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특집 > 글읽기

1445번 : [84호/특집] 한반도 위기와 동북아 정세
글쓴이: 박영균 등록: 2003-02-20 00:00:00 조회: 1461
첨부파일: 특집(박영균).hwp 특집(박영균).hwp(43 KB)



한반도 위기와 동북아 정세

박 영 균/ 연구원






1. 한반도 정세와 북한 ‘핵 위기’

작년 10월 3~5일 사이에 이루어졌던 제임스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특사 방문1)을 계기로 형성된 ‘북핵 위기 국면’은 미국의 중유 공급 중단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 파기 선언, NPT탈퇴, 금창리 핵시설 재가동, KEDO의 유엔 안보리 회부 등 일촉즉발의 대립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북한 핵 개발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과 지역 맹주의 성장을 제압하려는 군사적 패권주의가 보다 근원적이다.

이미 제네바 합의 이행 자체에서 분란의 소지는 싹트고 있었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책임을 전가해 왔다. 하지만 제네바 합의 이행에서 보다 본질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쪽은 미국이다. 일반적으로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 등 국제사회가 100만KW 경수로 2기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북한의 전력난을 고려해 볼 때, 이 또한 중요하지만 이것이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북한의 체제안전보장이라는 안보적 동기이다. 북한이 일관되게 미국에 대해 전력 보상과 더불어 체제안전보장을 요구해 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하지만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 따라 △흑연감속로 및 관련 시설 동결, 이에 대한 △IAEA의 감시 활동 보장 등을 준수한 반면, 합의안에 언급된 두 가지 핵심적인 사항을 미국은 이행하지 않았다. △양국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과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거나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확언’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더 나아가 핵태세 검토(NPR)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선제공격 대상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제네바 합의는 이미 파국을 내재하고 있었으며 그것의 결렬을 누가 먼저 선언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북한이 체제 안정을 공식적으로 제공받지 못하는 이상,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 파문’ 이후, 미국에 대해 ‘핵 개발 포기 선언’과 더불어 ‘상호 불가침 조약 체결’을 제의했다. 제네바 합의가 이미 파국을 예고하는 불안정한 형태로 ‘실 날에 매달려 있었다’면 이번 ‘핵 파문’은 오히려 그레그가 말처럼 “북한은 불가침조약 체결과 핵계획 폐기가 동시에 진행되길 희망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 변화와 진전”(02.11.7)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선 핵프로그램 포기’, ‘핵 파문 이전 상태로의 복귀’ 없는 ‘대화와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미국 내의 ‘매파’와 보수 강경파들은 북한의 ‘핵 보유’와 ‘북한미사일 미 본토 공격가능 발언’(2. 12, 테닛 CIA국장) 등의 언론 플레이를 통해서 미국의 위협적 대상국으로서 북한을 부각시키고 있다. 미국은 이미 중유 공급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선택이 열려 있다”(2. 8, 부시)와 “미국은 군사력에서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전면적인 능력과 선택방안들을 갖고 있다”(2. 11, 파월)는 식의 공공연한 위협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는 관점에서 ‘대화를 통한 해결’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은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기조차 하는 견해들이 충돌하는 매우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애매한 입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미국으로서는 딱히 다른 입장을 취하기 곤란하다는 점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한반도 위기를 통해서 노리는 노림수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 군사적 패권주의, 중국의 지역 맹주로의 성장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봉쇄 전략과 더불어 MD체제 안으로 한-미-일 삼각 동맹 체제를 구축해 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북핵 문제는 당분간 요긴한 정치․군사적 명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이것이 북-중-러로 연결된 북방 삼각이 북핵 문제를 통해서 일관된 공조 자세를 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북방 삼각(북-중-러)과 남방 삼각(한-미-일)간의 국제적 대립의 균형 관계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안한 형태를 띄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북의 핵 개발은 곧바로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는 전쟁 억지력의 상실과 더불어 핵무장화를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군사적 대결을 함축한다. 따라서 동북아에서 북한의 핵무장은 중국-러시아든, 일본-미국이든 국제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장을 억제하는 실제적인 조치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다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군사적 제재가 곧바로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용납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핵 우위와 MD구축을 통해서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 최소한 북한과의 ‘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이를 명분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북한 폭격 자체가 곧 자신들의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용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공조관계는 사태 진전에 따라 균열과 파괴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삼각 대립축의 파괴는 세력 균형의 완전한 파괴, 즉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실화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된 현 시기 ‘한반도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북-미 대립 관계를 본질로 하면서도 이에 실질적인 이해 관계를 가진 세력들이 상호 충돌하고 있는 형국으로, 매우 불안정한 정치 지형을 창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일괄타결’을 노리는 북한과 패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을 축으로 하여 북방삼각 대 남방삼각간의 이해 관계가 뒤엉켜 있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체제 생존전략으로서 미국의 적대 정책 철회, 그리고 북핵 프로그램을 통한 일괄 타결을 노리는 북한2)과 미국의 패권 전략을 견제하려는 중-러, 그리고 이에 대응하면서 전통적으로 형성된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체제의 북한 압박 전략, 마지막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가는 경제 교류와 개방을 통한 중-러와 한-일의 이해 관계가 상호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2. 한반도 분단구조와 ‘위기’, 그리고 햇볕 정책

