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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번 : [16호/연재-기획] 러시아 노동계급의 연대성과 투쟁 성향
글쓴이: 임경훈 등록: 1996-12-01 00:00:00 조회: 1418

러시아 노동 계급의 연대성과 투쟁 성향
-쿠즈바스와 보르쿠타의 광업 및 철도 노동자를 중심으로

임경훈(서울대 정치학 박사)

이 논문은 지난 10월 26일 연구소에서 있었던 제16차 이론연구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필자가 요약 정리한 글이다.

1989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노동 파업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왔다. 고인플레이션 아래 임금이 수개월 동안 체불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파업의 증가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러시아 노동자들의 파업 빈도나 진행 형태는 산업 및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대부분의 산업 및 공공 부문과 달리, 운송 섹터에서의 파업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둘째, 노동운동이 상대적으로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석탄 산업 내에서도 파업의 빈도나 패턴은 지역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말기, 현재의 우크라이나에 속한 돈바스와 함께, 광부들의 파업을 주도하였던 쿠즈바스와 보르쿠타 간에 이러한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보르쿠타 지방의 탄광 노조들이 빈번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파업을 조직하는 데 반하여, 쿠즈바스 노조들은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 광부들의 파업이 쿠즈바스에서는 자연발생적인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본 연구는 이러한 산업간, 지역간 노동투쟁성향의 차이를 설명함으로써 노동쟁의의 전반적 증가 및 변이 현상이 탈공산 사회에서의 노동운동과 관련하여 갖는 의미를 규명하고 있다.
1989년 소비에트 광부들의 첫 파업 이후 러시아 신노동 운동의 동조자들은 러시아판 자유 노조 등장의 희망을 가졌었는데, 이러한 희망은 폴란드에서와 같이 민주 세력들의 결집, 시민사회의 성장, 민주 정체 및 개혁 경제로의 이행에 신노동 운동이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분명히, 광부들의 파업은 일상적인 경제적 이슈들로부터 구조적, 정치적 이슈들로 급속히 이행했으며, 일 년 내에 노조와 정당의 기능들을 결합한 조직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은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것이었을 뿐, 실제적이지는 못하였다. 폴란드와는 대조적으로, 노동자와 인텔리겐챠 간의 결합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사회의 제부분을 단결시킬 종교적 응집력이나 민족주의적 정서도 없었다. 그러나, 폴란드 솔리대러티의 기원에 관한 최근의 몇몇 연구들이 보여주듯이, 이러한 요인들이 노동운동의 성장에 결정적 변수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연구논문

러시아 노동 계급의 연대성과 투쟁 방향

본 연구는 노동자들의 투쟁 성향이 산업,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봄으로써 광부 노동운동 또는 신노동 운동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두 가지의 장애물을 밝히고 있다. 첫째, “약한” 국가의 실패, 특히 노동 정치 및 산업 관리의 제도 개혁 실패가 악화시킨 산업간 임금 경쟁 격화가 포괄적이면서도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운동으로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둘째, 노동운동, 특히 선도적이었던 광부들의 운동조차 외적 자원들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내적 연대에 기초한 자립적인 운동 조직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 내부의 분열과 조직상의 딜레마는 민주화와 경제 개혁이 소비에트 시기의 유산(특히, “산업적 온정주의”와 시민사회 전통의 부재)을 새로운 조건 하에서 재창출하고 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이와 같이 노동운동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가운데 노사 분규나 파업 등 러시아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노동자들 특히 핵심 산업의 노동자들이 노동 연대를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경영진과 공모하거나 경영진들에 의해 동원되어 파업이 증가되고 있기 때문으로, 이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연대성의 경계를 지적함과 동시에 연대성과 투쟁성 간의 괴리가 증폭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괴리는 개혁 시기의 경제적 고통 그 자체보다는 정치, 제도, 조직상의 변수들에 의해 증대되고 있는데, 즉 러시아의 경우처럼 “약한 국가와 약한 사회가 마주쳤을 때” 개혁 정부가 개혁의 두 가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참여적인 사회 협약이나 기술 관료적인 일방적 통치 방식 사이에서 우유부단해짐으로써, 제도적, 정치 문화적 유산들이 개혁되지 못하여 지대 추구형의 대기업과 구공산 산별 노조들이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이러한 조직들에 노동자들이 계속 의존하게 됨으로써 자율적 노동운동의 성장이 방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노조 정치의 제도 개혁 면에서, 러시아 정부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조 선택 여부를 재언명토록 하고 그에 따라 구노조의 재산을 재분배하는 정책보다 개혁에 적대적인 구노조들과 일종의 코포러티즘적 제도인 “사회 및 노동 관계 규제에 관한 삼자협의체”에 편입시킴으로써, 구노조와의 동반자 관계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삼자협의체의 주된 목적인 산업 평화가 달성되지 못하였는데, 이는 FNPR 자체도 내적으로 분열되어 정부 보조금과 임금을 둘러싼 구성 산별 노조들간의 경쟁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효과 면에서도, 옐친의 이러한 정책은 사실상 와해의 위기에 놓였던 구공산 노조와 그 연합체인 FNPR의 위상을 회복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삼자협의체를 통해 이들은 정부로부터 조직으로서의 승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삼자협의체 내에서 노조 부문을 지배하게 되었다. 