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파업의 의미
강 동 진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1. 시장의 입장에서 본 의사폐업과 대응방안
거두절미하고 시장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았을 때 의사들의 폐업
사태는 진입장벽을 가진 독점적 공급자의 강고한 담합에 의한
시장교란 행위로서 극단적인 시장실패의 예이다.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를 엄단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현 사태의 시급한
종식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할 것이며, 당면한
사태의 해결을 위한 방법은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나갈 것이다.
장기적인 대비책이라는 측면에서 냉정한 시장논리에 따라 대책을
세운다면 시장에서 의사들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면허제’를 철폐하는 것이 정답이나 현실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철저한 시장 숭배자인 프리드만 선생은 일찍이 독점적
공급자에 의한 시장교란 행위를 없애기 위해서 진입장벽 철폐를
주장한 바 있고, 그 대표적인 예로 의사면허제 폐지를
주장하였다.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 모두 의사행위를 할 수
있게 해 줘도 시장의 힘에 의해서 돌파리들은 모두 추방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는데, 몇 년 전 자유기업센터에서
‘의료면허제 비판과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도 있다.
모르긴 해도 이 땅의 신자유주의 신봉자들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수십 번도 더 들었을 텐데, 이 엄청난 시기에 이런
주장이 표면화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땅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의 건강만큼은 시장에 전적으로 내 맡길 정도로 시장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보다. 공병호 선생이라면 뭐라고 한 마디 할 법
한데, 요즘 벤쳐 사업하느라 무지 바쁘신가?
두 번째 방법은 시장 원리에 따라 의료체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보건의료체계를 합리적인 시장질서를 중심으로 새롭게
구축하자는 것인데, 이념적으로는 경쟁과 효율, 제도적으로는
사회보험체계의 해체와 민간보험체계로의 재편이 그 핵심이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의료공급자간에 경쟁이 강화되고 병원자본과
보험자본의 이해가 중심이 될 의료체계에서는 대부분의 민초
의사들은 조금씩 그리고 철저하게 (대) 자본(병원자본,
보험자본)에 종속되게 되고 지금의 중소 자영자에서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자본,
시설, 기술면에서 비교우위를 점한 20%의 의사들과 나머지 80%의
의사들로 재편되어갈 것이며, 그 결과가 초래할 파급력 때문에
서서히 진행되어갈 것이다. 그 상태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의권
쟁취를 위한 투쟁의 대상이 국가나 정부가 아니며 치밀하게
조직된 자본이 될 것이고, 자본에 의해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처지에 이르게 되면 지금처럼 국가와 국민을 볼모로 오늘날과
집단적 힘을 같기는 매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는 국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의 확대를 통한 공공성 확대
방안이다. 공공성 확대 의미는 구체적으로 의료자원(인력, 시설,
기기 및 장비, 지식)에 대한 국가의 투자 및 관리와 다른 하나는
의료재정에 대한 지원이다. 첫째로 지적한 의료자원에 대한
국가의 투자 및 관리는 쉽게 말해 지금 민간이 90%를 점한
병의원들이 국립병원이나 공공병원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 의사들이 여기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의 보수정치 세력들도 이럴 생각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물론, 국가가 뭐 하나 제도로 해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는 국민들도 의료기관이 공공기관화 하는데 대해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의료재정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의
의료인들과 국민들이 원하는 바이나 한국사회 지배세력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현 한국사회 지배적 이념인 신자유주의란
것은 원래 건강이니 복지니 이런 것은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진보적 정치세력에 의해서만 진정한 의료의
공공성 확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재원이 아니라 의료자원의
소유문제가 이번 사태의 발생과 해결에서 본질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의 의사들이 의료의 공공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2. 의사 폐업 투쟁의 성격
1) 현 투쟁의 근본적 보수성
의사들이 보이는 행태는 의사들은 의약분업을 매개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보건의료시장 개입에 대한 저항의 양상을 띄고
있다. 의사에게는 의료보험 도입이후 의료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이 의사들의 기대가치를 끊임없이 끌어내리고, 진료
자율권을 침해해온 것에 대하여 분노해 왔으며, 국가가 개입한
만큼의 책임을 지지 않고 그 만큼의 희생을 의료계에
전가해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보건의료분야는 ‘시장 실패’가 인정되는 대표적인 분야로
보건의료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대부분의 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에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보건의료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개입에 저항하는 의사들의
입장은 이념적 스펙트럼 상 ‘오른쪽 끝’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의사들의 이러한 반발은 ‘집단 이기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시장 진입에 독점적 권한을 지닌 공급자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제3자 개입에 반발하는 행위와 주장은 시장의
특성상 공급자의 이해에 충실할 수밖에 없으며, 하물며 독점권을
지닌 집단이 제3자 개입에 저항하는 행위는 시장을 교란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2) 친 시장적 성격
국가가 의료체계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확실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더군다나 도덕적인 비난과 경제적
불안정에 직면한 대부분의 의사들은 국가개입에 대한 불신과
반발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과 시장 친화적인
사회적 여건이 의사들을 더욱 시장 친화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성격은 기존 의료체계를 ‘사회주의 의료’라고
규정하고, 복지부나 의약분업에 적극적인 지지입장을 지니고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사회주의 의료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의사들의 이러한 생각은
요양기관 강제지정 조항이 포함된 건강보험법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청구 요지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다음은 청년의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을 인용).
