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진보’를 넘어,
‘변혁’과 ‘해방’의 정치를! (3)
- ‘2006년 정세 전망’과 계급적·변혁적 좌파의 과제 -
박성인 / 한노정연 소장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은 2006년
들어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다 하기 위한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미FTA’ 추진과 ‘사회 양극화’
해소가 그것이다. “두 마리 토끼”가 아닌, “두 수레바퀴”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개발독재시대의 ‘불균형 발전’이 아닌 선진적인 ‘균형’
발전을 이루어내겠다는 것이 그들이 포부이다. 물론 이를 통해
차기는 물론 차차기 정권까지 창출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정치적
목표이다. 정권 장악을 통해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지배세력으로
공고하게 서나가겠다는 것이다. ‘4대 개혁’의 추진과 같은
어설픈 시도는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취약한 권력의 기반만을
흔들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의 집권 경험을 통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권력의
유지와 재창출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배세력으로
서나가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들은 터득했다.
‘한미FTA’ 추진과 ‘전략적 유연성’의 수용을 통해, 경제적
군사적 차원에서의 한미 동맹을 재구축하는 것, 이를 통해
국내외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지배력을 공고하게 하는 것, 이
과정에서 주도력을 확실하게 행사하는 것이 권력의 유지와
재창출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것을 그들은 현실 권력을
장악해 봄으로써 분명하게 깨달았다.
이를 위해 노무현 정권은 걸림돌이 될 사안들에 대해 정지작업에
나섰다. ‘스크린쿼터의 축소’,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완화’, ‘약값 인하 반대’, ‘소고기 수입 재개’ 등
‘한미FTA'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협상도 시작하기 전에
“주도적으로” 정리해 버리고 있다. 8,000억 원 헌납으로
삼성자본에 면죄부를 주었고,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를 거의
없애는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안’을 지난 2월에 발표했다. 반면
국회 법사위는 3월 초에 비정규직 입법을 강행 처리했고,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직권중재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정치공학’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한 친미 친자본 동맹의
재구축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국내에서 정치적 지배력과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 여전히 반북반공의 기조와
지역정치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무능한 수구보수세력을
낡은 ‘기득권 세력’으로 공격하면서, 정권을 장악할 수 없는
수준의 지지율(25~30%)에 묶어둔다. ‘사회적 양극화’라는
정치적 쟁점을 선점하면서,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운동진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서민층
끌어안기’를 통해 양극화와 빈곤 문제가 지배체제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진전하지 않도록 관리한다. 나아가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에서 주도력을 행사하고 있는 민족주의 세력들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관리 혹은 포섭해 나가고, 반면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철저한 고립화와 분할 통제, 그리고 상층
일부의 포섭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하위 동반자로
배치해 나가려 한다.
만약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그들의
바램대로 이러한 ‘정치공학’에 성공한다면 차기는 물론 차차기
정권 재창출까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 때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노무현 정권의 역사적 공헌(?),
반자본 급진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그러나 역사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의 주관적 바램만큼 녹녹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정권 재창출을 가능하게 해 주는 바로 그
조건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FTA의
추진이든, 차세대 성장동력의 확보든, 그것이 짧게는 3~5년,
길게는 10여 년간 다시 한 번 한국사회 전체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광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들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 사회는 IMF 이후
