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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 반WTO 투쟁, 지금부터 시작이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91호
전소희


지구적 반WTO 투쟁, 지금부터 시작이다

- 2003년 반WTO 투쟁의 성과와 한계, 한국 민중운동의 향후 과제

전 소 희/ 자유무역협정?WTO 반대 국민행동





전세계 결의 속에서 시작된 5차 각료회의 저지 투쟁

지난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고급 휴양지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제5차 각료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번 각료회의는 새로운 무역질서 ‘도하개발의제(DDA)’가 출범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2005년 1월 1일 이전에 개최되는 최종 회의이며, 9.11 2주년이자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이 있은 바로 직후라는 정세 속에서 개최되어 상당히 큰 중요성이 있는 것이었다. 또한 1999년 시애틀에서 개최되었던 제3차 각료회의가 결렬된 이후, 자본주의 강대국과 개도국들 간 갈등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거센 지구적 반신자유주의 투쟁으로 WTO의 정치적 정당성이 추락하기 시작하자,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이번 각료회의를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고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최전선으로 인식하였다.

세계 시민사회운동들은 이번 5차 각료회의가 개최되는 정세적 조건과 정치적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약 1년 전부터 WTO에 대한 대응을 준비했다. 올해 초 세계사회포럼에서 WTO 5차 각료회의 저지 투쟁이 중요한 공동 투쟁의 계기로 발의되었고, 5월에는 멕시코시티에 여러 단체들이 모여 “WTO를 탈선(derail)시키자!”는 투쟁호소문 발표와 함께 WTO에 맞선 국제민중포럼을 개최할 것, 칸쿤에서는 물론 전세계에서 동시다발 반WTO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칸쿤 지역활동가들이 모인 “칸쿤환영위원회”와 멕시코 사회운동들 간 연대체인 “멕시코공간”이 구성되어 본격적인 국제민중포럼 준비와 현지 동원 조직화에 돌입하였으며, 국제적으로는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와 우리세상은상품이아니다(OWINFS) 등을 중심으로 국제 운동진영이 반WTO 투쟁 준비에 들어갔다.1)

한편, 한국에서도 이에 발맞춰 반WTO 투쟁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할 것과 칸쿤에 원정 투쟁단을 보내자는 제안을 하면서 본격적인 투쟁단 조직화와 준비를 했다. 그래서 9월 초, 수일에 걸쳐 10명 씩, 20명 씩 한국민중칸쿤투쟁단 180여명이 서울을 출발해 칸쿤에 도착했고, 국제민중포럼의 각종 행사, 이경해 동지가 자결한 10일 국제농민공동행동의날 투쟁, ‘킬로메뜨로쎄로(Kilometro Zero)’에서의 천막 농성투쟁, 지속적인 추모대회와 13일 반WTO 국제공동행동의날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였다. 그리고 각료회의가 결렬되었다는 승리감 속에서 14일부터 귀국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료회의를 탈선(derail)시켰다!”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 회의와 국제농민포럼, 국제여성포럼 등 부문별 포럼이 진행되었던 9월 7일에서 9일까지의 기간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각료회의가 개막하기 하루 전이자 국제민중포럼이 개막하는 날인 9월 9일, 칸쿤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경찰은 각료회의장 주위에 바리케이트를 세우기 시작했고, 한국투쟁단의 발대식과 학생들의 기습시위로 강화된 검문검색과 통행제한은 조용한 회의와 세미나가 중심이었던 칸쿤의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츰 바뀌기 시작한 칸쿤의 분위기는 다음 날 농민투쟁에서 이경해 동지의 자결로 최고조에 달했다. 칸쿤은 그 때부터 WTO 체제 하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장이 되었고, 전투의 공간이 되었다. 10일 이후 많이 떠났지만 그나마 남아 있던 현지 농민들은 캠프장을 아예 한국투쟁단 농성장으로 옮겼고, 이경해 동지가 자결한 현장이자 투쟁단의 농성장인, 그리고 반WTO 투쟁의 상징이 된 ‘킬로메뜨로쎄로’에서는 연일 한국투쟁단 중심의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졌다. 버스 수십 대를 타고 멕시코시티를 출발해 기나긴 여정 끝에 칸쿤에 도착한 1,000여명의 학생들(이들 중 상당수는 멕시코 UNAM 학생파업을 조직하거나 참여했던 학생들이다)과 국제직접행동네트워크(RANT) 중심으로 모인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젊은 활동가들은 도심과 각료회의장 주변에서 직접행동과 기습시위를 진행했다. 해변가에서는 알몸시위가 벌어지기도 했고, 타워크레인을 탄 고공시위도 있었다. 젊은 아나키스트들로 구성되어 건물 파괴 등으로 악명을 얻은 블랙블럭도 피자헛 등 몇 개 건물과 가게를 파손하고 경찰과 충돌하였다. 시위와 직접행동, 기자회견은 각료회의장 안에서도 지속되었다. 공식 NGO 등록을 받은 NGO 대표들은 각료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시위와 이경해 동지를 위한 추모제, WTO 규탄 기자회견을 매일 개최하였다. 한국투쟁단 중 15명도 13일 바리케이트 투쟁과 동시다발로 각료회의장 앞 기습시위를 전개하였다.

