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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장관 인사파문으로 바라본 대학구조조정 방안

현장에서 미래를  제106호
배태섭

교육부장관 인사파문으로 바라본 대학구조조정 방안

배 태 섭
진보교육연구소 사무차장





‘누구’가 아닌 ‘어떻게’

새해 벽두부터 교육계가 시끌벅적하다. 교육부장관 자리를 놓고 이기준, 김효석에 이어 김진표까지, 숨이 가쁠 만큼 그야말로 엉뚱한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던 이기준, 열린우리당의 원내 과반수 의석 유지를 위한 정치적 포석이었던 김효석, 현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이들의 면면을 보면 교육운동단체들이 왜 반대를 하는지 단박에 알 수도 있으련만 청와대는 벽창호마냥 고집을 부리고 있다. 교육운동진영에서 각 개인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도덕적 하자는 덮고 갈 수도 있다”, “정치적 목적은 없다”, “교육부장관은 정치인이 해야 한다”, “교육문외한이라고 해서 교육부 수장을 맡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비판의 칼날을 요리조리 피해가려는 청와대는 문제의 핵심을 전혀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교육운동진영이 이기준의 임명을 반대했던 중요한 이유는 그 개인과 가족의 도덕적 문제뿐만 아니라 서울대 총장 재직시절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반대 때문이었고, 마찬가지 이유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김진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김진표의 임명을 반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진표의 도덕적 문제나 경제부총리 재직시절 공과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비판은 청와대와 김진표의 교육 철학과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대학은 산업”

다른 관점에서 보면 청와대의 인사원칙은 오히려 뚜렷하다. 이기준을 옹호한답시고 노무현이 내뱉은 말이 바로 “대학은 산업이 돼야한다”는 것이었다. 정부 입장에선 초중등교육의 개혁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이제 대학을 손 볼 차례가 되었고, 대학을 손 봄에 있어서 시장원리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 돼야 함을 이번 인사 파문을 통해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대학개혁의 적임자를 찾기 위해 ‘경제계의 요구를 잘 반영할 수 있는 인물’, ‘정치인’, ‘경제통’이 하마평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대학은 산업이 되어야 하는가? 현재 남한 대학의 문제는 시장원리의 부재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원리의 과잉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사립학교의 비대화․부실화는 사학자본들의 난립과 경쟁으로 인해 심화․확대되었으며, 경쟁력 이데올로기가 학생사회, 교수사회에 퍼지면서 대학과 학문이 죽어가고 있다. 대학에 인재가 없다는 기업의 불만은 사실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산학협력, 맞춤교육만이 살길이라 외치며 교양서적 한 권 제대로 못 읽도록 했으니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경제논리에 철저하게 종속됨으로써 대학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소득 2만 불 달성’이라는 허황된 망령에 사로잡혀 대학을 2만 불 달성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그 의지는 지난 연말에 발표한 ‘대학자율화 및 대학구조개혁방안’(2004. 12. 29)에 고스란히 담겨있고, 올해 천억 원의 예산 배정과 법률정비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지방대학의 붕괴와 왜곡

