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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8번 : [14호/연재-기획] 전투화하는 미국의 노동운동 |
| 글쓴이: 스기모토 요시오 |
등록: 1996-08-20 00:00:00 |
조회: 1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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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 제 ◦ 노 ◦ 동
전투화하는 미국의 노동운동
AFL-CIO 지도부 개혁의 배경
스기모토 요시오 (杉本芳夫)
이 글은 일본의 격월간 ꡔ社會評論ꡕ
제103호(1996년 8월 1일, 도쿄)에 실린 「<特集 = 反擊へ!
勞動者階級の胎動> 戰鬪化するアメリカ勞動運動
ꠏꠏꠏꠏ
AFL-CIO指導部改革の背景」을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문
가운데 ‘중략’ 및 ‘이하 생략’으로 처리한 곳은 원래의
필자인 스기모토 씨가 이들 문제에 대해서 이전에 발표한 글들을
열거한 부분으로서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에게는 번거롭기만 할
것으로 판단되어 번역에서 제외했습니다. 참고로, 스기모토 씨는
글의 말미에 ‘1996년 4월 29일’이라고 원고 집필 일자를 적고
있음을 밝힙니다.
1. 글머리에
민주노총의 결성이 상징하는 것처럼 지금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격화되고 있다. 또한 작년 12월에는, 정부에 의한
사회보장제도의 개악과 공공부문의 대대적인 합리화에 반대하여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수백만 명의 규모로 총파업에 나섰던
사실도 기억에 새롭다.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자본의 공격 ꠏꠏꠏ
자본주의가 직면한 위기적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타개하기
위해서 근로인민이 투쟁을 통해서 쟁취했던 제권리, 사회보장
등을 탈취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과 조합 파괴의
움직임을 강화하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착취의 강화를
꾀하는, 그러한 자본의 공격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다.
그에 비해서, 한국이나 프랑스에서의 움직임은, 노동자들의 쪽도
저항을 강화하고 반격에 나서기 위해서 전세계적으로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선진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노동운동의 최근의 변화와 동향도 그러한
세계적인 흐름 속에 위치지울 수 있을 것이다.
2. AFL-CIO의 새로운 지도부 선출과 그 의의
2-1.
미국의 노동운동은 전투성을 회복하고 공세로 전화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아주 분명하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그것을
보여주는 움직임으로서는 미국 노동조합의 전국적 중심(national
center)인
AFL-CIO(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노동조합회의)에
계급투쟁을 지향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한 것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조직 노동자들은 작년에, AFL-CIO의 의장으로서
1979년부터 16년간 미국 노동운동에서 노자협조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레인 커클랜드(Lane Kirkland)를 사임시켰고, 10월에
뉴욕에서 개최된 AFL-CIO 전국대회에서는 투쟁을 적극화한다는
방침을 채택하고, 그때까지의 AFL-CIO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였다.
근래의 미국 노동운동의 정체를 초래한 한 요인은 커클랜드의
지도하에 AFL-CIO가 노동자계급의 이익 옹호가 아니라, 특히
외교정책에서 미국 정부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레이건・부시로 이어진 공화당 정권 하에서 강화된
노동자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 정면 반격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방침을 취해 온 커클랜드 노선에 대한 조합활동가
하부로부터의 비판은 작년 2월의 집행평의회에서 표면화되어
5월의 집행평의회에서는 트럭운전사노조(Teamsters),
전미국주군시직원조합연합(全美國州郡市職員組合聯合, 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
AFSCME), 국제서비스노조(SEIU), 전미국자동차노조(UAW),
전미국철강노조(USWA), 전미국기계공노조(IMA) 등 주요 단위
산업별 노조의 위원장들이 커클랜드의 재선에 반대하며 독자적인
의장 후보를 내세우겠다고 발표하였다.
커클랜드는 AFL-CIO의 개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확산되어 가는 데에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임기 중반인 8월
1일의 집행평의회에서 마침내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클랜드파는 종래의 노선을 계속할 것을 획책하여 8월의
집행평의회에서는 33명의 집행평의원의 찬성 표결에 의해서
커클랜드 시대의 재무국장(실질적인 서기장) 토머스
도너휴(Thomas Donahue)가 커클랜드의 잔여 임기를 복무할
잠정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0월의 대회에서는 AFL-CIO
사상 최초로 대립 후보가 있는 선거에서 국제서비스노조의 존
스위니(John Sweeney) 위원장이 도너휴를 누르고 새로운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대회에서는 조합원 수에 비례한 표수가
대회 대의원에게 할당되어 투표가 이루어졌다.
