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그 후 부안의 5·31선택은?
고길섶
1.
5·31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반핵민주항쟁을 경험한 부안의 5·31선거는 부안 주민들에
있어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김종규 현군수의 군정체제를
끝장내느냐 아니면 그의 재선 앞에 군민들이 무너지느냐, 참으로
험난한 기로에 서 있다.
부안은 반핵투쟁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민주투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부안투쟁은 반핵을 넘어 민주주의 투쟁으로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부안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김종규가 시뻘겋게
살아 있으며 게다가 군정을 독재운영하고 있다. 심지어는
군정업무보고시 군수의 파리박멸 요구에 해당 공무원이 파리가
있어야 인간도 살 수 있다고 대답하자 즉각 직위해제해버려
감사원으로부터 부당처분 사례로 지적당한 바 있다. 김종규는
이렇게 군정독재체제를 구축하면서 반핵군민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찬핵라인 중심으로 군수직이라는 기득권을 이용해
군수선거 재선을 준비해왔다. 따라서 부안의 반핵군민들로서는
김종규의 재선을 저지해야만 비로소 민주투쟁의 승리를 말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김종규는 반핵투쟁 기간 동안부터도 재선이 가능하다고 장담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부안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외부
사람들로서는 당연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엄청난 투쟁을 통해
핵폐기장도 막아낸 부안 사람들이 다시 또 김종규를 군수로
선출한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하지만 복잡한
지역의 현실사정을 고려하면 결코 아이러니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김종규의 재선 가능 장담은 반핵진영의 분열에 기초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종규는 부안의 정치세력의 판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반핵진영의 분열이 불가피해질 거라고
분석한 것이다. 군수 후보로 나올 수 있는 반핵진영 특정정당의
누구와 누구는 오래전부터 적대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사실
김종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감할 수 있다. 다만 당사자들이
그 예감의 상황을 도래하지 않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종규의 분석대로 진행되었다.
2.
2004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 때 부안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바로
두 달 전 핵폐기장 찬반 관련하여 2·14 독자 주민투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한국민주주의를 새롭게 기록한 부안
주민은 4월 선거에서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고 결국
반핵군민과 대립각에 위치한 정부여당이라는 감정구도를 가져온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군민들로서는 매우
수치스러웠고 쪽팔리는 일이었다. 대규모적이고 열정적인
투쟁사를 기록한 반핵부안의 역동성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핵정책을 지지하는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뺏지를 준단 말인가.
일부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를 단지 선거로서만 볼 게 아니라
반핵투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총선투쟁으로 반핵투쟁을
이어가야 한다고 제기했다. 2·14주민투표가 군민의 승리로
결과되었을지라도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반핵투쟁은 지속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총선투쟁을 통해
부안군민의 반핵의지를 더욱 집중화해야 했다. 일부는
반핵전사를 주민독자후보로 내세우자고도 주장했다. 그것은
정치-문화적으로도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당시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주민독자후보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 지난
2·14주민투표를 통해 대두된 ‘자치민주주의’의 두 번째
실험이 된다.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과정이지만 주민독자후보를
내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치민주주의로서 성격을 갖는다. 더구나 주민독자후보운동은
정치혁명이 되며 노무현-열린우리당이 떠드는 이른바
‘정치개혁/시민혁명’을 무색케 할 수 있다. 우리는 당당히
주민혁명을 한다! 이것이 바로 부안의 혁명이다. 주민투표에
이은 한국 민주주의 새로운 실험장이 될 수 있다.
주민독자후보가 정치혁명이 된다는 것은 총선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전복시킨다는 것에서 일단 찾아볼 수 있다. 총선은
사실상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판을 위한 정치인들의 권력독점
교두보 외 아무것도 아니다. 선거권자들 즉 주민들은 저들의
놀음에 장단이나 맞추어주는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이슈나
공약도 주민들이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허풍떨어가며
내세운다. 주민독자후보가 총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출마가 아니라 철저하게 주민으로서 출마하며, 따라서
정치판으로서의 총선투쟁이 아니라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을 위한
주민들의 총선 난장판 축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혁명으로서의 전복행위는 문화행위로서의 민중 카니발이
된다. 정치 전복행위이자 문화 카니발로서의 주민독자후보운동은
엄청난 활력과 쾌감을 주민 스스로에게 불어넣을 수 있으며,
정치-사회적으로는 커다란 압박이 된다. 이것은 당선 여부와
무관하게 상승되는 부안의 힘[부안의 존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행여 실수로(?) 당선되면 그야말로 까무라칠 일이다.
