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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번 : [49호/연재-기획] 분열을 넘어서기
글쓴이: 힐러리 웨인라이트 등록: 1999-11-10 00:00:00 조회: 1671

기․획․번․역

지난 호에 번역되어 있던 내용중 일부가 번역상의 뉘앙스 차이와 편집상의 착오로 몇 군데에서 어의 전달이 제대로 안 되게 번역되었기에, 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 실렸던 부분과 원래 계획했던 부분을 함께 묶어서 싣기로 했음을 밝혀 드립니다.

- 책소개 -

쉘리아 로보탐, 린 시걸,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ꡔ분열을 넘어서ꡕ,(보스턴: 앨리슨 출판사, 1979)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걸친 영국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의 자율주의적( libertarian) 좌파 여성운동의 기본 관점 및 경험과 관련된 논쟁적인 팜플렛들을 로잘린 박산달이 모아 미국에 소개한 책이다.
이 팜플렛은 레닌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도적이었던 영국 좌파 코뮤니스트의 경직된 남성주의적 관점의 추상성 및 몰성성(gender blindness)과 조직형태를 비판하며, 68년 학생운동의 신좌파적 전통에 따라 독립적인 지역운동을 창조하고자 한 노력들을 자기 성찰적 스타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는 기본적으로 체 게바라의 혁명적 행동주의,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이념노선에 속하는 마르쿠제 및 루카치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성 정치의 빌헬름 라이히, 랭 등 노선에 기초하고 있으며, 동시에 계급적 노동운동의 선진 노동자, 숍 스트워드의 전투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레닌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여성주의 비판에 기초하여, 여성해방운동, 게이운동, 인종주의 반대 운동, 반핵운동, 대안매체운동, 사회주의 연극 운동, 노동조합운동, 사회주의 조직, 세입자 운동 사이의 통일성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실천들을 검토하고 있다.
이 팜플렛 중 하나인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분열을 넘어서기”는 70년대 영국에서 노동당의 우경화 경향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새로운 운동 실천들과 사회주의 조직들 사이의 관계를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경험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노동당이나 정당 구조가 실제적인 정치 지형과 투쟁의 실재를 더 이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조직을 구성하려는 많은 대안적 실천들이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 운동들은 기존의 합법적 정치 구조에 대한 집착이나 노동계급의 정당으로 표상되는 노동당의 부정적 견인력으로 인하여 크게 제약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존 가능한 당 조직 형태만이 대안적인 당 조직 형태라고 전제함으로써 노동당 내ㆍ외부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정치적 연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음을 좌파 정치조직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속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러한 영국의 경험이 현 시기 우리 사회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와 관련된 다양한 실천적 노력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에서는 앞으로 이 글을 두 차례에 걸쳐 번역하고, 린 시걸의 “지역운동 경험”을 이어서 번역 소개할 것이다. 이 글들은 한국 좌파 운동 및 여성운동, 노동운동 실천 활동가들에게 여러 가지 토론 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노동자 정치조직 건설과 관련된 실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토론을 위한 자료로서 번역 소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힐러리 웨인라이트, “분열을 넘어서기” 쉴라 로보탐 등(1979), ꡔ분열을 넘어서서ꡕ,
보스턴: 앨리슨 출판사, 211~253쪽.
(Hilary Wainwright, "Moving Beyond the Fragments" in S.Rowbotham et al.(1979),
Beyond the Fragments, Boston: Alyson Pub, pp.211~253.)




(Moving Beyond the Fragments)
기획번역
분열을 넘어서기






1. 노동당 정부, 노동당 좌파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전망
2. 그들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3. 그러면 왜 분리하지 못하는가?
4. 공백 메우기
5. 사회주의자들의 연합
6. 혁명적 그룹들
7. 여성운동의 유효성


‘분열을 넘어서기’는 이 시대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표현하는 기호이다. 우리가 20년대의 사회주의자라면 아마도 노동당 전신이었던 독립적 노동당 분파(ILP)를 경유하여 노동당 좌파와 결합해야 하느냐, 아니면 언제나 노동당과 결연을 형성하고자 노력해 온 공산당에 가담해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은 했겠지만, 노동당이 분열을 넘어서는 길임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권당이 된 이래, 그것도 반동적인 정권이 된 이래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길을 찾는 사람들은 노동당을 더 이상 자동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노동운동에 뿌리를 두고 사회주의적 대안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노동당은 여전히 여성운동에 몸을 담는 것보다는 더 넓은 정치적 영향력을 얻기 위한 한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컨대, 런던 핌리코의 샐리 알렉산더(Sally Alexander) 처럼 생각하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많이 있다.

십여 년간 여성운동에 몸담아 온 우리 중 많은 이들은 페미니스트 정치를 사회주의 운동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우리의 요구는 비록 최소한의 것일지언정, 사회의 근본적인 재조직화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여성운동은 나를 사회주의에 더 가깝게 다가서도록 했으며, 나로 하여금 맑스주의를 진지하게 공부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사회주의 전략을 위한 긴급한 요구가 페미니즘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려고 얼마 동안 방황하기도 했다. 공산당도 하나의 가능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영국적 길’에 관한 당내 토론들에서, 공산당은 노동당 좌파와 연합하여 노동당을 변화시키는 정책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노동당에 직접 가입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상이한 상황에서 상이한 경험을 한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지역정치(local politics)에 몸담고 싶었는데 노동당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지역 노동당은 다양하게 분열되어 있었지만, 매우 전투적인 놀라운 좌파 인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혁명적 집단들에게 사상을 전해 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이 직접 깊숙이 사회주의에 투신하고 있었다. 나를 노동당으로 이끈 세 번째 요인은 이 거대한 기구 자체와 그것을 지탱해 온 예외적인 토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많은 노동당 소속 사회주의 활동가들에 몸담고 있는 러스킨 대학에 있을 당시 나는 항상 그 점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영국에서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인텔리겐차 사이의 역사적 관계는 대부분 노동당 내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노동당의 프로그램과 조직이 그 많은 사회주의 좌파들과 노동계급의 열망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조직에 대한 어떤 토론에서도 노동당의 이와 같은 견인력은 해명되어야 했다. 1968년 5월과 베트남 반전운동에 뒤이어 윌슨 정부의 배경에 대한 반대, 그리고 노동당 좌파의 쇠퇴 등과 더불어 고조되었던 일시적인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노동당의 이러한 독특한 견인력을 해명하지 않고 노동당의 조종(弔鐘)을 울린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치보다는 부분적으로 각각 세대별, 지역별, 교육 수준별, 계급적 배경에 의해 분열된 두 개의 좌파가 노동당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위험스런 상황이 야기되었다. 이 두 좌파는 당시의 현안에 대한 모든 실천적 투쟁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적 소유 및 정치권력의 민중적 형태와 같은 일반적 목적에 대해서는 종종 견해의 일치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당내에 있어야 하고 당 외부에 있어야 하는 지의 쟁점에 대해서는 공동 행보나 일관된 정치토론 및 전략과 정책 표명을 위한 어떠한 통일된 정치적 틀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적, 전국적 운동 차원에서 예컨대, 인종주의 반대운동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등으로부터 노동당과 비 노동당 사회주의자들 간에 통일을 모색하라는 압력이 거세어지고 있는 시기이다. 이러한 압력은 기존의 정당 구조가 실제적인 정치 지형과 투쟁의 실재를 더 이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징표이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조직을 이뤄 내라는 이러한 압력은 부분적으로 기존 정치 구조에 대한 때에 걸맞지 않는 집착으로 인하여, 또한 다소 초보적 단계에 있을 지라도 노동당과는 독립적으로 생존 가능한 당 조직 형태만이 대안적 당 조직 형태라는 전제로 인하여 제약 당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곧 바로, 노동당 내ㆍ외부 사회주의자들 간의 - 단일 이슈나 단일한 운동에 근거한 단결을 뛰어 넘은 - 정치적 연합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연합의 긴급성과 노동당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의 긍정적 경험들을(예컨대, 여성주의 운동)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노동당과 그 내부의 사회주의자들과 관련된 세 가지 주요한 문제를 검토할 것이다.


