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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번 : [11호/알림-소식] 한국노동운동에서 독일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적 견해
           - 홀거 하이데 교수 초청 토론회
글쓴이: 한노정연 등록: 1996-05-20 00:00:00 조회: 1388

자 료




한국노동운동에서 독일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적 견해
- 홀거 하이데 교수 초청 토론회-


이 글은 지난 5월 4일 연구소에서 있었던 홀거 하이데 교수(독일 브레멘 대학, 000) 초청 토론회에 제출된 발제문이다. 하이데 교수는 이 발제를 통해 독일 노동운동에 대해서 우리 노동운동진영이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면서 자본의 경쟁력 논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진정한 국제적 단결이 필요함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 연구소에 오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아주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저는 지난 87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처음왔을 때, 7, 8, 9월 한국 노동투쟁의 피크 시절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 당시에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이전에도 한국에 관심이 많았지만, 87년 이후로 각별하게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브레멘 대학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이나 사회적 상황을 연구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있는데, GNP나 GDP같은 이런 양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행위하고 있는가하는 부분에 관심의 초점을 갖고 있습니다.
브레멘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 이외에도 중요한 한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국의 노동조합운동 내지 전반적인 사회운동을 연대의 차원에서 지원하는 조그마한 그룹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서론을 길게 하면 안될 것 같은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의 핵심은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연대차원의 사업이라는 점, 연구와 가르치는 것과 실제적인 활동 이런 것들이 연대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관해서 토론하고 같이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차원에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연대차원의 연구와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서 본인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관해서 굉장히 열린 마음으로 거리낌없이 얘기를 나누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고, 그래서 서로 어떠한 비판이나 질문에 대해서도 움츠려들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연구소의 분위기도 그런 맥락에 있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발표하는 도중이나 이후에 질문이나 문제가 있을 경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토론이 중요한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테마는 칠판에 쓰여져 있듯이 한국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독일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나름대로 비판적인 견해를 표시하면서, 과연 독일의 노동운동에서 어떤 것을 시사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인이 말씀드리는 이 내용에 담겨져 있는 것은 사실상 한국에서 노동조합 대의원들이 독일을 많이 방문하는데 직접 방문하신 분과 토론을 하면서, 직접 작업현장을 방문하면서 본인이 느끼고 정리할 수 있었던 내용과 관계됩니다. 그 중에서 특이할 만한 것은, 한국에서 독일을 방문하는 분들이 독일의 노사관계 시스템에 대해서 굉장히 ‘좋게 본다’(감탄한다. “이 정도면 되지 않느냐”)는 점입니다. 제 얘기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풀어 볼까 합니다. 본인이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강연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설 세 가지 테제입니다. 하나는 독일노동운동을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통해서 정리하는 것, 두 번째 테제는 한국노동운동의 흐름을 비교적 최근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정리해보고, 세 번째 테제는 종합적으로 과연 한국의 노동운동이 독일로부터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인정을 추구한 초기 독일노동운동

우선 첫 번째로 독일노동운동사에서 출발점, 원류를 따라 올라가 보면, 노동자들의 처음 조직이 노동자 협회나 공제회 형태로 많이 존재했는데,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성은 전자본주의적이었지요.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이전의 사회에서 가질 수 있었던 그런 어떤 이념들, 이웃간에 서로 돕고 살던 인간적인 공동체, 인간끼리 서로 인간으로 존중하던 것, 이런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인 생산과정, 노동과정에 포섭되면서부터 노동자들이 느꼈던 것은 인간으로서의 모욕감, 굴욕감, 경멸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노동운동에서 투쟁의 핵심은 인간다운 대접, 인간으로서의 인정을 받는 것에 있었습니다. 다른 편으로는 바로 노동과정에서 자기 내면의 욕구, 자아실현이라고 하는 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런 에토스(정서)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조건 속에서 바로 투쟁의 도덕적인 힘, 투쟁력이 강했고, 19세기 마지막 1/4세기 말기에 노동조건이나 임금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투쟁의 과정에서 물질적인 향상과 같은 성과는 상당 부분 얻어낼 순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처음에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의 존엄성 확보라고 하는 측면은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향상, 즉 복지수준이나 임금이나 노동시간이나 이러한 물질적 향상의 다른 측면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 활동가에 대한 감시와 추적, 수배, 이런 것들이 항상 양면을 가지고 진행되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상황은 1차대전 이전까지의 독일노동운동사입니다.
아주 자세히 들어갈 수 없지만, 여기에 부수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노동운동이나 기타 정치운동들이 1차대전과 가졌던 관련성인데, 그것은 특히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1차대전이 발발하자 상당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국내의 대동단결을 외치면서 1차대전에 참여한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념의 분열과 후퇴, 포디즘의 시험과 실패

