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노동현장진단1
운동의 희망은 현장에 있다!
김인식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원, 편집위원
10년의 변화 - 대중은 당연히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10년이면 현장도 당연히
변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10년이 되는 97년 IMF
경제위기는 현장의 변화를 더욱 가속시켰다. 97년 경제위기이후
8년이 지났다. 현장은 당연히 변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의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현장대중은 변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11월 비정규직 총파업을 얘기하지만 현장과는 전혀 떨어진
얘기라고 한다. 현장은 총파업에 긴장하지 않는다. 집행부가
총연맹과 연맹의 지침으로 강제하고 있다고 한다. 이마저도
금속을 포함한 일부 연맹만이 가능하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얘기되고 있다. 위기와 함께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위기극복방안으로
조직혁신, 사회적 교섭, 산별전환, 현장조직 정비, 현장정치,
계급정당 등 다양한 논의가 있다. 이러한 논의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 중 하나는, ‘극복방안을 현장에서
현실화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적 시각이다. 그만큼 지금의
현장은 운동의 위기만큼 힘들다고 한다. 예전의 현장이
아니라고도 한다. 현장의 대중은 보수화되고 자본에
포섭되었다고 한다. 과연 우리의 위기극복 노력이 논의로 제한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현장은 희망이 없는 것인가?
나는 현장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희망은
현장에 있다.(이 글은 나의 한계로 금속을 포함한 제조업의
현장을 중심으로 현장의 얘기를 썼음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1. 요즘의 현장
1) 임금인상투쟁의 변화
이제 조합원들은 87년의 배고픈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전체
조합원은 아니지만 대공장과 공공, 사무전문직 부문의
조합원들은 최저임금이 아닌 삶의 질을 얘기하고 있다. 아파트도
있다. 중형 자동차도 있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다. 물론
전체는 아니다. 그리고 정권과 자본이 얘기하는 고임금 노동자
공세만큼은 아니다.
현장은 임금인상과 관련해서는 얼마가 올랐나 보다는 성과금이
얼마인가에 관심이 가 있다. 이마저도 IMF이후 점점 확대되고
있는 성과급제의 확대로 임금인상이라는 집단성은 파괴되고
개별화되고 있다. 투쟁한 만큼 쟁취한다는 임금인상투쟁의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현장에서는 임금인상은 이제 기업의
성과와 동종사의 인상을 바탕으로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일정한
임금인상은 기본이라는 생각이 넓게 현성되어 있다. 기업의
지불능력을 중시하고 있을 때 벌자는 인식들이 넓게 퍼져있다.
임금인상의 결과만을 놓고 얘기한다고 한다. 얼마를 갖고
왔는지 그 성과를 중심으로 얘기할 뿐 임금인상의 준비와 투쟁의
과정은 평가되지도 않고 중요시되지도 않는다. 당연히
투쟁보다는 교섭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최저임금의 인상이 임금의 인상을 가름하는
노동자들도 넓게 존재한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성과금은
고사하고 최저임금의 확보가 여전히 시급한 노동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우리 내부의 임금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부의
단결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자본에 의해 갈라진
대공장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인상 투쟁의
차이는 이제 구조적인 문제로 커지고 있다.
2) 열심히 해서 떨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하려고 노력했던 어떤 대의원은 다음해
대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이 대의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벽을 없애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부서회식 때는 자리를
함께 마련했고 조합원은 아니지만 비정규직의 고충처리가
들어오면 해결을 위해 앞장섰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노동조합의 잔업통제, 특근거부, 파업동참 등 지침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대의원 선거구 조합원들은 힘들고 어려운
투쟁보다는 특근, 잔업 보장을 약속한 대의원을 선택했다.
정규직 전환보다는 눈 돌리면 쉬운 방법인 비정규직 채용을
원했다. 이 대의원은 이런 현장에 대고 “비정규직 철폐”를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먹히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3) 권력이 돼버린 노동조합
노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그러나 현장은 노동조합을
집행부의 권력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현장에서는 노동조합
활동만을 놓고 보면 민주와 어용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선거의
공약을 제외하고 집행부 활동이 차이가 있음을 현장에서 느낄 수
없다고 한다. 민주노조가 20년 가까운 활동을 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은 이제 자신의 틀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 틀이 정체되면서
관성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87년 이전을 경험하며
민주노조건설의 절실함을 느꼈던 조합원들은 이제 소수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20년이라는 시간에 묻히고 있다. 97년 이후
입사한 조합원들은 예전과 달리 함께 어울리기보다 개별적인
활동을 중시한다고 한다. 이전의 현장문화와는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보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역동성과 치열함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현장에 있을 때는
집행부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투쟁을 얘기하지만 막상 집행부에
당선되면 이전과 다르지 않은 활동을 보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더욱더 멀어진다고 한다.