1. 노동당 정부, 노동당 좌파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전망

먼저, 노동당 정부가 실천적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의 대의(ideal)를 폐기하는 방식과 노동당 좌파의 메시지 역시 실질적으로 별 차이 없게 되어 버리는 (역설적) 상황을 살펴보자. 첫 번째 것에 대해서 노동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 내부에 있는 사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수긍하고 있다. 노동계급 출신의 사회주의 활동가이며 포드사의 노조 직장위원(shop steward)인 존 보한나(John Bohanna)는 이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사회주의의 대의에 몰입하고 있던 민중(ordinary folk)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전후 실제적인 대안에 대한 비젼이 있었고, 그것이 활동가들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나라 민중들은 새롭고 정말로 긍정적인 사회주의 사회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압도적인 지지와 더불어 노동당으로 복귀했다. 지금은 그러한 느낌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다. 민중들은 단지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나쁜 것(the bad)과 더 나쁜 것(the very bad)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후 (초기) 노동당 정부는 당의 공약들과 정의롭고 공평한(just & fair) 사회를 향한 첫 번째의 구체적인 조치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일의 진행이 순조로웠으나, 1959년경부터 (지금은 퇴역한) 당 지도급 인사들은 계급 불평등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의 목적에서 생산의 사회적 소유에 관한 조항인 제4조(Clause 4)를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많은 당원들에게 이 조항은 노동당이 노동계급을 위한 당일 수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었다. 비록 이 지도급 인사들은 그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그들의 정책은 거듭해서 노동계급의 요구와 갈등했다. 지금 보면 당시의 노동당에서 좋은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노동당내에 에디 로이든(Eddie Loydon)과 같이 노력하는 훌륭한 남녀 당료들이 있었지만, 민중들이 보기에 그들은 항상 뒤떨어진 것으로 비춰졌다. 그래서 민중들이 보기에는 노동당내에서 사회주의의 대의를 목표로 하는 이들도 칼라한이나 윌슨(당시의 수상을 역임한 우파 노동당 지도부)과 같은 부류의 사람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로 되었다. 그들의 투쟁은 단지 역겹게만 느껴졌을 뿐이었다.
민중의 기대에 대한 노동당의 이러한 이반은 우리 부모 세대의 시기보다 노동당 주위에 활동가들의 수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노동당을 위해 싸울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 것들을 장악하는 쉬운 길을 택한다. 우리 모두가 성취된 삶을 영위할 기회를 얻기 위한 투쟁, 즉 사회를 위한 더 넓은 투쟁은 간과되고 만다.
아마도 지금은 보수당과 투쟁할 수밖에 없는 시기여서 사정이 좀 호전될지 모르겠다. 머지사이드 지역을 예로 들자면, 포드사 및 기타 지역에 노동당 노조 분회를 설치하려고 좌파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작업장에서 정치 토론을 수행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 전체의 노선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로 향하는 화살은 하나의 축을 갖고 있을 지라도, 그 화살은 여전히 여러 개의 화살촉을 갖고 있으며, 노동당 내 사회주의자들 역시 그 하나일 뿐이다.

위에 언급된 ‘언제나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혹은 지역구나 전당대회에서 노동당을 진정한 사회주의 정당으로 복원시키기 위해 조직화 사업에 열중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왜 그들은 노동당 투표자나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최근의 노동당 정부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되지 않도록 설득시키지 못하는가? 그들은 이 정부가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주장들은 어쨌든 호소력을 상실해 버렸다. 대부분의 노동자 계급 대중의 눈에 노동당 좌파는 신뢰할 만한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비춰졌다. 그들은 당 지도부와의 오랜 정책 연합 속에서 지속적으로 타협해 왔다. 실제로 그들의 메시지는 노동당내 토론 과정에서 거의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어 버렸기 때문에, 종종 더 좋지 않은 결과에 직면해야 했다. 좌우파는 언제나 국가 개입에 관한 정책 스펙트럼 상에서 양극단에 놓인 안을 지지하는 것 있는 것처럼 비춰졌지만, 좌우파 사이의 노동당내 토론은 통상 국유화나 국가 통제에서의 정도 차이에 관한 것일 뿐이었다.
국유화나 국가 통제는 사회주의의 뚜렷한 전망을 마련하는데 충분했었다. 전쟁 전에는 노동당의 국가 통제 능력이 입증되지 않았을 때였고, 그 때는 또한 생산 및 경제활동으로부터 국가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목적을 위해 ‘중립적 도구로서’ 국가를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신뢰를 주었던 시기였다. 그 당시 제4조(Clause 4) 조항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위한 명확한 전략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베번이 지적했듯이, 국가를 ‘사적 소유제의 핵심에 놓여 있는 칼’로 생각하는 것은 그런 대로 의미있는 것이었다. 민중들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며, 노동당 좌파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는데 신중할지라도, 그들이 사회주의의 진정한 대표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과거 30년간 민중들은 비록 정부마다 다소 편차는 있을지 언정, 국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제하에서 성장했고, 그 경제를 통해 삶을 영위해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보다 사회적 기준에 따른 더 많은 국가 개입을 추구했던 노동당 좌파의 정책들은 전혀 고무적이지 못했으며, 심지어 우파의 안과 다른 것으로 비춰지지도 않았다.
신선하고도 확신할 만한 전망을 갖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노동당 좌파의 토론 틀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었으며, 또한 노동당 정부가 국가와 결부시키고 있는 쟁점들로부터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노동당 정부가 접착제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처럼 여겨져 온 국가 권력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것은 사적 자본의 의회 외적 권력이나 국제무역의 제약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의회 사회주의자들의 선량한(?) 의도에 국가가 저항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국제적 규모로 의회 외부의 노동자 권력을 조직하기 위한 전략을 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60년대 노동당 정부의 삭막함 속에서 출현한 벤(Tony Benn)을 비롯한 일부 노동당 좌파(Bennite Labour Left)는 일부 노조 직장위원(shop steward)들의 위원회와 임시적으로 다양한 연결을 모색하거나,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 형태를 강조하면서 잠정적으로 노선 전환을 보였으나, 적어도 전국적 수준에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길은 노동당 내부에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라는 믿음에 의해 창출된 모순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당 내에서 유리한 지위를 획득하고, 당대회에서 정책안을 관철시키고, 당규약과 지도부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조 지도자들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힘을 집중시켜야만 했다. 지역적 수준에서는 그러한 것들은 노동자 조직의 의회 외부 권력들과 양립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그러나 노동당 외부 사회주의자들과의 긴밀한 연계가 가능하도록 하려면 현재의 지역구 조직 형태를 즉흥적으로 수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전국적 전략으로서, 당의 선거 우선주의, 그리고 산업 문제와 노조의 정상적 조직화나 단체교섭권 이외의 정치적 쟁점들을 연결시키려는 그러한 시도는 노조 지도자나 간부들의 거부감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노동당 내부의 좌파는 노동계급 대중들과 소통할 수단을 상실했으며, 그들로부터 독자적인 신임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그것은 의회 정치가들과 관련된 문제이다. 사실상 점점 더 적은 사람들이 어떠한 희망이나 기대도 걸지 않고 그들의 연설을 그저 듣고 있을 뿐이다.


2. 그들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것은 일시적인 문제인가? 이것이 오로지 노동당이 집권당이고 좌파가 갑갑하고 비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일까? 노동당내 사회주의자들이 여론 정치꾼들을 제거하고 노동당을 의회 및 의회 외부의 행동을 통해 사적 자본 권력과 대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정당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시기는 과연 언제나 올까? 이것은 노동당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창출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회주의 활동가나 노동당원, 그리고 당비만 내거나 선거시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그들은 노동자 투쟁이 성장하고 정치적 의식이 고양됨에 따라 노동당이 사회주의 정당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좌파가 노동당 집행위원회(NEC)에 대한 통제를 획득하는데 거의 성공한’ 것처럼 ‘조금 더 노력한다면 당의 통제력을 장악할 것’으로 믿고 있다. 현 노동당 정부와 노동당 지도부를 둘러싼 투쟁이 전개되는 가운데 그러한 낙관적 견해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리즈 지역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노조, 공동체 그룹, 코뮤니스트 당에 몸담아 왔고, 지금은 노동당에 가담하고 있는 거티 로쉬(Gertie Roche)는 이러한 낙관론을 매우 신중하게 전개한다.

나는 역사는 매우 느리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민중들의 태도 역시 서서히 변한다. 민중들은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들에 정서적으로 몰입하지만, 그것은 곧 누그러지고 만다. 그래서 나는 노동당이 빠르게 변할 것으로 보지도 않고 있으며, 그로부터 크게 기대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민중들은 항상 전진한다. 오늘 전당대회를 지켜 보았는데, 거기서 우리는 하원 의원들의 행동에 대한 해명 요구안을 관철시켰다. 나는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진전으로 생각한다. 공공 서비스에 대한 그들의 책임 있는 관심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쟁점들과 관련해서 내가 노동당에 있다는 것에 대해 비난할 때는 화가 난다. 적어도 노동당에 몸담고 있다면, 코뮤니스트 당의 경우보다는 그런 말들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우리는 서로 소속된 곳에 대한 충성심 논쟁보다는 쟁점들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당 외부의 사회주의자나 기타 사람들과 함께 토론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예컨대 여성해방, 복지삭감, 노조 정보 센터 지원과 같은 문제들. 나는 그들이 의회 외부에서의 행동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 비록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하거나 때로는 절망스러울 지라도, 그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종류의 사회주의 조직은 어떤 것이고, 여성주의가 그것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그러한 조직의 발전은 노동당과 관련되는 한, 장애에 봉착하고 말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를 위한 조직화가 왜 결국에는 노동당 외부에 토대를 둘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노동당을 변화시킬 가능성에 상반되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다: 영국적인 의회제도가 온건파 의회 지도부에 부여하는 권력과 자율성, 당의 절대적인 선거 우선주의 등. 지역구의 당들에게 보다 많은 공식적 권력을 부여하고, 당 지도부 선거에서 발언권을 보다 많이 부여하며, 공식적 선언을 이끌어 낸다면 그러한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의회주의적 노선 속에서 좌파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 내는데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실제로 있다. 그것은 당의 기원과 기본 구성에 내재해 있다. 그것은 노동조합의 압도적인 지배와 그러한 영향력 행사를 결정하는 노조 지도자들의 권력의 문제이다. 물론 여러 노조들이 특수한 사안에 대해서는 좌파를 지지하거나 총회에서 좌파적 제안에 투표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당의 노선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견제하에 노조 지도자들이 국가와 경제의 변혁에 적극적으로 참여케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견제가 필요한 것은 변혁시켜야 할 바로 그 경제와 국가속에서 그들이 노동당과 더불어 확고한 지위를 향유하면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대부분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그들 뒤에 처져 있는 지도부를 견인하면서 그러한 변혁에 적극적으로 몰입할 때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장과 사무실 및 공동체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회주의 조직이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그러한 대중적 사회주의 활동가들을 조직해 내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노동당을 사회주의 정당으로 변화시키려는 사회주의자들의 노력은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노동당을 사회주의 조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주의 정당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당 내부에서 작동하는 그러한 사회주의 당의 가능성을 위협하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존재한다. 그러한 제약은 좌파 집단이 우익 노조 지도자들에 반대하는 평조합원들과 개방적인 연합 조직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강해진다. 그러한 노력에 대한 일차적 반응으로서 노조 지도부(union leadership)는 직접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당내 권력을 이용하여 좌파에게 규칙과 규율을 동원할 수 있다. 이것은 50년대 친 개츠켈 성향의(pro-Gaitskell) 개츠켈은 50년대에 공동소유에 관한 당 강령 4조를 제외하자는 주장을 했던 중심 인물이다.
운수 및 일반노조(T&GWU) 지도부에 반대하는 부두 노동자들을 지원했던 베번과 그의 동료들(Bevanites) 이들은 온건적인 노동당 지도부와 노조의 특권과 관련된 쟁점에만 개입하고자 했던 노조지도부와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후에 Tribune지를 중심으로 활동해서 Tribuneites라 불리게 된 노동당 중도좌파들이다.
이 직면했던 문제이며, 또한 벤과 그의 지지자들(Bennites) 토니 벤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신좌파로서 급진적 성향을 띠며, 트리뷴 그룹으로부터 탈퇴하여 캠페인 그룹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 비공식 경로를 통해 노조 직장위원들과 제휴했을 때 우익 노조 지도부의 분노를 산 경우와 유사하다. 좌파들은 그러한 위협에 대해 거의 저항하지 못했다. 그것은 당에 대한 통제를 획득하고자 하는 단기적인 야심 때문이다. 즉, 좌파들이 노조 지도부에 대해 공개적인 제제나 비판을 가하게 되면, 그들의 반발로 인하여 당에 대한 좌파의 통제 자체가 위태로워 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순은 조합원들의 노조 지도부에 대한 쌓인 분노와 좌절이 통제를 벗어나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감에 따라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전국적 수준에서 노동당을 좌파 쪽으로 견인하려는 공산당의 전략도 동일한 모순에 봉착한다. 왜냐하면 노조 내부에 좌파적 반대 블록을 구축할 수 있을 만한 독립적인 조직을 갖고 있었을 지라도, 그들이 성취한 결과는 전국적인 좌파 지도자들(좌익 노동당 정부로 가는 지름길론에 환상을 갖고 있는 스캔론이나 존즈 같은 이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그 예각성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몇 주요 지역의 좌파 지역구 및 노조내 좌파 집단들은 전국적 수준의 노동당과 노조 지도부들과는 독립적으로, 인상적이고 강력한 연합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고 자율적일 수 있었다. 남부 요크셔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한 지역적 연합(local alliance)은 앞서 죤 보한나가 언급했던 여러 개의 화살촉 중 하나지만, 단일 축을 위한 유일한 토대로는 볼 수 없다.


