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의 ‘신일본적 경영’과
민주적 규제
- 현장․지역에서의 새로운 변화와 도요타 총행동 -
기획번역
도요타의 ‘신일본적 경영’과 민주적 규제
사사키 쇼죠(佐佐木昭三) / 노동자교육협회 상임이사
이 글에서는 다국적 기업 도요타자동차가 전개하고 있는 최근의
‘신일본적’ 경영전략과 그것으로 인해 크게 변한 직장 실태와
노동자 투쟁 및 도요타에 대한 민주적 규제운동으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요타 총행동’에 대해 소개한다.
도요타의 고수익과 그 내용
도요타자동차는 97년 5월 21일, 1997년 3월 기결산을 발표했다.
매상고는 전기 대비 14.4% 증가한 9조1,047억엔, 경영수익은
전기 대비 82.1% 증가한 6,204억1,200만엔이다. 경영이익은 과거
3차례 경험한 고수준으로 일본기업에서 9년 연속 1위이다.
본업의 이익을 보여주는 영업이익은 전기대비 2.2배 증가한
5,170억5,800만엔이다. 마찬가지로 관련된 자회사 230개사(국내
123, 해외 108)와 특별주식분배법 적용회사 59개사(국내 43,
해외 18)를 포함한 연결결산도 매상고가 전기에 비해 14.2%
증가한 12조2,438억엔으로, 83년 연결결산 개시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경영이익은 68.3%증가한 7,082억9,900만엔,
당기이익은 50.2% 증가한 3,859억1,500만엔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 고수익의 요인은 우선, 엔저(円低)로 이 기간의 환율이 평균
1달러=112엔으로 전기에 비해 엔화 시세가 16엔 낮아져, 약
2,400억엔의 이익이 증가하였고, 이것이 영업수익을 대폭적으로
끌어 올렸다. 도요타에서는 엔화시세가 1엔 낮아지면 150억엔의
이익을 보고, 1엔의 엔고는 100억엔의 손해로 된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하청․지역주민을 희생으로 한
구조조정에 의한 ‘합리화’로 약 1,100억엔의 ‘합리화’
효과가 수익폭을 확대했다.
「97 아이치(愛知) 빅토리맵(Victory Map)」으로 본
도요타의 고수익
엔저와 구조조정을 통한 ‘합리화’를 요인으로 한 도요타
고수익의 실태를, 본인도 편집에 관여하고 있는 「97
아이치 빅토리맵」에서 보면, 그 내용이 분명해 진다.
내부유보는 4조4,692억8,100만엔이고, 그 중 별도의
임의적립금만 3조4,580억엔으로 초우량경영이다. 노동자 1인 당
내부유보액은 6,511만엔에 달하고, 전노련, 춘투공투의 임금인상
요구기준인 3만 5,000엔(일시금은 6개월)을 수용한다 해도 그에
의해 잠식되는 비율은 불과 0.97%밖에 되지 않는다.
또 대기업․대자산가에 대한 다양한 세금우대조치에 의해
도요타가 감면받고 있는 세금만도 법인세 2,737억 6,000만엔,
법인사업세 963억6,000만엔, 법인주민세 566억7,000만엔으로
도합 4,267억9,000만엔에 이른다.
여기서 도요타 경영자의 연간수입을 보면 회장인
도요타(豊田章一郞) 씨는 5억6,597만엔으로 이것은 도요타
노동자 평균임금(36세, 년수입 767만엔)의 73.8배에 달한다.
도요타 임원 8인의 연수입도 합계 12억5,928만엔으로 1인 평균
1억5,741만엔의 고액소득이다.
이전의 1달러=80엔에서도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구조조정에
의한 ‘합리화’, 비용절감, 원가절감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해
왔던 노동자와 관련 하청기업 및 하청업자의 고통과는 반대로
엔저와 ‘합리화’에 의해 도요타는 막대한 고수익을 얻었다.
또 빅토리맵에서도 인원감축의 실태를 조사했지만, 도요타는
아이치에서 상당한 인원감축을 해왔다. 93년부터 96년까지 매년
감축된 인원을 보면, 93년~94년 1,473명, 94~95년 1,825명,
95~96년 1,107명 도합 4,405명(90년부터는 6,619명)으로
아이치현에서 인원을 감축시킨 기업 가운데 단연 톱이다(2위는
브라더 판매의 2,081명).
도요타의 「비전 2005」와 21세기 전략
인원감축을 대규모로 추진했던 93년부터 해외진출과
역수입(逆輸入)이 증대했다. 도요타는 세계 24개국 34개
공장에서 생산을 하고 있다. 도요타는 95년
‘일미자동차구조협의’에 근거하여 북미에서의
생산․판매확대와, 아시아를 중요한 대상으로 한
‘신국제경영계획(신국제비지니스플랜)’을 발표했다. 그 결과
북미와 아시아에서의 해외생산 속도가 빨라졌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93년 3월부터 “다카오카공장은 부품공장으로
되는가?”(주력 카로라는 북미와 캐나다의 현지생산으로 이행)는
말이 나왔다.
또 도요타는 ‘국제경쟁력을 갖고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전차종별, 전부품별 비용절감과 원가절감을 집요하게 반복하여
행하고 있다. 자동차는 평균 20%, 부품은 40%의 비용을 삭감하려
하고 있다. 이것을 받아들인 도요타 그룹은 하청에 10%의
비용절감을 강요했다. 하청은 이 3년 사이 24%의 단가를
절감했다. 그것 때문에 하청수익이 악화되고, 경영이 곤란해져
전업이나 폐업이 계속되었다.
도요타는 경영단체연합의 「기업행동헌장」
개정(96년 12월)을 받아들여, 92년의 기본이념을
「개정」<자료1 참조>하고, 그것을 염두에 둔
「비전 2005」, 「하모니어스
그로스(조화로운 전체)」를 발표했다.
<자료 1> 도요타 기본이념
(1) 내외의 법 및 그 정신을 준수하고, 기업공개로 공명정대한
기업활동 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시민이
된다.
(2) 각국, 각지역의 문화․관습을 존중하고, 지역에 근거한
기업활동을 통해 경제․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
(3) 깨끗하고 안전한 상품의 공급을 사명으로, 모든 기업활동을
살기 좋은 지구와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에 몰두한다.
(4) 다양한 분야에서의 최첨단 기술의 연구와 개발에 노력하고,
세계의 다양한 요청에 부응한 매력있는 상품․서비스를
제공한다.
(5) 노사 상호신뢰와 책임을 기본으로 개인의 창조력과 팀웍을
강화하여 최대한 높은 기업풍토를 만든다.