나아가, 이 삼자협의체는 구노조와 산업 노멘크라투라의 로비 그룹들이 정책 수립 단계에서 개혁 정책을 저지하는 공동전선을 펴는 제도적 기구가 되었다. 또한, 구노조 재산을 몰수, 재분배하지 못함으로써 구공산 세력의 가장 가시적인 사회 조직을 방치, 개혁 반대 세력을 온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시장경제 개혁에 따른 노동 법령들의 개정 또한 그것이 대체로 신구 노조 모두를 약화시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노조간에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기보다는 “다수결 원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신노조들이 입는 타격이 더욱 크다. 노조 정치의 제도 개혁에서 이러한 신노조의 불리는 듀마와 노동부 내 보수세력의 득세 결과이기는 하지만, 개혁정부가 직면한 딜레마를 웅변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신노조들을 인정, 노동조합들을 편린화시켰을 때 노동분규의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다수결 원칙을 채택하자 구공산노조와 그 연합체인 FNPR을 인정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노조 정치의 제도개혁이 신노조에 대한 구노조의 우위를 확보케 하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진정한 승자는 구노조의 우산인 FNPR보다 그 성원인 구산별노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산업관리체제의 구조개혁이 타협적으로 진행되고, 그 결과 산별노조가 각자의 경영층과 공모하여 경제섹터간 경쟁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왜곡된 민영화로 인해 대기업의 국가의존행태가 개혁되지 못하였고, 이윤추구보다는 국가지원을 위한 산업로비그룹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파업의 이유가 되고 있는 임금체불이 그 산업의 경영진보다는 거래기업과 정부의 지불태만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전가되고 있다. 그 결과, 국가재정 빈곤에 따라 전반적으로 불가피하게 강화되고 있는 강성예산유인들은 국가지원에 대한 섹터간, 지역간 경쟁을 격화시키고, 지대추구형 대기업들에서 노동자들과 경영층 사이의 국가지원획득을 목표로 하는 공모행태를 영속화하고 있으며, 오히려 경영층에 의해 정부보조금을 목표로 하는 파업들이 사주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산업관리체제 개혁에서의 실패와 그에 따른 기업의 정부에 대해 계속되는 의존은, 전반적인 파업증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노동계급이 지역 및 산업에 따라 서로 분열, 경쟁하게 되는 제도적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 즉, 정부보조와 여타의 특별조치를 따내기 위한 지역간, 섹터간 경쟁이, 한 산업 내에서 경영진과 노동자 또는 다양한 직업군 사이에 발생하는 분배문제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개혁 지향적 신노조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여건이다. 즉, 산업 관계가 신노조가 원하는 것처럼 경영층 또는 소유주와의 투쟁 구조로 변경되고 있지 않고 있으며, 격화되는 섹터간 경쟁에서는 특정 직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신노조보다는, 해당 산업의 모든 피고용인(경영층을 포함한)을 회원으로 하는 구공산 산별 노조가 그 대표성과 협상력에서 우월적 지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체임을 둘러싼 노사 분규 해결에 대한 신노조들의 대경영진 투쟁 전략보다 구공산 산별 노조의 대정부 파업 전략이 경영층의 지지를 확보하게 되고, 보다 손쉽고 가시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 산별 노조들이 한정된 정부예산에서 자신들의 몫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파업(copycat strikes)을 조직함으로써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가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캄포스와 드리필(Calmfors와 Driffill) 그리고 프리만(Freeman)이 우려한 상황, 즉 중간수준의 노조간 협력(즉, 산업별 협력)이 도래하였고, 그에 따라, 높은 수준의 명목임금 인상 및 인플레이션 증가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는 현재의 노동계급 내 연대 수준이 노동운동뿐 아니라 경제개혁의 진행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파업의 증가가 노동자들의 연대성보다는 노동 내 경쟁격화를 의미하는 상황에서, 철도 부문에서의 산업 평화는 분열된 러시아 노동계급의 또 다른 차원을 드러내고 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철도 노동자들은 온순한 편이었으나, 철도 노동자들의 상대적 임금 수준이 급격히 하락했던 1991년 말부터 노사 분규나 파업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석탄산업에 속한 기관사들보다 임금의 1/3만을 지급받고 있었던 철도 섹터의 기관사들의 불만이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불안요소를 철도가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인데, 철도는 증가하는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성향을 경영층이나 정부에 대한 파업의 형태가 아닌, 여타의 섹터로 고통을 전가하는 방식(운임 인상과 체불기업에 대한 제재를 통하여)으로 전환시켜 왔다.
