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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번 : [88호/특집] 한국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글쓴이: 김세균 등록: 2003-06-20 00:00:00 조회: 1699



6월 항쟁, 그 이후 16년

김 세 균 ∙ 한국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최 경 희 ∙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87년 6월항쟁 16주년 입니다. 6월항쟁을 통해 군사파시즘은 무력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거처 현재의 노무현 정권에 이르는 과정은 부르주아민주주의 발전과정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6월항쟁은 극우파시즘으로부터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중간층이 주도하였던 6월항쟁에 한발 뒤처져서 시작된 7,8,9 노동자 대투쟁은 ‘95년 민주노총건설로 결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노동해방이라는 전노협정신의 실종으로 표현되듯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발전은 지체되어 부르주아민주주의 틀 내에 갇혀 있습니다.
세계경제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97년 경제위기 이후 노동자민중의 생활은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민중은 부르주아민주주의정체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부르주아정권의 치부가 연일 보수언론에 의하여 폭로되고, 자본의 권력으로서의 자신의 본질이 뚜렸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허무주의만을 유발하고 있을 뿐입니다.
6월호 특집은 6월 항쟁 16주년을 맞이하여, 그 동안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경과를 돌아보면서 그 본질과 한계, 즉 자본의 지배일 뿐인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노동자계급에게 폭로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지배로서의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넘어서서 노동의 정치를 발전시켜나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집: 6월항쟁, 그 이후 16년


한국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김 세 균/ 이사장



1. 들어가면서
민주주의는 원래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일치를 통해 완성되는 ‘인민의 지배’를 추구하는 이념이었으며, 역사적으로는 무엇보다 억압과 착취에 항의하는 피지배대중의 사회적-정치적 해방을 추구하는 이념이자 운동으로서 발전해 왔다. 때문에 그런 의미의 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의 사회적-정치적 해방 이념이자 전면적인 사회변혁 이념으로서, 그리고 그 완성된 형태에서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 착취, 차별, 배제가 없는 가운데 실현되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전면적인 직접적 자기통치체제’로서 의의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의 민주주의는 결코 그와 같은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체제가 아무리 민주화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계급적 착취-지배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체제의 기본성격이 폐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사회에서 성립가능한 민주주의 형태인 자유민주주의체제는 계급적 관점에서 본다면 궁극적으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를 ‘인민지배’의 형식으로 관철시키는 정치체제로서 규정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극복이 요구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체제의 한계 내에서도 민주화가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었으며, 민주화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닌가 등은 인민대중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 동시에 이행과 변혁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차대한 의의를 지닌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글의 주제는 한국민주주의의 현실을 진단하는 기초 위에서 그 장래를 전망해 보는 데에 있다. 그런데 문제에 옳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점이 먼저 지적될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의 민주주의를 우리는 일차적으로 자본주의사회에서 출현가능하고, 자본주의사회에서 민주주의 그 자체로 이해되기도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관련시켜 구명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파악하면 민주주의를 계급적 지배-착취 등과 관련시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적 접근은 민주주의를 형식적-절차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문제에 보다 온전하게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때 우리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단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도 아울러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파악할 경우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준은 인민대중이 ‘실질적으로’ 얼마만큼 정치적 결정의 진정한 주체로 등장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2.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과 그 한계