부안군민은 기뻐 까무라치고, 김종규와 노무현과 정치권은
사색이 되어 까무라치고, 언론은 까무라치는 시늉하느라
까무라치고, 정치학자들은 의미찾느라 까무라친다.”
그러나 총선투쟁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시만 해도 반핵투쟁을
주도했던 반핵대책위 지도부가 총선투쟁 침묵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군민들은 반핵지도부의 헤게모니에서
놀아야 했다. 그 반핵지도부는 군농민회 계열이 주도하였으며
1년 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지만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정체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주도하여 반 열린우리당 운동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한
대변자집단이 되기를 갈망하는 그들이 탈대의제적 정치사건을
주도한다는 것은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총선투쟁은커녕 그대로 방치해버린 것이다.
부안군민들은 마땅히 찍을 후보가 없었다. 열린우리당 후보는
당연히 안되지, 반핵무대에 얼굴을 내밀긴 했으나 민주당의
정균환 후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지, 무소속 후보에 대해서도
깜이 아니라고 하지, 그렇다고 독자후보도 없지, 그러다보니
군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어부지리로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되고 말았다. 지금도 그 기억이 아프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이번 군수선거만큼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 또한 참으로 복잡한 양상에 놓여 있다.
3.
그리고 그 1년 뒤 배신이 있었다. 우려했던대로 반핵대책위
지도부집단은 2005년 들어 반핵대책위를 조속히 해체시키더니
열린우리당을 향해 앞으로 갓!이었다. 이미 반핵 이전부터
패밀리집단으로 활동하던 대변인, 집행위원장, 조직위원장, 총무
등이 열린우리당 당원가입운동을 암암리에 펼쳤다. 대변인했던
사람은 열린우리당 후보로 군수출마를 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반핵군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패밀리집단에
연루되지 않은 대다수의 반핵군민들은 또다시 분노의 도가니로
휩쓸려야 했다. 한 할머니는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대책위 사람들 열린우리당 가입하고…. 느그들 작년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하는 거 알아봤어. 목표를 잡아서 주민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으면 이렇게는 안 됐어. 물론 그 사람들
욕봤지. 욕 안 봤다고 얘기 안 해. 근데 느그들이 주민들이
군수, 도지사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잖어. 그럼서 열린우리당이
뭐여? 창자도 염통도 없는 놈들여.”
반핵대책위 지도부 사람들은 애초부터 개혁당쪽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보는 배신이 아니라 자기들 갈 길을 열심히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행보가 배신으로 비출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반핵투쟁이라는 절대공동체의 정서 속에서
그들은 공공적 주체로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 공공적
주체를 탈각하는 과정에서 군민과의 의사소통은커녕 은밀하게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엄연히 반핵지도부를 형성했던
사람들인데, 반핵정서와는 대립각을 세우는 열린우리당으로
향방을 모아갔으니 당연히 배신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방식마저도 용납이 안되는 부도덕한 행태를 통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대한 반감은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매우 골깊어지는 사태로 돌변하였다. 군민들은 절망과
좌절로 치달았고 한심스러운 작태에 대해 눈을 부아렸고, 마침내
반핵군민 내에서도 분열의 감정이 커졌다. 반핵지도부 출신의
패밀리집단 및 그 인맥들과 그에 반발하는 대다수 반핵군민
사이에 커다란 장벽이 가시화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반핵 때
동지였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피아를 구분해야 하는 어리석은
작태도 연출되었다. 실지로 그 양 진영 사이에는 마주쳐도
겉도는 정도일 뿐이거나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그 패밀리
집단에 대한 안티 분위기가 격앙되어 그들이 왕따 당하는
사태로 번졌고 지금은 기도 못피고 있다. 그들은 반핵기간
동안에는 절대적 권위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이제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사면복권이 이루어지지 않아 누구하나
출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기 무덤을 자기네가 판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무엇보다도 투쟁을 통해 새롭게 생성되고 상승된 민중적
욕망과 권리를 수령해가려 할 때 민중 자신이 결코 용납하지
아니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부안항쟁은
주민투쟁이었지만 자본과 권력의 계급투쟁에 대항한
민중투쟁이었음을 분명히 한다면 저 패밀리 집단이 왜
부안군민을 배신하게 되었는지를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본의 계급투쟁에 대항한 민중투쟁의 지도부를
형성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민중투쟁을 기반삼아
또다른 대변인적 지도부를 형성했던 것이고 그 정치적 지향은
결국 새로운 지배집단의 형성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다. 부안
군민들은 저들이 열린우리당 운동을 할 때에서야 비로소 저들의
본질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저들의 본질은 반핵투쟁 때부터
하나하나 준비되고 표현되고 있었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그들을 비판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점이다. 부안투쟁의 지도부는
낡은 운동방식에 쩔어 있다. 끊임없이 스스로 혁신해내고 있는
주민들의 욕망과 권리를 읽어내지 못하고, 아니 읽어내려는
의지도 없어 보이고, 주민대중들을 일방적 계도의 대상으로
타자화시키며 행동명령과 집회동원의 대상으로 위치화시키는 것,
주민들에 의한 투쟁의 자기결정성 및 자기전망성을 배제해버리고
지도부의 결정으로 일방화시키는 것, 더군다나 그 지도부의
결정이라는 것도 공론장으로서의 결정이 아니라 사실상 ‘사적
결정’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투쟁의 비전은 그
사적 결정의 코드로 모호해진다는 것, 그리하여 주민집단의
투쟁정서 및 감정구조는 지도부에 의해 코드화되고 차압당하며
왜곡되고 있다는 것, 이런 비판마저도 수용할 줄 모르고 논란의
공론장이 존재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것, 등등... 지도부의 이런
처신은 많은 주민들을 가슴앓이하게 하고 있으며 등을 돌리게
해왔다.”