한반도의 분단구조가 구소련과 미국간의 정치․군사적 대립의 산물이었듯이 분단구조 그 자체가 북방삼각과 남방삼각간의 국제적 세력관계를 응축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구조는 단순한 남/북 전쟁과 대립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북방삼각과 남방삼각이라는 국제적인 세력간의 균형 또는 충돌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6․15 공동선언과 함께 형성된 한반도의 해빙 무드와 대결 국면은 남-북 자체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형성된 국제 관계의 변화, 즉 소연방의 해체와 중국의 개혁․개방, 구 냉전 체제의 와해,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더불어 나타난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에 기초한다.

북방 삼각의 경우, 러시아는 구소련의 개혁 실패로 인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대미 대척점으로서의 ‘패권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군사적 힘 또한 상실했다. 러시아는 이미 상실한 동유럽에서의 패권을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에서 만회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적 측면에서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요충지라는 점에서 그러하기도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도 북한-한국-일본으로 연결되는 시베리아 동북부 지역에서의 경제 개발과 유럽까지 연결되는 대륙 횡단 철도에서 매우 중요한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북한과의 군사적 동맹 강화와 더불어 한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해 왔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서 시장 사회주의 또는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면서 구소련을 대체하는 세계 패권을 양분하는 세력으로의 입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최근 WTO에 가입과 더불어 아세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공동체 결성 움직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중국의 모색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의 화해 무드를 이끌어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일차적으로는 일본과, 더 나아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지역 패권을 다투는 위치에 놓여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이라는 관점에서 미국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그것이 지역적 패자로서의 경쟁을 함축한다는 측면에서 미국, 특히 일본과 갈등을 빗어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실리적이면서도 잠재적인 위협을 함축하는 관계이다.

그 결과 북한은 과거와 같은 사회주의 체제로서의 정치․군사적 동맹의 틀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가 이미 개혁, 개방을 통한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시작한 이래, 북한은 한동안 고립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사회주의적 대의가 아닌 자본주의적 경쟁 관계 하에서 북방 삼각의 축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이제 ‘체제 생존’ 자체가 문제이다. 그래서 북한은 대미, 대일, 대한 관계 정상화와 교차 승인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북한 체제 자체를 국제적으로 보장받으려는 다원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외교 노선을 취하게 되었다. 아울러 북한은 1984년 합영법을 통과시키고 ‘경제 특구’를 통한 서방 자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반면 남방 삼각의 핵심 축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은 소련의 해체 이후,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배자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냉전의 해체는 또한 NATO와 더불어 동북아에서도 미군 주둔에 대한 명분의 약화를 초래하였으며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에 대한 반미 의식의 고양을 가져왔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지역 경제 블록의 형성과 더불어 지역 맹주의 성장을 유발하였다. 따라서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역 맹주, 또는 잠재적인 적국의 성장을 막아내면서 이를 미국 헤게모니하에 재배치해야 한다. 미국의 대세계 지배 전략은 이런 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잠재적인 적국으로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중국을 꼽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면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보장할 수 있는 동북아의 정치․군사적 질서를 구축하고자 한다. 미국은 일단 동북아에서 미-일 동맹을 미-영 수준의 질로 재편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질서의 재편은 과거 냉전 시기와 같이 미국이 전적으로 이를 책임지는 형태의 재편이 아니라 각 지역 단위에서의 하위 동맹 국가의 군사․정치적 힘의 강화를 통한 분담 질서로 재편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 과정에서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지원을 받으면서 동북아에서의 정치․군사적 주도 세력으로 나서려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보수화와 더불어 군국주의화가 가속화되는 것도, 그리고 MD체제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것도 이런 미국의 대동북아 전략과 관련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미․소 냉전 체제의 대소 전진기지로서 미․일의 강력한 군사적․경제적 지원 아래 ‘반민족 친일 지배 체제’의 재편과 국가가 자본 축적을 주도적으로 정비해 들어가는 ‘개발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70년 중반 이후 북한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였고 80년대 초․중반 이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재편에 맞추어 ‘환태평양공동체’와 같은 국제 경제 블록화와 사회주의권, 아세안 지역으로의 시장 확대를 추구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그 동안 축적된 국내 독점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냉전 체제’의 해체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북한을 신자유주의 질서로 재편해 들어가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6․15공동선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북방삼각의 축에서 보면 북한의 생존전략과 중국의 지역 맹주로의 성장, 러시아의 패권질서 복원 시도가, 남방삼각의 축에서 보면 미-일 군사동맹을 통한 일본의 지역 맹주로의 성장 시도, 미국의 지역 맹주 제압,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북 포위 전략이 서로 대립적으로 맞물려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갈등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중국-북한-한국-일본은 서울-원산 경원선 복구를 통한 TSR(Trans-Sibierian Railroad) 연결망 구축과 북한의 산업시설 재가동, 러시아내 자원개발 문제 등 러-북-한 사이 3각경협에 경제적 이해를 같이 할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방과 개혁의 방향을 공유하고 있다.