1차대전을 분기점으로 해서 독일노동운동의 2단계라고 할 수 있는 다음 단계가 시작되는데, 그것의 핵심적인 주된 특징은 1차대전의 과정과 결과, 그 이후의 독일노동운동이 이념적으로 엄청난 분열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기(1918~1933), 그 당시의 특징은 엄청난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진보적 활동가에 대한 감시와 추적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당시 특히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노동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는데(본인은 그것을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이라고 부릅니다), 사회전체적으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이 이루어진 수단은 군대, 경찰을 동원하는 것과 더불어 주요한 인사들에 대한 살인(암살), 또 다른 한편으로는 1차대전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쟁취한 임금인상 또는 물질적인 향상들을 일시에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렸던 엄청난 인플레이션(하이퍼 인플레이션-몇 100만 퍼센트까지)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그런 독일의 상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차대전 이후의 독일은 아주 소국화되어버렸는데, 그것은 식민지를 다 잃어버리고 동시에 천연자원도 제약된 상태로 국한되어 버리니까, 독일의 자본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었죠. 그러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을 엄청나게 군기잡아야 되고, 즉 한편으로 탄압하면서 동기부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성도 엄청나게 높여야 되는 그런 입장에 있었습니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노동자계급을 생산에 제대로 동원하고 군기를 잡기 위해서 독일기업이 그 당시 추구했던 전략은 미국의 거대기업(콘체른) 등을 모델로 해서 노동과정, 생산과정 전반의 합리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테일러리즘을 도입하고, 그렇게 하면서 레파(한국의 생산성본부와 유사)라고 하는 것이 MTM(시간, 동작연구) 같은 기법들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러한 테일러주의라고 표현될 수 있는 미국적 생산방식의 핵심은 본래 노동운동이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것’과 완전히 반대 편에 서있는 것이었죠. 왜냐하면, 이런 테일러주의적인 노동통제방식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에 기초해 있고, ‘인간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못한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오는 원리가 통제의 극대화인 것입니다. 결국 인간으로서 인정받는다는 본래의 뜻과 테일러주의적 노동통제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당시 독일노조가 이러한 새로운 자본의 전략에 대해서 어떻게 행위했는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적 생산방식, 테일러주의적 합리화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수용한다, 단 우리가 협력하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금전이나 노동시간 측면에서 보상을 해준다면 협력을 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과정이 독일에서 ‘포디즘’이 시험되는 과정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런 실험의 과정은 당시 독일자본주의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포디즘적인 축적과정이 제대로 되려면 노동자계급을 배불리 충족시켜줄 수 있는 충분한 자원(파이)가 있어야 되는데 그부분이 독일자본에게는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 과정과 관련, 본인이 하나의 가설(나름대로 독자적인 테제)을 말씀드리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독일노동자계급(노동조합을 포함해서)이 새로운 노동과정을 수용하면서 거기에 하나의 “보상”으로 어떤 것을 요구하는데 , 이것은 더 이상 “인간다운 세상”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분배” 싸움으로 운동이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분배싸움에 자기 스스로를 동참시키는 이 과정이 사실은 결국에 가서 독일노동운동을 전반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혹은 사기의 측면에서 굉장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아주 래디컬한(급진적․전투적) 모습을 보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목표, 즉 처음의 반자본주의적인, 또는 인간으로서 제대로된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생각, 대안적인 생각을 더 발전시켜 나갈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노동운동에 있어서 활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테제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독일 노동운동의 약세는 1933년도에 나찌, 국가사회주의당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일 파시즘(1933~45)이 유지되는 데 있어 그 특성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프롤레타리아적인 삶의 관련성, 프롤레타리아적인 문화, 관계, 이데올로기 등과 같은 것의 총체를 지속적으로 파괴시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여러 인간적인 사회관계들을 파괴시키고, 결국에 가서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정체성 그 자체를 파괴시킴으로써 독일 좌파 내지는 진보적인 세력들을 총체적으로 좌절에 빠뜨려버리는 그런 무서운 측면을 가졌다는 점이지요..