(6) 글로벌한 혁신적 경영으로 사회와 조화로운 성장을
이룬다.
(7) 열려있는 거래관계를 기본으로 상호연구와 창조에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과 공존공영을 실현한다.
(97년 4월 1일 개정)
이것은 도요타가 다국적기업으로서 국제경쟁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생산거점의 해외이전, 세계 최적지
생산․조달, 해외부품조달의 확대, 역수입의 확대,
국내생산분산화, 복합(다각)경영의 추진 등으로 산업공동화를
추진한다는 것으로, 노동자와 하청, 지역주민, 도민에게 말할 수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도요타 오쿠다(奧田) 사장의 ‘97년 연두교시(기간직
사외비)’와 ‘97년도 회사방침’ ‘노무 뉴스’를 보면 잘
나타나 있는데, ‘신국제경영계획’을 포함해서, ‘상품기획력의
강화’ ‘기술개발력의 핵심강화’ ‘국내 시장점유율의 만회’
‘해외진출의 속도강화’ ‘신규사업의 개발․육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것을 「도요타의
구조개혁」이라고 하고 있다.
이 「구조개혁」에서는 도요타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올해부터 10년을 ‘제2의 창업기’로 선언하고, “이
10년이 도요타가 21세기에도 성장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하는 기로”라고 하면서 종업원에게 다음을 요구하고 있다.
첫째 ‘국제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행동해서 사업을
지구규모’로 성장시키자, 둘째 ‘개개인이 창조성을 발휘해서
일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현상을 타파’ 하자, 셋째
‘경영환경의 격변에 민첩하게 행동하고, 변화의 조짐을
기민하게 관찰하여 재빠르게 대응’ 하자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대규모의 ‘조직개혁’과 ‘신인사제도’를
추진했다. 또한 도요타의 세계전략 수행을 위해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키’고자 ‘기업내 교육’을 중시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국내생산 300만대 + α로 국내에서 250만대를
확보(96년의 생산대수는 341만대)하고, 국내판매 점유율을
40%(96년 39.7%)로 하여 나머지를 수출분(96년 127만대)으로
세계 글로벌 10(자동차생산․판매에서 세계의 10%,
600만대)을 목표로 한다’ 그러기 위해 ‘해외생산으로 확대한
부분은 해외생산에서 조달한다’는 것이었다.
도요타는 이 21세기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연합도요타노조와
96년 1월 「신노사선언」을 체결했다. 이것은
62년에 맺은 「노사공동선언」을 재평가하고,
도요타의 21세기 전략을 노사 일심동체로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아이치현 경제의 공동화(空洞化)와 도요타
중부통산국(동해 3현과 후지산, 이시카와현)의 광공업생산지수를
보면, 제조업에서 자동차관련 비율은 약 25%이고, 자동차관련
부품생산을 하고 있는 철강, 기계, 전기, 플라스틱 등을
포함하면 ‘자동차’ 비중은 대단히 높아 아이치현에서는
초특화되어 있다. 또 도요타 그룹은 중부전기 전체의 전력계약
중 7%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방가스의 공업용 가스는 40%로
에너지 점유비율도 굉장히 높다. 일본은행의 경제관측에서도
도요타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방자치체의 세금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큰데,
아이치현 세무과에 의하면 법인사업세는 96년도 예산 3,554억엔
가운데 도요타 관련 10개사가 17.6%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
영향이 대단히 크다고 말한다.
아이치현 상공금융과에 의하면 91년과 94년을 비교해 볼 때,
도요타자동차의 생산대수는 수출의 감소와 해외생산의 증대로
100만대 감소했는데 이것이 공업제조의 부가가치를
1조3,000억엔(12조7,000억엔에서 11조4,000억엔으로 하락)
감소시킨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 수치는 하나의 업종이
사라진(섬유는 8,000억엔) 것과 맞먹을 정도의 심각한 것으로
산업이 공동화되어 고용과 하청, 관련기업의 경영악화,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심각해지고 있는 도요타 노동자의 직장실태
현장의 노동자는 구조조정 ‘합리화’로 수입이 대폭 감소되고,
임금이 억제되어 힘든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다카오카공장의
카로라 라인에서는 생산조정 때문에 연속2교대제가 1조
주간근무로만 되어 잔업도 거의 없어졌다. 교대근무수당,
심야할증수당, 잔업수당이 감소되어 10만~20만엔의 수입이
줄었고, 이러한 상태는 2년째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급료명세서는 기준임금과 아주 약간의 잔업뿐인
벌거숭이 임금이다”, “자녀도 18세로 되어 가족수당도
중단되었다”, “매월 5~6만엔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매월 저금을 찾아서 생활한다”, “아내도 마침내
파트타임으로 되었다” “아내는 아이치현이나 나고야시의
직원으로 함께 일하고 있지만 총지급액이 내 것을 상회한다”,
“일본 제일의 이익이 노동자와는 무관하다”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생산부문에서 32년 동안 계속되어온 주야2교대가
95년 5월부터 일제히 변경되어, 모든 회사가 연속2교대 근무제로
되었다.<자료 2> 이 제도의 도입으로 2만6,000명이 새로운
근무에 들어갔고, 도요타는 심야할증수당을 대폭 감소할 수 있게
되어 연간 48억엔을 ‘절약’했다.
<자료 2> 도요타 자동차의 연속2교대제(95년 5월 실시)
노동자는 졸음이 못 견디게 몰려오는 ‘마(魔)의 시간대(오전
3시부터 6시)’ 근무가 없어져 심야․잔업수당이
감소되었고, 신체리듬과 가정, 지역에서의 생활이 어지러워졌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건강․가정․지역생활의 파괴라는
새로운 고통과 곤란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노동자 자신은 물론
아내와 가족의 희생으로 연결되고 있다.
