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특집 > 목록보기 > 글읽기

 
자본주의와 가족

현장에서 미래를  제59호
김수영



자본주의와 가족
특집

김 수 영
고려대 강사






1. 서구의 산업화와 가족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에 걸쳐 서유럽과 북미지역에서 발생한 산업화(industrialization)는 사회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활양식과 사회관계의 근본적인 재구조화를 야기했다. 사회계급들은 산업화에 직면하여 각각 특유한 가족모델을 출현시켰으며, 서로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산업혁명 초기에는 노동의 위계, 생산의 압박 정도 그리고 사회적 범주들의 다양함 만큼이나 대단히 다양한 가족유형들이 나타났지만, 결국 하나의 획일적인 가족모델이 출현하게 되었다.
산업화 초기에는 공장에 기계제 생산이 도입되면서 숙련도나 신체적 힘이 떨어지지만 고분고분한 여성과 아동이 싼값에 고용되었다. 당시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너무나 낮았기 때문에 여성들과 아동들은 일하러 집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고, 이들의 임금은 아무리 낮아도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했다. 또한 산업화 초기에는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이 집단적으로 제공되는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노동자 가족들은 고질적인 공간 부족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확대가족을 유지하면서 이에 대응했고, 친족 네트워크가 계속해서 많은 기능들을 수행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산업화 초기에 노동자계급의 재생산을 위협할 정도로 열악했던 환경에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즉 노동일을 단축하는 1840년대의 공장법, 여성노동 및 아동노동의 축소를 목표로 하는 보호입법, 19세기 후반의 의무교육제의 도입 등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아동들은 공장노동과 기타 전일제 유급노동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배제되었고, 더 오랜 보살핌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또한 여성노동은 공장 밖의 직종으로 주변화되었고, 여성들은 가정 안에서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부르주아 박애주의자들과 자본가들 그리고 노동조합운동간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였다. 박애주의자들은 어머니들이 임금노동을 맡게 되면서 야기된 가족의 악화, 남성과 여성이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일하는 것의 부도덕성, 미혼여성들이 공장 도시로 유입되는 것의 도덕적 위험 등을 강조하였고, 부인과 자녀의 부양에 책임지는 성실한 남성이라는 전형을 확립하려고 시도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계급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가족화’로 나아갔고, 이를 위해 물질적 조건의 향상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에게 공장 가까이에 있는 안락한 주택을 제공함으로써 노동력을 정주시키고 그들의 충성심을 확보하며 그들의 노동습관을 조절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한편, 당시 남성숙련노동자상층이 주축이 되었던 노동조합운동에서는 유급노동에서 경쟁을 줄이기 위해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여 종속적인 주부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성인 남성 가장이 혼자 벌어서 부인과 자녀들을 부양할 수 있을 만큼의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가족임금(family wage)’를 요구하였다. 이처럼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을 배신하여 자신들의 고용의 안정성을 확보하였고 여성에 대한 특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또한 가족임금 관념에 의해 고용주들은 가족을 부양하지 않는 여성에게 저임금을 주는 것을 정당화했고 여성을 임시노동의 거대한 풀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중간계급의 가족모델이 노동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계급의 일부로 침투했고, 19세기 말경에는 노동자계급 전체로 수용되었다. 그리하여 중간계급에서 유래한 규범들을 따르는 가족모델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생활양식이 재구조화되었는데, 특히 남성은 바깥일, 여성은 집안일이라는 성별역할분업과 자녀와 가정에 대한 더 커다란 관심이 강조되었다. ‘가족’은 부르주아지 패턴의 핵심에 있었는데, 질서의 장소, 강력한 규범적 모델의 전달자로서 정의되었고, 그것으로부터의 이탈은 모두 위험스러운 사회적 일탈 형태로 여겨졌다. 20세기에 들어서 중간계급의 문화가 출현하면서 ‘마이홈주의’가 강조되고, 집을 돌보는 것은 부인의 책임이라는 관념이 출현했다. 그리하여 이제 집에 있다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무질서의 전형이 되는 바깥 세계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모든 미덕들로 둘러싸여 그 가치가 상승하였다.
역사적 자본주의 하에서 가족임금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했다. 서구사회에서도 가족임금제는 부인과 자녀들을 결코 부양해 오지 못했다. 가족의 소득은 남성가장의 임금뿐만 아니라 부인과 기타 가족원의 임금 그리고 기타 다양한 소득 원천들의 결합으로 구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임금제는 성별역할분업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여성이 저임금의 단기노동력으로 이용되게끔 한다. 결국 단지 신화에 불과했던 가족임금은 남녀간의 임금격차를 정당화하고, 여성의 예속과 억압을 강화한다. 또한 부양되지 않는 비임금노동자에 대한 공적부조, 사회보장으로부터 이혼했거나 사별한 여성들이 제도적으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가족임금은 노동자계급의 전투성을 약화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을 분리시키고 약화시켰다.


