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들어가는 투쟁
-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철회투쟁 -
이달의 참관기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철회투쟁
김 성 민
울산노동교육정책협회
정리해고에 맞서 대규모 농성투쟁에 들어가다
올초부터 조업단축과 일방적인 희망퇴직 실시 등으로 고용불안을
야기시키면서 노동조합을 압박해 오던 현대자동차 사측은
노동조합과 합의한 3차 희망퇴직기간이 끝나자마자 6월 29일
노동부에 4,830명에 대한 정리해고 신고를 내었고, 노동부는
다음날 이를 접수하였다. 이에 노동조합은 정리헤고를
철회하라면서 두 차례에 걸쳐 시한부 총파업 투쟁을 벌였지만,
사측은 오히려 7월 13~15일 동안 4차 희망퇴직을 일방적으로
실시하면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노동조합은 사측의 강력한 밀어붙이기 앞에 7월
14일부터 전면 총파업투쟁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투쟁을
벌이면서도, 7월 16일 정리해고를 철회한다면 각종 복리후생비
삭감 등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양보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한 어떠한 양보안도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사측은 7월 20일 휴무를 실시하고 다시 5차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투쟁대오의 동요를 유발하였다.
이러한 사측의 태도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7월 20일 출근하여
공장별로 유리창을 부수거나 집기를 들어내 불태우는 등 매우
격양된 모습을 보였다. 노동조합도 사측의 태도가 완강한데다가
휴가기간이 다가오는 등의 일정을 감안하여 즉시 현장내
천막농성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노동조합의 지침에 따라
5천여 조합원들은 공장 출입문들을 중심으로 천막을 치면서
농성투쟁에 들어갔고, 가족대책위도 정문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동참하였다. 이날 저녁 조합원 집회에서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삭발식을 가졌으며, 위원장은 자른 머리를 관속에 집어
넣으면서 “이 관에 뭍히는 한이 있더라도 정리해고는 반드시
철회시키겠다”는 결연한 투쟁 의지를 밝혀 조합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이헌구, 윤성근, 정갑득 세 명의
전임 위원장들도 이날 집회에 이어 굴뚝 고공농성에 들어가 더욱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여기에 대응해 사측은 휴무를 7월
23일까지 연장하였다.
사측과 경찰의 탄압 속에서 지역투쟁 열기는 오히려 확산
7월 22일에는 지역 활동가 16명이 소위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연행되어 그중 14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23일에는 같은 혐의로 김창현 동구청장까지
구속되었다. 현대자동차 투쟁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명확한 대규모 조직사건이었지만 정권과 공안기관의
의도와는 달리 투쟁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7월 22일, 23일, 24일 계속 지역집회를 잡고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철회와 공안탄압 분쇄를 위한 연대투쟁의
의지를 다져나갔다.
사측은 다시 휴무를 7월 27일까지 연장함과 함께 7월 28일을
기해 정리해고를 일방적으로 실시할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공권력 투입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사측은 7월
28일 조업재개를 시도하여 아침출근 시간부터 대규모로
관리자들을 동원하여 각 정문별로 무력시위를 하는 한편, 2공장
아토스라인을 돌리기 위해 조반장과 관리자들을 대거
투입하였다. 그리고 경찰도 현대자동차 주변에 경찰병력을
배치하여 폭력사태 발생시 즉각 투입될 것임을 밝혔다. 노동조합
사수대의 강력한 저지로 조업재개에 실패하고 오히려 조합원들이
집회에 대거 참여하는 결과를 가져오자 사측은 다시 휴무를
실시해 버렸다. 그리고 7월 28일 급여통장에 해고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1,600여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하였다.
또한 노동조합 간부 및 대의원, 현장활동가 등 1백여명에 대해
고소고발, 징계회부, 재산가압류 신청 등의 방법으로 공세를
강화해 나갔다.
이러한 가운데 7월 27일 교섭체결권 문제로 협상에 진전이 없던
태광산업과 인수합병과정에서의 고용승계문제로 투쟁하고 있던
현대알루미늄이 전면파업에 들어가면서 지역투쟁의 열기는 더욱
확산되었다.