한국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는 오래되지만, 현 시기에 직접적으로 유의미성을 지닌 한국 민주화의 기점은 1987년의 6월 항쟁이었다. 그런데 6월 항쟁이후 한국사의 전개과정은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후퇴가 반복하는 가운데에서도 대체로 더 많은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이루어진 헌법개정, 이를 통한 대통령직선제의 실시와 의회민주제의 소생, YS정권의 출범을 통한 ‘문민정부’의 출현과 DJ정권 출범을 통해 이루어진 최초의 실질적인 정권교체, 개혁세력이 16대 대선에서 수구세력과 합작 없이 승리한 결과로서 이루어진 노무현 정권의 출범, 그간 이루어진 시민권과 정치적 활동의 자유의 확대,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민주화 등이 그러한 과정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하에서 이루어질 민주개혁은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적 민주개혁의 최종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말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민주개혁이 어디까지 진척되는가가 사실은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적 민주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역사적 한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노무현 정권이 행할 민주개혁이 과연 한국의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에 걸 맞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수립을 가져올 것인가가 질문으로 떠오른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두 문제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먼저, 한국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제한적인 민주주의’로 나타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의 존속이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이 존속하고 그 법이 죽은 법이 아니라 한총련 소속 학생 등을 구속하고 좌파단체 등을 이적단체로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노무현 정권 보다 더 개혁적인 정권이 앞으로 수십번 더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자격미달의 민주주의일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 노무현대통령은 일본 방문 중 ‘공산당 활동을 인정할 때에만 진정한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국가보안법의 폐기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설령 나선다고 할지라도 대체입법의 제정을 통해 국가보안법에 준하는 반민주적 법체계를 실질적으로는 존속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의 어떤 개정 시도도 의회 등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수구보수세력의 완고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 점에서 노무현 정권 하에서 국가보안법이 온전하게 폐기된다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공무원노조의 불법화, 직권중재제도의 비민주성 등 이른바 ‘집단적 노사관계’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독소조항들이 폐기될 수 있을 지가 문제된다. 노무현 정권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공무원노조 인정, 직권중재제도 개선, 필수공익사업범위 재조정 등 집단적 노사관계의 선진화 등을 정책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노무현 정권 하에서 그 부분에서 일정한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자본의 반대 등으로 그 진전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럽다. 셋째, 노무현 정권은 과거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정치, 사회제도의 전반적인 개혁 및 불합리한 관행 등의 개혁, 경찰국가적 계기의 축소 등을 지향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부분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진전이 어느 수준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 지는 미리 예단하기 어렵다,

