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현중 어용노조 타도
민주노조 결성 추진위원회 (2)
정병모 / 조선소 노동자
강연회는 책으로만 알던 노동법에 대한 얘기를 책을 직접 쓴
사람이 와서 이야기를 하니 새로웠지만 별다른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강의는 내게 별로였다.
아마 내 마음 탓이었는지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강의가 끝나니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진다. 주로
노동조합설립에 관련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는데 한 번에 해답을
내놓기도 어려운 지루한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봤을 때 따로 만나서 차분히 풀어가야 할 얘기였는데,
사회자가 다행히 기지를 발휘해 따로 이야기하자는 것으로 겨우
정리되었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에 관련한 얘기도 쏟아져 나왔다. 한 젊은
노동자가 발언 기회를 얻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7월21일
만든 노조는 어용노조가 분명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이어서 그는 어용노조퇴진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싶다는 차분한
설명에 좌중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속한 팀을 일명 ‘평강교회’팀이라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노동조합을 준비해오던 현장 팀 중 하나였고, 주로
사무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노사협의회위원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뒤이어 다른 노동자는 서명운동을 할 때가 아니라 뒤집어엎는
투쟁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을 한다. 눈앞에 놓인 현실을
보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두 가지 시각이 부딪치고
있었다.
사회자가 잠시 고민하더니 강사와 상의를 하더니 안내 방송을
한다.
현대중공업에서 오신 사람들은 따로 모여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면서 소 강의실로 모이라는 얘기를 한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다. 그 자리에 더 이상 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 당장
쫓아갔다.
대략 70~80명은 되었다.
내가 이리저리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강의장에서 이어지던 지루한 토론이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토론회는 이미 끝이 나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뒤집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한사람은
조성훈씨였다.
오늘 낮에 우리가 준비했던 거사가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주장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사람들이 행동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또한 어렵고 힘든 투쟁을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일을 치르기에는 누구라도 너무 부담이 컸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서명운동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백만 인의 서명이니 뭐니 하며 관변단체 등의
서명에 쉽게 적응해온 탓인지 서명운동이 그리 낯설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오늘 결론은 서명운동을
하는 것으로 했다. 일단 내일 하루 동안 서명운동해서 취합을
하고 그 결과를 갖고서 회사측과 협상을 하고, 그 다음에는
협상결과에 따라서 우리의 대응 방법도 세우기로 했다.
다음은 서명운동의 원본이다. 뜻을 왜곡 시키지 않기 위해
그대로 전문을 적습니다.
우리의 생활터전인 현대중공업을 사랑하는 마음과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발전해야한다는 소박한 우리의 뜻이
굴절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서명에 임한다.
“현대중공업(주) 노조결성” 정말 기다리던 결실이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에 의해 노조 설립은 되어야만 하며
시대의 흐름으로서 누구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 근로자가 노조 설립을 원했지만 막상 선봉이 되어 나서는
것은 재고하면서 “ 누군가가 우리들의 처지를 대변할 인물이
나올 것이다”라고 막연한 생각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설립되었고 ‘어용노조’라는
소문도 확실한 단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 노조위원장 이하 임원들의 과거 경력 등을 기억해 볼
때 결코 전 근로자들의 뜻을 대변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은 결코 개인의 욕심이 없어야 한다.
진정 전 근로자의 노동인권, 후생복지, 근로조건 등 모든
노동문제를 가지고 근로자를 위하여 투쟁할 것을 각오한 순수한
사람이 노조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 노조임원들은 전 근로자 대다수가 불심임하는 바
노조신고필증이 교부되는 즉시 퇴진할 것이며 현중 노조임원은
노조원들 손에 의한 직접 비밀 투표에 의해서 선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1987. 7 . 24.
어용노조 퇴진 서명운동
각 사업부별로 생산부별로 서명용지를 나누어 가지고
헤어졌다.