이번 구조개혁의 대상은 그야말로 장사가 안 되고 있는 지방대학이며 이들 대학은 정원감축과 학과 통폐합을 통한 양적 축소뿐만 아니라 산업계의 수요를 반영한 구조개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계획이다. 즉 이들 대학은 비인기 학과의 통폐합과 정원감축으로 산업계의 수요와 유리된 분야를 떨어내고 오로지 새로운 사회 수요에 적합한 ‘특성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 대학구조개혁의 핵심으로 이러한 구조개혁은 대부분 지방대학에 해당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시행중인 NURI 사업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산업 수요가 변화하는 가운데 대학이 매번 이를 좇아 이리 고치고 저리 뜯어고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더구나 청년실업난을 빌미로 이른바 ‘맞춤형 교육’을 강조하는 추세인데, 청년실업난의 원인이 신규일자리의 축소에 기인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맞춤형 교육’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뻔한 이치다. 따라서 대학구조개혁이 전체 대학의 양적 축소는 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효과보다는 오히려 지방대학의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사실 대학이 정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극단적인 양극화로 인해 지방·사립·전문대는 지원자가 감소하고 있는 반면, 서울의 4년제 대학은 해마다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학과/전공별로도 안정적인 고소득이 보장되는 법·경영·사범·의대 등은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몰리는 반면, 인문사회계열이나 이공계열은 서울지역에서도 천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편중된 쏠림 현상이 일부 학과와 학교의 미충원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며, 오히려 해마다 대학생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편중지원 현상으로 인해 비인기 학과의 구조조정은 이미 현실이 되었으며, 이는 향후 대학간 통폐합에서 최우선 고려대상이 될 것이다.
정원감축 논리와 마찬가지로 대학간 통폐합을 강요하는 이유도 대학의 ‘경영개선’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늘어나면서 대학들이 ‘장사’하기가 어려워지자 통폐합이나 퇴출을 통해 수를 줄여보겠다는 심산이다. 교육부의 대학설립인가와 통폐합 정책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어떠한 교육철학과 원칙도 없다는 점과 철저하게 시장에 맡겨버린다는 점이다. 과거 무분별하게 대학설립을 인가해줬던 것처럼 이제는 장사가 안 되면 시장에서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대학주체들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대학의 획일화, 독과점화를 심화시켜 대학의 양극화는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대다수 대학들이 무조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기 있는 학과만 남기거나 기업과 손잡고 산학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쓸 것이 뻔하며, 지방의 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한 흡수통합은 독과점을 심화시켜 경쟁은 더욱 심해진다.
한편 실제로 대학의 양적 축소가 의도한 대로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여러 학교의 통합이란 것이 워낙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년 째 말만 오가고 진척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또한 대학정원의 감축 역시 수도권 대학은 정원 감축보다 교원 충원으로 교원확보율을 맞추려 하고, 실제 정원감축은 모집난을 겪고 있는 지방대학들이 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정원감축의 효과보다는 어차피 모집을 못하는 허수(虛數)를 없애는 것일 뿐이다. 교육부는 이걸 정책이랍시고 돈 몇 푼에 협박하듯이 추진하려고 있다. 더욱 우스운 것은 이렇게 국내 대학의 정원은 줄이려 하면서 외국 대학을 유치하여 유학수요를 흡수하겠다며 모순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국립대학의 통합이 왜 필요한지 교육부는 뚜렷한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 특성화, 상호협력,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을 위해서라면 굳이 물리적 통합을 하지 않고도 가능함에도 말이다. 오히려 정원감축과 유사학과 통폐합 등 그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립대학의 진정한 발전을 원한다면 지금처럼 세워만 놓고 손을 떼지 말고, 대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상식적인 수순이다.
또한 ‘대학구조개혁특별법’ 제정을 통한 사학청산 양성화는 비리사학을 끝까지 비호해주려는 교육관료들의 안이한 사태인식이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학들이 ‘자발적으로’ 해산할 것인지는 의문인데, 소수 극단적인 학교법인을 대상으로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으며, 기타 사학들은 부실사학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온갖 편법과 탈법을 동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가 있다. 오히려 퇴출양성화 제도를 계기로 영리법인의 학교설립 허용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교육개방효과로 인해 국내법인이 아닌 경우 영리법인도 국내에 대학설립이 가능해진다면 형평성을 문제 삼아 국내 학교법인도 동등한 대우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비리사학부터 시장에서 퇴출시키되 영리법인으로 전환하여 다시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비리사학의 근절이 아니라 비리사학의 양성화라고 할 수 있다.


대학자율화는 구조조정을 위한 미끼

돈 몇 푼으로 대학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교육부는 구조조정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전략으로 대학자율화를 미끼로 내걸었다. 이는 전형적인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사학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줌으로써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완화시켜보려는 속셈인 동시에 사학의 ‘합리적 경영’을 보장해주려는 심산이다. 현재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지나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간섭과 통제보다는 대학본부와 이사회의 독단적 행정이 대학주체들의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립대학 분규가 대학내부에서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교육부에 견제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슬픈 현실 아닌가. 정부의 간섭과 통제는 대학의 전횡과 횡포를 막기 위한 차악(次惡)이었던 것이다. 대학주체들에 의한 민주적 의사결정의 경험이 전무한 이 척박한 토양에서 섣불리 대학에 자율권을 쥐어주면 대학의 독단적 행정과 전횡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


교육정책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

현재의 대학을 그대로 두고 교육과 학문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육부의 방식은 대학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 것이다. 대학을 무조건 도태시키고 통폐합을 강제하여 양적인 축소를 꾀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방대학의 붕괴와 수도권 대학의 비대화를 초래하여 위계서열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방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산업계의 수요에 철저하게 부응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교육은 돈벌이의 수단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또한 한낱 산업계가 요구하는 인력을 배출하는 기능을 수행해서도 안 된다. 대학에 경제계의 요구를 반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걷어내는 것이 대학개혁의 출발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학에 대한 관점은 명확하다. 따라서 교육계의 반대를 예상하고도 김진표라는 인물을 기용한 것이다. 사실 정부의 교육정책은 경제정책 아래 종속되어 교육부장관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새로운 정책의 수립보다는 이미 신자유주의 기조가 잡힌 교육정책의 강력한 추진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운동진영의 요구는 김진표의 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기조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한/노/정/연

2005-0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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