2-2.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미국 노동자의 상태인데, 자본의
격렬한 공격과 그것에 대항하지 않은 커클랜드 및 그 전임자
죠지 미니(George Meany) 지도부 하에서 이러한 미국 노동자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기로 하자.
우선 미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보면, 노동조합으로의 조직률은
1954년의 37.4%를 정점으로, 1960년 31%, 1980년 23%, 1990년
16%. 1994년 15.5%로 계속 저하했고, 1995년에는 14.9%로 전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 조직률의 저하와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듯이 쟁의 건수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참가 인원 1,000명 이상의 쟁의 건수는 1975년
235건, 1980년 187건, 1985년 54건, 1990년 44건, 1993년
35건으로 계속 감소했고, 1994년에는 45건으로 그 전해를
상회했지만 1995년에는 32건으로 전후 최저를 기록했다.
임금 인상률은 1980년의 9.5%에서 1987년에는 2.2%로
감소했다.
남자의 실질임금 평균은 시급(時給)으로 환산했을 때 1989년의
$11.98에서 1995년에는 $11.24로 저하하였다.
그에 비해서 기업 측은 어떠했던가? 기업의 (전미국 평균)
세후수익률(稅後收益率)은 1952년에서 1979년까지의 평균이
3.6%였음에 비해서 1994년에는 7.5%로 상승하였다.
미국 사회의 빈부의 격차도 확대되었다. 1990년의 달러 가치로
환산하여 1973년에는 전체 세대 가운데 소득구분으로 상위 20%에
속하는 세대의 평균 소득은 $77,500.-, 하위 20%의 평균은
$10,400.-로서, 그 무렵에 이미 7배나 격차가 있었다. 그런데
1992년이 되면 상위가 $98,000.-로 증가했음에 비해서 하위는
$9,700.-로 감소하여 그 격차도 10배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의 인구 2억 6,000만 명 가운데 약 4,000만 명이 빈곤상태에
있다고 얘기되고 있다. 그리고 노동력 인구 1억 2,600만 명
가운데 1,370만 명이 실업자 혹은 (파트타임 등 일시적인
고용상태에 있는 자로서)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다.
2-3.
이러한 상태에서 AFL-CIO의 개혁이 갖는 의의에 관해서 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얘기한 노동운동의 장기적인 후퇴에 덧붙여, 특히
현재에는 1994년 11월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하고
공화당이 상하 양원 모두에서 다수를 점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깅리치(Newt Gingrich) 하원의장
등으로 대표되는, 근로인민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 강화되고
있다. 그것은 ‘미국과의 계약’(Contract on America)이라고
불려지는 일련의 정책으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
법률인 와그너법(Wagner Act : 1935년 당시 New Deal 정책의
일환으로 제정된 미국의 노동법으로서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고
있음 - 역자)을 실질적으로 해체해 버리려는 공격,
Medicare(노령자 의료 원조), Medicaid(저소득자 의료 보호)의
대폭 삭감 등이다. 또 1994년 1월에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됨으로써 값싼 노동력을 찾는 미국 산업의 국외 유출,
산업구조의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되고 있다. 스위니 의장의
선출은 이러한 상황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의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지도부의 등장이다.
스위니 지도부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약을 내걸어 추진하려
하고 있는가?
그들은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최우선 과제로서 내걸고,
구체적으로는 AFL-CIO의 예산의 30%(약 2,000만 달러)를
조직화에 할당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자본의 공격이자 미국에서도 비상히 강화되고 있는
움직임의 표현으로서 노동조합 부수기, 노골적인 협약 위반,
파업 파괴자를 고용한 공격 등이 있는데, 스위니 지도부는
이러한 것들에는 단호히 반대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다시
활성화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또 그들은 고용의 국외 유출에
반대하고, 공화당이 추진하는 ‘미국과의 계약’에 반대하여
대항할 것을 공약하고 있다.
또한 미국 노동운동의 이러한 동향이 전세계 노동운동에 주는
영향도 지대하다. 종래 AFL-CIO는 국제자유노련(ICFTU) 등을
통해서 세계의 우익적․반동적․노자협조주의적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센터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AFL-CIO는
반동적인 노조활동가에게 CIA의 자금을 전달하고, 그러한 노조
지도자에게 교육・훈련을 시키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해
왔다.
