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특집 > 글읽기

1499번 : [87호/특집] 반전평화와 반제-반세계화투쟁
글쓴이: 유영주 등록: 2003-05-20 00:00:00 조회: 1465


유 영 주/ 노동자의힘 정책선전실장


반전평화와 반제-반세계화투쟁

1. 들어가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세계 제국주의 국가간 주도권 장악을 위해 벌인 침략 전쟁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과잉투자, 과잉축적으로 만성적 위기에 처한 세계 초국적자본의 일시적 탈출구이자 몸부림이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국가간 패권다툼과 자본의 지구화, 금융의 세계화가 빚어낸 또 한 번의 역사의 비극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이다.
세계 자본의 이러한 흐름은 한국 독점자본의 이해와 매우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연관성은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추진에서 그러하고, 한-미 동맹 관계의 재구축, 다자간 협상과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 확대 등의 흐름이 그러하다. 이는 다시 말해, 한국 노동자 민중의 삶, 생존의 문제 역시 세계자본의 이러한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따라 노동자 민중의 빈곤의 절대치가 커지고 궁핍의 정도가 확대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전쟁반대 투쟁을 돌아봄에 있어 출발도 노동자 민중의 삶, 생존, 권리의 문제에서부터여야 하고 귀결 또한 그러해야 한다. 평화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과 함께 세계 노동자 민중의 삶의 문제, 생존의 문제,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의 관점에서 평가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2. 이라크 침공의 배경
9․11 테러 이후 부시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세계 정세는 급냉각기로 접어들었다. 부시 정권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애국주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함께 국제적 공안정국을 형성하였다.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탈레반 체제 전복에 이은 ‘악의 축’ 발언은 전쟁을 동반한 세계 패권전략의 수순이었다. 이윽고 미국은 자의적으로 지정한 깡패국가 중 하나인 이라크를 향해 공공연한 침공 의사를 밝혔다. 유엔 무기사찰단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사찰을 진행하는 동안 미국은 국제 사회의 비난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동의와 상관없이 이라크를 침공하겠다는 태도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3월 20일 침공은 시작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목표는 세계 질서에서의 제국주의 패권 경쟁과 헤게모니 장악에 있었다. 냉전 이후 유지되어온 미 제국주의의 단일 헤게모니 체제는 그 지위가 지속적으로 위축되어왔다. 초국적자본의 요구에 따른 국가간 다자주의 협상 체제의 형성과 자유무역협정 등 지역 블록화 경향의 확대와 함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대립이 심화 확대되었다. 특히 새로운 분쟁지역으로 부상한 중동 지역에서 미국과 유럽은 전략적 자원으로서의 천연자원의 지배권 경쟁, 지역 군사적 긴장 고조에 따른 군수자본간의 경쟁, 달러화와 유로화간 통화 지배권 경쟁을 벌여왔다.
미국은 실업률이 6%대로 치솟은 상태이고, 경상수지 적자는 작년 대비 20% 이상 늘어난 6천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국내총생산의 5%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다 하반기 4천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적자 등 만성적인 경제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자본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건재를 과시할 수 있는 이유는 달러가 국제통화로 인정되는 까닭에 있다. 현재 미국 정부와 민간 자본의 대외 빚이 8조 달러에 이르는데 달러가 실물가치를 액면 그대로 반영한다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OPEC 회원국들이 석유화폐를 일시에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꾸게 되면 달러가치가 20~40% 하락하게 되는데 이 경우 세계 화폐 가치가 동반 폭락하면서 거대 인플레로 인한 공황이 불가피하게 된다.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미국은 석유 산유국들의 유로화폐로의 전화 흐름을 사전 봉쇄하고 무력을 통해서라도 OPEC의 시도를 분쇄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미국의 맞은 편에 있는 유럽 국가들이 전쟁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 주된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다. 따라서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전쟁 참여와 지원을 둘러싼 미영블록과 유럽연합블록 간의 태도의 차이는 제국주의 국가간 이해에 따라 표면화된 것에 불과하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반전평화 의지에 따라 이라크 침공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라크 침공의 명목으로 제기된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사담 후세인의 제거 거론 따위가 피상적 명분이라는 점은 이미 죄다 알려진 사실이다.


