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지난 10월 26일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 21’
결성대회에서 발표된 권영길 후보의 연설내용이다. 당일 실제로
연설되었던 내용에는 국가보안법의 철폐, 노동자․민중의
사회적 정치적 제권리 등 주요한 언급들이 있었다. 그 내용이
포함된 자료를 게재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못해 원래 준비되었던
연설문을 싣는다.
자료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연설문
국민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창조의 땀을 흘리고 있는 천만
노동 형제들! 동지들!
오늘이 며칠입니까? 자칭 ‘불행한 군인’이라던 군사독재자의
‘불행’이 끝난 날입니다. ‘불행한 군인’을 ‘불행’에서
구원해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권력욕에 사로잡혀 80년 민주주의
봄을 사장시킨 양김씨입니까? 정보부장으로, 법관으로
군사독재에 일조하던 사람입니까? 군사독재자의 환상에 기대어
군사독재 잔당의 대선후보가 되려했던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20년 군사독재를 끝장낸 사람은 나어린 YH
노동자들입니다.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다 목숨까지 빼앗겨야
했던 우리 노동자입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YH 노동자들이
군사독재를 끝장낸 것처럼, 국민의 밥줄마저 위협하는
재벌독재를 끝장냅시다. 짧디 짧았던 80년 봄이 아니라, 영원한
민주주의 봄을 꽃피웁시다!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지난 두 달이 까마득히 느껴지기만
합니다. 저는 지난 8월 18일, 여러분들이 제게 부여한 소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분골쇄신의 자세로 임하겠다는 소신를
밝혔었습니다. 제 미력한 힘이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언제나
국민의 목소리가 제 곁을 떠나지 않았고, 단 한시도 동지들의
명령을 잊은 적 없음, 자부합니다. 동지들이 제게, 대선출마라는
분에 넘치는 일을 맡긴 것은 썩은 세상을 뒤집어 엎고, 상식과
순리가 통하는 세상, 양심을 지키며 살려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자로 손가락질 받지 않는 세상, 햇살이 대지를 비추듯 만인에게
인간적 삶이 주어지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앞서 나가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동지들의 고귀한 뜻을 세상에 전하고자, 펄펄 끓는 쇳물이
넘쳐흐르는 공장, 기계가 멈추고 노동자들이 떠난 적막한
사업장, 좌판 아주머니들의 활기찬 목소리로 가득찬 시장 골목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귀중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제가 세상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어지간히 알고 있고, 우리의 사상과 정책을 펴는 데는 결단과
실천만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부딪히는 국민들의 눈길에는 우리가 짐작해온 것보다
더 커다란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에는
생활 속에서 익힌 지혜가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전국순회를
처음 나설 때 저는 오지를 찾는 선교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순회 결과를 동지들에게 보고드리는 이 자리의 저는
지혜로운 국민의 충직한 학생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기필코 승리하리라는
것,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필연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우리의 이상을 지지할 뿐 아니라,
우리보다 더 풍부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들 곁을
떠나지 않는한 국민은 결코 우리를 등지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과 미래상에 대한 제 소신을 간략히 밝혀볼까 합니다.
이 역시 국민 여러분의 지혜에서 빌어온 것임을 고백합니다.
사업을 하는 제 친구들은, 요즘 돈을 굴리는 최고의 방법은
집안에 가만히 모셔두는 것이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섣불리
사업에 뛰어들었다가는 가산마저 탕진하고 길바닥에 나앉기
십상이라고들 합니다. 우리 국민은 너무 억울하고 불안합니다.