“모든 의료기관이 곧 요양기관이고, 모든 요양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 1항이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 헌법
제11조 평등권, 헌법 제15조 직업의 자유, 헌법 제22조 학문의
자유, 헌법 제23조 재산권의 보장, 헌법 제119조 경제질서의
기본 등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1999. 2. 8. 법률 제5854호로 공포되어 2000. 7. 1.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의 규정은 의료법에 의한
의료기관과 의료보험법에 의한 요양기관을 분명히 구분하던
과거와 달리 이 둘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의료기관의
공공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시장경제질서하에서 사경제주체로서의
역할 또한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폐기된 ‘요양기관 강제지정’보다 의료기관의
영업활동의 자유를 더 심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청구의
요지이다.
3) 투쟁의 핵심 동력과 투쟁의 요구가 분리되어 있다
투쟁의 핵심 동력은 의료체계에 대한 분노이며, 의약분업이
의사들에게 누적되어온 분노를 폭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의사들의 투쟁은 자신들의 투쟁의 핵심 동력을 외면한 채
현상적인 쟁점인 의약분업의 현안에만 집착하여 투쟁하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의사들은 심각한 전술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제출되는 의사들의 투쟁의 요구와 목표는
본질을 외면한 즉흥적이고 표피적인 요구에 머물 수밖에 없다.
투쟁의 동력을 구체적으로 외화한 것이 투쟁의 요구이며
목표이다. 투쟁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서 객관적 정세판단에
기초하여 전략과 전술을 마련하며, 구성원의 단결에 기초하여
투쟁을 조직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의사들의 투쟁은 투쟁 동력과 요구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협상 팀도 합의안을 만들어오면 그 즉시 사쿠라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투쟁에서는 그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별다른 성과를 얻기가 힘들다고 판단된다. 오로지 승리
혹은 패배의 오르가즘 밖에는 다른 목표가 없는 상황이며 이것이
시장에서의 독점권과 강고한 단결력을 바탕으로 하여 이번
투쟁의 주된 전술이 되고 있다.
4) 투쟁의 지도력이 부재하며 대중의 냉철한 상황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이번 투쟁의 핵심 동력은 의약분업을 계기로 해서 폭발한
즉자적이고 본능적인 불만에 있다. 의쟁투는 초기에 그러한
불만의 폭발에 화약을 쏟아 부으며 대중 위에 자리한 조직이기
때문에 대중들이 분노의 오르가즘을 경험할 때까지 계속해서
화약을 부어넣을 책임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 그렇지 않고
어설프게 마무리하려는 작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며.
이제 의사 대중은 무언가 끝장을 보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지도부는 대중들에게 끌려 다니며 갈지 자 행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투쟁의 지도력은 명확한 투쟁의 목표와
전망에 대한 대중과의 폭넓은 교감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인데,
지금 현재 의사들 내부에는 향후 의료체계에 대한 입장이 전혀
정리되어 있는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투쟁의 목표와
요구가 제대로 정리될 수가 없다.
3. 의사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의사들이 2차 폐업의 요구 안으로 제출한 것을 보면 구체적인
쟁점으로 정리된 것이 별로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투쟁을
주도하는 강경파들이 원하는 것은 정부의 백기 투항이며, 이번
기동전에서의 완전한 승리의 기반 위에서 의사들의 입장이
관철되는 의료개혁의 판을 새롭게 짜겠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원하는 의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 결정권 확보, 둘째, 진료 행위에 대한
배타적 자율성 확보, 셋째, 의료 정책에 대한 영향력 확대,
넷째,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결정권확보가 그 핵심적인
내용이다.
의사들이 이러한 권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지지가
필수적이며, 그 전제조건이 국민들이 의사들의 서비스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고, 의사들의 진료행위에 경제적인
이윤동기가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의료기관 및 의사들
간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 지면서 점차 궁지에 몰린 이 땅의
의사들이 단체 행동으로 밖에 자신의 요구를 표출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의사들도 지금과 같은 행동이
초래할 부정적인 결과는 알고 있지만 그들은 이 방법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대부분의
의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길은 민간의료보험의 전면적 시행에
있다. 왜냐하면, 민간의료보험은 의사들에게는 벤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술과 자본으로 보다 많은 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4. 국가권력과 의료계의 타협
국가가 보건의료시장에 개입하는 목적은 신자유주의 개편 전략의
하나로서 효율적인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과 국민의료비의 통제와
서비스의 질 관리에 있다. 지금 현재 추진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재편의 한 축인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사회의 잠재적 불안
요인이다. 보건의료는 이러한 불안요인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의 한 축을 구성하지만 지금의 우리 보건의료
체계는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제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비효율의
요인이 너무 많다. 여기에는 많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그 돈의 많은 부분이 음성적 기전과 비효율을 통해 의료공급자,
제약회사, 의료기기업자에게 돌아갈 뿐이다.
국가의 개입은 적극적인 재정투자를 수반할 수 없다는 데
핵심적인 한계가 있다. 국가가 그만한 재정 능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치 지형의 측면에서도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이념이 팽배한 현실에서 적극적인 재정투자를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토니 블레어의 ‘제3의길’이 대처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민간 중심의 의료자원 구조는 그대로인 채 정책 개입을 통한
자원의 흐름과 배분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개입이 추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이러한 조건에서는 공급자의 경쟁을 통해
질 높은 서비스를 유인하는 방식으로 규제와 개입이 지속될
수밖에 없음.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장과 경쟁을 중심으로
의료체계는 흘러갈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투자할 생각이 없는 국가와 지배
계급은 이러한 의사들의 이해와 요구에 타협해 들어갈 것이다.
신임 보건복지부장관이 보이고 있는 전향적인 태도는 그 시작일
뿐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과 계획은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국가는 지금
의사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