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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합법화 문제와 관련하여

현장에서 미래를  제9호
김진균

권 두 언




민주노총 합법화 문제와 관련하여


김 진 균 (자문위원, 지식인 연대 대표, 서울대 교수, 사회학)


민주노동운동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종속변수로 삼고, 이 변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간주되는 여러 요소를 독립변수로 취급할 것이다. 그런데 두 변수간의 관계변화에 하나의 조건으로 있는 것을 상수(常數)로 취급하고 이 상수는 상당한 기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을 하게 된다. 민주노총의 출범을 설명하자면 이 출범에 미친 여러 영향요소를 독립변수로 들어서 설명할 수 있는데, 흔히 지적될 수 있는 요소로서는 87년 이후 노동자 대투쟁의 전개과정에서 성장한 민주노동운동 세력의 조직화일 것이다.
사회적 현상으로서 대중노동운동 양상은 90년대에 들어와서 많이 줄어 들었지만, 기존 민주적 노동조합, 새롭게 탄생하는 민주노동조합, 그것을 선도하고 조합들의 연대를 모색했던 선진노동운동가들의 매개를 통해서 지역과 업종의 보다 큰 연대틀로 조직화되고, 그 과정에서 민주노동운동의 대의를 밝히는 취지문과 강령이 만들어져서 널리 알려지고 자각되고, 정책이 만들어지고, 결국 전국 차원의 ‘민주노총’으로 조직화되었다.
여러가지 독립변수나 매개변수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변수는 그야말로 그 자체가 변동하는 것이다. 독립변수도 변할 수 있고 민주노총 자체도 여러 변수와 상호작용에 의해 변하게 될 것이다. 그 변하는 방향이 출범 때에 선언한 대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것을 정치적 세력으로 발휘하여 국민 혹은 민족 전체의 대의로 나아가는 바 진보를 향해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자본과 국가의 여러 작용, 그리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화와 통합 사이의 어떤 힘의 결합관계에 의해서 자본의 이익에 종속되는 통합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95년 후반부 민주노총이 출범하기까지는 그것을 일구어 내는 운동의 과정에서 노동법, 그 중에서도 제3자 개입금지, 복수노조 불허, 노동자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 그리고 국가보안법, 선거법에 있어서 특정 후보자 반대와 지지의 공개표명을 금지하는 조항 들이 모두 상수(常數)로서, 즉 변하지 않는 조건의 정세에 있었다. 오히려 민주노총의 출범을 다른 정치적 정세와 결합해서 그 상수 자체를 흔들어 변수를 전환시켜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러 독재적 악법을 만들고 강화했던 전․노 군부정치세력이 지금은 비록 법정에 서서 역사적 심판의 갈림길에 서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악법과 그 악법에서 이익을 확보하고 유지하고 있는 자본연관 지배블럭은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악법들이 이제는 상수가 아니라 변수로서 계급세력들 사이의 힘의 관계에 의해 변하고 조작될 수 있을 변수로 변하려 하고 있다.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이 법원에서 보석으로 석방된다든지, 민주금속연맹의 출범이 정연하게 나타난다든지, 그리고 총선거 국면에서 개인 차원이기는 하지만 민주노동운동세력의 입후보자가 나와서 정치적 벽을 두들겨 보는 단계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모든 양상이 결국 노동법의 민주적 개정을 직접적으로 촉구하는 효과를 보게 할 것이고, 따라서 민주노총이 합법성을 갖게 될 전망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망을 하는 데는 핵심적으로 ‘민주노총’의 조직능력,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투쟁능력이 관건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운동이 암울했던 80년대 초부터 ‘대우자동차’ 노동자파업투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해서 구로연대파업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노동자의 힘에 의해 한편으로 노동운동단체가 조직되기 시작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시민의 민주화 투쟁이 거리로 출현하게 되어 그러한 힘이 87년의 대분수령을 이루었던 것인고, 그로부터 밑으로부터의 민주노동운동의 조직이 ‘전노협’ 이름으로, ‘업종회의’ 이름으로 일구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은 지금 사후에 보이는 것처럼 단선적(單線的)으로 진화해 온 것이 아니라 그 경로에서 수많은 진전과 후퇴, 우회와 정면돌파, 큰 덩치와 작은 덩치로 분화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고, 이는 피땀으로 일구어왔던 과정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집시법으로, 노동법으로 구속되고 징역을 받아 탄압받아야 했고,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가 폭압을 당해야 했고, 무수한 목숨이 민주노동운동의 제단에 받쳐져야 했다. 결코 그 경로가 평화적일 수 없었다.
