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연재-기획 > 글읽기

1596번 : [92호/연재-기획] 쏘련 영웅적 투쟁과 쓰라린 패배(7)
글쓴이: 바만 아자드 등록: 2003-11-24 00:00:00 조회: 2192

기/획/번/역



쏘련―영웅적 투쟁과 쓰라린 패배 :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승리 이후의 80년(7)




제3부 사회주의의 위기의 주체적․내부적 요인



바만 아자드/ 사회주의 이론연구가





3. 사회주의, 제국주의, 세계혁명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발전단계에 관한 제22회 대회의 낙관적인 분석은 동시에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를 추월했다는 선언을 수반하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에 기초하여 대회는 그 강령 중에서 “세계 자본주의는 전반적 위기의 새로운 제3단계에 들어갔다”고 규정하고, 이 위기가 자본주의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제국주의는 몰락과 멸망의 시기에 들어갔다. 피할 수 없는 붕괴과정은 자본주의의 토대로부터 정상에까지 … 미치고 있다. 제국주의는 이미 … 인류의 대다수에 대한 권력을 상실하였다. …

… 제국주의 세계체제는 깊고 격렬한 모순에 의해서 찢겨져 있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립, 인민과 독점체와의 모순, 더욱더 강화되고 있는 군국주의, 식민지 체제의 붕괴,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모순, 신흥 민족국가와 구 식민지 보유 대국 사이의 분쟁과 모순, 그리고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세계 사회주의의 급속한 성장이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파괴하고, 약화․사멸시키고 있다.1)


그리고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쏘비에트 국민의 헌신적인 노동과 쏘련 공산당의 이론적․실천적 활동의 결과 … 사회주의를 향한 대로가 열렸다. 많은 국민이 이미 이 길을 가고 있고, 또한 조만간 모든 국민이 이 길을 갈 것이다.2)


그 1년 전인 1960년 11월에 세계의 81개 당이 참가하여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공산당․노동자당 대표자회의’에서도 비슷한 견해가 표명된 바 있다. 이 회의가 발표한 성명은, “현대는 … 제국주의가 붕괴되고, … 각 국의 인민이 차례로 사회주의의 길로 나서고 있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세계적인 규모로 승리하는 시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명은, “사회주의에 유리한 역관계의 변화가 진행 중”임을 강조하는 한편, “오늘날 인류사회의 역사적 발전의 주요한 내용, 주요한 방향, 주요한 특징을 결정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 세계체제이고,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사회의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세력이다”3)라고 말하고 있다. 이 공산당 회의는 아래와 같은 너무나도 낙관적인 견해를 선언했다. “민족해방운동의 타격을 받고 제국주의 식민지 체제는 붕괴되었다.”4) 똑같은 낙관적 견해는 쏘련공산당 제22회 대회에서도 표명되고 있다. 이 대회는, “제국주의는 약화되고, 사회주의에 유리하게 역관계가 변화되고 있다”5)고 강조했다.