2조(늦은 조)의 작업은 원래 오전 1시에 종료되지만, 2~3월에는
아이치현 화재의 영향을 만회하고, 소비세 대책과 연말의 바쁜
생산으로 1~1.5시간의 잔업이 계속됐었다. 게다가 휴일인
토요일까지 출근 ― 2조 출근을 위해 일요일은 잠을 자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휴일은 없다 ― 하게되어 심각한 영향이
나타났다. 2~2시 30분에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면 3~4시가
된다. 그 때부터 목욕이나 식사 때문에 아내는 반드시 일어나
있어야 한다. 밤을 새야만 아침식사를 준비할 수 있고,
수면시간이 줄어들어 불규칙하게 되었다. 그래서 몸이 좋지
않다고 호소하는 부인들이 많다. 노동자도 장시간 노동과 밤늦은
식사, 수면을 위한 음주 때문에 건강이 안 좋다고 호소하고
있다. 2년에 걸친 연속2교대 근무로 몸이 그전보다 훨씬
나빠졌다는 노동자가 매우 많아 졌다. 또 1조(아침 조)는 오전
6시 30분에 라인이 개시되기 때문에 6시에는 회사에
나가있어야만 한다. 집이 직장에서 좀 떨어져 있으면 5시에
출발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부인이
식사를 준비하려면 3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왜 이렇게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건강을 위해서도, 아내나 가정, 또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서도 연속2교대 근무는 견딜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노동자의 ‘유동화’도 격심하다. 다품종소량생산으로 기민하게
변한 생산계획 때문에 바쁜 라인에 대한 지원, 배치전환, 출향
슛코우(出向)란 일정기간 일시적으로 다른 기업에 파견하는 것을
의미한다.(역자 주)
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노동자는 수입이 감소되었기
때문에 지원수당(8만엔),
심야수당․잔업수당(8만~10만엔)이 들어오는 바쁜
라인으로 지원 가거나 배치전환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도요타의 생산방식은 ‘수입감소를 지렛대’로, 변동하는
생산계획에 노동자를 대응시켜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인간
간판방식’으로, 노동자를 언제 어느 곳으로도 ‘유동화’해서
활용하고 있다.
금년 4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기능직계(생산현장)
신인사제도에서는 직제의 조장에게 모순이 집중되고 있다.
‘조직 키우기’(고참기술자를 크게 묶어 줄인다)로
5,247명(95년)이던 조장 중에 50세 이상은 거의 SX(고참숙련가,
부하 없는 조장)로 되어, 고된 라인에 투입되었다. 지금까지
책상에서 하는 일이 주였기 때문에 과밀한 생산라인에서
작업하는 것이 여간 고통이 클 뿐 아니라 그들의 자부심도 크게
손상되고 있다. 부하가 있는 새로운 조장은 GL(그룹 리더)이라고
부르는 35~40세의 젊은 중진이다. 그들은 노동기준량과 성적을
올리기 위해 ― 이것이 임금과 승진, 승격에 반영된다 ― 극히
의욕적으로 그룹을 끌고 나간다. 여기에 들어가게 되는 SX는
GL의 지시하에 되지도 않는 라인 작업을 젊은 노동자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따라가야만 한다. 게다가 SX는 주요라인이 아니라
부차적인 라인이나 일인(一人)직장에 배치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오늘날의 도요타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핵심적으로
일해왔던 3,000명에 가까운 ‘부하 없는 조장’ SX(노조임원
중심이었던)를 인원감축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현재
SX는 이러한 도요타의 방식에 대해 “회사가 싫다”, “우리를
뭐로 생각하는 것이냐”, “회사도 가혹하지만 도요타노동조합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도 「워킹 프로그램」에서는 직제는 55세가
정년이지만 60세까지 라인에서 일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노력으로 건강과 육체를 유지’시키자고 말하고 있어서 ‘체력과
기력면에서 힘들어’진 중고령층 노동자는 생산라인에서 일하지
못하고, 직장을 사직해야 할 상황이 되고 있다.
93년 연말 일시금 감액저지투쟁에서 시작된 현장의 새로운
변화
도요타의 구조조정 ‘합리화’는 현장 노동자의 엄청난 희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도요타 노동자는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은 93년 연말 일시금 감액반대투쟁에서부터
현저히 나타났다.
93년 춘투에서 연말 일시금은 연간협정으로 결정되었었다.
그런데 도요타는 기업의 수익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을에 0.1개월치의 감액을 제안했다. 이것은 도요타에서
20억엔, 도요타 그룹에서는 40억엔으로 합계 60억엔을
노동자로부터 탈취해서 회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도요타의 투쟁적인 노동자는 즉각 “이것은 수입이 감소되어
고통스러운 생활실태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노사가 이미 협정한
것을 파기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인정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연합도요타노조에 조합원으로서 ‘감액절대반대’를
끈질기게 제기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노동자의 ‘감액절대반대’
요구가 확산되도록 활동을 넓혀 나갔다. 또 애노련(愛勞連),
지역노련 등이 중심이 되어 노동기준국, 노동기준감독서,
자치체, 상공회의소, 도요타 등에 이의를 제기하고 지역에서
선전행동을 전개하는 등 공동투쟁을 확대해 나갔다. 그 때문에
매스컴도 ‘도요타의 방법은 문제가 있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와 사회적 여론에 의해
도요타 노조는 ‘감액절대반대’의 입장에서 현장 서명운동과
집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노동자는 “거짓말쟁이는
도둑놈의 출발이다”, “(이것이)세계의 도요타가 보여주는
것인가”, “나도 허락하지 않지만 엄마는 더욱 분노하고
있다”, “약속한 것은 지켜라!”고 외쳤다. 결국 압도적인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와 사회적 여론에 밀려 도요타는 감액제안을
철회했다.
20억엔의 감소가 불가능해지자 도요타는 다음해인 94년 춘투에서
도요타노조에 최대한 자숙하는 춘투를 요구했다. 그에 대해
현장에서부터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요구를 결정하는
평의원회에서는 만장일치가 무너져 반대 26표, 유보 8표가
공공연히 나와 이례적인 결과가 발생했다. 그것도 본사나
동경본사 화이트칼라에서부터 일어난 반란이었다. 또,
현장집회나 블럭집회에서도 “자숙요구는 비정상적이다”는
목소리가 확산되었다.
93년 연말 일시금 감액철회와 94년 자숙춘투요구에 대한 반란은
도요타의 민주적 규제를 추구해온 도요타 총행동에 대한 기대와
연대로 이어져, 도요타 노동자의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95년 연말 ‘일시금 감소저지’와
96년 도요타 오쿠다 사장의 ‘임금인상 동결거부’
일경련은 96년 춘투에서 ‘임금인상 동결’ 방침을 결정했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차의 오쿠다 사장은 같은 날 “일본에서 1,
2위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가 임금인상을 하지 않는다면
경제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 문제가 있어서 임금인상 동결은
곤란하다”고 부정했다.
그 배경에는 93년 ‘연말 일시금 감액제안’에 대해 감액을
단념시키고, 94년 ‘춘투자숙요구를 인정하지 않았던’ 흐름이
착실히 확대되어 왔던 사실이 있다. 도요타는 95년에 춘투에서
결정되었던 연말 일시금을 재차 감액하고자 했었다. 노동자의
재빠른 운동과 지역공투로 “이 정도로 크게 변화한
‘합리화’에 협력해왔는데 일시금만 왜 감소되는가”,
“연간협정에서 결정된 것을 또 감소하겠다는 의도인가”,
“도대체 회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며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대됐었다. 도요타가 제안을 철회한 요인은 바로 현장
노동자의 “감액을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에 있었다.
