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노동운동!
현장통신 1
조 돈 희(현대중공업 전진하는 노동자회 대외협력국장)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은 어느덧 하나의 이념으로
자리잡혀 가며 나름의 ‘성과’를 남기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비판 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 노조운동(노동운동) 내부에서 지금까지
그만한 다른 대안으로 다수를 이끄는 대중적 지도자가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중적 장악력이 있는
그러한 지도력을 존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정치에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적 노동운동을 비판하기 보다는 이
글에서는 필자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필자의 주장은 제목에서 표현되듯이 ‘노동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노동운동’으로 압축하고 있으며, 새삼스레(?) 현장조직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남한 현장조직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현시기 현장조직운동의 새로운 위상과 역할’에 대한 과제를
제출하면서 이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1. 현장조직운동의 역사 (87년 이후)
1) 소단위 투사그룹
소단위 투사그룹은 주로 87년에서 90년 사이 계급운동의
상승기에 태동했다. 공장 점거투쟁과 상경투쟁 등은 파업투쟁
전술 속에서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선진 노동자들의
세분화된 소단위 투사그룹들을 필요로 했다. 여기에 해고자,
병역특례 등 특정 사안과 관련된 투쟁조직이 등장했다. 선진
노동자들은 전공장 조직인 선봉대, 선동대, 정당방위대, 규찰대
등의 전투조직 형태로 편제되었는데, 이러한 조직들은
선진노동자 조직운동의 토대가 된다.
한편 선진 노동자들은 전투적인 조합원들을 묶어 분과,
부서동지회와 특성에 맞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 조직은
민주노조를 강화하는 역할과 함께 자본측의 공격으로부터
민주노조가 위기에 처할 때는 비대위 등과 같은 체계에
결합하였다. 또한 노조 집행부가 어용이거나 민주 집행부가 배신
할 때 새로운 지도부로 등장하거나 실질적인 대중의 지도부로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지도하고 이끌었다. 이들 조직은 해당
투쟁이 마무리되면 일상적 조직형태로 전환되었다.
2) 동맹적 성격의 선진노동자 투쟁조직[선진노동자 투쟁동맹]
대공장에선 현대중공업의 ‘현노투(현대중공업 노동자
투쟁위원회)’가 동맹적 성격을 갖는 조직으로 93년에
출범했다(이 조직은 현중 ‘전진하는 노동자회’의 회원으로
존재하며 조직적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자가 소속된
조직이다.).
‘현노투’는 92년 6대 집행부 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촉발된
‘직권조인 반대투쟁’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전투파’와
‘변혁적 선진노동자’들이 독자적인 조직으로 결집하게 되었다.
‘현노투’는 기존의 현중 ‘노민추’가 더이상 정치적 통일성과
행동조직으로서 역할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판단하에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소 거칠지만 ‘소수 정예화’를 표방하며 별도로
조직되었다.
‘현노투’는 ‘노동해방’ 정신에 입각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현장 조합원들에게 정력적으로 선전․선동함과 동시에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해서도 독자적 활동력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협력관계’를 표방했다. 또한 93년 임투 때에는
투쟁전술을 대중적으로 제출하여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판을 통해 대중투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했다. ‘현노투’는 대공장의 특성상 비합, 비공개적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적용하자면 비합, 반공개적인
형태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조직은 선진노동자 조직운동의 정치성을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운동이 전반적으로 수세적인 상황에서 조직되었기
때문에 대중적 영향력은 크지 못했다. 그리고 지배권력의 집중적
탄압으로 조직활동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그럼에도 이들 조직은 이후 등장하는 현장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3) 노민추(노조민주화 추진위원회)
① 노민추의 등장 배경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전국적 관점에서 상승기 운동을
주도했던 지역은 인천, 구로, 마창지역 이었다. 이들 지역은
대개 중소공장과 중견 대공장이 밀집해 있어서 처음부터
연대투쟁의 정신이 실천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전노협을 결성했던 핵심 사업장들만 보더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선진노동자들이 민주노조와 지역 선봉대
등의 형태로 결합되어 상승기의 노동운동을 주도해 갔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지도부가 대량 구속되는 사태를 맞기는 했지만
민주노조가 아닌 어용이나 실리주의적 세력이 집행부를 장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공장에서도 폭발적인 투쟁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배권력의
집중적인 탄압과 집요한 개입으로 자주적 조직운동은 중소
공장보다 오히려 더디게 나타났다. 대부분 한 두차례의 크고
작은 투쟁을 바탕으로 투쟁적인 활동가가 집행부에 당선되거나
노민추 전 단계의 선진노동자조직이 후보를 추대하여 민주노조를
출범시켰지만 오래 가지 않아 투쟁회피주의로 돌아서 버렸다.
