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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통력 연두회견에 대하여

현장에서 미래를  제106호
채만수

2005년 대통령
연두회견에 대하여

채 만 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이•렇•게•본•다•


1.
지난 1월 13일에 열린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은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재다짐한 자리였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내에서는 광범하게 확산되고 있는 실업과 빈곤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고백한 자리였다. 그리고 물론 금년에도 독점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자원과 역량을 총집중할 것을 다짐한 자리였다.
회견은 우선, “지난 한해, 좋은 일 궂은 일이 많았지만, 내내 경제 걱정만 한 기억밖에 없습니다”라는 기만과 위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탄핵’ 사태와 총선 등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투쟁,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 합의주의’ 및 비정규직 확대 추구 등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적 계급투쟁에 몰두해온 한해였으면서도 말이다.
2005년 대통령 연두회견에 대하여

회견은 그 서두에서, 예컨대, “문제는 서민생활”이라며, “기초생활보호자와 생계형 영세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신용불량자 해소대책”, “서민용 소형 임대주택에 대한 장기대출제도... 활성화”, “서민․중산층의 대학생 자녀 학자금... 저리... 장기대출제도”, “노인요양시설... 확충”, “사회안전망 전달체계... 개선”, “40만개의 일자리, ... 전국적인 직업안정망... 확충” 등등 ― “어려운 때일수록 서민대책을 더 확실하게 다져가겠습니다.”라는 다짐을 잊지 않고 있다. 고맙게도!
회견은 나아가, “우리 경제가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즉 “경기회복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이는 “바로 ... 양극화 문제”라는 사실도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해 수출이 30% 이상 증가하고 경제도 5% 가까이 성장했지만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며, 따라서 “양극화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는 동반성장 정책이 필요합니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어왔”으며, “이상 더 양극화 현상이 지속된다면 ... 사회통합의 기반마저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나오는 소리일 터이다.


2.
지난해의 연두기자회견에 비하면,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크게 확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기자회견의 내용은 사실상 그 모두가 ‘일자리 만들기’에 관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 역시 고맙게도!
그러나 지난해 대통령의 ‘일자리 만들기’는, 정부의 통계에 의하더라도, 정규직 취업자 수의 감소와 80만여 개의 비정규직의 확대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고용의 불안․불안정화의 확대, 빈곤의 심화와 사회적 양극화의 확대로 귀결된 것이다.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금년엔 필시,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크게 확장되어 있는 만큼 그만큼 더, 비정규직, 고용의 불안과 불안정화, 실업과 빈곤,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확대․심화될 것이다.
이는 결코 말장난도, 저주나 주술도 아니다. 기자회견에 나타난 대통령의 의지․정책의 방향과 성격이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이고, 독점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의지․정책과 관련한 문제의식 역시 지난해에 비해서 크게 확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좌파적 노동운동 활동가’, ‘좌파적 이론가’, ‘좌파적 연구자’임을 자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뿌리 깊은 소부르주아적 사고습성을 청산하지 못한 채,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에둘러서, ‘노무현’ 혹은 ‘노무현 정권‘과 모종의 ‘민주주의’를 연관짓기를 즐겨하고, 그리하여 지난해의 이른바 ‘탄핵 정국‘에서 범한 오류를 자기비판하기는커녕 정당한 비판에 경멸스러운 궤변과 적대를 조직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혹은 ‘노무현 정권’ 역시, 자본주의 국가 일반이 그러한 것처럼, 철저히 자본의, 특히 자본주의 발전의 현 단계에서는 독점금융자본의 도구, 신자유주의적 종복(從僕)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문제는 서민생활”이니 어쩌니 하는 수많은 너스레에 상관없이, 회견의 핵심은 역시 “정부도 기업들이 의욕을 가지고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더욱 힘쓰겠습니다”는 다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저런 너스레는 사실 대중의 이목으로부터 회견 핵심의 계급적 성격을 은폐하려는 연막에 불과한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 정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본에 봉사하려 하고 있으며, 그것이 노동자․민중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 것인가를 개략해보기로 하자.