사회주의의 거대한 국내적․국제적 성과가 이러한 낙관주의의 객관적 근거였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지도에 의한 인민혁명이 성공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쏘련의 지원을 받아 경제적 산업적 기반을 강화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리고 민족해방운동은 사회주의의 성과에 고무되어 그에 의지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확대되고, 매일매일 새로운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정세의 전개가 장래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향한 대도(大道)”의 “평탄함”이나 “각 국의 인민이 차례로 사회주의의 길로 나서고 있다”는 낙관주의와 거기에 내재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세계적인 규모로 승리하고 있다”는 주장은, 두 개의 중요한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는 그 ‘전반적 위기’의 치명적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경제적 생산의 면에서―특히 과학기술의 현대화라는 분야에서―사회주의 사회가 계속해서 급속히 발전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사태 전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상호 일정한 관계에 있는 이 두 개의 전제는 그 어느 쪽이나 현실에 관한 부정확한 평가에 기초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맑스주의의 분석은, 진행 중인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의 본질에 관한 정확한 평가를 도출하고는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이러한 특질[위기―역자]과 그 필연성에 관해서는 증명되어 있지만, 많은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이 위기 그 자체가, 전 세계의 노동자계급과 그 동맹자에 의한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공동의 투쟁 없이, 저절로 자본주의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믿어 버렸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위기’의 필연성을 그 ‘해체’와 붕괴의 확실성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자본주의가 그 전반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 자체의 경제력과 현대적인 생산기술에 의거하여 계속 존속할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었다. 나아가, 현실이 보여준 것처럼, 자본주의는 그 전반적 위기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쇄신하고 이러한 위기에 즈음하여 노동자로부터의 착취를 강화하고, 전 세계 수십억 인민들에게 빈곤을 확대시킴으로써 적어도 절멸이라고 하는 나락의 밑바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붕괴는 필연적이며 그 붕괴는 시간의 문제라고 상정하는 경향은 사회주의의 성장에 대항하여 자본주의가 삶을 연장하는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과 결부되어 있었다. 사회주의 세계의 분석은 1970년대 및 1980년대의 자본주의의 과학기술혁명을 과소평가하고 있었고, 또한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의 영향을 약화시키고 자본주의의 붕괴를 저지하기 위해서 1970년대에 추진된 구조개혁의 효과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소평가는 자본주의 붕괴의 필연성에 관한 잘못된 전제의 결과일 뿐 아니라 세계의 세력균형이 사회주의에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평가의 결과이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군비확장 경쟁의 격화와 군사 지출의 무거운 부담―이 부담은 한정된 자금과 기술을 군사생산 분야에 충당하게 함으로써 사회주의의 균형 성장을 저해했다―을 사회주의에 강요함으로써 스스로의 위기를 사회주의 사회에 수출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당 지도부는 제국주의가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감속시킬 수 없다”고 하는 1960년대 말의 낙관적인 평가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었다.6) 이러한 주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은, 쏘련의 동지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1956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이 4천억 달러 가까이를 군사 목적으로 지출”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예산이 1970년에 1천억 달러를 넘기”에 이르렀다.7) 1971년 쏘련의 국민총생산(GNP)이 5,490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세계의 세력균형이 사회주의에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는 주장이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사회주의의 경제력을 이렇게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평가하고, 경제와 과학기술 면에서의 자본주의의 거대한 힘을 무시함으로써 1960년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 초에 쏘련은 한편에서는 대단히 비용이 드는 파괴적인 군비확장 경쟁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게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적인 능력을 훨씬 넘는 거액의 경제적․군사적 국제지원을 떠맡게 되었다. 이러한 군사지출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경제지원의 대부분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능력에 관해서 보다 현실적인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그 중압은 좀더 경감되고,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들의 근로인민에 대한 압력도 보다 제한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1960년대 말 내지 1970년대 초두까지는 쏘련은 많은 군사지출을 안고는 있었지만 서방측과의 군사적 균형을 그럭저럭 달성하고 있었다. 이 균형은 제국주의의 침략 위험성에 대해서 “사회주의의 생존”을 보증하기 위해서 필요한 담보였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쏘련공산당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의 역사적 사실이 보여준 것처럼 제국주의는 세계정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그 진보의 방향을 역전시킬 수 없었다. …

자본주의가 침략목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하는 힘은 대폭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미국이 쏘련 및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 주변에 있는 국가들의 군사기지에 핵무기를 장착한 폭격기를 배치하고, 보복을 받지 않고 쏘련이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을 위협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1960년대에는 쏘련은 세계 어느 곳의 침략자에 대해서도 보복공격을 하기에 충분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갖게 되었다.8)


