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중국
오 세 철
정치연대대표 / 연세대 교수
금년 3월 5일 개최되는 중국의 제9기 전국인민대표회의 제2차
회의에서 개정된 헌법의 골자는 사회주의의 외피를 강조하면서
사유재산제를 보장하는 내용이라고 신화사통신은 밝히고 있다.
이미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주요내용은 97년 9월 중국
공산당 당정개정 때 지도노선에 포함됐던 것들이지만
헌법차원으로 격상시킨다는데 의미가 있다. 또한 개정안은
서언에서 덩샤오핑이론을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사상과 함께 국가지도지침으로 명시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국가와 당의 이념이고, 마오이즘은
사상이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노선은 이론이라는 중국식
사회주의 3단 이데올로기체계를 정립하고 있다. 장쩌민은 97년
9월 제15회 당대회 정치보고에서 “중국은 50년대 중반부터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진입했으나 이 단계의 역사적 과정은
최소한 10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번
개정안에는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장기간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바꿔 산업화, 시장화, 현대화의 경제건설
드라이브에 국가역량을 집중할 계획을 천명하고 있다. 사유제에
관련된 주요 개정내용은 제6조와 11조인데 다양한 소유제경제의
인정과 더불어 개체경제, 사영경제를 사회주의 공유제 경제의
‘보충’에서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격상시켰다. 이러한
헌법개정은 97년 당대회 때 예고된 것이었으며 전일적
세계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국가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중국의 국유기업개혁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여러번 중국을
다녀왔고 당의 간부와 국유기업 관리자들과 만나 중국의 변화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우선 몇 가지 보기로부터 시작하자.
중국의 상하이는 오래전부터 국제 무역도시로 중국의 자본주의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강 건너편에 새로 건설된 푸동에는 백층
가까운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서 있고 아직도 건설중에 있다.
그러나 상업지역의 뒷거리에는 엄청난 유동인구의 행렬을 볼 수
있고 졸졸 따라 다니는 거지들을 만날 수 있다. 당의 한
고위간부는 중국개혁의 핵심은 국유기업개혁에 있다고 말하면서
국유기업의 효율성 제고를 통한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구분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였다. 한편 국유기업의 관리자들은 공통적으로
당의 통제와 간섭을 철저하게 배제한 자본주의의 기업경영을
바라고 있었는데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가져올 빈부의 격차,
실업, 사회주의적 복지의 소멸 등을 우려하는 곤혹스러움을
보이기도 하였다.
홍과 전의 논쟁이나 문화혁명을 통하여 중국의 사회주의를
이해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중국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과 사유제의
확대가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국가권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보고 의아해 하지만 사실은 사회주의시장경제라는
모순개념으로부터 파생된 과도기적 국가자본주의국가임을 깨닫게
된다. 제임스 페트라스는 사회주의적 변혁과 관련한 두 가지
오류를 들고 있는데 하나는 ‘자립’과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사고와 관련된 “탈구”의 관념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사회주의라는 사고로서 시장에 의해 추동되는 힘들이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관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두번째의 잘못된
접근은 공산당이 지도하는 시장의 힘, 사적 소유, 자유무역,
해외투자 등이 사회주의건설을 향한 추진력이 될 수 있다는
덩샤오핑식의 사고이다. 시장적 힘의 부상은 세계적인 값싼
노동예비군이라는 상황속에서 중국의 노동력을 변형시키고 있다.
