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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번 : [56호/연재-기획]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글쓴이: 조지 카치피아스 등록: 2000-06-05 00:00:00 조회: 1615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 발표자 소개

나는 60년대 학생운동을 했고, 反 WTO 운동에 참여했다. 오늘날 국제적 연대관계 수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가 지구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우리도 지구적으로 연대해야하기 때문이다. 민중에게 권력을!


□ 윤수종 교수의 발제

조만간 한국에 소개될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ꡔ정치의 전복ꡕ은 ꡔ신좌파의 상상력ꡕ에서 제기된 운동들이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투적, 적극적 운동들은 80년대 주로 독일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책은 주로 독일에 대한 것이다. 전체적인 입장은 하버마스의 입장을 따르는 듯하다. 곧 체제의 억압에 대항해 일상생활의 식민화되기 때문에, 식민화되는 일상생활을 자율적으로 조직화해서 넘어서자는 것이 초점이다. 『신좌파의 상상력』에서는 에로스 효과를 강조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전체적으로 자생성을 강조하고 자기조직화라는 개념 등을 사용한다. 주변화된 사람들이 체계에 대해서 전투적으로 거부하고 나선다는 것이 기본테제이다. 서구, 특히 독일의 경우 80년대 청년실업, 주택 부족 등의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에 점거운동이 가장 중심적이었다.

아우토노미아(Autonomia, 자율주의) 운동이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공장 내 노동자들에 의해 제기, 확산된 반면, 서독의 경우에는 여러 원천을 가지고 있다. 먼저 여성운동을 들 수 있다. 여성운동은 기존의 전통적 운동에 도전하고, 집중화된 조직 모델에서 자율화된 공간을 찾아나가는 지점을 제공했다. 둘째, 반핵, 평화운동이다. 이들은 원자력 발전소, 고속도로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아예 그 장소를 점거, 거주하는 독특한 운동의 형태를 제시했다. 공간을 점거하면서 거기서 운동을 벌여나가는 것이 아우토노미아적 운동의 특징이다. 셋째, 청년문화이다. 저자는 ‘신좌파에서 펑크좌파로’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러한 펑크좌파들은 주변화되기 쉬운 상태에 있는 청년문화. 음악 등을 통해 기존의 방식과 다른 삶을 추구했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특징들로는 인위적인 지도자를 거부하기 위해 집회나 발언 시 스키마스크를 착용한다는 점이다. 점거 집단 내부에서 성차별이나 마약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가의 폭력에 기대지 않고 자율적으로 정화해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자유 공화국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무장운동의 흐름이 내재해있다. 여성 전투주의 집단 Red Zoras를 예로 들 수 있다. 통독이후 신나치주의자의 흐름이 나타나면서, 반파시즘 운동이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큰 줄기로 변모되었다. 곧 80년대에는 자율적 공간 창출이 중심이었다면, 90년대에는 반나치주의가 중심으로 대두한 것이다.

저자는 아우토노미아 운동과 녹색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녹색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의회활동에 집중했다. 저자는 아우토노미아를 적군파와 녹색당 사이에 놓여있는 흐름이라고 본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전통적인 좌파에 대해서는 이념중심적, 집중화된 조직구조, 지도와 명령 등에 대해 비판하고, 대의민주주의에 대항해서 참여민주주의를 주창했다. 그리하여 대표를 반대하고, 자율적 집단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론은 마음(heart)의 합리성, 일상생활의 탈식민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체성(identity)의 정치라고 요약할 수 있다.


□ 발표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68년에 시작된 혁명이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도 1969년에 일어났던 운동들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사실상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들에 의해서만 억압될 수 있었는데, 적군파의 수상 납치 등이 일어난 직후에 주로 이러한 억압이 행해졌다. 독일에서도 ‘독일의 가을’ 이후에 국가권력의 억압이 자행되었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공간은 게릴라 활동과 의회집단의 합법적 활동 사이에 존재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범죄화와 의회 영역으로의 통합이 그것이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이탈리아 노동자운동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적 견해와는 달리,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여성운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아우토노미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격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공통점은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이며, 의회주의에 대한 불신이라 할 수 있다. 아우토노멘(아우토노미아 활동가)들은 정당의 규율보다는 자기규율(self discipline)을 중시한다.