1단계 구조조정 과정과는 비견이 안 될 정도의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화 문제에 다시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점 역시 그들은
알고 있다.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정치적 의제로 쟁점화하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 추진을 통한 2단계 구조조정 추진’과 ‘사회
양극화의 해소’가 서로 모순적인 것이라는 점을 그들 역시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바로 이 모순된 현실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 그들의 정치적 승부수이다. 3월23일 인터넷
포털 좌담에서 노무현은 “정치란 모순적인 현실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정권’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2단계 구조조정의 추진은 한편으로는 국내외 초국적
자본으로의 부와 권력의 집중을 더욱 가속화하고, 그들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확대 강화할 것이다. 반면
독점자본에 수직 계열화된 일부 중소자본을 제외하고,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중소자본이나 자영업들은 광범위하게 몰락하고,
농촌 역시 일부 기업농을 제외하고 하강 분해될 것이다. 그 결과
대다수 국민들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프로레타리아화할 것이고,
빈곤과 고용불안 등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지배는 노동, 농업만이
아니라 문화, 보건 의료, 환경, 언론 미디어, 교육 등 한국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확대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예상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사회가 이제
소수의 국내외 초국적 자본과 다수의 불안정한 노동층으로
재편되는 것을 뜻한다. 이 사회가 ‘자본 대 노동’의 구도로 좀
더 투명하게 정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진정한 ‘역사적
소임’이 놓여져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완성함으로써, ‘자본과 노동’의 모순 구조가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 민주화니 개혁이니 남북 관계니 --- 온갖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의 자본의 전일적인 지배 질서로 재편해
내는 것! ‘반자본’ 이외의 어떠한 정치적 전망도 현실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다시 한 번 노동자민중들이 급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 만약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역사에 공헌(?)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한 ‘자본과 노동’으로의
재편이 곧바로 현실에서 투명하게 자본과 노동의 계급투쟁으로
전면화하지 않을 수 있다. 황우석 사태나 월드컵 등에서 보듯
온갖 애국주의적인 동원이 대중의 에너르기를 분산시키고, 남북
문제라는 특수한 지형이 민족주의적인 교란을 가져 올 가능성이
있으며, 사회적 대타협이나 의회를 통한 점진적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는 사민주의적인 허상 등이 반자본 투쟁으로의 진전을
지연시키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 특히 노동자민중들이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반자본투쟁으로 진전해 나가지 못할 때, 자칫
1920~30년대 독일에서의 나찌즘의 등장이나 최근 서구에서
극우세력의 등장에서 보듯, 대중적인 파시즘화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70~80년대 민주화투쟁의 적자임을 자처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역사를 ‘민주와 반민주’,
혹은 ‘개혁과 수구’의 구도에서 ‘자본과 노동’의 구도로
진전(?)시켜 냈다면, 이 ‘자본과 노동’의 구도를 현실의
‘반자본 계투’로 진전시켜 내는 것은 바로 계급적 변혁적
좌파의 몫이다. 계급적 변혁적 좌파가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즉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과 고용불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민중의 현실을 반자본 계급투쟁으로 급진화시켜 내지 못할
때, 역사는 다시 한 번 예측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로
몰아갈 것이다.
‘87년 체제의 종언’ 이후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일부
사민주의자들의 바램처럼 ‘계급갈등의 제도화’가 아니다.
민족주의자들의 바램처럼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이나 남북간
평화로운 통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 주도의 ‘대중적
파시즘’화냐, 노동 주도의 ‘반자본 계투의 전면화’냐이다.
정세의 반전, 가능하다
어느 한 해 그런 해가 없었지만, 2006~7년은 한국 사회 전체가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기로에 직면하게 되는 해가 될 것이다.
