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반대가 초미의 과제
9월 11일 테러의 파장과 노동자․민중의 대응
채 만 수
부소장
지난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및 워싱턴의 미
국방성(펜타곤)에 가해진 충격적인 여객기 돌진 테러는
사망․실종자가 6,000여 명을 넘는 대참사였다.
그런데 TV 등을 통해서 세계 각국에서 이 믿기 어려운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달랐던 것 같다. 공격의
목표가 되어 엄청난 피해자를 낸 미 국민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낀 것은 당연히 엄청난 충격과 슬픔, 그리고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이 역시 세계적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느 정치가가 국회에서 “이번 테러를 계기로 일각에서
반미감정이 새롭게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는 보도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이 참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착잡’ 그것인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의 테러에
경악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수천 명의 희생자와 그
가족․친지들의 슬픔에 함께 아파하면서도, 그리고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도한 테러 행위를 극력 반대․규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 참사야말로 미 제국주의가 뿌린 대로 거둔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들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 날 11일 밤 (미국의 사건 현지 시각으로는 아침), 그러니까
그 엄청난 사태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한 TV 방송은
외신을 인용하여, 중동 국가의 어느 방송국에 “이번 테러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의 테러조직이 저질렀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아마도 거의 (사실상 전혀) 신빙성이 없는
‘제보’(?)겠지만, 사람들은 미 제국주의가 저지른 엄청난
범죄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미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이라는 알카에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행적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하다. 주지하듯이, 과연 누가 정말 이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고, 엄격히 비밀리에
기획․실행되는 테러리즘의 성격상 그것은 어쩌면 영원한
비밀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를 알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카니스탄은
희생양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중동 출신의 어느 조직에 의해서
저질러졌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국 정부 자신도, 그리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도 미국(과 그들의
동맹국들)이 근래에 특히 중동 지역 혹은 ‘이슬람권’에서
저질러온 엄청난 범죄행위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문명의 충돌” 운운하는 소리도
높고, 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표현의 지적 소유권자는 이번
테러를 가리켜서 “문명에 대한 야만의 공격”이라고 했다지만,
그러한 주장은 음험한 음모와 분노의 소리일 뿐이다. “문명의
충돌”이라고 하든 “문명에 대한 야만의 공격”이라고 하든,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미국이나 서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
다시 말하면 그들 국가의 독점자본가계급․세력이 중동 등
이슬람 세계에서 석유 등의 이권 확보를 위해서 저질러온
범죄행위를 은폐한 채 지금 현상적으로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갈등․충돌이 마치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이유에서 연유하는 양 주장하는 가당찮은 논리이다.
그들은 계급과 착취․억압과 그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충돌을 종교적․문화적 현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제2차대전 이후 ‘자유세계의 수호자’, ‘세계의
경찰’을 자임해온 미 제국주의는, 그리고 그 하위 동맹자로 된
이른바 ‘선진국들’은 경제적 이권을 유지․확보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각지에서 엄청난
범죄․테러․전쟁을 저질러 왔다. 이들의 국제적,
인도적 범죄행위는 일찍이 16․17세기부터의
노예무역․노예제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것은 모두
차치하더라도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세계의 각지에서, 특히
중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내전에, 그리고 특히
중동에서의 전쟁과 이스라엘에 의해서 저질러지고 있는
학살․테러 행위에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다. 물론 그 지역에 걸린 경제적인 이권의 확보․착취가
그러한 전쟁과 개입의 목적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들은,
그리고 특히 미국은, 정치적 불안정과 빈곤에 시달리는 세계의
인민, 특히 중남미 지역과 중동 지역 주민들의 원성의 표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본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은 이렇게 쓰고
있다.
“돌이켜서 미 제국주의가 지금까지 무고한 민중에 대해서
독자적으로 저질러온 대량 살육의 역사를 헤아리자면, 실로
열거할 수조차 없다. 베트남에서 장기간 지속한 북폭, 50만 명에
이르는 병력의 남부에의 투입에 의한 살육의 역사를 우리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이란을 적대시하면 이라크를 이용하고,
이라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대량의 미사일 공격과 공습,
마침내는 걸프만 위기시의 대학살(이것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
하에서 현재의 국무장관인 파웰이 합참의장으로서 지휘한
것이었다), 나아가 클린턴 대통령 시대의 유고슬라비아
민족분쟁에 개입한 베오그라드 대폭격을 상기하는 것만으로 족할
것이다. 바로 얼마 전, PLO부의장․PFLP의장의 집무실에
미사일을 발사하여 그를 살해한 이스라엘의 테러 행위를 묵인한
것은 과연 누구였는가?