성과없는 중재단의 활동과 휴가기간 농성투쟁의 지속
7월 30일 노무현 부총재를 중심으로한 국민회의 중재단과 7월
31일 노사정위원회 중재단이 현장을 방문하여 중재활동을
벌였지만 노사 양측의 입장만을 확인하였을 뿐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8월 1일부터 9일까지 휴가가 실시되자 3천여 조합원들은 휴가를
반납하고 농성투쟁을 계속 벌여나갔다. 노조에서는 휴가기간
동안 어린이 여름학교, 노동영화제, 특별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조합원과 가족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었고,
매일 저녁 집회를 개최하면서 투쟁결의를 다녀나갔다.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던 태광산업에 구사대가 난입하여 안상하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간부가 폭행당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자
즉시 2백여명의 오토바이 기동대가 파견되여 연대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편 노무현 부총재의 중재활동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기존
양보안 외에 상징적 정리해고 수용, 추가적인 임금양보,
노사대화합선언 등 추가양보안을 제출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쟁점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현장조직
민투위는 유인물과 조직원용 홍보물을 내면서 추가양보안의
문제점과 노동조합 운영과 결정과정에서의 비민주성 등을
비판하였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정리해고가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자”, “완강하고 아름다운 투쟁을 계속 벌여나간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등 투쟁의 결의는 계속 밝혀 나갔다. 한편
휴가가 끝나갈 8월 8일부터 공권력 투입방침이 공공연히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긴장감이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휴가 이후 공권력 투입임박설 속에 긴장감으로 투쟁동력 상승
휴가 이후 첫출근인 8월 10일 아침 출근시간부터 현대자동차
주변은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경찰병력이 주변에 배치된 가운데,
사측 관리자 수백명과 노동조합 사수대 및 농성조합원과 가족 등
수백명이 각 정문에서 선전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사측은 10일 협상을 제의해왔다. 그러나 협상에서 사측은
정리해고자 1,550명 중 900명을 2년간 무급순환휴가를 실시하여
정리해고 인원을 650명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노조는 순환휴가와 임금삭감안을 제시하면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였지만 협상은 12일 결렬되었다. 김광식 위원장은
협상결렬 후 노조 사무실 위에 지어놓은 철조 구조물 위로
올라가 농성투쟁에 들어갔다.
언론에서는 공권력 투입이 입박했다는 보도를 공공연히 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주변에 병력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가운데
경찰헬기가 상공을 순회하면서 상황을 파악하였다.
이처럼 긴장감이 팽팽해지는 가운데 농성대오는 휴가 이후
4~5천여명으로 불어났고, 매일 저녁 집회에는 1만명 이상의
조합원과 가족들이 결합하면서 열기는 더욱 높아져갔다. 그리고
정문앞 육교와 건물 등에는 지역주민들이 가득 모여들어 노조의
집회를 지켜보면서 호응을 보내기도 하였다.
사측은 정몽구 회장을 앞세워 공장을 가동시키기 위해 현장에
들어와 사수대와 대치하는 모습을 언론에 보여주면서 공권력
투입에 대한 명분을 쌓아나가는 한편, 용역깡패 수 백명을
동원하여 사택과 경주 등지에 대기시켜 놓기도 하였다.
조합원들의 참여와 열기가 계속 높아지자 사측은 8월 14일
경고문을 통해 무기한 휴업조치를 선언함과 함께 공권력을 통한
문제해결의 의사를 드러냈다.
15일 범민족대회 때문에 빠져나갔던 병력이 돌아오고 병력의
추가 파견으로 17일부터 1백여개 중대 1만2천여명의 병력이
현대자동차 주변에 배치되면서 다시 긴장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8월 16일과 17일 연이어 노동부 장관과 차관이 중재활동이라는
명분아래 내려왔지만 공권력 투입을 위한 명분만을 쌓고
돌아갔다. 사측은 17일 관리자와 하청업체 직원들을 대거
동원하여 ‘정상조업 촉구 결의대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연일, 농성에 참가하지 않는 조합원들을 일당을 주면서
모아놓고 울산인근으로 놀러다니게 하는 등 투쟁대오를
고립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면서 긴장감이 가장 높아진 8월
17일 저녁 집회에는 그동안의 집회중에서 가장 많은 대오인
2만여명의 조합원과 가족들이 참여하여 공권력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노동조합은 이날 농성텐트를 1공장
중심으로 이동하고,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쌓는 등 공권력 투입에
대비하였다.