위에서의 논의와 관련하여, 노무현 정권 하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민주개혁을 통해 한국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에 걸 맞는 자유민주주의체제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노무현 정권 하에서 불완전하지만 절차적-형식적 수준의 민주개혁은 앞으로 더 진전되어 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가 시각을 바꾸어 실질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간의 한국민주화 과정을 평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해 본다면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진전을 통해 한국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더 진전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앞으로 중대한 후퇴를 경험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한 구명이 요구된다.


3.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과 민주주의
1987년 6월 항쟁이 있기 이전까지 노동자‧민중세력은 크게 성장하긴 했지만 주‧객관적 조건의 결여로 인해 자유주의세력을 대신하여 민주화운동의 대국민적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준까지는 성장하지 못했다. 이는 노동운동이 6월 항쟁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점, 1987년 7~9월의 노동자대투쟁이 주로 생존권 확보와 기업단위 수준에서의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투쟁으로 한정되었던 점 등에서 드러난다.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민중적 헤게모니가 관철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6월 항쟁은 ‘6.29선언’의 발표를 계기로 기존의 지배세력과 이전부터 선거혁명을 주창한 자유주의세력 간의 타협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타협의 결과로 민주화를 위한 자유주의세력과 민중세력간의 동맹이 폐기된 대신 자유주의세력은 지배세력의 한 분파로 상승하고, 김영삼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지배블록의 핵심분파로 자리잡게 되었다. 때문에 그간의 한국 민주화과정은 자유주의세력이 피지배대중의 저항에 부딪쳐 위기에 처하게 된 체제를 구하는 주도적 지배세력으로 성장‧발전한 과정과 맞물리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한국 민주화과정은 ‘밑으로부터의 계급투쟁’에 대한 (이전의 것과는 구분되는, 그 점에서 ‘변형’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의 산물로서 진척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주화가 피지배대중의 지배세력으로의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체제에 대한 피지배대중의 도전에 대한 위로부터의 대응의 산물로서,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성장‧발전을 저지하기 위한 지배세력의 새로운 대응전략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을 그람시의 용어를 빌려 (‘능동혁명’과 구분되는) ‘수동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수동혁명 역시 ‘혁명’이라는 점에서 그 혁명을 통해 실질적 의미의 정치적 민주주의 역시 일정하게 진전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능동’혁명이 아니라 ‘수동’혁명이기 때문에 그 진전은 여전히 피지배대중이 피지배대중이라는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한편, 민주화가 진척됨과 더불어 지배블록의 한 분파로 편입되고, 이후 지배블록의 지도적 분파로 성장할 수 있었던 자유주의세력은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을 한국사회의 새로운 발전전략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김영삼 정권이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제창하면서부터 한국시장의 개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외환-금융위기의 도래로 한국이 IMF관리체제 하에 놓이게 된 조건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권 하에서 한국사회는 종속적 신자유주의체제로 확고하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척되기 시작한 지구적 조건 속에서 세계시장으로의 더 많은 진출을 통해 자신의 활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조건에 처해 있었던 한국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발전전략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다음의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 특정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내용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부분들을 형성한다. 그런데 1990년대 초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미국 금융자본 중심의 ‘금융세계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그 자체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표시한다. 이 점에서 금융세계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가장 집중적인 경제적 표현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이 이루어지면서 개별국가들은 자국의 자본시장, 금융시장 등을 대거 개방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이들 국가 경제에 대한 초국적금융자본의 장악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 자본들간의 관계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이 지닌 주요측면은 자본주의체제를 주주자본주의체제로 변모시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주주자본주의체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소액주주의 권한 보호, 집단소송제의 도입 등이 요구된다. 소액주주 보호는 노동자대중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비축해둔 자금을 다시 자본화시키고, 이들 노동자들의 이해를 개별기업의 흥망에 결박시키는 기제가 된다.

- 사회질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자본들 간의 관계에서는 ‘금융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체제로의 이행’ 등에 의해 대표된다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의 핵심은 ‘노동유연화’ 공세이다. 노동유연화 공세는 변화된 조건 속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생산과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모두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새로운 공세로서 정의내릴 수 있는데,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① 노동과정으로부터 산 노동을 대량으로 추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상대적 과잉인구 및 취업기회를 영구히 상실한 사회적 탈락층인 절대적 과잉인구가 크게 증대하고 있고, 불안정노동의 비중이 증대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나아가 노동유연화 공세는 노동과정에서의 노동강도를 비약적으로 증대시키고 있고, 핵심노동자층을 제외한 다수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② 고용과 해고 및 노동과정 통제에 있어서의 노동력 사용의 유연성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공세의 결과로 정규직 노동자층과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층간의 분할과, 소수의 ‘다기능 전문기술 지식노동자층’과 (미숙련노동자, 중소기업노동자, 여성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이민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다수의 ‘주변부 노동자층’으로의 분할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여성노동이 주로 공식부문을 보완하는 비공식부문에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여성노동자층은 노동유연화의 과정의 최대의 피해자층이 되고 있다.

- 신자유주의국가체제는 자본운동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와 복지국가적 개입의 폐기, 시장논리에 따른 노동력의 유연한 사용 등을 옹호하면서 자본의 국내적-국제적 이동과 기업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며 제반 생산주의적 국가개입을 통해 자본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 하는 국가체제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국가체제를 우리는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국가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로 변모함과 더불어 시장경제적 논리에 대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크게 축소되고, ‘경제논리로의 정치의 종속’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기업국가는 자본에 대해서는 자본운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약한 국가’로 기능하면서도, 노동과 피지배대중에 대해서는 사회구조의 신자유주의적 개편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뒷받침하고 그 개편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거나 탄압하는 데에 앞장서는 ‘강한 국가’로 기능하고 있다.