3.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와 동북아 전략

미국의 21세기 대외․군사정책은 미국의 안정적 번영과 이익 원칙에 따라 전 세계의 제반 문제들에 공격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미국의 지배 헤게모니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것은 클린턴정부든 부시정부든 차이가 없다. 미국은 ‘지역 패권 국가의 등장을 사전에 저지’하고 ‘비대칭적 위협’을 MD와 방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완전히 제거하고 미국의 이익과 패권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재편과 더불어 가속화되어 온 제국주의 내의 갈등과 세계 중심의 다극화 현상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첫째,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책임성’에 근거한 미국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과 리더쉽을 유지하며 둘째, 적정 수준의 재래식 군사력을 유지함과 동시에 압도적인 핵전력과 독점적인 핵선제 공격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군사력을 전진 배치하고 동맹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위기 대응 능력을 확보하며 셋째, 미국의 지역적 패권에 도전하는 지역 패권 국가의 등장을 사전에 저지하고 넷째, 잠재 적국들의 상업적․산업적 기반 접근에 따른 장거리탄도미사일과 ‘비대칭적 위협’을 사전에 제압 또는 무력화할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고 다섯째,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 및 운반수단의 확산을 방지하고 세계적․국제적 통제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미국의 독점적 우위를 계속 유지하며 여섯째, 해외 시장개방과 전 세계적인 자유무역체제를 통해 미국이 계속적인 경제번영을 누릴 수 있는 국제 환경을 구축해 간다는 입장을 세워 놓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의 핵심은 각 지역의 블록화가 지역 맹주를 중심으로 미국에 대립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데 놓여져 있다. 중국의 WTO가입과 경제 성장, EU의 결성과 독자군 창설 움직임, 러시아의 경제 회복과 WTO 가입 움직임 등 한편으로 단일한 세계 자본주의적 체제의 재편이 진행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역 중심의 경제적 블록화와 세계 중심의 분산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지역 맹주를 성장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아세안, 중국-아세안을 축으로 하는 아세안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둘러싼 갈등도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전에 구소련과 대립했던 냉전 체제하에서는 대립하는 명확한 경계선이 있는 봉쇄 전략, 즉 NATO와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과 같은 형태를 취할 수 있었다면 냉전 체제의 와해 이후에는 그와 같은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다. 대신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더불어 각 지역의 블록화가 진행되고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제 미국은 구소련 없는 전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 듯이 보이지만 전선 없는 전 세계의 지배와 관리라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지배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수호(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명분이 아니라 ‘경쟁’ 속에서 유일 패권, 미국의 지배적 이해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 또한 ‘전선 없는’ ‘잠재적인 적이 될 수 있는 모든 가상의 적’들을 통제하고 제압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세계 지배에 대한 헤게모니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보다 유연하게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기동성을 요구받게 된다. 여기서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적은 자본주의 경쟁 대상국이며 잠재적으로 패권을 다툴 수 있는 적국의 성장 가능성이다. 이에 미국은 각 지역의 정치․군사적 하위 파트너를 대리 지배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세력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런 것처럼 일본은 동북아에서 이것을 담당한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지역 패권 또는 잠재적 적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동북아 지역의 군사비를 분담케 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한다. 일본의 정치․군사적 지위 향상과 군사력 강화는 이런 작업의 일환이다. 1996년 4월 미-일 정상간에 발표된 「미․일 신안보 공동선언」과 1997년 9월에 확정된 「미․일 방위 협력 지침」 개정은 바로 이와 같은 일본의 지위 격상과 미-영 수준으로 강화되는 미-일 동맹의 방향을 보여준다. 게다가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세계 경찰’의 이미지보다는 미국의 잠재적인 적으로부터 위협에 대한 자위권 발동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자국의 이해를 분명히 하면서 세계에 대한 군사적 패권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은 비확산 전략(외교)보다 대확산 전략(군사)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으며 대량 살상무기 문제를 ‘대테러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또한, 무기체계의 측면에서 미국은 핵태세 보고서가 보여주듯이 선제 핵공격을 포함하는 ‘공격’ 위주의 방어 체계와 안정적으로 핵공격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 즉 미사일요격 시스템과 저강도 전술핵 등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부시 행정부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위협에 기초한 모델(threat-based model)’에서 ‘능력에 기초한 모델(capability-based model)’로 방향을 바꾸었다. 즉, “즉각적(immediate), 잠재적(potential), 예상치 못한(unexpected)”, “이러한 성격의 분쟁시 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핵태세 보고서에 나온 즉각적 분쟁의 예는 이라크의 주변국 공격, 북한의 남한 공격, 중국-대만의 무력 충돌을 들었지만 잠재적 분쟁으로는 “대량살상무기 및 이를 운반할 수단을 갖고 있는 하나, 혹은 복수의 세력이 미국과 동맹국에 대해 적대적인 군사적 위협을 가해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3) 따라서 외교보다 군사력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미국의 이익 수호, 그리고 ‘대테러 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전 세계를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부시행정부가 군산복합체의 절대적 지원을 받는 정권이라는 측면에서 ‘전쟁’은 군산복합체의 이윤 창출을 통해 미경제의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의도 또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최근 터져 나온 미국의 보수 강경파들의 ‘미군 감축’(철수가 아닌 감축임)을 둘러싼 국내 일부 보수파 의원들의 ‘미군철수 반대 모임’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 주한 미군, 주독 미군의 감축과 재배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고려되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과 같이 전선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지역을 경계로 배치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그 지역을 관리하고 미국의 지배하에 배치할 수 있는 군사적 동맹 국가(예를 들어 일본)를 축으로 해당 지역을 관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MD체제의 구축과 핵의 압도적 우위가 미국의 전 세계에 대한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의 주한미군 철수 논의도 궁극적으로 MD체제 구축4)과 더불어 이루어질 것이며 여기서 미국의 보수 강경파는 이데올로기적 첨병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즉, ‘떠나라면 떠난다’, 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는데 배은망덕하다’는 식의 논의는 한국의 친미 세력을 종용하여 주한 미군의 재배치 속에서 MD체제를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 보수파들의 논조를 따라, 또는 월리엄 세파이어와 같은 “북한을 손봐주고 싶은데, 주한미군의 안전이 걱정되기 때문”과 같은 논리를 뒤쫓아 이루어지는 한국의 일부 보수파와 주한 미군 철수론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행위는 ‘현실’을 가장한 ‘숭미사대주의’의 표현이자 미국의 대세계 지배 전략에 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4. 반제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반전 반핵