각료회의가 순조롭지 못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13일부터 전해지기 시작했다. 농업과 싱가포르이슈를 둘러싸고 개도국들과 미국 및 유럽연합이 대립하고 있다는 소식, 특히 개도국들이 “G20+”과 아프리카카리브태평양(ACP) 그룹 등을 형성함으로써 WTO 내에서 세력화하고 강대국들에 맞서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14일에 폐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각료회의가 15일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급기야 14일 오후, 각료회의 의장을 맡았던 멕시코 외무부 장관이 최종선언문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하여 각료회의를 결렬시킨다고 선언했다. 각국 각료들의 당황, 미국과 유럽연합의 분노, 일부 NGO들의 우려와 대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의 환호 속에서 WTO의 5차 각료회의는 결렬되었다. 각료회의 전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WTO를 탈선시키자!” 그리고 14일에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WTO를 탈선시켰다!”



아름다웠던, 그러나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시애틀과 마찬가지로 이번 각료회의 자체가 결렬된 직접적인 이유는 농업과 싱가포르이슈를 둘러싼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일방주의적 압박과 개도국들의 반발, 다분히 보호주의적 정책을 구사하는 미국 및 유럽연합과 시장접근을 요구하는 농업수출국 간 대립이었지만, 또한 분명 지난 수년 간 전세계에서 투쟁해온 지구적 반신자유주의 민중운동 세력의 승리이기도 하다. 수년 간의 싸움은 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폭력성, 억압과 착취를 드러냈고, 이런 폭로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 자본주의 강대국들에게는 위협, 개도국들에게 때로는 압력 때로는 연대로 나타났고, 이런 힘의 관계가 칸쿤에서 다시 한 번 발현되어 WTO 각료회의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물론, 예상보다 시위의 규모는 턱없이 작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평가를 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각 국, 각 부문에서 칸쿤에 모인 15,000여 명의 활동가들은 진정한 연대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10일 이후에 이경해 동지의 죽음으로 고조되어 급박하게 전개된 농성과 투쟁은 다양한 국가, 다양한 단체에서 온 활동가들을 단결시켰고, 돈 받고 고용된 도발자까지 배치되었던 13일 투쟁은 평화적이고 어느 해외활동가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아름다워 경찰들이 당황한” 시위였다. 음악이 구호와 조화를 이루고, 마야 여신을 상징하는 거대 구조물들이 줄다리기하는 시위대와 함께 했다. 수많은 피부색과 언어의 시위대는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발언이 있을 때에는 함께 침묵하면서 발언자의 말에 열중했다.

칸쿤에서 진행된 이번 반WTO 투쟁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각료회의 결렬이라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현지 조직화가 너무 미비했다는 점에 대해 많은 이들이 실망을 했다. 애초 예상했던 50,000명 집결은 결국 연인원 15,000여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유럽이나 미국, 기타 남미 국가에서 예상 외로 적은 수의 활동가들이 왔다는 점, 칸쿤이 멕시코 민중들에게는 접근하기 힘든 너무나 먼 고급휴양지였다는 점이 일차적 이유이다. 아무리 국제시위라 하더라도 결정적 대중동원은 당연히 해당 국가에서 조직되어야 하는데, 대규모 동원 실패는 멕시코 사회운동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농민과 원주민은 싸파띠스따에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정작 싸파띠스따는 치아파스 지역에 국한된 투쟁을 전개했다. 그나마 칸쿤까지 온 농민 5,000여 명 중 상당수가 10일 투쟁 후 철수하였고 13일에는 소수 농민만 남았을 뿐이었다. 관료화되어 조합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멕시코 노총에서 온 100여명의 노조활동가들은 “과격한 바리케이트 세력”과 철저하게 선을 그었고, 그 중 그나마 노조민주화 세력 또는 건강한 단위노조나 현장활동가들은 별도의 대오를 형성하기에 너무나 미약하였다. 게다가 이번 투쟁을 조직했던 멕시코 사회운동들 간 갈등은 행사 취소, 임의적 일정 변경 등의 문제부터 시위 때 대오를 분열시키는 결과까지 낳았다.2) 그러나 멕시코는 단지 5차 각료회의 개최국이었고, 대중 동원이 미약했지만 멕시코 사회운동들이 이번 투쟁을 경험으로 미주자유무역협정(FTAA) 반대 투쟁은 보다 힘있게 전개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의 평가는 사실 다른 곳을 향해야 한다.