3.
1) 회견은 우선, “경기가 좋아져도” “양극화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묘안이 없”다고 못박고 있다.
사실은 “경기가 좋아져도” 이 양극화는 “단기적으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해결할 묘안이 없다”고 했어야 보다 정직하고 사실에 맞는 말이었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속되는 한에서는”이라는 전제 위에서이지만!
노무현 정권은 물론 이 전제를 발설할 수 없다. 자칫 독점금융자본의 지배에 위협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물론 “장기적으로도 해결의 묘안이 없다”고 털어놓을 수 없다. 한편에서는 인식의 부르주아적 혹은 소부르주아적 한계 때문에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기만당하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중이 결코 그러한 장기적 미해결이라는 전망을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들은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해결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해결할 묘안이 없”다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대중에게 헛된 기대를 심어주고, 그리하여 그들의 불안이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2) ‘기술혁신’은 지난해에 이어서 금년에도 ‘일자리 창출’의 제일의 처방전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하여 “기술을 혁신하고 인재를 육성해서 중소기업과 같이 뒤처진 분야는 조속히 따라붙도록 지원하고, 직업능력 향상을 통해서 근로자간의 소득격차를 해소해 나가야 합니다”라고도 얘기하고, “고용과 성장이 함께 가야 합니다”라고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하에서는, 하물며 만성적인 과잉생산으로 자본 간의 경쟁이 극도로 치열한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기술혁신, 자동화 등은 상품의 가치․가격을 낮추고, 그리하여 자본의 경쟁력은 강화할지언정, 결코 취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취업 노동자의 수를 증대시키지는 않는다. 시장과 수요에 비해서 만성적으로 과잉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하여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효율의 증대만큼 생산을 증대시킬 수 없기 때문에, 기술혁신은 오히려 고용을 축소시키고, 실업과 빈곤을 증대시킨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구조조정’, ‘정리해고’, ‘명예퇴직’, ‘희망퇴직’ 등등, 갖은 부정직한 이름으로 대량해고가 대량으로 자행되고, 또 이것이 노동자들에 대한 압박수단이 되어 비정규직의 광범한 확산 등 노동조건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소이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기술혁신’을 ‘일자리 창출’의 주요 처방으로 제시하고 있다!

3) 게다가 금년에는 파렴치를 극해서 성장 중인 차세대의 교육조차 ‘아예 노골적으로’ 독점자본의 이해에 종속시킬 것을 다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관건은 기술혁신입니다. ... 그 바탕은 인재를 키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대학이 바뀌어야 합니다. ... 대학진학률은 ...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에서는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호소합니다. 더욱이 핵심 기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대학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현장 수요에 맞게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것은 물론, ... 취약한 부문은 스스로 구조조정해서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 이것이 교육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기본적 관점이고, 정책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은 산업이다”라거나 “교육도 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으로 압축되면서, 그러한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판공비 유용 등 사실상 파렴치한 행위 때문에 서울대 총장 자리를 쫓겨났던 인물을 교육부 장관에 임명하여 소란을 빗는가 싶더니, 이제는 숫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행했던 경제 관료 출신을 그 자리에 임명하고 있다. 하기야 진즉부터 교육은 자본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 그 주무부처의 명칭조차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지 오래고, 또 정도와 형태의 차이를 차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교육이란 원래 그러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4)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가히 가관이다.

(1) 대통령은 말한다. “산업간, 기업간 양극화와 더불어서 또 하나 해결해야 할 과제는 근로자간의 양극화 문제입니다”라고.
저들에게 비정규직의 문제는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아니라 “근로자간의 양극화의 문제”인 것이다. 기생적 독점자본가계급의 거대하게 증대하는 부에 대해서는 아예 시비하지 말라는 투다.
문제를 이렇게 “근로자간의 양극화의 문제”로 파악하니까 그 해법 역시 비뚤어진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용이 안정되고 근로조건이 양호한 정규직, 특히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와 협력이 절실합니다. 소수에 대한 두터운 보호보다는 다소 수준이 낮더라도 다수가 폭넓게 보호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이렇게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동안에도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에 대한 적의를 여러 차례 드러내 왔지만, 이제 그것을 연두기자회견에서 “모두 연설문”이라는 형태로까지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부나 자본으로부터 (두텁고 엷고 간에)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정부나 자본이 그 보호를 철회하거나 ‘낮추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보호란 일방행위이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보호를 철회” 혹은 “낮추겠다”고 얘기하는 대신에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와 협력이 절실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지 않은가?
대기업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과 양호한 근로조건’은 자본이 베푼 시혜, 곧 보호가 아니라 그들 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의 성과인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과 자본은 바로 그것을 증오하고 깨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조차도 바로 ‘87년 대항쟁 이전의 무권리 상태’로 되돌리고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되돌리고 싶은 저들의 원망(願望)이 그렇게 ‘절실’한 것이다.