이러한 양태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대우조선
등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집행부 대부분이
직권조인이나 투쟁포기로 노동대중의 분노를 샀다. 이러한 경우
노민추(또는 민노추)들은 직접 파업지도부를 꾸려 투쟁지도부를
대신하거나 불신임투쟁을 전개하는 등의 투쟁을 전개했다.
‘노민추’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차적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투쟁적인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선진노동자들이
전 공장 차원으로 결집한 조직이다.
대공장 선진노동자 조직운동에서 노민추의 등장은 계급운동의
정세적 측면과 주체적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지배권력은
대량구속과 해고, 협박과 매수, 테러 등을 이용하여 민주노조
집행부와 선진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투쟁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은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노민추’는 공장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지배권력의
탄압으로 와해된 지도력을 복원하기 위해 선거를 통해
민주노조로 출범한 집행부가 조합원을 배신하여 새로운
투쟁구심이 필요할 때, 기회주의자들이 장악한 노동조합을
민주노조로 대체하기 위해 그동안 소규모로 각개약진 했던 선진
노동자들이 전 공장 차원의 단일조직으로 등장한 것이다.
② 노민추의 주요역할
가. 투쟁 조직화 및 결합
노민추(또는 노민추의 전단계조직)는 임단투 시기엔 대중투쟁을
활성화시키고 어용노조나 중간노조를 견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일상적 시기엔 민주파 대의원 등을 통해 현장투쟁을
조직하고자 했다. 또한 지역이나 전국적으로 큰 투쟁이 있을 때
연대투쟁의 주체로 활동했다. 특히 노조 위원장의 직권조인이나
지도부가 투쟁을 회피하려고 할 때 ‘비대위’ 등을 결성하여
계급투쟁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냈다.
나. 대중 선전․선동 - 이데올로기투쟁
‘노민추’의 역할 중 이데올로기 투쟁을 빼 놓을 수 없다.
전투적 민주노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현장 조합원들에게 선전,
선동했다. 전국적 계급투쟁에 대한 연대정신을 노민추의
이름으로 받아 안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켰다. 지배권력의
탄압책동을 규탄함과 동시에 노동해방 정신을 옹호하고
사수하고자 했다.
다. 선거시기 민주노조 후보추대와 민주노조 옹립
‘노민추’는 기간 활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노조임원 선거시기
선거체계로 전환하여 후보를 추대한다. 소속 후보들의 정책을
통일시키고 민주노조의 당위성을 비롯해 해고자 복직 등 핵심
요구사항의 쟁점들에 대해 선전, 선동 투쟁을 전개했다.
개인적 명망성이나 자질에 의존하지 않고 ‘노민추’란 조직적
활동을 통해 검증된 주체를 후보로 집단적으로 옹립했다. 대부분
한 두 차례 민주노조에 대한 좌절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집행부를 장악하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한 결과이다.
③ 민주노조 등장 이후 노민추의 역할
대부분의 대공장에서 91년을 기점으로 민주노조가 정착되어
갔다. 노민추 활동가 일부는 노조 집행부에 결합했다.