3. 왜 분리하지 못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노동당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모순을 그대로 갖고 가도록 내버려두면서, 어느 날 그들이 자신의 오류를 인식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성급하게 독자적 정당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그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노동당 내부와 외부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과 연대 행동 및 토론을 위한 조직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무시하는 것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서유럽에서 어느 정도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어떤 사회주의 정당도 기존의 대중적 노동자 정당으로부터 분리되어 만들어 졌다. 그러나 영국에서 이 시나리오는 노동당의 특별히 모호하고 기만적인 구조 때문에 지체되고 봉쇄되었다. 노동당은 외관상 모든 사회주의적 견해를 충분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통일적이고 민주적인 정당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회주의 집단이 소수 노조지도부를 방패로 삼아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실상을 은폐하는 기만적 구조를 갖고 있다. 노동당은 주로 노동조합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당으로서의 정상적 성격을 갖기 어렵다. 그것은 급진적 프로그램에 대한 개인적인 몰입과 동시에 노조들의 강력한 로비가 존재하는 가운데, 의회주의적 직업 정치가들에 의해 주도되는 잡종적(hybrid) 성격의 급진당이었다. 좌파는 노동당 정부들에 계속해서 패배했지만, 그 패배와 실패는 결코 결정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전당대회에서 승리했다’ 혹은 ‘우리는 지역구 급진당들을 장악하고 있다’와 같은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단지 다음 기회에 보다 강력한 압력을 가하는 문제였을 뿐이며, 이에 대한 의회 지도부의 호응성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노조의 강력한 로비는 통일성의 정도에서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러한 성공을 언제나 빗나가게 만든다. 사람들은 언제나 불만을 갖고 무리지어 당을 떠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나, 유럽 공동 시장에의 가입, 소득정책, 복지삭감 문제들 중 어떤 하나의 이슈가 ‘결정타’가 될 수 있을 때조차 불만을 느끼고 당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당에 가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15년간의 실패를 경험해서 알 수 있듯이, 당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며, 그 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사람들이 당비를 납부하고 노동당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며 노동당에 투표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온갖 종류의 캠페인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도 하찮은 지원밖에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동당 내부에서 상당한 분열이 발생해야만 대안적 정당 구축의 필요성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회주의자들은 전국적인 차원에서의 변화에 대한 열의나 희망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적절한 정치적 틀이 부재하고, 많은 유사한 좌파 성향의 노동당 지역구 당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당 주위를 배회하기도 한다.
예컨대, 국제사회주의자 그룹(IS) 즉,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에 가담해 왔던 발 클라크(Val Clarke)는 노동당이 진정한 사회주의 정당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요크셔 후더스필드 인근의 지역 노동당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와서 노동문제, 주택, 교육 문제에 관한 캠페인을 전개할 당시 실제적으로 모든 주요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지역 노동당에 소속되어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이러한 모든 쟁점들에 관련된 사회주의적 정책들은 철저히 검토되고 있었다. 노동당 외부에 있는 것은 모든 토론과 정보에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우리는 사태의 전개에 전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안이 될 수 있는 어떠한 좌파적 구심도 구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주요한 전투적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모두 지역 노동당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모습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가 대안을 말할 때는 필히 이러한 노동당의 모습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 사회주의 정치의 이와 같은 불명료성은 부분적으로 지역적 불균등성과 모호한 당 구조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사회주의자들과 다른 급진적 활동가들이 누가 의회에서 그들을 대표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부딪힐 때 정치적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현재의 선거제도에 의해 강화되는 이러한 독점은 종종 정치체계 내부에서의 제휴를 통해 힘을 얻고자 하는 전투적 활동가들을 국회 및 지방의회 의원들이 지배하도록 한다.
노동당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의 지역 사회주의 정치를 효과적인 전국적 전략이나 사회주의 정당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노동당과 노조운동 내부의 논쟁 결과 역시 불가피하게 무한정 연기되어서 대안적 정당 구축을 위한 조건을 극도로 악화시킨다면, 앞서 언급된 사회주의 조직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어디에서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4. 공백 메우기

반핵군축운동(CND) 이후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서 학생, 노조 운동가, 여성, 흑인, 게이,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청년 등과 같은, 노동당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당 내부, 외부에서 정치 및 산업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조직하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국가와 경쟁하는 민중 세력들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노동당의 모호성, 코뮤니스트 당의 스탈린주의와 내부 민주주의 부재, 혁명적 좌파의 분파주의 등으로 인하여, 이 활동가들은 그들의 현장(grass-roots)의 힘을 표현하는 하나의 정치적 목소리를 갖지 못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특수한 억압과 경험을 넘어서는 일관된 조직화 방법을 갖고 있지 못했고, 그러한 다양한 경험들을 사회주의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일반 이론이나 프로그램이 없었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특수한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광범한 투쟁을 통한 정치 변동이 필수적이라고 설득할 어떤 적절한 방법도 갖고 있지 못했다. 우리의 파편화된 운동과 캠페인은 어떤 정치적 구심이나 지지조차 없어서 매우 취약하기만 했다. 이러한 정치적 취약성은 강력하고 단호한 보수당 정부와의 고립된 싸움에서 승리하기가 더욱 어렵게 됨에 따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한 운동이나 캠페인에 가담하고 있는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취약성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주의자들이 참여하는 여하한 운동이나 프로젝트에서도 광범한 정치적 함의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려는 경향이 점차로 증가해 갔다. 어떤 이들은 좌파에게 있어서 정치적 공백을 채워야 한다는 압력이 그러한 활동가들을 새로운 사회주의 정당의 기치 아래 모이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산업, 공동체, 문화조직 등 전 영역에 걸쳐서 사람들에게 더 넓은 연결망을 창출하고, 보다 일반적인 정책 및 이론을 탐색하도록 했으며, 다양한 문화적 대안들을 창출하도록 했다. 좌파 노조 평의회, 사회주의 센터, 사회주의 여성그룹, 연극인 그룹, 좌파 서점, 전투적인 직장위원회(shop steward committees) 등이 종종 사실상의 사회주의 정당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당에 의한 조정과 당적인 장기적인 관점이 부재하였다. 그것은 마치 여러 옷 조각(정치조직)이 창의적으로, 그때 그때의 접촉 속에서 마스터 플랜을 갖지 않고 엮어지는 것 같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리를 두고 우리가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점이 취약하고, 어떤 행동 유형들이 분명치 않은 지를 이러 저러한 관점을 통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약간은 낙관주의적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어디서 그러한 발전의 증후들을 볼 수 있을까? 누구도 일목요연하게 그러한 그림을 그려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이러한 조직적 발전의 지표를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개괄할 것이다.

