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현장통신은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첫번째 「고종환 집행부를 찾아서」는 11월 7일
임원선거에서 지금까지 ‘기아살리기’ 투쟁을 지도해 왔던
이재승집행부가 패배함으로써 그동안의 투쟁과 노선에 대해
재평가의 계기를 주고 있는 기아자동차노동조합 신임 집행부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두번째 「전국노동자대회를 다녀와서」는 지난 11월
8~9일 개최됐던 97전국노동자대회의 참관기로
한라중공업현장조직 활동가의 글을 실었다. 1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노동자대회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짧은 글이지만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현 장 통 신 1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14대
고종환 집행부를 찾아서
현장통신 1
고종환 집행부를 찾아서
일시 : 1997년 11월 27일(목) 오후 4시
장소 : 노동조합 사무실
참석 : 김동수 교육선전실장
7월 15일 부도유예협약 이후 10월 22일 법정관리가 발표되기까지
기아사태는 전사회적 주목의 대상이었다. 재계 8위 기업이자
자동차 생산량 세계 17위라는 규모가 갖는 사회․경제적
파장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인 기아자동차노동조합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자동차연맹의 지원하에 ‘회사
살리기’에 나선 것은 관심의 초점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기아 살리기는 조합원의 막대한 희생이 전제된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의 절대적 동의하에 진행되었고, 법정관리가
발표된 이후까지도 그 단결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1월 7일 실시된 노동조합 선거에서 ‘기아 살리기’를
주도해 왔던 전집행부가 패배하고, 현장조직 ‘평등세상을 여는
노동자회’(이하 평등회)가 주축이 되어 ‘노동자살리기’를
공약으로 내건 고종환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기아 살리기’는
조합원의 또다른 선택에 의해, 일단 역사의 장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조합원은 왜 회사 살리기에 나섰으며, 조합원의 강력한 힘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으로 알려졌던 ‘기아 살리기’는 조합원의
어떤 판단에 의해 부정된 것인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자동차의 노동조합은 어떤 현실인가? 14대 고종환 집행부는
어떤 정책적 대안을 갖고 선거에 임했으며, 기아노조를 둘러싼
현실을 타개해 나갈 계획은 무엇인가? 이 인터뷰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14대 집행부로부터 직접 들어보고자
기획되었다.
기아 살리기와 노동자살리기
-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되어 고민도
많고 어깨도 무거우리라 생각됩니다. 기아사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이었고, 노동조합의 대응도 많은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13대 집행부와의 차별성을 선언하고
출마한 고후보 진영의 공약과 새로 구성된 14대 집행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고후보측이 당선된 주 요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선거과정에서 평등회 회원들 이하 고종환 선대본
관계자들이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에서, 조합원들은
‘고후보측이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조금씩 관심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운동원들은
조합원들한테 할 말이 많았습니다. 기아 살리기 비판, 앞으로의
방향 등등. 다른 후보진영 운동원들과 분명히 차별되는
부분이었지요. 그런데 이러한 관심은 그 동안 평등회 회원들의
현장활동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가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또한 다른 4명의 후보와는 다른 정책(고후보 진영은 ‘노동자
살리기’를 선언했고, 다른 4명의 후보 진영은 ‘기아
살리기’를 공약화 함)을 제시했던 것에 반대 우리 선대본이
당시 현장 조합원의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바로 이것이 승리의 주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아 살리기’는 조합원 전체의 동의를 얻으면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막상 선거에선 ‘노동자 살리기’가
조합원의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조합원들은 고용과 생존권을 사수하고자 ‘기아 살리기’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부도유예협약 이후 기아자동차에서만
1,800여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 중에는 형식은 자의지만
내용상으로는 타의로 그만 둔 사람이 대다수지요. 사실상
장기근속자 중심으로 대폭적인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회사를 떠났지만 생산량은
향상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배치전환을 통한
노동강도 강화지요. 아산의 경우는 인원이 부족하여 퇴사한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기다 임금은
불규칙적으로 나오고, 상여금, 복지기금이 중단되어 조합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고용과 생존권을
사수하고자 ‘기아 살리기’를 했지만 고용과 생존권이 많은
부분에서 박탈당하고 있었습니다. 한가지 부연할 것은
투쟁내용이 변질되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 사수를 위한 ‘기아 살리기’가 앞의 내용, 즉 고용과
생존권 사수 문제는 뒤로 한 채, ‘기아 살리기’ =
‘최고경영진 살리기’로 바뀐 것이지요.