-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소유적 개인’으로 원자화‧파편화시키고 있으며 ― 이 점에서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자들은 물론 이런 저런 포스트주의자들이 강조하기 시작한 이른바 ‘개인적 주체성’이란 이러한 ‘소유적 개인’들에 대한 철학적 미화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 한다 ―, 이들 개인들을 경쟁논리와 업적에 의한 보상체계 하에 종속시키고 있다. 나아가 모든 나라에서 거의 예외 없이 경쟁, 효율성 등이 절대시되고 있고, 부가가치 내지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것만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시장경제적 논리가 전사회적으로 관철되고 있으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상품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 정치-경제질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편과정은 어디에서나 소수 독점자본으로의 부의 집중을 더한층 촉진시키고 소득불평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나아가 다수대중의 생존권을 항상적으로 위협하고 다수대중의 ‘절대적 궁핍화’를 가져옴으로써 무엇보다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고 있고 ‘사회의 황폐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노동자대중의 분화와 차별화를 촉진시키면서도 사회를 ‘20 대 80의 사회’로 만들고 있는 사실과 관련하여 우리는 그러한 분화와 차별화가 크게 보면 ‘사회의 양극화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관계의 총체가 시장경제적 관계로 재편되거나 시장경제적 관계에 종속되고 있고 가치창출이 가능한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있는 과정은 동시에 ‘화폐권력의 전능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화폐권력이란 사실은 자본권력의 외화형태이다. 때문에 시장적 관계로의 전일화는 사회 전영역의 자본권력에로의 포섭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장적 관계로의 전일화 과정은 아울러 자본 지배의 모순을 사회 전영역으로 확산시키는 기제가 된다.

- 불안정노동자층의 빈민화와 영구적 실업층의 증대와 더불어 이들 빈민층의 우범화 등이 광범위하게 진척되고 있다. 이로 인해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대내적 안보’를 위한 국가개입이 국가의 사회개입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되고 있다.

-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닌 대중적 기반은 시장경제 체제를 지탱하는 ‘소유적 개인주의 이데올로기’와 ‘세계시장에서의 국가경쟁력의 강화’ 등이 대중에게 발휘하는 이데올로기적 힘이다. 그런데 노동자층의 경우 경쟁관계에서 자신의 개별적 능력의 상대적 우위로 인해 개인적 업적에 따른 보상을 선호하는 (대체로 젊은 지식노동자층이 주축을 이루는) 노동자층 ― 이 노동자층이 신자유주의체제 하에서 새로운 노동자 상층을 이룬다 ― 그러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자층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기본적으로 ‘20% 포섭, 80% 배제의 노동자 분할전략'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지적한 것들은 한국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이 본격화되면서 이미 한국사회 구조개편의 주요내용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구조개편은 소수의 상층노동자를 제외한 다수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반민중적‧반노동자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이 행해지는 한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가 진척된다고 할지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실질적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을 수 없고, 실질적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한 ‘민주주의의 형애화‧공동화’가 진척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의 성격이 반민중적‧반노동자적인 한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 역시 결코 순조로운 것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높아진 것을 계기로 김영삼 정권 하에서는 물론 김대중 정권 하에서도 국가가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로 변모한 사실은 이 점을 확인해 준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전제로 하여 노무현 정권 하에서 한국민주주의가 어떤 변모를 겪게 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자.