1) 노조 평의회(trade councils) 운동: 몇몇 지역의 노조 평의회는 전투적인 사회주의의 입장을 취하면서 노동당과 노조 지도부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지역 여성그룹, 실업자 청년, 활동적인 임차인 그룹, 사회주의 연구자 그룹과 함께 사회주의 연합처럼 행동하였다. 예컨대, 코벤트리 버밍햄, 워릭 등의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중부
지역의 노조 평의회는 지방의회와 주택사업자에 대항하여 주택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여성운동의 요구를 실천적으로 지지했으며, 제국주의 반대 캠페인과 인종주의 반대 캠페인을 조직했고, 최근에는 노동당의 합리화 및 공장폐쇄에 반대하는 국가의 산업 개입에 관한 사회주의 정책들을 검토하기도 했다. 뉴캐슬 지역의 노조 평의회도 유사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는데, 특히 그들은 북 아일랜드에서의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북서부에 있는 템사이드 지역 노조 평의회는 처음에는 복지감축 대책 위원회를 만들었으나, 얼마 안 지나서 낙태, 반인종주의, 실업 등 다양한 쟁점들에 초점을 두고 다뤄 갔다. 헐 지역 노조 평의회는 주간지 발간을 통해 지역 사회주의 활동의 중심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많다. 여기서 초점을 두려는 것은 노조 평의회의 전투성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주관심사는 지난 10여년에 걸친 평의회 운동 속에서 나타난 사회주의 조직으로의 매우 일관성 있는 행동 패턴 즉, 노동조합 조직으로서 갖게 될 밖에 없는 한계 하에서 가능했던 하나의 유형화된 행동들이 발전했다는 점이다. 그 한계들은 뒤에서 살펴본다.

2) 반인종주의, 반파시즘 운동: 우리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넘어서고 보다 일반적인 정치적 관점을 형성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또 다른 지표로서 노동조합 투쟁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운동과 게이운동 내부의 강력한 사회주의적 경향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그룬스윅 대중 피켓 시위에서의 파견단 조직이나 인종주의와 파시즘에 반대하는 운동의 조직, 그리고 복지삭감 투쟁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맑스주의 이론 및 사회주의 정책을 상당한 정도로 심화하거나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

3) 세입자 운동(tenants’ organizations): 앞의 운동들과 유사하지만 다소간 덜 발전된 운동으로서 상당수의 세입자 조직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도 산업 노동자나 여성그룹과 보다 효과적인 연결을 창출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자 주택문제 활동가 워크숍에서는 지역의 세입자 운동의 활동가들과 사회주의 연구자들이 함께 ‘주택문제 적색 보고서’를 만들어 내거나, 틴사이드, 카디프, 리버플, 코벤트리 등 비교적 강력한 세입자 집단이 있는 곳에서는 주택문제에 관한 사회주의적 정책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전국 세입자 조직의 활동과 정책들에도 사회주의적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다양한 지역성이나 정치적 경향성을 띤 사회주자 연합의 효과 역시 반영되었다.

4) 지역 공동체 운동: 위와 유사하게 산업의 쟁점들과 노동 계급 공동체의 관심을 연결시키는 조직들도 발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60년대 후반 이래로 지역의 산업에 기반한 수많은 조직들이 어떤 한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후, 다양한 다른 쟁점들을 포괄하면서 관련된 활동가들의 정치적 연합처럼 행동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런던 남동부의 A.E.I. 울리쥐 폐쇄 반대 투쟁 동안 여러 노조 직장위원회와 노조 지부들이 참여하는 조직이 구성되었다. 그 목적은 그 지역내 일터의 폐쇄와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과 같은 다소 일반적인 성격을 띠었으나, 곧 바로 소득정책, 인종주의, 그리고 당시에 사회주의 캠페인의 다른 쟁점들에 대한 캠페인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의장이었던 짐 쿨린(Jim Coughli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당시의 정치적 초점이 되었다. 메이휴(Mayhew)나 마쉬(Marsh)와 같은 우파 지역구 국회의원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중요한 회합에서 우리가 대표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SELAC(공장폐쇄에 반대하는 남동부 런던 행동 위원회)는 전투적인 토론장과 선전 조직이 되었다.

몇 년 후 머지사이드의 스페크 지역에서는 스페크 지역 노조위원회(SATUC)가 산업 및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전투적 활동가들과 함께 스페크 지역의 어떤 정리해고에도 반대한다는 단일한 쟁점을 갖고 투쟁하였는데, 나중에 이 조직도 마찬가지로 다른 다양한 정치적 문제를 포함시켰다.
그 조직의 성원이었던 모린 윌리엄스(Maureen Williams)는 그 조직의 기원과 정치적 잠재력, 그리고 당면하고 있었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1975년 초 지역 공장 폐쇄를 방지하기 위한 투쟁의 직접적인 결과로 생겨났다. 우리는 그것에서 출발하여 파업 중에 우리의 지원을 요구한 스페크 지역의 여러 분쟁들에 가담하게 되었다. 스페크 지역 노조위원회(SATUC)는 점차적으로 더 다양한 쟁점들을 다루어 갔다. 우리는 칠레나 포르투갈 문제와 관련된 성명을 발표하고 그 문제에 관한 토론회에 대표를 파견하기도 했다. 1년여가 지나자 위원회의 위원들은 집세 인상에 반대하는 투쟁에 참여했고, 시청에서의 캠페인에도 합류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처음에 내가 그 문제를 제기했을 때 마주쳤던 무관심과 이견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8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조직의 대표로서는 아니지만 아닌 개인으로서는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SATUC는 또한 작업장에서의 건강과 안전 및 실업에 관한 회의도 조직하였다.
1977년 후반 우리의 활동은 점차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위원회로서 우리는 전적으로 산업문제에 관한 투쟁이 지속되는지 여부에 의존하였다.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문제로 투쟁하지 않으면 우리도 투쟁하기 어려웠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어정쩡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한편으로 우리는 노조지부로 부터의 적극적 지원이 감소하는 시기에, 노조지부나 직장위원회로부터의 위임과 재정 제공에 의존해야 하는 활동가들의 연합체로서 일하기에는 지나치게 노조에 기초한 노조 지향적인 조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노조 공식 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기에는 정통적 조직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여러 노조 간부들은 우리에게 공개적으로 적개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SATUC는 정치적 연합체로서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여러 사회주의 조직이 그 속에 있었다. 거기에는 좌파 노동당원, 국제사회주의자, 큰 불꽃(Big Flame), 기타 여러 좌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잠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당 및 노조, 작업장과 우리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정했어야 했다. 갈스턴 지역 노동당과 그 지역 노조 분회는 좌파였는데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완전한 노동당의 대안으로서 라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작업할 필요성을 느꼈었다. 또한 우리는 직업을 보호하기 위한 전투적 활동가로서 보다는 정치적인 활동가로서 우리를 재평가해야 할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안건으로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했다.

5) 급진 기술자 및 환경주의 운동: 사회주의적 관점을 발전시키고 확장시키면서 노동계급 조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직된 또 다른 급진적 운동으로 급진 기술자 및 환경주의자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운동’은 많은 창조적이고 정치적인 진전을 이루어 냈지만, 많은 오류도 범한 전력을 갖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단지 중간계급의 삶의 질을 개별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운동에 머물고 있지만,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모임’, ‘사회주의 환경 및 자원 연합’과 같은 집단은 자본주의적 기술과 그에 대한 대안을 위한 투쟁에 유일한 힘을 갖고 있는 노동계급 조직을 연결시키는 일에 점차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루카스 항공사(Lucas Aerospace)의 노조 직장위원들이 주도한 것으로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노동자들의 숙련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현대적 기술을 이용하거나 수정하여 제품을 설계, 제조하려 했던 투쟁이 이 운동의 중요한 촉매가 되었다.
루카스 항공 직장위원 공동위원회에 의한 이러한 시도는 단일 사회주의 조직의 활동가들이 달성할 수 없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원과 조직을 구축해 내는 새로운 운동 방식을 보여 준 것이었다. 공동위원회는 다양한 정치적 전력을 가진 노조활동가들이 모인 위원회였다. 그런데 그 위원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문제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정치조직도 답하기 어려운 구조적, 기술적 실업에 대처하는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과 숙련의 감축이 아닌 숙련의 향상을 위한 특수한 제안들을 중심으로 투쟁한다는 생각은 독립적 공동위원회의 정치력에 대한 믿음에서 온 것이다. 즉, 작업장 조립 노동자 및 기술직 노동자들이 그들의 힘에 기초하여 투자, 생산 목적, 노동과정과 같은 매우 정치적 성격이 강한 쟁점들에 관한 관리를 직접 담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도 단지 이 쟁점들만을 다뤄야 한다고 보지 않았다. 즉, 루카스 항공사의 노조 직장위원들은 그들의 계획을 소개한 글에서 ‘자본주의라는 착취의 바다 위에 있는 사회주의라는 섬’만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노동자들이 필요에 따라서 생산한다는 계획의 배경이 되는 원칙들은 다른 직장위원회 예컨대, 동력기계, 군수품 생산 부문, 조선 및 고무 제조 등의 업종에 속한 직장위원회에 의해 수정 수용되었으며, 이 직장위원 그룹 사이에서도 조직적인 연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6) 맑스주의 연구자운동: 또 다른 정치화 과정이 맑스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는데,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사회주의자 조직, 정치 조직, 공동체 조직, 노동자 조직에 참여 개입하는 연구를 수행할 필요성을 점점 더 느꼈다. 그들은 정치운동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규율이나 자극 및 제약 없이 생산된 이론에 대해 편치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사회주의 경제학자 학술 토론회에서는 노동자 전략 및 정치에 관한 쟁점들에 관심을 늘려 갔다. 「역사 워크숍 저널」에서는 그들의 작업이 여러 사회주의 운동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에 주목하고, 북서부에서 발간된 「Strong Words」, 동부 런던과 브라이튼 지역의 「Centerprise」와 같은 지역 출판 운동 기획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역 출판 운동 프로젝트는 노동 계급이 그들의 의식 수준과 창의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자기 교육 전통의 일부였던 노동 계급의 비판적 글쓰기를 복원시키고 고무시켰다. 국가 에 관한 연구는 정치적 목적 및 긴급한 요구에 부응한 연구와 글쓰기가 진전된 또 다른 예이다. 잡지 「국가 연구」는 정책과 정보 및 군사 분야를 연구하는 저널리스트들과 연구자들의 공동 성과물이다. 2개월 간격으로 발행된 이 잡지는 해당 분야와 관련하여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미디어, 동정적인 국회의원들에게 배포되었다. 잡지 「신좌파평론」에서는 민족주의, 서구에서의 혁명 전략, 동구권에서의 사회주의 운동, 유물론의 실질적 함의 등에 관한 토론을 전개했는데, 이것들은 일관된 사회주의적 실천을 개발할 때 직면하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조명하는데 기여했다.