민주노총이 출범하여 민주노동운동세력의 존재가 국민 앞에 정면으로 부각되는 그러한 찬란하고, 한편으로 숨돌리는 약간의 ‘소강’상태에 있어서는, 지금도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비민주적 탄압과 그 구조의 작태는 계속되고 있고, 국가는 국가보안법의 위력을 적절히 구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국가와 자본은 민주노동운동세력의 조직능력과 투쟁능력을 시험하고 있고 앞으로도 어떤 때는 폭력적 방법으로, 어떤 경우는 ‘합리화’의 명목으로 치밀하고 광범하고 틈새없이 탄압을 구사할 것이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관계에 궁극적인 기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주도해서 만들어 가는 ‘작업규율’에 대해서 노동자가 ‘순순히 복종하느냐’의 여부이다. 작업규율이 적용되기 이전의 상태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이 잘되지 않아서 인구가 감소되는 상태(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근래에 인구정책이 산아제한에서 산아유도로 전환하고 있다)와 실업자가 너무 많은 상태는 결국 자본가계급에게 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다. 노동자의 쟁의와 파업은 ‘작업규율’의 변경을 요구하는 성격의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폭압이 아니면 달래서라도 넘겨야 하고 그러한 위기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 국가와 자본가계급의 변함없는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도 항상 ‘작업규율’을 노동자의 통제권 안으로 가져오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다. 민주노총의 합법성 확보문제도 결국 자본가계급과 국가의 전략적 맥락에서 검토될 것이므로,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주노동운동세력은 그러한 전략에서 주도권이나 기선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역량을 배양하면서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원자로 주변 방사능이 많이 분출하는 작업장에서는 비정규 임시노동자가 투입되고 있고, 그들의 방사능 노출에 대한 사전․사후 대책이 체계적으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작업이 맡겨지는 것이 ‘한전’ 원자력 발전소의 현황이다. 정규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해 있고 그들은 그러한 장소에 거의 투입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노조’도 가장 비민주적인 조직으로 경색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전 한 노동자의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우선 반핵․환경운동가와 민주노동세력이 먼저 합동으로 착수해야 할 일이 그러한 작업장에 투입되었던 노동자의 상태를 추적하여 현재 투입되고 있는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조건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정규노동자의 각성을 촉발하여 자체 노조를 개혁하고 그들 스스로 전체 작업장의 작업규율을 안전한 형태로 개선토록 하는 방법이, 예컨데 조직확대를 기도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연결고리를 찾고 노동조건과 작업규율을 개선하는 투쟁에서 조직역량이 배양될 것이다.
웬만하게 큰 대기업공장에는 사내 하청업체의 노동자가 모기업 노동자와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는 노조를 결성할 조직력도 없이 더욱 열악한 상태에서 작업하고 생활할 것이다. 이들에게 노조조직을 만들게 할 힘은 오히려 모기업 노동자의 ‘활동가’일 것이다(아마도 ‘대의원’의 이름으로 활동할 것이다). 임금투쟁이나 사회개혁투쟁의 활동이 기업내의 노조에만 지향되어 있다면 그 노조가 규모가 크고 비록 민주노총에 가입해 있다고 하더라도 민주노동세력을 포괄해 가는 힘이나 중소기업의 미조직 노동자나 대다수 비정규 노동자를 노조로 끌어들이는 힘을 스스로 제한시키게 될 것이다.

근래에 임금협상을 두고 보면 대기업일수록 기업단위별로 협상을 빨리 끝내려는 경향이 보인다. 그러면서 해고노동자 복직문제는 임금협상과 분리해서 길게 끌고 가는 경향이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단결력, 혹은 산별노조로의 전화 의지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의 조직역량과 투쟁역량이 성장하면 국가와 자본은 ‘합법성’을 부여하는 방법과 동시에 ‘노총’강화 방책을 강구해서 노동계 전반을 분할통제하려는 방도를 강구할 것이다. 민주노총 자체가 변수이고 변하는 것이 강화방향이 되려면, 독립변수의 작동을 잘 살리는 동시에 상수들을 변수로 전화시키는 노력을 오직 조직역량의 강화에 초점을 두고 여러 변수의 현란한 작동에 현혹됨이 없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996-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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