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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번 : [58호/특집] 현 시기 김대중정부의 노동정책 : 단절과 연속성
글쓴이: 노중기 등록: 2000-09-01 00:00:00 조회: 1365


현 시기 김대중정부의 노동정책 : 단절과 연속성
특집

노 중 기
연구위원/한신대교수 사회학






최근 노동정책에 대한 두 가지 평가

지난 6월 29일과 7월 1일 김대중정권은 롯데호텔노동조합과 사회보험노동조합에 대해 경찰력을 투입하였다. 과거 우리 노동정치에서 흔하게 벌어진 물리력에 의한 파업파괴, 노동운동 탄압이었지만 이번 사태가 민주노조운동에 미친 충격은 작지 않았다. 테러진압부대를 동원하고 여성․임산부에까지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한 진압방식은 노동대중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또 며칠 후 파업 파괴에 항의하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닭장차에 싣고 폭력을 가한 국가권력의 태도는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현정권은 8월초인 현재의 시점까지 경찰력투입과 폭력사태에 대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는 단병호 위원장의 표현대로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노동탄압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현 정권의 이같은 노골적인 노동운동 탄압은 노동운동 진영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참여와 협력의 신노사문화’를 주창하는 ‘국민의 정부’와 물리적 탄압은 도대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노사정위원회’를 앞세워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였던 지난 몇 해의 노동정책 기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군부독재시절로 회귀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매우 도발적인 최근의 노동탄압에의 배경과 함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가능하다. 단순화하면 두 가지 입장을 상정해 볼 수 있다. 현정권 전반기의 노동정책 기조와 단절한 새로운 시기의 시작인가? 아니면 연속성이 있는 어떤 것인가?
우선 폭력적 진압이 있던 당일 민주노총이 내린 ‘신공안탄압’ 규정은 노동정책의 중요한 전환이 있음을 시사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개혁담론과 합의기조를 중심으로 했던 노동정책이 정권의 정치적 위기와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대중의 투쟁에 맞서 급속히 반동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사태는 보건의료노조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금속산업연맹 지도부에 대한 폭행 등 상반기 이후 강화된 노동억압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이라고 본다. 또 노점상, 철거민 등 제반 민중투쟁에 대해서도 억압의 강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단절을 강조하는 해석에서는 급속한 정책기조 전환의 배경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 현정권은 올해 하반기에 예정되어 있는 철도, 체신, 한전 등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자동차 해외매각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4월 총선 패배 이후 약화된 권력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의 정세변화도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본다. 즉 한편으로는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어 강력한 노동통제가 가능해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운동의 억압을 통해서 보수, 반동세력의 정치공세를 막아낼 계기를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연속성을 강조하는 해석은 시기별, 사안별로 나타나는 현상적 차이보다는 ‘구조적 연속성’이나 ‘일관성’에 주목한다.(임영일, ‘세 개의 파업, 하나의 정책’, [연대와 실천], 73호) 현 정권의 노동정책은 그것이 두드려 강제하든, 어루고 달래든 간에 일관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즉 가능한 한 ‘합의의 꼴’을 만들되 불가할 때는 강제하거나 ‘은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의 노동탄압은 ‘노사정위원회의 (사이비)합의정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보다 세련된 노동배제-헤게모니전략