(2) 자, 그야 어떻든, 그러면 ‘대기업 노동조합이 양보하고 자본에 협력’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소 수준이 낮더라도 다수가 폭넓게 보호받는”, 그러한 “바람직한” 상황을 맞는 것일까?
‘전혀 아니올시다’라는 사실은 3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의 투쟁과 그에 따른 일정하게 ‘양호한’ 노동조건의 확보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양극화‘의 원인이 아니라, 그나마 사회 전반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힘이기 때문이다. 경제주의와 조합주의, 그리고 조합 내부의 관료주의 등 오늘날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안고 있고 따라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투쟁은 양극화의 원인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힘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절실히 바라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와 협력”이 실현된다는 것은 그들 노동조합이 철저히 어용화되고 무력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회 전반의 노동조건을 끌어 올릴 어떤 주체적 힘도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서경석 목사, 송월주 지구촌공생회 대표이사, 손봉호 한성대 이사장 등 142명, 2004년 6월)이니, ‘2005년 희망 제안’(“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 김태길 학술원 회장, 서영훈 신사회공동선 대표,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강영훈 전 총리, 고건 전 총리, 이세중 변호사, 김재철 무역협회장, 박상증 참여연대 대표, 김성훈 경실련 대표, 오충일 목사, 김기원 방송대 교수, 이필상 고려대 교수, 김상원 전 대법관을 비롯한 종교·시민사회·학계·법조·재계·문화예술·언론 등의 각계 원로와 대표 165명”, 말미의 첨부 명단 참조)이니 하며, 자칭 혹은 타칭 ‘사회원로’라는 자들이 “대기업 정규직 임금동결”이니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 자제”니 하고, 촉구하고 나서는 꼴이라니!
저들은 마치, 예컨대 ‘2005년 한 해 동안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의 임금 총액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그 총액 가운데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가져가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비롯한 여타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린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경제학설사에서는 “임금기금설”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19세기 전반에 그 파탄이 공인된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수많은 ‘저명한’, 그리고 ‘진보적인’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라는 자들을 포함한 ‘사회원로들’이란 자들이 버젓이 그 파탄 난 이론을 들고 나와 떠들어대고, ‘진보적’임을 자처하는 <한겨레> 신문 등이 말하자면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그것을 대서특필하며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특히 김대중 정권 이래, 그리고 더욱 특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노동자계급에게 가해지고 있는 전(全)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공세의 한 형태이다.

(4) 다시 대통령 연두회견으로 돌아가면, 대통령의 눈에는 필시 (실업자는 물론이겠거니와)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고용 불안, 그리고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 노동자 개개인의 ‘기술 부족’, ‘직업능력 부족’이다. 그리하여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개개인의 직업능력을 개발하는 데 있습니다.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미취업자 등에 대한 직업훈련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각자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해서 더 좋은 일자리나 취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여러분도 능력 개발을 통해서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여가야 하겠습니다.”
이야말로 고용 불안과 저임금,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더 없는 모욕일 뿐 아니라, 정말 기가 막히게 파렴치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수많은 기업, 수많은 공장에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똑같은 기술과 똑같은 ‘직업능력’으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에 비해서 엄청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데도, 마치 어제 달나라에서 오기라도 한 것처럼 엉뚱한 얘기를 ‘신년기자회견’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모두 연설문’이라는 공식적인 형태로 지껄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5) 지난해 9월 이래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 확대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로 되어 있고, 그리하여 그 입법의 저지를 위한 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그런데도, 그 법안의 성격과 그것이 입법되었을 때 노동자들에게 미칠 엄청난 악영향을 모를 리 없을 법률가 출신의 대통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슨 커다란 인심이라도 쓰고 커다란 은혜라도 베푸는 듯,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조속히 통과돼서 정규직과의 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주무 노동부 장관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에게 그 입법을 기필코 관철시키라는 암묵의 지시를 그렇게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세라,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2월 임시국회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기필코 관철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너희의 생명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죽음의 은혜를 베푸리라!” ― 이것이 지난해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탄핵무효”를 외치며 떠받든 노무현 정권이 노동자․민중에게 전하는 복음인 것이다.

