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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부자들의 성녀

현장에서 미래를  제27호
채만수

아래에 소개하고 있는 두 편의 글은 연구소 채만수 부소장의 글로 ꡔ한겨레21ꡕ 논단에 실렸던 글이다. 첫번째 글은 얼마전 모든 언론이 떠들석하게 다뤘던 테레사 수녀의 죽음을 통해 그 이면을 들여다본 글이고, 두번째 글은 AMRC(Asia Monitor Resource Center) 워크샵에 참석키 위해 필리핀에 가서 겪었던 일을 소재로한 글이다. 짧지만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 수려한 글이라 회보에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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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부자들의 성녀


마더 테레사, 부자들의 성녀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아귀다툼의 이 삭막한 세상에서 어려운 이에게 베푸는 적선은 칭송할지언정 훼자하고 헐뜯을 일이 아니다. 하물며, 적선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음에랴!
그리하여 아마도 ‘살아 있는 성녀’, ‘빈자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가 숨지자 신문과 방송은,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 또 그들도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아마도 9월 13일 캘커타에서 국장으로 거행된 장례에 정말 기라성 같은, 왕자들, 여왕들, 대통령들, 영부인들, 수상들, 대사들, 저명인사들, 조문특사들이 불원천리 달려와 그렇게 조상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하늘도 울고 땅도 우는’(?) 속에 매몰차게 쏘아 부치는 한 목소리("Workers World", 97. 9. 25)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그 목소리는 묻는다. 왜 세계의 부자들은 유독 마더 테레사를 그토록 사랑했던 걸까? 대자본의 매스컴들은 왜 무수한 지면과 시간을 들여 그녀를 본받아야 한다고 야단일까? 마더 테레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왜 자기나라의 빈민들에게는 냉담하기로 악명 높은 걸까? (지난 여름 ‘시민단체 대표’로서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움직임에 그토록 적의를 드러냈던 이가 한국 조문사절단 대표였음도 그리 보면 우연만은 아닌지 모르겠다.) 1백만 명의 빈민들이 길거리에 늘어서 애도하리라던 매스컴의 예측을 배반하고 왜 실제는 그 5%도 안되었는가? 가난한 이들은 은혜를 모르는 것일까? 그녀를 그토록 유명하게 한 감동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왜 ‘살아 있는 성인’이라 불렸으며, 그토록 많은 인도주의 상과 노벨평화상을 받았는가? 등등
장례식 전날, 그녀의 후계자인 니르말라 수녀는, “가난은 아름답다”던 마더 테레사의 견해를 재확인했다. 그녀에 의하면, 테레사는 가난의 원인이나 사회환경을 바꾸는 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테레사에게 “가난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었고, 따라서 그녀는 “가난을 올바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심을 믿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세계 각지의 부자들이 다투어 찬양한 마더 테레사의 메시지였다. “가난을 받아들여라!” 그들 부자들에게는 참으로 거룩한 메시지이기에!
마더 테레사는 정의를 말한 적이 없다. 그녀와 그녀가 캘커타에 세운 ‘자선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 ‘사랑의 선교회’는 의도적 오역?)는 빈민, 죽어 가는 이들, 고아들을 돌보는 데에 자신들을 희생했지만, 그들을 조직하여 권리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게 하지도, 의료․연금․교육․최저임금․노동조합 등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불가촉 천민’에 대한 가혹한 카스트적 차별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유력한 부자들은 그녀를 사랑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포옹하고, 바티칸의 국무장관이 그녀의 장례미사를 주관했지만, 로마 카톨릭에서 정말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많은 신부와 수녀들은 추방․억압당해 왔다. 토지 없는 소작농민들과 가난한 도시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중․남미 ‘해방신학’의 투쟁적인 신부와 수녀들은, “가난과 질병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마더 테레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가난의 원인은 인간의 필요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 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위해 빈민들을 조직하고 지원한다.
마더 테레사는 해방신학의 노골적인 반대자이자 아이티의 두발리에 같은 독재자의 친구․지지자이기도 하였다. 그녀가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도 교황 요한 23세와 60년대의 바티칸 제2공회의 보다 자유주의적인 사고에 대한 반대자로서였다. 아일랜드가, 유럽 유일의 이혼 및 재혼 금지 헌법규정을 철폐할 것인지 국민투표를 했을 때에는 서둘러 달려가 가난한 아일랜드 여성들에게 ‘변화는 죄악’임을 강론하기도 했다.
‘자선의 선교회’ 본부가 있는 캘커타는 약 300년 전에 영국동인도회사가 세운 식민주의의 중심지이자 아편무역항이었지만, 그 식민주의를 끝장낸 폭발적 민중운동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은 주민 1천1백만의 공업도시이자 인도 최대의 항구도시이며, 주민의 약 3분의 1이 슬럼에서 살고 2백만 명 이상이 ‘홈리스’로 떠도는 빈곤의 도시로서, 인도에서 가장 크고 전투적인 노동자계급이 총파업을 조직하곤 하는 저항의 도시이다. 생활수준을 개선하고 부당한 사회에 양보를 강제할 가능성만 보이면, 수십만․수백만이 거리로 나서 시위를 벌이곤 하는 도시이다.
이렇게 계급의식이 높은 도시에서 빈민들은 ‘가난을 받아들이라’는 마더 테레사의 메시지에 보내는, 특히 서방 언론의 갈채를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부자와 권력가들이 그녀를 ‘성인’으로 떠받들 때, 캘커타와 세계의 빈민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축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끝장낼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ꠏꠏꠏ 산 자를 위해서 적었다.