“이 오래된 습성이 반핵민주투쟁의 상황 속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 왔다. 많은 사람들이 투쟁의 자기결정성에 참여하려
해도 배제되었다. 혹은 스스로 떨어져나갔다. 지도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부안사회 다양한 계층의 집단이나 개인들이 공동책임
하에서 자기결정하고 연대하는 투쟁 주체들의 결연이 아니라,
지도부의 결정을 따르고 동원되는 주민대중일 뿐이다. 따라서
집회 때의 주민대중을 향한 지도부의 발언의 화법은 ‘뭐,뭐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명령어로 일관되는 것은 단지 화법의
스타일이 아니라 권력화의 원근법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조야한 형님문화적, 조직이기주의적, 집단기득권적 주류
패밀리의 시각과 방법은 올바른 철학과 정책의 공공성에
기초하여 제시되지 못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패밀리집단의
바깥(보통 주민들)에서 분출되는 욕망과 권리들의 긍정성도
이해하지 못하며 오히려 거세시키려 한다. 부안항쟁의 왜곡된
양상은 이 오래된 습성의 재현/확장으로부터 비롯되어
왔다.”
“나는 부안투쟁을 보면서 여러 번 놀랬습니다. 처음에는
예상외의 주민들의 대규모화된 지속적 투쟁에 놀랬습니다. 두
번째는 그 주민투쟁 동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코드화하는
대책위 지도부의 정치적 행보와 배제의 논리에 놀랬습니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배제당하고 소외당하고 투쟁의
자기전망성/자기결정성이 박탈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어쨌거나 투쟁은 함께 하면서 분열주의적 언행들을 극도로
자제한다는 것에 놀랬습니다. 네 번째는 부안에서 뭔 일을
하려면 대책위 지도부의 ‘눈치’를 봐야 하거나 ‘교감’을
해야 한다는 점에 놀랬습니다. 이걸 사람들은 ‘허락’의 의미로
이해하고 반감을 가졌습니다. 다섯 번째는 그럼에도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도대체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며 함께
투쟁하는 군민들의 원성이 자자해도 끄떡하지 않는 지도부의
태도에 놀랬습니다.”
부안사회의 헤게모니는 대책위 지도부 사람들과 친밀하게
코드화된 사람들과 결속된 ‘형님문화’의 패밀리 우산 하에
주도되어 이 몇몇 사람들 편으로 고개숙여 들어오지 않으면
철저히 배제하고 심지어는 적대시하는 습성에 쩔어 있었다.
자기네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을 안고가야 한다는 낡은
운동관에 기초하면서도 그 낡은 운동관마저 민중적 실천에
근거하지 않을뿐더러 합리적 공론장의 토대 위에서가 아니라
형님문화적 사적 코드로 뒤섞이다보니 이것이 배제와 적대의
원천이 되어 더 골치 아픈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로서는
코뮌놀이로 징후되는 주민들의 해방적 투쟁상황과 이중권력적
쟁취를 해체시키며 권력적 욕망으로 미끄러지는 분열증적
장애물이 다름 아니라 지도부 집단이었다는 데 그 충격이 컸다.