어찌 이룬 경제인데, 한꺼번에 망쳐버린다 말입니까? 누가 쌓은
탑인데, 제 마음대로 뒤흔든다 말입니까? 우리 노동자들이, 우리
국민들이 잔업이며 철야며를 가리지 않고 삼십여 년을 고생해
이룬 경제입니다. 외국빚까지 끌어다 땅투기나 해대는 재벌이나,
비자금 조성을 취미 삼고 공금횡령을 장기 삼는 보수정객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룬 것도 아니고, 망칠 자격도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땀을 지킵시다. 저, 권영길은 우리가 만든
공장과 회사를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업을,
제 식솔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재벌이 사라지지 않고는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수백만 톤짜리 유조선부터 조미료까지 모두 만들어대는 전문성
없는 재벌이 우리 경제를 지배하는 한 부실과 붕괴는 시간
문제일 따름입니다. 저, 권영길은 국민의 혈세와 정부 특혜로
성장해온 재벌을, 너무 살쪄 제 몸도 주체하지 못하는 재벌을
과감히 해체하고, 국민이 소유와 경영에 참여하는 전문화된 국민
대기업, 새로운 경제 상황에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전화 발전시켜 가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기아자동차 문제에 대한 제 견해를 피력할까
합니다. 도대체 재정경제원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마음에 안
드는 회사를 망쳐 마음에 드는 회사에 넘겨 주는 것입니까?
수많은 부도회사 중 유독 기아자동차 만을 마구잡이로
법정관리에 넘기는 것은, 강경식씨가 한 때 삼성의 녹을 먹었기
때문입니까? “기아노조 파업 강경진압”이라니요? 언제부터
경제부총리가 전경 부대장을 겸직하게 되었습니까? 강경식씨는
경제파탄의 책임을 지고 당장 물러나야 합니다. 기아자동차의
자구 노력을 방해해 온 정부는 지금이라도 각성하고, 화의를
수용해야 합니다. 저는 이미 기아자동차 문제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대화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를 제가
직접 나서 조정 중재하겠다고 밝혔었습니다. 이 제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모든 이해 당사자가 합리적인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재차 촉구합니다. 며칠 전 삼미특수강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어린아이를 업은 젊은 여자분들이 제 손을 부여잡고 울부짖으며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살려달라!”, “가족을
구해달라!” 삼미특수강노조는 포항제철의 정리해고에 반대하여
‘아사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족생계를 염려하여 굶어죽을
각오로 투쟁에 나선 가장과 가장을 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는 가족. 저 또한 그 쪼글쪼글한 손들을 맞잡고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이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 준 자 누구입니까? 쫓겨나 굶어 죽으나, 회사에서
굶어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이들에게 시커먼 불행의 그림자를
안겨준 자들은 인간 생명이 경각에 달한 순간마저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일년 동안 ‘명예퇴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쫓겨난
사람은 10대 그룹에서만 1,299명에 이르고, 전체 기업에서는
8,200여 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금년 들어서는 그나마
‘명예퇴직’이라는 제도마저 사라진 채 무자비한 정리해고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1월부터 7월 사이에만 6,763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되어 일자리에서 내쫓겨야 했습니다. 6,763명의 가정이
경제적 수입원을 잃고 앞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어린아이들도, 일자리가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정도는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와 재벌은
‘산업역군’이니 무어니 하며 치켜세우던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매몰차게 내치고 있습니다.
‘세계화’니, ‘국제관례’니 하고 떠들어대지만, 제가 알고
있는 세계화와 국제관례는 정리해고가 아닙니다. 세계화가
됐다는 선진국에서는 종신고용제를 실시하거나 엄격한 해고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일자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침해받을 수 없는 국민의 최소권리입니다. 저, 권영길은
정리해고제도를 완전 철폐하고, 고용안정특별법을 제정하여
전국민의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겠습니다. 기업환경이 변화되는
어떤 경우라도 고용이 승계되도록 하겠습니다.