18일 새벽에 기습적인 도발이 있었지만 농성조합원들의 강력한
저지로 금방 물러나는 등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날
저녁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주최로 지역집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경찰이 집회 장소를 봉쇄하는 바람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건물위에 있던 주민이 화분을
집어던지거나 집회대오에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호응을 보내기도 하였다. 18일 저녁 집회에도 역시 2만에 가까운
대오가 참여하면서 매우 드높은 투쟁결의를 다졌고, 민주노총
단위노조 대표자들이 참여하여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에는 즉각
총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의하면서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국민회의 중재단의 활동과 협상국면으로의 급변
긴장감이 팽팽한 가운데 투쟁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던 8월 18일
저녁 노무현 부총재를 중심으로한 국민회의 중재단이
급파되었다. 국민회의 중재단은 우선 중재활동이 이루어질
동안에는 공권력 투입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면서 적극적인
중재활동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모든 언론과 조합원들의 시선은
중재단으로 집중되었다.
경찰과 사수대간의 대치는 계속되는 가운데 중재단과의
협상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조합원들은 TV를 주시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해나갔다. 경찰은 이동시에 기합소리를 크게 내지르면서
사기를 높였고, 연일 두 대의 헬기가 현장을 순회하면서 상황을
살펴나갔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경찰의 출입문 봉쇄를 풀기위한
사수대와 경찰의 몸싸움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그런가운데 국민회의 중재단의 중재활동이 길어지고
식당아주머니들을 포함하여 정리해고 인원을 최소화하는 등의
정부중재안이 알려지면서 현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8월 21일 언론에서는 “노조가 정부중재안을 받아들였지만
사측이 거부하고 있어 협상의 진전이 없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현장은 심하게 술렁거렸지만 아직 노조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언론에서는 타결국면으로 분위기를 몰아갔고, 경찰병력은 다소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8월 21일 조합원들의 분노
현장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8월 21일 저녁집회가 열렸다.
5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조합원들은 드높은 열기는
아니었지만 힘있게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집회에
참여하였다. 김광식 위원장이 소개되었지만 여느 때면 계속
터져나왔을 연호는 없었다.
김광식 위원장은 기자들의 취재 자제를 요청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먼저 위원장으로서의 어려움과 고민를 밝히면서
“위원장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나, 차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후에 어떠한 비판도 조합원들의 총의 속에서
받겠다”면서 정부와의 협상과정과 노동조합의 입장, 사측의
입장 등을 설명하였다. 집회 도중 여기저기에서 조합원들의
항의가 터져 나왔지만 위원장은 자신의 얘기를 끝까지 마치고
나서 연단을 내려가버렸고, 집회는 마무리 되었다.
허탈한 가운데 집회참여 대오들이 빠져나가던 중 다시 연단에
불이 들어오면서 즉석집회가 이루어졌다. 식당 대의원 아주머니,
민투위 의장, 문선대 대원 등이 나와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합의안을 인정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흔들리면 끝장이다”
“정리해고가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자”는 등의 내용으로
발언을 하였고, 조합원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이어졌다.
어수선한 가운데 일부 농성장을 이탈하는 조합원들이 있었고,
이를 만류하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잠시후 가족대책위를
시작으로 노동조합 앞에서 항의집회가 있었다. 사수대를
비롯하여 1천여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앞으로 모여들었다.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철회하고 고용안정 쟁취하자’
‘집행부는 각성하고 정리해고 철회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위원장이 중재안 수용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김광식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다시 한 번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나서 즉석으로 조합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동안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투쟁을 이어왔는데 이런 결과를
보려고 해온 것은 아니었다”
“공권력이 무서웠다면 벌써 투쟁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우리는
공권력에 맞서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다”
“차라리 공권력에 맞서 싸우다 깨지면 이후 다시 쏫아날
힘이라도 있지만, 여기에서 이렇게 무너지면 우리는 정말
끝장이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내가 먼저 나가겠다. 하지만 정리해고는
철회시켜야 한다”
“위원장이 투쟁할 자신이 있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양보안과 중재안을 철회하라. 만약 그럴 자신이 없으면 노동조합
위에 매달아 놓은 관을 불태워라”
“지금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과 회사가 시켜서 일당받고
놀러다니는 사람들과 같은 투표권을 주어서 투표하여
심판받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등.
발언발언 마다 조합원들은 “옳소”를 외치면서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식당 아주머니 한 분이 “차라리 우리가 나가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가 나가겠다”고 하자 “그럴순 없다”면서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조합원들이 위원장의 입장을 다시 요구하자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뜻을 충분히 알겠다”라고만 밝히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다시 정확한 입장을 요구하였으나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면서 집회를 마무리
하였다.