그러나 회사가 발행하는 신문인 ‘기아월드’ 10월 6일자를 보면
회사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편성효율을 높이려는 계획과
단협수정(단협개악)을 통한 노사협조주의 구축을 공공연하게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반대하던 신경영전략을
그대로 관철시키려 하는 것이었지요. 노동조합의 ‘기아
살리기’를 부도유예협약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이번 사태를 기회로 노사협조주의
노선을 완전히 구축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
특히 강한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 그러면 고후보 진영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판단했습니까?
우리는 인수합병에 따른 고용안정과 노동조합의 사수가 투쟁의
본질이고, 이를 위해 전술적으로 기아정상화 투쟁이 배치되어야
했다고 봅니다. 즉 전반적인 경제여건의 악화와 현대나 대우의
삼성인수에 대한 강력한 반대 등을 활용하면서 노동조합이
강력히 버티는 것이 필요했다고 보여집니다. 경제상황은
기아사태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정부에 불리하였으므로 조기에
수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3자인수 또한 현대, 대우,
삼성 등 재벌간의 다툼으로 상당한 걸림돌이 있었던 만큼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권리를 유지하면서, 기아의 부도사태는
오히려 삼성의 자동차 산업진출과 정부의 과잉중복투자 허용,
부실경영 때문임을 분명히 하며 그에 대해 책임을 묻는 공세적인
전술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한편 10월 22일 법정관리를 발표한 이후 정부는 기아정상화를
위한 공기업화 방안, 정상화 자금 지원, 감원 중단, 우리사주
보전 등 많은 부분을 노동조합과 사회일각에 던졌습니다.
기아노동자로서는 정부와의 투쟁에서 많은 것을 얻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간 10월 27, 28일경
조합원의 분노가 매우 높았고, 당시 여론도 파업에 대해
부정적일 수 없었습니다. 노동조합은 무조건 화의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발표한 기아정상화 방안이나 감원은 절대
안하겠다고 한 부분에 대해 문서화, 협약화를 요구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그렇게 했다면 기아정상화를 위한 노동조합 투쟁은
일정한 성과(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를 획득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당연히 우리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그만큼 적어질 수밖에 없었고요.
10월 29일 노동조합은, 화의를 요구하는 파업을 계속하면서 외부
항의집회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그 날 오전 김선홍 회장이
사퇴를 한 것이지요. 노동조합은 최고경영진 사수를 위한
투쟁(화의)을 한창 진행중인데 그 최고경영진이 사퇴를 했으니
노동조합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조합원들은 당연히 패배의식,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부도유예협약 이후 13대
집행부는 열심히 했고, 부분적으로는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노선을 잘못 잡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 덧붙여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은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들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노동자 살리기’를 선언한 고후보 공약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진행과정이
어떠했습니까?
우리 후보를 제외한 다른 4명의 후보가 주장한 바는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가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노동자
살리기가 조합원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면서도 조합원들이 우리를
선뜻 지지하지 못하는 점도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회사가
이렇게 어려운데 노동자 살리기가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도 회사 정상화 방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기아 살리기 반대, 경영진 사수 중심의 기아
살리기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자동차의 품질이 좋다고 평가되는
기아자동차의 정상화는 정부 지원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이지,
계속되는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기아자동차 부도위기가 온 것도 기아자동차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아특수강이나 기산 등의 부실경영의
여파였으므로 당연히 경영진도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선거투쟁의 의미와 노동조합의 이후 과제
-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거에 임하면서 승리를
예감했는지요?
출마를 결정했을 때의 심정은 ‘평등회’ 조직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과 우리가 문제제기한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97임투를 무교섭 위임할 때, 평등회는 반대한
바 있고, 부도유예협약 이후 ‘기아 살리기’를 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부분적으로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조합원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아산공장의 경우 조직력이 워낙
취약하여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아 살리기’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잠재되어 있다고
판단했으므로 선거를 잘 치르면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1차 홍보물이 나갔을 때, 조합원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는
판단을 했으나 선거과정에서는 워낙 변수가 많았습니다.
법정관리 발표로 선거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고, 파업이 진행되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차 투표 결과, 13대
집행부인 이재승 전위원장 1위, 우리 후보가 2위를 했을 때, 그
때 기쁨이 가장 컸습니다. 30여년간의 어용노조, 그 뿌리가 워낙
깊은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민주를 표방한 후보가 1, 2위를
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감격하게 했습니다. 1차 투표 결과를
보면서 결선에서는 우리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 과거 노동조합 선거와 비교해서 이번 선거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점입니까?