이러한 평가에 기초해서 쏘련이 군사지출을 삭감하고 국내의 자원이나 재원을 비군사적인 첨단기술산업에 사용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전환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고, 군비확장 경쟁을 막기 위해서 쏘련을 필두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끈질기고 감복할 만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와의 경쟁 속에서 군사지출은 계속 증대되었다. 1977년 현재로 쏘련은 연간 520억 달러 이상을 군사지출에 쓰고 있었다.9) 군사지출의 절대액은 미국의 그것(1,009억 달러10))에 비하면 여전히 훨씬 적고, 따라서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을 합한 액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의 경제에 비해서 소규모인 쏘련의 경제(1971년에 쏘련의 GNP는 미국의 55% 이하―미국이 1조4천억 달러였음에 비해서 5,486억 달러였다11))에서 점하는 군사지출의 비율을 극단적으로 높게 하고, 사회주의 체제에 한층 무거운 부담을 가했다.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서 그렇게 출혈적인 군비확장을 강요하는 한편, 거기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어, 사실상 국경 밖으로부터 사회주의 국가들의 근로인민을 착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하(負荷)는 균형을 취한 영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간절히 평화가 필요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장기간에 걸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는,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다른 나라에 대한 착취를 기본으로 하는 외국무역을 행할 수가 없었다. ‘제3세계’ 국가들이나 민족해방운동과의 쏘련의 무역관계는 상대방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고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책임 있는 행동은 당연히 사회주의에 무거운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쏘련 정부의 연간 예산의 거의 10%가 세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국제지원에 충당되었다. 케네디 정권시대의 미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은 많은 값비싼 무기를 예컨대 중동 등의 부유한 친구들에게 매각하고 있다. 쏘련은 자기 나라의 무기를 “싸우고 있는” 친구들에게 어쩔 수 없이 싸게 팔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친구들은 장래에 더욱 이익을 가져다주는 원천임에 비해서 쏘련의 친구들은 쏘련에 부담이 되고 있다.12)


그러한 지원의 정당성과 필요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일부 재정지출을 군사부문으로부터 산업기술부문으로 돌림으로써 쏘련 경제, 특히 공업생산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강요하는 군비확장 경쟁이 이를 방해했다. 실제로 쏘련에 대한 제국주의의 군사전략은 쏘련의 사회주의 경제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교묘하게 입안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로버트 맥나마라가 미국의 군비확장 경쟁에 관해서 했던 말을 들어 보자.


쏘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찬란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방대한 수의 사상자와 무거운 군사부담을 수반하면서 … 이 나라는 전후(戰後) 계획으로서 세 가지 우선과제를 들었다. 1. 국가의 산업기반을 완전히 쇄신하여 쏘비에트 국민이 공산주의라고 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2. 자본주의 세계의 포위 속에서 국가의 방위를 재건․쇄신한다. 3. 세계적으로, 특히 동유럽과 제3세계에 새로운 우방을 획득한다. …

미국이 쏘련을 군비확장 경쟁에 끌어넣을 수 있다면, 이러한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 우리의 목표는 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두 번째의 우선과제를 첫 번째 우선과제로 만드는 것. 바꾸어 말하면, 우선 군사지출을 증액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의 향상을 맨 마지막으로 만든다. … 이것은 물론 세 번째의 과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어떠한 것인가? 결국 쏘련이 군비확장 경쟁에 말려들어 그 예산의 상당한 부분, 예컨대 40%가 이 목적에 충당되게 된다면, 국민생활의 향상에 충당되는 부분은 적어지고, 따라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공산주의라는 꿈은 지연되어 쏘련의 우방들과 공산주의라는 이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장기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 이러한 계산에 기초하면, 군비확장 경쟁은 쏘련 자체의 쏘비에트 이데올로기도 위협할지 모른다.13)


쏘련에게 있어서 제국주의의 이러한 비인간적인 반공전략을 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1960년대 말에 일단 군사적 균형이 달성된 시점에서 군사적 지출을 삭감하는 것이었음은 명백하다. 동시에, 어떠한 낙관주의도, 쏘비에트 지도부가 군비확장 경쟁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그것이 사회주의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직시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음도 명백하다. 그 영향은 이미 경제면에서 표면화되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에 쏘련의 군사지출이 증가한 주요한 이유는 단지 당 지도부의 낙관적인 태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가 관료층에 만연한 이해관계에 있었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 관료의 관점에서 보면, 군비확장 경쟁은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간의 생존을 건 역사적인 투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쏘련 정부와 서방측, 특히 미국 정부와의 대립이었다. 이들 관료층은 당과 사회주의의 장기적인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그렇게 행동했다. 실제로 군비확장 경쟁을 계속하면서 군사부문에 대한 지출을 늘리는 것은 이러한 관료층의 권력기반으로서의 국가기관을 강화할 뿐이었다. 그것은 또 관료층을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강화했다. 그 때문에 이 만연한 관료층은 사회주의의 군사지출을 삭감할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그러한 정책이 자신들의 객관적인 이해에 반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는 “쏘련 자체의 쏘비에트 이데올로기도 위협할” 정도의 군비확장 경쟁 전략을 사회주의에 강요하는 데에 성공하고, 세계혁명을 크게 지연시켰던 것이다.