이 작지만 “아름다운” 투쟁을 보다 큰 그림의 일부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 큰 그림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 큰 그림이란 지구적 수준에서 벌어진 반WTO 투쟁이다. 5차 각료회의를 맞이하여, 전세계적 규모의 반신자유주의, 반WTO 투쟁은 연초부터 제안되었고, 지난 수년 간 모아진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힘을 기반으로 하여 대규모 대중 투쟁을 이루어내자는 결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작 이번에 벌어진 반WTO 투쟁은 이런 제안과 공유, 결의에 비해 상당히 규모가 작았다. 이것은 첫째, 미국과 유럽 등 그 동안 강력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벌어졌던 곳이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는 데 있다. 현재까지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미국­멕시코 국경과 몇 개 도시에서 수백 명 수준의 시위가 있었다는 것, 호주, 프랑스와 기타 유럽국가 몇 개 도시에서 (이전에 비해) 소규모 반WTO 투쟁이 9월 13일 즈음으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 필리핀,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수천 명 단위의 강력한 반신자유주의, 반WTO 투쟁이 벌어졌다. 이런 흐름은 한편으로는 기존 북반구 중심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남반구의 제3세계 국가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북반구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지 않아 전체적 차원에서 봤을 때 반WTO 투쟁이 그다지 힘있게 전개되지 못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일단 유럽사회포럼이나 미주자유무역협정 대응 등 굵직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반제․반전 투쟁과의 호흡이 미흡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반전 투쟁이 합치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오래 전부터 사회운동 세력 간 공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적인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이번 각료회의가 주로 농업과 싱가포르이슈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점도 한 요소였을 것이다. 각료회의 직전에 이미 유럽연합과 미국은 농업에 있어 합의를 이루어내고 있었던 실정이고, 싱가포르이슈는 너무나 ‘제3세계적’ 의제였던 것이다.

이것은 곧 보다 우려스러운 또 다른 요소가 있음을 말해준다. 즉, WTO 내부 갈등이 증폭되고 정치적 정당성이 약화됨에 따라 장내투쟁-개도국 정부에 대한 압력과 로비를 통한 WTO 내 균열의 가속화-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 장내투쟁에 지나친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물론, 특히 이번 각료회의가 결렬된 과정을 봤을 때 이런 NGO들의 장내투쟁의 영향은 막대하였고 또한 성과를 거두었다. NGO 대표들은 각료회의장 내에서 시위를 벌여냄은 물론, 각료회의 전부터 지속적으로 개도국 정부들과 만나면서 이번 각료회의를 무산시킨 G20+이나 최빈국 중심의 ‘정치세력화’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WTO를 약화시키고 WTO에 대한 민중적 대안을 형성할 수 있는 세력은 몇 몇 개도국 정부가 아니라 민중에게 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해보면, 장내투쟁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WTO 내 개도국 동맹 중에는 다분히 신자유주의적인 정권도 있고 근본주의 독재 정권도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장내투쟁에 집중을 하고 있는 많은 국제 NGO들이 G20+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와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인데, 농업수출국으로 이루어진 G20+ 그룹은 사실상 미국과 유럽연합에 대한 시장접근을 요구하는 등 사실상 농업의 완전 자유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오히려 장기적으로 WTO라는 다자간 체제를 강화하는, 그리고 정작 제3세계 민중들에 대한 착취는 지속되는 역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칸쿤에서 소중한 투쟁경험을 얻은 한국의 민중운동을 비롯한 전세계 민중운동 세력이 안고 있는 과제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다시금 지구적 반WTO 국제연대 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속에서 사회운동들 간 연대를 강화하는 것, 그리고 WTO 각료회의 결렬이라는 현 국면 속에서 우리가 정확하게 무엇을 주장하고 어떠한 대안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지구적 반WTO 투쟁, 지금부터 시작이다

다시 한국투쟁단으로 돌아와 보자. 여러 우여곡절, 어려움과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에도 불구하고,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한국투쟁단은 말 그대로 선봉에 있었다. 칸쿤의 저조했던 분위기 속에서 투쟁의 열기를 한국투쟁단이 북돋았으며, 다양한 세력들 간 분열을 한국투쟁단 중심으로 단결시켜냈다. 투쟁 전술도 한국투쟁단에서 나왔으며, 해외에서 온 가장 큰 대오도 한국이었다. 한국투쟁단의 의지가 해외 활동가들에게 ‘모델’이 되었다는 말, 이 시대를 타개해나가는 데 필요한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수시로 들었다.