그러나 한편 이것은 ‘신국제경영계획’(북미에서의 현지생산
확대와 미국의 자동차 부품수입 확대)과 도요타의 21세기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구조조정(산업공동화, 고용유동화, 종신고용 다시
생각하기, 능력․업적반영형 임금으로 전환하기 위한
철저한 인사․조직개혁)에 노동자를 협력시키고자 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즉, 노사일체를 강화하는 ‘신노사선언’에
노동자를 끼워넣고, 국내 시장점유율 40%를 확보하기 위해 차를
바꾸거나 신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로부터 “소비를 저하시켜
불황을 지속시키는 것이 도요타다”라는 사회적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다.
97년 춘투 - 8만엔의 위로금 지급과 100엔 인상된 9,400엔
타결
금년 1월 7일 도요타는 사장의 연두교시에서 전사원 7만명에게
‘창립60주년 협력위로금’으로 평균 8만엔을 지불한다고 했다.
60억엔 가까운 ‘특별 임시보너스’였다.
도요타는 왜 노조와의 협정에도 없는 위로금을 지불했는가.
그것은 그 동안 발전해온 현장운동과 지역공투, 특히 96년 12월
혼다(本田)가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성취하기 위해 분발해온
사원에게 보답”하기 위해 평균 7만엔을 지급한 사실
때문이었다. 투쟁적인 노동자의 “도요타의 거대한 이익을
노동자와 하청․지역으로 환원하라”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커지고, “(노동자를) 구조조정 ‘합리화’에 협력시켜, 혼다
이상의 막대한 이익을 올렸으면서도, 혼다는 7만엔을
지불했는데, 도요타는 그것을 노동자에게 환원하지 않는다”는
목소리에 눌려 내린 결단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그 동안 일시금이 감액되어 왔는데 겨우
그것뿐인가”, “엔저 효과 2,400억 중 60억뿐인가”라는 말이
나왔다. 사실 일시금은 90년의 연간 6.2개월부터 매년 하락하여
현재 5.8개월로 되어 있다. 임금도 자숙요구와 저임금 회답으로
거의 인상되지 않았다. 게다가 연속2교대근무의 도입으로
심야교대수당과 잔업수당이 대폭 감소되었고,
사무․기술계는 재량노동(뉴 타임)으로 무보수 노동이
많아졌다. 임금격차도 능력주의의 철저한 적용으로 부장의 경우
최대 350만엔부터 700만엔까지 차이가 난다. 기술계 직제의 공장
계층은 수입이 월 15~20만엔 감소되었고, 노동자도 8~10만엔이
감소되었다. 그래서 “벌거숭이 임금” “조합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회사는 노동자의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분노가 터져나왔고 이것이 위로금을 주게된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97년 춘투에서 도요타 노사는 회답 직전에 9,300엔으로
채결하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그런데 도요타 사측이 일방적으로
100엔 더 올려주었다. 그러자 도요타노련 위원장은 ‘감동’해서
감격에 가득차 눈물을 흘렸다. 도요타는 노동자의 불만과 분노를
‘눈물만큼의 성의 = 100엔을 보임’으로써 ‘신노사선언’을 한
노조의 체면을 세워준 셈이다.
현장 노동자는 이 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조합원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1만3,000엔이라는 최저 요구액을 마음대로 결정하더니
이제는 그것보다 더 낮은 초저액 타결이라고!,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만족할만한 인상을 이끌어내지는 않고 회계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처음부터 충분한 임금인상을 획득할 생각이
없었다”, “조합은 요구를 제출해서 어떻게 해서든 최대의
액수를 획득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무리를
해가며 일을 한 덕분에 회사는 큰 이익을 올렸는데 이것이 그
대답인가”, “회사는 성의가 없다, 노조집행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조합이 단번에 OK한 태도가 기분 나쁘다, 우리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조합은 모르고 있다”, “100엔
구슬치기 장난은 그만 두라, 매월 5~6만엔이 부족한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사택의 부인들도 “9,000엔
정도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나도 파트타임으로 나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더 올려라”, “9,000엔은 말도
안된다”며 불만에 가득차 있다.
현장의 투쟁적인 노동자는 “조합원은 손해를 보든 보지 않든
노동과 생활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회사의 회답을 간부만의
판단으로 단번에 타결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현장에 내려와서
철저하게 토론하고 최종타결은 전원투표로 해야 한다”는
노동자의 말을 소개하면서 노동조합운동 본래의 모습인 ‘요구를
통해 단결’할 것을 호소했다. 그것은 지금 많은 노동자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초과밀 노동 ‘시간단축요구 거부’와 동요하는 96년
노조대회
96년 춘투에서 임금은 8,700엔밖에 인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노조가 무엇보다 먼저 준비하여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렸던
‘20분 노동시간 단축요구’도 ‘가까운 장래에 노력’한다는
거부의 회답으로 끝났었다. 이것에 대해 노동자의 불만과 반발도
매우 컸다. 이것은 현재의 초과밀노동․장시간노동의
실태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였다.
‘마른수건을 쥐어 짠다’는 도요타의 생산방식은 이제는
‘쥐어짠 수건도 곧 젖기 때문에 또 쥐어짠다’는 것으로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도요타에서는 비디오와 스탑워치로
‘동작분석’을 하여, 철저하게 작업의 ‘여유시간’과
‘낭비’를 없앤 결과 대중차 생산라인의 사이클 타임(1 공정)이
45초로 되어 있다. 이것은 철저하게 일의 낭비를 제거하고,
생리적 한계의 극한까지 노동할 것을 추구하는 초초과밀
노동으로 “화장실 갈 시간도, 물마실 시간도 없는 거의 극한의
상태”이다. 이러한 노동밀도는 주야간 동일하게 8시간
계속되고, 잔업이 있으면 9~10시간까지 이어진다. 필자와 함께
공장견학을 한 독일의 연구자는 “도요타에서는 모두 뛰면서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노동하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그 가혹성에 놀라워했다.
필자가 조사한 라지에타 라인의 사이클 타임은 60초에서 49초로
되었고, 한동작 당 0.8초, 한 공정의 보행거리 25m, 일일
보행회수 450회로 총보행거리는 11.25㎞이다. 핸들매인샤프트
제작공정의 과밀노동 실태는 사이클 타임 44초, 그 사이 동작수
50회, 보행거리 27m, 걷는 시간을 제외한 한 동작 당 시간은
0.5초, 일일 반복회수 700회(이하 잔업 포함)로 총동작수
35,000회, 그 보행거리는 19㎞이다.