2. 한국 자본주의와 가족

1) 한국의 산업화 전략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세계체제의 역사적 맥락,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전략의 변화와 미국 자본주의의 축적 전략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단절을 보이면서 전개되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하자, 미국은 자본주의적 방법에 의해서도 이를 상회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를 창출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1960년대에 케네디정권은 동아시아지역에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권유하면서 본격적인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하였고, 이로써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의 동력이 주어졌다.
박정희정권 하에서 본격화된 한국의 산업화는 강력한 국가주도의 발전전략으로서 ‘수출지향산업화 전략’과 ‘재벌중심적 공업화 전략’을 그 기본축으로 하였으며, 이를 위해 ‘반(半)프롤레타리아 가구(household) 창출 정책’과 ‘친자본적 반노동적 노동정책’이 추진되었다.
한국의 국가가 반프롤레타리아 가구의 형성을 조장하는 정책을 보면, 농촌인구의 광범위한 이농을 유도하여 이들을 도시의 저임노동력으로 동원하고, 동시에 이들과 농촌가족과의 지속적인 경제관계의 유지를 통해서 저임금으로도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국가는 한편으로 농촌에 대한 상품경제의 심화를 통해 이전에는 화폐경제 외부에서 추구되어온 많은 경제활동들을 계속해서 수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족성원들이 화폐소득을 취득하기 위해 도시노동력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국가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저임금을 유지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저곡가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저곡가정책은 결국 농촌을 궁핍하게 하고 농민층의 분해를 촉진하여 도시를 향한 영세농들의 가족이농이나 그 가족구성원들의 단신이농을 대량으로 창출해낸다. 이들 중 단신이농 노동력은 곧바로 대기업의 공장노동자로 흡수되거나 아니면 대부분 영세한 제조업체에 잠정적으로 취업하여 도시내의 생활구조에 익숙해지면 상위기업으로 전직하는 경향이 있었다. 단신이농 노동력 중 특히 여성은 1960-70년대의 산업화가 미혼여성의 저임금에 의존하였던 만큼 공식부문의 도시노동자로의 취업이 특히 용이했다. 이들은 결혼한 뒤에는 도시의 비공식부문에 취업하여 가계보조적인 소득을 벌었다. 가족이농의 경우도 미혼자녀의 경우 단신이농의 경우와 유사했다. 가구주의 경우 연령 장벽 때문에 도시경제에 피고용노동자로 흡수되지 못하고 자영업이나 기타 비공식부문의 임시적인 작업에 종사하였다. 즉 하위판매직으로부터 건설업 등의 일용노동자, 하위생산직인 영세자영업 부문, 하위 서비스직 등 다양한 직종에 참여했다. 이들의 불안정한 고용지위 및 열악한 임금조건은 농촌의 가족들과의 경제적 유대를 계속 유지하게 했고, 농촌의 가족들의 경우도 경제적 상황이 농업생산만으로는 가계를 꾸려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시로 나간 가족원들의 송금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가계를 꾸려 나감으로써 자신들의 열악한 영세농적 지위를 계속 재생산해 나갔다. 이렇게 하여 도시공업부문과 농촌부문간의 경제적 종속관계는 가족내로 도입되어 가족원간의 경제협력 내지는 분업관계화하여 가족 내에서 해결되는 것으로 되었고, 그 결과 한국에서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은 생계수준에 못미치는 열악한 저임금을 유지하면서도 노동력의 재생산비용을 효과적으로 가족과 ‘생계’부문으로 이전시킬 수 있었다.