과거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선거에서는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
지역주의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위해 투쟁하는 곳이 아니라, 노동조합 간부를 하면 출세의 길로
나간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역 연고를
활용하여 노동조합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노동자가 신규채용되면
가장 먼저 지역 연고로 엮이는 경향이 있지요. 지금도 그 잔재는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도 5명 중 3명의 후보가 지역을
근거로 출마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자기의 밥그릇이 걸린
선거이기 때문에 단순히 지역에 의거하여 투표하리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조합원들은 ‘이번 선거는 잘해야 한다, 강한
노동조합이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후보가
어느 진영인가라는 판단을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기아자동차
조합원의 의식이 많이 향상되기도 했고, 상황이 워낙 절박하기도
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후보 진영은 처음 선거전략을 세울 때, 이번 선거는
정책선거여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정책내용을
보면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는 일관된 논리로 그간의 과정을 평가하고, 이후 대안을
제출하자고 방침을 정하였습니다. ‘기아 살리기’를 평가하면서
조합원들이 노동자적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지요.
- 긴급히 해결해야 할 8대 과제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약은 어떻게 실현할 계획이며, 현안으로 닥친 것은 무엇이
있고, 현재 어떻게 대응하고 계십니까?
12월 초 노사협의회 안건으로 4가지를 제출하였습니다.
97임금건(97임금을 사측에 백지위임할 때 노동조합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부도유예가 되면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지요), 상여금 지급, 복지기금, 배치전환 등입니다.
부도유예협약 이후 13대 집행부가 회사와 많은 부분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합원에게 공개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상여금, 복지 부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은
생산을 위한 비용이고, 노동조합과의 계약이기 때문에 무한정
연기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한 회사의 계획과
노동조합의 입장이 분명하게 조합원에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배치전환도 마찬가지입니다. 단협에는 배치전환시 본인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이 있어야 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회사와 노조가
일방적으로 합의한 후 회사 주도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방적인 주도가 현장에서 커다란 문제를 발생시켰습니다.
드러내 놓고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전체
분위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받아들이거나, 회사를 그만 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배치전환에 대한 대응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14대가 닥친 문제이기도 하구요. 우리 14대 집행부는 배치전환이
꼭 필요하다면 회사와 노조, 그리고 현장조합원들이 상호
논의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운데, 원칙과 기준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 이외에 닥친 현안으로는, 회사가 부분적인 전임자 축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노조도 예견한 문제였습니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원과 관례에 준한 인원을 고수할 것이고,
노동조합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은 합리적으로
조정해 들어갈 예정입니다. 회사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 보여지고, 집행부도 현장에 있을 때부터 생각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 고위원장이 공약으로 내건 공기업화 방안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계획입니까?
기아사태 이후 민주노총이나 자동차연맹에서 국민기업화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단사 노동조합이나 조합원 차원에서는
국민기업화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습니다. ‘고용을 보장받고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회사 살리기로 우리는 간다’는 좀
단순한 입장이었다고나 할까요. 공기업화 논의는 정부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10월 22일 정부는 법정관리를 발표하면서
산업은행 부채를 출자전환하여 최대 주주화함으로써,
기아자동차가 정상화될 때까지 공기업 형태로 운영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사외이사제 도입과 전문경영인체제
유지 방안도 발표했습니다. 우리 선대본은 정부가 발표한 내용이
노동자 입장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좀 더 구체화하고 실질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실질적
공기업화 방안이 무엇이 될 지는 좀더 자세히 조사 연구해야
합니다.
공기업화 방안은 소유문제와 경영에 대한 노동자적 통제권
확보로 접근해 봤습니다. 먼저 산업은행 출자분을 이후
개별자본에게 매각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우리사주와 경영발전위원회에 대한 노동조합 참가권을 확보하며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사외이사와 감사를 선임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선에서 공약화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법정관리라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
보여집니다. 일정 정도 경영에 대한 참가권을 노동조합에
부여하고, 상당한 정도의 책임을 노동조합에게 강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상급단체의
올바른 지도와 전문적인 노동연구진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저희들로서도 실험적 성격이 짙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노동조합 안에
경영참가연구팀을 신설할 예정입니다.
- 진 념 회장이 3자인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3자인수가
된다는 예상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대응할 생각입니까?