개혁 초기부터 연방 정부는 철도에 대한 소유권과 자연 독점 상태, 기존의 중앙집권화된 관리 체제를 유지하여 철도의 구조적 안정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1992년 중반부터는 철도에서의 체임을 거의 없앴으며, 1993년 7월부터는 물가 연동 계수를 0.7에서 석탄 산업과 동일한 0.8로 상향 조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명목적 노동 비용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철도의 수익률은 물가 변동에 따른 정부의 정기적 운임 인상 허용을 통하여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철도 수익률은 1991년 1.3퍼센트에서 1994년 22퍼센트로 증가했으며, 1995년 상반기 현재, 19개 단위 철도 모두 이익을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전체로서는 평균 25퍼센트의 수익률을 실현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수송 섹터들의 수익률을 훨씬 앞서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철도의 안정화를 위해 구철도 노조(NPZhTSR)와 배타적인 정치적 교환 관계를 맺은바, 그 결과 새로 조직된 기관사 노조는 여타의 수송 섹터들의 신노조들과 마찬가지로 그 친옐친 성향에도 불구하고, 개혁 정부에 의해 차별 받아 왔다. 철도 노동자들 모두에 대한 대표권을 정부로부터 배타적으로 인정 받은 구노조는, “집단행동을 거부하고 개화된 협상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구철도 노조 지도부는 다른 구노조들과는 다르게, 정부나 개혁 정책을 비판하거나, 다른 노조들과 함께 항의시위를 벌인다든지 하는 일을 삼가하였다.
이러한 구철도 노조의 온건성에도 불구하고, 철도 노동자들에 대한 그 위상은 강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1992년 이래, 철도성과 구노조 사이의 산별임금협약과 그에 따라 체결된 산하 단체협약들이 거의 완벽히 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이 점은 현재 러시아 경제상황 아래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서 철도의 “안정을 보장”하고 있다. 우선 명목임금이 급속히 상승, 1991년 22위였던 철도노동자의 임금이 1994년 여름에는 5위로 뛰어오르게 되었다. 최고의 임금수준을 자랑하는 가스, 석유 산업에서도 체임이 파업을 유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철도노동자들이 누리는 또 다른 혜택은 여타의 섹터들과 다르게 체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하면, 철도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실질소득의 손실이 타 산업 노동자들보다 적어지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산업과는 달리 주택 문제 등 사회복지 부문도 잘 보전되어 있고 영역에 따라서는(특히, 농산물의 생산 및 분배 등)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특히, 독점기업들이 노동자들의 고임금에 대한 누진세를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인, 해당 산업 또는 기업의 임금과 경제 전반의 평균임금의 격차를 줄이는 대신 소위 “이차적 임금” 또는 “물질적 원조”를 늘리는 방법을 통해서, 철도 노동자들의 비화폐적 복지 수준이 상대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그리고, 경제개혁 시작 이후 수송량이 반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도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를 해결, 대량실업이나 강제적 무급휴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이러한 철도노동자들의 화폐, 비화폐적 복지 수준은 경영층이나 정부에 대한 파업이 아니라, 타 섹터로의 부담전가라는 안전 밸브를 통해서 보장되고 있는바, 철도 노동자들은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자신들의 경영진과 협조하고 있다.