7) 여성해방운동은 이러한 여러 운동들이 보다 풍부한 이론 및 실천에서의 통일성을 기하는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촉매 구실을 해왔다. 여성해방운동은 그 운동을 발전시키고 강화하는데 적합하고 접근 가능한 이론적 저작들에 집중함으로써 보기 드물게 이론 작업의 정치적 목적과 실천적 과정에 대한 뚜렷한 자의식을 생산해 냈다. 여성운동 내에서 집단적으로 발간하는 이론적 잡지인 「여성주의 평론」의 최근호 편집자의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 호에서 우리는 우리의 「여성주의평론」 발간 의도가 생각들을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여성해방운동의 정치적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언급했던 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발행하는 잡지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와 표현방법의 문제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독자와 기고자 및 편집진 사이의 토론 과정이다.

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원칙을 여러 프로젝트에서 실행하여 좋은 성과를 거뒀다.
사안에 따른 즉각적인 정치화 작업의 중요한 결과로서, 소위 ‘부문적’이라 불리거나 ‘단일한 쟁점’ 혹은 ‘국지적일 뿐’이라고 여겨졌던 캠페인 운동과 조직들이 의식적으로 사회주의적인 가치에 기초하여 창출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조직들이 정책과 조직 방식에서 모두 사회주의적이거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성운동’, ‘대안적 출판 및 서점 운동’, ‘세입자 행동 그룹’, 지역 및 전국적인 ‘노조 직장위원 공동 위원회’, ‘노조 및 공동체 자원센터’ 등과 같은 특수한 명칭들 이면에는 항상은 아닐지라도 종종 사회주의 조직을 창출하는데 있어서 직접적인 정치적 적합성을 갖는 풍부한 아이디어와 경험 그리고 조직화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5. 사회주의 연합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공백들을 채우기 위한 운동들이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는 지에 관해 논의하기 전에, 그와 같은 ‘유기적’ 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들은 변화하지만 지난 5년 동안과 같이 대대적인 대중적 계급투쟁이 없는 시기에는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노조평의회나 직장위원회 같은 경우 이런 시기에 노조 조직이기보다는 좌파 연합을 조직화하는 경향을 띤다. 그런 조직들은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고립될 위험에 처해질 뿐 아니라, 상황이 안 좋은 경우에는 산업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노조평의회의 경우 실패와 고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했던 오래된 기반이 있어서, 직접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국노총(TUC)이 그들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거나, 노총지부들로 하여금 그들의 활동을 감시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머지사이드나 런던 동남부 지역의 비공식적 노조연합체 조직은 조직원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이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조직들이 정치 조직의 속도 이상으로 너무 빠르게 새로운 조치를 취하게 되면 조직적 기반을 상실할 수도 있다. 또한, 머지사이드나 런던 동남부 지역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것처럼, 주도적인 구성원들이 정치적 연합체가 갖고 있는 잠재적 문제들을 미처 깨닫지 못하면 조직적 정당성을 상실하거나 해체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그런 조직들은 기본적으로 노조 조직이기 때문에, 통일된 정치 전략이나 강령 개발을 위한 정치적 논쟁이나 교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것이 정치적 오해나 개인적 적대감, 분열, 자발성의 상실로 이끌기도 한다.
여성운동, 세입자 운동, 급진적 기술자 운동과 같은 캠페인 운동들 내부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이와 다르다. 이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조직을 넘어서서 다른 노조활동가나 공동체 운동들과의 연계를 이뤄 내는데 있어서 많은 곤란을 겪는다. 그들이 어떤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거나, 사회주의당들의 소규모 써클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에 그러한 곤란은 특히 심하다. 애초의 운동 범위를 넘어서서 더 넓은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고려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해야 할 경우에도 동일한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틴 사이드의 임차인 운동시 사회주의자들이 건설 노동 인력의 투입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정책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건설 노동자들과 노조 평의회, 그리고 노동당내 동정적인 분파와 접촉할 필요가 있었다. 그 당시 활동가들은 관련된 조직들 내의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모여 정책을 토론하면서 문제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넓혀 갔더라면, 캠페인이 훨씬 쉽고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활동했던 케니 벨(Kenny Bell)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누가 건물을 수리하고 건축하며, 임차인들이 건물에 대해 어떤 통제권을 가져야 하는 지와 같은 이슈는 소비자인 임차인들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하다. 이처럼 그들은 건설 노동 인력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뉴캐슬 지역에는 상당한 건설 노동 인력의 감축이 있었으며,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임금조건도 너무나 열악해서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사적 영역의 일거리를 선호한다. 그래서 이들을 연결하고 이들의 잠재력을 주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건설노조 내에 있는 사회주의자들과 긴밀한 접촉을 가지면서 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러한 접촉은 쉽지 않았다. 다른 노조들과 캠페인에 속해 있는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보다 광범한 접촉의 전통 같은 것이 있다면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틴사이드 사회주의 센터의 네트워크와 다른 여러 자원센터 및 정보센터가 도움이 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센터는 또한 전략에 관한 사고를 명확히 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연계를 창출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마찬가지로 낙태 캠페인 운동(NAC)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의 경우도 병원 노동자들 및 기타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접촉하길 원하고 있다. 여러 부문에 걸쳐 있는 약간의 사회주의자들이 공산당(CP), 사회주의 노동자당(SWP) 혹은 국제맑스주의그룹(IMG)에 소속되어 있어서 조직적으로 서로 접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만으로는 정치적으로 일치된 견해와 강한 활동 의욕을 갖고 있는 가능성 있는 선진적인 활동가들의 일부조차 포괄할 수 없다.
이러한 종류의 문제들을 경험함으로써, 여러 상이한 캠페인, 운동, 노조들에 속한 상이한 정치적 경향을 지닌 사회주의자들이 지역 사회주의 연합, 포럼, 센터들을 건설하였다. 예컨대, 온슬로우(Hounslow)의 지역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13개월 동안 온슬로우 병원을 점거한 경험으로부터 활동의 거점이 될 만한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의 병원 점거는 참여했던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조직화(new way of organizing)가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서부 미들 에쎅스 병원 직장위원회 위원장인 칼 브레커(Karl Brecker)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와 같은 장기간의 병원 점거를 유지하는데 있어, 우리는 분파적(sectarian) 차이가 점거의 응집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고, 최소한의 행동 일치를 넘어서는 정치적 토론을 전개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것을 진행하는데는 장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각자의 견해들에 대해 서로를 존중하면서 토론하는 법을 배워 갔다. 그렇다고 해서 견해들을 뒤섞어 버리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사람들은 분파를 떠나서 발언하고 토론하는 법을 배워 갔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모임에 다수로 참여했던 병원 노동자들은 무정파적이며 서로 다른 조직의 소속원들 이어서, 종종 분파적 경향을 띠는 정치 조직처럼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배제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것으로 항상 우리는 위계를 파괴해야 했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야 했다. 만일 우리가 보조원이나 간호사의 구분과 같은 정규적인 구분들을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점거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기력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확신시켜야 했고, 그들의 사적인 문제들이 고려되고, 지원을 받게 될 것임을 확신시켜야 했다. 이 부분에서는 여성운동의 영향력이 중요했다.
병원 점거는 하나의 거점 즉, 인근의 다른 캠페인이나 투쟁들을 위한 센터가 되었다. 그곳은 선전물 작성법 등과 같은 활동가 학습을 위한 학교가 되었다. 파업중인 소방대원들과 전국 언론 노조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복지삭감 및 실업에 반대하는 강령에 입각해서 활동하는 일부 노동당 사회주의자들도 그곳을 이용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뭔가 다른 어떤 보다 강력한 조직화 방식을 창출했고, 점거가 끝나더라도 그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이 경험에 기초해서 활동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들 중 한 그룹이 중심이 되어 금년 1월 셋째 주에 ‘온슬로우 사회주의자 포럼’을 결성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주일 마다 지역문제를 보다 넓은 맥락 속에서 검토하는 모임을 가졌다. 50명의 지역활동가 중 40명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 아니면 주요 사회주의 조직들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그 포럼을 캠페인이나 지역의 분쟁에 대한 지원을 얻기 위해 이용했다. 우리는 노동회관을 모임 장소로 사용했다. 아직은 사무실이나 더 야심적인 어떤 것들을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데 익숙해지고, 우리가 동의하고 토론해야 할 영역을 확정지을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천천히 움직일 필요가 있다.