4. 노무현 정권과 민주주의
노무현 정권은 ① ‘참여정부’ - 국민 참여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 절차적 민주화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 민주화단계의 정부, ②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를 구현하는 정부’ -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성장과 분배의 조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구축 (‘사회적 합의주의’ 추구), ‘참여복지’, 특권, 차별, 배제의 갈등구조 극복, 일극중심‧집권사회에서 분산‧분권사회로, ③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여는 정부’ -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의 협력,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주도,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과 동북아중심국가 건설 등을 내세우면서 출범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과 마찬가지로 개혁적 신자유주의정권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민주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지만 그 기본성격에서 ‘신자유주의정권’이라는 점에서 민중배제적 정권이자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질서에 구조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종속적 정권의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아울러 노무현 정권은 개혁정권이라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체제의 선진화, 합리화’를 추구하는 정권으로 규정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정권으로서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고 추진하려는 정책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조응하도록 시장과 기업, 행정규제, 노사관계 등을 개혁한다. 그런데 글로벌 스탠더드란 선진국에서 노동자계급의 패배가 결과시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인 기준들이다. 예를 들어 전경련이 주장하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제도개선의 요구사항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생리휴가제 폐지, 초과근로할증율 25% 인하 (ILO기준), 1년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법정퇴직금제도의 폐지, 파업 시 당해 사업장 밖에서도 대체근로자 채용 허용 (선진국 일반기준), 필수공익사업범위에 항공운송사업 포함 (ILP기준), 정규직 정리해고제의 완화 (정규직 인력조정의 유연성: OECD 27개국 중 26위), 공공부문의 민영화 (세계적 추세) 등등 임금, 노동시간, 고용 등 모든 분야에서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구축의 핵심과제로서 재벌개혁을 추진한다. 그런데 재벌개혁의 모델은 미국식 신자본주의체제이다.
-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며, 기업활동에 대한 각종 규제들을 과감하게 축소시킨다.
- 정규직의 유연화 등 더 많은 고용유연성을 확보하고, 이에 기초하여 보다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확보하는 것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 하향평준화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이를 줄이는 대신 다양한 고용형태를 창출하고, 해고를 보다 자유롭게 한다
- ‘참여복지’를 시행한다. 참여복지론은 이직, 휴가에 등에 대한 ‘자발적’ 참여를 촉구하고 자유로운 해고와 선택적 복지체제를 구축하려는 내용을 지닌 것으로 신자유주의복지정책인 ‘생산적 복지론’의 변종에 불과하다.
- ‘세계화’ 경향에 보다 적극적으로 편승하기 위해 더 많은 개방과 더 많은 외자유치를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한-칠레협정, 한미협정, 한일협정 등 타국들과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WTO협상에 따라 농산물시장을 완전개방하며, 교육, 의료, 법률 등 서비스시장을 개방한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권의 노선은 지구적 자본주의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방적인 신자유주의체제’ 구축을 지향하는 노선이라고 부를 수 있다.
- 그러한 개방적 신자유주의체제 구축의 목표로서 ‘동북아중심국가론’을 제기하고 있고, 그 실현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경제자유구역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동북아중심국가론은 한, 중, 일의 지역적 경제통합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그런 통합에 기초하여 한국자본의 세계적 경쟁력을 높이며, 한국을 동북아물류이동과 금융-투자의 중심기지로 만들겠다는 측면과 더불어 한국을 미국의 초국적금융자본이 중심이 되는 초국적독점자본 운동의 동북아 중심기지로 만들겠다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때 한반도평화체제의 구축은 이런 구상의 실현을 위한 중심적 과제의 하나로서 제기되고 있다.

