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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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현장에서 미래를  제119호
정희석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꽃이 피어났다.
내가 일하는 일터는 서울 시내에 있음에도 조경이 잘 되어 숲이 우거져 있다. 이런 면에서는 근무환경이 좋은 편이다. 이런 환경 덕에 매년 봄의 점심시간, 또는 잠시 휴식 시간동안의 산책은 일상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주곤 한다.
올 봄, 일터의 숲에는 개나리와 산수유가 가장 먼저 꽃을 피웠다. 그리고 목련이 이들을 이어가고 있다.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걸으며 또는 잠시 걸음을 멈춰 바라보는 봄꽃은 아름답고, 대견스럽기까지도 하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조직 또는 공동체의 성격을 손쉽게 나타내고자 상징을 정하여 표현하곤 한다. 그 상징은 살아있는 생명체인 경우가 있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도 다양한 상징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중 한 가지가 목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터에는 어떤 나무보다도 목련이 많다.

목련이 이 직장의 상징으로써 지정된 심오한(?) 이유는 홈페이지와 기타 매체를 통해 홍보되고 있다. 그렇게 밝힌 근거 중 하나가 ‘목련은 어떤 꽃보다 일찍 피어 선구자적 표상을 나타낸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해 ‘목련이 1등 하듯 우리도 1등 하자!’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일터의 상징인 목련이 올해는 개나리와 산수유보다도 늦게 피어 어떤 꽃보다 일찍 피는 선구자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러한 올 봄의 “3등 목련”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세상을 해석하다보니, 세상살이 즐거움을 잊게 된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하게끔 했다.

꽃은 나름의 때가 되면 피어난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일 게다.
꽃이 가장 먼저 피든, 가장 늦게 피든 그건 꽃이란 본연의 모습과는 결단코 무관하다. 사람의 가치판단에선 1등을 못해 올 봄의 선구자가 되지 못한, 그 목련은 그저 따뜻한 봄이 찾아온 순리에 따라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개화(開花)의 순서와 상관없이 아름답기만 하고, 착하기만 하다.
하지만 꽃을 자신의 상징으로 소유하려는 사람의 욕심은 개화(開花)시기까지도 경쟁이란 게임의 룰을 통해 바라보고, 이를 순수한 진리인양 합리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1등 목련”이라는 경쟁에 입각한 해석을 부여했던 그는 올봄의 “3등 목련”을 보며 마음 편히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을까? 어쩌면 목련을 제친 개나리와 산수유의 아름다움을 애써 외면하며 또 한 번의 자기 합리화를 감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자연을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느끼며 이해할 때 우리와 그 대상이 함께 행복하다.
그러므로 ‘경쟁질서 속에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체념해버린 겨울 같은 세상을 이웃의 인격 본래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한, 봄날 같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계속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연의 일부인 우리도 인간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더불어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감을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이다.
꽃 보며, 좋은 사람들과의 술 한 잔 생각난다.(2006.4.14)

2006-05-10 00: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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