이상과 같은 두 가지 단순한 설명은 사태의 특정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정치를 단기변동의 관점과 장기변동의 관점에서 고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장기변동과 단기변동을 구별하여 정리하고, 사태의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통해서 보다 포괄적인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단기변동은 단기적 계급정치 역학, 정치․경제정세의 변동, 지배블럭이나 국가기구 내부의 역학관계 변동, 정치적 전술의 변화 등으로 야기되는 제한된 정치변동을 말한다. 반면에 장기변동은 축적체제의 변동이나 국가의 성격 변화, 노동체제의 구조적 작동이나 변형의 제반 요소들로 표현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작금의 물리적 탄압사태는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차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다른 곳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노중기, ‘노동운동의 위기구조와 노동의 선택’, [산업노동연구] 5권 1호, 1999) 노동정치, 계급정치에서 강제와 동의(또는 합의)는 분리되기보다는 결합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그 균형 변동의 추이이다. 군부독재체제의 노동정치가 강제의 요소가 강했다면 1987년이나 1993년 그리고 1998년의 정권교체는 다만 동의의 요소가 더 많이 배합되었던 계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김대중정권 초반기의 노동정치에서도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는 물리적 강제수단을 통해 ‘강요되고 강제된’ 합의였을 뿐이다. 2기 노사정위원회 이후 국가의 물리력은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가를 강요한 핵심적 수단이었다. 민주노조지도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항상 구속과 수배, 체포영장발부 및 재산압류의 위협 속에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정권이 크게 자찬하는 1998년 8.24 현대자동차 노사정합의 이후 노조간부들은 곧바로 구속, 수배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만도기계 파업파괴나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권이 말하는 참여․협력은 경찰력투입과 사찰, 감시, 사건조작과 항상적으로 결합한 것이었다.
6월 이후 경찰력에 의존한 노동통제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제한적으로 사안에 따라 동원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정부는 통제가 현행법 집행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정당성의 명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것이 정당한 합법파업이었던 사회보험노조의 파업에 대해서 집중적인 여론조작이 행해졌던 이유이다. 또 그간 장관급으로 예우했던 천만 노동자의 대표, 민주노총 위원장을 불법적으로 연행, 구타하면서도 돌아서면 노동부장관과 노사정위원장이 농성천막으로 찾아오는 우스꽝스런 쇼가 연출되고 있는 현실에서도 정권의 이런 고충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 공안정국에서 반공이데올로기에 의존한 무차별적 폭력동원이 행해진 것과 이번 사태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1989년 봄의 상황은 군부독재의 노동억압이 단기적인 정세변동에 의해 되살아난 것인 반면, 현재의 노동억압은 ‘노사정위원회의 (사이비)합의정치’와 여전히 맞물려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롯데호텔과 사회보험노조에서는 경찰력투입에 의한 파업 파괴 이후 ‘다시 교섭’이 진행되고 있고, 정권과 민주노총 간의 ‘막후교섭’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사태의 진행도 역시 현재의 정치구도가 복잡다단함을 입증하고 있다.
다음으로 일시적으로 억압의 강도가 높아진 배경은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배경이 분석되고 있으며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할 필요는 없다. 앞서 단절론의 맥락에서 제기했던 하반기 구조조정은 가장 중요한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좀 더 분석해볼 여지를 갖고 있다. 즉 이번 사태는 올해 하반기에 진행될 금융산업, 철도․체신․한전 등의 공공부문과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적인 기선제압의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새 노동통제방식-사이비코포라티즘과 양대노총 분할지배