경제 섹터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한편, 노동운동이 가장 활성화되었던 광부들의 노동운동 그 자체 내에서도 노동자들의 투쟁 성향이 지역적으로도 차이를 나타내고, 보다 넓게는 그 운동 자체가 쇠퇴하고 있는데, 이 점을 이해하는 데 맥아담(Doug McAdam)이나 태로우(Sidney Tarrow)등에 의해 제기된 사회운동에 대한 정치적 과정 모델이 유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모델에서는, 정치적 기회구조의 변화가,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이외의 자원이 결여되어 있는 집단들에게 외부자원을 가용케 함으로써 자원빈곤집단의 집단행동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소위 사회운동들의 항쟁 사이클이 확대됨에 따라, 초기 운동집단은 엘리트나 반대 집단들에게도 기회를 창출한다. 즉, 사회운동은 그것에 의해 다른 집단의 이익을 위협할 때는 공약남발(outbidding)이나 대항적 운동(counter movement)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엘리트나 당국의 통제전략 변화와도 맞부딪히게 된다. 운동창출 시 외부자원에 의존했던 사회운동으로서는 이와 같은 기회구조 변화 속에서, 그 투쟁성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운동의 성패는 내적, 외적 자원 사이의 미묘한 균형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 봉기적 성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운동은 운동의 거래비용을 내면화시키는 영속적인 운동조직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 또한 운동의 투쟁적 성격을 파괴할 수 있는 일련의 모순들을 야기할 수 있다. 즉, 조직의 과두체제화에 대한 우려 이외에도, 영속적인 조직의 구성은 그 유지를 위하여 외부로부터의 지지를 보조적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런 외부자원에 대한 연계는 정치적 포섭(co-optation)이나 타협을 요구하는 한편, 초기 봉기를 가능하게 했던 내생적인 지지기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한 집단의 내적 자원이 적을수록, 더욱 이러한 곤경에 봉착하게 된다.
소비에트 광부들은 그들의 노동 과정과 주거 형태에 의해 생긴 느슨한 내생적 조직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초기 성공은 페레스트로이카 말기의 정치 환경이 가져다 준 외부 자원들에 도움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된 노동 분규의 경쟁적 확산과는 대조적으로, 광부들의 운동 자체는 자원(자금, 엘리트, 조직, 정치적 기회)의 외부 유입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첫째, 급진 개혁파들과의 연합은 이제 운동의 발전을 방해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흡수된 운동 지도자들은 경제 개혁의 성공을 위해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추종자들과 지도자들 사이의 괴리가 심화되었다. 둘째, 운동에 필요한 자금의 내부 조성 실패, 구성원들 내부의 “연대적 유인” 약화, 정부와 기업으로부터의 자원 유입 고갈, 그리고 운동의 초기 성공을 통해 얻어진 외부와의 연계가 초래한,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의 운동으로부터의 “이탈” 등은 결국 운동 조직을 와해시키고 말았다. 허쉬만의 “이탈”은 주로 정치적 포섭과 상업으로의 진출의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지도자들의 이러한 개인적인 신분 상승 추구는 운동의 근간 조직이었던 노동자위원회를 붕괴시켰고 신노조도 개혁 정파에 정치적으로 포섭되어 정부에 대한 “건설적 반대”로부터 “적극적 지지” 노선으로 입장을 변경하고 자원 마련을 위해 상업 활동에 여념 없게 되어 노조원들의 개혁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데 반하여 급속히 그 초기의 투쟁적 성향을 버리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적 성향이라는 관점에서, 고립되고 사실상 하나의 산업만 존재하는 보르쿠타에서보다, 외적 자원과 기회가 한층 풍성한 즉, 정치적 중요성과 다양화된 산업 구조를 가진 쿠즈바스에서 이러한 이탈은 더욱 촉진되었다. 쿠즈바스와 보르쿠타의 중요한 차이는, 쿠즈바스에서는 지도자들의 “이탈”로 인해 노동자위원회들이 붕괴된 데 반해, 보르쿠타에서는 노동자위원회가 보전되어 왔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옐친 정부에 의한 보르쿠타 지도자들의 포섭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지방의 정치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방의 단순한 산업 구조와 위원회 내에서의 권력투쟁이 “이탈”을 방해했는데, 사실상 석탄 산업이 유일한 산업인 보르쿠타에서는 상업으로의 이탈만이 아니라 다른 산업이나 부업으로의 이탈도 제한된다.