‘노민추’는 핵심 지도역략들이 노동조합 집행부로 대거
이동하면서 해체되거나, 남아 있더라도 노민추 자체의 전 공장
단일조직의 형태로 집중적 활동력을 전개하진 못하고 현장
조합원의 상승된 열기를 바탕으로 부서별, 분과별 현장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현대중공업 노민추는 92년 초 노조 임원선거에 독자후보를
내세웠으나 이원건 후보에게 패하고 만다. 후보추대 직전
’독자후보론과‘ 이원건과의 ‘연합론’으로 나뉘었지만 결국
독자후보로 귀결되었다. 선거 패배로 노민추는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으나 이원건의 직권조인으로 노민추 활동가들은
침체에서 벗어나 직권조인 무효화 투쟁의 주체로 등장한다.
④ 노민추활동에 대한 간략한 평가
‘노민추’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지켜내고 노동해방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지배권력의 탄압에맞서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했고 실천활동으로 위상을 담보해 냈던 점은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선진노동자조직으로서 대중투쟁을
조직하고 대중투쟁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노력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노민추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현장투쟁을 조직하여
현장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했던 점이나, 현장 조합원들이
투쟁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창출하고자했던 점 역시
노민추의 주요 사업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노민추가 대중투쟁을 촉발시키고 대중투쟁의 중심에 선
경우도 있었지만, 투쟁 전술을 불신임 투쟁 등 ‘노조민주화’로
몰고가 - 자본에 요구되는 대중의 요구가 아닌 - 조합원의
투쟁동력을 떨어 뜨리거나 조합원에 대한 지도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었다. 직권조인이나 집행부의 투쟁회피에 대해 조합원
대중들은 초기에는 폭발적인 분노를 표출하지만 투쟁중간에
‘불신임’ 이나 ‘총선거’ 등이 주요한 투쟁사안으로 변형되어
오히려 투쟁의 동력을 집중시켜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노민추란 명칭에 걸맞게 계급간의 모든 문제를
노동조합이라는 합법적 제도권 체계에서만 해결하고자 했던
정세적 측면을 반영한 단위사업장 노조운동의 발전과정과
조건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
⑤ 노민추의 소멸
첫째, 노민추는 민주노조가 들어서면서 활동을 사실상 멈추었다.
노민추는 정치적 상징성에 비해 일상적 현장활동과 현장투쟁을
전 공장 차원으로 집중시켜 조직 전체와 개별 주체들의 활동을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데 실패했다. 이는 민주노조가 들어선
이후 민주노조와의 관계정립에도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노민추가 주요하게 제기해 왔던 정치적 지도력이 민주노조
집행부로 이동했지만, 현장 단위의 활동이 통일적인 형태로
집중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노민추 소속 활동가들은 이후
고립적인 현장활동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노민추 활동가들이 민주노조(집행부)를 세워놓고
노민추와의 관계를 고민한 흔적은 있지만 뚜렷한 관계정립을
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는 지난 노민추 활동의 조직적 한계
때문이었다.
둘째, 노민추의 정치적 분화이다.
막상 민주노조가 들어섰지만 예전에 민주노조가 수행했던
투쟁조직으로서의 역할은 많은 부분 제약당했다. 민주노조
운동은 다양한 정치적 입장으로 분화되었고 임단투 기조나
투쟁전술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대립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노민추에 소속되었던 활동가들 역시 투쟁전술울 둘러싸고 정치적
입장이 분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노민추는 더이상 정치적 통일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지도력 또한 발휘하지 못하고 만다. 현대중공업 ‘현노투’의
독자적인 조직화 과정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2. ‘노민추’. 노동조합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장 노동대중과
함께 계급간 바리케이트를 분명히 치자!
1) 현장 선진노동자 조직
① 현장조직의 등장 배경
노민추가 그랬듯이 현장조직도 주․객관적인 조건으로부터
등장했다. 계급운동의 주요한 대립전선이었던 전투적 파업투쟁과
전국적 연대를 민주노조운동이 안정화되고 체제내적인 형태로
정착되면서 현장조직이 더이상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
선진노동자들은 또다른 획기적인 민주노조의 위상이 아니라
독자적인 조직화의 기조를 가지고 노민추 이후 전 공장
단일조직으로 등장했다. 더불어 지배권력의 정책도 노동조합
상층운동의 체제내화와 노동력 착취강화에 맞추어지면서 공격의
화살을 현장으로 집중해 왔다.