난 지원부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지원부분의 서명운동을
책임지기로 했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에게도 몇 장을 나누어 주고 서명을 부탁했고, 알음알음으로
알던 사람에게 찾아가 서명을 부탁했더니 자기가 나서서 서명을
받아주겠다고 할 정도로 현장 반응은 뜨거웠다. 점심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갖고 간 서명용지에 서명을 마쳤다.
퇴근 후 만나기로 한 지금은 없어진 사내 운동장 한쪽에서
서명운동을 한 결과를 취합했는데 3,125명의서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나중에 집계된 것을 합하면 4,200명 정도였다.) 대다수
현장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가져간 서명용지를 보고
두려워하기는커녕 자기들이 들고 다니며 하는 바람에
서명운동작업을 아주 쉽게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서명운동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된
셈이라 움츠렸던 마음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서명 작업을 주도한 사람들과 간단한 회의를 했다.
시간도 별로 많지 않았고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에 있은 서명 작업 결과만으로도 회사와 협상을 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결론이 났다.
회사측에 정식 면담을 요구했다. 우리의 면담요구는 어찌된
영문인지 쉽게 받아들여져 회사측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우리들 중에 노사협의회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회사가 현장의 돌아가는 여론의 흐름과
우리들이 낮 동안 했던 서명운동의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그랬는지 난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는 우리와의 만남을 정식만남이 아니라
비공식만남으로 하고자 했기 때문에 중역급도 참석하지 않았고,
인사과를 책임지고 있는 서문화씨가 대표격으로 왔고 나머지
한두 명이 보조역으로 왔다.
지금은 노동조합 조선분소로 사용하고 있는, 그 당시에는
근로자고충상담소로 사용하던 곳에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제일 먼저 회사에게 우리의 실체를 인정하고 어용노조를
퇴진시키라고 요구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형편없었다. 우리는
7월21일 이후부터 있었던 일부터 오늘 낮에 잠깐 벌인
어용노조퇴진 서명운동의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것이 현장
전체의 여론이라고 생각한다고 뜻도 전했다. 그런데도 회사가
전체 노동자들의 뜻을 무시하고 그대로 어용노조를 인정하려
한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우리의 각오도 전했다.
회사의 얘기는 이랬다.
"여러분의 대표성도 인정하기 어렵고, 또 노사 문제는 회사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누구를 물러가라고 할 수 없다.
노동조합문제에 회사가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기에 우리가 나설
수 없다. 우리가 공연히 나서서 얘기를 해서 노노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으니 당사자끼리 모여서 해결점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두 그룹의
면담을 주선해 줄 수는 있다. 우리도 하루빨리 노노 갈등이
해소되어 정상으로 노사관계를 갖고 싶다."
한 시간 이상을 얘기했지만 회사측의 느물거리는 말투를 되받아
칠,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그 자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우리끼리 회의를 했는데 회사가 주장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지만, 회사의 주장처럼 어용노조의
대표들과 만나서 담판을 갖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뚜렷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2차 모임에서 해답을 찾아야 했다.
서명 작업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결과를 설명하고 회사측의
반응에 따라 여러 가지 대응방법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7월 26일 울산 성당에서 2차 모임을 갖기로
약속해두었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의 대안을 찾아야 했다.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어용노조를 쫓아내다
이날 7월 25일. 현대자동차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다.
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로 자동차에서도 어용노조가 만들어졌는데
그 핵심에는 금속노련 이진우가 있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노조를 결성하기 위해
준비해오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현대엔진 노조 결성 이후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이진우를 노조결성대회에 참석시키려
했으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어 결성대회를 수
일째 치르지 못했다.
(현대중공업과 사정이 비슷했다. 지금은 사문화되어 필요 없지만
그 당시에는 노조결성 이후 연맹의 인준증을 받아야 노조설립을
할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연맹의 간부가 노조결성대회를
참관해서 지켜보는 것이, 노조결성이 외부의 간섭 없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증명을 하기 쉽도록 연맹간부의 참관이 필수였다고
생각했음.)