위에서의 논의와 관련하여 우리는 노무현 정권 하에서 시장개방과 외자유치 노력 및 노동유연화 정책이 보다 강도 높게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이 과연 초국적 독점자본 운동의 동북아중심기지가 될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떠나,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내국자본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고 한국경제가 지구적 자본주의체제에서 더 많은 주도력을 발휘하는 ‘국민적 경쟁국가’로의 발전을 지향하고 있지만, 동북아중심국가 건설 추진은 결과적으로 내국자본을 더 한층 초국적독점자본의 하위파트너로 만들고 한국을 실질적으로 ‘탈국민적 자본유치국가’로 만드는 과정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한 한국경제에 대한 초국적자본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실질적 민주주의는 더 한층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계급타협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내세우고 있는데 ― 이를 위해 유명무실했던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높여 통합적 노사관계의 구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상설 경제협의체를 구성하며, 정부의 ‘적극적 조정’과 ‘사전예방’ 역할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정책을 내세우고 있으며, 산별적 교섭 인정과 민주노총의 참여를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노선은 김대중 정부의 ‘사회적 합의주의’노선을 계승‧발전시키는 노선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구축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적 계급타협체제’는 노동자계급을 상당한 수준에서 체제에 통합시키는 데에 성공한 본래의 사민주의적 계급타협체제와 구분되는 것이다. 즉, 사민주의적 계급타협체제는 자본이 노동력상품 판매자계급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전반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대신 ― 그러한 권리 인정의 핵심은 정규직 형태에서의 완전고용 보장,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을 보장하는 임금‧노동조건 보장, 보편적 사회복지체제의 구축, 노조수준의 전국적 단결과 산별교섭 및 노동자정당의 집권 내지 노동자정당의 국정파트너화 등이다 ― 노동은 노동력상품 구매자계급으로서의 자본가계급의 권리를 인정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에 적극 협조한다는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사민주의적 계급타협체제는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노동자계급 포섭전략’으로 불릴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신자유주의적 계급타협 추구는 미국의 경우 ‘노동자들의 주식소유 장려와 소액주주 권리의 보장 및 주식소유를 통한 수익 증대’로 집약될 수 있다면, 그 전형적인 모델로 꼽히는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자본이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는 반면 노동은 임금삭감과 노동유연화를 수용하는 것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의 주식소유는 상층노동자에게 한정되고 불황 시는 노동자층의 더 한층의 무산자화를 촉진시키는 기제가 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체제 하에서 실업은 항구적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완전고용의 달성이란 허구에 불과하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는 그 적자인 ‘노마드적인’ 지식노동자층과 같은 상층노동자층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감축 불가능한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지 않지만 다수 하층노동자층에게는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게 된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체제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소수 상층노동자를 포섭하고 다수 하층노동자를 배제하는 ‘상층 포섭, 하층 배제 전략’에 기초한 체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계급타협체제란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 분할을 목표로 하는 체제이며 노동자계급 상층을 체제에 포섭하고 포섭된 상층을 통해 하층을 통제하려는 체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계급타협체제란 ① 다수 하층을 배제하는 계급타협체제란 늦든 빠르든 다수 하층의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② 불황 시에는 노동자계급 상층과의 계급타협 추구 역시 자본축적에 장애물이 된다는 점에서 결코 장기적으로 존속가능하고 안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계급타협체제가 아니다. 나아가 노동유연화 공세 등을 본격화하면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늦든 빠르든 파산하지 않을 수 없는 구상에 불과하다.

