은 세개의 국면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있었던 서유럽에서의 ‘집단적 동원’ 혹은 ‘계급갈등의 부활’국면 (콜린 크라우치 Colin Crouch)에 이어 70년대 중반부터는 '화합(Konzertierung)' 국면 혹은 '신조합주의(Neokorporatismus)' 국면이 전개된다. 물론 노동조합의 성장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국가 차원 및 거시경제 차원에서 조합주의적인 (삼자주의적인tirpartistisch) 체제가 가능했다.
세번째 국면은 - 80년대 중반 이후 - '유연성'의 국면이라 칭할 수 있다. 전략구도상의 근본적인 변동과 그리고 조직된 임노동측에 불리한 방향으로의 노-자 역관계의 극적인 이동은 이 국면에서 압도적으로 된다. 즉 80년대 중반 이후 경제성장이 제자리를 찾았고 - 일정한 또는 더 커지는 실업률과 함께 - 또한 동시에 ‘92년 유럽시장 단일화’ 프로젝트와 함께 기업가단체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노동조합 역시 경제성장과 현대화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 상황이 더욱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및 정치적 변혁의 결과 경제제도와 노동관계에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여기에는 단체협약정책 및 기업별 이익대변에서의 변화도 포함된다. 거시경제적인 관리와 경제정책적인 협조보다는 기업의 미시수준에 더 큰 무게가 주어진다. 새로운 경제조건에 적응과정에서 핵심행위자는 정부가 아닌 경영자층 - 초국적 기업의 - 이다. 경영자층은 지난 수십년간 잃어버렸던 헤게모니와 권위를 되찾았고 이는 기업과 사회관계에 급격한 변동을 야기하였다”.(Regini 1992, 7-8) 1994년 리차드 하이만(Richard Hyman)이 기술한 것처럼 “산업관계의 의제가 경영측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Hyman/Ferner 1994, .4)는 것은 오늘날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변동중 어떤 것이 특히 노동조합의 행동조건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
첫째, 노동관계 형성과정으로부터 국가의 퇴각과 기업수준에서의 자율성 재평가는 일반적 발전경향으로 간주되고 동시에 이는 ‘케인즈주의적 복지민족국가’로부터의 일탈에 조응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탈규제와 유연화를 관철시키는데서 국가가 더 이상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80년대의 국가개입은 노동조건의 탈규제화와 노조의 지위 약화를 겨냥한 법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시도에 우선적으로 집중되있다.
둘째, ‘유연성’ 국면의 특징은 임금문제가 노동조건, 노동관계의 이른바 ‘질적인’ 측면들에 비해 비중이 감소한다는데 있다. 여기에는 통화긴축정책을 통한 인플레퇴치에 무조건적인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통화주의적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재정정책이 거둔 상당한 성과 역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로 인한 실업자와 국채의 증가를 감수해야만 하였다. 물론 임금문제의 위상 약화와 함께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단축을 둘러싼 대립이 전면에 등장한다.
셋째, 거시차원에서 미시차원으로, 수요측면 (임금측면)에서 공급측면 (생산성과 경쟁력)으로의 중심이동과 더불어, 기업차원에서의 새로운 노사관계 창출이 신노동정책의 과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신생산개념’ 혹은 탈테일러주의적 경영철학들은 노동요소가 지닌 창조 잠재력을 활용하고자 시도하고, 이것은 생산성향상과 세계시장에서 기업경쟁력향상 (지속적인 생산개선과정)이 작업과정에서 개인에게 더욱 많은 공간을 부여하고 그리고 민주적인 기업구조, 작업팀의 자율성, 기술혁신서클 지원 등과 결부된 그러한 ‘새로운 기업구조’를 신경영철학은 광고하고 있다.
넷째, 유럽의 노조정책이 ‘탈이데올로기화’ 혹은 ‘실용주의화’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던 정치적 노선노조간의 차별성은 노조정책의 일국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 모두에서 그 의미를 현저히 상실하였다.

4. 노조의 대응전망

노동조합의 미래에 대한 진단은 현재로서 비관적이다. 대다수 미래 시나리오들은 포드주의적 전후 자본주의 구성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성체를 형성해 온 70년대 말 이후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변화가 금세기 말까지 계속될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지구화, 신기술, 금융자본의 지배 (‘카지노 자본주의’)와 이에 의한 방송 통신부문의 지배, 민족국가 주권의 해체, 만성적인 대량실업, 사회의 파편화 그리고 노동계급 구성의 이질화 등 격변기의 이러한 현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포드주의하 노조정치의 일정한 성과를 가능케 했던 기본틀, 다시 말해 케인즈주의적, 일국적 복지국가와 거시경제적인 조정, 규제되고 제도화된 노동관계, 그리고 노조가 향유했던 권한에 기초한 보편주의적인 정치지향성이 점차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스핑-앤더슨(G. Esping-Anderson)의 다음의 세가지 시나리오(1992, 143ff)를 참고해 보자.(Esping-Anderson 1992, 143ff.)
