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현장에서 미래를 > 컬럼 > 목록보기 > 글읽기

 
늙은 산재 노동자의 눈물과 '근로복지공단’
 -세상만사-

현장에서 미래를  제110호
김형균

세상만사

늙은 산재 노동자의 눈물과 '근로복지공단’

김형균 / 현대중공업 노동자

지난주 근로복지공단 지사장을 면담했다. 30년 동안 조선소에서 새파란 청춘 다 보내고 어깨, 귀, 눈 등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올 해에 정년을 맞이하는 늙은 노동자가 어깨통증이 너무 심해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산재요양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리된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근로복지공단과 병원의 실수로 MRI 촬영 필름이 바뀌어, 3개월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고 심사청구를 준비하면서 바뀐 사실을 알고 항의하러 갔다가 공단 직원의 폭언으로 모멸감까지 느낀 뒤에서야 잘못을 인정받는 과정을 겪고, 또다시 재심의를 진행하고서도 불승인 받는데 까지 무려 5개월이 걸린 것이다.

그동안 회사에서는 휴직처리가 되어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수술비, 병원입원비, 통원치료비 등이 엄청나게 쌓여 정신적인 고통도 함께 쌓여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진행된다면 5개월 정도 남은 정년퇴임 동안에 산재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자리에서 공단 지사장에게 불승인 처리된 정확한 사유와 근거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이에 공단 지사장은 ‘자문의사협의회’에서 심의결과를 근거로 불승인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문의사 중 승인 쪽으로 의견을 낸 사람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술한 반면 그렇지 않은 의사는 ‘사안이 미미하여 불승인함’이라는 글 외에는 어떤 내용도 없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산재요양 승인, 불승인의 주체가 ‘자문의사협의회’인지 아니면 ‘근로복지공단’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조선사업장의 작업 조건에 대해 제대로 본적도 없는 의사가 현장조사 한번 하지도 않은 채 단 1줄로 ‘불승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근거로 불승인 처리하는 우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과정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겠는가.
근로복지공단이 설립 목적과 취지대로 조금만 성의가 있었더라면 이 노동자가 하루 평균 노동시간 10시간과 노동준비시간 10시간(아침, 점심, 저녁 식사시간과 출퇴근시간 3시간, 잠자는 시간 7시간)을 제외하면 4시간 정도의 여가시간이 있는데 주로 회사 동료들을 만나거나 집에서 가족과 함께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정도의 일상임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의 과정에서 업무상의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일상의 과정 속에서 업무외의 사유로 질환이 발생했다는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는 한 당연히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늙은 노동자에게 서러운 눈물을 안겨주고 말았다.

근로복지공단이 보험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산재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모습의 이면에는 많은 사실들이 숨겨지고 있다.

첫 번째로, 98년 이후 급격하게 높아진 노동강도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분위기는 노동자들을 극도로 위축시켰고, 이는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져 근골격계 질환이 늘어났다. 법과 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대부분 형식적인 진행에 그치면서 근본적인 대책은 상실되어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늘어난 것이다.

두 번째로, 늘어난 근골격계 질환자를 치료하는 시설은 늘었지만 제대로 치료하는 의술은 향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업장에서 예방보다는 사업장 내에 물리치료시설을 만들어 최신식 장비를 들여놓고 쉽게 치료할 것처럼 선전하지만, 이를 운용할 인력과 안정적인 치료체계도 부족하고, 일반 병원에서도 직업병적인 치료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아 6개월이 넘도록 똑같은 물리치료와 약물복용으로 요양기간만 길어지고 결국 수술을 하거나 강제 요양종결 처리를 하는 등의 문제다.

세 번째로, 근로복지공단 뒤에 숨어서 모든 산재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야욕이 있다.
그동안 자본가 단체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요양의 처리기준을 까다롭게 하도록 주장해 왔다. 이는 요양불승인의 분위기가 높아지면 현장에서는 함부로 산재요양신청을 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건강보험을 사용하여 스스로 치료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산재비용을 노동자 스스로 나눠서 부담하게 되는 꼴이 된다.

이렇듯 산재노동자의 눈물과 설움 뒤에 숨겨진 근본적인 문제들, 즉 질환 발생이전의 예방대책, 질환 발생 이후의 치료대책의 해결 없이는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사안에 따라 일시적, 산재관련 담당자 중심의 활동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임단협 쟁취투쟁 만큼의 비중을 가지고 투쟁을 전개할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기초를 다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5-07-27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