1964년에는 라틴아메리카 대책으로서 아메리카
자유노동개발협회(AIFLD)를 설립하여 그러한 행동을 하였다. 또
그러한 목적 하에 같은 해(1964년)에 아프리카・아메리카
노동센터(AALC)가, 1968년에는
아시아・아메리카자유노동협회(AAFLI)가 각각
설립되었다.
AFL-CIO의 새로운 지도부는 이러한 활동에서 벗어나서 세계의
계급적인 노동조합 운동과 결합하여 발전하여 갈 것으로
기대된다.
(...... 중략 ......)
3. 미국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
AFL-CIO에 그전과는 다른 투쟁하는 지도부를 탄생시킨 미국의
노동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가?
개별적인 공격과 그것에 대항하는 격렬한 투쟁의 대표적인 예를
보기로 하자.
3-1. 일리노이주 디케이터시의 투쟁
일리노이주의 디케이터(Decatur, IL)시에서는 인구 9만 명의 시
안에 있는 15만 평방 킬로미터(Km2)의 공업 지역에서 3개의
다국적기업과의 투쟁이 장기간에 걸쳐서 계속되고, ‘계급전쟁
지대’라고 불려질 만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3-1-(1) 스테일리
스테일리(Staley)사는 옥수수 전분(corn-starch), 옥수수
시럽(corn-syrup) 등 옥수수 가공에서 미국 제1위의
제조업체이고, 모회사는 영국의 다국적기업인 테이트앤라일(Tate
& Lyle)사이다. 테이트앤라일사는 조합 파괴, 임금 끌어내리기
공격을 전개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서 미국의 스테일리에서도
노동자에 대해서 공격이 가해졌다.
1993년 6월 이래로 국제제지노조(UPIU) 7837지부의 762명이
록아웃(lock-out)되어 있다. 회사측은 협약 개정 교섭에서 하루
12시간 노동, 주당 3일의 교대제, 임금 인하 등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요구를 들고 나왔다. 처음부터 회사측은
조합으로 하여금 파업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영구대체(permanent replacements)를 사용하려고 하였다.
영구대체란 파업이나 록아웃(공장폐쇄) 때에 회사측이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속적으로 사용하는 파업 파괴
대체요원으로서, 미국에서는 커다란 문제로 되어 있다. 이
영구대체는, 꽤 오래 전의 판례에서 합법적인 것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미국에서는 그것은 사회적으로 나쁜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거의 실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레이건 정권이 등장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1981년의
항공관제사노조의 파업에서 레이건 정부가 친히 파업 파괴자를
고용하여 파업 노동자들을 해고해 버린 이후 영구대체는 미국
기업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공격으로 되었다.
그런데 스테일리의 노동자들은 파업을 강요하려고 하는 회사측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측은 노동자들을
록아웃시키기로 결단을 내리고 무장한 파업 파괴 전문업자의
힘으로 조합원들을 공장에서 배제시켰다. 회사는 파업
파괴자들과 경영자만으로 공장을 조업하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 노조 측은 피켓을 치고, 또 스테일리의 감미료 등을
구입하고 있는 밀러(Miller)사 - 맥주회사 -나 펩시(Pepsi)사에
대한 구입 반대 보이콧 운동을 벌인다든지, 단식투쟁이나
전지역의 지원을 조직하는 등 창의적인 투쟁을 벌였다.
노동자들의 투쟁 결과 밀러사는 스테일리로부터의 옥수수 전분
등의 구입을 중지하였다.
결국 1995년 12월에 노조는 협약을 받아들였다. 조합원 투표
결과는 찬성 56%, 반대 44%였다. 그 결과 12시간 교대의 주 3일
교대, 연장근로수당 없는 주말노동 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아가 영구대체가 도입된 결과 록아웃된 762명의 조합원에
대해서 남아 있던 작업은 350명 분뿐이었기 때문에 직장에
복귀할 수 없었던 노동자의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3-1-(2) 캐터필라
캐터필라(Caterpillar)사는 불도저 등 토양 운반장치의
제작업체로서는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서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이다.
1991년 2월 캐터필라사는 협약 개정 교섭에서
임금・건강보험・고용 확보에 관해서 노동자에게
양보를 요구하여, 노조로 하여금 파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 파업은 1991년 11월부터 1992년 4월까지 계속되었다.