- ‘고용없는 성장’(jobless growth) 모델은 성장과 노동시장의 분리가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해외로 이전되고, 경제는 고부가가치 제품과 경영혁신적인 서비스부문에 의해 좌우된다. 복지국가 제도의 계속적인 쇠퇴는 이미 예정된 것이다.
- 일국적, 국제적 수준에서의 ‘기업내 복지국가’(intra-firm welfare state) 모델은 민족국가 차원의 단체협약과 정치적 규제를 통한 기존의 산별, 업종별 합의와 같은 기업총괄적 합의가 약화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기본적으로 초국경적인 새로운 합의 과정의 중심 행위자는 물론 초국적 기업이다. 이는 특히 유럽 기업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비교적 좋은 노사관계는 지속적 탈규제라는 바다의 작은 섬에 불과해 질 위험을 노조에 제기하고 있다.(아울러 Schulten 1995, S.97 ff.를 참조)
- ‘새로운 서비스경제’ 모델 역시 사회정책에 심각한 부담을 제기한다. 이는 불안정하고 직업훈련이 불필요한 그리고 승진 기회도 없는 그렇지만 언제든지 사회 빈민층으로 전락할 지도 모를 새로운 ‘서비스 프롤레타리아’ - ‘신자영자층’의 일부 역시 이에 속한다 - 의 창출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써(J.Visser)는 한편으로 유연화와 초민족화라는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적인 이익대변을 옹호하고 나아가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데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는 그런 행동력있는 노조가 더욱 절실하다고 말한다 “유럽의 노동조합운동은 업종과 기업, 직업집단 각각과 전체에 대한 집단적인 이익대변의 전통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유럽의 노조운동은 기업별을 넘어 기업포괄적인 단체 협상구조를 - 그것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 포기하는데 대항해 열렬히 저항해야 한다. 그런데 동시에 노조운동은 이질화된 노동자층과 자본이 제기하는 변화된 요구와 압력에 대응하여 새로운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요구도 받고 있다. 노조는 ‘유연화’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자 해야하며, 유연화의 주요적대자로 간주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이는 물론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문명화된 노동조건이라는 최소 조건과 기준을 방어하고 개선하며 또 확장시켜 나가는 것 역시 노조의 기본과제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강력한 대항권력 없다면 자본은 자신의 힘과 자유를 악용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문명화된 자본주의의 장래를 위해서는, 개별 자본가들이 좋은 이윤기회로 악용할 ‘무노조’ 업종이 생기는 것을 막는 일이 노동조합과 입법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유럽에서는 이 문제가 1992년 이래 특히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노조 조직과 활동의 존재와 질과 관련해서 다양한 지역 경제와 노동시장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Visser 1994, 43)
하지만 당장은 ‘병이 병을 낳는’ ‘쇠퇴의 악순환’을 돌파할 전망이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지닌 헤게모니는 바로 이 상대적 무기력성에서 표출된다. 상품과 자본, 정보의 지구적 운동에서의 게임규칙에 대한, 그리고 주로 민족국가라는 틀 안에서 움직이는 정치적, 사회적 행위자의 행동능력에 대한 ‘정의권력(Definitionsmacht)’으로서의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실은 세계시장이라는 ‘물적 강제(Sachzwang)’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노조위기는 그러므로 노조가 세계경제의 '포로(Gefangene)'라는 사실, 즉 세계시장의 헤게모니권자 특히 초민족기업 및 금융제도에 대해 구조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실의 표현인 것이다.
지구화에 대한 독일노총의 대응전략은 독일노총 의장 디이터 슐테(Dieter Schulte)는 ‘적응인가 몰락인가’라는 정식에 잘 나타나고 있다.(Schulte 1995, 35ff) 이 전략의 기본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자본주의를 해방적으로 변혁하려는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 소비에트 식의 ‘국가사회주의’ 형태건 아니면 ‘케인즈주의적 일국 복지국가’(밥 제솝) 식의 사회민주주의적 구상의 형태이건 - 좌절하였다. 자본주의 중심국가에서 (1945년 이후에는 독일에서도 역시) 노조운동내 좌파의 강령적 자기신조였던 ‘제3의 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노조가 거둔 최대 성공은 자본과 국가의 사회동반자로서 가능했던 것이다. 특히 구동독의 경제와 사회, 정치를 변혁함에 있어서는 그런 사회동반자적이고 협력적인 정치형태가 필수불가결하다.