일자리를 포함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
예를 들어 교육 주택 의료나 최저생계비를 나라가 보장해주는
것이 현대사회의 철칙입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나, 갑자기 병이 걸려 큰돈이 들어갈 때 국가가 그것을
보조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국가를
복지국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OECD 가입국, GNP 세계
9위’라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수준은 낯뜨거울 지경입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회복지 수준이 조사대상 90개국
중 52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예산은 아프리카에
있는 튀니지나, 스리랑카같은 후진국에도 미치지 못하는 10%
이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국민승리 21과 저는
사회복지 예산을 2002년까지 현재의 두 배인 20%로 증액하여,
국민 기본생활을 보장하겠습니다. 호화스런 생활은 아닐지라도,
모든 국민이 생계 걱정없이 도란거리며 살아갈 정도의
복지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어떤 토론회에서 “그 많은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고 나름대로의 재정조달
방법을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돈을 모아오는 방식으로 사회복지 예산을 확충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현 정부는 20%가 넘는 국방비나 안기부 예산 따위는
‘경직성 경비’라는 이름을 붙여 미리 떼어낸 후에 나머지를
가지고 여기저기에 나누어 쓰고 있습니다. 왜,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사회복지비를 우선 배정하지 않고, 한 대에
몇백억 원이나 한다는 외제 비행기를 사오는 데 돈을 낭비한다
말입니까. 이것은 국가 지도자의 철학 문제입니다. 저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급한지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을 계획입니다. 국민 생활을 실제 개선하는 곳에 모든 힘을
쏟아 붓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가 꿈꾸는 세상은
별다르고 특별난 것이 아닙니다. 공중전화에 백 원짜리를 집어
넣고, 억울해 발길질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꾸어 봅시다.
자기가 만든 물건을 자기가 가지고 쓰는 세상을 꿈꾸어 봅시다.
그러나 이처럼 소박하고 상식적인 소망이 허황된 망상으로
치부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분들의 면면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국민이
원하는 것을 풀어줄 것같지 않습니다. 허구한 날 ‘국민’을
입에 올리지만, 실제로는 어느 누구 하나 국민을 위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정리해고를 인정하고,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인 사회복지를
도외시하는 국가 지도자가 국민을 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요즘 한창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비자금 사태’를 지켜보며,
저는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아니, 참으로 암담하고 참담할
뿐입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유행하던 공작정치를 되살려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작태! “나만 먹었냐, 네가 더 크게 먹지
않았냐” 하는 뻔뻔한 변명! “대선국면이니 조사할 수 없다”는
국민 기만! 이것이 21세기를 삼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과 자식들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 우리 국민이 안쓰러울 뿐입니다. 김대중씨를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은 궁색한 변명을 접고, 정치자금 내역을 낱낱이
공개해야 합니다. 정치적 야합을 통해 진실을 덮어버리고 이번
대선을 치룬다면, 후진 정치가 사회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장래를 망치는 현실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모든 대선후보들이 참가하는 ‘정치자금 공개 및 도덕성
검증 토론회’가 입후보 전에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누구에게서 언제 얼마를 받았는지,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를
숨김없이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대선에 쓰일
자금 계획을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최종심판자로서의 국민권리를 찾아주는 길입니다. 만약, 이런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국민의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경고합니다. 또한, 특별검사제를
통해 끝까지 추적하여 진상을 밝힐 것을 국민 앞에
약속드립니다.
다른 후보들이, 비록 거짓일지언정 약간씩의 정치자금을
공개하는 와중에도 수십억원이 넘었다는 경선 자금에
묵묵부답하는 후보가 있습니다. 내세울 것이 그리 없는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키가 작다는 사실을 자신의 최대 장점으로
강조하는 이 사람에 대해 몇 마디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라고 말합니다.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언제부터 세대교체를 주장했습니까?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하여도 김영삼 대통령의 비밀 지원을 얻어 집권당의 후보가 되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지 않았습니까? 형식적 민주주의도 지키지
못하는 당신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수 있습니까? 저는
단언합니다. 당신은 3김씨에 기대어 일신의 안위를 이어온
출세주의자일 뿐입니다. 당신은 유치원생도 지키는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한 민주주의의 파괴자입니다. 당신은 3김과 함께
물러나야 하는 3김의 사생아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들
사이에도 정권 교체에 대한 강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동지들이
적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정권 교체의 유의미성을
저 역시 인정하며,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지 여러분, DJP 연합에 의한 정권 교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지난 노동법 총파업 당시
우리는 DJP 연합의 진면목을 남김없이 보지 않았습니까?