포드주의적 자본축적 모델에 상응하는 노동자조직, 독일산별노조

그래서 1945년 2차대전 말기에 가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독일 사회에 하나의 공백이 생기는 그러한 상황이 도래했습니다. 바로 이런 2차대전 직후의 상황이 2차대전 이후에 독일노조 재건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일노조가 새 출발을 할 때 가졌던 생각, 지향성이라고 하는 것은 파시즘 체제 이전의 시절에 대한 도덕적이고 향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지요. 그러나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저지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의 투쟁은 2차대전 이후에 실패로 돌아가 버렸고, 이 실패의 결과로 독일노조가 지향하고자 한 것은 탈자본주의적인 것이 아닌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서 생산해 낸 “결과들에 대한 분배의 몫”을 어떻게 하면 보다 크게 할 것인가에 맞추어졌습니다. 그 당시 2차대전 이후에 독일노조가 산별노조 중심으로 재구축되었는데 이것은 한국의 최근 산별노조 논의와 관련해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산별노조 형태의 노동조합 조직체계라고 하는 것은 포드주의적인 자본축적 모델, 혹은 포드주의적 사회구성체 모델과 아주 유사한, 거기에 상응하는 노동자조직이라는 점입니다. 독일에 있어서 산별노조 중심의 조직체계라고 하는 것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중앙집권적인 그리고 동시에 그것으로 인해 투쟁을 강력하게 해 줄 수 있는 조직의 총체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기업가들에 대해서 노조의 요구를 비교적 쉽게 관철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노동조합의 지도부로부터 노조의 풀뿌리에 이르기까지, “위로부터 아래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바로 그 과정에서 밑의 기층 노동자들을 노조 지도부가 일정하게 군기도 잡고 나름대로 통제하는 “대상”으로 전락되는 측면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족주의적인 의식의 발전과 분배투쟁으로의 변화

지금까지 말씀드린 독일노동조합운동의 발전과정을 나름대로 분석적으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최초의 노동운동이 출발했던 목적이 아까도 암시했듯이, 지금과는 다른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싸움, 착취없는 사회, 그런 사회의 지향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노동조합운동의 전개과정, 이념적인 후퇴의 과정이랄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변형되어갔는가 하면, 착취없는 새 사회의 건설이라기 보다는 생산물(혹은 착취물) 자체는 인정하고 거기에 대한 분배몫을 얼마나 크게 할 것인가하는 분배투쟁으로 지속적으로 변해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당히 세심하게 봐야 할 점은, 생산의 결과물, 착취물이라고 하는 것이 노동자의 눈에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낸 물건들을 뺏기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이 되돌려 달라는 차원에서 논의되는 한, 노동조합은 일정하게 도덕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경제기적(“라인강의 기적”)이라 알고 있는 1950~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이루어졌던 엄청난 물질적인 소비수준의 향상이라는 것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분배의 몫을 크게 했는데, 문제는 그것의 “원천”이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한 번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디즘이 가능할 수 있었던 원천을 단순화시켜 두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하나는 우리가 이른바 자연이라고 부르는 환경, 생태계에 대한 아주 가혹할 정도로의 수탈 내지는 착취, 파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중심부자본주의 국가로부터 가난한 주변부 여러 나라들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착취하는 것, 그것이 두 가지 원천입니다. 노동자들이 분배몫을 늘려달라고 계속 주장했었는데, 그것은 항상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보였느냐 하면, 자기가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바로 우리의 것이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논리, 이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의 파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부 혹은 3세계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착취의 결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러한 부분들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것이다”고 하는 것에서 일단은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이 예컨대 자연 파괴가 노동자에게도 느껴지고, 혹은 3세계에서 더욱 빈익빈(1세계의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 세계적 차원에서 국제적 가치의 재분배(세계시장을 통한)가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독일노조운동도 이것이 무언가 잘못되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노조운동의 논리에 있어서 도덕적 정당성이 상실되어지고, 싸움이라는 것이 순수한 힘겨루기, 그래서 조직의 힘이 강할 때는 물질적인 보상의 수준(임금인상 등)이 올라가고 힘이 약하면 내려가는 그런 정도의, 어찌보면 노동운동에서 진정한 내용이 빠져버린, 그런 조합주의 운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점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런 과정들과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민족주의적인 의식의 발전입니다. 민족주의라고 표현한 내용은 바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기업과 협력해서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다른나라 외국인들이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논리를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 논리가 최근 오늘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노동조합 상층부에서 실제로 실질임금의 동결, 혹은 사회복지의 감축조차도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임금동결과 사회복지의 감축을 통해서 전체적으로 독일이라고 하는 국가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면, 임금동결과 사회복지 감축도 감수하겠다”는 자세, 즉 “타국 노동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겠다”는 자세이기 때문이지요. 본인이 지적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 개량주의, 그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원래적인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는, ‘착취없는 사회’의 건설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하나의 생산(결과)물에 대한 분배투쟁으로의 변화, 바로 그것이 개량주의라고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개량주의라고 하는 속에 우리가 말하는 어용노조로의 전환 가능성이 이미 그 개량주의 속에 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지금 현재의 독일노조에서 관찰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가 첫 번째 부분입니다.