선진노동자들은 노민추 이후 정치적 입장에 따라 소규모로
각개약진 하거나 고립적인 현장활동에 집중했다. 92~93년을
경과하면서 민주노조의 지도력은 민주노조라는 상징성만 빼면
예전의 투쟁조직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했고
점차로 협상조직으로 그 역할이 축소되어 갔다.
임․단투는 대중적 염원임에도 불구하고 상층중심의
교섭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현장은 선진활동가들의 열성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고립분산적 활동으로는 자본의 치밀한
공격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현장의 힘이 잘려나가는 것과
비례해 노동조합의 투쟁적 지도력도 삭감되었고 더불어 선진
노동자들의 대중적 지도력이나 실천력도 위협당했다.
현장 노동자 조직은 크고 작은 현장투쟁의 경험과 이를 집중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으로부터 제기되었다. 울산을 중심으로
현장조직 활동의 양상을 보면, 현대 자동차는 이영복 집행부
하에서 선진 노동자들의 독자적 실천활동이 현장투쟁의 조직화를
통해서 수렴되었다. 그러던 중 양봉수열사의 분신투쟁을 계기로
현재의 ‘민투위(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가 조직되었다.
현대중공업은 94년 파업이후 현장을 노골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자본의 공격을 분쇄하기 위해 지금의 ‘전노회(전진하는
노동자회)’로 결집했다. - 현중내의 현장조직은 전투적
민주파의 총 결집체인 ‘전노회’를 근간으로 최근에(97년3월)
출범한 ‘현노회’(현장조직 발전을 위한 실천하는 노동자회),
‘새노정’(새로운 노조정착)이 이름을 바꾼
‘노동자회’(노동자를위한 동지들의 자주적인 노동자회),
‘노민전’(노동자 민주전선)등 전 공장적 차원의 크고 작은
조직이 나름대로의 정책을 내세우며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현대정공(울산)도 선진노동자들의 현장 부서동지회 조직활동
체계를 ‘부서 동지회 연합’이란 전 공장 단일조직 체계로
총결집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조직 운동의 추세는 울산 뿐만 아니라 이제 대공장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② 현장조직의 위상과 역할
가. 현장투쟁의 조직화와 집중화를 통한 현장권력 쟁취
현장조직의 제1의 목표는 ‘현장조직력, 투쟁력 강화’ 이다.
이것이 없으면 힘있게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임단투
과정에서 적극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일상적 현장활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임단투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장 조합원, 현장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자신감을 심어주고
현장의 직접적 사안을 중심으로 현장투쟁을 주도해 들어가야
한다. 자본의 공격에 맞서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현장을 노동계급이 통제할 수 있도록 창발적인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울산에서 현장 조직력이 제일 강하다는 현대정공의 비결은
무엇보다 일상적 현장투쟁 - 특히 산업안전,
맨아워투쟁(UHP-콤베어속도-상승저지투쟁) - 이 활성화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노민추 시절 선진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일상활동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수없이 많은 현장작업장과
거기서 제기되는 현장사안, 그리고 진행되는 현장투쟁을
현장조직 전체로 집중화시키고 조직적인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 공장 차원에서 진행되는 투쟁상황을 모든
노동자들이 공유할 수 있고 투쟁의 연쇄적 효과를 촉발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현장조직은 일상적 행동조직 체계로
운영되어야 한다.
현장 선진노동자 조직은 자체의 조직을 강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투쟁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현장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현장단위의 각종
소단위 대중적 조직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현장 조합원이
자신감을 갖고 투쟁성이 복원되어야만 현장 선진노동자 조직의
현장활동도 원할하게 추진될 수 있다. 현장 조합원이 직접
주체가되어 조직활동의 경험을 살려냄으로서 일상적 현장투쟁을
조직하고 강화시킬 수 있다.