정부가 발표한 공기업화 방안을 구체화한다면 3자인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우리 집행부도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조합원들의 단결력을 높여 냄으로써
3자인수를 저지할 힘을 쌓는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기아
살리기’를 3개월 동안 진행한 실질적 동력은 3자인수에 대한
조합원들의 부정적 인식에 그 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고,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삼미특수강 등의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서
철저히 준비해 들어갈 것입니다.
- 새 회장은 노동부 장관 시절 신노사관계를 주도한 장본인이고,
무쟁의 선언, 노사협조를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이런 사람이
자동차 공장 회장으로 취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여집니다. 회사의 대노조 전략은 어떠하다고 보며, 노조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진 념 회장이 취임했을 때, 진 념 회장은 상공부 장관도 했고
노동부 장관도 했으니, 기아자동차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아닌가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상공부 장관을
했으니 기업운영에 전혀 감이 없지는 않을 것이고, 노동부
장관을 했으니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도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지요. 진 념
회장으로서도 기아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그의 능력을
시험하는 장이 아니겠어요? 혹시라도 노동조합을 먹기 좋게
요리해서 3자에게 인수시킨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전략 수정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 온다면 노동조합은 목숨 걸고 싸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 아니겠어요? 회사가 노동조합을 실질적
파트너로 설정하고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 한다면 노동조합도
회사와 보조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조직과 노동조합
- 지금부터는 현장조직에 대해 몇가지만 묻겠습니다. 올 대공장
노동조합 선거에서 현장조직은 공식적으로 후보를 출마시키고
승리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도
평등회라는 현장조직이 고후보를 조직적으로 출마시켜서 당선된
예입니다. 먼저 노동조합운동에서 현장조직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활동가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단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대공장 노조에서 집행부가 활동가를 발굴해서
단련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측면이 많고, 집행부를 통해 단련되는
활동가도 극히 소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학습소모임 등이 꽤 많았고, 외곽의 노동운동 단체에서
활동가들이 교육, 훈련받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이 거의 없어진
현재, 일상적으로 현장사업과 노동운동의 제반 상황에 대해
토론하고 검증하는 것은 현장조직 단위밖에 없지 않냐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활발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집행부 사업을 견제하고 지원하는 것도 현장조직의
커다란 임무입니다. 이는 대의원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대의원들은 다양한 성향으로 분산되어 있어 어떤 결정을 할 때
많은 고려가 필요하고, 결정이 잘 안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장조직은 자기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집행부가
건드릴 수 없는 사안들, 예를 들어 정치적 입장 표명 등도
현장조직은 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조합원
의식향상에도 많이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지금과
같은 대공장 노조 상황에서 현장조직은 꼭 필요한 단위라고
생각합니다.
- 평등회는 전민회에서 분리된 조직이잖아요? 그 분리과정과
분리 이후 평등회의 활동내용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전민회(평등회가 분화되기 이전의 소하공장 현장조직)는 13대
이재승 위원장을 출마시켜 당선시켰습니다. 그러나 13대
집행부는 96년 임단투 과정이나 97년 사업 속에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평등회 회원들은
그런 13대 집행부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편이었고,
‘기아노동자회’(이하 기노회) 회원들은 문제가 있더라도 감싸
안으면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전민회’ 내부에서
그런 대립이 계속되면서 평등회가 분리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97임투 과정에서도 평등회는 백지위임에 대해 분명히 반대했고,
영업지부가 기아자동차판매로 분리하는 사안에서도 반대하면서
영업조합원과 함께 했습니다. 평등회는 민주노조 건설 과정에서
현장의 일상투쟁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그런 점에서
조합원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이번에 출마도
하게 되었습니다.
- 집행부와 평등회는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평등회는 어떤
활동들을 해 나갈 계획인지요?
평등회 규약에는 집행부로 올라가면 정회원 자격을 정지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준회원이 되는 것이지요.
집행부와 현장조직은 분리되어 독자성이 유지되어야 건강함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평등회가
어떤 활동들을 해 나갈지는 평등회에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평등회 회원 중 많은 수가 집행부로 올라 왔기 때문에
기존 평등회는 재정비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산의 ‘참세상’(박기용 아산 지부장을 출마시킨 아산
현장조직)과의 유기적 관계 모색, 회원 확대 강화 등 여러
사업이 모색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현재 기노회와도
현장조직으로서의 연대활동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노동조합의 연대활동은 어떻게 해 나갈 계획입니까?