‘결과에 대한 분배의 몫’을 늘리려는 한국노동운동의 최근 동향

두 번째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에 관한 것은 상대적으로 짧은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한국의 노동운동사 자체가 짧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정보가 부족해서입니다. 상대적으로 짧다는 노동운동의 역사는(87년 이후가 아니라) 45년 일제식민지로부터의 해방 이후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한국노동운동, 민중운동 전반의 특성은 일제 식민지로부터 받았던 압박과 지배, 그런 것이 더 이상 없는 새로운 사회 또는 새로운 나라,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주된 목표로 제기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대안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은 지극히 빠른 시일 내에 1950년에서 1953년까지의 한국전쟁을 포함해서, 아주 유혈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전쟁 이후에 죽은 자와 잿더미만 남은 것으로 비유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된 것이지요. 전평, 빨치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45년 이후의 전 과정은 한편으로는 농민이나 노동자, 하층민중을 포함한 보다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지향하는 진보적인 세력을 일단 물리적으로도 완전히 제거, 청산해버리는 과정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노동해방, 인간해방에 대한 신념, 그 자체를 심리적으로도 말살시키는 그런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한국 근대노동운동의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의 군부독재과정 하에서도 물론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노동운동을 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군부독재하에서 가지고 있던 노동운동의 특징은 많은 경우 전자본주의적 요구가 있었고, 도덕적으로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운동의 요구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인정, 대우 그리고 생존의 보장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와 생존권 보장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잘 아시는 1970년의 전태일 분신, 그리고 70~8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70년대 중화학공업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노동자층이 탄생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중화학공업과 더불어 부상한 새로운 노동자층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른바 산업역군이라고 표현되듯이 산업에 있는 병사, 군인들은 기업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만 된다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중심의 대중노동자가 나오면서 이른바 근대적인 노동자로서 의식을 관철시키고 확장해 나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요.
87년 이후의 상황으로 넘어오면, 우리는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의 다이나믹하고(동태적이고) 다양한 발전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사무직이나 생산직 노동자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지위향상을 어느 정도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노동조합운동의 구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기업별노동조합입니다.
그런데 70년대 운동과 80년 이후의 운동을 요약하면, 군부독재 하에서 군부독재에 반대하던 운동, 투쟁이라고 하는 것은, 임금인상이나 사회보장이라는 요구 그 자체가 이미 군부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과정과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물질적 삶의 조건 향상이라는 것에 초점이 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물론 민주노총이나 전교조가 합법성 인정을 위한 싸움을 하긴 하지만), 노동조합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 합법화라고 하는 것이 아직 정치적으로 미해결의 과제로 여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그것을 인정합니다만), 한국 노동운동의 논리가 경향적으로 어떻게 흐르고 있느냐 하면, 선진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생산의 ‘결과에 대한 분배의 몫’을 늘리고자 했던 그런 측면으로 가고 있는 것, 그것이 한국사회에서도 관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요컨대 최근의 세계화 추세, 상품, 자본 그리고 최근 들어서 노동시장의 세계화(외국인 노동자 유입)와 관련해서 한국의 비교적 젊은 노동운동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 정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자본과의 투쟁에서 실패한 독일노동운동