투쟁은 선진노동자를 배출할 것이고 그들이 다시 현장
선진노동자 조직의 주체로 활동하게 될때 현장 선진노동자조직의
지도력도 강화된다.
나. 현장조직 간의 전국적 연대 및 계급투쟁에 직․간접적
결합
울산지역은 현장조직간의 연대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95년 말
현대자동차 ‘민투위’와 현중 ‘전노회’의 교류를 시작으로
현재는 현대정공의 ‘동지회연합’과 남구지역의 현장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 현재는 남구지역의 조건을 고려하여
남구지역은 최근 현장조직의 재 조직화를 위해 잠시 빠져있고
현중, 자동차, 정공이 주체가 되어 집행력 강화를 위해
집행체계를 정비하여 제2기 ‘현장조직 대표자회의’를 운영
중에 있다 - 현재의 상황에선 강력한 연대 투쟁체라고 보긴
힘들지만 공동의 실천사업을 통해 그렇게 되도록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현장조직의 연대모임은 노조운동,
나아가서는 노동운동을 선진노동자 중심의 건강한 지도력과
대중적 힘을 바탕으로 견인 지도해 나갈 것이다.
현장조직이 전투적 활동가들의 전국적 구심체로서 역할을
함으로서 계급전선의 한 축을 형성해야 한다. 그럴 때
현장조직이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부각할 수 있다.
다. 정치선동을 통한 계급전선의 강화와 이데올로기 투쟁
지배권력의 착취강화 이데올로기, 지배권력의 노동운동 체제내화
정책, 우리 운동 내의 개량주의와 맞서 노동해방 정신에 입각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담보해야 한다. 또한 계급적 사안 - 지난
노개위 등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는 국민적 합의주의, 노동계급의
완전한 행동권, 비공인파업금지, 경제위기의 노동자 책임론 등 -
에 즉각적인 대응 전선을 쳐야한다.
현장조직의 주요한 임무와 역할 중에서 현장 조합원과 현장
노동자들이 현장투쟁과 대중투쟁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구조와 계기를 만들어 냄으로써 직접 민주주의와 나아가
노동자 만주주의 정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계급의식의 향상은
노동대중이 일상적 투쟁을 통해 스스로 체득하고 훈련될 때
가능해 진다.
일상투쟁을 바탕으로 한 정치교육과 토론회 등을 활성화시켜
현장 조합원들이 일회적 투쟁참여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자기
조직화로 진전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③ 민주노조와 관계
가. 현장조직의 독자적 활동력 강화를 전제로 한 비판적
협력관계
현장조직과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필자는 ‘비판적
협력관계’라고 표현, 규정하고자 한다. 노조가 올바로
행동한다면 지지하고 협조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현장조직은
독립적 활동을 통해 비판과 견제를 수행하겠다는 의미이다.
노민추와 민주노조와의 관계를 비교하면 한단계 발전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장조직이 독자적 실천활동을 통해
현장지도력을 강화시킬 때 실질적으로 가능 하다.
지난 몇 년간 현장조직은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판적 협력관계’ 나
‘독립성’이 부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된다.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임단투와
노개투에서 전국의 현장조직들은 그런 역할들을 수행하기도 했고
부분적으론 노동조합 집행부를 강제하기도 했다.
현재 현장조직들의 한계는 물론 극복되어야 한다. 어려운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불가능 한 것도 아니고, 하다가 안되면 중단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 노조 제도권을 적극 활용하자(대․소위원 체계 및
임단투시기 쟁위대책위 체계에 적극 결합)
현장조직과 민주노조는 현장조직력 강화를 위한 현장
일상활동이라는 사업적 내용으로 결합해야 한다. 현장조직
활동가가 민주노조에 다수 포진 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대․소워원이라는 공식적 지위를 통해 노동조합 사업과
현장활동 사업을 내용적으로 결합해 들어가고 현장투쟁이 부서나
분과별로 진행될 경우 이를 전 공장 차원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협조해야 할 것이다. 임단투시기 현장조직 활동가가
쟁대위체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투쟁동력과 열기를 모아내는
작업을 추동하는 등 정책적 결합력을 높여내는 것에서도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설정 할수 있다.