회사는 이러한 변화를 부추겼다. 임단협은 노동조합이 하는
것으로, 현장의 문제는 대의원이 처리하는 것으로 분권화시켰다.
그리고 회사는 대의원 조끼라도 입고 있으면 대접을 해준다.
그러나 조끼를 벗으면 그 대접은 없어진다.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활동의 변화에 대해 현장의 선택을
얘기한다. 대중은 2년마다 진행되는 선거에서 이제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선택한다.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실리를 강조하는
집행부를 선택한다. 회사가 어려워질 때는 투쟁적 지도부를
선택한다. 집행부의 성과와 평가를 바탕으로 선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선거용 조직을 만들고 서로간의 차이가
없어진다고 한다.
4) 또 하나의 현장, 비정규직
IMF 이후 비정규직은 크게 증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장의 중요한 주체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현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져 존재하고 있다. 근로조건과 노동3권의
보장에서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현장속의 또 하나의
현장으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존재하고 있다. 회사에 의해
차별받고 권리를 억압받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의
안전판으로 아니면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로 외면 받았다. 이제
이들이 현장의 주체로 서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아직은 노동조합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도
정규직, 원청 노동조합의 연대가 절실한 것이 현실이다.
2. 무엇이 현장을 변하게 했는가?
1) 투쟁의 패배
현장은 98년의 정리해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생직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운동은 IMF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내부주체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조합의 투쟁은 패배했다. 투쟁의 패배로 현장은 자신의
고용을 회사도, 노동조합도 책임져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2) 정체된 노동조합운동
대중에 쫓기는 노조활동, 사업장에 가두는 노조운동은 스스로
대중을 멀어지게 했다. 현장은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한 가운데
17년을 계속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한 작업을 10년만 해도
도사가 되는데 노조경험 17년에 선수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정체된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은 동원의 대상이다.
노동조합 활동에 토론은 없고 지침만 있다.
3) 현장조직운동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언제나 보는 현장활동가들을
신뢰한다. 그들의 활동을 보고 평가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활동가와 조합원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활동가들이
대의원이라도 해야 뭐라도 활동을 한다고 한다. 같은
평조합원으로 있을 때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미
일상적인 현장활동은 없어지고 있다. 현장조직은 자신의 전망을
찾지 못했다. 서로의 차이만을 강조하며 활동이 없는 가운데
선거용 조직으로 규정되고 있다. 선거를 중심으로 활동이 되고
있다. 현장조직운동의 전국화와 계급적 단결에 실패했다.
4)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자본은 비정규직을 확대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정규직의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비정규직의 확대는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내부의 격차를
만들었다. 노동조합의 조직, 투쟁의 힘을 약화시켰다. 현장의
고용불안 심리를 조장했다. 그리고 현장을 바꾸고 있다.
3. 그러나 희망은 현장에 있다.
1)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시작한 민주노조운동은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공무원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했다.
87년 제조업을 중심으로 시작한 민주노조는 전체 산업의
노동자를 포괄하게 됐다. 18년에 걸친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당연한 조직적 무기임을 실천적으로
증명했다. 현장의 보수화 등 위험스러운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현장대중은 민주노동조합을 아직까지 신뢰하고 있다.
현장의 위기를 말하기 전에 우리 내부의 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현장이 갖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마저 잃어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의 미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을 중심에
놓지 않은 위기극복은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2) 대중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현장이 노동조합의 투쟁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중은
자신이 결정한 투쟁에 대해 책임진다.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에서 대중이 먼저 배신한 적은 없다. 지도부가
투쟁에 대한 확신이 없고 흔들릴 때 대중도 흔들렸다. 지금까지
준비된 투쟁은 실패하지 않았다. 사회적 교섭을 앞세운
상층중심의 운동, 남발되는 총파업은 이제 더 이상 현장을
조직할 수 없다. 현장을 조직하고 움직이는 방법은 철저히
준비하고 함께 하는 투쟁, 투쟁에 대한 확신을 주는 지도부가
결합될 때 가능하다. 지금의 현장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긴 호흡을 다지는 활동을 시작하자.
3) 노동해방, 연대의 기치
우리 운동의 전망/ 투쟁/ 조직의 중심에 현장이 있다. 우리는
현장을 잃으면 노동조합운동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은 없다. 작지만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서로의 노동조건의 차이를 좁혀나가고, 아직은 만족할 수 없지만
공동투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차별을 넘자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노동해방이라는 운동의
이념을 재정립하는 과정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제 현장의 활동가들도 현장에서 열심히 하는 것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해방의 이념을 학습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전국적 계급적 단결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현장의 희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