75년 틴 사이드에 애초에는 교육, 문화, 토론 및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주의자 센터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비록 계획적이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자들을 함께 결합시켜 감에 따라, 센터는 반 파시즘 선전물 작성과 파업지원을 조직하거나, 정치적 이슈에 관한 지역 캠페인과 토론을 주도하는 등 보다 실제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당시 센터에서 정치적 이슈로 되었던 것은 정치 인사의 국외 추방 문제, 동부 유럽에서의 저항운동,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을 생산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계획안, 남아공에 대한 영국의 투자 문제, 짐바브웨 해방운동에 대한 지원 등이었다. 일년정도 지나자 센터는 그 지역에 유일했던 사회주의 서점을 유지하고 서적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실제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센터는 바로 이 서점 활동으로부터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부과하는 매우 실질적인 책임으로 인해 더욱 큰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수당에 반대하는 행동들에서 통일성을 강화하고, 정책 및 전략에 관한 토론을 확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센터 구성상의 특성으로 인해, 센터의 조정위원회는 정치 연합체(즉, SWP나 CP), 노조 조직들과 기타 운동조직들을 대표한다. 센터는 정규적인 총회를 갖는데, 거기에는 개인적 지지자나 조직들의 대표자가 참여한다. 상임위원회가 서점 운영이나 게시물, 회의 등과 같이 보다 특수한 프로젝트들에 대해 책임진다.
아이링턴 지역에서도 1978년 초에 ‘아이링턴 신문(Islington Gutter Press)’으로 불리는 토론 모임으로부터 비슷한 종류의 연합과 포럼이 만들어졌다. 이 토론 모임에는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지역 캠페인, 여성그룹, 노동당 소속 노조들(특히 공공부문 노조), 공산당, 국제 맑스주의 그룹, 사회주의 노동자당, ‘큰 불꽃’ 등에 속해 있는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이 모임에서 선출된 사회주의 센터 위원회는 일요일 저녁 토론 모임, 교육 모임, 사회주의 문화 이벤트 등을 정규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마지막 토론 모임에서는 사무실을 마련하여 파업이나 캠페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해크니 지역에서도 역시 사회주의자들과 급진적 활동가들이 서로 학습하고 공통 문제에 관해 토론하는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주점(pub)과 회의실을 갖춘 노조회관뿐 아니라 지역 대안 신문과 서점, 카페 등을 이용할 수 있어서 모임을 위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었다.
이와 같은 지역 사회주의자 연합들을 결성하도록 만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틴사이드, 머지사이드, 클라이드사이드, 요크셔 일부, 철강도시들과 같은 지역 그리고 점차적으로 웨스트민스터 넘어 도처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은 (사회주의 운동을) 쇠퇴와 붕괴로 이끄는 실제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자극 요인들이다.
그런 지역 대부분에서 위협 요인들에 대한 대응은 통상적으로 공식 캠페인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몇 몇 지역에서는 10년 이상의 쇠퇴를 겪고 난 후 과거의 캠페인으로부터 지도자들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의존해 온 캠페인 지도자들의 로비나 명목상의 시위, 그리고 그들이 캠페인의 구성원들과 공동체에 더 많은 행동을 촉구하는 선동과 연설에 마지못해서 나서는 것 등은 모두 쓸모없는 일이었음을 목격해 왔다.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보다 전투적인 주도력을 갖기 위해서 모일 필요가 있었고, 종종 공식캠페인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 지역을 위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얻자’고 외치는 것 이상의, 보다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갖는 정책들을 개발하기 위해서 함께 모일 필요성을 점차적으로 인식해 갔다. 과거에 공산당원이었으나 지금은 아무 정치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서, 뉴캐슬 노조평의회 총무이며 노조평의회 산하 실업자 센터의 조직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알렉 맥파든(Alec McFadden)은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우리는 헤스 노동당 내각 때 그랬던 것처럼 보수당에 반대하기 위해서 애매하게 단결할 수는 없다. 게다가 영국노총이 지금 주장하는 대로 그대로 둘 수만은 없다. 그것은 필요하기는 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우리가 노동당 정부에 대응할 만 한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고, 대안적 정책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국회의원이나 당 관료들이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경우에 독자적으로 행동할 만한 힘도 없었음을 의미했다.
우리는 그 지역에서 투쟁을 세워 내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모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통일을 이뤄내기 위한 단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전의 노동당 정부로 후퇴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대안적인 정책을 준비해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트레스 공장폐쇄와 빅커즈 스코츠우드 개방을 위한 캠페인의 실패로부터 배웠다. 관련된 사회주의자들이 지도력을 발휘하고자 했다면 좀더 자주 모여서 함께 문제를 풀어 가야 했었다.

그러한 연합들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지역적 조건들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보수당의 공격이 맹렬하고 공식적인 캠페인이 가망이 없을 때에는 가장 강력한 좌파조직의 지부 또는 노동당의 좌파 지역구가 연합행동을 취할 수 있다. 그것은 정상적인 관행에서 벗어난 것인데, 그 내부의 토론이 다른 소규모의 조직들이나 무정파 사회주의자들을 위한 포럼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추진한 캠페인에서 성공적으로 공동 작업한 경험을 갖고 있는 다른 지역들에서는 보다 지속적이고 광범한 정치적 기반에 근거해서 그러한 단결을 이뤄내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또한 보다 행동적인 정치 연합을 세워내는데 이용될 수 있는, 어떤 통일적인 연합형태나 지역 사회주의 신문, 자원공유 센터, 서점, 사회주의 클럽 및 센터 등이 이미 구축된 곳도 있다. 과정을 불문하고 임시적이고 느슨하건 간에, 특히 지역적 수준에서 그러한 연합을 위한 조건이 유리하게 형성되고 있는 징후가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노동당 내부의 논쟁과 노동당으로부터의 분리에 관한 것이다. 노동당내에서 결정적인 갈등이 끝없이 연기되는 것과 대부분의 지구당에서 정치적 논쟁이 빈곤한 것, 그리고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사회주의 신문의 부재로 인해 영국내 좌파는 전략과 강령에 관한 공개적인 토론 과정을 -심지어는 유럽 대륙에 있는 사회주의자 및 공산당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대한 사전 토론조차- 거치지 않았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충분히 강한 단위들마저도, 지역적 수준에서 전국적인 통일을 기하기 위한 틀을 결정하기 위한 전략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합의가 없으며, 심지어 그에 대한 토론마저 안되고 있다. 그렇지만 지역과 부문 수준에서는 우선, 실제적인 주요 현안들을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또한 서점, 노조 정보 및 연구를 위한 사회주의 센터, 자원센터, 대안 신문 등 사회주의적 프로젝트와 관련된 기회는 많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단일 정치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자원을 요한다. (예를 들어서 SWP는,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런던이나 글래스고우를 이외의 어느 곳에서도 사회주의 서점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것들의 성공은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창출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제한적인 의미를 지닌 통일이라는 통념 때문에 혁명적 활동가(revolutionaries)들은 이런 종류의 연합을 만들어내는 데 주저한다. 이들은 만일 단결을 이뤄내는 것이 특수한 이슈나 노조내부를 훨씬 넘어서는 경우에, 그런 단결은 다른 좌파집단과의 끊임없는 언쟁 속에서 에너지를 소모시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단결은 너무 시시해서 쓸모없고 소극적인 것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운동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에게서 단일한 통합 틀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한 틀 속에서 여성들은 낙태, 동일임금, 간병, 파시즘 및 기타 이슈들과 같은, 일치하는 부분에서 단결하여 행동했고 여성들 자신의 생각대로 문제들에 대한 유용한 토론을 전개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토론과 주장에서 방어적이지 않고, 그것이 다른 이슈들에서의 통일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만 한다면 잘 될 수 있다. 단결이 처음에는 모호하고 느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단결의 기반을 형성해 가는데 있어서 그러한 연합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전국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정치적 토론과 교육을 위한 포럼을 준비하는 일일 것이다. 정치적 토론과 사회주의 문화를 위한 저변을 (재)구축하지 않고서는, 실제적인 투쟁 속에서 대면하게 되는 문제나 차이들과 관련된 전국적인 수준에서의 정치적 통제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태리나 스페인에서의 혁명적 봉기가 지역이나 부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단결된 사회주의적 진전을 위한 인식 지평을 급속하게 확장시킬 수 있었듯이, 이러한 지역 사회주의 연합이 통합하고 발전하는 속도와 그들 사이의 변증법, 그리고 전국적인 사회주의 조직의 출현 등은 미리 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6. 혁명적 집단들

지금까지 살펴 본 사회주의 연합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은 모두 줏대 없이 동요하는 모습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혁명적 그룹/당에 모든 이들을 참여시키고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 감으로써, 이 조직이 우리가 그려본 바와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결국에는 포괄해 낼 수 있을 것라고 고무하는 것이 더 단순 명료하고 궁극적으로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한 해결책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국가의 계급적 본성에 관한 ‘레닌주의’적 이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강압적 국가 기구를 파괴하고 민주적 정치 권력의 새로운 형태를 구축할 필요성에 관한 것도 문제가 안 된다. 게다가 그러한 변혁을 위한 조직적 조건, 노동계급 및 기타 피억압 집단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혁명적 대중조직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기존의 혁명적 그룹 대부분이 그러한 혁명적 대중조직을 구축하는 방식에 있다. 주요한 문제 중 하나는 혁명적 그룹들이 그들이 갖고 있는 사회주의적 대중 조직의 필요성에 대한 신념으로부터 그들 자신이 그러한 조직의 초기 단계의 형태라거나(SWP), 조직의 핵심(IMG)이라는 결론으로 비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어느 날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중앙 지도부의 기본구조와 특징을 갖춘다. 마치 몸에 안 맞게 너무 큰 옷을 입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어린이들처럼, 최악의 결과는 우스꽝스럽고, 우쭐대는 듯하며, 아주 답답해 보일 것이다! 이에 대해 혁명가들(공산주의자들)과 기타 노동운동 사이의 관계에 관한 맑스의 기본원칙을 적용시켜 보면 문제는 아마도 더 진지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공산주의자들)은 그들 자신만의 종파적 원칙을 세워 거기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형성하고 짜 맞추려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계급 정당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단호한 부분이며, 다른 모든 이들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부분이다. 다른 한편 이론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진행, 조건, 궁극적인 결과 일반에 대한 이해의 명확성에서 우월성을 갖는다.