2007년부터 시행될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시행과 산별노조로의
전환 때문은 아니다. 정권의 향방을 가리는 2007년 12월의 대선
때문에 그런 것은 더욱 아니다. 예상되는 남북관계의 중대한
진전(북핵문제의 해결 혹은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등)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여 한국 사회는 총체적 기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2단계 공세가 그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국내외 초국적 자본과 보수언론과 함께 신자유주의 동맹을
재구축하면서, 노동자민중진영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한미FTA 추진을 매개로 한국 사회 전체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구조조정을 전면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 길만이
한국사회가 선진 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과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이러한 공세는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로 고통받아 온
노동자민중들에게 새로운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선진 경제로의 진입’이니 ‘2만불 시대’니 ‘차세대
성장동력’이니 온갖 장밋빛 전망으로 덧칠한다고 해도,
‘사회양극화 해소’니 ‘사회적 대타협’이니 하는 ‘정치적
수사’로 뒤덮는다고 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지금의
노동자민중은 IMF 외환위기 때의 노동자민중이 아니라는 점이다.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에 나섰던 노동자민중들은 위기 극복의
결과가 다름 아닌 양극화, 즉 빈곤과 고용불안, 비정규직화라는
점을 뼈저린 체험 속에서 자각했다.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타협의 결과가 어떻게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되돌아 왔는지
직접 체험했다.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위한 증세가 부자들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결국 노동자민중들의 호주머니를 더 털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다. 경제의 발전이 오히려
임금을 억제하고 물가만 상승시키고, 고용 창출로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 노동자민중들이 아직
신자유주의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길 주저하는 것은
그들이 이러한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그래서 이러한 현실을 진정으로 뒤바꿀 수 있다는 정치적 전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을 중심으로 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2단계 구조조정 공세는 노동자를 비롯한
농민, 빈민, 청년실업자, 금융파산자, 자영업자 등 대다수
민중의 급진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그간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하위동반자 역할을 해왔던
시민운동진영도 한계와 위기에 직면하면서 ‘신자유주의
동맹진영’이냐 ‘노동자민중진영’이냐의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민족주의 진영 역시 이러한 선택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의회주의적 진보정치진영 역시 더 이상 의석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에 어떻게 복무하느냐에
따라 대중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이는 향후 1~2년에 걸쳐 노동운동이 사회적 합의라는 허구적인
유혹에 다시 빠져들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에 기초해서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대중투쟁전선을 구축해
낼 수 있다면, 농민 빈민만이 아니라 시민운동진영의 일부까지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전선을 구축하여
정세를 반전시켜 나갈 수 있는 지형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투쟁 전선을
대중적으로 재구축할 수 있다면, 이러한 투쟁은 필연적으로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이러한
투쟁은 시작되고 있다. 3월 28일 출범 예정인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그것이고, 만약 현실화된다면 4월 3일
예정된 민주노총의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과 현장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비정규개악안 저지! 로드맵 분쇄!
전국현장공동투쟁단’, 그리고 농민들의 쌀투쟁이 그것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그 시대의 미래였다.”
19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이념적인 지표를 상실한
채 만성적인 위기 공세에 시달려 왔던 ‘계급적 변혁적 좌파’는
이제 새로운 정세에 직면하고 있다.
한미FTA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정권과 국내외 독점자본의
2단계 구조조정 공세는 한국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전례없는
소수로의 부의 집중과 다수 국민의 빈곤으로 몰아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로 그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전략적 유연성의 수용으로
한반도를 둘러 싼 정세는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70~80년대 민주화투쟁의 적자를 자임하는 소위
‘민주화 개혁’ 세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지배세력의 일부로 편입해 버렸고, 시민운동은 ‘참여
정부’에 대한 환상 속에서 비판적 지지를 보내다, 최소한의
진보성마저 거의 소진되어 가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어떤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과 사회적 합의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다가 심각한 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96~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산물인 민주노동당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맞선 투쟁의 정치적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며, 노동자민중투쟁의 체제내화의 한
기제로 전락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세에서,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을 갖는 계급적 변혁적
좌파진영이 ‘변혁’과 ‘해방’의 정치를 공세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을 반제 반자본투쟁으로
급진화시켜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전망과 기획을 구체화시켜
나가야 한다.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운동과는 결을 달리하는
계급적 변혁적 좌파의 독자적인 정치투쟁 양식을 현실에서
구현해 나가야 한다.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저지,
그리고 ‘비정규입법’과 ‘선진노사관계 로드맵’ 분쇄는
계급적 변혁적 좌파진영이 지금 시기 정치적 조직적으로
집중해야 할 두 가지 핵심고리이다.