다음으로 친자본적 반노동적 정책을 보면, 한국의 국가는 경제성장을 위해 채택한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위해 자본에 대한 제도적 지원 및 노동에 대한 통제를 양축으로 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경제기획원의 정책입안자들은 무엇보다도 ‘자본축적’을 임금, 노동자의 안전, 연금, 고용안정성, 기타 모든 것들에 대해 최우선시했으며, 특히 수출에서의 가격경쟁력을 위한 ‘저임금의 유지’를 산업화 성공의 기본 전제로 여겼다. 따라서 경제계획과 생산에서 결정적인 요소로서의 노동은 극찬되었지만, 개인으로서의 노동자와 노동자들의 집합적인 사회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은 경제성장에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 국가의 노동정책은 자본축적을 위해서 억압적인 기제와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기제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요구를 억누르는 억압적인 노동통제정책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의 경험과 분단국가라는 현실 속에서 국가의 강제력 행사에 의해 한국사회의 강력한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된 ‘반공주의’와, 국가와 자본에 의해 유교적 전통요소로부터 고안되어 자본축적을 위해 효과적으로 활용되어온 몇가지 이데올로기가 활용되었다. 즉 한국전쟁의 결과로 급팽창한 군의 쿠테타에서 비롯된 군사독재정권은 산업화 과정에서 억압적 국가장치의 강제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강력한 노동통제를 행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 자본의 급속한 자본축적을 가능케 하였다. 또한 한국의 국가와 자본은 유교적 전통으로부터 이끌어 낸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사실상 사회복지를 방기한 채 자본축적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전통에서 창안해낸 충효이데올로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성차별주의 이데올로기, 가족주의 이데올로기, 가장이데올로기 등을 활용하여 저임금여성노동력 및 남성노동력을 극도로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착취함으로써 본원적 축적을 이루었다.


2) 국가정책과 가족

한국의 국가 발전 전략은 성장제일주의로서 효율적인 자본축적을 최우선시 했기 때문에, 국가정책에서 사회복지는 항상 경제성장에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 결과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제발전의 수준에 상응하는 복지정책을 추구해 오지 않았다. 즉 한국에서 사회복지정책은 산업화정책의 추진을 위한 보조적 도구나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써 기획되고 실시되었다. 결국 이러한 한국의 사회복지정책의 기본 관점은 결국 다른 국가와 비교해볼 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상당히 낮은 수준의 사회복지체제를 산출했다. 한국의 사회복지정책은 그 형성과정과 프로그램 내용면에서 모두 시장원리와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철저히 강조하고 있으며,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주의적 사회보장제도의 성격보다는 영세민 보호에 초점을 맞춘 공적 부조가 중심이 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사회복지체계가 낙후된 수준에 머무르게 된 핵심적인 원인은 냉전체제의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 한국 국가의 성격이 다른 선진 복지국가들과 비교하여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과, 한국 국가가 사회복지를 실제로 방기하고 그 부담을 개별가족에게 거의 완전히 전가시키는 것을 가능케 해온 유교적 전통 및 관습에 입각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존재였다. 즉 강력한 권위주의에 기반해 온 한국의 국가는 그동안 경제를 최우선시하는 ‘성장제일주의’에 의해 자본축적의 극대화만을 추구한 나머지, 국민들의 삶의 질의 향상과 관련된 사회복지를 실질적으로 방기해 왔으며, 그 부담을 유교적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개별 가족에게 완전히 전가시켜온 것이다.
유교는 중국의 한대(漢代)에 국교화된 이래로 탁월한 정치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여 왔고, 한국의 역사에서도 특히 조선시대의 주자학 국교화를 계기로 하여 통치이데올로기로서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끼쳐 왔다. 그런데 특히 신유교에서는 가족관계를 모든 사회관계의 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실제로 가족에서 이러한 규범들의 사회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가족을 매우 중시한다. 또한 신유교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종법제는 가계계승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가족주의가 발전하게 된다. 그 결과 조선시대이래 한국사회에 강력하게 자리잡게 된 유교적 가족주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족을 중시하고, 가족 내에서 그 구성원들의 생활보장을 책임지게끔 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박정희정권이 들어선 이후 강력하게 추진된 산업화정책은 자본축적의 극대화를 위한 성장제일주의에 따라 국가복지를 사실상 방기하였고, 국가는 그 부담을 개별가족으로 전가하기 위해 유교적 가족주의를 활용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유교적 가족주의를 활용하는 국가정책은 1980년대, 90년대에도 계속 되었다.
게다가 한국 국가의 노동통제방식은 노동자계급의 복지를 향상하고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보다는 억압적으로 배제하는 정책지향을 통해 그리고 기업별 노동조합체제의 강화와 같은 조치들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무력화하고 노동자계급의 조직화를 방지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노동통제방식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생활보장을 위한 사회복지가 덜 발달된 원인들 중 하나이며, 결국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욕구와 사회적 욕구의 해결은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을 통한 보장의 형태를 지닌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노력과 개별산업현장에서 담당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 국가의 성격과 정책지향은 한국의 사회복지가 미발달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 한국사회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가족을 단위로 하고 가족을 위한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시행되는 가족정책은 실제로 거의 부재했으며, 가족계획사업과 같이 가족을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식의 가족정책만이 존재해왔다. 결국 한국의 가족정책에서 가족은 복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사회보장의 담당자’로서 위치지워졌던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복지체계는 가족의존적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고, 사회안전망이 실질적으로 부재하였으며, 노인복지정책에서도 전적으로 효윤리와 경로사상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개인은 생활보장을 전적으로 가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사회 전반에 가족중심주의를 강화시켜왔고, (수정)직계가족을 유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이에 따른 가족 기능의 강화는 여성의 부담을 증가시켜왔다. 또한 실업, 노령, 질병, 고용불안 등으로 인해 가족의 물적 토대가 약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다양한 가족문제와 노인문제를 심화시켜왔다.


