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개혁과 겨울 총파업
- 몇 가지 해석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
노 중 기 / 한신대 교수․사회학
1. 문제제기
지난겨울의 파업은 1987년 이후 최초의 실질적인 총파업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시민권을 주체적인 역량으로 쟁취할 수 있었다. 사회민주화의 핵심적 쟁점들에 대해서 노동운동이 국민적 지지 하에 투쟁을 주도한 것은 시민사회 내에서 노동운동의 중심성이 다시금 확인되는 과정이었다(임영일, 1997: 51~52). 그리고 10년 전 노동자대투쟁이 자연발생적이고 근로조건 개선이나 작업장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낮은 수준의 대중파업투쟁이었던 반면, 올해의 파업은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노동법 무효화와 재개정이라는 선명한 목표를 갖고 조직적으로 전개된 대정부투쟁이었다(조효래, 1997: 50).
이 글은 1996~1997년 노동정치의 배경을 검토하고자 한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설치나 개악안의 날치기통과와 같은 정부, 여당의 전략적 실패나 민주노총의 전략적 방침과 투쟁 등 파업을 둘러싼 각 주체의 직접적 행위나 전략은 오히려 거시 구조변동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노동법파업 그 자체나 결과, 전망을 문제로 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구조적 조건들 및 그것의 변동과정에 주목할 것이다. 그것은 향후 노사관계의 전개방향을 전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2. 노동개혁의 배경과 의미 : 몇 가지 해석들
1)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전략
노사관계개혁을 국가 자본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전략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는 견해이다.1) 뒤에서 살펴볼 여타 해석들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먼저 범세계적 신자유주의, 자본의 국제화, 자본주의 경제논리(과잉축적, 자본공세)는 노동개혁의 핵심적인 배경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자본활동에 대한 국가의 규제완화(제도화), 신경영의 유연화전략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재생산과정에서 노동력 배제의 제도적 장애’를 제거하려는 국가 자본의 시도로 파악된다(변형근로시간제, 파견근로자제도, 정리해고제도 등). 정치적 수준에서 보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공격이 중심축을 이루며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 공격은 보조축이다.2)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 관점은 전체 개혁의 구도를 집단․개별 노사관계의 교환이나 택일로 파악하는 시각을 강하게 비판한다. 개혁 그 자체, 즉 자본의 대노동 공세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며, 실천적으로는 민주노총의 합법화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지배블럭의 전략과 관련해서 정부, 자본 혹은 정부 내 분파 간의 갈등은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된다. 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쟁력 강화, 노동운동 체제내화라는 점에서 계급이해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자본 내의 전술적 차이를 강조한 결과는 노개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법률제정을 우선하는 협소한 관점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결국 이 관점은 민주노총 합법화보다 노자관계의 지양이라는 계급적 관점을 견지할 것을 강조한다.
2) 노동계급형성 - 계급정치의 관점
계급정치의 관점은 국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보다 구체적으로 계급정치적인 상호작용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임영일, 1997a, 1997b). 특징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적 공세의 전략적 목표를 미국, 일본식의 노사관계 모델로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관점은 노개위가 만들어진 배경으로 국가 자본의 통제전략과 함께 노동운동의 주체적 준비정도를 검토한다. 노동운동은 ‘타협의 계급정치’를 지향하나, 국가․자본이 세계화를 배경으로 한 신자유주의, 배제적 노동정책 기조를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계급해체적 기업조합주의’의 노사관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본다.
노동개혁의 출발과 배경은 노자 대치보다 총자본 내 국가․자본관계에서 정치, 경제적 고려로부터 시작했다고 본다. 요컨대 정권의 개혁담론과 OECD 압력전략은 개혁의 주요한 배경을 이룬다. 국민경제적 관심(자본의 장기이해 부합)이나 민주노총에 대한 부담(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때문에 개혁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리고 지배블럭 내부는 균열되어 있었다. 온건개혁파는 미국식협조모델, 강경수구파․독점재벌은 일본식 기업조합주의모델을 지향했다는 것이다. 양자의 판단 차이는 ‘민주노조의 힘’에 대한 독점자본의 불신에 기인하며, 날치기 개악은 노동의 힘을 더 소진시켜야 한다는 수구분파의 의지관철로 파악된다. 마지막으로 노동개혁의 결과는 노동운동이 시민권(제도화)을 획득함으로써 국가, 자본으로부터의 법인(法認)의 첫 단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요약되지만, 계급정치 측면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3)
3) 민주화 이행정치의 관점
노동개혁은 민주화 이행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노동정치변동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민주화이행론의 이론적 기반 위에서 노동정치변동을 야기한 정치적․경제적 동학을 중층적으로 파악해야 함을 강조한다(조효래, 1997).