코리안인베스터스아브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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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인베스터스아브루탈


수백년간의 직․간접적인 식민지 착취로 빈곤이 가득한 마닐라지만, 비행기 위에서 보는 야경은 거대한 그림이었다. 필시 그 땅을 영구히 식민지로 지배하겠다는 야무진 꿈의 한 표현이었을 도시계획의 산물인 시내 중심가의 거대한 원형 도로와 그로부터 뻗어 나간 방사형 도로의 불빛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런데 현지의 노동자들은 그 도시를 거리낌없이 ‘끔찍한’(terrible) 곳이라고 불렀다. 극소수의 엄청난 부자와 절대 다수의 빈민들이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인구 1천7백만명의 마닐라는 언뜻 보기에도 정말 그러한 곳이었다. 켜켜이 쌓여 있는 빈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길거리에 주저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언가를 먹고 있는 바짝 마른 사람들의 군상, 젖먹이를 안은 채 도로 한 복판에서 자동차 문을 두드려 구걸하는 젊은 엄마들(?) 등등. ‘과연 이들의 삶에 어떤 희망이 있는 걸까?’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극히 피상적인 관찰이나 편견에서 오는 것이다. 대지주들의 토지독점과 봉건적 수탈, 그들이 다른 한편에서 펼치는 자본주의적 착취와 부패, 그들을 엄호하면서 자연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제국주의, 그리고 이러한 착취․빈곤․부패를 보증하는 정치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필리핀 민중(Bayan)의 투쟁과 그들의 검고 그윽한 눈에 담긴 결연한 투지와 낙관. 이것들을 보게 된다면 이제, ‘과연 이들의 삶에 희망이 있는 걸까?’하는 의문은 당장 빈곤과 고통에 시달리며 싸우고 있는 민중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강요하는 그들 사회의 지배자들과 제국주의자들을 향해서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얘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바로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홍콩의 한 사회운동단체가 주관하는 ‘지구화시대의 노동자 권리증진을 위한 워크샵’ 현장인 마닐라 교외의 한 노동자수련원에 한국의 우리 일행이 도착한 것은 저녁 11시 경. 동남아 각국과 멕시코에서 온 20명 정도의 노조지도자, 노동운동 활동가,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변호사, 교수 등이 모여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다’는 등의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얘기를 계속했는데, 한 5분쯤 지났을까, 일행 중 한 명이 아직 화제에 끼여들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안했다는 표정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그 첫마디가 나를 아연 긴장시켰다. ꠏꠏ “유아프럼코리아?(한국에서 오셨지요?) 코리안인베스터스아베리브루탈(한국의 투자자들은 아주 잔인해요).”
말문을 연 것은 태국에서 온 한 여성노동운동가였는데, 그의 말을 신호로 여기저기에서 “코리안인베스터스아브루탈! 코리안인베스터스아브루탈!” 소리가 잇달았다. 베트남에서 온 두 사람은 60살 전후의 나이 때문인지 조용히 웃고만 있었는데 내가 “베트남에서는 어떻느냐?”고 묻자 그 대답은 “올쏘노토리어스(역시 악명 높지요)”였다. ‘한국의 여성노동자와 그 운동의 실태’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있던 때에도 참석자들의 주요 관심은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내의 ‘이주노동자’(외국인노동자)의 실태와 그들에 대한 기업의 잔인한 처우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최근 동남아 국가들에는 일본, 대만, 홍콩, 한국 등 주로 동아시아로부터의 투자가 많은데, 노동자들에 대한 그들의 처우는 아주 형편없고 때로 잔혹하다는 것이다. 기아임금에 안전이나 보건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거나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대개는 주야 맞교대로 장시간 노동이 강요되고 있고, 폭행과 무단해고가 횡행하는데, 일본의 자본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고, 대만과 특히 한국의 자본이 가장 잔인하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행동권을 보장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노동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법들이 있지만, 외자유치에 급급한 정책 때문에 억압적 규정 외에는 모두 사문화되어 있고, 당연히 산재사고도 많아 과로와 사고로 죽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보고되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장을 방문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마닐라 근교의) 한국자본의 공장에는 한 군데에도 노조가 없기 때문에 방문 교섭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들은 다행히 문제를 ‘한국’ 혹은 ‘한국인’의 문제로 파악하는 국가주의적 사고 대신에 ‘자본의 착취’, ‘제국주의적 독점자본의 하청업자’(subcontractors) 등으로 파악하면서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동남아 노동자계급간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 자본은 특히 잔인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거듭거듭 제기했다.
“한국의 자본이 동남아 등 해외에서 그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국내에서 외국 이주노동자들에게 벌이는 잔혹한 착취를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단순히 초계급적인 인권문제로서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 대한 계급적 공격으로 인식할 때 상황은 바뀔 것이고, 그를 향해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기껏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이었다.

1997-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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