회사가 파업 노동자 전원을 영구대체로 교체하겠다고 협박해
왔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일단 파업을 중단하고 직장에
복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회사측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해서 부당
해고・정직(停職) 등 142건의 부당노동행위를 가하고,
회사측의 이러한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여 노동자들은 1994년
6월 1만 3,500명이 디케이터를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파업에
나섰다.
회사측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률도 아예 무시하고,
전국노동관계법(NLRA)의 골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성실한
교섭을 거부하였다.
파업은 1995년 12월에 종결되었다. 조합원 투표의 결과는 81%가
반대였는데, 지도부가 그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는 형태로
파업은 종결되었다. 그 결과 통상임금의 70%로의 이중임금제도와
변형근로제 등이 도입되었다. 캐터필라의 쟁의에 관해서는
전국적인, 나아가 국제적인 연대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3-1-(3) 브릿지스톤-파이어스톤
다국적기업인 파이어스톤(Firestone)사를 1988년에
브릿지스톤(Bridgestone)사가 매수함으로써 브릿지스톤은 세계
최대의 고무 제품 제조업체가 되었다. 타이어 생산에서는 세계
제2위이다.
브릿지스톤-파이어스톤(Bridgestone-Firestone)은 매수 후 잠시
동안은 노자협조를 추진했고, 회사의 수익은 개선되었다. 그런데
이윽고 회사측에 협력해 온 노동자들에 대해서
브릿지스톤-파이어스톤사는 전통적인 패턴 교섭(pattern
bargaining)을 거부하면서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요해 왔다. 패턴
교섭은 모델형(model型) 단체교섭이라고도 불려지는데, 그
산업의 대표적 노조에 의한 단체교섭에서 타결된 협약 내용이
동일 산업 내의 다른 조합의 단체교섭에서도 모델로 사용되는
것으로서 미국의 노사교섭에서는 이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었다.
회사측의 요구 내용은 임금 및 제수당의 삭감, 건강보험의
노동자 부담 증액, 휴가 삭감, 12시간 노동의 도입 등이었다.
1994년 7월에 전미국고무노조(URW) 조합원 4,000명이 파업에
돌입하였다. 그 가운데 700명이 디케이터의 노동자였다. 1995년
1월에는 브릿지스톤-파이어스톤이 영구대체 2,300명을
고용하였다.
파업은 1995년 5월에 일단 끝났지만 회사측은 노조원들의 직장
복귀를 거부하여 록아웃 상태가 되었다.
1995년 6월에는 전미국고무노조가 전미국철강노조(USWA)와
합병하였다.
그후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의 데모나 방일투쟁(訪日鬪爭),
보이콧 운동 등이 전개되고 있다(브릿지스톤은 일본계
다국적기업이다 - 역자). 1996년에는 미국의 대형
타이어판매회사인 지글러(Ziegler)사가 브릿지스톤-파이어스톤의
타이어를 취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노동자 투쟁의
성과이다.
디케이터시에서의 투쟁은 2년 반에 걸친 스테일리 쟁의 등 아주
장기간의 투쟁이 계속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스테일리,
캐터필라, 브릿지스톤-파이어스톤의 투쟁은 개별적인 투쟁으로도
진행하였지만, 세 개의 노조가 공통적인 공격에 맞서
연대투쟁으로서도 전개되어 커다란 투쟁이 되었다.
3-2. 디트로이트시의 신문 노동자
미시건주의 디트로이트(Detroit, Mich.)시에서는 2,600명의 신문
노동자가 1995년 7월 이후 현재에도 파업 중에 있다.
파업에 들어간 것은 ‘디트로이트 뉴스’(Detroit News; 35만
부, 일간, 모회사는 35개 주에서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등 85개의 일간지를 발행하고 있는 가네트[GANNETT]사)와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Detroit Free Press; 52만 부,
일간, 모회사는 13개 주에서 30개의 일간지를 발행하는 나이트
리더[Knight-Ridder]사)의 노동자들이다. 1994년에는 두 신문에
합계 5,600만 달러의 수익이 있었다. 두 모회사를 합한 수익은
6억 달러 이상이었다.