아우토노미아운동의 역사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해서, 스위스, 암스테르담, 독일, 덴마크 등등으로 확산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주택점거운동(squatter)이 독일이나 암스테르담으로 전파되고, 더욱 확장된 것이다. 독일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하나의 쟁점을 중심으로 결집한 성, 평화, 반핵 등의 운동단체이다. 이러한 각각의 특성들이 나중에 종합되어서 아우토노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이들 운동은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시작되었고, 유럽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대에 있어서의 변화는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초점을 신나치, 곧 인종차별주의에 맞추는 것이다. 독일 경찰들은 신나치들이 이민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우토노미아 운동들이 세력을 동원해서 네오나치의 폭력을 저지한 경우가 많다. 90년대의 두번째 변화는 아우토노미아 하우스(점거한 주택을 합법화하는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곧 재개발을 막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구 사회주의권이던 동독, 체코 등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이후에는 슬라이드를 보면서 토론했으면 한다.





주택점거자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가?

집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고, 서로 나눠먹거나 파트타임에 종사한다. 정부로부터 돈을 받기도 하고, 일자리를 나누기도 한다. 100명에게 5대의 차가 있으면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 주택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

자체가 위험한 장소이므로 자격은 필요없는데, 점거자가 되었을 때는 내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사람들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는 토론을 통해 해결한다. 여성들만의 공간도 있다.


이들 점거의 목적은 뭔가?

혁명적 목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모의 학대를 피해 도주한 아이, 비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주택이나 직업난이 심각할 때, 이러한 아우토노멘들이 나타난다. 곧 주변화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다. 전통적인 좌파들은 이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포스터에 왜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름이 있나?

그것은 그녀가 전통적 좌파와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곧 자유를 평등과 바꾸지 않고, 자생성을 강조했던 사람이고, 따라서 좌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집이 많은가?

그것은 도시 중심의 슬럼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개발이 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우리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지 않겠다.”라고 외친다.


한국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전투성은 군대식 규율 등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어떻게 금욕적이지 않고 재미있는 형태와 전투성이 같이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운동이 이들 운동에 비해 더욱 전투적인 것은 사실이다. 독일 사람들도 한국의 뉴스를 통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조직화된 것과 전투성은 항상 같이 가기는 어렵다. 조직화되면서 전투적이면 경찰의 탄압의 대상이 되므로,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에서 여성운동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때, 어떤 방식의 직접적이고 전투적인 행동이 가능한가?

이러한 방식으로 사는 것, 집단적으로 사는 것 자체가 직접행동이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뭔가? 너무 낙관적이고, 이들 운동을 미화하는 것은 아닌가?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소수자운동의 한계점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소수자 운동은 아직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뚜렷한 전망이나 목표가 없고 자기만족적인, 참여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출발은 자발적이라고 할지라도 전략,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조직이 생겨야되지 않느냐?

목적과 과정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목적은 일상 생활을 바꾸는 것이다. 곧 내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술과 전략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술은 구체적 전투에 들어가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더욱 적합하다. 반면 전략은 거대한 행동방식으로, 항상 위에서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에 대해 얘기만 한다. 아우토노미아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실천이고, 실제로 행동함으로써 역동성과 변화를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얘기된 것과 정반대의 관점에서 질문하고 싶다. 신좌파의 상상력을 읽고 오히려 68운동에 대한 평가가 너무 전통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질적 변화가 없었다는 평가가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가능성을 막는 것은 아닌가?

내가 말하는 질적 변화는 여러 가지 운동들이 횡단적으로 가로질러서 접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정체성의 정치를 강조하고 싶은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주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는 운동이다.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미국인들을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복잡한 인종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것이 질적 변화가 없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략,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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