특히, 우리에게 이번 투쟁이 명목 상의 국제연대―소수 ‘지도부’의 국제 ‘교류’―가 아닌 진정한 실천적 국제연대였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민중운동의 국제연대가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볼만하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에서의 반신자유주의 국제연대 운동은 큰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국제연대의 수준은 해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것, 국제투쟁에 한두 명 결합하여 그 경험을 한국에 소개해주는 등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칸쿤에 실제로 있었든 있지 않았든 이번 투쟁의 경험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전세계 민중들과 한국 민중들이 함께 호흡하면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한 번 일깨워줬고, 한국의 민중운동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기대와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투쟁의 성과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와 책임을 남겨준다. 농업수출 개도국 중심의 G20+와 최빈국 동맹이라는 WTO 내 힘의 관계의 변화와 이에 대한 국제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대응 전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누구를 대상으로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첫째로는 농업수입국이라는 우리의 입장 속에서 G20+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고, 이에 기반한 투쟁과 국제연대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각료회의에 또 다른 주요 쟁점이었던 싱가포르 이슈, 즉 초국적 투기자본 자유화의 문제에 대해서도 국내외적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특히, 각료회의에서 싱가포르 이슈에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던 국가가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민중운동의 대응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또한, 이번 각료회의에서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별도로 진행되고 있는 서비스협정, 그리고 지적재산권협정에 대한 구체적 의제 개발과 대응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칸쿤 투쟁이 농업 의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서비스와 보건의료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만 제기되었지만 교육시장, 보건의료시장 개방 저지 투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서비스협정, 나아가 사유화 저지 투쟁과의 연계를 통한 서비스협정과 지적재산권협정에 대한 총체적 저항이 필요하다. 한편, WTO를 통한 다자간 합의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양자간 또는 지역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압박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칠레 FTA, 본격 협상을 앞두고 있는 한일 FTA, 그리고 한미투자협정에 대한 대응은 반WTO 투쟁과 상호 연장 속에 배치되고 진행되어야 한다.

이 모든 투쟁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제 우리는 단순히 부문별 ‘개방반대’를 넘어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 자체에 대한 대안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반WTO 대중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측면과 일맥상통하는데, 만약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이 WTO 내 힘의 관계의 재편이 아닌 대중 투쟁을 통한 WTO의 해체와 민중적 대안이라고 했을 때, 이를 위한 논쟁과 실험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번 칸쿤 투쟁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 앞에는 더욱 큰 산들이 놓여 있으며, 국내 여러 반신자유주의 세력 간 연대의 강화, 그리고 국제 민중운동과의 적극적 연대 속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전략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 이번 투쟁과 국제민중포럼은 단일한 공식적 조직위원회를 통해 준비되지 않았다. 다만, 칸쿤시의 시민사회단체 및 노조 활동가들로 구성된 칸쿤환영위원회(Comite de Bienvenida a Cancun)가 물리적 주관을 맡았고, 전국적 차원에서의 활동가와 단체들의 연대체인 멕시코공간(Espacio Mexicano)은 멕시코의 여러 단체들과 노조들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 현지 조직들은 국제 네트워크인 우리세상은상품이아니다(Our World is Not for Sale, OWINFS)와 함께 국제민중포럼이 실제로 국제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공동 기획단을 구성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주로 장내투쟁에 집중하는 NGO들로 구성된 OWINFS의 한계적 특성상 국제 단체들 간 행동 조율은 결국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Social Movements International Network)와의 연계를 통해 이루어졌다. 국제농민포럼은 아예 별도로 진행되었다.


2) 이 때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묘사할 필요가 있다. 농민캠프장에서 행진을 시작해 ‘킬로메뜨로쎄로’에 설치된 바리케이트 앞에서 시위대는 음악과 함께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50여명의 여성선봉대가 먼저 절단기를 가지고 철조망을 자르기 시작했고, 잘려진 철조망에 한국 농민들이 준비한 밧줄을 묶어 남녀노소인종을 불문하고 줄다리기 끝에 바리케이트를 붕괴시켰다. 학생들과 직접행동 활동가들이 팔짱을 끼고 ‘보안’을 지켜준 덕분에 쇠파이프와 돌 등 온갖 ‘무기’로 무장한 ‘도발자들’은 뒤에서 속수무책이었고, 농민, 한국투쟁단, 학생들과 심지어 이 날은 블랙블럭까지 모두 함께 합력하여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렸다. 물론, 이런 성공적 투쟁은 그 전날 밤 수차례의 어려운 회의 끝에 이루어진 결과이지만 또한 예상 외로 통제와 조화가 잘된 투쟁이었다. 다만, 한국투쟁단 중심으로 진행된 바리케이트 앞 집회가 너무 남성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3-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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