여기서 기존 견해와 구별되는 것은 분석틀이다. 1996년 노동개혁은 민주화과정의 단계전환을 배경으로 나타나는 노동정치변동의 두 계기인 경기순환(경제계기)과 정치동학으로 설명된다. 이 두 요인은 노사관계의 두 측면인 노동정책과 노동운동의 변동을 야기하게 된다.
1993년 김정권 성립을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민주주의 공고화기(절차적 민주주의+권위주의 역전불가)에 접어든다. 그 결과 노동정책은 ‘물리적 억압으로부터 이데올로기적 강제’로 전환된다.4) 노사관계 개혁은 이같은 정책변화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리고 노동개혁은 “단순한 자유화나 집단적 노사관계 본질론”으로 파악될 수 없고, 내부에 중층적 모순적 계기가 결합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노동개혁의 배경은 집단적 노사관계와 개별적 노사관계의 두 측면이 모순적으로 결합된 것에 있다.
집단적 노사관계 수준에서 민주주의 이행이라는 정치적 계기는 노사관계의 민주화, 민주적 기본권의 제도화라는 요구를 산출한다. 기존 통제방식의 효율성이 낮고, 절차적 민주주의와 모순된다는 측면에서 노사관계 근대화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는 지적이다. 반면에 개별적 노사관계의 경제적 계기로 보면 생산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유연적 노사관계가 시급히 요구되었다. 이는 정권의 계급적 한계, 신경제전략에의 노동정책 종속에 따른 것이며, 그 속에서 정부와 자본의 차이는 각기 수량적 유연성과 기능적 유연성을 강조한 점에 있었다.
개혁세력의 의도는 이데올로기 강제를 통한 두 계기의 교환이었으며, 궁극적으로 ‘실질적 참여․협력적 노사관계’로의 질적 전환이었다. 그러나 노총, 민주노총, 독점재벌 등 모두에게 성과보다 많은 양보를 요구한 결과, 개혁시도는 실패로 끝난 것으로 파악된다.
3. 몇 가지 쟁점에 대한 평가와 단상
1) 노동정치 분석의 관점
노동정치(labour politics)5)에 대한 분석은 주체들의 구체적인 전략적 상호작용을 분석의 대상으로 하므로, 몇 가지 이론적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노중기, 1996). 그것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① 행위주체의 전략은 의식적으로 기획되거나 일관되고 합리적인 논리를 갖지 않을 수 있다. 즉 상황 구속적이거나 우연적일 수 있으며, 때로는 사후적 정당화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② 대개의 경우 각 주체 내부는 여러 세력, 분파들로 균열되어 있다. 또 국가, 자본의 경우 노동정책은 정치․경제정책이나 경영관리정책 일반에서 부차적인 하위 정책영역에 속한다.
③ 노동정치분석은 경제구조-국가정치-노동정치-작업장정치의 중층분석을 필요로 한다. 또 외부요인은 노동정치의 내부요인을 매개로 해서 작동한다.
④ 그러므로 노동정치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을 구성할 것이다. 예컨대 각 행위 주체의 이해관계는 일의적이지 않고 내적으로 모순적일 수 있다. 그리고 각 주체의 이해는 장․단기적, 정치․경제적 이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⑤ 한 사회의 노동정치를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나 상호작용의 틀은 각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경험을 구조화한 것으로 현재 시점의 노동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준거가 된다. 그러므로 각 주체들의 전략적 행위를 일정한 방향으로 제약하는 상호작용의 안정적 틀인 ‘노동정치체제’(labour regime)의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그것은 ‘1987년 노동정치체제’로 파악될 수 있다(노중기, 1997).
