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가계 빚 어떻게 보아야 하나
최근 언론들이 금융기관들의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 “97년 말 기업대출 부실로 외환위기가 왔다면 현재는 가계대출 부실이 제2의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가계대출 줄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감위는 가계대출이 많은 은행들에 대해 특감을 실시하겠다면서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금융기관들의 임원에 대해서 중징계하겠다는가 하면 재경부, 금감위, 한국은행이 대책반을 구성해서 5일단위로 가계대출을 점검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우리의 금융산업을 사실상 다 집어삼키고 있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외국의 언론들도 여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최근호는 “급증하는 가계대출이 한국경제의 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도 한국의 가계대출이 아직까지 위험한 수준은 아니고 통제가 가능하다는 외국자본과 국내 재벌연구소 등의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를 놓고 같은 편들끼리도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거나 아니면 금리인상과 가계대출 수혜자들을 압박을 위해 쇼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우선 지금 가계부채는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그 규모가 만만치 않은 정도라는 점과 금융자본이 자신들이 손해보지 않고 노동자에게 위기와 비용을 전가시키는 어떤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 방법이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어떻게 만들든지 그것은 그들에게 별 상관할 바가 되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가 그들 자신의 몰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가계 빚 증대는 노동계급의 빈곤화의 결과다
우선 저들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 가계 빚의 규모와 증가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자. 정부자료들로 확인해볼 때 우리나라의 전체 가계 빚은 지난 6월말 현재 397조 5천억 원으로 1998년보다 두 배 이상이 늘어났고 이것은 한 가구 당 2,720만원정도 되는 것인데 증가 속도로 볼 때 금년 말에는 3천만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표 1> 가계신용 총액 추이(연월 말 기준) (단위: 조원, %)
연도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6 |
가계신용
(증가율) |
211.2 (17.3) |
183.6
(-13.1) |
214.0
(16.0) |
266.9
(24.7) |
341.7
(28.0) |
397.5
(34.3) |
GDP 대비 |
54.5 |
50.9 |
50.5 |
56.2 |
64.8 |
72.9 |
개인가처분소득대비 |
82.5 |
71.9 |
75.5 |
86.9 |
99.8 |
? |
* 자료: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 및 자금순환분석
그런데 이렇게 가계 빚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이 악화되고 평균임금 수준이 낮아졌고 사회적인 복지수준이 대대적으로 후퇴해 빚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된 살림살이에 있을 것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더욱 격심해진 빈부격차가 노동자들의 살림을 더 어렵게 만들어 하위 3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저축률이 마이너스 3.4%라고 하는데 이것은 소득이 최소한의 필요한 소비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도저히 빚 살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과 이것이 쌓이다 보면 끝내는 살림이 완전히 거덜나는 상황까지 이르기도 하는 것이다.
금융구조조정이 가계부채를 촉진한 주범
그 다음으로는 지난 5년 동안 정부가 주도적으로 강행한 잘못된 금융구조조정이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 동안 정부는 금융기관을 합병시키고 소수의 대형은행으로 만들어서 모두 외국자본에게 넘겨버렸는데 이 과정에서 가계 빚이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선 정부는 외국자본이 시키는 데로 자기자본비율이라는 것을 일률적으로 적용해서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은행들이 앞을 다투어서 가계대출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가계대출은 기업대출에 비해서 은행의 중요한 평가기준인 자산건전성 산정에도 유리하고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기업대출처럼 한꺼번에 큰 손실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안전하기도 하고 예대마진(은행이 예금을 받아서 대출해주면서 발생하는 차액)이 기업대출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이익이 많이 나는 가계대출을 매우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가계대출의 예대마진은 3.7%고 기업대출은 2.8%임).
그리고 주식시장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은행에서 대출받지않고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직접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게 된 것도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금융구조조정으로 인해 은행의 주인이 외국자본들로 바뀌면서 그들의 탐욕스러운 이윤경쟁이 은행들로 하여금 수익을 많이 내는 가계대출에 집착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국민경제 차원에서 은행들이 가지고 있던 최소한도의 공적 역할이라는 외피마저도 완전히 무너져버리게 된 것이다.
또한 대형화된 독점은행들이 지역과 가계와 밀착해서 영업해오던 중소형 금융기관들의 영역을 철저하게 잠식하고 있는데 1997년 전체 가계대출 가운데 은행이 가지고 있던 비율이 26.3%이었는데 지난 2002년 6월말 현재 49.9%에 달하고 있어 얼마나 대형 독점은행들이 가계대출 시장을 잠식했는지 알 수 있다.