어쨌거나 반핵지도부 출신의 패밀리집단은 반핵군민들의 냉담
속에서 자신들의 힘을 잃어버렸으며 사면복권이 되지 않는 통에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아 일단 이 제2의 공공의 적은 수면
아래로 잠복되었으나 문제는 5·31 군수선거를 맞아 제1의
공공의 적 즉 현 김종규 군수의 재선을 저지해야 할 역사적
과제가 남겨져 있다.
4. 5·31선거투쟁을 통하여 우리는…
부안 군민들은 어쨌든 이번 선거를 ‘투쟁’으로 보고 있다. 현
군수의 재선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투쟁으로서 말이다. 물론
반핵군민들 중 정당원들은 각 정당의 이해관계로 돌아가겠지만
현 군수를 저지시켜야 한다는 데는 폭넓게 공감하고 있다. 또한
주로 노인층에 해당하는 군민들 중 일부는 군수의 유혹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정서는 반김종규 정서라
할 수 있다.
2003년 이후 부안 군민은 매우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체험했다.
‘역사적’이라 함은 우선 2003년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전혀 다르게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안사회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전 군민의 집단적-공공적-민주적인
표현-소통-연대 활동의 장을 마련하였음을 의미한다.
2003-05년 반핵민주항쟁을 통해 부안사회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그 이전의 부안 군민의 삶은, 한국사회의 여느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게 대개 서로 고립되어 각자 먹고살기에
바빴다. 자본주의-개발주의-상품화주의-경쟁주의-개인주의의
벼랑으로 가는 사회적 환경과 요구에 파묻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한 채 빡빡 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반핵민주항쟁의 경험은 군민들로 하여금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진정한 삶의 행복과 자유가 무언인지
알게 해주었다. 아울러 부안 군민은 수동적, 순응적 인간형에서
지역사회의 삶을 능동적으로 고민하고 참여하고 조직하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즉 주민자치정치를 실천하는 사회적 주체로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반핵민주항쟁이 반핵이라는 의미를
넘어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다양한 세상의 창을 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제 부안 군민은 새로운 욕망과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욕망과 권리가 반핵지도부에 의해 뻘짓 당할 뻔
했으나 현명한 군민들에 의해 그러한 상황으로 나아가지는
아니했다. 반핵 지도부 패밀리집단을 배제하고 안티세력이
어렵게 반핵대책위의 후신으로서 ‘부안군민회의’를
결성하였다. 부안군민회의는 군민들이 새로운 욕망과 권리를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실천하는 자발적 주민기구로 설정되고
있다. 물론 저들의 뻘짓 때문에 이미 망가져버린 마음들에서 제
갈길을 가는 게 쉽지 않아 보이지만 부안군민회의는 선거국면에
직면하여 김종규 군정독재체제의 종식과 동시에 반핵민주항쟁의
최종승리를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이는 군수선거 국면에
대응하여 군민들의 마음을 잡아내는 최소한의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부안군민회의는 군민의 욕망과 권리 즉 주권재민의
정체성을 담보할 차기군수에 대한 후보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부안군민회의의 그릇으로 성장할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분열된 상태에서 제각각의 욕심으로 흩어져버렸다.
반김종규 정서를 거대한 흐름으로 몰고 나아가려면 그
대안후보가 선명하고 지지도가 높아야 하는데 그럴 인물이 없다.
그나마 약한 의미나마 반핵후보 범주로 설정할 수 있는 군수
후보가 둘 있는데, 한 후보는 고건 라인을 타고 열린우리당으로
입성해버려 비난을 자초하고 있고, 다른 한 후보는 민주당
후보로서 차선적인 반핵후보로 꼽히고 있으나 당내 경선의
문제가 미지수로 남아있다. 그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밀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반핵후보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대안없이 반김종규만 외치게 되는 공허함으로 또다시 공황상태를
맞이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언급하자면, 부안군의 군수후보군의 구도는
3월말 현재 ‘김종규 현 군수-열린우리당 후보-민주당
후보-무소속후보’ 4강구도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의
반핵후보마저 후보군에서 밀린다면 그나마 일으켜 세울려고 하는
희망마저 사라져버린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독자후보라도
긴급하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상황이 녹록치
못하다.
여기서 계급투쟁의 정신으로 무장된 독자들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 특히 반핵후보로서 어떻게 보수정당인
민주당 후보를 내세우려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말하는
반핵후보란 민주당 내에 두 명의 후보가 있는데 그중 한명의
후보를 말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정치지형도의
문제의식하고 지역정치의 정치지형의 문제의식은 좀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부안군민회의에서 연대하고자 하는 반핵
군수후보는 소속당을 지지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반핵민주적
정책공약을 연대해나갈 수 있는 차원에서 얼굴을 빌려 몸을
바꾸자는 전략이다.