2) 쟁점들에 대한 평가
① 노사관계개혁의 구조적 배경과 본질 :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우선 기존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주창하는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개념의 적합성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6) 여기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먼저 범세계적인 신보수주의 공세가 한국의 노동정치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적 요인을 매개로 해서 관철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국사회 노동정치의 경우에는 계급정치관점과 민주화이행론의 관점에서 나타나듯이 노동조합 단결권을 확대하는 특수한 쟁점과 함께 신보수주의가 문제로 되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교환의 문제이다. 민주노총의 합법화나 3자 개입금지의 완화 등은 그 자체로서 신보수주의전략이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신보수주의적 시장논리 이전의 노사관계 자유화 혹은 제도화(근대화?)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관점은 환원론 혹은 본질론적인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개념의 적용가능성 문제가 있다. 서구와 달리 한국사회에서는 신보수주의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경제위기나 복지국가체제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서구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적인 사회관계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신자유주의는 그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자유주의 없는 신자유주의인 셈이다. 이 문제는 자본의 국제화에 의한 범세계적인 경제구조의 변동에 우리사회가 영향받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부적 영향력이 우리사회의 내적 조건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매개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② 집단․개별 교환의 문제
기존의 연구들 중 신자유주의적 관점은 집단․개별 교환의 관점으로 민주노총 합법화를 강조하거나 노사관계 민주화에 초점을 맞추는 민주노총이나 여타 일반적인 분석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개혁 그 자체가 무엇보다 자본공세로 파악되어야 하고, 교환에 의한 손익계산보다 노자관계 지양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필자는 자본의 계급적 공세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과 전략적 상호작용 수준에서 교환을 고려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먼저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조합조직의 모순성을 충분히 평가해야 한다. 주지하듯이 노동조합조직은 계급적 조직인 동시에 자본주의 내의 방어적 조직으로 조합원의 이익대표 기능을 일차적으로 수행한다. 그런 점에서 손익계산은 필연적이다.
다른 한편, 개혁 전과정은 자본의 구상에 의한 것이었고 주도권도 그 쪽에 있었다. 민주노조 합법화도 자본이 ‘체제모순’에 의해 위로부터 제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법개정 과정에서 노동의 저항은 마땅히 상수로 취급되어야 한다. 즉 교환이라고 해서 투쟁이 필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단, 이런 노동정치의 구도 밑바닥에는 1987년이래 계속된 자본 우위의 노자관계가 배경으로 전제되어 있음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이와 같은 ‘특수한 지형-계급역학관계’ 하에서 전략선택을 해야 했으며 그것이 계급적 갈등의 기본 구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로 민주노총 합법화의 실질적 이익이나 대중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1987년체제’는 자본운동에만 장애물을 형성한 것 아니라 노동운동발전에서도 중요한 질곡으로 전화하고 있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③ 총자본 내 분파갈등의 문제 : 개혁파․수구파의 이해대립인가? 전술적․현상적 차이인가?
물론 총자본 수준에서 지배블럭 내 모든 세력은 노동개혁에 대해 근본적으로 계급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계급형성론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노동개혁은 자본의 장기적 이해와 배치되지 않는다. 자본의 전략목표가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든, 네오포드주의든, ‘참여․협력적 노사관계․일본식 기업노조주의’든 노동계급을 체제내화하자는 근본적인 의도는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에 이르는 전술적(?) 과정상의 관점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략적 상호작용을 평가하는 경우에 그것은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된다. 독점자본(재벌)의 관점에서는 현재의 체제를 유지한 채로 기업내 신경영전략을 매개로 노동포섭․노사관계 안정화를 추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개혁파는 기존 체제에 의존할 경우, 그에 따르는 정치․경제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총자본의 입장을 그대로 견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구체 분석의 유의미성은 1996년에 노동개혁이 시도된 것, 1996~1997년 노동정치과정의 역동성이 모두 이 균열에서 출발한 것에서도 잘 나타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상초유의 겨울총파업 등 노동운동의 개입도 이런 균열 위에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다.
④ 노동통제전략 :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으로의 과도기’(반민주 신자유주의정권), ‘이데올로기적 강제’(김정권)인가, ‘헤게모니적 배제전략 - 1987년 노동정치체제’의 모순인가.
민주화이행론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적 강제’로의 노동정책 변동은 문민정권의 출범․민주주의 공고화 시기의 시작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론은 신자유주의로의 ‘과도기’로 규정하였다. 필자는 한편으로 노동정책의 변화는 이미 1987년에 이루어졌고, 다른 한편으로 과도기는 그 성격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먼저 이데올로기적 강제는 이미 노정권 시기부터 시작되었다(노중기, 1995). 문민정권에 들어와 그것은 단지 이데올로기의 내용이 변화, 강화되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필자는 문민정권이라는 정권의 성격변화보다 절차적 민주주의과정을 거쳐 성립한 정권의 성격변화가 더욱 근본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화이행론의 관점이 강조하는 사회적 합의는 또다른 임금가이드라인에 불과하며(김수진, 1995), 사회적 합의의 창출은 1987년 체제하에서는 제도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실제로는 불가능하였다는 판단이다.