이는 또한 당의 간부와 지도자들을 소득을 위해 국가를
약탈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생태적 재앙을 낳는 사업가들로
전환시켰다. 요컨대, 당과 그 지도부를 지도하는 것은 시장이며,
그 역은 아니다. 이의 결과는 공산주의의 권위주의적 정치구조가
자본주의의 야만적인 사회경제적 부정의와 재앙적인 환경의
타락과 결합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것이
‘시장사회주의’의 실제 의미이다.(인터내셔널뉴스, 1998년
12월3일)
계획경제로부터 시장경제로의 이행에 있어서 지적되고 있는
곤란들은 확대경제모형을 결정짓는 고투자, 고소비, 저생산 및
저효율, GDP부분으로서의 재정수입의 결손, 국유기업적자,
농업기반의 취약, 실업증대, 악성 은행채권, 그리고 비합리적
경제구조들이며, 경제개혁에 있어서의 어려운 점들은 첫째,
국유기업의 저효율을 제거할 만한 근본적 개선의 부재, 둘째,
분할된 국내시장 때문에 기업간 분업, 지역간 협동을 어렵게
만드는 산업구조의 비합리성, 셋째, 실업문제 악화, 넷째,
정부기능의 근본적 변화부족, 다섯째, 국유은행 개혁부진으로
인한 낮은 금융자산의 질, 여섯째, 재정정책의 불투명성,
일곱째, 발전의 지역적 불균등성, 여덟째, 총무역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감소, 아홉째, 사회보장제도의 미흡, 열째,
거시경제규제의 경직성으로 밝혀지고 있다(Inside China
Mainland, Chamber World Network, 1998, 3월1일). 이러한
문제점들은 일반적으로 개발도상의 제3세계 자본주의국가들이
겪고 있는 곤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경제개혁의 핵심은
국유기업개혁에 있다. “큰 것은 취하고 작은 것은 버리라”는
구호는 대규모 국유기업의 합병을 통한 합리화와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 있으며 이는 대량실업과 고용불안의 요인이 되는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 교육, 의료, 주택 등 종전의 국유기업
노동자들에 주어지던 사회주의적 복지는 철저하게 효율성의
논리로 파괴되고 있다. 주식제도 도입을 통한 자본시장의
자유화, 고용계약을 통한 노동시장의 자유화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길로 나아가는 중간과정일 뿐이다.
일국사회주의의 오류와 시장사회주의의 오류는 깊은 연관이
있다. 생산력주의에의 경도가 국가자본주의로의 퇴행을 가져온
경험은 이미 몰락한 소련을 통하여 입증되었으며 그것은 결국
생산관계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노동자계급을 관료국가의
대상물로 전락시킨 역사적 과오로 반성되고 있다.
사회주의개혁은 생산관계의 모순을 극복하는 구조개혁이며
개방도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은 자본주의화를 통한 생산관계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과정이며 개방은 세계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을 통한
생산력 증진으로 오히려 노자모순을 격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중국은 세계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구도속에 자본주의화로의 본격적 실험을 통해 보다 철저하게
계급모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옛날
사회주의혁명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계급투쟁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크나큰
격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봉쇄되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 중국인의
민족적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청난 실업노동자와
사회복지의 박탈은 투쟁의 폭발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빈부격차나 도농간, 지역간의 불평등구조는 중국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맛을 경험한 계급과 지역, 그리고 세대는 더 이상 형식적
사회주의(?)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교화에 영향받지 않을
것이며 결국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국가로
이행할 것이다. 덩샤오핑의 말대로 쥐를 잡는 고양이가
흰고양이건 검정고양이건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부국강병하는
것이 쥐라면 그것은 생산력주의의 편향에 기반한 자본주의를
꿈꾸는 것이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고양이를
시장과 자본으로 지목했다면 그것은 목적과 수단을 전도시킨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장기간의 사회주의
초급단계」가 50년이 소요된다는 말은 중국인민을
우롱하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며 올바른 사회주의적
전통을 무너뜨리는 전략적 구호일 뿐이다.
자본주의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이 세계자본주의체제 속에서
핵심지배국을 향한 경쟁에 뛰어들고, 중화민국을 되살리려는
중국식 민족주의가 국가주의적 동원에 결합된다면 중국은
필연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의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며
신자유주의적 재편 질서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미 중국은
중국식 신자유주의를 실천하고 있으며 고통받는 중국의
노동자계급과 인민은 국가를 매개로 한 자본전략의 희생물로
전락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전략이 신흥공업국의 독점자본전략을
흉내낸다면 중국의 노동자계급은 이미 독점자본과 권력에 맞서
싸워온 제3세계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교훈을 전범으로 삼고
중국에서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고 올바른 사회주의적
개혁이 될 수 있도록 전세계의 노동자계급과 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사회주의의 오류를 배우고 중국은
우리로부터 신자유주의의 궁극적 패배를 배워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