현정권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이비코포라티즘을 이용한 양대노총에 대한 분할지배에 있다. 민주노총 산하 두 사업장에 대한 경찰력 투입 직후 벌어진 금융노조의 파업에 대해 정권은 전혀 다른 대응을 했던 것이다. 정권 전반기에 민주노총을 합법화하는 등 양대 노총 간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던 태도에 비추어보더라도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점은 금번 파업파괴사태로부터 해석할 수 있는 정권의 노동정책 변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일 것이다.
정상적인 절차로는 파업을 할 수 없는 필수공익사업장노조, 금융노조의 파업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불법에 대한 대응은 민주노총 산하의 보건의료노조와 대비해 보아도 크게 달랐다. 또 사회보험노조와 같이 합법파업도 이데올로기공작으로 파괴하였던 것에 비교하면 정권의 분할지배전략은 명료한 것이었다. 이는 금융노조의 파업이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정부 구조조정의 정당성 기반을 정확하게 공략한 것이었음을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노조 내부의 취약한 파업동력을 고려하면 약간의 물리적 대응만으로도 파업은 손쉽게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은 파업 하루를 넘지 않고 상당한 양보를 전제로 해서 노사정 ‘합의’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구속, 수배 등 흔한 형사처벌 절차는 생략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관행적 차별대우가 아니다.
현정권의 이같은 대응은 향후 노동정책의 향방에 대해 몇 가지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하반기 구조조정에 있어서 한국노총 산하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노사정 합의형식을 치밀하게 구성해 갈 가능성이 크다. 금융노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방안은 노조지도부에게는 막연한 고용보장이라는 명분을 주고 실질적으로는 정권이 손쉽게 구조조정을 관철하는 방안이다. 추상적 합의 이후 그 실행은 노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반면에 민주노총 산하의 자동차산업 및 여타 노조에서 파업이 있을 경우에는 강경한 대응이 예상될 수 있다.
또 하반기에 동시에 예정되어 있는 ‘2단계 노동부문 개혁’(재정경제부, [200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6.23)에서도 한국노총이 하위 파트너로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지속적으로 제고하고’, ‘임금․휴일․휴가제도에 대한 포괄적인 개선(개악 ― 필자)방안을 마련’한다는 정권의 방침은 1단계의 정리해고 개악처럼 노동대중의 광범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를 정권은 양 노총에 대한 분할지배와 ‘사이비합의’를 매개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노총에 대한 약간의 반대급부 제공은 정권에게 전혀 손해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노사정위원회-사이비코포라티즘의 문제는 다시금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정권은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위상을 일부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 반 동안 노사정위원회는 한국노총을 지렛대로 하여 민주노총의 참가를 압박함으로써 노동대중의 투쟁을 제어하고 제한하는 통제수단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대한 거부를 명백히 한 이래 민주노총을 포괄한 합의형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이 명료해졌다. 금번 폭력사태와 금융노조의 합의과정에서 노사정위의 기능적 작동은 이 점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 ‘합의’ 후 금융노조와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재참가는 그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따라서 하반기 이후 노사정위원회는 한국노총을 하위파트너로 한 이데올로기적․조직적 통제수단의 기능을 더욱 노골적으로 전면화할 가능성이 크다. 즉 노사협조체제를 제도화하는 통제기구로서의 성격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개각에서 금융파업에서 공을 올린 노사정위 위원장이 노동부장관으로 ‘승진’한 것, 폭력탄압의 실질적 책임자인 노동부장관이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영전’한 것도 같은 맥락의 전략적 행위라 할 수 있다. 금융파업에서의 노사정합의를 노사정위를 중심으로 한 참여와 협력의 바람직한 모델로 인식하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사후 평가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새로 노사정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장영철은 1989년 봄의 공안정국에 일조했던 당시 노동부장관(재임기간 1988. 12-1989. 5)이었다. 그가 장관 재임시절 수행했던 일은 공안합수부 구성 등 공안통치에 협조하여, 서울지하철노조와 현대중공업노조에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하고 파업을 파괴한 것이 전부였다. 신임 위원장에게 정권이 기대하는 바는 이전과 달리 보다 단순할 것이다.
많은 관찰자들이 진단하고 있듯이 올해 하반기의 사이비코포라티즘은 그 의제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상태이다.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된 노동시간 단축을 지렛대로 해서 지난 십 수년간 자본측의 항상적 요구였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조치를 최종적으로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공부문 사업장의 민영화, 매각, 분할, 조직합리화와 인원축소 등이 주요한 전략적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또 변형근로시간제와 파견노동자제도의 확대, 초과노동수당 삭감, 휴일-휴가의 축소 및 무급화, 퇴직금제도의 폐지, 연봉제 및 다양한 성과급 임금제도의 제도화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노동시간의 단계적, 제한적 단축만으로 이같은 포괄적인 노동조건 개악이 어려울 때 정권이 동원할 수단도 준비되어 있다. 그것은 한국노총이 숙원사업으로 요구하고 있는 ‘전임자임금지급금지조항’의 개정이다. 정권이 이 요구를 적정 선에서 수용할 경우 한국노총은 모든 것을 버리고 정권에 투항할 것이며 노사정위원회는 그 장이 된다. 1998년 하반기 이후 ‘참여와 협력’ 또는 ‘합의’의 의제를 찾지 못해 한동안 휴업상태였던 노사정위원회는 다시금 여론의 주목을 받을 것이며, 통제기구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노동통제방식의 변동과 민주노조운동