영국의 주요한 혁명적 그룹들은, 맑스의 용어를 빌자면, 그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이들만이 공산주의자라고 가정하는 실수를 범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상 그들은 - 뚜렷하고 주요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 노동자 및 기타 피억압 집단들을 현장에서 정치적으로 지도하는 이들 중에 단지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공산주의자들’의 대중은 내가 그려본 바와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들과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주의 활동가들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노동자 정당에 가입하고, 어떤 이들은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미 주장한 바와 같이 사회주의자들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전위주의 그룹(vanguardist groups)’은, 비록 추상수준에서는 계급을 대체하는 위험을 경계하지만, 언제나 다양하게 나타나는 계급의 전위를 그들 자신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비판의 대부분은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 직접 적용될 수 있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영향력 있는 조직인 국제 맑스주의자 그룹(IMG)은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그 조직은 스스로를 단결된 전선, 곧 다른 조직과의 분열과 융합의 긴 과정을 통해 앞으로 형성될, 당의 핵심이라고 상상한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좌파의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강조하게 된다. (예컨대, IMG가 아닌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기본적 프로그램을 담은 「사회주의적 도전Socialist Challenge」을 발간하는 것. 이는 ‘사회주의의 통일단결’을 통해 노동당에 대항하는 대안적 선거연합을 조직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올바른 프로그램의 발전 방식’에 대한 그들의 태도로 인하여 그들은 접촉범위와 지지자를 확대하는 것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들의 모델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의식적인 정치적 과정이지, 비이성적인 폭발이거나 조정되지 않은 수천 개 결정이 만들어낸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아니라는 믿음을 올바르게 전제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치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여기 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들의 과학적 접근 모델은 지나치게 과학적 발전에 대한 일원론적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울 뿐 아니라, 그들 내부의 민주적 토론 과정과 결정 또한 과학적 사회주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과정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그들의 구성원이 더 광범한 투쟁과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종합(synthesis)의 과정은 IMG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생각은 과학적 관념들이 발전해 가는 과정 속에서 보면 공허할 뿐이다. 모든 과학적 관념들은 다소간의 경합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다양하면서도 통제된 실험 과정들을 거쳐가는 가운데 발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말하는 과학적 발전은, 인공적인 실험이 아니라 인간의 투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다른 과학들과 다르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투쟁이 정치적 논쟁과 어떤 정치적 경향의 실천 과정을 보다 광범한 사회주의 운동을 위한 통제된 논쟁이나 행동 가능성의 문제로 대체시켜 버릴 위험도 있다. 그것은 민주집중제 개념에는 시간을 초월한 유일한 조직적 해석만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현실적으로 이 개념에 부여된 정치적 중요성에 대해 지적한 사람은, 제4인터내셔널 IMG는 그것의 영국 분파이다.
의 지도적 이론가였던 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주 집중제의 본질은 실제로 조직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 정치적인 것이다. 노동자들 우리는 ‘그리고 다른 억압받는 민중’을 덧붙여야만 한다 - 인용자 주
의 직접적 경험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일면적이다. 실제의 노동자들은, 이상적으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하나의 공장과 하나의 산업 부문과 하나의 도시에서 활동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들의 직접적 경험으로부터 도출하는 교훈은 언제나 부분적이다. 노동계급의 자생적 활동은 매우 다양한 반면, 언제나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 역자) 언제나 분열된 인식을 갖게 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 집중제의 핵심적 기능은 노동계급의 경험을 총체적인 것으로 집중하고, 그것으로부터 적절한 교훈을 끌어내고 국가 권력을 위한 싸움에서 프롤레타리아 전선을 단결시킬 수 있는 전략을 조직함으로써, 그러한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다. E.Mandel, Revolutionary Marxism Today, New Left Books, London, 1979, 222쪽.


이 과정이 어떤 단일한 조직 형태를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위 인용문에는 IMG가 그들이 추구는 사상에 대한 신념으로부터, 적절한 프로그램의 개발은 그들과 제4인터내셔날 내부의 민주적 토론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논리적 비약에 대한 어떠한 정당화도 없다. 과학적 사회주의 정치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조직 형태는 다양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마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노동당에서 분리된 볼셰비키의 경우처럼) 주로 기존하는 대중 정당에서 분리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다양한 정치적 전통과 경험 속에서 성장하는 시기에 요구되는 조직 형태는, 공통된 정치적 경험과 논쟁으로부터 통상적으로 산출되는 것과 같이, 정치적 동질성의 시기에 요구되는 형태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모든 형태의 과학적 발전이 그런 것처럼, 정치적 경향성과 사회주의에 대한 영감과 전망의 근원들 역시 다양하게 변할 것이다. 사회주의적 변화에 대한 하나의 지배적 이론이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더 이상 설명하거나 해결하지 못하여 붕괴되거나, 어떠한 대안도 지배적인 관점들과의 논쟁을 통해 성숙해지지 못한 경우에는, 그 진공을 채우기 위한 아주 다양한 시도가 있을 수 있다.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객관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나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서 대중적 행동이 주기적으로 고조될 때가 특히 그렇다. 실제로, 이것은 앞서 묘사한 바 있는 좌파 개량주의(reformism)가 쇠퇴한 상황이다. 이러한 다양성으로부터 새로운 해결, 더 큰 합의와 힘이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다양한 전통과 운동간의 신랄하고도 원칙에 입각한 논쟁을 통해서, 동시에 당면한 주요 문제들에서 단결함으로써 새로운 조직화 방식을 창출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이태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혁명적 그룹이 분화되지 않은 대중운동에 대한 환상 속에서 스스로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분열된 파편들로부터 창출되는 어떤 사회주의 대중조직에서도, 전국적으로 조직화된 정도에 따라서, 상이한 정치적 경향들이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어떤 측면에서 과거 혁명적 전통의 담지자들이다. 그들은 광범한 전투적 사회주의 활동가 층이 없었던 시기에 그러한 혁명적 전통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혁명적 그룹이 현재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전통을 배우고, 논쟁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하나의 사회주의 조직으로 단결하는 과정에 필수적이다.
현재 그러한 대중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인자들은 맑스가 언급하고 그가 이정표를 제공한 바와 같은, 정치적 통합과 투쟁의 진전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혁명적 그룹은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는데 주요한 촉매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과거에 이뤄냈던 혁명적 진전들이 지닌 현재적 교훈에 대해 숙고해 왔다. 그러나 그들의 관념은 불가피하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단지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회주의를 위한 전략과 프로그램의 앙상한 골격만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단 10년만에 토론 그룹으로부터 부각된 작은 조직으로서 그들의 정치는, 그 10년 동안 새롭고 복잡한 방식으로 전면화된 대부분의 이슈 - 성정치, 현시기의 이데올로기 및 부르주아 문화와 관련된 제도들, 생산에 대한 국가개입의 대대적인 확장, 경기침체의 정도와 형태, 새로운 형태의 기술과 그것이 노동자의 삶과 노동조건에 미치는 충격 등 - 에서 특별하게 선진적인 것이 없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영국에서 혁명가들이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지난 시기 - 1940년대 -와 다시 수천의 투사들이 사회주의적 대안을 찾기 시작한 1968년 이후 사이의 중요한 간극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혁명적 조직들은 조직력에서나 분석의 풍부함과 폭에서나 총체적인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사회주의적 주도력이나 지도력 발휘, 분석, 정치적 성장을 위한 수많은 센터가 생겨났다.
혁명적 그룹들은 이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고, 이러한 사회주의 활동의 여러 중심들에 대해 좀더 겸손한 정치적 자세를 견지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혁명적 그룹들은 점차적으로 보다 통합된 정치적 운동을 향한 이들의 주도성에 영향을 미치거나 촉매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또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도 감소시켰다.
혹시 이러한 혁명적 그룹들이 그들이 생각했던 바와 같이, 선전/토론 그룹으로부터 충분히 성숙한 민주집중제적 당, 또는 그것의 맹아로 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현장과 지역적 기반, 그리고 여러 운동과 투쟁들과 같은 정치활동의 실재와 그들 자신에 대한 과장된 개념화 사이에 모순이 너무 커져서, 많은 회원들이나 잠재적 회원들이 수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여성운동에 관여하면서 IMG의 회원이었을 때 이에 대해 겪었던 선명한 기억이 있다. IMG 성원이었던 우리는 처음에 마치 우리가 운동을 정치적으로 총괄 지도할 수 있고, 그래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처럼, 운동들에 대한 ‘개입’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곧 그러한 개입은 너무나 불합리하게 보였다. 이는 우리가 ‘후진적인 요소‘로서 대중들에게 확신을 불어넣고자 하는, 정치적으로 고립된 전위여서가 아니라, 모든 다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유사한 노선을 따라 더 좋은 생각을 발전시키고 주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운동에 활동적이었던 많은 이들이 다소 우스꽝스러웠던 우리들의 가장된 모습을 점점 포기해 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IMG가 대표하였던 정치적 전통과 분석들을 자양분으로 삼았으며, IMG가 다른 활동에 몸담고 있었던 사회주의 활동가들과 우리들이 접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러한 접촉은 아무런 허세 도 부리지 않고 한 두 개의 이슈를 위해 공동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아마도 이런 방식 때문에 훨씬 더 가치 있는 공헌을 할 수 있었고, 다른 사회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과 더 잘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운동의 혁명적 지도부로서 활동한 것도, 그것을 고무하려 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지도력과 주도성을 발휘했던 많은 원천들 중의 하나, 혹은 하나의 일부였을 뿐이다. 우리는 엄격하게 민주집중제적 규범에 따라 활동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때로는 IMG가, ‘일하는 여성 헌장’을 지지했던 것처럼 전국적인 주도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운동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검증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다시 IMG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IMG의 규율에 의해 구속받는다는 느낌을 갖지 않았기에, 어떤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 그들의 생각이 더 나아 보일 때는 우리가 다른 정치적 경향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단지 당신이 생각을 공유하고 당신이 함께 집단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처럼 동지애의 관점에서 IMG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다. 다시 말해서 IMG가,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많은 사회주의 그룹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자기 조직의 한계를 인정하는 한에서만, 그것의 회원이 되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IMG가 자신과 제4인터내셔널이 자칭 맹아적 당 인양 우쭐대며 허세를 부릴 때, 그것은 문제가 된다.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이러한 과도한 평가는, 혁명적 그룹의 성원들이 더 큰 운동과 투쟁에 진정으로 기여했는가에 대한 평가에서 뿐 아니라, 단일한 이슈를 넘어서서 보다 넓은 운동에 함께 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잃어버리게 되는 기회 때문에도 문제가 된다. 각 그룹마다 스스로가 초기 정당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그들간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철저하게 위선적이고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구성원의 대다수는 아마도 공동 작업이 캠페인에 부여하는 실질적인 힘에 진정으로 헌신할 것이다. 반면 지도부 분파는 반대 그룹의 ‘가장 훌륭한 인자’들을 끌어들이는데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다시 지역 수준에서 불신과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계속해서 혁명적 좌파가 지닌 현실 정치에서의 힘을 엄청나게 약화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두 혁명적 좌파의 기관지인 「사회주의 노동자Socialist Workers」와 「사회주의적 도전Socialist Challenge」를 살펴보자. 양자 모두 그 자신의 방식에 있어서는 그런 대로 괜찮다고 볼 수 있다. 대중적인 사회주의 신문으로서 「사회주의 노동자」는 사회주의, 노동자 통제, 최근에는 여성해방, 그리고 인종주의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력한 공격 등에 관한 기본적인 입장을 천명해 왔다. 그 신문은 자기 조직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투쟁과 운동만을 보도하는 경향을 보이거나 때때로 매우 취약한 분석 -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접근하기 쉽고 읽기 쉬운 것에 대한 필연적인 대가로 간주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도와 논평에서 훨씬 광범한 원천들을 이용하면 신문이 훨씬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적 도전」은 아주 뛰어난 약간의 분석과, 특히 인종주의와 세계적 투쟁에 대해 가끔 훌륭한 기사를 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문은 두 마리의 토끼를 뒤쫓다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한편으로, 한편으로 그 신문은 피켓라인과 공장문 밖, 그리고 토요일에는 쇼핑센터와 같은 곳에서 판매되는 「사회주의 노동자」에 상응될 만한 신문을 IMG 활동가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압력 하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다른 조직에 속해 있는 사회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특정한 형태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분석을 고무시켰다. 만약 그 신문들을 통제하고 있는 두 그룹이 그들의 당파적 자만심을 누그러뜨리고, 그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정치운동의 두 경향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효과적인 사회주의 대중지이면서도 좌파를 위한 논쟁과 분석이 이루어지는 신문을 발간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원은 - ‘큰 불꽃(Big Flame)’ 및 다른 무정파적(unaligned) 혁명가들과 함께 - 서로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특정 그룹에 얽매이지 않은 그러한 신문은 독립적 사회주의자와 수많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광범한 급진적 신문들과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로부터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7. 여성운동의 적합성