4.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정당간의 관계


사회주의 국가 쏘련 내부에 관료층이 방임된 채 계속 만연하고, 당과 국가기구의 통합이 더욱 진전되어 당과 국가의 관계가 역전돼 버린 당연한 귀결로서 이론적인 창조성과 이데올로기상의 선견지명이 차츰 정치적인 실리주의로 대체되어 버렸다. 그 결과 쏘련 공산당과 다른 공산주의 정당들과의 국제적인 관계에도 해소하기 어려운 상흔이 남겨졌다. 쏘비에트 국가 및 쏘련 공산당은 특별한 신망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한층 광범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세계의 모든 공산당․노동자당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황의 가장 중요한 면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개념에 대한 영향이었다. 국가 관료의 견해가 사회주의의 정치기구에서 우세해졌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개념은 공산당․노동자당 간의 국제연대라는 우호적인 관계에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라고 하는 관계로 바뀌어 버렸다. 이는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면에서 세계의 공산당과 노동자계급의 운동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첫째로, 국가 간의 관계가 세계의 공산당․노동자당 간의 관계에 암운을 던졌다. 이 문제가 특히 분명히 나타난 것이 쏘련과 중국 간의 논쟁이었다. 처음 이 논쟁은 두 당 사이에서 생겼는데, 대립의 사실상의 요인이 두 나라의 정책, 특히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방침의 차이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과학적․역사적인 근거 없이 쏘련을 ‘사회제국주의 국가’라고 규정하고 ‘인민의 주요한 적’으로 삼는 ‘마오이즘’(모택동주의)로 알려진 현상이 나타나고, 그것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균열을 일으켰는데, 그것을 단순히 우호적인 두 공산당 간의 논쟁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쏘련 공산당은 제국주의에 포위되어 가장 곤란한 상황에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정치적 논쟁도 세계 공산주의 운동 내의 단결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긴급한 필요성이 주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논쟁이 많은 공산당․노동자당에 파급되고 당내의 분열이 되풀이되어 공산주의 운동에 새로운 경계선이 그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공산주의 정당 간의 국제연대’라고 하는 원칙이 ‘사회주의 국가와의 국제연대’라고 하는 기준으로 대체되어 버렸다고 하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제국주의와의 공동투쟁에서의 공산당․노동자당의 힘을 크게 훼손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두 나라의 재정적 힘, 군사력, 선전력의 적지 않은 부분을 제국주의와의 공동투쟁으로부터 빼내서 서로간의 반목투쟁에 충당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은 틀림없이 제국주의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국과 쏘련의 논쟁을 최대한 이용하여 국제공산주의 운동 내부의 분열을 고착화시키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한층 더 약화시키려고 하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과 국가 간의 경계가 애매해진 것은 제국주의에 반공선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제국주의의 매체와 그 선전기구는 각 국의 공산당․노동자당 사이의 국제연대를 사회주의 국가, 특히 쏘련에 각 당이 ‘종속’되어 있는 증거로서 묘사하고, 각 국의 당에 대하여 사회주의 정부의 ‘제5열’, ‘스파이’라고 하는 딱지를 붙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당과 국가기구의 융합은 각 국의 공산당․노동자당이 이러한 사실무근한 트집을 격퇴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였다. 이 문제는 또한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선전공세의 커다란 영향 하에 있었고 지금도 그 영향 하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근로인민이 자기 나라의 공산당․노동자당에 가담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긴 안목으로 보면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운동․공산주의 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둘째로, 언제나 ‘현상(現狀)을 폐지하는’ 공산주의자의 책무인 기존의 결함에 대한 이론적인 비판이 현상에 대한 관료적인 칭찬과 정당화로 대체돼 버리고, ‘현존하는 사회주의’의 약점에 관한 세계의 공산당․노동자당의 평가는 더욱 더 비판적이지 않게 되었다. 제국주의의 선전공세에 직면해 있는 사회주의 국가의 힘을 깎을지 모르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하는 일반적인 방침이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자 및 노동자 운동의 활동에서 중심에 놓여졌다. 그리고 모든 편향과 왜곡에 반대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과학적 원칙을 견지한다고 하는 이론적․사상적 책무는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와 대치(對峙)하는 ‘현존하는 사회주의’의 방위라고 하는, 보다 긴박한 정치적 책무 앞에서 그 중요성을 차츰 잃고 있었다. 많은 사례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결함을 목격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것이 많은 공산당․노동자당의 지배적인 방침이 되고, 나아가 이 방침을 고수하는 것이 노동자계급과 공산주의의 대의에 대한 당의 충성도를 재는 척도로까지 되었다. ‘현존하는 사회주의’의 약점을 비판하는 것은 반(反)‘사회주의’로 간주되는 경향이 발전하고,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 자는 우리에게 적대하는 자다”라고 하는 교조주의적인 태도가 지배적으로 되는 당도 나타나고 있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이는 수많은 진지한 사람들, 공산주의의 이상을 지지하지만 현존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결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을 공산당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공산주의 운동의 분열을 더욱 조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의 이러한 정치적 책임과 이론적 책임이라는 두 가지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서로 보완적인 것이었다. ‘현존하는 사회주의’의 약점에 대한 이론적 비판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침략과 선전공세에 직면해 있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 공산당원이 단호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을 결코 방해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그와 전적으로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사회의 방위는 사회주의 체제를 이론적으로 비판한다고 하는 공산당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고,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이 두 가지의 동등하게 중요한 임무를 혼동하여 정치적 책임을 이론적․사상적 책임보다 상위에 두는 것은 공산당․노동자당의 운동 속에 정치적 실리주의를 만연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것은 공산당원이 ‘현존하는 사회주의’의 약점을 시의적절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했다. 현존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약점에 대한 이론적․사상적 탐구의 부족은 사회주의 국가기구와 집권정당 내부에 관료층이 무방비하게 만연하는 것을 더욱 조장하였다.


