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그 의미와 전망에 관한
단상
양 준 석
울산노동자신문
편집인
정세초점 • • •
2004년 9월 22일 노동부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21개 업체
울산공장 12개 업체 및 아산공장 9개 업체.
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5월 27일 금속산업연맹과
현자비정규노조·현자아산하청지회가 공동으로 불법파견
집단진정을 제기한 데 따른 결과였다. 나아가 현대자동차노조가
8월 20일 113개 업체를 상대로 집단진정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12월 16일까지 해당 업체 전체 10월 21일에는 전주공장
12개, 12월 16일에는 울산공장 101개 업체 불법파견 판정.
울산의 경우 9월 22일 판정이 내려진 12개를 포함한 숫자이며,
따라서 추가 판정된 업체 수는 89개.
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이로써 현대자동차는 울산·아산·전주 등 국내의 생산 공장 3곳
모두에서 대부분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해
왔음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불법파견으로 판정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숫자만 무려 122개 업체 1만여 명에 이른다.
현대자동차에서 생산 업무에 종사하는 사내하청은 이미 대부분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울산공장의 경우 1차 하청업체
전체(101개 8,400여명)가 판정을 받은 가운데 2·3차
하청업체들(18개 1,000여명)에 대한 진정이 조만간 제기될
예정이고, 아산공장의 경우 9개 업체가 판정을 받은 가운데 이를
포함한 14개 전 업체에 대한 진정이 현자노조에 의해 10월 21일
제기되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전주공장의 경우 사내하청 업체
12개 전체가 판정을 받은 상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에는
총무·간접·식당 등 비생산업무에 종사하는 사내하청도
수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들의 경우 아직
불법파견 문제가 쟁점화 되지 않고 있다.
제조업 전반에 만연하는 불법파견이 새삼스럽게 폭로되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불법파견 판정
그동안 제조업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판정을 둘러싼 투쟁이 여러
사업장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2004년에만 해도
금호타이어와 경주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고, 하이닉스·매그나칩 반도체의 경우 집단진정을 제기한
가운데 파업투쟁에 돌입하였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정은
이러한 일련의 투쟁들이 거둔 성과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은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단지
현대자동차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제조업 전반에
불법파견으로 사용되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넘쳐흐르고 있는데,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이 사실이 마침내 적나라한 현실로
폭로되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조업 전반에서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의 숫자가 아마도
정규직 숫자를 능가하는 규모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을
활용해 온 역사가 짧지 않지만, 그러나 지금처럼 생산에서
차지하는 사내하청의 비중이 정규직에 준하거나 그 이상을
차지하게 된 것은 IMF위기를 지나면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이 도입된 이후이며, 이제는 심지어 직접생산라인이
사내하청으로만 채워지는 것도 더 이상 희귀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제조업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내하청은 합법적인
도급으로 위장하고 있으나 사실 모두 불법파견이다. 마땅히
정규직이 일해야 할 자리에 저임금·무노조·유연고용을 이유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체 투입되어 있는, 경영상의 독립성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전형적인 ‘파견’이다. 다만 현행
파견법에서 26개 업종을 제외하고는 파견업무를 금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에는 강조하여 파견업무를
금하고 있기 때문에 ‘도급’이라는 합법적 외피를 뒤집어썼을
뿐이다.
‘불법’파견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정권과 자본
정권과 자본은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 대한 파견업무의
합법화를 간절히 원한다. 현재 치열한 논란을 벌이고 있는
노동부의 비정규 관련 노동법 개악안은 파견 업종을 전면
확대하는 내용인데, 이는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까지 파견업무를
합법화하기 위한 수순이다. 경총이 기다렸다는 듯이 “현장의
실정을 무시하고 있다”는 요지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정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대규모 불법파견이 만천하에 폭로된 지금, 이로 인한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 저들로서는 급선무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정을 전후하여 제조업 생산현장
전반에서는 전에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수년 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해 왔던 이러저러한
업체들이 불법파견의 소지를 없앤다며 온갖 호들갑을 떨고 있다.
긴급 지침이 떨어지고, 자체 감사가 진행되고, 공정을 블록화
한다며 일하던 자리가 바뀌고 일대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호들갑은 불법파견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폐하기 위해서이며, 특히 노동부가 제조업 전반에 걸쳐
불법파견 실태점검을 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각 업종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이른바 ‘불법파견 실태점검’을, 노동운동
주체가 없거나 부실한 대다수 사업장의 경우, 오히려 불법파견을
은폐하는 계기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파장의 중심은 결국 현대자동차
하지만 현 시점에서 불법파견으로 인한 파장의 크기를 결국
좌우하는 것은 현대자동차에서의 사태 전개라 할 것이다. 여타의
사업장들에서 아무리 불법파견을 은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적인 미봉일 따름이다.