다른 한편 노무현 정권은 자신을 ‘국민참여정부’로 내세우고 있는데, 노동배제적 신자유주의정권이 ‘참여정부’의 이름에 걸 맞는 정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힘은 ‘개혁적 신자유주의세력’으로 규정될 수 있는 시민운동세력과 자유주의적 성향의 젊은 층이다. 이와 관련해 시민운동세력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자유주의적 성향의 젊은 층의 지지를 추구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실질적인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추구하는 참여민주주의란 사실은 ‘노동자‧민중배제에 기초한 시민민주주의’로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대이라크 파병을 추진한 반면 시민운동세력을 비롯한 다수의 노무현지지층은 파병을 반대한 것,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대통령이 미국에 당당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 자신의 지지층의 기대를 저버린 것, 노무현대통령이 개혁의 추구와 수구보수 세력과의 타협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등으로 노무현 정권과 지지세력 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 균열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 출범이후의 그간의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 세계경제 전체가 전반적으로 하강하고 있다. 때문에 외자유치를 위한 노력 등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국면을 맞이하기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제2의 공황이 발생할 지도 모를 정도로 한국경제는 날로 침체되는 추세 속에 있는데, 이는 노무현 정권이 자본의 요구에 더욱 굴복하도록 만드는 객관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 미국의 대북강경노선에 굴복하고 있다. 한반도평화체제의 구축, 북핵문제의 군사적 수단을 통한 해결 반대의 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이라크 파병을 결정했고, 한미정상회담에서 ‘추가조치의 강구’ 등에 합의했다시피, 대북강경노선을 추구하는 미국의 정책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의 추구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앞세우는 그의 대북정책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기초해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건설’ 내지 ‘동북아중심국가 건설’을 파탄시키지 않을 수 없다.
- 경제침체가 지속되고 악화되고 있으며, 노무현 정권을 한편으로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수구보수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노무현 정권은 재벌개혁을 포기하고 친재벌로 돌아서고 있으며, NEIS 사태 등에서 드러나다시피 기득권세력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더 많은 개방화를 추진하고 노동유연화 정책 등을 강행함으로써 오늘날 노무현 정권의 정책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계기만이 더욱 강화되고 있고 노골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노무현 정권은 그간 노동자파업 등에 대해 공권력의 즉각적인 투입 등은 자제하고 노자갈등을 타협점을 찾아 중재함으로써 이른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노선에서 완전히 이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철도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 조흥은행노조 파업 등을 그런 방식으로 해결한 데에 대해 재계와 수구세력 등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고, ‘해외로 자본을 이전시키겠다’는 것과 같은 자본측의 협박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경기침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날로 증대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그러한 정책 이 언제까지 추구될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럽다. 그런데 공권력 투입을 통한 사태 해결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경우, 노무현 정권은 결정적으로 ‘공개적으로 억압적 신자유주의정권’ 내지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로 전락할 것이며, 그 경우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다시 중대한 후퇴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친노무현 세력을 중심으로 개혁신당 건설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노무현 정권은 정세의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는 정세 속에서 앞으로 건설될 개혁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안정적인 다수의석을 획득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내년 총선에서 친노무현 세력이 다수의석을 확보하는 데에 실패하면 노무현 정권이 수구보수세력의 볼모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 수구보수세력의 볼모가 될 경우 이는 자유주의세력에 의한 한국사회 개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종말은 한국의 자유주의세력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가 ‘진보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그 본질이 ‘반동’인 신자유주의의 추진이 되게 만든 오늘날의 자본주의 발전경향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귀결이다..


5. 결론
세계적 수준의 자본축적 위기를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타개해온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자본주의체제는 한층 더 깊은 위기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그런 조건 속에서 신자유주의 제국주의체제는 ‘무장한 세계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도로 추악하고 반동화된 모습을 띄고 있다. 이 점에서 반동화가 더한층 노골화되고 있는 것은 현 시기 신자유주의 세계의 주된 흐름이며, 부시정권의 일방주의적‧군사모험주의적 대외노선은 그러한 노골적인 반동화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다. 이런 정세 속에서 민주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유린되고 후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노무현 정권이나 브라질의 룰라 정권과 같은 개혁적 신자유주의 정권이 안정되게 자리 잡을 조건은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사실 노무현 정권이나 룰라 정권은 아마도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서 출현한 마지막 개혁적 신자유주의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일국적 수준에서는 물론 세계적 수준에서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결합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사회변혁투쟁과 결합시키는 것은 노동자‧민중정치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에 속한다. 나아가 그런 과제의 수행에 적합하도록 조직과 연대전선을 재구축 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노동자‧민중진영의 조직적 과제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의 형애화‧공동화를 초래하고, 그나마 성취한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위협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질서를 강제하는 전쟁이 인류를 재앙으로 내몰고 민주주의를 파탄내고 있는 조건 속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중심은 의회민주화 등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반대투쟁과 반전반제(반미)투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반대투쟁과 반전반제(반미)투쟁을 힘차게 전개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수동혁명을 능동혁명으로 전화시키는 새로운 민주적 역량이 확대될 것이며, 또 이를 통해서만 이전의 민주주의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동터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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