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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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며
 세상만사/

현장에서 미래를  제115호
이영민


세상만사

한해를 돌아보며

이영민 / 철도 노동자




2005년이 다갔다. 정신없이 살았다. 후회는 없다. 할일은 여전히 태산이다. 밀린 숙제도 많다. 피하지는 않겠다. 허덕거리지도 않겠다. 나도 이제 오십이 내일 모레, 나이에 걸맞게 여유있고 넉넉한 활동가가 되고자 할 뿐이다.

더 고집스럽게 되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점점 더 현실과 타협하기 마련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 술자리에서 단호하게 술을 거부하게 되었다. “안 마셔. 강요하지 마.” 고기도 먹지 않게 되었다. “고기 싫어. 너나 많이 먹어.” 원래 성질 더러운 걸 아는지라 강요하지도 않는다. 좋지 않은 점도 있다. 전철에서 술에 취해 꺼떡거리거나 큰소리로 떠드는 인간들을 보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 얼마나 억눌려 살았으면 술기운을 빌어 저 지랄일까. 불쌍한 인간 같으니.” 점점 더 편협해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과 원치 않는 일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안 해, 싫다고 했잖아.” 이러면 정이 떨어졌는지 두 번 다시 권하지 않는다. ‘몸으로 때우는 게 전부’라는 것도 깨닫고 있다. 몸으로 때우지 않고 훈수 두려 하는 인간을 값어치 없게 생각한다. 단, 천재적인 이론가들은 제외. 그들은 천재니까 몸으로 때우는 것보다 이론으로 기여할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간부들이 점점 더 눈에 보인다. 적당히 적당히, 엄중한 현실과 정치적인 책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간부들을 보면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럴 것이면 편한 일을 찾지 뭐하러 골치 아픈 노동조합 일을 하나.

게으른 간부들은 쓸모가 없다. 이런 간부들은 이십여 호쯤 되는 집성촌에 보내서 농사를 짓게 하고 싶다. 한철 농사만 끝나면 “그놈은 농사를 입으로 짓지, 손발로 짓는 놈이 아니여. 그놈 논밭에 가봐. 꼴이 어떤가.” 소문이 나서 그 동네에 붙어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내 동생은 촌에서 농사를 짓는데 협동조합에 취직을 해서 농사일과 직장 일을 번갈아 했다. 세달 하더니 당장 때려 치웠다. “왜 농사가 잘 안 되었냐?” “농사일을 집사람이 주로 했는데. 나도 저녁하고 주말에 거들었지. 벼농사가 이십 프로는 망쳤어. 그것보다 내 논 앞을 지나는데 동내 사람들 보기 부끄럽더라고, 벼가 비실비실 하니까.”

비정규직 전담자가 되었다. 새마을호 투쟁경험이 있다고 떠맡긴 것이다. 새마을호, 철도매점, KTX, 정비창 비정규직 투쟁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나는 정규직 사업과 비정규직 사업의 차이점을 잘 알지 못하겠다. 어떤 일이든 일반적인 원칙이 있고 특수한 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감안할 줄 알면 비정규직 사업이라고 하여 벌벌 떨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가는 일이기 때문에 결단력과 과감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교와 친하게 되었다. 선불교와 노장사상이 친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신건강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불교와 친하게 되었으므로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노장사상과 친하게 되었으므로 마음을 비울 줄 알게 되었다. 영삼이가 노장을 알았다면, 그리고 황아무개가 그것을 알았다면 말년에 그런 곤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다.

모든 일이 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 너는 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지 못하는 일. 이것을 깨달은 게 올해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젊은 여성 동지들(미인이라 칭하는)과 사업을 하다 보니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경구가 왜 절실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중년을 넘어 노년기 초입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도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뒷이야기>

개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어미가 되었다. 귀여운 강아지를 다섯 마리 순산했다. 후배간부가 “동물 새끼 받는 법”을 인터넷에서 공부하여 밤새도록 받아냈다고 한다. 동물 보호협회에서 상을 주어도 부족함이 없겠다. 어떻게 키우느냐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현장에서 세 마리를 가져가기로 했다 한다.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 필요하신 분 공짜로 드립니다. 단 품종은 보장할 수 없음. 한 마리는 여전히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데 점점 더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 나를 보면 반갑다고 꼬리를 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놈을 좋아하지 않는다.

새마을호 승무원 가운데 정규직이 된 두 명은 비정규직 집회나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나머지 조합원들도 지침을 잘 지키는 우수 조합원들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활동가 한 두 명이라도 건지면 그 투쟁은 성공”이라는 식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활동가를 건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평가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새마을호 투쟁은 문제도 많았지만 비정규직 조직사업에 유력한 근거로 선전되었다. 우리는 왜 늘 대중을 강조하면서도 대중적 평가에는 인색한 것인지.

KTX 승무원 투쟁은 여전히 순항중이다. 결정적인 고비를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고비를 넘기기 위해 간부 정예화 사업과 조합원 교육사업을 더 진행해야 한다.


이것으로 세상만사는 그만 끝입니다. 그동안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는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05-12-28 18: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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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금 더하시지... 재밌게 / 2006-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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