지금까지 1부, 2부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전제로 한다면 과연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독일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세번째의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운동이 독일을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 전형으로 바라보는 관심이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독일에 대한, 독일 노자관계, 사회 체제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이 이미 외양상으로 보기만 하더라도 본인이 보기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더라도 라고 말씀드렸을 때, 그 외형적인 것을 몇 가지 예를 들면, 독일 노동조합은 최근에 실질임금의 동결에도 기꺼이 응하려고 하고 있고, 두번째는 노동시장의 상황이 브레멘 같은 경우에 15%의 실업률을 기록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10% 이상에 이르는 실업상황, 고용악화 상황이 나타나고 있고, 세번째는 사회보장제도의 전반적인 감축이라고 하는 것이 노조의 묵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노동조합 시스템, 혹은 노동조합운동은 실제로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나라에도 모범적인 사례, 본보기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예컨데 첫번째는 독일에 산별노조가 있다, 두번째는 노동조합이 기업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공동결정권이고, 세번째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들 수 있고, 노조대의원이라고 하는 노동조합 활동가가 현장에 뿌리를 박고 있는 제도(Vertrauensleute, shopsteward)의 활성화라고 하는 점, 이 정도를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지요. 많은 한국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독일을 방문하면서 이런 몇 가지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지적하는 비판의 내용은 독일노조가 지나치게 관료주의화되어 있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생동감이 없다, 현장의 움직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복지부동) 것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하나의 나름대로의 사실을 정리해 본 것인데, 본인의 견해를 밝히면, 서로 배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것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상호학습이라는 것이 결과만 보고 학습할 것이 아니라 특수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제대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역사나 사회적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을 때, 중요한 예를 하나 들면 다음과 같은 통찰력입니다. 즉 현재 독일 노동조합운동이라는 것은 자본에 대한 싸움에 있어서 노동운동이 아주 깊게 좌절되어 버린 패배의 결과로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 자본은 노동계급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포드주의적으로 조직해 냈다. 바로 그런 포드주의적으로 조직해 낸 자본에 대해서 실패한 결과물로 오늘날 독일 노동조합운동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을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바로 이 포드주의적으로 조직된 자본과의 싸움에서 실패한 결과라고 하는 이유는 노동자들이 자연에 대한 착취, 수탈, 나머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착취, 수탈의 결과에 대한 분배의 몫을 크게 하는 그런 모델로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운동이 상당히 좌절내지 실패한 결과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물을 나누어 가지는 구체적인 형태가 공동결정제도, 그리고 사회정책이나 교육정책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노동자들이 가지고 갈 수 있는 몫이라고 하는 것도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선물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환인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물질적인 분배몫을 크게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나름대로의 유토피아, 착취가 없는 대안적인 세상을 추구하기를 포기한 것이 노동자계급이 주는 것이고, 그 대신 받는 것이 분배몫을 크게 하는 것입니다.

자본의 경쟁력 논리를 넘는 진정한 국제주의가 필요

지금까지 논의에서 결론적인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첫번째로 독일노동운동, 노사관계 혹은 독일사회의 모델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포디즘의 위기라고 하는 것과 더불어서 더 이상 쓸모없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두번째로 정리할 수 있는 요점은 이런 독일모델이라고 하는 것은 포드주의적 자본축적의 모델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예컨대 한국상황, 이런 것에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포드주의적 축적모델이라고 하는 것은 분배할 파이 혹은 자원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인데, 오늘날 독일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금동결이라든가 사회복지 감축이라는 것이 암시하듯이 충분히 노동계급에게 분배해 줄 자원이 독일에도 충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배자원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는 독일모델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한국발전과정을 보면 가난한 다른 나라로부터의 부의 이전, 착취를 통해서 이른바 선진대열에 끼고자 하는 나라에 한국도 막 속할려고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일이 포디즘적인 축적모델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분배할 자원들이 자연파괴로부터 나오든지 주변부 나라들로부터 나오든지 간에 충분히 있었다는 것이지요. 한국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최근의 세계화, 국제화 추세와 더불어서 세계시장에 있어서 선진대열에 끼일려고 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엄청나게 팽창하면서 또 분배할 수 있는 몫의 원천을 증대시키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노동조합도 이렇게 마련되어지는 자원과 부에 대한 분배의 몫을 나누어가지는 데 동참하고자 하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조가 이 과정에 동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노동조합(운동)이 지금까지의 기업별 노동조합체제의 편협성, 고루성에 매몰되어 있던 틀을 탈피하고 독일노조식의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보입니다. 바로 아까 말씀드린 자본 노동시장의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 이런 시점에 있어서, 제가 보기에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한국경제의 경쟁력 향상을 통해서 한국사람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다른 나라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하는 식의, 혹은 “다른 나라에 노조지원연대를 해서 다른 나라 노동조합이 강해진다면 우리나라 상품의 경쟁력이 올라간다”고 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적인 국제연대, 국제주의’가 아니라, ‘진정하게 생명력이 살아있는 국제주의’야 말로 노동조합이 진정한 노동자의 이해대변 기구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라 생각합니다. 본인이 보기에 이러한 인식이 한국 노동조합에도 어느 정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는데, 한국노동조합운동에서도 국제적인 연대, 협력이라는 것이 예전에 비해서 증가하고 있고, 그리고 이른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예전에 비해서 상당히 책임있는 자세로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점들을 보면서 저는 일말의 희망적인 것을 한국노동운동에서 보고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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