따라서 30년에 걸친 전위당의 주체적인 오류는 제국주의의 경제적․군사적, 그리고 선전 면에서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던 세계의 공산주의 및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한층 더 약화시켜 사회주의 국가들에 심각한 위기가 생기는 온상을 조성해 버렸다. 그러나 레닌이 올바르게 강조한 것처럼, 단지 객관적인 조건이 존재한다고 해서 저절로 정치적 위기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의 해체에 의해서 이익을 얻는 자들에 의한 조직적이고 의식적인 반사회주의 동원을 비롯한 주체적인 요인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요인의 하나인 제국주의는 70년 동안 모든 수단을 다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혼란시키고, 기회만 있으면 전복시키려고 하는, 일관해서 출현하는 위기의 주요한 원천으로 행동해 왔다. 하지만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체제 자체 내부에 지원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 최종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과거 수십 년 동안, 특히 10월 혁명의 승리 후 및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상황은 극히 엄혹했고, 사회주의는 1980년대에 비교해서도 훨씬 약했지만, 사회주의 국가 쏘련은 용감하게 자기 나라를 방위하고, 내외의 모든 적을 이겨냈다.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내부의 결함은 있었지만, 사회주의 체제는 그 성장․발전에 수반하여 단속적(斷續的)으로 생기는 위기에 대해서 그 사회구조에 필요한 변혁을 실행하고, 객관적인 상황에 따른 사회․경제 모델을 채용함으로써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해 왔다.