- 과거 ‘계급타협’을 강제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대항권력은 오늘날에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오직 이 때 기술변혁과 사회적 문화적 구조변동, 특히 지구화가 강요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에 적응할 수 있는 틀을 경영측 및 국가와 공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혁신과정, 임금산정, 노동조직 등에서 탈위계적인 협력형태를 형성해 나가기 위한 새로운 유연화전략 개발에 있어서 기업과 사업장 수준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기업별화 Verbetrieblichung'). 바로 여기에서 이른바 ‘신생산개념’의 잠재력이 노동자측의 이익을 위해 쓰여질 수 있게 된다 (탈서열화, 팀작업의 자율성, 신 ‘기업문화’, 기업소속감corporate identity). 이것은 전통적인 계급투쟁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 그리고 현재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일국 차원과 지구적 차원 각각에서) ‘철학’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판적으로 대결하려는 입장의 포기와 혹은 조직내적으로 최소한 주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와 같은 순응전략은1) D.Schulte는 위의 글에서 독일 노동조합들의 성공전략을 이렇게 정리한다.“독일 노동조합들은 자본주의적 노동사회 형성에 건설적으로 참여해왔다. 생산성향상을 지향하는 단체협상 파트너정신 및 회사법을 가지고 말이다.”
노조가 경쟁정책 (‘생산입지의 유지’)의 기본전제들을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독일경제의 기술혁신력과 세계시장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직장평의회들이 임금비용의 제한 특히 부대임금비용의 제한(복지축소)과 노동력투입의 유연화(특히 노동시간조정)에 관해 협상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독일식 자본주의 모델 (고임금 모델)이 ‘한물 간 모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재편’에 대해서도 협상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복지국가가 장기실업자를 위한 비용, 인구증가, 막대한 독일통일 비용과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해 구조적인 재정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 ‘노조에 가까운'(gewerkschaftsnah)것으로 간주되는 - 괴팅겐 사회학 연구소(SOFI) 산업사회학자 호르스트 케른(Horst Kern)은 지구적 경쟁 속에서 독일의 생산입지 유지를 위한 전략전환의 전제로 노동조합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독일 노조가 개념화하고 추진하는 사회보장의 종류와 방식은 기술혁신문제의 해결에 기여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급진적 기술혁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Kern 1995, 13)
- 노조 정치의 현대화라는 의미에서의 순응이란 따라서 임금투쟁과 일자리감소 반대운동, 복지축소 반대운동, ‘신 정치’를 둘러싼 대결 대신에 노조의 새로운 정치관이 등장함을 의미한다. 만일 이를 통해 기존의 일자리가 보장되고 (“폭스바겐 모델”)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기만 한다면, 노조는 임금인상을 포기하고 ‘복지국가의 재편’에 참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금속노련 의장인 클라우스 쯔빅켈(Klaus Zwickel)이 95년 11월 정부와 사용자단체에 제안했고 그 뒤 ‘수상 면담’과 기타 다른 대화를 통해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노동을 위한 동맹(Bündnis für Arbeit)’ 개념의 핵심이다(Zwickel 1995a, 1995b).