3. 노동자 민중의 반전평화투쟁
오늘날 세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분명 새로운 국면을 형성해가고 있다. 세계 자본 기구나 자본의 운동에 직접 저항하는 동원 타격 투쟁과 ‘대안을 위한 새로운 토론 공간’인 세계사회포럼의 발전 등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이 격화되고 있다. 올 1월 23~27일 10만여 명의 인원이 참석한 3차 세계사회포럼(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WTO 저지, 부채탕감, G8 반대, 여성 평등권의 추구 등과 함께 전쟁 반대를 담은 ‘세계 사회운동의 호소’를 채택하였다. 여기서 참가자들은 2월 15일 세계 동시 항의시위를 결의하였다. 동원 타격 투쟁과 세계사회포럼의 발전 등 오늘날 세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대안 사회의 강령을 걸고 전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 역시 사실로 확인된다. 이와 함께 미 제국주의의 패권적 일방적 군사행동에 맞선 세계적 규모의 대중시위가 이어지면서 제국주의 국가의 횡포에 일대 타격을 주었다.
2월 15일은 세계 전쟁반대 공동행동의 날이었다.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 노동자 민중의 자발적 동원으로 이루어진 투쟁이었다. 세계적으로 1천만 명이 넘는 전대미문의 노동자 민중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 날 한국에서는 불과 2~3000명 정도의 인원이 이 투쟁에 동참하였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직후인 3월 22일에는 7천여 명의 투쟁 대오가 전쟁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규모로만 볼 때 수만 명이 참가하곤 했던 촛불시위와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였다. 반미 시위가 반전 시위로 전화되지 않는 이유, 다시 말해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과 촛불시위 등 대중투쟁의 동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 못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쟁반대 투쟁에서 의외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에 대해 많은 물음이 던져졌다.
지금까지 한국 노동자 민중에 있어 전쟁 반대 투쟁은 매우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91년 걸프전 당시도 세계 노동자 민중의 반전 투쟁 열기는 올해의 이라크 전쟁에 못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 영향으로 심각한 석유난을 겪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고, 역시 미국의 침략전쟁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노동자 민중은 반전평화 투쟁에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처럼 전쟁에 대해 침묵해온 한국 노동자 민중이 이라크 전쟁 발발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인간방패를 보내고, 세계 공동행동에 동참하고, 파병 위헌 소송을 제기하고, 반WTO, 반제국주의 슬로건을 외쳤다. 제국주의 침략전쟁 반대투쟁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과, WTO 개방 반대 투쟁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과 같은 성격의 문제라는 점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가깝게는 지속적이고 대중적으로 전개된 여중생 살해 사건 촛불시위가 밑불 역할을 하였다.
촛불시위는 96-97년 노동자총파업 이후 최대의 대규모 군중시위였다. 여중생 살해 사건이 전국적 촛불시위로 점화되면서, 해방 이후 반미를 내건 최대 규모의 대중투쟁으로 이어졌다. 바로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살해라는 직접적인 계기가 대중적인 투쟁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햇볕 정책으로 조성된 한반도 화해 분위기도 한 몫을 했고 네티즌의 광장 에네르기 분출 경향도 이 투쟁을 확산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최고조에 이른 반미 촛불시위가 정세적으로 민감하게 다가온 반전투쟁으로 바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순수성’ 논쟁으로 회자된 보수언론의 이념 공세와 노무현의 설득 따위에 쉽게 교란되기도 하였다. ‘반미’에서 ‘반전평화’로 국면 전환이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음에 따라 전쟁 국면에 돌입한 후 형성된 반전투쟁은 내용 면에서 볼 때 새롭게 제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공공연하게 예고된 시기부터 전쟁 발발 초기까지도 노동자 민중의 행동은 미약한 수준에 그쳤다. 또한 한국의 노동자 민중이 반전 투쟁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경향을 보인 데는 제국주의 침략 전쟁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받게 될 영향에 대한 불충분하게 인식한 요인도 작용하였다. 이라크 침공이 생존권, 생활권에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 데다 노무현정권의 개혁 이데올로기와 방송이나 언론의 왜곡 등 교란 요인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노무현 집권 초반 동북아 경제 중심 추진, 평화번영정책과 대북정책, 인적 청산 등 신자유주의 개혁 드라이브 전반에서 계급적 속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인데다 싸움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점 역시 투쟁을 질곡하는 요인들이라 할 수 있다.