현대자동차에서의 사태 전개, 특히 부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빼앗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떨쳐 일어서고 성과를
획득하는 만큼, 그 파장은 아직 숨죽이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여타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로 전파되어 나아갈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의 사태 전개가 강력할수록 그 파장이
전달되는 힘과 속도도 강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법파견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노동운동의 시선은
당분간 현대자동차를 향하여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핵심 관건은 사내하청 노동자 대중의 주체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노동부의 내부 지침에 의하더라도
파견기간 2년을 넘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 대법원의 판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인사경영상의 독립성이 전혀 없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경우 불법파견이 시작된 첫날부터 정규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부당한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려 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나 정당한 권리일 뿐만 아니라 현행 법률의
테두리에서 보더라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낸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는 이미 사회적으로 결정적인 명분을 획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떨쳐 일어서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 대중의 주체화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노동운동이 풀지 못한 난제였다. 19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시도가
줄기차게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지속적인 형태로 대중적인
주체화가 성공한 적이 없다. 가장 성공적인 조직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2001년 캐리어 사내하청노조였지만, 정규직
노조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일시적으로 대중적인 조직화가
이루어졌으나 이후 구사대로 전락한 정규직 노조의 공격 앞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원래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노조설립과 활동이 매우 어렵도록
설계된 고용형태라는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운동 자체가 불가능에
맞선 도전이라고 해야 할 일이지만, 대중의 주체화라는 점에서
사내하청은 같은 비정규직 가운데 특수고용·직접고용 등에
비해서도 훨씬 심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사내하청이 대중적
주체화에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보다 정규직의 하위
파트너로서 모든 일상이 전개되고 그로 인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자기비하적인 관념이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형태로
재생산된다는 데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다행히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전의 경우들과 달리
여러 가지 가능성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아산의 하청지회와
울산의 비정규노조가 그렇게 튼튼하거나 대중적이지는 못해도
현장 속에 최소한의 활동력과 조직력을 갖춘 형태로 1년 6개월을
훌쩍 넘어서며 생존해 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사건들을
거치며 일정한 수의 현장 활동가들이 사내하청 노동자들 속에
형성되었고, 불법파견 판정 이후 객관적인 정당성을 획득한
대중들이 빠른 속도로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
사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대중의 정규직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놓고 본다면, 정규직화를 전면에 내건 진검승부를
통해서만 대중적 주체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대중의 정규직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이제까지 노조활동으로 인한 신규채용 탈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왜곡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의 단결과 투쟁으로 집단적인 정규직화를
쟁취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즉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신규채용’이 아닌 ‘집단 정규직화’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이제까지 노조 조직력 확대에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던 ‘정규직화’ 문제를 오히려 노조 조직력
확대의 결정적인 무기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현자비정규노조, [불법파견 정규직화 등 총력투쟁계획 1호],
2004년 10월 12일)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노조 설립 이후 이러저러한 투쟁을
거쳐 최근에 대다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판정을
끌어내기까지의 과정은 한판 진검승부를 통해 대중적 주체화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달려 온 일련의 준비과정이었다고 할
것이다.
결국 진검승부의 장은 열렸고, 이제 승부를 좌우하는 것은 그
주인공이라 할 사내하청 활동가들의 역할이다. 가장 높은 헌신과
희생으로 역사적 소임을 다하려는 그들의 분투 속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대중의 주체화라는 도저히 넘지 못할 것만 같았던 그
벽을 넘어서는 감동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펼쳐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반성과 전환을 통해 계급적 단결로 나아가야 할 정규직
1998년 현대자동차 1만 명 정리해고 사태와 그에 맞선
노동조합의 투쟁은 IMF위기를 계기로 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면화를 둘러싸고 총노동과 총자본이 맞붙은 일대 격전이었다.
총노동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으나 결국 1998년의 승자는
총자본이었다. 이미 법제화된 정리해고는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이라는 현대자동차 노조도 막을 수 없는 시대의
지상명령이 되어 전국의 수많은 현장을 휩쓸었다.
1998년의 패배로 인한 충격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2000년 현대자동차 노조는 사내하청 대거 투입을 사측과
합의함으로써 ‘정리해고로 빈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운다’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기본 프로그램에 동의하고 만다.
그리고 이제 2004~2005년 현대자동차 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판정과 마주치고 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이제껏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밀려오기만 했던 총노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강력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만일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서 총노동이 승리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 계급의 거대한
총반격을 시작하는 상징적인 투쟁으로 충분히 자리매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투쟁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운동의 장렬한 산화에
그치지 않고 총노동의 승리로 나아가려면, 결국 관건은 정규직
운동의 역할이다. 그리고 만일 정규직 운동이 이 투쟁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1998년의 패배 이후 지난
6년여의 과정에 대한 솔직한 자기반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실질적인 계급적 단결을 지향하는 대전환의 결단으로 임해야
한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며, 특히 현대자동차 정규직 운동이 노동자 계급운동의
중핵으로 다시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법파견 판정 이후 지금까지 나타나는 모습으로는 정규직
운동이 진정한 반성과 전환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결코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정규직 운동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와 상관없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머지않아 모든 것을 걸고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국면으로 진입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투쟁은
어떤 측면에서든 한국 노동운동에 많은 의미를 남기는 투쟁이 될
것이다.
이 투쟁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이러저러하게
연관되어 있는 모든 개인과 세력들이 이 투쟁의 용광로 속에서
그 진위와 내공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