이런 협력관계는 오직 세계시장 경쟁의 ‘규정력’이 자신들의 행동 논리를 결정하고 있음을 그 참여행위자들이 인정할 때만 실현가능하다. 폐업, 생산입지 해외이전, 대량감원 등의 압력때문에 불가피하게 생산입지 경쟁 논리를 수용한 노동조합과 사업장 이익대변체들의 지위는 이미 하위파트너 (‘Juniorpartner’)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게임 규칙의 내용 자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독일노조내에서 진행중인 현대화논쟁과 함께, 하버마스, 울리히 벡(Ulrich Beck), 앤소니 기든스 등의 사회분석과 ‘신사회운동’ 및 녹색당의 정치구상에 의거하여 사회과학계에서도 토론이 진행중이다. 특히 노조와 관련해서 다음 테제들이 부각된다. 인격의 지배적인 사회화 유형인 개인화, 산업노동자층의 핵심집단의 해체와 ‘프롤레타리아적인 생활세계’의 해체, 청년층 의식형태의 변화 (노동세계 및 ‘프롤레타리아적 도덕가치’와 결부된 ‘유물론적 가치지향’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사회문제 (자본 대 노동)에 대한 생태환경문제와 여성 평등문제의 비중 증대등. 노조는 그러므로 전통적인 중앙집중주의적 조직개념과 정치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생활세계 경험와 관련된) ‘담론 조직(Diskursorganisationen)’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된다.(Zoll 1994., 37 ff). 이에 대한 비판은 Deppe(1994), 24 ff.를 보라
. 즉 노동세계의 형성을 위한 정치에서 노동조합은 특히 그 전통적인 집단주의와 보편주의 지향적인 이익정책을 포기해야 하며, 대신 유연화전략의 핵심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와 노동세계에서의 참여형태를 제도화할 것이 요구된다.(Matties / Mückenberger u.a., 1994)
독일노조내에는 물론 위와 같은 현대화를 위한 순응개념에 비판적인 전략적 지향 역시 존재한다. 이 지향은 전통의 단순한 방어가 갖고 있는 약점과 또한 노동과 생산에서, 사회와 문화영역, 그리고 정치와 이데올로기 등에서 포드주의의 ‘후포드주의’로의 형태변화와 결합된 새로운 도전에서 출발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이러한 전략의 전개는 복합적이면서도 개방된 학습과정 속에서 수행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물론 다양한 개인 이익과 집단 이익을 임노동자 전체의 이익과 결합시킴과 동시에 또한 이를 실업자 즉 임노동체계도 밖으로 배제된 자들의 이익과도 결합시키는 그런 학습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전략적 지향은 오직 신자유주의적인 지구적 지배블록의 하위지위 혹은 하위파트너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세계경제의 ‘규정력’에 복속되지 않는 그런 사회경제적, 사회문화적 발전경로의 전망을 - 다른 세력들과 공동으로 - 제시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신사회계약’ 또는 ‘지구적인 뉴 딜 (Global New Deal)’의 필요성에 대한 국제적 논쟁이 이러한 지향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의 이윤가능성만이 아닌 사회의 일반 이해가 다시 중심에 서는 세계경제질서, 그리고 사회적, 생태학적으로 유지가능한 그런 세계경제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정치적 노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지배적인 물적 강제를 자연법칙으로 수용하지 않는 급진적 사고와 행동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Schmitthenner 1995 참조)
이와 같은 ‘대안 블록(alternativer Block)'을 만들어 나가는 것과 또 이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을 새로이 정의해 내는 일은 물론 간단치가 않다. 노동계급 내 그리고 사회의 주변계층내의 이해관계의 분화, 그 사회적 구성의 이질화를 감안할 때, 상이한 이해관계들을 하나의 일반이해 개념의 틀로 묶어 총괄하는 것은 지난한 과제이며 따라서 이러한 전략의 형성은 극단적인 긴장에 의해 항상적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선 다음과 같은 문제에 답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첨단기술부문과 서비스부문의 신노동자층을 (그들의 문화적 정치적 지향성은 ’신사회운동’의 정치문화에 크게 영향받고 있다) 조직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적인 -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율을 보이는 - 산업노동자라는 지지기반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높은 수준의 직업 교육훈련을 받은 노동자집단을 위한 이익대변을 실업자들의 이익, 노동시장 주변층의 이익과 합치시킬 수 있는가? 동독지역의 심각한 산업해체 과정을 볼 때 어떻게 안정된 노동조합적 이익대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합리화로 인한 인원감축 과정을 새로운 고용정책으로 상쇄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이 경제적, 생태학적, 사회적인 기본틀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조건에서, ‘신생산개념’의 형성잠재력을 활용할 수는 없는가? 생산성은 상승하는데도 실업자가 증가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즉 성장과 노동시장조건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며 또 필요한가? 생태학적 개조를 일관된 정책으로 행했을 때 그를 통해 구제되는 노동시장 예비군들은 과연 누구일까 ? 세계시장의 ‘규정력’에 대한 대항권력, 다시 정확히 말해, 초국적 기업과 은행의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권력을 만들어내려면 어떤 형태의 저항과 국제적인 노동조합 협력이 필요하겠는가? 사회에서 생산된 부를 도대체 어떤 형식과 제도로 새로 재분배해야 지구적인 사회양극화에 대처할 수 있고 또 공공연한 빈곤의 덫에 빠진 사회정책을 구출해낼 수 있는가?
이밖에도 다른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위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노동조합적 이익대변의 기능과 (특히 단체협상정책) 그리고 생활수준, 사회정책적인 복지, 경영참가권 및 이윤분배권, 노동시간조정 등등을 위한 포괄적인 규칙을 둘러싼 대결의 기능 등 고전적인 활동들을 이제 새로이 구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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