보존된 보르쿠타 노동자위원회는 노조들의 활동에 “간섭”할 뿐 아니라, 경영층과 정부에 대한 광부들의 투쟁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여 왔다. 그리고, 모스크바나 쿠즈바스와는 달리 보르쿠타에서는 신구 노조가 서로 협조적인데, 이는 위원회로부터의 “간섭”에 공동 대처하기 위함이다. 특히, 위원회로부터의 공격에 직면한 보르쿠타 신탄광 노조 지도자들은 정기적으로 투쟁적인 캠페인이나 단식 투쟁 등을 통해, 그들도 광부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있음을 증명하여야만 되었고, 구노조도 이 과정에 경쟁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보르쿠타에서는 이상과 같은 노동자 조직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하여 파업이 조직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도시 내 한두 개 탄광에서 일어나는 노사 쟁의가 사업장의 노조위원회로부터 노조들의 지역 본부로 그 통제권이 급속히 이전되어 기업 집단에 속한 모든 탄광들의 파업으로 비화되며, 또한, 노조들과 노동자위원회가 서로 차별화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경제적 노사 분규가 옐친 및 정부의 사임을 요구하는 정치파업으로 변질되곤 한다. 이러한 파업 패턴은, 노조지도자들이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지역본부의 개입이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파업이 진행되는 쿠즈바스와 크게 다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노동자위원회의 존재로 인한 노조, 특히 신노조의 온건화 방지가 보르쿠타 노조들이 그 투쟁적 성격을 유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보르쿠타 노동 정치의 촉매제로서 역할했던 노동자위원회도 최근에는 광부들 사이에서 식어만 가는 열정, 신구 노조로부터의 공격, 그리고 재정적 곤란으로 인해 그 활력을 잃고 있다. 그리고, 위원회와 “파시스트적”이라고 비판 받는 민족주의 세력의 협력관계로 인해, 위원회가 주민들 일반과 기업지배인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되었다. 특히, 노동자위원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루츠코이와 하스블라토프의 몰락 이후, 위원회가 기업지배인들에게 가졌던 로비조직으로서의 유용성이 상실되고, 위원회 자체도 과격화되자, 지배인들이 위원회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게 되었다. 위원회는 석탄회사의 신임 총지배인과 노조들 사이의 협력관계에서도 배제되었다. 마침내, 1995년 1월부터는 노조들로부터의 요구에 부응, 석탄회사가 지원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자, 위원회는 총지배인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기 위하여 노조들에 대한 공격을 삼가하기 시작하였으나, 별 성과를 못 거두고 있다. 이러한 노동위원회의 약화는 그 노선의 과격화와 기업지배인들에 대한 의존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이상에서 보아 온 광부 운동의 쇠퇴는 탈공산 사회에서 가용 자원 부족 집단이 봉착하게 되는 일반적인 딜레마를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광부들은 그들의 노동 과정과 주거형태로부터 발생하는 내생적 연대성 이외에는 물질적 자원이나, 경험을 결핍하고 있었다. 초기 광부파업의 성공과 정치화는, 페레스트로이카 말기에 확대되던 정치적 기회들과 엘리트 내부의 분열에 의해 외부자원들이 이용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외부자원들은 곧 고갈되었으나, 광부들의 운동은 자원의 흐름을 내면화할 조직을 건설하는 데 실패하였다. 운동 내부에서는 지도자들의 정치화와 일반 광부들 및 활동가들의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 추구 사이에 괴리가 발생, 운동이 주민 일반으로부터 외면 당하였다. 운동에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지도자와 활동가들이 정치 또는 상업으로 “이탈”, 궁극적으로는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운동을 이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탈”은 노동자위원회들을 붕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반 광부들로부터의 자발적 참여의욕을 저해하고 운동에 대한 냉소주의를 조장하였다. “이탈”과 그에 따른 노동자위원회의 붕괴는, 다른 탄광 지역보다 다양한 산업구조 및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쿠즈바스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쿠즈바스에서는 노동자위원회에 의해서 창출된 신노조도 정치적 포섭과 상업활동으로 인해 그 투쟁적 성격이 급속히 완화되었다. 보르쿠타에서는 그 지리적, 산업적 고립 때문에 지도자들의 “이탈”이 제한되었고, 보존된 노동자위원회는 노조들과의 조직 경쟁을 통하여 광부들의 투쟁적 성향을 높혀 왔다. 그러나, 과격하지만 자립기반이 없는 보르쿠타 노동자위원회는 결국, 일반 광부들로부터의 지지가 약화되는 가운데 지배인들과 노조들의 연합공격에 직면, 그 조직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