이후 핸들매인샤프트의 사이클 타임은 1년 사이에 43.18초에서
41.56초로 되어 극도의 과밀노동으로 되었다. 이것은 작업에
여유가 있었서가 아니라 ‘반보라도 걷는 거리를 단축해서
조금이나마 동작을 축소한다’는 ‘도요타 생산방식’의
수법으로 ‘한계없는 과밀화’를 한 결과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낭비를 제거한 과밀 노동실태는 라지에타 라인이나
핸드매인샤프트 공정만이 아니라 도요타의 모든 생산현장에서
행해지고 있다.
카로라 생산을 감소한 다카오카공장에서는 인원을 1/2로
감소했기 때문에 1인당 노동부담과 행동범위가 넓어져 이전보다
더 과밀해졌다. 생산을 감소해도 노동강도를 강화한다는 것이
바로 ‘도요타 생산방식’이다.
때문에 이 초과밀 노동은 도요타노조의 조사에서도 ‘일하는데
피로를 느낀다’(78.1%),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있다’(78%), ‘일에 충실할 마음이 없다’(63.3%)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재직 중 사망도 5년 사이(88~93년) 290명으로
연간 50~60명이 사망(과로사를 가능한 포함한 것)하였다.
휴직기간 만료자도 40~50명(그 중에 7~8명이 그후 사망)이다.
더욱이 과밀노동은 ‘여유를 빼앗고’ 살아있는 인간의 노동을
0.1초까지 추구해서 노동자의 목숨과 건강을 단축시키고 있다.
따라서 사소해 보이지만 ‘20분 시간단축’은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 그러나 회사는 “NO”라고 답했고, 노조는 별달리
획득할 방법도 없는 상태였다.
현장집회에서는 “춘투타결이 부결되거나, 보류되어야 한다”,
“조합은 노동자의 요구대로 활동하지 않는다”, “이런
조합에는 조합비를 내고싶지 않다”고 말하는 노동자가 많다.
이러한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96년 조합의
정기대회는 크게 동요되었다. 조합간부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어
떠들썩한 대회가 된 것이다. 즉, 저임금 인상의 회답에는
“캐나다로 출장가서 3개월 있었는데 일본의 임금이 세계 제1은
아니다”, “지금 조합원의 생활실태를 집행부는 이해하고
있는가”, “충분한 임금인상을 획득할 수 있는 체제인가”,
“조합으로서 자립성을 보여라”는 등 사무․기술계
대의원으로부터 비판이 잇달아 제기되었다. 시간단축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대규모 집회도 했는데 ‘가까운
장래에 노력’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단축으로
풍요로운 삶’이라더니 어처구니가 없다”, “집행부의 지도성이
문제다”라고 엄중하게 비판하였다. 그 때문에 간부인
에모토(得本) (자동차총련 회장) 씨는 “나의 지도력이
부족했었다”고 이례적으로 자기비판을 하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투쟁적인 노동자에 대한 큰 기대와 문제제기 받는 노동조합
도요타에서는 회사파가 아닌 노동자가 연합도요타노조의 간부가
되기가 매우 어렵다. 임원으로 입후보하기 위해서는 추천인을
50인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추천인으로 이름을 쓰면 회사와
노조로부터 여러가지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에 용기와 결의가
요구된다. 특히 추천인을 얻어 입후보해도 선거활동이 대단히
제한되어 있어서, 도요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름을 새긴
포스터를 붙이고, 입회 연설회에서 연설하는 정도이다. 게다가
연설회는 현장 노동자가 참석할 수 없고 거의 직제=노조임원이
참가한다. 따라서 요구와 정책을 폭넓게 선전하기에는 큰 제한이
있다. 이것에 비해 회사가 지시한 노조추천 임원은 조합기관지를
통해 선전활동을 할 수 있다.
또 비밀투표도 준수되지 않아 직장단위에서 직제=노조임원의
감시하에 아무 것도 없는 테이블에서 기입하고 투표한다.
선거제도도 연기명제로 과반수 득표가 없으면 한 사람도
임원으로 될 수 없다. 개표도 노조와 그들이 추천한 선관위에
의해 비밀개표되는 비공개적이고, 비민주적인 선거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일체의 도요타노조임원이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조사한 노조임원은 공공연하게 “회사의
지시로 임원으로 되었고, 노조활동의 중심은 정당의
선거활동이다. 퇴임후 승진, 승격이 빠른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요구를 통해 단결해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확실히 확대되고 있다. 96년의
노조임원선거는 93년부터 나타났던 거대한 변화를 상징하는
드라마가 몇 차례 있었다. 이전까지는 추천인 50인을 확보하는
것이 필사적인 싸움이었지만 96년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현재 기능계 현장, 그 중에서도 직제(공장, 조장, 반장)는
감소된 수입과 앞으로의 전망 때문에 크게 고통받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는 직제의 꼭대기인 공장(지금까지
조합원)에서부터 추천을 획득하는 움직임을 대규모로 전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노동자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탄압해 왔던
직제가 회사와 조합의 모습에 분노하여 회사파가 아닌
자천후보에게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새롭고도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뒤에서 지지한다”, “끝까지 하라”, “기대하고
있다. 믿는다”고 격려를 하거나, 악수를 하면서 추천인
연서명을 써주는 직제는 “이것은 혈판장(血判狀)이다.”,
“확실히 믿는다”라고 말을 건네는 등, 감동적인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부하 없는 조장’ SX는 전례없이 과밀한
라인작업으로 녹초가 되어, 회사와 노조에 대한 비판을 공공연히
하며 기대와 공감을 표하고 있다. “노조임원을 싸우는 노동자로
대체하라, (지금의 노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조합이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는 이러한 직제를 포함하여 많은 노동자의
지지로 50인 추천서명을 제출했다. 노동자의 절실한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요구를 통해 단결하고, 실현을 위해 모두
투쟁하자’고 당당하게 호소하는 자세에 기대와 공감이 확대되고
있다. 또 직제를 포함한 많은 노동자로부터 상담도 밀려오고
있다.
비민주적으로 활동이 제한된 가운데서도 회사측에 가담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는 6만명의 조합원 가운데 5,000표 가까운
지지를 획득했다. 또 이번 선거의 특징은 3,000표의 백지나
무효표가 던져졌다는 것이다. 6만의 조합원 가운데 회사와
지금까지의 노조 방식에 공공연히 ‘NO’라고 의사를 표시하는
노동자가 8,000명(13.3%)이나 나온 충격은 도요타와 노조에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도요타가
8만엔의 위로협력금을 주고, 노조와의 합의를 뛰어넘는 100엔의
추가인상을 가능하게 했던 이유였다.