4. 지배계급의 혼란
노무현 대통령이 전쟁 지원과 파병 결정 입장을 표명한 3월 중순부터 노동자 민중의 반향이 커지기 시작했다. 파병이라는 직접적인 계기가 촉매제가 되어 반전평화를 위한 대중적인 행동이 만들어졌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제국주의 국가간 대립과 갈등이 전면화된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한국 지배계급 내부의 대립과 갈등 역시 전면화되어 나타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 결정은 세계 초국적자본과 한국 독점자본의 이해에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정권으로서의 한계이자 한-미 동맹관계 등 정치적, 군사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정권의 한계를 대중적으로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노무현의 지지세력이 사분오열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된서리를 맞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지배계급 내부의 분열과 혼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전쟁이냐 평화냐, 참전이냐 반대냐를 두고 기존 정당과 계파 질서가 일시적으로 붕괴되는 등 파병을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국회 결정 두 차례 연기라는 사태로 비화되었다.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과 혼란의 원인은 ‘평화’라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그래서 그 자체로는 계급적 성격이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는 이슈가 정세의 핵으로 부상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이슈가 기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당, 계파의 규정력을 급속도로 무너뜨림으로써 일시적 정치 공황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혼란과 동요에 따라 만들어진 지배계급의 위기 국면은 ‘국익’이라는 지배계급 전체의 담합 차원에서 신속하게 봉합되었다. 역동적인 정세의 한 가운데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다 자본의 이익으로서의 ‘국익’이라는 손익계산서를 확인하고 난 후의 일이다.