부안은 어떻게든 김종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지만
김종규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아무런 후보든지 좋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반핵투쟁을 함께 한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대안요건을 열망하고 있다. 더구나 김종규의 세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반김종규만 외쳐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김종규를 저지하는 것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독재적인 군수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군정체제를 개혁해야 하는
과제가 중요하게 남아 있다.
김종규가 아닌 다른 후보가 군수로 당선될지라도 후자의 문제는
남는다. 설령 반핵후보가 당선된다 할지라도 독재적인
군정권력을 구조적으로 해체시켜야하는 역사적인 과제가 남겨
있다. 독재적인 군정권력 해체는 군민을 위한, 군민에 의한,
군민의 자치정치 즉 주권재민의 정치를 실현해나가는 부안군민의
민중적 요구와 부합된다.
이런 맥락에서 부안군민회의는 부안반핵민주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대안사회적 실천전망도 조심스럽게 잡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이념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다.
“▶부안군민회의는 반핵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여
생명인권사상·자치민주주의·생태문화사회를 향한 권리 및
전망을 갖는다. ▶부안군민회의는 주권재민 즉 군민에 의한,
군민을 위한, 군민의 자치정치를 실천하는 군민들의 자발적인
주민기구이다. ▶부안군민회의는 사회진보적이며 민중적 입장에
서되 다양한 주민주체 및 소수자주체들과 함께 차이와 연대에
따르는 민주적-공공적 욕망과 권리를 주장하며 부안사회의
대안을 실천한다.”
다시 덧붙이지만 그 길은 험난할 터이다. 어느 지점에서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시점으로서는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안군민회의는 5·31
군수선거투쟁 전략을 ‘김종규 재선저지 및 반핵민주후보의
자치민주주의 이행공약 연대’로 설정하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정책공약의 기본구도는 다음과 같다.
❶ 김종규 재선 저지 투쟁 연대활동
❷ 군수독선체제 해체 및 대안적인 군정구조 실현
-군민에 의한 군수 통제 시스템 제도적 확립
-부조리한 조례 개정 및 필요시 조례 제정
-군정정책의 주민참여 피드백 시스템화
-주민·사회단체·언론의 군정정책 비판과 대안제시 존중
-공무원노조 파트너화
-임기수행 즉시 가칭 ‘군수독선체제해체위원회’ 설치
❸ 주민자치 3대과제 조례화: 주민소환제, 주민발안제,
주민예산참여제
❹ 부안반핵민주항쟁 공식화
-반핵민주광장 및 반핵민주기념관 조성
-반핵민주항쟁 백서 발간 지원
-핵발전소·핵폐기장 등 핵산업관련 유치거부 조례 제정
❺ 지속가능한 생태문화사회 만들기 추진 외
우리가 반핵민주후보를 내세우고자 하는 것은 인물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런 공약들을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강제하자는
것이고, 결국 지역정치의 정치지형도를 사회진보적이고
민중적으로 주권재민의 사상에 충실하게끔 바꾸어내자는
의도이다. 정치지형적으로 열악하지만 이제 그 환경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가자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부안에서 부안항쟁의 덕을 본 곳 중 하나는 어쩌면
민주노동당일 것이다. 항쟁 이전에는 열명도 안되던
당원수였는데 지금은 70명 정도가 되어 부안지역위원회로
독자화했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도 당원들의 정치적 정체성이
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지라 군수후보는 아예 내지 않고
있으며 군의원 선에서 그치고 있다. 그래도 그나마
부안지역정치의 구도를 바꿔나갈 수 있는 신생의 정치세력은
민주노동당 정도라 할 수 있다. 부안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연대라인을 형성해야 한다.
5.
부안의 5·31선거는 다른 지역과는 상이한 성격을 갖는다. 다른
지역들은 일상적 정치일정으로서 그것이 되겠지만 부안 군민들에
있어서는 부안반핵민주항쟁 이후 김종규의 독재적 군정체제를
종식시켜야 하는 주민투쟁으로서 역사적 임무가 존재한다.
뻘짓한 놈들 때문에 반핵전선도 망가져버린 지경이지만 그나마
부안항쟁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하고 있고
그 목소리의 흐름을 타고 부안지역사회의 새로운 정치구도를
창조해나가는 한편 대안사회적 실천전망들도 시도해나가려 한다.
그 단기적 계기가 되는 것이 바로 5·31선거이다. 과연 어떤
희망을 일구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주사위를 던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