97년 춘투 당시 에모토 씨가 JR(금속노협)의 토론회에서
“연합도 요구실현을 위해 대규모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국회농성이나 대중집회를 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도 도요타나 도요타그룹 노동자의 운동과
지역공동투쟁의 확대, 전노련․춘투공투가 ‘일치된 요구로
함께’ 행동하여 연합계를 포함한 일본노동조합에 투쟁하는
흐름을 크게 진전시켰기 때문이다.
여성보호규제철폐와 도요타의 ‘신일본적 경영’ 전략
경단련 회장을 좌장으로 둔 일본의 선도기업 도요타는
‘인건비․비용절감’으로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과밀하고
가혹한 야근교대제에 여성노동자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노동기준법의 여성보호규정(심야․휴일금지, 잔업규제)
철폐를 추진하였다. 연합에서도 내부의 반대를 누르고 철폐의
추진력으로 된 것이 자동차총련․도요타노련이다.
도요타는 ‘인건비가 높고, 건강상 문제가 많은 40~50대
정규남성 노동자를 줄이고 인건비가 싸고, 유동화가 쉬워’
단기간 교대가 가능한 여성노동자나 젊은 기간공, 파견노동자로
바꾸어 가는 도요타 ‘신일본적 경영’이라는
고용․인사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도요타 공장에서는 현재 약 400명 가까운 여성 노동자가
노동밀도가 높은 주력 생산라인과 부차 라인 그리고
주변․보조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 연속2교대제의 늦은
조 근무(13시40분~22시30분)도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여성보호규제 때문에 늦은 조의 근무는 밤 10시 30분까지만 일할
수 있어서 여성노동자가 귀가한 후에는 직제(반장)가 투입되어
새벽 1시까지 일을 하게 된다. 물론 잔업이 있으면 2시30분까지
일한다. 도요타는 “이 비효율을 없애고, 끝까지 여성으로
가동”시키기 위해 그 “최대의 장해인 여성보호규정을
철폐시키”고자 여기저기서 온갖 활동으로 철폐의 추진력이 되고
있다. 도요타는 ‘여성보호철폐’의 ‘확실한 주범‘이다.
그리고 지금 도요타는 생산라인에 젊은 여성노동자를 대규모로
투입할 수 있도록 검토․계획하고 있다.
도요타 구주에서는 여성노동자 50명이 이미 자동화된
생산라인에서 2교대의 늦은 조 근무(13시40분~22시30분)에
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종업원의 약 3%이다. 도요타 구주는 수년
내에 5%를 목표로, 장래는 생산라인의 대부분을 ‘인건비가 싼’
‘파트 여성노동자로 도입’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그
사이 도요타 구주는 노동기준법이 개정되도록 관계부서에
적극적으로 공작을 했다.
도요타는 처음에는 젊은 여성노동자를 주변․보조업무와
부차 라인에 투입하다가 1년이 지나면 주요라인에 투입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 전문담당 직제가 정기적으로 일,
생활, 건강 등의 상황을 체크, 조사하여 대량의 ‘젊은
여성노동자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주요
생산라인의 일을 배우는 속도는 남성보다 느리지만 한번
습득하면 끈기있고 민첩하게 일을 하고, 불량품 비율도 남성보다
매우 적다’고 평가되고 있다. 여성노동자가 쉬거나, 밤 10시
30분부터 대체되어 그 라인에 들어간 직제는 이렇게 힘든 노동을
여성이 잘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또 젊은
여성노동자는 수년(3~5년)이 지나면 직장의 남성과 결혼하거나,
힘든 노동 때문에 전직 또는 사직하기 때문에 5년을 전후로
‘유동화’ 된다. 도요타가 본격적으로 젊은 여성노동자를 주요
생산라인에 대규모로 투입하는 것도 최근의 일이다. 99년 4월
여성보호규제철폐시행을 목표로 인사부는 ‘프로젝트팀을
편성’할 것을 결정했다.
노조는 회사와 함께 ‘여성심야근무 전면해금’,
‘여성보호규정의 철폐’를 추진하기 위해 정기대회에서
여성노동자에게 “남녀평등한 여성의 업무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철폐가 필요하다”고 발언을 하게 하고, 집행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여성보호철폐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답변한 뒤,
연합을 강력하게 움직여 왔다. 최근에는 바쁜 라인에 젊은
기간공(파견․계약사원, 기간공은 현재 2,500명)이
도입되고 있다. 그들은 이전에는 주변․보조업무가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ME화․자동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주요생산라인․부차라인에 많이 도입되고 있다. 이렇듯
생산라인에 정규남성 대신 여성과 기간공으로 대체하려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도요타 관련 000에서는 현재 4,000명 이상의
기간공과 1,000명 정도의 파견근로자가 일을 하고 있다. 또
사무․기술계는 파견사원․계약사원의 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것과 함께 기능계 생산현장에서는 ‘조직의 거대화’로 부하
없는 조장을 대량으로 만들어, 라인이나 현장작업에 종사시켜서,
퇴직이나 사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또 ‘조직의 거대화’나 짧은 교대(일정시간으로 공정을 교대)
등으로 40~50대와 20~30대 노동자를 중고령층 노동자 조직과
젊은 노동자 조직으로 편성해서 경쟁시키고, 같은 조에서도
중고령층과 젊은 노동자를 경쟁시키고 있다. 그것이 조정이나
인사고과에 반영된 임금체계의 개인별 능력주의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중고령층 노동자를 직장에서 추출하고, 여성
노동자, 계약사원, 파견사원으로 대체하려는 도요타의
‘신일본적 경영’ 전략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에 대해 직제를
포함한 중고령층 노동자는 불만과 분노를 터뜨리며, 요구를
내걸고 싸우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기대와 공감과 지지를
보내면서 함께 움직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일본
공산당이나 전노련이 제기한 ‘해고규제법’(안)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중고령층 노동자에게 확산되어, 도요타로 하여금
‘2001년까지 현재의 고용인원을 유지’ 한다고 말하게
하였다.
97 도요타 총행동과 민주적 규제
도요타의 구조조정 전략에 대해서 민주세력은 기업윤리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민주적 규제를 실천하기 위해 도요타
심포지움(15회)과 도요타 총행동(16년)을 계속해 왔다.
이 운동의 주체는 도요타와 도요타 그룹에서 투쟁적인 노동자,
西三河국민대운동실행위원회(西三河지역의 37개
노동조합․민주단체),
애노련․서삼하블럭․지역노련,
민상(서삼하지역)․애상련 등으로 지금까지의 요구, 정책,
투쟁의 성과와 운동은 글의 마지막 참조자료에 게재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항목마다 본인의 방식대로 정리했다.