3) 기업 경영과 가족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서 한국기업에 강한 경쟁력을 가져다 주었던 것은 바로 저임금․장시간노동체제였다. 이것은 흔히 ‘유혈적 테일러리즘’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고 ‘억압적․병영적 노동체계’라고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노동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군사정권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권위주의국가가 억압적인 노동법과 물리적․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과 저항을 탄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과 7․8월의 노동자대투쟁은 이러한 억압적 노동체제를 종식시켰고, 그 결과 1987년 이후에는 노동통제방식에 있어 억압성이 상당 부분 완화되었으며 기업문화운동이나 기업복지의 증대 등 그 이전과는 다른 다양한 기제들이 활용된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 본격적인 산업화정책이 추진된 이래로 가능한 한 저임금을 유지하는 정책이 추진되어 1987년 이전까지 저임금․장시간노동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결과 특히 생산직의 경우 개인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1인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정도이며 4인 가족 최저생계비에는 훨씬 미달하여 개인노동자의 임금으로 가족의 노동력재생산비를 충족시킬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렇게 가족의 최저생계비에도 미달하는 개인 1인의 임금으로는 노동자가족의 노동력재생산비를 충당할 수 없으므로 노동자가족은 가족구성원의 다수의 소득결합을 통하여 이를 보충해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 가족 중 하층으로 갈수록 가구원의 다수가 취업하는 복수취업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가구주의 학력과 직종에 따른 차이가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임금체계에 있어서 학력별․직종별로 임금격차가 크기 때문에, 이는 곧 개별가구의 가구주 소득수준의 차이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 결과, 고용안정이 보장되고 비교적 후한 보수를 받는 상층노동자계급과 불안정고용, 저임금 등으로 고통받는 하층노동자계급의 가족생활은 다른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즉 노동자계급 내에서 상층과 하층간의 계층별 차이에 따라 가구주 이외 가구원의 취업인원수 및 그 소득의 기여도에 차이가 나타나게 되며, 이는 결국 가족내 역할구조와 젠더관계, 그리고 가족주의의 내용에도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 기업의 저임금구조는 노동자계급 가족의 소득극대화 전략과 지출극소화 전략을 야기했다. 노동자계급 가족의 소득극대화전략에 따른 복수취업화현상은 기본적으로 생계유지를 불가능하게 하는 저임금구조에 대한 가족적 대응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기업 경영 전략은 전통적 가족주의와 가부장주의에 기반하고 있고, 성별역할분업의식을 기반으로 한 가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가족의 희생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개발독재시대부터 시작된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성장한 재벌들의 강력한 ‘가족주의’는 한국 사회의 물적 자원을 이들이 거의 모두 독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고, 조직의 합리적인 발전을 저해하였다. 또한 한국 기업들의 장시간노동 관행과 기업성원간의 비공식적 관계를 중시하는 관행은 성인남성노동자의 적극적인 가족생활 참여를 가로막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가족관계의 질을 저하시켰고, 가족내 성별역할분업구조를 강고하게 유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가구주의 소득수준과 고용안정성 및 기업복지의 차이는 노동자계급 내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켰고 그 결과 가족의 안정성의 차이와 이에 따른 계층간의 상이한 가족전략을 초래했다. 또한 성별 위계제에 기반하고 있는 기업들의 채용, 인사관리, 임금정책 등은 특히 대기업에서 여성을 배제해 왔으며, 여성노동력을 주로 임시직이나 계약직, 가내노동자, 시간제노동자 등 주변적 노동력으로 활용해왔다. 즉 한국사회에서는 유교적 가부장주의에서 비롯되는 성별역할분업의식이 남성노동자의 회사인간화를 가능케 하였고, 여성의 경우 가정에서 노동력 재생산노동을 전담하는 한편 계층에 따라 혹은 시기별로 저임금노동력으로 활용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한/노/정/연

2000-10-06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