‘전쟁이냐, 평화냐’의 선택에서 미국은 전쟁의 화신으로 상징화된다. 최근 이라크 문제와 관련하여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미국은 전쟁의 축으로, 구유럽(?)을 대표한다는 프랑스는 평화의 축으로 비추어진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직접적으로 북한 폭격이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미국은 더욱 ‘악의 축(!)’으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일면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 내면에 흐르고 있는 것은 평화 세력을 대표하는 유럽과 전쟁 세력을 대표하는 미국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몰고 온 지역간, 블록간, 독점 자본간, 제국주의 자본간의 자원 독점과 경쟁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반대했던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가 결국 함께 했던 것은 카스피해의 유전과 천연가스 때문이었다. 동일하게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것도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이 가지고 있는 이라크 유전에 대한 권리5) 때문이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유전에 대한 배분에서 제외하겠다고 협박했다. 따라서 본질은 동일하다. 이것은 언제든지 상황이 바뀌면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만이 전쟁의 축이 아니다. 제국주의간의 경제 전쟁, 독점자본의 세계 자원에 대한 독점적 분할, 이것이 전쟁의 본질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며 ‘정치’는 ‘경제’의 표현이다. 따라서 핵심은 ‘반미’가 아니라 ‘반제’이다. ‘이라크 전쟁반대’,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자원의 독점적 분할 반대’가 투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반전’은 출발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슬로건이다. 그것은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투쟁과 결합됨으로써 핵심에 접근해 갈 수 있다. 제3세계 노동자들과 민중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아 넣는 것은 자본의 세계화, 노동의 유연화, 노동시장의 단일한 통제, 자본에 의한 노동의 수탈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평화’와 ‘약자’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틀 안에서 진행되는 그들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것은 자원의 독점적 권력을 확보하고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자본의 노동수탈이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투쟁과의 결합이 없는 ‘반전’은 여전히 문제를 근본적으로 척결하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현시기 한반도 위기에 대해서도 6․15 공동선언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 또는 ‘통일’에 대한 환상적인 지지는 ‘북’을 ‘선’으로, ‘미’를 ‘악’으로 대립지울 뿐이다. 게다가 여기서 자유주의적 자본의 권력인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는 연장될 뿐이다. 오히려 투쟁은 반제반전 투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투쟁을 통해서 적대적 대결 구조를 해체해 가야 한다. ‘통일’은 이 투쟁에서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반도에서 두 개의 국가를 국제적으로 승인하고 두 개의 권력을 국내적으로 승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전반핵 평화체제 구축은 1민족 2국가 체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 상호간의 헌법 수정과 평화협정 체결, 군축 협상, 한반도비핵화 선언 실질화 등을 진행시켜 가야 한다.