5) 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정치개혁’의 일환이겠지만, 회견은 ‘부패청산’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정치부패를 근절하는 전기가 마련됐지만” 운운하면서 근거 없는 정치선전을 늘어놓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실제로, ‘왼팔’이니 ‘오른팔’이니 하며 수족과 같이 부리는 사람들조차 부패에 얽혀 교도소를 드나드는 판에 “참여정부 들어 정치부패를 근절하는 전기가 마련됐”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게다가, “부패도 문화”이고 “확실히 뿌리 뽑기 위해서는 제도개혁과 함께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하며 “시민적 통제야말로 가장 강력한 부패 추방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최근 시민사회에서 제안하고 있는 ‘반부패 투명사회 협약‘은 매우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니, 도대체 부패가 만연한 것이 소위 ‘반부패 투명사회 협약’ 같은 게 없어서란 말인가?
앞에서 언급한 이른바 ‘사회원로들’이 그러한 것처럼, 여기서 말하는 ‘시민사회’ 즉 ‘시민운동단체들’과 그 주요 인물들 역시 ‘노무현 정권과 한통속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여기서 읽으면 지나친 억측일까? 하기야, ‘사회원로들’이나 이른바 ‘시민운동단체들’의 주요 인물들이래야 그 인물이 그 인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6) 회견은, “선진경제로 가려면 개방과 혁신 또한 필수적”이라며,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다자무역체제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방”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도 확고히 표명하고 있다.
“농어민 여러분도 개방의 파고를 이겨낼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거나, “쌀 농가 소득안정 대책을 적극 추진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겠”다는 등으로 말하는 것으로 봐서도, 그러한 개방이 농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고, 사실은 그러한 개방이 농민뿐만 아니라 노동자는 물론 영세자영업자들에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도 말이다.
물론 그러한 피해가 모두 독점금융자본의 이익으로 되어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4.
회견은 대통령의 회견답게 국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진한국” 운운하며, “2008년경에는 국민소득 2만불 시대가 열리고, 2010년에는 여러 지표에서 선진경제에 진입하게 될 것”이며, “이르면 다음 정부가 출범할 때, 선진한국호의 열쇠를 넘겨주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이다.
근거 없는 낙관이나 그냥 허풍만 떤 게 아니다. 다음과 같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의 한국경제의 상황과 위상을 묘사하면서, 그에 기초하여 “이제 우리 경제도 선진경제를 얘기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경공업 시대를 지나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같은 중화학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정보통신과 전자산업에서는 선진국도 부러워할 만큼 앞서가고 있는 분야가 많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어느새 선진국 문턱에 바짝 다가서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다소 과장이 섞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로서야 많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국경제,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한국자본주의는 그만큼 발전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저들이 ‘선진한국’이니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니 할 때 결코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국민소득 2만 불”이란 단지 산술평균일 뿐이어서 그 시대가 오더라도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실업과 고용 불안, 빈곤에 시달릴 것이며, 심지어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연소득 2천 불도 안 되는 빈곤에 시달릴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반적인 빈곤화를 조건으로 해서만 ‘선진한국’은 올 수 있는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노동자․농민․도시영세자영업자를 포함한 광범한 민중에게 빈곤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개방, 비정규직 확대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한/노/정/연




[첨부] 2005 희망제안 서명자 명단
(<한겨레>, 2005년 1월 7일에 의함.)
◇ 종교계 = (가톨릭)김수환 최창무 함세웅 문정현 송기인 김병상 김병도 황인국 신현봉 박병기 김택암 안충석 양홍 황상근 안승길 홍학기 (기독교) 강원용 박형규 김지길 오충일 김상근 정철범 이해학 홍성현 문대골 박덕신 금영균 김창락 정지강 전병호 백남운 김영주 인명진 채수일 박명철 정철범 (불교) 청화 효림 지선 법륜 성관 정각 (원불교) 이선종
◇ 시민사회 = 강영훈 고건 김상희 김소선 김재옥 김진현 김형기 박광서 박상증 박영숙 박영신 박원순 박은경 박재일 박종렬 서영훈 송보경 신혜수 심영희 양길승 오재식 윤수경 윤준하 이강현 이김현숙 이삼열 이재은 이정자 이종만 이필상 이학영 이형모 이효재 장문하 정강자 정현백 조성우 최상천 최열 한완상 홍재영 윤영규 이명안 김규원 배다지 김상찬 이정이 김동수
◇ 학계 = 김태길 변형윤 신용하 김윤환 이종훈 이시재 임길진 임현진 장영철 조동성 최재천 박진도 문수언 이돈구 조인원 윤경로 이만열 이돈구 조우현 이혜경 김진수 감정욱 강만길 손봉호 신인령 김성수 박호근 안병만 어윤대 이재규 최현섭 김영호
◇ 법조 = 한승헌 이세중 김창국 김상원 최병모 강지원 이석태 오세훈
◇ 재계 = 김재철 김정태 김용구 문국현 서두칠 차중근 신창제 김승유 유상옥
◇ 문화예술 = 백낙청 김정헌 신경림 승효상 이각표 김후란 도정일 이윤기 강민 이정섭 박종철 유혜자 유자효 황금찬 김용택 신달자 임옥상 성춘복 이경희 전옥주 조병무 임진택 조상호
◇ 언론 = 고희범 홍석현 채수삼(이상 165명)

2005-0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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