빚의 악성화와 만성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고용조건과 임금수준을 지속적으로 저하시켜왔고 의료, 교육, 주택 등 마땅히 사회적 책임이어야 할 것들을 모두 임금으로 해결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날이 갈수록 살림살이가 악화되어 기본적인 생활비를 위해 대출에 접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고 자본가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을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소비하도록 만들기 위해 외상으로 물건을 사게 만들고 돈이 없으면 대출을 받으라고 강제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인 것이다.
한편, 신용카드 대출은 가계대출의 연체비율이 대략 1.5%대인 반면 7.5%의 높은 연체율을 보이고 있어 TV 광고문구를 패러디한 ‘열나게 연체한 당신 떠나라’거나 ‘빚지고 사세요’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는데, 그 동안 금융기관들이 소득유무, 연령, 상환능력 심지어는 본인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신용카드를 남발해왔고 그 결과 국민 1인당 평균 신용카드가 4.3장 꼴이나 되었다.
그런데 은행의 가계대출 이자가 7% 초반대인 반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수수료는 무려 20%대에 달하고 있어 신용카드라는 것이 사실상 합법적인 고리대나 마찬가지이다.
<표 2>신용카드이용 주요 수수료율 현황(%) (2002년 3월말 현재)
가맹점 수수료 |
현금서비스 수수료(연) |
카드론 금리(연) |
할부 수수료(연) |
연체금리(연) |
2.5 |
12.5~28.0 |
8.5~25.0 |
11.5~19.0 |
22.0~29.0 |
* 자료 : 금융감독원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활비가 부족한 노동자들로 주로 현금서비스에 의존한다는 것이고 위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저임금 노동자들의 저축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갚을 수 없는 대출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자가 현금서비스를 통해 매달 지난달보다 늘어난 금액을 결제하다가 그것이 어려워지는 시점에서 연체를 하게 되고 신용불량자가 되는데 금융기관에서는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어 결코 달아날 수 없는 그를 불러들여 연체를 갚기 위한 새로운 대출을 해주게 된다.
물론 고리대 수준의 연체이자는 물론 금융기관에서 연체자를 찾아다니고 재산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들였던 비용까지 덤으로 얹어서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대환대출’이라는 것인데 결국 금융기관의 부실비율을 일시적으로 축소하고 부실화 시기를 연장하기 위해 연체자의 대출금액을 늘려놓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임금수준이 계속해서 저하되고 최소한도의 생활비조차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항구적인 부채로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고 노동자의 인생 전체가 그러한 금융부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빚을 얻어 빚을 갚는 노동자의 신세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압살하고 국민경제를 파탄시키는 금융착취와 투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이미 임금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고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기반마저 임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중의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급진전함에 따라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의 생계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과 퇴직금, 각종 연금, 보험 등을 추가로 그들의 이윤을 위한 도박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진전된 시대에 노동자들은 이중의 착취에 더해서 몇 푼 남지 않은 생계기반 전체를 저당 잡히는 신세가 되어 철저히 금융자본의 노예신세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항상적인 적자신세, 임금에서 지출되는 금융비용의 지속적인 증가, 결국 거지 항문에 붙은 콩나물을 뜯어먹듯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을 철저하고 악랄하게 착취하는 것이 가계 빚이 급증하는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본가들이 유포한 환상을 좇아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순진하게 주식시장으로 들어가 완전히 파산한 노동자들이 어디 한둘이며 국가가 벌여놓은 카지노, 경마, 경륜 등 각종 투기판은 어느 곳에서나 노동자들의 생애 전체를 일시에 털어먹기 위해 주변에 널려있지 않은가.
가계 빚이 늘어나게 된 것은 불안정해진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계기반 마저도 빨아먹으려는 금융자본의 본성에 기인하며, 그것을 촉진한 정부 금융구조조정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가계급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했기 때문에 가계 빚이 대규모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자본은 그 착취와 축적의 기반인 노동자계급의 파탄을 재촉한다는 측면에서 그들 자신의 몰락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가계 빚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면서도 또다시 가계대출이자율을 상승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의 피를 더욱더 빨아 들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배제되고 몰락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기반과 그들의 착취자체도 결국은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