파업에 나선 것은 대도시신문노조평의회에 가맹한 6개 노조의
노동자다. 두 신문의 합병 사업체인 디트로이트 신문국(DNA)의
요구는 고용 삭감, 정규 고용(full-time)의 파트타임화, 임금
삭감 등이었다. 신문사 당국은 노조로 하여금 파업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한편, 파업 파괴를 준비하고
ꠏꠏꠏ 협약 교섭이 한창 진행 중에 멕시코
등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데려와 호텔에 머물게 하면서
대기시켰다 ꠏꠏꠏ, 조합 파괴 청부회사를
고용하여 노동자에게 폭행을 가했다. 8월에는
스털링하이츠(Sterling-Heights)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던
300명의 노동자에게 경찰이 폭행을 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스트라이크에 대해서 AFL-CIO는 전국적인 지원 운동을
전개하고, 두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는 기업에 압력을 가했다. 그
결과 1995년의 크리스마스 전(1년 중 가장 대목인 때)의
시점에서 두 신문의 광고가 42% 감소했다. 나아가 구독 거절
운동이 벌어짐으로써 1995년 9월의 시점에서 25만 명이 두
신문의 구독을 거절하고 있다.
1995년 11월에는 회사측의 신문에 대항하여 파업 중인 노조가
주간신문 ‘디트로이트 선데이 저널’(Detroit Sunday
Journal)의 자주발행(自主發行)을 시작했다. 이 48면의 신문은
처음에는 30만 부를 발행했었는데 곧 35만 부로 늘어나서 문제의
두 신문을 제치고 미시건주에서 제3위의 신문이 될 전망이라고
한다.
3-3. 기타의 투쟁
3-3-(1) 보잉
보잉(Boeing)사에서는 1995년 10월부터 그해 12월에 걸쳐서
32,000명이 파업 투쟁을 벌였다. 보잉사에서는 전부터
노자협조를 해 왔었는데, 협약 개정 교섭에서 노조는 기득권의
박탈과 국외(國外)로의 하청화를 요구받았다. 보잉에서는 1990년
이래 18,000명의 고용이 사라졌다.
그러한 공격에 대해서 반격에 나선 노조가 파업을 통해서 쟁취한
새 협약에는 임금 및 수당의 대폭적인 인상, 건강보건의
원칙적인 회사부담이 포함되었다. (하청화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노조와 사전에 협의하도록 하였다.)
3-3-(2) 뉴욕의 건물관리(maintenance) 노동자
1996년 1월에서 2월에 걸쳐서 35,000명이 파업투쟁을 벌였다.
쟁점은 임금 인하와 2단계 임금제도의 도입이었다. 이 공격에
대해서 노조는 임금 인상과 연금・의료보건의 향상을
쟁취했다. (2단계 임금제도는 도입되었다.)
3-3-(3) GM
1996년 3월 5일부터 3월 20일까지 GM(제너럴 모터스사)의
브레이크 공장의 노동자 3,000명의 파업 때문에 26개의
조립공장과 많은 부품공장이 조업을 중지했고, 17만 명 이상이
파업의 영향을 받았다. 최대의 쟁점은 고용 확보와
아웃소싱(outsourcing)이라고 불리는 외부발주(外部發注)였다.
당시까지 회사 내부에서 조달되고 있던 부품을 값이 싼
ꠏꠏꠏ NAFTA에 따른 멕시코 등으로
ꠏꠏꠏ 옮겨가는 것은 미국 산업 전체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그러한 커다란 흐름 속에서 그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졌다.
3-4 쟁의의 공통점
지금까지 얘기한 바에서 명백한 것처럼 현재 미국의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측으로부터의 위압적인 기득권 박탈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그 내용은 임금 인하, 인원 삭감, 장시간 노동의
강제 등으로서, 전미국의 쟁의에 공통적인
ꠏꠏꠏ 그리고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ꠏꠏꠏ 것이다.
게다가 고용 확보가 커다란 문제점으로 되어 있다. 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에 의한 노동을 미조직 노동자에게 옮기고, 나아가
국외의 저임금 노동자에게로 고용을 유출시켜 가는 흐름이
있다.
또한, 처음부터 조합을 파괴할 것을 목적으로 한 공격,
노동자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제출함으로써
조합을 파업 내지 록아웃으로 몰아넣어 해고 및 조합 파괴를
추진하려는 노골적인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커클랜드 지도부 하에서 추진되고 일시적으로는 기능하는 것
같았던 노자협조 노선도 이미 벽에 부딪쳤고, 자본측에서도
종래와 같은 노자관계로는 안되게 되어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공격 속에서 하부 노동자들의 전투화를 반영하여 AFL-CIO
지도부의 개혁이 실현되었다.(...... 이하 생략 ......)
한/노/정/연
(옮긴이 : 채만수,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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