다음으로 과도기라는 점에는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문제는 그 과도기, 즉 1987년 체제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에 과도기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정권이 갖는 자유주의적 성격의 제한이나 부재, 즉 민주노총 불법화 및 그것에 기인하는 독특한 노자 간의 상호작용의 틀에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론이 주장하는 정치체제의 파시즘적, 노동배제적 성격은 1996년 노동개혁의 배경이 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뜻한다. 민주화이행론 관점의 지적처럼 노동개혁은 신자유주의 이전의 노사관계 ‘근대화’과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필자는 과도기의 핵심은 1987년 노동정치체제의 모순․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의 내적 한계로 표현될 수 있으며, 노동개혁은 정권의 실패한 노동통제전략의 부산물이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⑤ 개혁의 결과 : 실패인가? 성공인가?
민주화이행론의 관점은 민주화․근대화 주도세력의 합목적적 행위에 비추어 개혁이 이인제 노동부장관의 개혁시도와 마찬가지로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주체의 의도라는 관점에서 노동과 자본은 모두 만족할 수 없었고 개혁은 실패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개혁 성패의 평가는 보다 객관적이고 구조적인 지평 위에서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개혁이 노동운동 주체보다는 국가와 부르주아계급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은 중요하다(Therborn, 1977).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개혁의 가장 근본적인 동력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야기된다는 점이다. 1996년 개혁은 이런 일반적인 역사의 진행에 정확히 부합한다. 따라서 개혁의 성패는 보다 객관적인 계급역관계를 노동개혁결과가 반영하고 있는가, 자본의 노동운동 체제 내화의 근본적 의도가 관철되었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노동법 재개정의 파동과 노동운동의 강한 저항, 지배블럭 내 개혁주도세력의 소외 등의 현실의 상황진행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있어 국가․자본의 기본전략은 관철되었다. 그것은 ‘1987년체제’를 해체하고 기존 노동배제전략의 기본틀을 수정하며, ‘1987년체제’ 10년 간의 노자관계 변동을 법제화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교섭과 교환, 합의가 아니라 적나라한 힘의 대결을 통해서 노자 간의 권력관계가 새로이 제도화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노동개혁은 총자본의 대노동전략에서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위치지워질 수 있다. 그 핵심은 ‘1987년체제’의 해체․신보수주의적 노사관계재편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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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신노사관계 구상과 노동법개정투쟁의 방향」(노동이론정책자료집3), 1996. 9. 한편 축적체제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의 ‘네오포디즘 축적체제-신보수주의전략’과 노동의 ‘포디즘적 축적체제 유지-포스트 포디즘적 축적체제 전환지향’ 전략의 대결로 전체 국면을 파악하는 시도도 있다.(김형기, 「노동법개정 이후의 노사관계전망과 노동계급의 대응」, ꡔ당대비평ꡕ 창간호, 1997년 가을호) 이 견해는 신보수주의전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노정연의 견해와 현상적으로 동일하지만 포스트포디즘론-조절이론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기반이 전혀 상이하다.
2) 여기서 1987-1997년은 병영국가적 파쇼적 노동정책으로부터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이다. 그리고 정치체제의 성격은 파시즘요소가 많이 남아있는 ‘제한적 민주주의체제’, 또는 민주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제한적 (민간)파시즘체제’나 ‘반민주적 신자유주의정권’으로 규정된다.
3) 한계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1.신자유주의담론 횡행-계급주체의 해체, 2.노조운동의 다원주의 이익집단화-제한된 법인, 3.노동자 개별성원의 시장방면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결국 민주노총 총노선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협조노선을 강요받아 기업조합주의 노사관계가 정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된다.
4) 정책변화의 구체적 내용은 1.민간자율교섭과 사회적 합의, 신노동정책, 2.집단, 개별 노사관계 차별화전략, 3.탈권위주의적 노사관계-노동정책 체계화 모색으로 요약된다.
5) ‘노동정치’, ‘노동정치체제’의 개념에 관해서는 노중기(1995, 1996) 참고.
6) 필자는 1996년 노사관계개혁의 의미를 자유주의적 노동개혁(혹은 1987년 노동정치체제의 내부모순론)으로 규정한 바 있었다(노중기, 1996,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