지금까지 살펴 본 노동당, 지역 사회주의자 연합, 전국적인 사회주의 대중지는 페미니즘과 별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사회주의 운동의 성공에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수년간의 조직화를 거친 지금, 우리 여성들은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요구되는 보다 광범한 조직화와 선동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페미니스트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성공적으로 조직화한 운동은 법이나 산업에서 그다지 효과적인 변화를 이뤄 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운동은 가사노동자나 임노동자, 화이트칼라 노조나 육체노동자 노조 내부의 여성들을 포함하는 수 천명의 여성들에게 힘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그것은 정치란 언제나 그들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오직 정치가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정치활동으로 끌어들였다. 다시 말해서 여성운동은 정치적 경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여성들에게 자신의 삶을 틀 지웠던 결정들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할 수 있게 해줬다. 또한 그 일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회주의 조직이 가장 집중적으로 수행해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여성운동의 목적은 매우 특정하고 제한적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은 오직 주변적인 방식으로, 약간의 양보가 허용될 수 있는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를 이용해 왔다는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 조직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어려운 과업을 갖는다. 이것의 당연한 귀결은 여성운동의 조직 형태는 특정한 과업에만 적합한 반면, 사회주의를 위한 조직은 매우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페미니즘으로부터 배울 만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거칠지라도, 이러한 대비는 그 내부에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 어떤 사회주의 조직도 여성운동이 지금은 대면하고 있지 않은 많은 이슈와 문제들을 다룰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여성운동 조직을 좌파가 근거할 완벽한 모델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어떠한 사회주의자들도 무시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 -적어도 그것의 시작-을 성취해 냈다. 여성운동은 대부분의 억압과착취형태의기반이되고있는광범위한자기종속(self-subordin ation)과 주변적인 역할을 수용하는 것에 대해 효과적으로 도전해 왔다. 이것은 실제로는 정반대지만, 국가에 전면적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한 자기 종속이 남성, 실업자, 흑인, 게이, 그리고 사회주의가 이끌고자 하는 모든 집단들의 마음속에서 거부되지 않는다면, 민주적인 사회주의의 전략을 갖고 현존하는 국가와 전면적으로 대결할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여성운동이 이것을 이뤄 낸 방법은 광범위한 적합성을 갖는다. 여성운동에서 배울 만한 중요한 점은 바로 여성 조직을 지탱해 주는 가치이다. 특정한 조직적 형태는 그것이 성취하고자 하는 특수한 목적에만 적합성을 갖는다. 우리의 조직화 방식에 내재하는 가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강조한다: 지역적 통제와 자율성; 전체 통제구조 내 부의 소그룹들; 지역 센터와 사회, 문화적 활동; 이론의 실천 관련성; 절차적 형태와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고 소외시키는 지도부를 단념시키기; 현실 경험에 근거하며, 경청하고 논의 할만 한 가치가 있는 전략과 전술에 대한 상이한 견해들을 인정하기.
이러한 가치들은 전국적, 부문별 구조와 이론적 논쟁, 그리고 일치된 요구강령을 중심으로 스스로 훈련된 전국적 행동의 토대를 형성해 왔다. 또한 이러한 가치들은 다양한 주도력과 지도력을 발휘하는 여러 거점을 갖는 운동과 더불어, 수많은 정치적 경향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운동을 창출하였다.
그러한 단결은 자족적인 관용의 문제가 아니다. 갈등과 불신의 시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여러 상이한 정치적 견해들의 뚜렷하게 구분되는 공헌을 토대로 여성 운동이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은 노조에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노조평의회로 하여금 여성위원회를 만들게 하고, 노조 지부들이 IMG나 CP 소속 여성들이 제안하는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여성의 목소리’(Women’s Voice)가 보다 공격적이고 대외 지향적인 접근을 취하면서 많은 여성 운동 캠페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 구축 방법들이 여성운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여성운동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조직화에 대한 주관적 경험 즉, 그것이 실망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사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가 아니면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가 여부는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거의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전국적 구조들이나 아무 것도 이뤄낼 것 같지 않은 공식적 절차, 망설이도록 하는 불일치와 의문을 억압하는 ‘올바른 노선’에 대한 경직된 사고들, 실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론적 논쟁, 상호간에 관심이 거의 없는 가운데 추상화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연대, 이 어느 것도 여성들이 그들의 수동성과 자기 종속을 벗어 던지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점은 노동계급의 많은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운동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은 많다. 아마도 이것들은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들이 구조를 세우고, 모임을 배치하며, 상호간에 논쟁하고, 전술을 계획하며,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새로운 인물을 사회주의 활동으로 끌어들이고 그들로 하여금 과거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관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여성운동의 교훈이 주는 또 다른 변화는 아마도 이미 사회주의적 노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발휘하는 주도성을 더욱 더 존중해 주는 쪽으로의 변화일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분열로부터 보다 통합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창출하고 있는 현 단계에서 이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이와 같이 성장하고 있는 영역에 민감하게 된 것은 바로 여성운동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선의 상태에서 볼 때, 여성운동은 우리들이 현시기의 주요한 실제적 이슈들에 근거해서 운동으로서 서로가 단결하는 법을 깨닫게 해줬다. 동시에 서로의 정치적 차이를 존중하면서 논쟁하고 단일한 운동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서로 다르다는 것과 자신의 길을 가는 것에 동의하는 법도 깨닫게 했다. 만일 좌파가 적어도 지역적 수준에서나마 그러한 것을 성취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나쁜 것과 최악의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 말고도 다른 그 이상의 것, 즉 그들이 만들어 가야 할 진정한 대안들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긴 도정에 오른 것일 것이다. 한/노/정/연


번역: 신병현 연구위원 / 박정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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