5. 반전평화와 반제-반세계화 투쟁
평화는 인류의 보편적 요구이자 본능적 주장이다. 전쟁 반대는 곧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평화는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숭고하다. 역사는 이 숭고한 가치가 침략적 속성을 가진 힘에 의해 짓밟힐 때면 어김없이 저항하고 투쟁했던 계급투쟁의 사실을 보여준다. 가치를 보전하고 지켜내는 방법은 이러한 침략 속성을 갖는 힘의 근거를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힘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보편적이고 숭고한 가치를 송두리째 위협하곤 한다. 그래서 전쟁 반대, 평화실현의 요구, 즉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침략적 속성을 가진 힘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전평화 투쟁은 그 자체로 반제-반세계화 투쟁의 성격을 갖는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수백만 시위대의 투쟁은 제국주의 침략과 초국적자본의 횡포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평화를 침해하는 전쟁의 원인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의 과제가 제기된다. 진정한 반전평화의 실현은 반전평화를 외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침략적, 착취 수탈적, 인류 파괴적인 힘인 제국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계급투쟁으로 발전, 전환, 확대되어야 한다. 반전과 평화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전 평화를 위협하는 전제를 분쇄하는 투쟁으로서의 반제-반세계화 전면화를 위한 투쟁의 합목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6. 반전평화 투쟁을 돌아보며
미국의 종전 발표와 상관없이 이라크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고, 5월 1일 노동절에서 확인되듯 세계 노동자 민중의 반전평화, 반제-반세계화 투쟁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자본의 동북아 전략과 맞물려 있는 한반도 정세도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 역동적인 흐름에 놓여 있다. 미 제국주의와 초국적자본의 공세에 맞서는 한국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서 반전평화 투쟁은 매우 중요한 투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라크 전쟁을 전후로 반전평화 운동에 침묵해왔던 한국 노동자 민중이 이제 세계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함께 어깨걸기 시작한 것이다. 반전평화 투쟁 공간이 열림으로써 한국 노동자 민중이 전개해 온 반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생존권 쟁취 중심의 반제-반세계화 투쟁 영역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반전평화 투쟁의 내용과 형식 면에서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전쟁반대 투쟁을 진두지휘한 운동세력들의 주장과 태도는 대부분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이해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이제 반전, 반제-반세계화에 눈뜨기 시작한 노동자 민중의 발걸음을 소부르주아적 평화주의와 감상적 반미주의의 틀로 제약하거나 선언적 맹동주의로 이끌어 감으로써 반전 투쟁의 반제-반세계화 투쟁으로의 전화, 발전을 제약하거나 역행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투쟁 과정에서 제기된 선전선동 기조와 내용, 슬로건을 살펴보면 그러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전쟁 반대 투쟁에 가장 선도적으로 나선 것은 시민운동 세력이었다. 시민운동 주도의 일반적 평화주의 차원의 접근은 광범한 대중적 호소력을 갖지만 동시에 투쟁의 요구를 노동자 민중 자신의 것이 아니라 대상화 추상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반전은 평화’, 다시 ‘평화는 반전’이라는 동어반복적인 이데올로기에 스스로를 가두는 꼴이 되어 반전 투쟁을 반제-반세계화 투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제한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반전투쟁을 국회의원의 도덕적 양심에 호소하는 파병 반대 투쟁 중심으로 이끌어감으로써 분출하는 대중의 반전 투쟁 의지를 올바르게 이끌어내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여야 국회의원의 태도에 대해 차기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 개개인의 의지, 또는 도덕적 기준에 의한 분열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면서 동시에 일면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시민운동 세력의 대부분은 이 시기 반전 투쟁의 주요 기조를 ‘파병 찬성 의원, 총선 낙선 운동’으로 끌고 갔다. 노무현의 파병 결정-전쟁 발발-반전평화 투쟁-국회 파병 결정 등 대중의 투쟁이 고조되는 주요 고비와 국면에서 전쟁 본질 폭로와 이데올로기 대응에 기반한 대중 행동의 확장을 고려하기보다 국회의원의 행동에 초점을 두는 청원, 압박식 투쟁으로 소급시킨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흐름은 급기야 국회 파병 결정 이후 대중투쟁을 상승시키기보다 급격하게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민족주의적 인식과 경향 역시 유사한 결과를 낳았다. 가령 전쟁의 배경에 깔려 있는 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진실과 초국적자본의 횡포를 폭로하기에 앞서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는 선전선동을 앞세운 경우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선동은 노동자 민중의 인식과 대응을 한반도 차원 또는 민족적 틀로 제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북한 침략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북핵 위기를 비롯한 정세적 요인과 함께 한국 내 반전운동의 발전에 일정한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이라크 민중과 연대하는 국제적 반전 투쟁에의 동참이자 연대행동 주체로 확대하기보다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시야를 한반도 안으로 가두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파병 반대’ 슬로건은 신자유주의 정권으로서의 노무현정권의 한계와 문제점을 폭로하는 것과 함께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결정인가를 둘러싼 전면적 이데올로기 공세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 역시 ‘한국군 파병은 안된다’는 민족적 호소 차원으로 경사되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반전 총파업’을 호소한 일련의 주장은 반전투쟁에서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인 행동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런데 노동자의 상태와 현실 조건에 대한 일체의 고려없는 총파업 선동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반전 투쟁이 반제-반세계화 투쟁으로 전화, 발전하는 데 교란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노무현정권의 개혁이데올로기와 시민운동 주도의 평화주의 이데올로기 따위였다. 다수 노동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계기를 접하기 힘든 조건과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 이데올로기와 별반 다르지 않는 논거를 제시하고 곧바로 ‘노동자들은 반전 총파업을! 학생들은 반전 동맹휴업을! 전 민중은 한국군 파병반대 총궐기를!’ 하자는 선동은 그 호소의 절절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민중의 현실적인 행동지침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였다. 반전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나 실질적인 총파업과 동맹휴업 조직화 경로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목소리만 높이는 선동은 맹동적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7. 노동자계급의 반전투쟁으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미 제국주의는 침략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세계 노동자 민중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다. 미 제국주의는 군사적으로 이라크를 점령했지만 이라크 노동자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점령한 것은 아니다. 미 제국주의는 지금도 군사적 승리에 도취해 제2, 제3의 이라크 침공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미 제국주의가 벌이는 침략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승리한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패배의 수순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것은 파국 위기에 내몰린 자본의 침략 본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침략 행위가 세계 노동자 민중의 거센 저항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제 승리의 관점으로 세계 노동자 민중과 함께 하는 한국 노동자 민중의 반제-반세계화 투쟁의 방향과 전망을 마련함으로써, 소부르주아적, 민족주의적 경향을 넘는 노동자계급의 반전투쟁으로 확대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의견글쓰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정규표현식
[ 0.02 sec ]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글쓰기 | 관련글쓰기 | 수정 | 삭제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