이 두 가지 투쟁이 현 정세에서 핵심고리인 이유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의 방향을 둘러 싼 총자본과 총노동간의 투쟁이고,
미제국주의의 동북아 재편전략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총체적 방향을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라는
정치투쟁이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어,
사회변혁투쟁과 생존권투쟁을 단일한 계급투쟁으로 진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현실화시켜
내고, 그 힘으로 노동자민중연대와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추동해
나갈 수 있으며, 나아가 동아시아지역에서의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국제연대를 가능케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내 활동가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정치적으로 훈련해 나갈 수
있는 투쟁 사안이며, 한국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태도와 입장을 구체화시켜 나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정치화’와 ‘시민운동의 적색화’를
현실에서 구현해 나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반자본투쟁으로의 진전이 불가피하고, 동시에 대안 사회에 대한
전망을 대중적으로 구체화시켜 나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민중운동 내부의 교란 요인을 극복할 수
있다면, 정세를 반전시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투쟁에서 계급적 변혁적 좌파진영의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정세를 반전시켜 낼 수 있다면, 그래서 한미간
신자유주의 동맹 구도에 파열구를 낼 수 있다면, 그래서 노무현
정권의 정권 재창출 구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한국의
계급적 변혁적 좌파세력은 노동조합운동 내에서의 전투적
분파에서 벗어나 대중적인 대안 정치세력으로 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전세계적인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투쟁의 진전에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80~90년대에 걸쳐 신자유주의로 고통받은 남미의 민중들은
잇달아 좌파 정권을 세우면서 중남미지역의 반제 반신자유주의
블록을 정권 수준에서 현실화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무슬림계 이주노동자들의 소요나 학생들의
‘최초고용계약법’(CPE) 반대 투쟁의 확산에서 보듯이, 선진
자본주의국에서조차 이제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중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라크민중들은 3년에 걸친 항쟁을 통해
미국의 침략과 점령정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세 변화, 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반제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진전
속에서,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저지, 그리고
‘비정규입법’과 ‘선진노사관계 로드맵’ 분쇄가
현실화된다면, 동북아지역에서의 정치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헤게모니 구축과 재편을 정세 돌파의 핵심고리로 바라보는
미제국주의에 중대한 타격을 줄 것이고, 이는 다시 ‘쌍둥이
적자’로 부도위기에 처한 미국 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도
촉발시켜 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전국적인 수준에서 이러한 정치투쟁의 방향을 제시하고,
현장에서 지역에서 각 부문에서 이러한 정치활동을 공공연하게
조직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그 명칭이 어떠하든
‘노동자계급정당의 맹아’일 것이다. 노동자계급 속에서 계급적
단결을 실천적으로 조직하고, 지역과 현장의 생존권투쟁을
전국적인 투쟁으로 연결시키며,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반제
반자본투쟁으로 진전시켜 나가려는 정치조직이 있다면, 그것은
그 수준이 어떠하든 ‘노동자계급정당의 맹아’일 것이다.
(여)성과 환경 문제를 반자본의 전망과 연결시키고,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투쟁의 진전 속에서 이 투쟁의 반제
반자본투쟁으로의 진전을 교란시키거나 왜곡하는 세력에 맞서
공세적인 이데올로기투쟁을 전개하고, 반제 반자본투쟁으로의
진전 속에서 21세기 변혁을 향한 전략과 강령을 구체화해 나가는
정치조직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자계급정당의 맹아’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맹아’는 ‘맹아’일 뿐이지,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정당’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기획과 실천과 투쟁의
산물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은 계급적 변혁적 좌파의
정치활동의 귀결점이 아니라, 그 출발점이다.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저지, 그리고 ‘비정규입법’과
‘선진노사관계 로드맵’ 분쇄라는 반신자유주의투쟁을
반자본투쟁으로 진전시켜 내기 위해, ‘개혁’과 ‘진보’의
한계를 뛰어 넘어 ‘변혁’과 ‘해방’의 정치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현 시기 계급적 변혁적 좌파의 정치기획이
집중해야 할 점은 바로 계급대중 속에서 공공연하고 독자적인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이다. 계급적 변혁적 좌파진영은 더
이상 무능과 무기력이라는 자조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바로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할 수 있는 정치적인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때 우리는 전체계급대중을 향해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그 시대의
미래였다.”라는 카피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