연맹 이진우를 기다리다 지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7월 24일
저녁 노조결성을 하려 했으나, 이 사정을 알고 있던 이진우가
현대자동차 회사측에 알려 한발 빠르게 7월 24일 오후 3시 30분
울산 시청 부근 향촌식당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4시 30분 시청에
신고를 하였다.
이튿날 7월 25일 어용노조 집행부 30여명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본관식당에서 노조결성보고대회를 갖기 위해 현수막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분노가 폭발했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어용노조라는 것을 알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한 노동자가 "어용노조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몸싸움을 벌였다.
이를 지켜보던 많은 노동자들이 가세하여 몸싸움을 벌여서 결국
이들을 쫓아냈다.
1,200여명으로 불어난 노동자들이 어깨동무와 스크럼을 짜고
본관 앞을 출발해 대형→소형→주 단조→제 2공장→공작생산부를
돌면서 시위를 벌이자 시위대는 불어났고 공장은 마비되었다.
오후 3시 15분경. 5~6,000으로 불어난 노동자들이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크와 앰프를 확보하여 농성을
계속하였다.
오후 4시 35분경 전체공장의 작업이 중단된 가운데 파업농성을
계속하면서 임시총회를 열어 민주노조 위원장으로 이상범을
선출하였다.
파업농성 중에 자연스럽게 수많은 구호가 나왔는데 ‘한국노총
해체하라’ ‘어용노조위원장 정성규는 사퇴하라’ ‘유급휴가
실시하라’ ‘임금인상 실시하라’ ‘콘베어 속도 늦춰라’ 등의
구호에 노동자들의 속내가 드러나 있다.
이에 놀란 회사는 야간조에게 비상연락망을 통해 휴무를
통고했고 정문에 공고도 붙였다.
본관에서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은 야간조와 합치기 위해
정문으로 이동해 정문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농성 소식을 들은
현대엔진 노조간부와 미포조선 노조간부가 농성장을 찾아와
민주노조를 위해 투쟁하는 현자노동자들에게 격려를 보내는
농성장은 연대의 기운이 넘치면서 활기에 넘쳤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어용노조 퇴진문제를 포함한 협상에서
회사가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자 순조롭게 진행되던 농성이 오후
10시경, 몇몇 분노한 노동자들에 의해 유리창 몇 장이 깨지고
회사 중역의 승용차를 뒤집어버리는 불상사도 생겼다.
밤 11시경 본관 앞에서 농성을 계속하던 3,000명의 노동자들의
"부사장 나와라"는 항의에 부사장이 마지못해 나왔는데 "노조는
노동자들의 문제이니 당신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자동차는 계속
만들어야 한다. 만들면서 노조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
노동자들의 염장을 지르다 노동자들에게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협상에는 현대자동차 이상범씨와 현대엔진 위원장, 현대
미포조선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는데 긴 시간 협상
끝에 다음날 0시 20분에 합의서를 겨우 작성했다. 합의 내용의
큰 골자는 이렇다.
* 회사는 임원진의 사퇴를 종용하고 민주노조를 인정한다.
* 현 집행부의 신분을 보장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 회사는 어용노조의 사퇴를 받아낸다.
* 오늘 근무 시간을 인정한다.
* 1개월 내에 총회를 소집하여 임원을 민주적으로
재선출한다.
합의서를 받아낸 민주노조 진영은 기다리고 있던 노동자에게
합의내용을 설명하고 회사측이 약속을 어기면 7월 29일부터
시작되는 휴가를 거부하고 투쟁하자고 제안하고 농성을 마쳤다.
하지만 회사는 어용집행부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몇 차례
협상이 결렬되는 우여곡절 끝에 7월 28일 04시에
어용노조집행부의 사퇴서를 받아내면서 마무리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