아울러 반전반핵 투쟁은 반제 반신자유주의 투쟁과의 결합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사실, 한반도의 위기는 북한의 ‘생존전략’과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가 대립하는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북한의 위기 탈출도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포위․포섭 전략 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햇볕 정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북한에 대한 견인․포섭 전략임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통일’이라는 민족주의에 의한 대국민 포섭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 위기’에 대응하는 투쟁은 ‘반전반핵 평화체제 구축’과 더불어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투쟁 전선을 국제적으로 구축하는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투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여기서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예외일 수 없다. 

한/노/정/연


1) 평양을 방문한 미 특사 제임스 켈리는 10월4일 북한의 제1부수상 강석주에게 △무기화할 수 있는 농축 우라늄 생산 기도를 중지할 것 △1994년 합의안에 따라 가동 중지된 플루토늄 핵 시설에 대한 기존의 안전 기준을 계속 준수할 것 △미국이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어떤 사찰이나 검증 조치도 수용할 것 등을 제시했다. 반면 강석주는 미국에게 △북한에 선제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힐 것 △한국전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정(peace agreement)에 서명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이로 대치시킬 것 △외교 관계를 정상화시켜 미국 통제하에 있는 다자간 금융기관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 것 등을 요구했다.


2) 이런 측면에서 현재의 위기는 94년의 위기와 다르다. 현 미국 행정부가 비확산문제와 북한 체제에 대해서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매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반면 한국과 일본의 대북 관계가 이전에 비해 매우 급속하게 진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대서방 외교도 EU와의 관계 개선에서 보듯이 다각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 이번의 ‘핵위기’가 북한에 의해 공세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 보여지듯이 포괄적인 대타결 의지가 높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리 오히려 한반도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3) 이와 관련하여 북한 선제 공격 훈련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998년 상반기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세이머 존슨 미 공군기지에서는 수차례의 대북한 핵무기 사용 모의 훈련이 실시되었다. 제4 전투비행단 소속 F-15E 전폭기가 핵폭탄의 일종인 BDU-38을 탑재해 플로리다의 폭격장에 투하하는 모의 훈련이 반복적으로 실시되었는데, 여기서 콘크리트로 만든 모조탄이 투하된 플로리다 폭격장은 북한이었다.


4) 미국은 한반도를 TMD 구축의 최우선 지역으로 삼고, C4I 체계 등 정보자산의 획기적인 개량과 패트리어트 개량형 및 이지스 구축함 등 요격시스템을 2004년까지 배치할 계획이다. 영국의 <디펜스 위클리> 보도에 의하면, 동해에 SM-2 블록4 요격미사일 30기를 장착한 이지스함 두 척을 2003년까지 북한에서 20~50km 떨어진 해상에 배치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미국이 핵 선제 공격을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미사일을 조기에 제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및 지하시설 파괴용으로 소형핵무기를 실전용으로 개발하고 있다.


5) 개발작업이 더디다는 이유로 지난 연말 취소되긴 했지만, 러시아의 루코일사는 1997년 15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서부 쿠르나 유전 개발계약을 맺었으며, 프랑스 토탈피나엘프는 200억~3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즈눈 지역의 원유 개발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의 국립석유공사는 북부 루마이라 유전 개발권을 얻었다.



의견글쓰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정규표현식
[ 0.06 sec ]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글쓰기 | 관련글쓰기 | 수정 | 삭제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