금속 3조직 통합을 지지하며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결합할
것입니다. 상급단체 활동에 대해서는 현장 조합원들이 충분히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며 현장 조합원이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리해고제 도입 저지, 퇴직금 위헌처리 문제 등 전체 노동자가
함께 투쟁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바쁘실텐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기아자동차노동조합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연이은 부도,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필자가 노동조합을 방문해서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13대
상집간부 한 명이 얘기를 나누자고 하여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최근의 한국 경제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그 상집간부는
‘13대 집행부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기아투쟁 잘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필자에게 던졌다.
많은 문제를 야기하면서 진행된 노동조합의 기아투쟁은
결과적으로 보면, 그것이 부분적이고 일시적일지라도 승리로
귀결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조합원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누구도 승리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투쟁을 주도적으로 이끈 13대 집행부조차 승리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왜 그럴까?
노동조합이 진실로 고용과 생존권 사수, 단협 사수,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전술적으로 ‘기아 살리기’에 나섰다면 노동조합은
법정관리가 발표되었을 때, 정부가 발표한 방안에 대한 확약을
받는 선에서 조건부 법정관리 수용으로 투쟁전술을 전환했어야
한다고 본다. 정부 발표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는 확실히 노동자 투쟁의 성과물이었다.
이를 성과로 받아들여 승리로 일단락 지은 이후, 법정관리라는
상황에서 새로운 투쟁을 기획했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상급단체가 화의 고수투쟁을 계속하는 바람에 김선홍이 퇴진하자
투쟁은 어쩔 수 없이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 사수를 위한 ‘기아 살리기’가 아니라 경영권 사수
중심의 ‘기아 살리기’ 투쟁의 결과였다.
기아자동차노동조합은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그
성과를 성과로 만들어내지 못했고, 그럼으로써 노동조합
내적으로는 침체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과제는 14대 집행부로 이월되었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기아사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강력한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자동차 자본간의 견제, 삼성 승용차 진출의 허용, 스스로
당당하지 못함으로써 중심을 잡지 못했던 정부에 의해 3개월
이상을 끌게 되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은 IMF 구제금융 하의
법정관리라는 조건 속에 던져졌다. 이제 노동조합은
기아자동차를 둘러싸고 전개될 대내외적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중심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현장조합원과 함께 고용과
단체협약을 사수하면서 기아정상화를 둘러싼 과제,
산별노조건설의 과제를 힘차게 풀어 나가야 할 시점인 것이다.
IMF 구제금융 도입이 거론되면서 ‘국가의 파산’, ‘경제의
신탁통치’, 국가의 ‘종속심화’ 등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국가 전체가 IMF 혹은 그 배후에 있는 미국의
초국적자본의 이해와 대립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온 국민이
‘나라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으로 확대되어 매스컴을
장악하고 있다. IMF(그 배후의 미국 초국적 자본)와 국내자본은
분명 ‘재벌’ 문제와 ‘구조조정 일정 및 범주’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IMF와 국내자본은 ‘이윤확보’라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며, 한국의 독점자본은 미국
초국적자본과 결탁하여 자신의 이윤을 확보하려는 기본적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IMF와 국내 독점자본은 이윤을 위한 경쟁을
하지만 노동에 대한 공격에서는 협력을 하고 있다. 이는
즉각적으로 ‘국가위기’라는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노동의
유연화로 구체화되어 각 기업에서 대규모 정리해고와 배치전환이
구체적으로 시행되거나 거론되고 있다. 노동자에게 있어 현재의
전선은 노동과 자본(국제자본 포함)의 대립이지 IMF와
한국(민족)의 대립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루가 멀게 부도가 터지고 있다. 기아사태에 대한 ‘회사
살리기’ 식의 노동조합 대응과 기아자동차조합원들의 새로운
지도부 선택은 ‘경영위기에 빠진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회사가 존재해야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많은 노동자들의 생각은 정서적으로는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이러한 사고는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희생을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하다. ‘국가 위기’와 화의니,
법정관리니, 3자인수니 하는 조건 속에서 노동자가 고용과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적 관점을 견지해야만 한다.
위축되기 시작하면 노동조합은 한없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즉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과잉생산량 조정과
노동자의 고용 유지와 확대 쟁취를 당면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특히 주야간 맞교대 사업장의 야간노동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으며, 용역과 하청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사고하여,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조합의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 고용불안 시기를 맞이하여
전체 노동자가 단결하여 이 상황을 돌파할 것이지, 아니면
노동조합과 노동자 전체가 각개격파 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노/정/연
인터뷰 정리 : 강연자 / 연구기획실 연구원