1997년 노동법총파업과 법개정, 그리고 1997년 IMF경제공황 이후 한동안 모호했던 국가의 노동통제전략과 방식이 이제는 보다 분명히 가시화되고 있다. 그 간의 모호함은 경제상황의 급변이라는 조건과 노동체제의 구조변동 향방이 불분명했던 것에 기인한다. 단기 IMF공황의 약화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제도정치의 구도 확정 등 정치․경제정세의 불명료성이 부분적으로 제거되면서 사태가 조금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체제는 2002년 기업단위 복수노조의 허용과 전임자임금지급금지가 실행된 이후, 또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전환의 내용과 성과가 나타난 이후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상황은 불투명하며 노동운동은 여전히 위기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잠정적인 것이지만 노동정책과 관련해서 현재까지 분명해진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그 하나는 조직적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노사정위원회의 성격이 분명해지고 양대 노총에 대한 분할지배가 보다 강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전략적 방침을 확정하기 위한 내부논의와 조직방침의 확인은 향후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 민주노조운동으로서는 한국노총에 대한 전략적 태도를 보다 분명히 설정할 필요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는 한국노총과의 사안별 대립이나 갈등도 문제이겠으나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대 한국노총 전략방침을 마련하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가의 노동통제가 매우 세련되고 다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력투입과 노사정위원회의 합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매우 다양한 법적, 행정적 통제수단들을 체계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보다 노동체제 변동의 효과이다. 역설적인 것이지만 민주노총이 합법화된 이후 정권의 정책선택의 폭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과거의 경찰력투입은 그 내용과 절차적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부당한 것이었고 정당성기반을 잠식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조운동의 기본적 권리인 단결권을 봉쇄한 기반 위에서 진행된 권력의 행사였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헤게모니기반을 갖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 국가는 민주노조운동을 포괄적으로 부인하지 않는 선 위에서 경찰력투입, 손해배상청구, 구속과 수배조치를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단, 이를 위해서 이데올로기공작-여론조작, 법적 행정적 절차와 수순의 준비가 보다 치밀해 질 것이다.
반면에 민주노조운동이 이에 대응하는 과정도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즉 정부의 정책실행이 그 절차와 과정, 내용이 부당하고 불법적이며 계급차별적이라는 점을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확인하고 선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또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도 정권의 노동통제는 상이하게 적용될 수 있으므로 조직내부에서의 홍보, 선전도 매우 중요한 과제로 되고 있다. 소위 헤게모니정치라고 하는 정치지형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는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새로운 도전이며 총연합단체로서의 민주노총이 일차적으로 담당해야 할 과제이다. 체제변동은 민주노총의 기능과 역할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가장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과제이겠으나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에 대한 계급적이고 자주적인 대응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반기의 구조조정과정이나 노동조건 개악에 대한 계급적 대중투쟁은 물론이거니와 보다 중장기적인 전략방침이 필요하다.
필자가 보기에 그 핵심은 계급적 연대수준의 제고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은 두 가지이다.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실업노동자, 여성노동자 등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주변노동자층에 대한 조직화, 이익대표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이미 상당한 정도의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도부의 합의와는 별개로 개별 단위사업장노조나 조합원대중에게는 그 필요성과 절실함이 충분히 인식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은 크게 보아 중심과 주변노동자들에 대한 분할지배체제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대기업사업장의 조직된 중심노동자들의 희생은 크지 않을 지 모르지만 주변노동자군의 축적은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에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이념이 아니라 경제적, 조직적 수준에서 실질적으로 전체 노동계급을 대표해야만 한다. 다음으로 제고된 연대수준은 그 실현과정과 결과에서 산별노조라는 새로운 조직체제의 건설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2000.8.1.)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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