조건없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북녘 동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현
정부보다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이 누구입니까?
동지 여러분들이 진실로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저에게 힘을
몰아 주십시오. 그 힘을 가지고 제가 진정한 민주적 정권 교체를
반드시 이루어내겠습니다. 정권교체도 중요하고, 세대교체도
중요합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초유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재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젊은 두뇌가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있는 자들의 돈을 받아 정치를
하는 부패 보수정치인 사이에서 권력이 오가는 것은,
전두환씨에게서 노태우씨에게로 권력이 넘어가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변화일 뿐입니다. 늙은 사람에게서 젊은 사람에게로 사회의
중심이 옮겨가는 것은 구태여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만고불변의
자연 법칙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 절실한 것은 무엇입니까?
굶주리고 있는 북녘 동포!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들! 차갑게 식은
셋방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눈을 감아야 하는 노인들!
저는 이런 현실을 단 한순간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는 모든
불합리를 거부합니다. 저는 어떠한 부정의와도 타협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급박하고, 진정 절실한 것은 보수 정객
중 한 사람이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수
정객들 사이의 권력 놀음이나 재벌 사이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개혁할 새 정치세력을 필요로합니다.
그리고 그 씨앗을 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정리해고된 것이 뻔한 가장이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모르는 척 배웅해주는 아내와 자식들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세상.
일등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학교 옥상에서 투신하는
열여섯 소녀가 없는 세상. 친구들이 도시락을 꺼내 놓을 때,
운동장 한 구석으로 슬그머니 숨어드는 결식 아동이 없는 세상.
말하고픈 것을 맘껏 말하고, 누릴 것을 당연히 누리는 참 세상은
누가 만들어야 합니까? ‘양심’, ‘거부’, ‘저항’,
‘의거’, ‘혁명’과 같은, 역사 교과서 속의 자랑스런
문귀들을 창조해온 우리 국민입니다. 스스로의 손으로 역사를
일구고, 또다시 이곳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바로 여러분
뿐입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우리는 오백명에서 시작했습니다. 채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조직을 열 배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와 진정한 국민승리에 헌신하기로
결의한 동지들이 십만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세계 어느 정치
집단도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이처럼 눈부신 성장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언제나 초과 달성했고, 국민
앞에 한 약속을 빠짐없이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맙시다.
우리의 다음 목표, 우리의 다음 약속이 무엇이었던가를!
우리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약속은 국민승리 21의 집권,
대한민국 최초의 진보정권 건설 뿐입니다! 한 달이 남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 합니까? 붓을 들기 전 종이
구석구석을 찬찬이 살피는 서예가의 마음입니다. 새벽 안개를
뚫고 전장에 나아가는 병사의 마음입니다. 후보등록까지 꼭 서른
하루가 남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모래와 시멘트가 합쳐져 탄탄한 콘크리트가 되는 것처럼
일치단결하여 조직을 강화합시다. 마른 땅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국민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듭시다. 전태일! 윤상원! 이름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이들! 우리 선열들의 피맺힌 이름을, 무명을
목놓아 불러 봅니다. 저는 그 분들의 유훈 앞에 설 때마다
부끄러움에 몸을 떨게 됩니다. 그 숭고한 정신을 따르지 못하는
인간 권영길의 불철저함이 너무도 원망스럽습니다. 앞서 간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국민승리 21이 됩시다. 태어날 후손들의
자랑이 될 국민승리 21이 됩시다. 제 몸에 숨결이 붙어 있는한
권영길의 투쟁은 멈추지 않습니다. 국민의 97%를 차지하는
봉급생활자들의 희망을 가꾸기 위해 나선 권영길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고자 일생을 던지기로 결심한
권영길입니다! 저와 동지들의 힘찬 발걸음으로 오욕과 굴종의
오십 년 역사를 청산합시다. 우리는 승리를 향해 한발 한발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한번 이깁니다. 단 한번! 위대한
승리의 족적을 남길 것입니다. 전진합시다! 승리합시다!
1997년 10월 26일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 21」 대선후보
권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