계속된 항의와 투쟁에 대한 기대
8월 22일 가족대책위, 식당아주머니, 민투위, 사수대 등은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던 본관 앞에서 계속 항의집회를 가졌다.
항의집회 대오는 저녁이 되어 3백여명으로까지 불어나기도
하였다.
22일 저녁 집회에는 농성투쟁 이후 가장 적은 3천여 명이
참가하였다. 이날 김광식 위원장은 “더 이상 협상을 통해 얻을
것은 없다. 지금까지 노조에서 밝혔던 임금삭감안을 철회한다.
더이상 비굴하게 머리숙여 협상에 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힘있는 투쟁을 조직하자”고 입장을 밝혀 조합원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위원장의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계속 타결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투쟁에 대한 기대 속에서도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8월 23일 민주노총 집회가 태화강에서 열렸고, 집회 참가자들이
현대자동차까지 행진을 벌였다. 행진대오가 현대자동차에
다다라서 경찰의 봉쇄로 막혀있다는 소식에 사수대와 조합원들이
즉시 정문으로 몰려들었다. 경찰의 봉쇄는 곧 풀렸고,
행진대오는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 속에 이동하였다.
23일 저녁 집회에서 위원장은 “정부가 다시 중재를 요구해와
협상에 들어갔지만 납득할 만한 안이 나오지 않아 거부하고
나왔다. 언론에 현혹되지 말라. 위원장은 조합원이 수용할 수
있는 안이 나오면 도장을 찍기 전에 조합원들에게 먼저 의견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상 타결과 조합원들의 분노
위원장이 저녁 집회에서 투쟁의지를 밝히고 5시간여 지난 8월
24일 새벽 2시 30분경에 노사간에 협상이 타결되었다. ‘식당
아주머니 177명을 포함한 277명 정리해고, 정리해고 통보자 중
나머지 인원은 1년 6개월 무급휴가, 정상조업을 위한 노력이
있을 시 재산가압류와 고소고발 등에 대한 부분적 철회’ 등이
합의안의 내용이었다.
아침 뉴스를 통해 협상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은
망연자실 하였다. 농성장을 빠져나가는 조합원들이 있는가 하면,
노동조합 앞으로 몰려가 항의하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노동조합
앞으로 몰려가 조합원들은 사수대 옷을 벋어 불 태우고,
노동조합 깃발과 관을 끌어내려 불 태웠다. 그리고 노동조합
유리창을 부수고, 노동조합 안으로 들어가 컴퓨터 등을 부수기도
하였다.
상황이 진정되자 위원장은 대의원 간담회를 소집하여 협상과정과
협상안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을 설명하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투쟁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게속 되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간담회가 이어졌다.
오후들어 농성조합원들은 모두 빠져 나가고 관리자들이
바리케이트를 철거하였다. 그리고 8월 25일부터 조업을
재개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지지부진한 실무협상과 합의안 반대 움직임
이후 노동조합과 사측간에 합의된 내용에 대한 실무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협상과정과 내용이 명확히 알려지지 않는
가운데 협상은 별다른 진전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사측은
8월 26일 일방적으로 277명에 대한 정리해고자를 발표하였다.
고소고발자 문제 등이 마무리되지 않은 가운데 대대적인
배치전환이 준비되고 있다.
민투위, 실노회 등 여러 현장조직 등에서 합의안을 반대하는
유인물과 대자보가 쏟아지고 있다. 현노신과 현노투 등에서는
합의안을 인정하는 유인물이 나오기도 하였다. 8월 28일
무급휴가자 500여 명은 모임을 갖고 ‘(가칭) 휴가자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의 대오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노동조합은 실무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가운데 조합원 총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대의원들의 요구에 조합원 총회
일정을 8월 29일에서 9월 1일로 연기하였다.
1천2백만 노동자의 희망을 만들기 위하여
올해 초부터 시작된 고용안정투쟁은 한달여가 넘는 대규모
농성투쟁 끝에 결국 277명 정리해고와 1,300여명 무급휴가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다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삶의 벼랑끝에서 보여주었던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처절하고
강력한 투쟁은 절망만이 판치는 현실에서 하나의 희망과 좌절을
보여주었다. 이제 좌절을 딛고 일어서 그 희망의 싹을 보듬어
안고 더 큰 희망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희망이 아니라 1천2백만 노동자들의
희망으로.(1998. 8. 27.)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