본 연구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투쟁적 성향이 지역간, 섹터간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를 밝힘으로써, 러시아 노동운동의 성장을 가로막는 양대 장애물을 밝히고 있다. 그러한 장애물이란, 국가 지원에 대한 노동계급 내부의 경쟁 격화와 자립적 조직 유지의 어려움을 말한다. 첫째, 국가의 “약성”으로 인한 중공업 부문의 민영화와 노조 정치 개혁 문제들에서의 정치적, 제도적 실패 때문에, 노동계급 내부의 경쟁이 더욱 격화되었다. 이러한 제도 개혁 실패는 특정 직업 종사자들을 조합원으로 하는 신노조나 산별노조들을 포괄하는 FNPR보다 구공산 산별노조들을 상대적으로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이들에 의해 파업이 경쟁적으로 조직됨으로써 노동 내 섹터간 경쟁이 악화되고 있는바, 이는 곧 러시아 노동자들의 연대성의 경계선을 확인해 주는 것이며, 아울러 그 투쟁적 성향과 연대성 사이의 괴리가 증대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배경에서 실현되고 있는 철도부문의 산업평화는 노동 내부에서 벌어지는 화폐적, 비화폐적 소득을 위한 경쟁의 또 다른 차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개혁이 갖는 섹터간 차별적 영향과 정부의 철도안정화 정책이라는 조건 아래, 철도노동자들은 굳이 자신들의 경영층에 대항하는 파업을 조직하는 대신, 보다 손쉽게 경제개혁으로 인한 부담을 다른 섹터로 전가하고 있다. 둘째, 일단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석탄산업 내에서의 노동투쟁성향의 지역간 차이에 대한 고찰은 탈공산사회의 노동운동이 직면한 조직상의 문제를 포착케 한다. 본 연구는 사회운동의 정치적 과정 모델을 사용, 그러한 문제점들이 가용자원이 부족한 광부들의 운동 사이클이 외부적 자원과 기회에 의해 규정되어 자립적인 운동조직을 유지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결국,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과 조직상의 딜레마가 탈공산 이행기의 러시아 노동계급을 계속 취약한 행위자로 남게 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소비에트 체제의 유산이 새로운 조건 하에서 재생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유산의 하나로 우선 “산업적 온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소비에트 체제는 섹터별로(부차적으로는 지역별로) 노동계급을 가부장적 국가에 통합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체제에서는 특정 사업장의 노동 복지 수준이 해당 산업부처가 타부처와의 경쟁을 통해 국가로부터 얼마만큼의 자원을 배정 받느냐에 달려 있었다. 중앙 권력의 약화와 경제 개혁의 고통 속에, 노동자들의 국가에 대한 의존이 계속되자, 억압체제에서는 보다 잠재적이었던 섹터간 경쟁이 노골화되었으며,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지역경제 조건들 그리고 급증하는 수송비용 등으로 인해 한 산업 내에서도 국가지원에 대한 지역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에트체제로부터 물려받은 또 다른 유산은 시민사회의 전통 부재로 인하여, 소비에트체제가 “사회적 신뢰”가 결핍된, 극도의 사적 이익 추구형(privatized) 인간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간형은, 우리가 광부운동 지도자들에서 보듯이, 사회조직을 자신의 이익추구를 위하여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하고 말았고, 시민단체에서의 훈련이 부족한 일반 광부들도 그러한 지도자들을 적절히 견제하거나 자발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도 못하였다. 이런 점에서, 노동계급이 노동운동을 통하여 시민사회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노동자 조직을 구성, 유지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들이 오히려 노동자들로 하여금 지대추구형 사회주의적 조직, 예를 들어 구공산 산별노조나 온정적인 기업들에서 손쉬운 피난처를 찾게 하고 있다. 이러한 유산들의 재창출은, “약한 국가가 약한 사회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노동의 국가 및 지대추구형 사회조직에 대한 의존의 고리가 혁파되지 못함으로써, 그 집단행동들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정체 내에서 계속 약한 상태로 남게 됨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소비에트 체제의 제도적, 문화적 유산이 탈공산 이행기 노동운동의 특징적 동학, 즉 계급 내 경쟁과 조직상의 문제점들을 창출하고 있는바, 이러한 동학은 상당 기간 자율적인 노동운동의 발전을 저해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독립적이고 포괄적인 노동자 조직을 결여하는 한, 노동계급 내의 경쟁이 노동 운동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서의 민주주의의 안정과 경제개혁의 효과적 진행을 계속 저해할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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