지금까지 서술한 도요타 현장의 새로운 변화는 투쟁적인 노동자
운동과 지역의 민주세력이 함께 하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최근의 요구, 정책과 운동을 소개한다. 97년의
도요타에 대한 요구항목은 <자료3>에 게재하였다.
도요타자동차주식회사
이사직 사장 오꾸다(奧田) 앞
아이치현노동조합총연합
전노련西三河三河블럭협의회
豊田․加茂노동조합총연합
岡崎․額田지역노동조합센타
서삼하남지역노동조합총연합
「군사비를 감소해서 삶과 복지, 교육의
충실을」
국민대운동西三河실행위원회
요구서
21세기를 눈앞에 둔 일본의 경제를 국민이 풍요로운 방향으로
재건하기 위해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한 일본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점점 중요하게 되고 있다.
우리들은 지난 2월 16일 ‘제15회 도요타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움은 아이치 화재로 인한 안전문제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도요타의 ‘간판방식’ 즉, 효율․생산제일주의
경영 방법이 문제로 되었다. 이에 도요타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하청업자의 절실한 목소리로서, 귀사가 인간존중의
생산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귀사의 21세기를
향한 신국제경영계획, 이것을 추진한 ‘하모니어스
그로스(조화로운 전체)’의 생각과 철저함은 지역경제를
공동화시켜 하청업자의 경영부진․도산․실업 등
심각한 상황을 가져올 것이 예측된다.
<자료 3> 도요타에 대한 요청서
귀사의 ‘기본이념’이 ‘인간과 지구에 공헌하는 기업’이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문제에 진지한 대책을 마련하여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97년 춘투도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귀사는 97년 3월
기결산에서 경영이익 6,200억엔으로 공전의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되었다. 또 내부유보도 4조4,000억엔이나 축척하고 있는
귀사는 이번에야말로 ‘일본경제의 조타수’로서, 국민 전체의
구매력 향상과 활성화를 위해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충분히
완성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임금인상을 해야 한다. 우리들은
노동자, 하청업자, 지역 생계와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요구를 하나로 모았다. 귀사는 이것을 받아들여 성의있는
개선책을 3월 31일까지 서면으로 회답해 줄 것을 요구한다.
1. 지역경제와 고용안정에 관한 사항
귀사가 실시․계획하고 있는 생산거점의 해외이전,
해외에서의 부품조달 등은 산업의 공동화와 지역경제를 위협하는
원인으로 되고 있다. 귀사는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경단련의 기업헌장을 준수하여, 계획단계에서부터 자치체와
하청관련기업을 포함한 주민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합의를 얻을
때까지는 일방적인 실시를 행하지 않아야 한다.
2. 하청, 중소영세업자의 보호에 관한 사항
① 중소업자가 생활할 수 있는 하청단가를 보장할 것
② ‘하청중소기업진흥법’, ‘하청대금 지불지연 방지법’을
엄격히 지키고, 하청업자의 경영과 생활을 보호할 것
③ 말단의 하청업자까지 정확한 생산을 예정할 수 있도록 발주의
급감, 급증에 의한 영향을 없앨 것
④ ‘간판방식’을 개선하여, 여유있고 인간적 생산체제로의
전환을 도모할 것
3. 임금․노동조건의 개선에 관한 사항
① 잔업․심야수당이 없어도 생활할 수 있도록 기본급을
대폭 인상할 것. 또 초임금에 대해서도 대폭적인 인상을 할
것
② 유럽과 같은 노동시간단축을 하고, 연2교대에서도 그 날 중에
일을 끝낼 수 있도록 1일 노동시간을 7시간으로 할 것
③ 노동기본법 39조를 준수하여 연휴의 강제사용을 중지할 것
④ 아이치 화재이후, 이상한 생산체제가 계속되고 있는데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노동실태를 개선할
것
⑤ 회사가 계약한 ‘단체생명보험’의 내용을 종업원 및 그
가족에게 공개할 것
⑥ 귀사의 모토마치공장에서 근무한 오모리(大森美樹雄) 씨를
노동성 통지 172호에 의거하여 빨리 원직복직시킬 것
⑦ 여성의 보호규정을 지키고, 고용의 확대를 꾀할 것
4. 기타
현재 진행되고 있는 ‘TOYOTA ECO-PROJECT'에 대해서 리사이클
가능율의 인상과 함께 현재의 리사이클율에 대해서도 목표를
설정하여 인상할 것
요구항목은 도요타 심포지움에서 토의된 내용을 수렴하고,
노동자, 하청기업, 지역주민의 실태를 포함한 것으로 도요타
총행동은 도요타가 성의있게 답할 것을 요청했다. 직장의 새로운
변화, 지역 공동투쟁의 발전, 도요타 회장이 경단련 회장으로
취임하여 사회적 지위가 커진 만큼, 도요타는 최근 3년 동안
도요타 총행동실행위원회의 요청행동과 요구항목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도요타에서는 “춘투 때가 되면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전부터 쭉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는
식으로 공손히 얘기했다. 이전에 본사에 한발짝도 들여보내지
않고, 요구서를 ‘습득물’ 취급하여 격렬하게 응답했던 것과는
커다란 차이였다. 그러나 교섭에서는 “수락할 수 없다”,
“견해가 틀리다”, “관계부처에 보내겠다”고 하며 성의있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요타 전체의 동향을 보면,
요구내용은 확실히 투쟁의 전진과 함께 실현되어 가고 있다.
금년의 요구항목 내용을 보도록 하자.
첫째, ‘지역경제와 고용의 안정’에 관해서는, 경단련의
기업행동헌장을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담당할 것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다. 이것에 대해서 4월 21일 회사와 도요타노조와의
‘97년 회사방침에 관한 간담회’에서 도요타는
‘기업행동현장’의 개정(96년 12월)을 받아들여 도요타의
기본이념(92년 1월)을 수정하였다. 그 핵심은 기업행동헌장의
정신인 1)국내외의 법 및 그 정신을 준수한다. 2)국제화의
진전과 함께 현지의 문화와 습관을 존중한다.