현장조직이 대․소위원 다수를 장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대․소위원의 기본적 임무가
현장조직력을 활성화 시키기 위한 활동이란 점을 각인하고 이를
현장조합원이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모범적 사례들을
집단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만이 대․소위원의
기본적 임무를 망각하거나 활동을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인
활동을 유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④ 방향과 과제
가. 실천활동을 통한 현장조직의 검증구조와 책임성 강화
현장 활동가는 조합원들에 의해 직접 투표로 선출되지 않았지만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검증 받는다. 평 조합원들은 여전히
현장조직 활동가들에 대한 기대와 바램을 갖고 있다.
평조합원들은 조직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활동력에 따라
현장조직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보내고 현장조직 활동가들이
추진하는 현장투쟁 등 현장 일상활동에 자신감을 갖고 결합할 수
있다.(평조합원이 조직을 불신하고 조직 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그간의 조직들이 선거에만 집중하거나 조합원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사업에는 적극적이지 않았기 대문이다.)
현장조직의 평조합원에 대한 책임성 강화는 그만큼 현장조직의
왕성한 실천력을 전제로 했을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를 현장조직에서 담보하지 못한다면 현장조직은 선진노동자
조직으로서 기본임무를 수행 할 수 없다. 현장조직의 평
조합원들에 대한 책임성 강화는 현장조직이 내걸었던
‘현장조직력, 투쟁력강화’ ‘현장권력쟁취’ 란 슬로건을 현실
속에서 풀어 낼 때 쟁취할 수 있다
나. 특히 대공장에서 현재 활동중인 현장조직의 집행력과 지도력
강화
현장조직 활동가들은 ‘현장조직력 강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내
걸었지만 여전히 조직원 전체의 강고한 행동통일을 집행하고
있진 못하다. 현장 활동에 대한 현장조직 전체의 체계적인
계획이나 집행력이 부족한 상태다. 그리고 집행위나 운영위(또는
중앙위) 등을 통해 결의된 내용들이 통일적으로 실천되고 있지
못하고 현장 활동가들의 처한 조건에 따라 편차를 보이고
있다.
현장조직의 조직적 통일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전술이나 정책에
대한 정치적 토론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또한 구조적인 체계를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현장 책임성을 바탕으로
현장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앙집중과 분과단위의
자율성이 적절하게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전술이나
정책개발등은 사실 현장투쟁 경험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평가를
통해서 풍부하게 제출될 수 있을 것이다.
다. 실천활동을 통한 현장조직의 정치성 통일
현장조직은 큰 틀거리로 ‘현장권력 쟁취와 연대’라는 정치적
입장을 재출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거나 정치적 문제들에
직면해선 여러 가지 차이를 보이면서 상호 공존하고 있다.
현장조직간 또는 단위 현장조직 내부에서는 다양한 투쟁속에서
정치적 입장차이를 보이며 대립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활동가 간의 의식의 불균등성이 아직 존재함을 의미한다.
특히 대중조직이라는 조건 속에서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차이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정치
토론회나 정치교육 등 다양하게 제출 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실천행동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다수파가 되기 위해 분파주의들이 판친다면 현장조직의 정치적
통일성은 고사하고 조직적 존립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다.
실천을 통한 상호 조직화와 검증과정을 통해 현장조직의 정치적
통일성을 한차원 높혀내고 이를 계기로 보다 질적 통일성을 갖는
조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존재했던 정파적
질서의 개념은 이후 현장사안과 관련된 전술제출등의 활동으로
건강한 다․소수파가 형성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의 판단기준은 노동대중과 호흡하며 운동할 수
있는, 자본과 첨예한 대립지점이 형성되는 노동현장에서
‘현장권력 쟁취와 연대’에 충실 한다면 비관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노동 형제들에게 힘을.....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