미국의 권력자들은, 따라서 그 의도를 따르고 있는 매스컴은
자신들이 받게 된 피해에 관해 소란을 떨 수는 있지만, 그
역사적 경위 속에서의 스스로의 범죄사(犯罪史)에 관해서는
모르는 채 끝내고 싶은 것이다. 일단 역사를 정시하면,
그들이야말로 정치적 테러리즘의 원흉이고, 발생원(發生源)이며,
이미 그 일단을 보았듯이, 오늘날의 정치 테러리즘의 다수는
다름 아니라 자신들이 쌓아온 악업의 반영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미제의 ‘전쟁’ 계획 저지를
위해 평화의 행동을!」, 활동가집단 사상운동,
ꡔ思想運動ꡕ, No.658, 2001.9.15.)
이번 뉴욕과 워싱턴에 가해진 그 엄청난 테러가 이렇게 사실은
미국이 쌓은 악업의 대가이고 따라서 자업자득이라면, 그에 대한
미국의 정당한 대응은 당연히 이제까지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청산하여 선린․우호의 정책으로 전환하고, 가능하다면
이제까지의 착취․악업을 보상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제국주의의 길이 아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이번 테러를 “미국과 미국민에 대한
전쟁”이라며 대중의 맹목적인 분노와
국가주의․애국주의를 선동하면서, 그리고 “테러 반대냐,
옹호냐” 하는 이분법적 억지 논리로 세계 각국을 강제로
자신들의 편에 줄세우면서, 지금 언필칭 “테러와의 전쟁”을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더러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지금 인류의 머리 위로 예사롭지
않은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이 전쟁의 먹구름은, 앞에서 언급한 ꡔ사상운동ꡕ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아마도 1929년의 대공황에나 비교될 수
있을 세계동시공황”의 징후와 함께 오고 있다는 데에서 더욱
심각하다. 1930년대의 대공황을 제2차대전이라는
대파괴․살육을 통해서 탈출한 경험도 있어, 또 한번의
대공황의 징후 앞에서 지금 부시 행정부로 대표되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영국, 독일, 일본 등 그들의
추종․동맹자들은 자칫 인류 전체의 위기로 될 수도 있는
‘공황 구제 전쟁’의 유혹을 억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저들은 지금 한 가지 이유로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전쟁의
착수를 머뭇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전쟁이 가져올지도
모를 또 다른 대규모의 보복 테러들이 그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그러한 보복 테러의 가능성을 극히 높게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름 아니라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하여 문제의
테러단체들 상당수가 사실은 과거 80년대에 미국의 지원과
훈련에 의해서 대규모로 조직․양성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이 만만찮은 대규모이며 미국의 대량 살상 무기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미국은 보복 테러 그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닐
것이다. 지난 9월 11일의 테러를 빌미로 지금 대대적인 전쟁을
공언하고 있는 것처럼, 테러는 피에 굶주린 군산복합체에게 군비
확충과 전쟁의 좋은 빌미를 줄 뿐 그 자체로서 그들에게
두려움은 아닌 것이다. 그들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전쟁과 테러의 악순환이 가까이는 미국의 국내 정치에
미칠 영향, 그리고 넓게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자체에 미칠
영향이다. 말하자면, 보복 전쟁에 이어 예상되는 보복 테러의
악순환이 미국과 세계 각국의 노동자․민중을 새롭게
각성시켜 국내외의 반제국주의 혁명운동을 자극하지 않을까
가늠하고 저어하면서 미국의 지배세력들은 지금 본격적인 전쟁의
착수를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세계 각국의 노동자․민중의 치열한 반전
투쟁만이 미 제국주의, 군산복합체의 전쟁 책동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본의 매스컴에 의한 미친 듯한
전쟁 선동이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현지,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양심의 소리와
노동자․민중의 반전 투쟁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제국주의 군산복합체가 획책하는 전쟁 책동을 저지하는 임무에서
한국의 노동자 계급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특히 언필칭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이고 ‘인권 대통령’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서 보복 전쟁의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파병․지원을
선언하고 나선 것을 강력히 규탄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투쟁을 조직하여야 한다.
그 더러운 전쟁에 동참함으로써 직접적인 희생의 위험이나 그로
인해 당할지도 모를 ‘보복 테러’의 위험도 위험이려니와 지금
그 전쟁은 자칫 인류 전체의 위기를 초래할지 모를 대전으로
확전․비화될 수 있는 유력한 조건에 있다는 것을 대중에
선전하고, 그들을 반전의 대열에 동참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이 시기에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는 제국주의
전쟁을 저지하고 평화를 옹호하는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