3)안전․환경대응의 포괄적인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4)노사상호 신뢰․책임을 존중한다. 5)사회와
조화로운 성장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도요타
회장은 경단련으로서도 “기업행동헌장이 지켜지도록 세미나나
강습회를 개회”(6월 10일)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둘째 항목 ‘하청, 중소영세업자의 보호’에 있는 ‘하청
2법’을 엄정히 준수하고, 하청기업의 경영과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어느 정도 표현되고 있다. 지역에서 함께 해온
운동의 결과 아이치현은 이 3년간 현하의 1,000개사를 넘는
대기업(도요타, 도요타그룹의 대기업은 모두)에 대해
‘하청중소기업의 배려와 하청거래의 적정화(의뢰)’를 요구하는
문서를 지사명으로 발표하여, 철저히 ‘하청 2법을 준수’하고
‘하청의 진흥을 도모하’도록 했다. 그 때문에 도요타와
도요타그룹은 지도행정기관인 중부통산국으로부터 ‘하청
2법’에 대한 연수와 ‘법을 철저히 준수하기 위한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단가의 적정화와 하청으로부터 일을 되돌려 받아
내부 생산하던 것을 일부 하청에 되돌려주도록 했다. 또 문제가
있으면 개별적으로 중부통산국이 하청기업 또는 업자와 상담도
하고, 필요한 조사와 지도를 하도록 했다. 또 2월
아이치정기(精機)의 화재로 도요타 라인이 정지된 후 다시
증산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하청에 발주 정지, 생산의 급격한
감소, 급증 등으로 큰 희생을 발생시킨 것에 대해서도 도요타가
‘1월부터 3월까지 도요타에 납품한 부품을 1% 할증해서
구입’하도록 했다. 이것도 그 사이의 ‘하청단가 인상, 이익의
사회적 환원’을 목표로 한 운동과 하청업계로부터 ‘도요타의
사정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성의를
보이라’는 목소리가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셋째, ‘임금․노동조건의 개선’에 관해서는 이미
지역에서 함께 해온 운동이나 현장투쟁으로 새롭게 변화를
보이고 있는 상황과는 약간 다른 최근의 운동성과를
소개한다.
아이치의 화재로 라인이 멈추어 회사사정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도요타와 도요타그룹은 “라인이 멈추었으니 반나절 연휴로
쉬어라”, “오늘도 라인이 멈추었으니 연휴로 쉬어라”며
근기법을 위반하는 부당한 처리를 했었다. 이것에 대해 도요타의
투쟁적인 노동자는 즉각 노동기준감독서, 노동기준국에 소송하여
기업에 대한 지도요청을 했다. 기준국은 “감독서가 도요타의
인사담당을 불러 지도했다”, “연휴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구체적 사실이 있다면 사실에 입각하여 올바로” 하겠다고 하여
기업의 위법행위를 저지시켰다.
도요타자동차와 도요타그룹에서는 무보수 노동이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요구를 통해 단결하고, 투쟁적인 노동자가 있는
현장에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도요타에서는 라인이
가동되기 전 준비작업시간으로 항상 1일 5분에서 1주일 30분
정도 더 일을 하고 있다. 도요타그룹의 풍전공기(豊田工機)는
QC활동 등으로 공짜노동을 해왔던 것을 노동자 운동으로 작년
12월에 총액 3,200만엔의 잔업수당을 받았다.
노동시간 단축과 연2교대에서도 그 날 중에 일이 끝날 수 있도록
‘1일 노동시간을 7시간’으로 하는 요구는 과로사를 없애서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가족과 함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고도 절실한 지역전체의
요구이다. 또 잔업과 심야수당이 대폭 감소되어 ‘벌거숭이
임금’으로 되었기 때문에 ‘대폭적인 기본급 인상’도 절실한
요구이다.
이미 사회문제로 되어 있는 것으로서, 기업이 종업원의 생명에
보험을 걸고, 종업원이 사망하면 기업의 이득으로 되는
‘단체생명보험’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했지만 도요타와
도요타그룹은 일절 회답하지 않고 있다. 재직 중 사망, 과로사,
산재사망이 많은 도요타 관련기업에서 이 문제의 추적은
중요하다. 노동자의 끊질긴 투쟁으로 일본전장(日本電裝)
노조만이 단체생명보험 가입 사실을 인정했다. 본래 종업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계약내용의 공개는 기업의 의무로써 당연히
공개해야 한다.
현재 도요타는 대규모 구조조정 ‘합리화’와 비용절감,
원가절감의 강요로 산재사망, 헬리콥터 사고 등 안전문제와
품질저하․불량품의 증대가 문제로 되고 있다. 아이치현
화재로 도요타의 라인이 생산정지되었던 경험은 수익과
생산효율을 최우선시해온 도요타의 ‘간판방식’이 어떻게
사회적 혼란과, 노동자, 하청, 지역사회에 큰 희생을
가져오는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도요타의 비용절감’은 거꾸로
‘지역사회의 비용 증대’로 되어 도요타의 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첨예한 문제로 되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들의 도요타에 대한 요구․정책의 실현을
위한 운동과 투쟁이야말로 다국적화한 거대기업 도요타의 사회적
책임을 분명하게 해서 노동자․국민이 주체가 되어
민주적으로 대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큰 힘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확신이다.
참고자료․문헌
97년 오전사장 연두교시(경영기획부 기간직원 사외비로 취급)
제 93회 정기주주총회 첨부자료(도요타자동차 96년 7월)
도요타 크리에이션(도요타자동차 사보)
노무 뉴스(도요타자동차 인사부기획실 SX, SL이상 배포대상)
조장회 회보 1997(도요타자동차조장회 97년 2월)
평의회 뉴스(전도요타노동조합연합회 도요타자동차노동조합)
ꡔはあい(화합)ꡕ(도요타자동차노동조합 월간지)
일경,중부경제,조일,매일,중일,적기 등 각신문 도요타관련
기사
제15회 도요타 심포지움 자료(97년 2월)
자동차산업노동자와 지역노조교류집회자료(제1회 95년, 제2회
96년)
제7회 대기업․관련노동자 전국교류집회자료(97년 1월)
직장의 실태나 운동, 투쟁은 각 운동단체의 자료와 인터뷰
조사
도요타에 대한 민주적 규제의 운동 - 도요타 총행동에 대한
졸고
이것이 도요타의 과밀노동 실태다(ꡔ노동운동ꡕ
95.12.)
도요타의 횡포로 진척된 지역경제의
쇠퇴(ꡔ노동운동ꡕ 94.8.)
‘도요티즘과의 투쟁’ - ꡔ노동자의 권리, 인권과
다국적기업의
민주적규제-아시아․태평양노동조합심포지움ꡕ(전노�
쳤�, 94.7. 공저)
‘도요타에 대한 투쟁과 요구․정책’ - ꡔ변모한
세계기업 도요타ꡕ(신일본출판사. 94.5. 공저)
하청의 목을 조른 도요타의 낮은 비용
전략(「적기평론판」 93.5.)
‘도요타총행동의 투쟁과 성과’ - ꡔ도요타그룹의
신전략ꡕ(신일본출판사. 90년 공저)
한/노/정/연
번역 : 김혜란 / 편집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