여러 결함은 있었지만, 사회주의는 과거 유례 없는 눈부신 역사적인 성과를 쌓고, 닥치는 위기도 타개하면서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향한 끊임없는 발걸음을 확고히 하려 하고 있었다. 사회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군사적인 안전보장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해서 몇 가지 핵실험 금지조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핵무기의 보유량을 삭감시켜 오기도 했다. 사회주의는 그 경제․산업구조를 발전시켜 전 세계 공업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점하게까지 되고, 공업․과학․기술의 많은 분야에서 자본주의를 능가할 정도로 되었다. 사회주의는 근로인민의 생활수준을 압도적으로 향상시켜 모든 국민에게 무상의 교육과 의료를 보장하고, 문맹과 실업을 근절하고, 고등교육을 받아 숙련기술을 가진 노동자계급을 육성했다.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교육이나 문화를 극히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21세기의 인류에게 가장 저명한 수명의 작가․시인․예술가를 배출했다. 사회주의는 그 국경 내부에서 생활하는 여러 민족 사이의 평화적인 공존을 확립했다. 세계적 규모에서는 사회주의는 낡은 식민지 체제의 해체,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피억압 인민의 해방, 정치적 독립과 사회적․경제적 발전을 구하는 많은 나라의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국주의에 의한 여러 전복공작(顚覆工作), 군사적 침략, 경제봉쇄, 과학기술의 금수(禁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가장 발달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장기적으로 달성했다.

사회주의의 위기는 성장의 위기여서 쇠퇴의 위기가 아니었다. 그 발전의 각 단계에서 사회주의는 계속적인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서 생산력의 발전단계에 맞추어 사회적․경제적 생산관계를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이러한 성장의 위기를 사회적․정치적인 위기라는 현실적인 요인으로 바꾼 것은 소련 공산당의 주체적인 오류와, 사회주의 내부에서 새롭게 발전한 생산력에 맞추어 생산관계를 재조정하기 위한 시의적절한 행동의 결여였다.

그러나 그렇지만 아직 이러한 오류는 사회주의 체제를 전복시킬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오류를 시정하기에 충분한 자원․재원이 있고, 사회주의는 위기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때까지의 성과에 의거할 수 있었다. 이를 방해하고, 사태를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로 향하게 한 것은 어떤 일정한 사회계층이 출현하여 성장하고,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배반한 것이었다. 이 사회계층은 당에서도 국가에서도 스스로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제국주의의 반사회주의 책동을 위한 사실상의 내부기지가 되고, 내부로부터 사회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치적 도구를 제공했던 것이다.

한/노/정/연


1) 쏘련 공산당 강령, 같은 책, pp. 25, 35.


2) 같은 책, p. 18.


3) 쏘련국립정치도서출판소 편, 刀江書院 刊, ��現代の‘共産黨宣言’��, pp. 56 - 57.


4) 앞의 ��ソ連邦共産黨史��(最新版), p. 1003 (일본어 역주 : 이는 ��ソ連邦共産黨史�� 속의 공산당․노동자당 대표회의에 관한 기술(記述)이기 때문에 “모스크바 성명”에 이 기술대로의 표현이 있는 것은 아니다.)


5) ソ連共産黨 綱領, 같은 책, p. 19.


6) History of 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Farsied., Tudeh Party of Iran Publications, 1979, p. 849.


7) 같은 책, p. 847.


8) 같은 책, p. 849.


9) World Armament and Disarmament: SIPRI Yearbook, 1977; Quoted in M. Myerson and M. Solomon, Stopping World War III, US Peace Council, New York, 1981, p. 72. [SIPRI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역자].


10) 같은 곳.


11) 그레고리․스튜어트, 같은 책, p. 20의 제2표 “1983년의 미국과 쏘련의 경제비교”.


12) Mohammad Hassanin Heikal, Revisiting History, tr. by Hassan Faramarzi, Hafteh Publications, Tehran, 1990, p. 21.


13) 같은 책, pp. 210 - 211.



의견글쓰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정규표현식
[ 0.05 sec ]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글쓰기 | 관련글쓰기 | 수정 | 삭제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